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이 말했다.“유호야, 너랑 고태겸은 경우가 다르지. 제수씨는 고태겸이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였잖아.”“20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 보냈고, 같이 크면서 쌓인 정도 있었을 테니 믿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강씨 가문에 일이 터졌을 때 제수씨는 아직 열몇 살이었어. 그 나이에 고태겸한테 기대는 게 뭐가 이상해.”유호의 미간이 더 깊게 접혔다.태겸과 함께 있을 때 해인은 태겸에게 의지했다. 그런데 이제 유호와 함께 있으면서는 유호에게 기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남편이라는 유호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새삼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유호가 조용하게 말했다.“해인을 아내로 맞은 건, 내가 운이 좋았던 거지.”유호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술이 조금 들어간 상태였다. 유호는 술잔을 느슨하게 쥔 채, 속으로는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할머니가 밀어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나는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해인이만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겠지.’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유호 마음 한편에는 끝내 가라앉지 않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대현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지금은 둘이 맨날 같이 있잖아. 제수씨도 너 챙기고, 너도 제수씨 챙기고. 그 정도면 된 거 아니야?”유호가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를 대현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현은 지금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모태솔로였다.유호가 웃었다.“너도 언젠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알게 될 거다.”한번 원하는 걸 손에 넣고 나면, 사람은 더 많은 걸 바라게 된다.그 사람의 몸만 가지고 싶은 게 아니라, 마음까지 갖고 싶어진다. 몸도 마음도 온전히 자기에게 닿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대현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근데 말이다, 유호야. 너 열 살 때 제수씨랑 처음 만났잖아. 그 뒤로 오빠 둘이 중학교 올라가면서 제수씨하고 더 이상 못 다녔고, 그러다 너희 연락도 끊겼고.”“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는 둘 다 어렸으니까 연락처를 주고받았을 리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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