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461 - Chapter 470

497 Chapters

제461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저랑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그 돈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거네요?”“맞아. 지금으로선 조윤서일 가능성이 가장 커. 어머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제가 언제 아버지를 보러 오는지는 배윤제만 알아요. 심지어 제가 몇 시에 오는지도 다 알고요.”조윤서와 배윤제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예전에 배윤제가 상처받은 척했던 것도 전부 연기였던 셈이다.배윤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무슨 생각해?”강하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배윤제만 떠올려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아무것도 아니에요.”“다른 사람 때문에 네가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 우리 예상이 맞다면 위증을 시킨 사람도 조윤서일 가능성이 커. 그쪽으로 파고들면 돼.”“네.”강하율은 머리가 지끈거려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그러자 배윤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미간을 부드럽게 눌렀다.“조급해하지 마.”“알겠어요.”그때 안혜슬에게서 전화가 왔다.“엄마가 나한테 연락해서 아빠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했어.”“잠깐. 뭔가 이상한데? 당첨된 사실을 너희 엄마한테 얘기했다고?”강하율이 의아해했다.“우리 엄마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다 알아.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얼른 돌아가야겠어.”“그래. 우리도 당장 그쪽으로 갈게. 절대 흥분해서 실수하지 마.”강하율은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배윤호는 이미 양승아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강하율이 물었다.“저랑 같이 가는 거 시간 낭비 아니에요?”“나 오늘 쉬는 날이야. 여자 친구랑 같이 있을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어.”배윤호는 여자 친구라고 하면서 강하율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강하율은 얼굴이 빨개졌다. 진지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더 당황스러웠다.가는 길에 배윤호는 나해준에게 상황을 알렸다.강하율이 서둘러 말했다.“두 사람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면 안 돼요. 그 사람들이 두 분 옷차림이나 나해준 씨가 혜슬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아예 혜슬이를 나해준 씨에게 팔아버리려
Read more

제462화

강하율은 안혜슬의 집에 처음 온 게 아니었다.안혜슬의 가족들은 마을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안혜슬의 오빠가 서른이 넘는데도 아직 결혼을 못 한 이유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안혜슬의 오빠와 아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아무도 자신의 딸을 안혜슬의 오빠와 결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다른 마을 사람을 소개받았다.안혜슬의 말에 의하면 안혜슬의 오빠와 결혼할 여자는 다른 마을 사람이고, 꽤 예쁘장한 데다가 겨우 20대 초반이며 남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그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안혜슬의 오빠와 영상통화를 두 번 한 뒤 곧바로 결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했다.김지현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원래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그녀의 가족들이 여자의 남동생을 위해 집을 사주고 싶어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은 애초에 결혼할 마음이 없었으면 왜 영상통화를 두 번이나 했냐고 여자를 압박했다고 한다.그렇게 조건이 맞춰지자 그 여자도 결혼을 받아들였다.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안혜슬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안혜슬은 그녀를 직접 만나보려고 했지만 상대는 안혜슬을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았다.아마 안혜슬과 안혜슬의 오빠를 한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강하율은 벌떼처럼 모인 사람들을 본 순간, 안혜슬의 가족에게 곧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안혜슬이 강하율을 붙잡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진짜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보통 당첨되면 남들 모르게 조용히 돈을 쓰잖아. 그런데 저렇게 다 떠벌리고 다니는 데다가 사람들을 불러서 밥까지 사다니...”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혜슬의 아빠가 당첨금액이 적힌 판넬을 들고 돌아왔다.“자자, 다들 들어오세요! 조금 있다가 다 같이 밥 먹어요! 오늘은 내가 쏩니다!”“안진웅, 너 정말 대단하다. 진짜 당첨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좋겠어. 앞으로 잘 나가겠네. 우리 잊으면 안 된다.”“걱정하지 마. 앞으로도 서로 잘 지내보자고.”안
Read more

제463화

“안혜슬, 거기서 뭐 해? 얼른 가서 물이나 가져와!”안진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그때 안혜슬의 오빠 안형신이 뒤를 돌아보더니 강하율을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강하율은 그동안 안혜슬의 부모님만 봤었지, 안형신을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두 사람은 처음 만난 셈이었다.안형신의 시선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강하율은 당연히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안혜슬의 집에서 굳이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오늘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었다.강하율이 안혜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너희 아빠가 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할까?”“우리 아빠는 여자면 다 좋아해. 과부한테도 들이대는 사람인데, 뭐. 예전에 우리 마을에 발 마사지를 해주는 곳이 있었거든? 내가 거기서 아빠를 봤다고 했더니 엄마는 전혀 믿지 않으셨어. 사실은 믿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안혜슬은 엄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많은 걸 마음속에 담아두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언젠가는 무너질 게 뻔했다. 그때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망가질지도 몰랐다.안혜슬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엄마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다.그때 가죽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안진웅에게 다가갔다.“진웅 오빠, 오랜만이에요.”“누구신지...”안진웅이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를 훑어봤다.“어머,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예전에 이 마을에 살았었던 양 씨네 집 막내딸이에요. 어렸을 때 오빠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는데 그 뒤로 시집을 갔죠.”“너였구나.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이렇게 예뻐질 줄은 몰랐는데.”안진웅이 말했다.여자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오빠는 여전하시네요. 저는... 이혼했어요. 그래서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어요.”“앞으로는 여기서 살려고?”“아니요. 보름 정도 있다가 일을 시작하려고요. 오빠는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겠지만 저는 아니거든요.”말을 마치고 여자는 웃으며 자리를 떴으나 안진웅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Read more

제464화

안혜슬이 강하율을 부른 건 가족들이 그녀가 출근을 못 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그 말을 들은 강하율은 기가 막혔다.“그게 무슨 말이야? 왜 출근을 못 하게 해?”“아빠가 이제 돈도 많은데 내가 호텔에서 객실 청소하는 거 사람들이 알게 되면 창피하니까 하지 말래.”안혜슬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강하율이 되물었다.“그럼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면 생활비는 얼마나 준대?”안혜슬은 차갑게 웃었다.“안 준대. 집에 있으면 밥 한 그릇만 더 챙겨주면 되니까 돈도 아끼고 얼마나 좋냐던데. 게다가 나한테 앞으로 우리 엄마랑 새언니랑,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까지 모시고 살래.”강하율은 금방 이해했다.“평생 노예로 부려 먹겠다는 거네.”“너... 네 말이 맞아. 앞으로 내가 딸을 낳으면 내 딸까지 이 집안의 노예로 살게 될지도 몰라. 나는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안혜슬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바라봤다.사실 안혜슬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고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어쩌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다 비슷한 처지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다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도 말이다.안혜슬의 생각을 읽은 강하율이 물었다.“내가 대신 얘기해 줄까?”“응. 너도 나름 관리자잖아. 한마디만 해줘. 나는 절대 이 일자리를 잃을 수 없어.”“알겠어. 일단 네 엄마랑 얘기해 볼게.”그러나 다시 둘러봤을 때 김지현은 보이지 않았다.대신 안진웅이 술을 돌리면서 은근슬쩍 가죽 치마를 입은 여자 옆으로 다가가고 있었다.안혜슬이 말했다.“엄마는 아마 저쪽 주방에서 물을 끓이고 있을 거야. 같이 가자.”그녀는 강하율을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김지현은 멍하니 서 있다가 물이 끓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급히 불을 끄려고 하다가 손을 데고 말았다.안혜슬이 바로 달려가 손을 잡았다.“엄마, 괜찮아요?”“괜찮아.”김지현은 웃으면서 덴 부위에 된장을 발랐다. 그건 시골에서 쓰는 민간요법이었다
Read more

제465화

“응, 맞아. 내가 혜슬이 아빠를 설득해 볼게.”“네. 그런데 제대로 설득하려면 이렇게 말하세요. 혜슬이 곧 승진할 예정인데 승진하게 되면 월급도 두 배로 올라서 지금 그만두면 손해라고요. 최소한 앞으로 아이 키울 돈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세요.”“알겠어.”김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물 좀 갖다주고 올게. 너희는 잠깐 앉아 있어.”“네.”김지현을 보내고 나서 강하율은 안혜슬 곁으로 갔다.“봐. 사실 이모도 다 알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고. 그냥 지금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힘든 것뿐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드리자.”“알겠어. 그런데 우리 아빠가 과연 엄마 말을 들을까?”“안 듣겠지. 하지만 돈과 관련된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거야. 그런데 그것보다 너희 엄마가 절망하게 하려면... 그 과정이 꽤 잔인할 텐데 괜찮겠어?”“살을 도려내는 건데 안 아플 수가 있겠어? 그래도 썩은 살을 떼어낼 수 있다면, 그 정도 아픔은 감수해야지.”안혜슬은 다 알고 있었다.그때 밖이 다시 시끄러워졌고 강하율과 안혜슬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알고 보니 안형신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여자 쪽 가족들이 안진웅 부자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안형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미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지금 우리 아들은 집 계약금을 내지 못하게 생겼어. 매형 될 네가 당연히 보태줘야 하지 않겠어?”여자 쪽 어머니였다.안형신이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말했다.“당신이 뭔데 내가 그래야 해요? 우리 아직 약혼도 안 했고 예물이 오간 것도 아니잖아요. 영상통화로 얼굴 두 번 본 게 다인데 돈을 달라고요?”그 말에 상대가 발끈했다.“네가 우리 딸이 예쁘다고, 먼저 결혼하자고 했잖아. 이제 와서 발뺌이야?”“하하, 내가 발뺌하면 어쩔 건데요? 증거라도 가져와 보든가요.”“너... 너...”“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은 저리 비켜요.”안형신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니 우스웠다.강하율은 그 가족을 쭉 둘러보더니 안혜슬을 살짝
Read more

제466화

김지현이 안진웅과 이야기를 나눈 뒤 안혜슬은 그날 바로 강하율과 함께 집을 떠났다.그들이 떠나기 전, 안진웅은 마당 입구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식당으로 가서 식사하자고 했다.그는 무려 스무 테이블 넘게 예약했다고 했다.웬만한 결혼식보다 더 큰 규모였고 안진웅 부자는 그저 신이 나 있었다.안혜슬과 강하율이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안혜슬은 뜻밖에도 나해준이 와 있는 걸 보고 놀랐다.“교수님,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배윤호 따라온 거야.”나해준은 그녀 때문에 일부러 온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안혜슬은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다. 그리고 나해준은 그녀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강하율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뭐 좀 먹으러 갈까요? 여기 근처에 식당이 하나 있는데 꽤 괜찮아요.”배윤호가 바로 말했다.“가자.”배윤호가 그렇게 말하니 안혜슬도 거절할 수 없어서 그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녀가 말했다.“제가 살게요.”나해준이 재빨리 대답했다.“그래. 네가 사야지. 나한테서 수업을 공짜로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뭐라고요? 저도 그동안 교수님 많이 챙겨드렸거든요?”안혜슬이 바로 반박했다.강하율이 웃으며 말했다.“자, 그만하고 차에 타자. 혜슬아, 너는 교수님 차를 타서 길을 안내하도록 해.”“응.”네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갔다.음식이 다 나오기도 전에 안혜슬은 휴대폰을 보다가 오빠가 SNS에 올린 글을 발견했다.[나 사업 시작하려고. 일 없는 놈들은 내 밑에서 일해도 좋아.]안혜슬은 오빠 친구들 계정도 몇 개 알고 있었는데 댓글을 보니 전부 비꼬는 말뿐이었다.[안 사장님, 그러면 일단 한턱 크게 내셔야죠.][나 요즘 돈이 좀 부족한데 형이 좀 빌려줄래? 돈도 많다면서.]안혜슬은 그들의 속셈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오빠는 멍청하게도 그들의 수작에 금방 넘어갔다.강하율이 위로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안혜슬은 궁금했다.“그런데 이 계획 얼마나
Read more

제467화

강하율이 차갑게 웃었다.“지금은 우리 아빠를 건드리려고 안달이 나 있을걸.”“뭐?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지? 모든 게 다 자기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안혜슬이 화를 냈다.“그래도 이번엔 새로운 단서가 좀 나왔어.”강하율은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줬고, 안혜슬은 당황했다.“정신 나간 놈이네.”강하율은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배윤제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 사람 같아서 자칫 잘못 건드리면 주변 사람들까지 같이 심연으로 끌고 갈 것 같았다.“혜슬아, 너는 나랑 가까운 사이니까 꼭 조심해야 해.”“알아. 가자, 일하러.”“응.”그날 오후, 강하율은 연말 행사 때문에 여러 손님을 상대해야 했다.퇴근할 때쯤이 되자 밖에서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그제야 강하율은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는 게 실감이 났다.그녀가 셔틀버스를 타러 가던 중에 뒤에서 차 한 대가 경적을 울렸다.뒤돌아보니 배윤호였다.“왜 또 왔어요?”강하율이 다가가며 물었다.“눈이 오잖아.”“그래서요?”강하율이 눈 오는 날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배윤호는 다가가서 그녀의 목에 머플러를 둘러주면서 말했다.“글쎄. 왜일까?”강하율은 고개를 숙여 머플러를 한번 보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좀 걸을래요?”“좋아.”배윤호는 양승아가 건넨 우산을 받아 펼쳤고,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배윤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 비서 친척에 관한 정보를 좀 알아냈어.”강하율은 들뜬 표정으로 배윤호를 바라봤다. 역시 배윤호는 대단했다.“지금 어디 있어요?”“세원시에 있어. 그런데 꽤 오랫동안 숨어서 산 것 같아. 그래서 네가 그동안 못 찾았던 거야. 계속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대.”“공장이요? 돈을 받았다면서요? 그런데도 일한다고요?”강하율이 놀라서 물었다.“그 공장은 인력 교체가 잦아서 관리가 느슨해. 그래서 그 안에 숨어 있으면 눈에 띄지 않는 거지. 돈은 나중에 써도 되니까 급할 것 없고.”
Read more

제468화

잠시 걷는 사이 눈이 점점 더 거세졌고 결국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그런데도 배윤호는 강하율의 손을 놓지 않았다.강하율도 굳이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아파트에 도착한 뒤, 강하율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허리에 팔이 감겼다.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이미 문에 몸이 밀착한 상태였고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얼굴 가까이 내려앉았다.입맞춤은 그의 숨결을 따라 점점 뜨거워지고 깊어졌다.강하율은 버티기 힘들어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냈다.“뭐, 뭐 하는 거예요?”“그냥. 이렇게 하면 더 따뜻할 것 같아서.”배윤호가 낮게 말했다.“그럴 리가 없잖아요. 같이 자면 몰라도...”무심코 나온 말에 강하율 본인도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아직은 아니야. 오늘은 일찍 쉬어.”배윤호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양 비서가 그 사람을 계속 미행하고 있어. 당분간은 조용히 지켜보자.”“오빠... 뭔가 기다리고 있는 거죠?”“내가 찾아냈으니 그쪽에서도 분명히 움직일 거야. 계속 피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게 나아. 이미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일부러 흘렸으니까 안달 난 사람이 먼저 움직이겠지.”강하율은 그 말을 듣고 안도했다.십 년이나 기다렸으니 당장 급할 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그러면 저는 이만 들어갈게요.”“그래.”...사흘 뒤, 강하율은 호텔에서 한 회사의 연말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안혜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하율아, 우리 엄마가 아프대. 혹시 나랑 같이 좀 가줄 수 있어?”“알겠어. 차를 준비할 테니까 입구에서 기다려.”전화를 끊은 후 강하율은 동료들에게 간단히 사정을 설명한 뒤 급히 뛰어나갔다.안혜슬은 초조한 얼굴로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혜슬아, 무슨 일이야?”“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대. 집 앞에서 쓰러졌는데 운
Read more

제469화

김지현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혜슬아, 이게 대체 무슨 뜻이니?”내용을 확인한 안혜슬은 뛸 듯이 기뻤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양효원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안진웅이 이혼합의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었다.강하율이 말했다.“이모, 아저씨는 이미 떠난 것 같아요.”그 말에 김지현은 힘없이 베개에 몸을 기댔다.안혜슬은 아주머니를 배웅하면서 조용히 말했다.“아주머니, 혹시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마을에 이 얘기를 퍼뜨려 주세요.”“어머,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려고 해?”“저희 아빠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지 아주머니도 아시잖아요. 오늘 아무도 저희 엄마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엄마는 죽었을지도 몰라요. 저는 엄마랑 아빠가 같이 사는 걸 용납할 수 없어요.”“알겠어. 너희 엄마도 참 딱해.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볼게.”“네.”병실로 돌아온 안혜슬은 엄마에게 펜을 건넸다.“사인해요.”“싫어. 여기에 사인하면 우리 가족도 끝장이야.”김지현은 온몸으로 거부했다.안혜슬이 성급히 설득하려 하자 강하율이 조용히 막아섰다.강하율은 어릴 때 마을 여성들의 사고방식을 엄마에게서 자주 들었었다.그곳의 대부분 여성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구에게 시집갈지 정해지고, 그 대가로 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그리고 결혼하면 시댁에서는 여자를 돈을 주고 데려온 사람처럼 취급했다.그러다 보니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느샌가 그들의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다.그들도 문제가 많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화목한 가족처럼 보이려고 참고 또 참았다.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도 시어머니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강하율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이모, 사실 일자리가 생겼는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김지현은 강하율이 이런 상황에서 일 얘기를 꺼낼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무슨 일이니?”“가사도우미요. 되게 잘 사는 집인데 가사도우미가 혼자 사시는 분이면 좋겠고, 이 집에서 살면서
Read more

제470화

이혼합의서를 손에 넣게 된 안혜슬은 그제야 안도했다.안혜슬은 엄마에게 푹 쉬라고 한 뒤 강하율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하율아, 아까 그 채용 공고 가짜지?”“아니, 진짜야. 그런데 내가 준비한 건 아니고 나해준 씨가 준비한 거야. 나해준 씨가 그랬어. 너희 엄마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해주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고마움도 모르는 사람한테 정성을 쏟느니 차라리 그걸로 돈을 버는 게 낫다고 하더라.”강하율이 설명했다.“교수님한테 제대로 인사해야겠다.”“그래.”강하율은 그녀를 데리고 음료수를 사러 갔다.안혜슬이 또 물었다.“참, 양효원 그 여자는 우리 아빠를 데리고 어디로 간 걸까?”강하율이 웃으며 말했다.“돈 쓰는 곳으로 데려갔겠지. 그 여자는 너희 아빠한테서 뜯어낸 돈 만큼 보수를 받을 거야. 그 돈을 아까워할 필요는 전혀 없어. 그리고 그 여자는 애초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그 여자 이혼한 거 아니었어?”“그건 거짓말이야. 그 여자는 원래 다른 곳에서 몸을 팔아서 돈을 벌던 사람이야. 이제는 그걸로 돈을 벌기가 힘드니까 돌아온 건데 마침 타이밍이 잘 맞은 거지.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야. 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여자가 너희 아빠한테 사기를 치는 건 모두를 위해서 해악을 제거하는 일이잖아.”그때 안혜슬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닿았다.그 사람은 바로 안형신이었다.초조한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안혜슬은 아주 조금 감동을 받았다. 그래도 친엄마인데 걱정은 하긴 하나 보다 싶었다.그녀는 강하율을 데리고 병실로 향했다. 그런데 병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안형신이 엄마를 욕하는 게 들렸다.“왜 막지 않은 거예요?”“나는...”“그러면 돈은요? 엄마, 엄마 그렇게 멍청하지 않잖아요. 카드를 몰래 숨겨뒀죠?”안형신은 김지현을 노려봤다.안형신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순진한 사람이고, 평생 카드 한번 제대로 만져본 적 없는 사람이란 걸. 그리고 아빠가 엄마에게 카드
Read more
PREV
1
...
45464748495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