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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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유호는 수저만 몇 번 움직이다가 곧바로 내려놓았다.해인은 유호가 A국에 다녀온 뒤 눈에 띄게 야위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곳은 날씨가 몹시 더웠고 입에도 맞지 않았을 테니, 유호는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터였다.해인은 문득 생각했다. ‘등 쪽 상처는 얼마나 아문 걸까?’해인은 자기 손맛에 제법 자부심이 있었다. 누군가 인정해 주는 기분도 싫지 않았다.결국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어차피 내일은 일요일이잖아.’‘한유호가 일하러 간 사이 내가 집에서 반찬 몇 가지만 해 두면 되겠지.’...한밤중, 침대에 나란히 누운 유호는 지나칠 만큼 얌전하게 자리를 지켰고, 해인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해인은 속으로 짐작했다.‘한유호가... 원래 그런 쪽으로 뜸한 사람이 아닌데...’‘우리가 꼬박 일주일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한 번쯤...’ 해인은 틈이 날 때마다 몰래 유호를 힐끗 올려다보았다.세 번째로 시선을 보냈을 때쯤, 해인의 기척을 느낀 유호가 눈을 뜨고 물었다.“왜?”해인의 시선은 유호의 가슴에서 허리와 복부로 미끄러졌고, 문득 실시간 댓글에서 사람들이 떠들던 유호의 허리가 생각났다.[매일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니! 가슴도, 복근도, 허리선도, 몸 진짜 끝내줄 텐데, 벗으면 더 대박일 듯!][강해인 씨, 이제 그만 만지고 비켜주세요. 저 이틀만 빌릴게요.]해인의 뺨이 달아올랐다.‘정말 댓글에 휩쓸렸나 봐. 왜 이런 이상한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는 거지?’해인은 어색함을 감추려고 조용히 몸을 돌렸다. ‘어두워서 다행이야.’‘이 정도로 어두우니 한유호도 내 얼굴이 달아오른 건 보지 못할 테니까.’눈을 감은 해인은 몹시 졸린 척하며 입을 열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늦었으니 당신도 이만 자는 게 좋겠어요.”유호는 해인의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유호는 뒤에서 해인의 허리를 단번에 끌어안으면서 몸을 바짝 붙였다.예고도 없이 포옹하자 해인은 그대로 흠칫하며 굳어졌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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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한씨 가문 본가.차가 멈춰 서고, 해인이 차에서 내렸다. 해인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대문 밖에 서서 연신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왕단영의 모습을 발견했다. 왕단영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이제야 왔네! 정말 널 오래 기다렸어.”해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왕단영이 살갑게 해인의 손을 붙잡았다.“오늘 네가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어.”해인은 지난번 본가에 왔을 때, 이미 왕단영이 얼마나 속을 감추고 웃는 사람인지 뼈저리게 겪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해인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떠보듯 물었다.“이모님, 아버님께서 급히 들어오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요?”왕단영이 해인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였다.“천 여사 때문 아니겠어? 어젯밤에 회장님 귀에 또 뭔가 속삭였겠지. 그런데 천 여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어제 라이브 방송 때문인가?’하지만 유호가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은 어디까지나 태겸의 말을 받아친 것에 불과했다. KH그룹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었다.해인은 아침에 핸드폰을 잠깐 확인했는데, 온라인에서 유호를 두고 오가는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었다.오히려 어제 ‘ZC그룹 CEO가 상간남?’라는 실시간 이슈가 SNS에 밤새 걸려 있었고, 그 여파로 ZC그룹까지 함께 조롱거리가 되고 있었다.“내가 미리 말해 두는데, 천 여사는 뒤에서 사람 찌르는 짓을 제일 좋아해. 너도 조심해야 해.”왕단영은 꼭 해인을 위해 해 주는 말인 것처럼 타이르듯 말했다.해인은 잘 알고 있었다. 왕단영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쪽은 뒤에서 칼을 꽂고, 다른 한쪽은 겉으로는 좋게 구는 차이일 뿐이었다. 왕단영과 천하솜은 결국 서로를 비웃을 처지도 아니었다.그래도 해인은 왕단영과 정면으로 부딪치지는 않았다.“말씀 감사합니다, 이모님.”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해인은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은 최수나가, 장난감 낚싯대로 고양이와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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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최수나도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어 봐야 재미없다고 여겼는지, 몸을 돌려 그대로 가 버렸다.왕단영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발을 탕 구르며 욕을 했다.“천 여사 말이 맞아. 최수나는 아주 사람을 홀리는 여우 같은 년이라니까!”...본가로 오는 길에 해인은 이미 김 집사에게서 권영자가 오늘 집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젊은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벗 가운데 한 사람이 증손주를 봐서, 권영자가 직접 축하하러 갔다고 했다. 남의 복을 좀 나눠 받겠다는 뜻도 내비쳤다고 했다.권영자가 누구를 위해 그런 복을 빌고 있는지, 해인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이는 아직 해인의 계획 안에 없었다.방금 전 최수나가 해인을 두고 ‘인기 많네’라고 한 말의 속뜻도, 해인은 분명하게 알아들었다.한씨 가문은 바깥에서 말 많은 며느리를 원하지 않았다. 더구나 어제 일은 너무 크게 번졌다. 태겸이 해인을 안고 호텔 밖으로 나오는 영상도 한원랑이 본 게 분명했다.해인은 본가에 왔다는 사실을 유호에게 알리지 않았다. 유호에게 괜한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비록 해인과 한원랑의 관계가 원래부터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이 상황에 맞춰 잘 넘기면 될 거고 이 정도는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더 중요한 이유는, 해인은 유호가 자신 때문에 한원랑과 더 크게 부딪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해인이 유호에게 지는 빚은 더 커질 테고, 나중에는 갚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다이닝룸 안에서는 가사도우미가 상을 차리고 있었다.한원랑과 천하솜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천하솜은 일부러 주변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회장님, 밖에서 남자들이랑 얽히고설킨 여자가 한씨 가문 체면을 깎아 먹는 거 아닙니까? 어느 집 며느리가 저럽니까?”“혼자서는 그런 일도 못 벌입니다. 그 강해인은 원래 고씨 가문 그 집 아들이랑 혼담이 있었잖습니까?”“그런데 강해인이 영문도 모르게 그 혼담을 깨 버리더니, 우리 큰 사모님한테 가까이 붙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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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원랑이 천하솜을 매섭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다들 입 다물어!”집 안 여자들은 하나같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원랑은 점점 더 귀에 거슬렸다.해인은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단정하고 온순한 모습이었다.한원랑이 물었다.“새아가, 할 말은 없냐?”‘결혼은 결국 사람 하나하고만 하는 게 아니구나.’‘한유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한씨 가문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이러고 있네.’해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어야 해명도 하는 법인데 아버님,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천하솜이 곧장 끼어들었다.“회장님, 저 태도 좀 보십시오. 그렇게까지 하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잖아요.”해인이 바로 받아쳤다.“제가 뭘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여사님은 언론에서 멋대로 떠드는 말은 다 믿으면서, 정작 한집안 사람 말은 못 믿으십니까?” “이렇게 서둘러 저한테 누명을 씌우시려는 이유가 뭡니까?”말을 잇는 동안 해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누가 봐도 억울함을 삼키는 모습이었다.“제가 고씨 가문하고 어떻게 정리가 안 됐다는 겁니까? 저는 원래 고씨 가문에서 자랐습니다.”“혼담이 깨진 뒤에도 저를 붙잡고 늘어진 건 고태겸 씨였고, 여기저기 헛소문을 퍼뜨린 것도 고태겸 씨입니다.”“저는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더 해야 합니까?”해인은 천하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여사님, 지난번에 제가 실수로 여사님 심기를 건드린 건 제 잘못입니다. 그 일은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그러니 저를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의지할 데 없는 저 같은 사람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천하솜은 그대로 굳어졌다. 해인이 되레 판을 뒤집어 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해인이 저렇게 말하고 나니, 마치 천하솜이 무슨 몹쓸 짓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그런데 천하솜이 가만히 따져 보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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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천하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호가 문득 싸늘하게 웃었다.“뭐가 됐든 감히 제 일에 끼어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자리에서 일어난 유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기어이 우리를 건드릴 생각이라면, 아예 다 함께 식사하지 마세요.”말이 떨어지자마자 유호는 식탁보를 움켜쥐고 그대로 힘껏 잡아당겼다.와장창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막 차려 놓은 국과 반찬이 사방으로 튀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득하던 상은 깨진 그릇 조각과 뒤섞인 엉망인 음식더미만 남았다.누구도 유호가 식탁을 통째로 뒤엎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식탁에 앉아 있던 여자 셋은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천하솜은 조우가 뜨거운 국물에 데일까 봐 허둥지둥 조우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천하솜의 손등에 뜨거운 국물이 튀자 벌겋게 달아올랐고, 천하솜은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왕단영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왕단영은 오늘 일부러 새 옷까지 꺼내 입었는데, 입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망쳐 버리고 말았다. 옷 위에는 기름 자국이 잔뜩 번져 있었다.최수나는 셋 가운데 가장 먼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유호가 맞은편을 향해 식탁을 뒤엎었고, 최수나와 한원랑은 그 반대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천하솜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무슨 짓이야?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식탁을 뒤엎으면 어떡해? 이렇게 식구들이 다 모여 있는데, 이제 뭘 먹으라는 거야?”왕단영도 곧장 말을 보탰다.“그래, 유호야. 우리는 괜찮다 쳐도 회장님은 위도 안 좋으신데, 굶으시면 어떡하려고 그래?”최수나는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볼 뿐, 굳이 나서서 말을 얹지는 않았다.한원랑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호가 소리 없이 웃었다.“한 끼 안 먹는다고 죽기라도 하겠어요? 하나같이 배불리 처먹고 할 일이 없으니까 남 얘기나 씹는 거겠죠.”유호의 시선이 식탁 위를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해인은 제 아내입니다. 앞으로 누구든 뒤에서 해인의 험담을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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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천하솜과 왕단영은 동시에 굳어 버렸다.두 사람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한원랑과 유호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한원랑이 유호 편을 드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유호가 불과 몇 분 전에 식탁까지 뒤엎은 직후였다.‘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지?’한원랑은 화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유호가 잘했다는 듯한 말까지 했다.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 있었다.그 자리에서 최수나만이 망가져 버린 음식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최수나가 김 집사를 돌아보고 말했다.“집사님, 배고파 죽겠네요. 일단 주방에 말해서 국수 한 그릇만 빨리 내오라고 하세요.”김 집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주방 쪽에 다시 식사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가사도우미들은 그 사이에 널브러진 음식과 깨진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한원랑은 결코 흐리멍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KH그룹 같은 대기업을 일군 사람이었다. 그런 한원랑이 여자들 말 몇 마디에 휘둘릴 리 없었다.다만 어젯밤 천하솜이 앞뒤를 자른 말만 골라서 귓가에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한원랑이 잠시 화를 참지 못했을 뿐이었다.그런데 방금 해인이 한 말이 한원랑을 일깨웠다.고씨 가문과 한씨 가문은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업판에서도 늘 부딪치는 경쟁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원랑이 외부의 말을 믿고 자기 식구와 틈이 생기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그건 결국 고씨 가문만 즐겁게 해 주는 꼴이었다.게다가 방금 해인도 분명히 말했다. 태겸과 해인의 혼담은 이미 끝났다고. 둘 사이에 진짜 무슨 일이 있었다면, 해인이 굳이 그 혼담을 깨고 한씨 가문으로 시집올 이유도 없었다.한원랑의 눈에 비친 해인은, 보고 있으면 괜히 건드리면 안 될 것처럼 순하고 연약한 인상이었다. 누가 봐도 쉽게 속을 꾸민 표정은 아니었다.한원랑이 입을 열었다.“앞으로 누가 또 해인이랑 고태겸 얘기를 꺼내면, 바로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거야.” “한씨 가문이랑 고씨 가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멍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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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유호와 동갑인 한문승은 왕단영과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원래 이름은 왕단영의 성을 따라서 왕문승이었지만, 왕단영이 한원랑과 함께 살게 된 뒤 한문승으로 성을 바꿨다.금테 안경을 쓴 문승은 생김새만 놓고 보면 제법 점잖고 단정한 편이었다.“이 집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엄마는 아직도 아빠 태도를 모르겠어?”왕단영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야?”문승이 담담하게 말했다.“조우도 친아들인데 그룹 지분은 하나도 못 받았잖아.” “나처럼 피도 안 섞인 의붓아들은 잘 먹고 잘살면서 한씨 가문에서 조용히 지내기만 해도 충분해. 엄마는 뭘 더 바라는 건데?”문승은 그 점을 아주 분명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한원랑이 술만 마시면 유호를 죽일 듯 몰아붙이고 두들겨 패곤 했지만, 이해 관계가 걸린 일 앞에서는 계산이 명확한 사람이었다.한원랑은 누구도 유호의 후계자 자리를 위협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친아들인 조우조차 뒤로 밀려나 있었다.왕단영은 못마땅하다는 듯 아들을 노려보았다.“조우가 지금 몇 살인데? 이제 겨우 여섯 살짜리 애가 무슨 일을 하겠어? 너는 다르잖아.”“너는 어릴 때부터 한씨 가문에서 자랐어. 네가 조금만 더 정신 차리고 살았으면 벌써 그룹에 들어가고도 남았어.”문승은 하루 종일 노는 일 말고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만 잔뜩 있고, 정작 제대로 하는 일은 없었다.요즘에는 또 오토바이에 빠진 모양이었다. 한씨 가문에서 매달 받아 가는 용돈도 죄다 오토바이 꾸미는 데 써 버리고 있었다.문승이 어깨를 으쓱했다.“나는 무슨 그룹이고 뭐고 들어갈 생각 없어. 맨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고, 실적 압박까지 받으면서 살다간 답답해서 못 버텨.” “그냥 매달 용돈이나 꼬박꼬박 받으면서 사는 게 훨씬 낫지.”게다가 한씨 가문은 대재벌이다. 의붓아들한테 주는 용돈조차 적은 돈이 아니었다. 매달 2천만 원씩 들어왔고, 그 정도면 그룹에 들어가 일한다고 해서 꼭 벌 수 있는 액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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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해인도 유호도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본가에서 해인이 그런 일을 겪었으니, 어떻게 생각해도 남편인 유호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본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유호가 제대로 정리해 두지 못한 탓에, 해인만 쓸데없는 불편을 겪게 된 셈이었다.유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다음에 본가에서 차 보내도 타지 마. 신경 쓸 필요 없어.”유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물었다.“그리고 일이 생겼는데 왜 바로 나한테 전화 안 했어?”어제 두 사람은 분명히 약속했었다. 오늘은 유호가 집에 돌아와서 해인이 차린 밥을 먹기로.그런데 유호가 한낮에 서둘러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해인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유호는 곧바로 뭔가 일이 생겼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늘빌 CCTV를 확인했고, 그제야 해인이 본가에서 보낸 차를 타고 갔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실을 보는 내내 유호의 속은 뒤집혔다.본가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만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산다고는 해도 서로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 같았다.해인은 지난번 한씨 가문에 갔을 때 이미 그런 분위기를 겪어 봤을 터였다. 그런데도 해인은 결국 본가로 가는 차에 올랐다.식탁 앞에서 해인이 혼자 한쪽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아무도 해인 편에 서 주지 않는 듯한 그 장면을 보고 유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해인이 당했다’는 생각이었다.남자인 유호는 그걸 어떻게 보고만 있겠나 싶었다. 다시는 본가 사람들이 해인을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유호는 아예 식탁을 뒤엎어 버렸다.다만,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해인이 가장 먼저 유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점도, 본가에 간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았다는 점도, 유호의 마음을 자꾸만 이상하게 만들었다.‘해인은 날 믿지 않는 건가?’유호는 이유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아내에게 신뢰받지 못한 사람처럼 기분이 가라앉았다.해인이 조용히 설명했다.“저는 다친 데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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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대현이 말했다.“유호야, 너랑 고태겸은 경우가 다르지. 제수씨는 고태겸이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였잖아.”“20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 보냈고, 같이 크면서 쌓인 정도 있었을 테니 믿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강씨 가문에 일이 터졌을 때 제수씨는 아직 열몇 살이었어. 그 나이에 고태겸한테 기대는 게 뭐가 이상해.”유호의 미간이 더 깊게 접혔다.태겸과 함께 있을 때 해인은 태겸에게 의지했다. 그런데 이제 유호와 함께 있으면서는 유호에게 기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남편이라는 유호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새삼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유호가 조용하게 말했다.“해인을 아내로 맞은 건, 내가 운이 좋았던 거지.”유호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술이 조금 들어간 상태였다. 유호는 술잔을 느슨하게 쥔 채, 속으로는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할머니가 밀어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나는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해인이만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겠지.’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유호 마음 한편에는 끝내 가라앉지 않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대현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지금은 둘이 맨날 같이 있잖아. 제수씨도 너 챙기고, 너도 제수씨 챙기고. 그 정도면 된 거 아니야?”유호가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를 대현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현은 지금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모태솔로였다.유호가 웃었다.“너도 언젠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알게 될 거다.”한번 원하는 걸 손에 넣고 나면, 사람은 더 많은 걸 바라게 된다.그 사람의 몸만 가지고 싶은 게 아니라, 마음까지 갖고 싶어진다. 몸도 마음도 온전히 자기에게 닿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대현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근데 말이다, 유호야. 너 열 살 때 제수씨랑 처음 만났잖아. 그 뒤로 오빠 둘이 중학교 올라가면서 제수씨하고 더 이상 못 다녔고, 그러다 너희 연락도 끊겼고.”“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는 둘 다 어렸으니까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리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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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붉은 해가 기울면서 마침 해인의 등 뒤로 석양이 걸려 있었다.저녁노을은 하늘 끝까지 번져 있었고, 지는 해는 마치 화가가 캔버스 위에 물감을 한껏 쏟아 부은 듯했다. 구름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땅 위에는 부드러운 금빛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여러 빛이 한데 얽혀서 눈을 뗄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이 되었고, 그 풍경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바람이 불자 해인의 잔머리가 가볍게 흩날렸다. 해인은 유호와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유호는 해인이 난간 위로 올라오는 걸 보고, 해인이 뭘 하려는 건가 싶어 시선을 떼지 못했다.그런데 해인은 올라온 지 채 3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다음 숨이 이어질 때쯤 유호를 불쌍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입술은 울상을 참는 사람처럼 오므라들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흐윽... 여기가 왜 이렇게 높아요? 저는 벌써 후회돼요.”해인은 난간을 두 손으로 꽉 붙들고 있었다. 심장은 터질 듯 빠르게 뛰었고, 무서움이 차오른 탓에 눈가까지 붉어져 있었다.유호는 해인이 허둥대는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보기만 했다.겁에 질린 해인의 다리는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해인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갔다.“선배님...”해인은 난간 위에 잔뜩 웅크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해인은 아주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유호 쪽으로 몸을 옮기려고 했다. 그 움직임은 서툴고 느렸고, 왠지 굼뜬 아기 판다처럼 보였다.“저... 하나만 부탁드려도 돼요?”해인은 속눈썹을 내린 채 유호를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아래, 까만 눈동자에는 금방이라도 물기가 맺힐 듯한 흔들림이 담겨 있었다.“먼저... 저를 아래로 내려 주고 나서 뛰어내리면 안 될까요?”유호는 그 말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막 뛰어내리려는 사람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게다가 해인은 너무 겁이 많아 보였고, 그 모습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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