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271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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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강하율은 어이가 없어서 설명하려고 했지만 괜히 말을 꺼내면 배윤제와 정다인이 오히려 변명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적당히 둘러댔다.“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저는 호텔 직원이다 보니 모든 고객 앞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거든요. 그래야 제 실적도 좋아지니까요.”배윤제는 대꾸하지 않고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어디 한 번 계속 연기해 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강하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그녀가 뭐라고 말하든 배윤제는 믿지 않을 것이다.“그러면 저는 일을 보러 가보겠습니다.”“강하율, 처신 잘해. 자꾸 다인이를 뛰어넘으려고 하지 마.”“...”강하율은 잠시 멈칫했다가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아래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순간, 강하율은 다른 사람과 부딪칠 뻔했는데 다행히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었다.강하율이 시선을 들었다.“배윤호 대표님.”배윤호가 그녀의 몸을 바로 세워 주었다.“누가 쫓아와?”“아니요. 그런데 왜 여기 계세요? 파티가 끝난 건가요? 김혜은 씨는 돌아가셨나요?”강하율이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그녀는 다 말하고 나서야 배윤호가 자신을 수다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살짝 후회했다.배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나와서 담배 한 대 피우려고 나왔어. 파티는 아직 안 끝났어. 그런데 김혜은 씨는 볼일이 있는지 먼저 떠난 것 같았어.”그 말을 듣자 강하율은 웃음을 터뜨렸고, 배윤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래?”강하율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오빠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썰렁한 농담을 한 것 같아서요. 오빠는 예전에도 이렇게 질문에 대답하셨어요?”“이번에는 대표님이 아니라 오빠라고 부르네?”배윤호가 덤덤히 말했다.“내가 누구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맞는 말이었다.누가 감히 그에게 이렇게 많은 질문을 쏟아낼 수 있겠는가?강하율은 자신이 아마 배윤제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잠깐 이성을 잃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강하율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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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강하율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드레스에 달린 큐빅 때문에 엉덩이가 아파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뒤 드레스와 주얼리를 정리해 두고 코트를 들고 옆집으로 향했다.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강하율은 겨우 초인종을 눌렀다.잠시 뒤 문이 열리며 안에서 남자의 약간 잠긴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오빠, 저 이거 돌려드리려고...”강하율은 말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고개를 들자마자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윤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배윤호는 허리에 타월을 하나 두르고 있었는데, 머리를 닦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자 허리 근육이 또렷하게 움직였다.떨어진 물방울들은 그 근육을 따라 흘러내렸다. 특히 방수 밴드가 붙어 있는 상처 위를 지나갈 때는 묘하게 시선을 붙잡았다.“강하율,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마.”배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하율은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져서는 곧바로 품에 안고 있던 코트에 얼굴을 파묻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댔다.“죄송해요.”빨갛게 물든 강하율의 귀를 발견한 배윤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품에서 코트를 빼내 그대로 몸에 걸쳤다.“됐어.”강하율은 어색하게 고개를 들었다가 얼굴이 더 붉어졌다.‘뭐가 됐다는 거야? 그냥 맨몸에 코트만 걸친 거잖아.’강하율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드레스와 주얼리를 조심스럽게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오빠, 확인해 보세요.”“안 돌려줘도 돼.”배윤호의 말에 강하율은 살짝 놀랐다.“이거 엄청 비싼 거잖아요.”“너한테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배윤호가 되물었다.“이번에 기씨 가문 일은 아주 잘 처리했어. 기씨 가문과 앞으로 생길 고객들을 생각하면 이 드레스랑 주얼리는 아무것도 아니야.”“제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요?”강하율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배윤호가 그녀를 바라봤다.“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마. 결국은 네 인생이잖아.”“...”강하율의 눈빛이 살짝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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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사진은 꽤 예뻤다.사진을 내려놓은 뒤 배윤호는 양승아에게 연락했다.“음식 안 가져와도 돼.”“강하율 씨랑 같이 계신 거예요? 역시 가까이 살면 좋다니까요.”양승아가 웃으며 말했다.“다른 할 말은 없어?”양승아는 곧바로 진지하게 말했다.“CCTV를 확인해 봤는데 강하율 씨 뒤를 밟은 사람은 임현서 씨였어요. 임현서 씨 어머니가 바로...”“알겠어. 더 조사해 봐. 그리고 내일 선물을 하나 준비해. 본가로 가서 식사할 거야.”“사모님께 드릴 선물인가요?”“응.”“알겠습니다.”양승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대표님, 혹시 모르니... 피임 도구를 몰래 가져다드릴까요?”“입 다물어.”“...”...강하율은 간단하게 요리를 두 가지 해서 식탁에 올렸는데 마침 배윤호가 도착했다.“오빠, 밥은 얼마나 드실래요?” 강하율이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자 집밥 냄새가 자연스럽게 났다.배윤호는 식탁 앞에 서서 잠시 넋을 놓았다. 집밥을 먹어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그동안 배윤호는 아부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남보다도 못한 사이인 가족들과 식사를 하거나, 혼자 밥을 먹었다.“한 공기면 돼.”잠시 후 배윤호의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한 공기가 놓였다.강하율은 배윤호의 맞은편에 앉아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배윤호는 한 입 먹어 보고 말했다.“맛있네.”강하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저를 들었다.“오빠, 주말에 언제 본가로 갈 거예요?”“...”배윤호는 대답하지 않았다.강하율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아, 깜빡했어요. 밥 먹을 때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죠.”“둘밖에 없는데 얘기 안 할 거야? 공포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배윤호가 묘하게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했다.강하율은 휴대폰을 들어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귀신처럼 생겼다는 말이에요?”“...”강하율은 배윤호를 힐끔대며 투덜댔다.“역시 회사 대표님이라서 그런지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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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주말이 되었다.예전에 강하율은 조윤서가 부르면 늘 아침 일찍 일어나 조윤서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사 가서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디저트를 먹었다.그러나 오늘은 오전 아홉 시가 넘도록 강하율이 오지 않았다.배윤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사를 가리키며 물었다.“강하율은요? 제가 막으라고 했잖아요.”어제 강하율이 답장을 보내지 않아 배윤제는 그녀가 아침 일찍 와서 조윤서의 환심을 살 거라고 확신했다.정다인도 차에서 내린 후 배윤제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윤제 씨, 윤제 씨 어머니께서 기뻐하신다면 저는 괜찮아요.”정다인은 서운한 것처럼 말했지만 집사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도련님, 강하율 씨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안 왔다고요?”배윤제는 잠시 멈칫했다.“그럴 리가 없어요.”배윤제는 큰 목소리로 말하더니 정다인의 손을 떼고 조윤서의 방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정다인은 배윤제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또 이러네.’배윤제는 요즘 들어 자꾸 모순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자신을 좋아하고 의지하는 정다인의 태도에 흡족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강하율과 다시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배윤제는 몇 번이고 정다인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늘 반대였다.먼저 강하율을 버린 사람은 바로 그인데 말이다.배윤제는 복도를 지나 2층에 있는 조윤서의 방으로 올라갔다. 마침 조윤서가 전화를 끊는 걸 본 그는 반사적으로 물었다.“어머니, 강하율이죠? 강하율이 어머니한테 또 무슨 험담이라도 한 거예요?”조윤서는 염주를 굴리며 말했다.“윤제야, 사람이 왜 이렇게 차분하지 못하니? 하율이가 나한테 무슨 험담을 하겠어? 방금은 내 친구랑 통화 좀 한 거야. 하율이는 아직 안 왔어.”“그럴 리가요.”배윤제는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조윤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윤제야, 안 그래도 어제부터 너랑 하율이 사이가 좀 이상하던데. 너 예전에는 늘 그랬잖...”조윤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다인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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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그런데 뜻밖에도 가게 근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안혜슬과 만났다.“혜슬아, 너 오늘 수업 있지 않아? 여기서 뭐 해?”“초등학교 때 친구를 데리러 왔어.”안혜슬이 말했다.“초등학교 때 친구?”“우리 옆집에 살던 친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내 짝꿍이기도 했어. 그런데 졸업하기도 전에 전학을 가 버렸거든. 그래도 그동안 계속 연락했었어. 걔 엄마가 호텔 근처에 사는데 얼마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대. 그런데 마지막 소원이 고향에 돌아와 묻히는 거였대.”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두 사람에게로 걸어왔다. 예쁜 얼굴이었지만 안색이 조금 창백했고 눈가는 붉었다.일부러 불쌍한 척하는 정다인보다 훨씬 더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혜슬아.”안혜슬이 얼른 다가갔다.“예진아, 너 괜찮아?”신예진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오늘 우리가 떠날 때 탔던 차를 타고 돌아왔는데 풍경이 많이 달라졌더라고. 그래서 마음이 좀 그랬어.”“너희 엄마는...”“아빠가 엄마 유골함을 챙겨서 친척 차를 타고 먼저 돌아가셨어. 하실 말씀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 들으면 내가 슬퍼할까 봐 조금 있다가 오라고 하셨어. 그러다가 갑자기 네 생각이 났어.”그러다 신예진은 강하율을 발견했다.“이분은...”강하율이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강하율이라고 해요. 혜슬이 직장 동료예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기 우리 지역에서만 파는 특별한 떡이 있는데 나중에 어머님 드실 수 있게 가져다드리세요.”제사를 지낼 때 올리라는 뜻이었다.신예진은 그 말을 듣고 감동했다.“감사해요, 강하율 씨.”“별말씀을요. 두 분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강하율은 그렇게 말하며 안혜슬을 살짝 끌어당겨 그녀의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혜슬아, 친구랑 같이 좀 돌아다녀.”“이건 받을 수 없어.”안혜슬이 사양했다.“받아. 가방 안에 삼각김밥 들어있던데 또 집에서 핑계를 대면서 돈을 달라고 했지? 네 친구도 너랑 같이 삼각김밥 먹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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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소개해 준다고 했다고?강하율의 머릿속에 맞선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혹시 임현서가 배씨 집안에서 선택한 배윤호의 정략결혼 상대인 걸까?비록 강하율은 임현서를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임현서가 꽤 괜찮은 결혼 상대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임씨 가문은 최근 몇 년 사이 사업 규모가 기씨 가문보다도 더 커졌고, 해외에도 회사를 꽤 많이 두고 있어서 오랫동안 해외에서 지낸 배윤호에게는 딱 어울리는 상대였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앞서가던 집사가 뒤돌아보며 재촉했다.“강하율 씨,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네.”이번에 강하율은 조윤서를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기에 괜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다이닝룸에 들어가자 배윤제의 할머니가 임씨 가문의 두 모녀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배윤제의 할머니는 임현서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지 임현서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었다.“현서는 얼굴도 예쁘고 분위기도 좋아. 역시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애다워.”배윤제의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있던 정다인을 향해 손짓했다.“다인아, 너도 와서 인사해.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테니 말이야.”“네.”정다인은 우아하게 다가가 임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임현서 씨, 안녕하세요. 어제 한 번 뵀었죠.”“안녕하세요.”임현서는 싱긋 웃었다.“말씀은 많이 들었어요.”“어머, 부끄럽네요.”정다인은 배윤제가 자신을 많이 아껴준다는 소문을 듣고 임현서가 부러워하는 줄로 알았다.“해외에 있을 때 회사 간 미팅이 끝난 뒤 회식 자리에서 정다인 씨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어느 회사에 계셨죠?”그 말을 듣고 정다인은 멈칫했다.“사,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네요. 저는 해외에서 공부만 했고 일한 적은 없어요.”임현서는 반박하지 않고 정다인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가볍게 정다인의 손을 잡았다.“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그건 입장권이 있는 회사 직원들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였거든요. 얘기를 들어보니 누군가 배윤호 대표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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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아마도 혼자 멋대로 착각해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강하율은 외부인으로서 공손하게 말했다.“이모,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까 가족분들이랑 더 이야기 나누셔야죠.”조윤서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나한테는 너도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설마 나랑 거리를 두려는 건 아니지? 아니면 다른 일이라도 있는 거니?”조윤서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서 걱정이 느껴졌다.강하율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넘어가려 했지만 배윤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얘가 어머니한테까지 거리를 둔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거죠. 저도 궁금하네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늦은 건지.”사람들의 시선이 강하율에게 쏠렸다.강하율은 확실히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얼마 전 고백 영상 때문에 상황이 몹시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배윤제 또한 그 점을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런 질문을 한 건 강하율을 난감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배윤제는 강하율이 자기 때문에 난감해하는 걸 즐겼다.마치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그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유치한 남자아이처럼 말이다.그러나 그건 아주 진절머리 나는 행동이었다.강하율이 대답하려는 순간,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집사가 먼저 말했다.“도련님, 오셨습니까?”강하율이 뒤돌아보기도 전에 큰 키의 배윤호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배윤호는 사람들을 향해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식사하는 자리 아니었습니까?”조윤서가 웃으며 말했다.“수다를 떨다 보니 밥을 먹는 것도 잊었네. 다들 앉죠.”그 덕분에 더 이상 아무도 강하율이 늦은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강하율은 가장 끝자리로 가 앉은 뒤 몰래 배윤호를 바라봤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눈치가 빠른 배윤호가 이번에는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굴었다.그러다 강하율은 임현서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눈빛에서 노골적인 경멸과 조롱을 보아냈다.음식이 나오자 배윤제의 할머니는 분위기가 평온해진 틈을 타 임현서와 임현서의 엄마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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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강하율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배윤제가 방금 한 말은 분명 그녀를 겨냥한 것이었다.강하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다인이 먼저 참지 못하고 나섰다.“배윤호 대표님, 사모님도 좋은 뜻에서 그러신 거예요. 그런 여자들을 심심풀이로 잠깐 만나시는 건 괜찮지만 솔직히 결혼은 무리잖아요.”걱정해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임현서를 은근히 깎아내리는 말이기도 했다.아직 결혼하기도 전인데 정략결혼 상대에게 벌써 다른 여자가 있으니, 설령 진짜 결혼하게 되더라도 임현서는 마음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강하율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끼어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강하율이 입을 열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그녀에게 불똥이 튀지는 않을 것이다.그리고 정다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재벌가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고, 굳이 그걸 까발리지 않는다면 다들 사이 좋은 부부를 연기하며 살았다.심지어 그게 잘못된 거라는 자각도 없었다.그건 배윤제도 마찬가지였다.배윤제는 정다인을 위해서라면 강하율을 처참히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정다인을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하율이 자신의 애인으로 살기를 바랐다.그렇다면 배윤호는 어떨까?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강하율 본인도 깜짝 놀랐다.예전에는 배윤호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배윤호의 마음을 궁금해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강하율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배윤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어린 나이에 경험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네. 배윤제가 그동안 많이 섭섭하게 했나 봐.”“저... 아니에요. 저랑 윤제 씨는 사이가 아주 좋아요.”“그렇겠지. 어차피 그 남자들이랑 결혼할 것도 아니니까.”“그게 아니라...”정다인은 말을 이어갈수록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런 순간마다 습관처럼 배윤제를 바라봤다.그리고 배윤제는 정다인의 기대에 부응하듯 곧바로 나서서 그녀를 감쌌다.“형, 나랑 다인이는 사이가 좋아. 게다가 다인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형은 예전에 호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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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수프가 올라오자 뚜껑을 열기도 전에 진한 향이 퍼졌다.배씨 가문에서 고용한 요리사의 특제 생선 수프였다.강하율이 뚜껑을 열려고 하자 조윤서가 웃으며 말했다.“하율아, 자리를 바꾸지 않을래? 예전에는 네가 늘 윤제를 대신해 생선 가시를 발라 주겠다고 했잖아. 거기다 꼭 고수가 들어간 걸 뺏어 가려고 하면서 둘이 장난치고 그랬는데... 둘 다 이렇게 훌쩍 커버렸네.”조윤서는 몸이 약해서 그녀 앞에서 강하율과 배윤제는 늘 사이좋은 남매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연인이 된 이후에도 두 사람은 때때로 서로 장난을 쳤다.그런데 그걸 지금 와서 언급하니 난감했다.이때 배윤제가 아무 말 없이 자기 앞에 있던 그릇을 강하율 쪽으로 밀었다. 그녀가 생선 가시를 발라 주고, 고수가 들어있는 걸 가져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배씨 가문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배윤제는 고수를 싫어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그래서 배윤제가 그 사실을 알려준 뒤로 강하율은 늘 일부러 장난을 치는 척하며 고수가 들어있는 수프를 빼앗아 갔다.배윤제는 강하율도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잊었을 것이다.강하율은 웃으며 말했다.“이모, 오빠도 이제는 여자 친구가 생겼으니 여동생인 저는 이제 빠져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고수는 별로 안 좋아해서요.”말을 마친 뒤 강하율은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 고수가 들어있지 않았다.강하율은 살짝 놀랐다. 그리고 한 입 떠먹어보니 생선 살에 가시가 하나도 없었다.‘배씨 가문에서 언제부터 나한테 이렇게 신경을 써 줬지?’강하율이 고개를 들자 정다인이 배윤제를 위해 생선 가시를 골라 주는 게 보였다.‘내 것만 생선 가시가 없는 건가?’그런 생각을 하다가 강하율은 배윤호와 눈이 마주쳤다.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하율은 단숨에 그 수프를 누가 준비해 준 건지 알 수 있었다.그러나 배윤호는 조금 전 그녀의 말을 쌀쌀맞게 받아치지 않았는가?강하율은 한숨을 쉬었다. 상대의 마음을 읽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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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배윤제는 강하율의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단번에 사라졌다.조윤서는 강하율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기에 강하율이 조윤서를 속일 리는 없었다.역시 강하율이 그를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예전에 했던 말들은 전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배윤제는 일부러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발소리를 냈다.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하율은 배윤제를 보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어머니.”“윤제 왔니?”조윤서는 웃으면서 몇 마디 덧붙였다.“오늘 왜 형한테 그런 말을 한 거야? 버릇없이 말이야. 이건 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자리를 마련한 탓이야.”배윤호 이야기가 나오자 배윤제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어머니, 어머니는 집안 어른이에요. 형은 어머니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어머니는 왜 형 편을 들어요? 게다가 형에게 만나는 여자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지난번에 저랑 할머니가 호텔에 갔을 때 형은 그 여자랑 침대에서...”“윤제야! 말조심해.”조윤서가 즉시 말을 끊었다.“윤호는 원래 주관이 뚜렷한 애였어. 내가 너무 부족한 탓이야.”“어머니!”배윤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강하율을 바라봤다.강하율은 별생각 없이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호텔에서 배윤호와 함께 있었던 여자는 바로 강하율이었다.배윤제가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강하율은 자신과 배윤호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것이다.게다가 별로 거부감이 들지도 않았고 그저 놀랍기만 했다.“강하율, 너는 어떻게 생각해?”배윤제가 말했다.강하율은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저는 잘 모르겠는데요.”자기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듣지 못하게 되자 배윤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왜? 너도 우리 어머니가 임현서 씨를 형한테 소개해 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임현서 씨가 형이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강하율은 이를 악물며 시선을 들어 배윤제를 바라봤다.“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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