강하율이 상자를 품에 안으며 되물었다.“아직 할 말이 남았나? 없으면 먼저 가서 자도 돼? 내일 또 출근해야 하거든.”배윤제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강하율의 속내를 읽어내려 애썼지만 표정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데려다줄게.”그는 자신과 강하율의 관계를 탐색하듯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들이 여전히 거슬렸다.강하율 역시 느끼고 있었지만, 어차피 결론도 나지 않을 일로 더는 입씨름하기 싫었다.“됐어, 이미 택시 불렀어. 설마 내 뒤를 밟을 생각은 없겠지? 안 그래?”이토록 선을 긋는데도 주소를 묻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그럼. 알아서 가.”“갈게.”강하율은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그런데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윤성태의 전화를 받았다.“아저씨, 옷 만드는 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아니야.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오후에 있었던 일을 깜빡했지 뭐야.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했다. 오늘 배윤제가 여기 다녀갔는데, 그 원단을 봤어.”강하율이 긴장하며 물었다.“뭐 허튼짓이라도 하던가요?”“그런 건 아니고, 돈은 얼마든지 더 줄 테니까 그 원단을 자기한테 팔라고 하더구나.”강하율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배윤제가 자신을 위해 그 정도로 돈과 공을 들일 줄은 몰랐다.“그래서 사 갔어요?”“아니. 내가 원단 주인하고 직접 상의해 보라고 했거든. 배 대표님이 형이라고 하지 않았어? 다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됐다고 하면서 그냥 가버리더구나.”“알겠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강하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배윤제가 정말로 어머니의 원피스를 완벽히 재현해냈다면 거절할 구실을 찾느라 꽤 골머리를 앓았을 터였다.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를 과대평가하고 말았다.배윤제는 본인이 결정하는 걸 좋아할 뿐, 누군가와 상의하고 타협할 위인이 아니었다.전화를 끊은 강하율은 손에 들린 상자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어차피 입고 갈 드레스도 없었는데, 제 발로 굴러 들어온 셈 아닌가?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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