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481 - Chapter 490

497 Chapters

제481화

“우리는 연애 중이었는데도 배윤제 씨는 늘 그렇게 저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시선 한 번 주는 것마저 저한테 아주 과분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잖아요. 심지어 헤어지고 나서도 제가 영원히 배윤제 씨를 기다려줄 거라고 믿었죠. 제가 배윤제 씨를 기다려주는 것마저 저한테 상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솔직히 말해봐요. 저랑 진짜 결혼할 거예요?”강하율은 차갑게 웃었다.“오늘 배윤제 씨가 이겨서 자기가 원하는 걸 모두 얻는다면, 그래서 윤호 오빠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정말 저랑 결혼할 거예요?”배윤제는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술을 한 모금 마셨다.그의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강하율은 피식 웃었다.“당연히 안 하겠죠. 배윤제 씨에게는 자신의 완벽한 인생을 완성해 줄 완벽한 아내가 필요하니까요.”“강하율, 그건 가정일 뿐이잖아. 그건 나한테 불공평해. 내가 후회한다는 걸 믿지 않는 거야?”“믿어요. 후회는 했겠죠.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배윤제 씨 진짜 신분이 드러났을 리가 없으니까요.”강하율이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던 탓인지 배윤제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눈빛에서 증오가 당장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았다.탁.그 순간 배윤제가 손에 힘을 주어서 쥐고 있던 잔을 깨버렸다.강하율은 깜짝 놀라서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배윤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율아, 가만히 있어. 너라면 지금 내 능력을 알잖아.”강하율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그때 위층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협상이 결렬된 걸지도 몰랐다.“걱정돼?”배윤제는 질투했다.예전에 강하율은 오직 그만 걱정했었는데 지금의 강하율은 그의 앞에서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배윤제 씨, 무슨 짓을 한 거예요?”“솔직히 말할게. 배윤호 일행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겠지만 그 사람들이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어. 우리는 애초에 배윤호에게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없었어. 대신 자동차 에어컨에 약물을 넣어뒀지. 이미 오는 길에 약물을 많이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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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배윤제는 손에 잔을 든 채 잠깐 멈칫했다. 그는 강하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장경문 씨를 보고도 본인을 납치한 사람이 누군지 떠올리지 못한 거예요?”강하율이 물었다.인간은 참으로 이상했다.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조차 믿으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배윤제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강하율은 그가 이미 모든 걸 떠올렸다는 걸 알아차렸다.장경문은 사실 납치범 중 한 명이었는데, 지금까지 배윤제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말하지 않았던 건 납치를 사주한 사람이 조윤서이고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친아버지라는 걸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건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친여동생에게 친아버지를 죽이라고 시킨 것도 결국에는 장유민 씨를 배윤제 씨와 같은 처지로 만들고 싶어서잖아요. 장유민 씨가 평생 배윤제 씨처럼 그런 고통 속에 갇혀 살기를 바랐던 거겠죠.”“그만해.”배윤제가 강하율의 말을 끊었다.“사실은 모두가 배윤제 씨처럼 상처받길 바랐던 거 아니에요? 그래야만 배윤제 씨의 상처가 덜 아픈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정말로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였다면 과연 자기 아이를 그런 일에 끌어들였을까요?”배윤제가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쳤다.“그만하라고 했잖아!”강하율은 화들짝 놀랐다.그때 곁눈질로 안혜슬이 돌파구를 찾아낸 게 보였다.배윤제가 돈을 꽤 많이 준 건지 다들 바짝 긴장한 채 지나치게 배윤제를 의식하고 있었고, 그녀가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달려들 기세였다.강하율은 안혜슬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 지금은 혼란을 야기해야 했다.그래서 강하율은 일부러 벌떡 일어나 배윤제를 손가락질했다.“정말 비겁한 사람이네요. 배윤제 씨는 본인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두 여자가 자신의 길을 닦아주길 바라는 거예요? 정말 웃기지도 않네요. 아직도 이모가 배윤제 씨를 도와주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천만에요. 이모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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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강하율은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주무르며 계단 쪽을 바라봤다.그곳에는 배윤호가 있었다.배윤호는 싸늘한 눈빛으로 배윤제를 바라보며 말했다.“봐줄 필요 없어. 칼 들어. 그동안 줄곧 네 손으로 나를 없애고 싶었잖아. 어디 한번 해봐.”배윤호의 셔츠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약에 당한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강하율뿐만 아니라 배윤제 역시 당황했다.“어떻게... 멀쩡한 거야?”“네가 사람을 매수할 걸 내가 눈치 못 챌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내가 맞춰줘야 네가 직접 나설 거 아니야?”배윤호는 덤덤히 말했다.강하율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배윤호가 멀쩡한 상태라면 웬만한 경호원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배윤호는 배윤제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칼 들어. 기회를 줄게.”“오빠.”강하율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배윤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강하율은 어제 배윤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배윤호는 남은 건 그와 배윤제 둘 사이의 문제라고 했었다.배윤제는 강하율과 배윤호가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더니 테이블에 꽂힌 칼을 거칠게 뽑아 들고 배윤호를 노려보았다.“이미 형이 있는데 왜 굳이 나를 낳은 거지?”“그건 너희 어머니한테 물어봐야지. 너희 어머니는 너무 탐욕스러워. 그리고 본인 상황이 위태롭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 사실 너희 어머니는 평생 아무 탈 없이 살 수 있었는데 굳이 남의 걸 빼앗으려 했어.”배윤호가 차분하게 말했다.“그러면 형은? 형이 내 여자 친구를 빼앗은 건 떳떳한 일이야? 내가 모를 줄 알아? 형은 나랑 정다인의 관계를 알고서 돌아올 준비를 한 거잖아. 갑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서 귀국한 것도 사실은 나랑 강하율이 헤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거 아니야?”“맞아. 네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나까지 소중히 여기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배윤호는 솔직히 인정했다.배윤제는 칼을 들어 배윤호를 가리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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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배윤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받아쳤다.“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형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너는 하율이랑 또래라서 말이 잘 통했을 거야. 내가 매번 하율이를 찾아갈 때마다 너는 온갖 핑계를 대며 하율이를 데려갔어. 그리고 내가 하율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중간에서 가로챘지. 하율이가 기억하는 네 다정함 중에 진짜는 얼마나 되고, 거짓은 또 얼마나 될까?”“무슨 소리야? 나는 진심으로 하율이를 좋아해!”배윤제가 큰 목소리로 반박했다.“나는 진심이야. 하율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나야. 그런데 아버지는 왜 형이랑 하율이를 결혼시킬 생각이었던 거야? 왜 내 의사는 묻지 않았냐고!”“그래서 내가 부하를 처리하고 있을 때 일부러 하율이를 그곳으로 유인한 거야? 하율이가 그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서?”배윤호가 물었다.강하율은 순간 당황했다.그녀는 그것이 배윤제가 꾸민 일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당시 그녀는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악몽까지 꿨었다. 그리고 그 일로 배윤호에 대한 소문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필 그때 그 장면을 보게 된 건 우연이라기에는 이상했다.배윤호처럼 신중한 사람이라면 분명 주변 경계도 철저했을 텐데 그곳을 지나치다가 얼떨결에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니.당시 길을 알려준 사람이 배윤제의 사주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강하율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배윤제를 바라봤다. 그녀는 배윤제의 행태가 역겨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배윤제는 그런 시선을 견디기 힘든 듯 이를 악물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그게 뭐 어때서? 형은 해외에 있으면서도 너를 포기하지 않았어. 내가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시켜 형을 유혹했는데 형은 단 한 번도 넘어가지 않았어. 심지어 너를 보려고 몰래 귀국한 적도 있어. 내가 그래야만 네가 형을 절대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배윤제의 말처럼 강하율은 그때부터 배윤호를 피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배윤호도 거의 집에 돌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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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경호원들의 실력을 본 순간, 배윤제가 고용한 사람들은 모두 겁을 먹고 도망쳤고 결국은 수십 명이 배윤제 한 명을 둘러싸게 되었다.배윤제는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리더니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내가 졌어.”그 모습을 본 강하율은 곧바로 배윤호에게 달려가 그의 찢어진 셔츠를 급히 열어젖혔다.“오빠, 괜찮아요?”“괜찮아. 내가 말했잖아. 나를 믿으라고.”“저 정말 놀랐단 말이에요.”강하율은 코끝이 찡해졌다.배윤호는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달래주듯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강하율의 머릿속은 온통 배윤호 걱정뿐이라서 배윤제의 존재는 완전히 잊혔다.배윤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뜨리며 씁쓸하게 웃었다.한때 힘차게 뛰던 심장에 구멍이 하나 뚫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강하율은 배윤호를 걱정하는 것처럼 그를 걱정했었는데, 지금의 강하율은 그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하율아!”안혜슬이 달려왔다. 그녀의 뒤에는 경찰들이 있었다.안혜슬은 강하율이 보호받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별걱정 없이 몸을 돌려 바로 나해준 쪽으로 향했다.“교수님, 괜찮으세요?”“응, 괜찮아.”“교수님처럼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연구밖에 없는 사람이 왜 이런 곳까지 온 거예요? 다치면 어쩌려고요.”안혜슬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민성운이 혀를 찼다.“지금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안혜슬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어찌 됐든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배윤제는 경찰에 잡혔다.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뒷문으로 나갔지만 경찰차가 온 탓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강하율은 어수선한 주변을 바라보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그 남자는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걱정하지 마.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놨으니까. 지금쯤이면 자수하러 경찰서에 갔을 거야.”배윤호가 대답했다.“자수요? 그 사람이 순순히 자수한다고요?”강하율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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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그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배윤제와 조윤서는 체포됐고 강하율 아버지의 사건에 전환점이 생겼다.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일주일 뒤, 강하율은 마침내 아버지를 데려가도 좋다는 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옆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오빠, 오빠! 윤호 오빠!”딸깍.문이 열리는 순간, 강하율은 휘청이며 남자의 품에 안겼다.배윤호는 잠옷을 입은 채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강하율,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 알고 있잖아. 설마 잊은 거야?”강하율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네. 깜빡했어요. 병원에서 아버지를 데려가도 좋다고 연락이 와서 오빠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배윤호는 코앞까지 들이밀어진 휴대폰을 살짝 밀어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 가서 준비하고 있어. 내가 데려다줄게.”그러나 강하율은 이내 차분해졌다.“왜 그래?”배윤호가 물었다.강하율은 그를 와락 끌어안더니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이 모든 게 꿈일까 봐 무서워요.”말을 끝맺자마자 뜨거운 입맞춤이 내려앉았다.“이래도 꿈 같아?”“아니요.”강하율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 같이 아버님 선물을 사러 가자.”“어머, 내가 왜 그걸 잊었지?”강하율은 황급히 돌아섰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몸을 돌려 배윤호에게 짧게 입을 맞춘 뒤 집으로 돌아갔다.문을 닫은 뒤 강하율은 문에 기대어 몰래 웃었다.‘연애란 이런 거였구나.’불안해하지 않아도,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옷을 다 갈아입은 강하율은 일부러 옷장에서 배윤호의 목도리를 꺼내 목에 둘렀다.그리고 놀랍게도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배윤호 역시 그녀와 똑같은 디자인의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오빠, 똑같은 목도리를 대체 몇 개나 갖고 있는 거예요?”“두 개. 너한테 주고 나서 일부러 똑같은 걸 하나 더 샀어. 나는 네가 알아챌 줄 알았는데 끝까지 모르더라.”배윤호는 서운한 듯 말했다.강하율은 그제야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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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우리 어머니는 아직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어. 우리 어머니는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그래서요? 제가 뭘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죠?”강하율은 평온한 표정으로 배윤제를 바라봤고, 배윤제는 싱긋 미소 지었다.“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나는 네가 나한테 모든 걸 말해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어. 나는... 네가 나를 여전히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배윤제 씨.”강하율이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라는 듯 그를 불렀다.배윤제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형이 너한테 잘해줘?”“네. 잘해줘요.”“다행이네. 우리 어머니한테 해외 계좌가 하나 있어. 그건 너 때문에 만든 계좌였어.”배윤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 때문에 만든 거라고요?”강하율은 어리둥절했다.배윤제가 설명했다.“오해하지 마. 너한테 돈을 주려던 게 아니라 너희 어머니가 남긴 돈을 노려서 만든 거였으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대부분의 비자금이 그 계좌로 들어갔어. 그래서 배씨 가문과 조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때 그 비자금으로 움직였던 거야. 예전에 너희 아버지 프로젝트를 망쳐서 얻은 돈도 거기 있어.”“그걸... 이렇게 쉽게 알려준다고요?”강하율은 그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내가 너를 해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한테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구나. 사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사람을 시켜서 너를 납치하기를 바랐어. 그렇게 되면 형은 항복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괴물처럼 볼 것 같아서, 그게 싫어서 그러지 않았어.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될 줄은...”배윤제는 말을 흐렸다.강하율이 말했다.“윤호 오빠가 그랬어요. 윤서 이모랑 아저씨가 바쁠 때면 배윤제 씨가 자기한테 신경을 꽤 많이 써줬었다고요. 윤호 오빠는 그때 배윤제 씨가 장난꾸러기였다고 했어요. 숙제를 할 때면 옆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윤호 오빠가 같이 놀아주기를 바라서 자꾸 장난을 쳤다고 했죠.”아이들 사이에 원한이 있을 리가 없었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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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강진철이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야 강하율은 그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그를 불렀다.“아버지.”이번에 강진철은 평소와 달리 강하율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강하율은 강진철이 미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아버지, 우리 이제 가요.”강진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강하율과 배윤호는 강진철을 부축해 차에 태웠고, 강하율은 차에 앉자마자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아버지, 드디어 아버지랑 같이 있을 수 있게 됐어요.”강진철은 다정한 손길로 딸의 등을 토닥였다.“하율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를 일부러 힘들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상황이 너무 복잡했고 그때는 네가 너무 어려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강하율은 고개를 저었다.“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윤서 이모를 믿어버렸잖아요. 게다가 아버지 앞에서 이모를 엄청나게 칭찬했었는데...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강진철은 오히려 웃었다.“아니. 나는 네가 조윤서를 칭찬해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어. 적어도 조윤서가 네게 함부로 못 하겠구나 싶었거든.”그때 배윤호가 입을 열었다.“차 안은 이야기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니까 제가 편한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거기 가서 천천히 얘기 나눠요.”차에 시동이 걸렸고 잠시 뒤 차는 익숙한 곳에 멈춰 섰다.차에서 내린 강진철은 한때 집이었던 곳을 보자 무심코 아내의 이름을 부르려 했다.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순간, 아내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런데도 그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습관처럼 노크를 했다. 마치 경선희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그 모습을 본 강하율은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안으로 들어가자 가정부가 차를 내왔고 배윤호가 말했다.“위층에 가구가 아직 다 들어오지 못했어요. 마당도 더 손을 봐야 하고요.”그 말을 들은 강진철은 배윤호를 바라봤다.“윤호야, 고마워. 비용은 얼마나 들었니? 나랑 하율이가 갚을게.”배윤호는 당황했다.“그건...”“왜 그래? 친형제 사이에도 계산은 확실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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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배윤호가 말을 이어갔다.“지금 몸도 편치 않으시고 지위도, 권력도 전부 잃으셨어요. 아마 죽을 만큼 괴로울 거예요. 비록 제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윤호야,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애초에 그런 의도로 물은 게 아니었거든. 나는 너랑 하율이가 결혼하게 된다면 너희 할머니가 너를 힘들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아무래도 너희 아버지는...”배윤호의 아버지는 끝까지 맞서려 했지만 결국에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강하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버지, 아직 적응이 안 된 거 알아요. 우리 같이 천천히 적응해요.”강하율은 과거 이야기를 자꾸 꺼내게 되는 건 현재 상황에 익숙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배윤호가 옆에서 거들었다.“아버님, 이곳은 아버님께 익숙한 곳이잖아요. 다 좋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강진철은 웃었다.“그래, 그래.”강하율은 강진철의 미소를 보자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함께 식사를 마친 뒤 강진철은 피곤했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정부들은 배윤호가 직접 고른 사람들이었고 다들 입이 무겁고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라 강하율은 걱정이 없었다.저녁을 먹은 뒤 강하율과 배윤호는 정원에서 산책을 했다.강하율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오빠, 그동안 많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배윤호는 멈추어 서서 대답했다.“하율아, 내가 바란 건 감사 인사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강하율이 고개를 들었다.“알죠, 알아요. 그런데... 왜 먼저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사랑해, 하율아.”“...”‘진짜로 얘기한다고?’강하율은 배윤호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오빠, 혹시 다른 여자한테 사랑한다는 말 해본 적 있어요?”“누구한테?”배윤호가 되물었다.“진짜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거예요?”“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가는 바람에 못했지.”배윤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강하율은 피식 웃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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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회의가 끝나자 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런데 그때 배윤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강하율, 잠깐만.”순간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하율을 바라봤고 강하율은 얼굴이 빨개졌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 그녀는 배윤호의 앞으로 걸어갔다.“뭐예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모를까 봐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아직도 우리 사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부족했던 거겠지.”배윤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강하율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혔다.예전에 그녀는 배윤제가 자신과의 관계를 공개하지 않는 게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배윤호가 너무 대놓고 행동하는 게 불만이었다.강하율은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우리 아버지조차도 너무 빠른 거 아니냐고 했어요.”배윤호는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혀. 나는 늘 이날만을 기다려온걸.”강하율은 배윤호가 지나치게 솔직할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건 평소 배윤호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우리 약혼한 거 배씨 가문과 오빠 외가에서는 알아요?”“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어?”“네.”강하율은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아니.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그 사람들이 반대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당연히 반대하겠지. 그런데 내가 왜 굳이 그 사람들한테 얘기하겠어? 괜히 나만 기분 나쁠 텐데 말이야. 게다가 내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지금 두 가문 모두 내가 장악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반대를 해?”“대단하네요. 오빠, 사실 저도 하객을 많이 부를 생각은 없어요. 요즘 저는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워요. 그러니까 진심으로 우리를 축하해줄 생각이 없는 사람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알겠어. 장소는 이미 정했어.”“벌써 정했어요? 언제 정한 거예요? 왜 저한테 얘기 안 한 거예요?”강하율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배윤호는 옅게 웃었다.“아버님이랑 얘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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