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281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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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임현서 씨는 괜찮을까요?”“배윤제한테 기회를 주지 마.”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임현서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무슨 기회요?”두 사람이 또 동시에 말했다.강하율은 민망해졌고, 배윤호는 덤덤히 대답했다.“나는 아까 분명 똑똑히 얘기한 것 같은데.”강하율은 의아한 얼굴로 배윤호를 바라보며 그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임현서를 거절한 것? 아니면...’배윤제가 배윤호에게 그 여자랑 진심으로 만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배윤호는 진심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었다.강하율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괜한 착각을 한 걸까 봐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오빠, 아까 왜 제 말을 반박한 거예요?”배윤호가 대꾸했다.“그 사람들은 너를 겨냥해서 그런 말들을 한 거니까. 네 말에 긍정한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 본 적 없어?”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녀가 오해한 것이었다.“아까 그 생선 수프는 오빠가 준비한 거예요?”“응.”“제가 고수를 안 먹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하율이 계속해 물었다.“네가 어렸을 때 너희 어머니한테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어.”“...”강하율은 당황한 표정으로 배윤호를 바라봤다.배윤호는 어떻게 어렸을 때 일을 다 기억하는 걸까?그러다 문득 강하율은 자기도 모르게 진심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던 배윤호의 말을 떠올렸다.강하율은 오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서 물었다.“오빠, 아까 윤제 오빠한테 기회 주지 말라고 한 거... 혹시 저랑 이모 얘기를 엿들어서 한 말이에요?”“지나가다 들은 거야.”배윤호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물론 강하율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세상에 그런 우연이 얼마나 있다고.’“이모는 몸이 안 좋아서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이모랑 약속한 거지, 윤제 오빠랑 약속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윤제 오빠가 좋아하는 건 정다인 씨잖아요.”“그건...”배윤호가 잠시 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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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배윤제였다.그는 차 키를 꺼내 들며 웃었다.“가자.”강하율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어디를요?”배윤제가 미간을 찌푸렸다.“데려다줄게.”그 말은 강하율이 일부러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강하율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말했다.“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오빠를 기다린 적이 없거든요. 정다인 씨나 데려다주세요. 여기는 택시가 잘 안 잡히거든요.”그렇게 말한 뒤 강하율은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배윤제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강하율, 나 너랑 우리 어머니가 한 얘기 다 들었어. 네가 나한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줄...”“오빠, 저는 이모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그게 무슨 말이야?”배윤제는 소유욕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강하율을 노려봤다.“말 그대로예요. 그러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강하율은 배윤제의 손을 뿌리쳤다.그리고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배윤제가 불쑥 말했다.“다른 남자가 생긴 거야? 그게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이럴 리가 없잖아.”예전에는 배윤제가 그런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당시 사랑에 눈이 멀었던 게 확실했다.이제는 배윤제를 봐도 그를 좋아했던 예전의 그 감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그래서 강하율은 그저 조용히 배윤제를 바라봤다.그러다가 배윤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강하율, 네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기억을 되찾아도 너한테 얘기 안 할 거야.”배윤제가 할 법한 말이었다.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세요.”그리고 그대로 돌아섰다.강하율은 배윤제가 뒤쫓아올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그가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강하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배윤제는 방금 새로 들여놓은 화분을 발로 걷어찼고, 그 소리를 듣고 마침 정다인이 뛰어나왔다.“윤제 씨, 괜찮아요?”배윤제는 짜증 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봤다.“비켜!”바닥에 넘어질 뻔한 정다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배윤제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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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아니요.”강하율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요.”“배윤제가 고개를 돌렸다가 너랑 내가 같이 있는 걸 볼까 봐 걱정되지 않아?”“걱정 안 되는데요.”예전이었다면 무서웠을 것이다. 소문 속 배윤호를 두려워했으니 말이다.그러나 실제로 지내보니 배윤호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다.강하율이 걱정되는 건 조윤서가 알게 되는 것이었다.강하율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배윤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다른 길로 가자. 그래야 네 이모도 괜한 생각 안 하지.”“...”강하율은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배윤호를 따라 다른 길로 나갔다.좁은 길을 벗어나자 보행로가 나왔다. 낙엽들이 떨어진 거리에 바람이 일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강하율은 그제야 배윤호가 줄곧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배윤호의 손바닥은 따뜻하면서 건조했고, 강하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오빠.”“응.”배윤호는 그녀의 옆에서 걸으며 짧게 대답했다. 다리가 훨씬 긴데도 배윤호는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강하율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들의 옆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창문이 내려가자 양승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강하율 씨. 저 타이밍 잘 맞춰서 왔죠?”강하율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잘 오셨어요. 얼른 타죠.”강하율은 조금 횡설수설하며 차 문 쪽으로 달려갔고, 배윤호는 양승아를 차갑게 노려봤다. 그 눈빛에 양승아는 웃을 수가 없었다.“대표님, 제, 제가 분위기를 망친 건가요?”“...”배윤호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아파트에 도착한 뒤 강하율은 짧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소파 위로 쓰러진 강하율의 머릿속은 온통 잡생각으로 가득했다.그러다 강하율은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는데도 배윤제는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배윤제가 기억을 잃었다고 했을 때부터 아주 긴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고, 마음속에도 더 이상 아무런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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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여기서 일하려고요?”강하율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네. 아빠는 항상 바쁘셔서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돌봐주셨어요. 엄마 혼자 여기 남겨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엄마가 아프실 때 돈을 많이 썼어요. 우리 아빠도 이제는 연세가 있으셔서 더는 아빠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요.”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신예진이 살짝 울먹였다.그녀와 어머니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강하율은 목소리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강하율은 저도 모르게 어머니가 떠올라 측은지심이 생겼다. 어차피 호텔도 연말이면 굉장히 바빠져서 늘 사람을 구했다.강하율이 말했다.“신예진 씨, 지금 이 시기에 일을 시작한다면 많이 힘들 거예요. 지금 호텔에 사람이 부족한 부문들은 다 일이 꽤 고되거든요. 그래도 해볼래요?”“네. 저는 힘든 게 차라리 나아요. 그래야 괜히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저한테 호텔은 직원을 잘 대우해 준다고 하셨어요.”“알겠어요. 그러면 제가 한 번 얘기해 볼게요. 이르면 다음 주쯤에는 출근할 수 있을 거예요.”“정말 고마워요.”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하율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계속 도착했다.통화를 마치고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모두 배윤제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어떻게 돌아간 거야?][누구랑 연락하고 있었어?]또 추궁이었다.그 뒤에 이어진 메시지는 더 보기도 싫어서 강하율은 바로 휴대폰을 꺼버렸다.다른 한편, 배윤제는 답장이 오지 않자 전화를 걸었는데 강하율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점점 더 짜증이 치밀어오른 배윤제는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배씨 가문 앞 도로는 택시들이 다닐 수 없었다. 강하율이 그의 차보다 더 빨리 갈 수는 없을 테니 분명히 누군가 그녀를 태워줬을 것이다.대체 누가 태워줬을까?배윤제의 눈빛에서 집착이 이글거렸다. 그는 핸들을 몇 번 세게 내리친 뒤 아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제 씨,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세요?”“준비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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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정다인의 엄마는 조급했다.정다인이 짜증스럽게 말했다.“그만해요.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으니까!”“왜 짜증이 나?”그제야 정다인의 엄마는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사진을 보았다.“얘는 누구야?”정다인은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이름을 바꾸고 사라졌던 그 여자아이예요. 이름은 신예진이래요. 장 비서가 조사한 데 따르면 지금 호텔 근처 마을에서 머물고 있대요.”“그렇게 가까운 데 있다고? 설마 배윤제를 찾으러 온 걸까? 혹시라도 네가 걔 대신...”정다인이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여기까지 직접 찾아와 줬는데 제가 입을 열 기회를 줄 것 같아요?”정다인의 엄마는 신예진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았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매우 말랐는데 두 눈은 초롱초롱해서 자기도 모르게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그런데 신예진처럼 마른 아이가 배윤제처럼 큰 소년을 구할 수 있었을까?“만약... 얘가 아니라면?”신예진이 아니라면 남은 사람은 강하율뿐이었다.정다인은 바로 반박했다.“신예진이 맞아요. 자료 좀 봐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왔다잖아요. 이런 애들은 겉보기엔 말라도 힘이 세요. 게다가 늘 들판에서 뛰어다니며 자랐으니 다른 애들보다 달리기도 더 잘했을 거예요. 당시 윤제 씨가 말했던 상황이랑 딱 맞아요. 강하율 같은 재벌가 딸이 무슨 수로 납치범들보다 더 빨리 달리겠어요?”정다인의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어서 처리하는 게 좋겠어. 괜히 문제 생기지 않게 말이야.”“걱정하지 마세요.”정다인이 독기 어린 눈빛을 해 보였다. 아무도 그녀의 길을 막을 수 없었다....다음 날, 강하율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직장 동료들은 비가 내려서 몸살을 앓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주방으로 가서 생강차라도 받아오라고 했다.점심에 김혜은과 만나기로 했던 강하율은 혹시라도 일정에 문제가 생길까 봐 얼른 주방으로 향했다.강하율과 아는 사이인 요리사는 강하율의 상태를 보자마자 곧장 생강차를 끓여서 건넸다.“강 팀장님,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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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강하율은 설명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심폐소생술을 계속했다.가망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강하율은 아주 작은 희망이 끈이라도 잡고 싶었다.그러나 심폐소생술은 체력 소모가 컸고, 비까지 내리고 있어 온몸이 차갑게 얼어서 굳어버렸다.심지어 빗물이 코와 입을 덮쳐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결국 강하율은 또 한 번 기소정에게 밀려 넘어졌다.기소정은 절망에 빠진 채 김혜은을 끌어안았다.“엄마...”“안 돼요!”강하율이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두 사람 모두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내 김혜은의 머리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기소정은 그대로 넋을 놓고 말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뭔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만 같았다.잠시 후, 의료진이 들것을 들고 도착했고 그 뒤로 호텔 직원들도 여럿 따라왔다.누가 신고했는지는 모르지만 경찰도 함께 도착했다.의사는 김혜은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곧바로 시신 위에 흰 천을 덮었다.“왜 몸을 함부로 건드리신 거예요? 목뼈가 완전히 부러져버렸잖아요.”기소정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그곳에는 빗물로 잔뜩 젖은 강하율이 있었다. 강하율은 그 순간 빗방울이 차가운 칼날이 되어 피부를 가르고 혈액 속에 침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우리 엄마를 죽였어요!”“...”강하율은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머리가 너무 아프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곧이어 강하율은 의식을 잃었고, 그렇게 현장에서 해명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병원.강하율은 완전히 정신을 차리기 전, 이마 위에 따뜻한 손이 가볍게 닿는 느낌을 받았다.곧 귓가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어떻습니까?”“열은 내렸습니다만, 갑자기 열이 난 게 좀 이상합니다.”“그게 무슨 말이죠?”“혈액 검사 결과가 정상이에요. 아픈 흔적이 전혀 없어요. 물론 놀라서 열이 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면 다시 채혈해 보시고...”남자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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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강하율은 용의자인 자신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배윤호가 뭔가 말하려고 하자 강하율은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배윤호는 말을 아끼며 자신의 외투를 벗어 강하율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리고 옷을 여며주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경찰들을 쭉 훑어보다가 그들의 주머니를 바라봤다.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은 분명 그들의 권한이지만 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뭔가 깨달은 경찰이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지만 오히려 그 탓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배윤호가 차갑게 말했다.“기씨 가문과 배씨 가문은 서로 인연이 있죠. 제가 이미 윗선에 얘기해 두었으니 이 사건은 제대로 처리될 겁니다.”경찰들은 금세 기가 죽어서 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도 못했다.“강하율 씨, 그러면 같이 가시죠.”배윤호는 강하율을 내려다보며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그쪽은 추우니까 옷 잘 챙겨입도록 해.”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말이었다.강하율은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은 외투를 바라보다가 단추가 특별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 단추는 배윤호가 끼고 있는 가문의 반지와 같은 무늬였다.강하율은 배윤호의 의도를 이해하고는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네, 알겠어요.”말을 마친 뒤 강하율은 경찰을 따라 병원을 나섰다.병실 안, 양승아가 배윤호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강하율 씨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겁니까? 그 경찰 주머니 안에는 아마도 주사기가 들어있었을 겁니다. 그런 얇은 주삿바늘로 사람을 찌른다면 굳이 몸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티가 안 나요. 게다가 강하율 씨는 조금 전까지 병원에 있었으니까 나중에 바늘 자국이 발견돼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호텔 쪽은 어때?”배윤호가 물었다.“CCTV를 확인해 봤는데 오늘 강하율 씨는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점심 무렵에 바로 뒷산으로 갔습니다. 그쪽은 입구에만 카메라가 있어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영상으로 보면 김혜은 씨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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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경찰은 강하율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강하율도 뭘 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그저 멍한 눈으로 경찰을 바라볼 뿐이었다. 머릿속은 새하얘졌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구체적인 상황도, 그 과정도, 심지어 김혜은에게 응급처치를 했던 기억조차 흐릿해졌다.그래서 결국에는 침묵을 선택했다.말을 계속 바꾸면 오히려 신빙성을 잃을 테니 말이다.경찰이 어떤 질문을 하든 강하율은 대답하지 않았다.경찰이 책상을 부술 듯이 힘껏 내려쳐도 강하율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끝내 인내심을 잃은 경찰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강하율 씨,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겁니까?”“변호사가 필요해요.”강하율이 지금 떠올릴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경찰은 화가 나서 이를 갈다가 취조실에서 나가 버렸다.취조실 안에서 강하율은 겉옷을 여미며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어쩌면 충격을 받아서 기억이 흐릿해지는 걸지도 몰랐다.이런 사건을 겪은 것이 처음이다 보니 겁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강하율은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다가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되자 사건 당시를 떠올리기 시작했다.아침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까지는 기억이 또렷했다. 그러나 그 뒤의 일들을 떠올리려고 하면 마치 저주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강하율은 머리를 짚고 있다가 문득 단순히 충격을 받은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뭔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그렇게 기억을 되짚어보던 강하율은 끝내 체력에 한계가 와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호텔.김혜은의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유호철은 곧바로 그 소식을 배윤호와 배윤제에게 알렸다.배윤호는 병원으로 갔고, 배윤제는 곧바로 호텔로 돌아왔다.정다인은 그를 보자마자 은근히 말을 꺼냈다.“윤제 씨, 너무 화내지 말아요. 분명 뭔가 오해가 있을 거예요. 강하율 씨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어요?”“...”배윤제는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10분 뒤면 호텔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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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객실팀 직원들은 원래 말이 많았고 이런저런 소문을 듣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게다가 그들 중에는 앞으로 배씨 집안 둘째 며느리가 될 정다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래서 정다인이 조금만 귀띔해도 그들은 앞다투어 그녀를 도와주려 했다.배윤제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래서 강하율이 그렇게 당당했던 거네. 김혜은 씨가 있으니까.’그 모습을 본 정다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그런 거래가 있었기 때문에 김혜은 씨가 강하율을 손님 신분으로 파티에 초대했던 거군요. 설마 강하율 씨가 지나친 요구를 해서 김혜은 씨가 거절한 건 아닐까요? 예전에는 재벌가 딸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랑 생활 수준이 크게 달라졌으니까요. 강하율 씨 아버지도 사실은 돈 문제 때문에 감옥에 간 거잖아요.”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강하율과 그녀의 아버지를 연결 지어 생각했다.그들의 머릿속에 부전여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양지원이 정다인의 말을 끊었다.“정다인 씨, 수사는 경찰이 하는 겁니다. 우리가 멋대로 판단해 봤자 아무 의미 없어요. 만약 하율 씨에게 죄가 없다면 지금 여러분들이 한 말은 명백한 명예훼손입니다.”정다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양지원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정다인은 곧바로 상처받은 표정을 하며 억울한 듯 배윤제를 바라봤다.비록 어제 배윤제와 좋지 않게 헤어졌지만 그는 은혜 때문에라도 그녀를 외면하지 못할 것이었다.게다가 그녀는 생명의 은인일 뿐만 아니라 배윤제가 오랫동안 짝사랑한 여자이며 그의 인생에서 모자란 마지막 퍼즐 조각이기도 했다.지금 배윤제는 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예전에 그는 잘난 배윤호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다.배씨 가문 둘째 아들인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쉽게 납치범에게 납치를 당했을까?그건 당시 배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배윤제가 아니라 사업의 귀재라 불리던 배윤호였기 때문이다.게다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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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배윤제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은 배윤호가 직접 결정한 일이었기에 지금 와서 말을 바꾼다면 책임감 없이 느껴질 것이다.배윤호는 겉옷을 정리한 뒤 자리에 앉고서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태연한 표정을 했다.그의 엄청난 아우라에 사람들은 기가 죽었다.“그래. 내가 그랬었지. 하지만 네 여자 친구도 여기 멀쩡히 앉아 있잖아.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내가 하나하나 짚어줘야 알겠어? 허지연 씨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넘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거야?”회의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정다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미묘해졌다.정다인은 난감함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배윤호는 양승아가 건넨 서류를 받아서 천천히 열어 보았다.“안 그래도 여기 네 여자 친구의 평가 보고서가 있어. 정말 엄청난 인재네. 이 호텔이 세워진 이래로 네 여자 친구처럼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으면서도 실적은 보잘것없는 부총괄은 처음이야.”배윤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배윤제의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배윤제, 여자 친구라고 감싸는 것도 정도껏 해. 이런 것 하나 똑바로 못한다면 앞으로 호텔은 이 평가 보고서처럼 엉망이 될 거야.”배윤호는 다른 사람들을 쭉 둘러보면서 말을 이어갔다.“다들 배윤제가 평가 보고서를 조작하자고 할 때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군요. 여러분이 정다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능력 없는 사람에게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내린 사람들은 정다인과 함께 이 회사에서 나가시죠.”배윤호는 아주 가볍게 말했지만 그의 말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그들은 배윤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다인 때문에 앞날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황급히 말을 바꿨다.“배윤호 대표님, 저희는 강하율 씨를 해고하자는데 동의한 적 없습니다. 그저 의논만 했을 뿐입니다.”“맞아요, 맞습니다. 의논한 것뿐입니다.”사람들이 서둘러 맞장구쳤다.배윤호가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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