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791 - Chapter 800

906 Chapters

제791화

교도소.젊은 여성 교도관은 막 사망 판정을 받은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를 내려다봤다.두 눈은 꼭 감겨 있었고, 다른 수용자들과 충돌하면서 심하게 맞은 얼굴은 원래 생김새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부어 있었다.그래도 교도관은 이 여자가 원래 꽤 아름다운 외모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죽기 전 입에서 피가 쏟아지면서 출혈이 멎지 않았다. 몸 안쪽 장기까지 크게 다친 끝에 숨진 게 분명해 보였다.이 수용자가 처음 들어온 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구역을 관리해 온 교도관은 그녀를 제법 잘 알고 있었다.차희정, 수감번호는 912번이었다.정식으로 수감되기 전부터 교도관들은 912번의 신상 기록을 받아 봤고, 살인죄로 들어온 죄수라는 걸 알고 있었다.시장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딸이 친아버지를 직접 죽인 데다가, 재판정에서는 판사가 보는 앞에서 내연남까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그렇게 잔혹한 면을 갖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범행만 놓고 보면 망설임조차 없는 흉악범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처음 자료를 봤을 때는 젊은 교도관도 희정을 곱게 보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교도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만큼 새 일에 의욕도 컸고, 담당 수용자들의 생활도 꼼꼼히 챙겼다.교도관은 이런 여자라면 잘사는 집에서 자란 특유의 까다로운 성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912번은 대부분 혼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평소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가끔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웃는 때가 있었다.지켜보다 보니 912번이 다른 수용자들을 일부러 자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상대들이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데도 전혀 반격하지 않았다. 머리조차 감싸지 않고 바닥에 누운 채 맞기만 했다.이런 충돌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912번의 몸에는 늘 크고 작은 상처가 끊이지 않았다.앞으로 다가간 교도관이 시신 위에 흰 천을 덮고 안치실로 옮기도록 했다.몇 시간 뒤 다른 직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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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2화

한씨 저택 거실.시터가 이안을 안고 있었고, 권영자는 그 옆에서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해인은 자신을 조금 닮은 아들의 통통하고 하얀 볼을 보자,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봤다.옆에 있던 유호가 말했다. “이안아, 엄마 해 봐.”5개월 된 아기는 한창 귀여울 때였다. 본가에서 잘 먹고 잘 자란 이안은 볼이며 팔다리가 통통했다. 날씨도 따뜻해져서 얇은 옷을 입혔더니, 아이의 작은 몸이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이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사람을 볼 때마다 세상이 신기한 듯 호기심이 가득했고, 가끔 짧고 통통한 다리를 힘차게 차며 넘치는 기운을 뽐냈다.유호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천천히 아빠 쪽을 보더니 입을 벌리고 해맑게 웃었다.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바보처럼 환하게 웃기만 하고 ‘엄마’ 소리는 낼 생각도 하지 않자, 유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얘 진짜 내 아들 맞아? 왜 아빠 말을 하나도 안 듣지? 설마 좀 둔한 건 아니겠지?”권영자가 유호를 매섭게 흘겨봤다. “5개월 된 애가 네 말 알아듣고 그대로 하면 그게 신동이지. 우리 증손자가 얼마나 똑똑한데. 너 어릴 때보다 훨씬 영특하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이안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호는 권영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였다.하지만 이제 이안이 생기자 유호조차 한발 물러나야 했다.해인도 누가 자기 아들을 좋지 않게 말하는 건 듣기 싫었던지 곧바로 거들었다. “아들은 아빠 닮는대. 이안이 둔한 거면 당신도 똑같은 거지.”유호는 졸지에 두 여자에게 양쪽에서 공격받는 신세가 됐다.할머니야 그렇다 쳐도 해인까지 자기 편을 들지 않자, 유호가 아내를 바라봤다. “아들이 남편보다 더 중요해?”해인의 뺨이 붉어졌다. 가족들이 다 있는 데서 그런 질문을 받으니 괜히 민망했다.어떻게 대답해도 한쪽은 섭섭해질 것 같은 질문이었다.결국 권영자가 해인을 구해 줬다. “다 큰 놈이 자기 아들한테 질투까지 하냐? 너희 사이 좋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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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3화

오후, 우유를 다 먹은 이안은 졸음에 겨운 채 해인의 품에 기대 있었다. 작은 눈꺼풀이 자꾸 아래로 내려앉았다.해인은 뽀얗고 말랑한 아들의 얼굴을 보다가 몸을 숙여 볼에 입을 맞췄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안은 해인에게 기댄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해인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아기 침대에 눕혔다.이 또래의 아기는 보고 또 봐도 귀여웠다. 해인은 아기 침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뒤에서 유호의 손이 해인의 어깨에 살며시 얹혔다.“그렇게 좋아? 할머니가 이안을 곁에 데리고 계셔서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으면 네 마음속에 내 자리는 남아 있지도 않았겠어.”해인이 돌아보며 말했다. “어리잖아. 귀엽기도 하고. 그래서 좋은 거지.”유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우리 여보가 연하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기는 한데, 취향이 그렇다면 연하처럼 해 줄 수도 있는데.”해인은 놀라서 돌아봤다.유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가까이 있었다. 유난히 긴 속눈썹 아래로 장난기 섞인 눈빛이 빛났다.해인은 유호가 입술을 움직이며 귓가에 딱 두 글자를 속삭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누나.”해인은 아무 말도 못 했다.‘이 사람한테 이런 면도 있었어?’귓가를 스친 유호의 뜨거운 숨결 때문에 해인은 목덜미까지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해인은 귀를 감싸 쥐며 유호에게서 한 발 피했다.유호는 그런 해인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처음에는 가볍게 놀릴 생각이었는데 해인의 반응이 예상보다 더 컸다.유호는 한술 더 떠서 살짝 잠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누나, 부끄러워?”해인은 유호 때문에 미친 듯 뛰던 심장을 진정시키는 데 한참이 걸렸다.그제야 유호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치며 말했다. “적당히 해.”유호는 해인의 손목을 잡고 그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해인을 바라보는 눈에는 깊은 애정이 가득했다. “싫은데. 네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걸 볼 수 있으면, 누나라고 몇 번 더 불러도 남는 장사지.”해인은 유호의 한결같은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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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4화

유호는 눈썹을 찌푸린 채 해인을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다.해인은 원래 가볍게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유호의 반응을 보자 표정이 금세 진지해졌다.‘맞구나.’해인의 안타까움 어린 눈과 마주치자, 유호는 손을 들어 해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그렇게 보지 마. 네가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잖아. 나도 예전에는 이유가 뭔지 몰랐어. 그런데 이선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다 이해가 됐지.”유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마치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그럴수록 해인은 더 마음이 아팠다.해인은 참지 못하고 유호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두 팔로 허리를 힘껏 안았다.익숙한 체취가 마음을 가라앉게 해줬다. 해인이 낮게 말했다. “그럼 유전자 검사 한 번 해서 결과지를 아버님 앞에 내밀 생각은 안 해 봤어? 아버님은 그동안 자기 친아들을 그렇게 대한 거잖아.”유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목소리도 여전히 담담했다. “어릴 때는 왜 그러시는지 몰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어. 이제는 이유를 알지만 나도 다 컸잖아. 굳이 확인할 필요 없어.”해인의 마음이 약해지면서 유호를 안은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해인이 자신을 꼭 끌어안자, 유호가 눈썹을 장난스럽게 치켜들었다. “그렇게 내가 안쓰러워?”해인은 유호 품에 기대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당신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그 오랜 시간을 혼자 버티게 두지 않았을 거야.”그 말을 들은 유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여보, 네가 모르는 사이에 네가 나한테 힘을 준 적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해?”해인은 유호의 어린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구원이었고, 가장 힘든 몇 년 동안 유일하게 따뜻함을 건네 준 사람이었다.어린 해인이 소꿉놀이를 하며 유호의 상처에 발라 줬던 어린이용 보습크림 냄새는, 지금까지도 유호 기억 속에서 가장 좋은 향으로 남아 있었다.그 시절 해인은 며칠에 한 번씩 심하게 다친 유호를 보러 왔다. 그 짧은 만남은 어린 유호가 가장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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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5화

유호는 직접 운전해서 해인을 공장까지 데려다줬다.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해인은 처음 경영을 맡았고 이 분야의 실무 경험도 거의 없었다. 해인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유호는 스스로 부딪혀 보도록 충분한 공간을 줬고 해인의 판단도 존중했다.어떤 결과가 나와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뒤를 받쳐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다만 이 산하 공장의 공장장은 상대하기 꽤 까다로운 사람이었다.예전에 유호가 YD그룹을 대신 관리하던 시절부터 공장장 오기홍이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오기홍은 유호 앞에서는 선을 지켰다. 대놓고 반기를 들지는 않았고, 사소한 이익을 챙기는 정도는 유호도 모른 척 넘어가 줬다. 수십 년 동안 공장에서 일해서 현장 직원들의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다.그런데 최근 YD그룹의 CEO가 바뀌자, 오기홍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해인이 어떤 운영 결정을 내려도 오기홍은 갖가지 이유를 붙여 되돌려 보냈다.현장에서는 공장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이번에 해인은 공장 구조를 손보고 새로운 제품 라인을 개발하려고 했다. 준비는 순조로웠고 원자재 공급 업체까지 이미 선정해 둔 상태였다.하지만 오기홍이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루는 바람에, 원래 일정에서 보름이나 늦어졌는데도 아직도 생산은 시작되지 못했다.유호가 물었다. “같이 들어가 줄까?”공장 정문 앞에 차를 세운 유호는 해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해인은 유호가 자신에게 힘을 실어 주려 한다는 걸 알았다.그래도 계속 유호에게 기대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는 없었다. 결국 회사는 해인이 직접 이끌어야 했다.해인이 말했다. “괜찮아. 나 혼자 들어갈게. 당신은 먼저 가.”유호는 해인이 공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 더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해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떠나지 않았다. 차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 세운 뒤 그대로 기다렸다.유호는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한 통 걸었다.얼마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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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6화

그럴듯한 말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였다. 사업은 추진할 수 없고, 이유는 현장 직원들의 반대라는 것이었다.직원들이 새 설비를 들이고 생산 방식을 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해인이 오기홍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회의를 한 번 더 하죠. 저는 직접 묻고 싶습니다. 공장에 도움이 되는 신제품 개발을 왜 반대하시는지요.”해인은 현장 사정을 충분히 파악해 둔 상태였다. 오래 근무한 직원들 중에는 학력이 높지 않은 이들도 많았고, 공장 설립 초창기부터 오기홍이 직접 뽑아서 함께 일해 온 사람이 많았다. 자연히 이들은 오기홍의 말을 가장 신뢰했다.하지만 해인이 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는 회사와 공장 모두를 위해서였다.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업계에서 앞서갈 수 있고 YD그룹의 수익도 늘어난다. 실적이 좋아지면 연말 성과급도 자연스럽게 커질 수 있으니 현장에도 분명 이익이었다.“회의를 다시 해요?”해인이 회의를 열자고 하자 오기홍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곧 난처하다는 표정을 만들어 냈다.해인이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회의를 열기 어렵나요?”오기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현장 책임자 두 명이 자리에 없습니다. 갑자기 외부 일정이 생겨서 출장을 갔습니다. 중요한 책임자들이 빠진 상태에서 회의를 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해인의 감은 그 말이 핑계라고 말하고 있었다.해인은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오기홍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해인이 나가자 오기홍은 비서에게 눈짓했다.비서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고 뒤따라 사무실을 나갔다.화장실 방향으로 가던 해인은 모퉁이에 이르자 조용히 방향을 틀어 비상계단 쪽으로 들어갔다.오기홍은 현장 핵심 책임자 두 명이 없다고 했지만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정말 현장에 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러면 오기홍도 더는 둘러댈 말이 없을 터였다.하지만 해인은 공장 사무 구역 곳곳에 사각지대 없이 CCTV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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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7화

수아의 눈에는 해인을 재보는 기색이 선명했다.오기홍이 재촉했다. “빨리 사과해야지, 뭐 하고 있어? 강 대표님 말 한마디면 네 아빠는 오늘 당장 자리에서 내려올 수도 있어.”그제야 수아가 마지못해 해인을 향해 말했다. “아, 죄송해요. 강씨 집안이라도 통째로 물려받으신 줄 알았네요.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봐요. 너그럽게 봐 주세요.”이 공장은 YD그룹 계열이었다. 수아가 어릴 때부터 오기홍은 이곳에서 일했고, 수아 역시 YD그룹 집안의 외동딸이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수아의 말은 비꼬는 기색이 다분했다. 하지만 해인을 더 불쾌하게 만든 건 오기홍의 태도였다. 마치 해인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 기분이 한 번 상하면 수십 년 공장에 몸담은 공장장도 하루아침에 내쫓을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해인은 미간을 눌렀다. 부녀가 주고받는 말이 일부러 사람 속을 긁으려는 수작이라는 건 뻔했다.아마 해인의 과거도 알아봤을 것이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집안 딸이라는 것만 보고, 아직도 온실 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몇 마디 자극하면 화를 내며 돌아갈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하지만 지금의 해인은 그 정도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수아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오기홍을 바라봤다. 화난 기색 없이 평온한 목소리였다.“공장장님께서 계속 결재를 미루고 사업 진행을 막는 이유가 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아시겠죠.”신제품 개발 초기에 오기홍은 해인에게 한 공급업체를 추천한 적이 있었다. 해인이 사람을 시켜 업체를 확인해 보니, 오기홍의 처가 쪽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제품과 조건에 문제가 없었다면 해인도 오기홍의 체면을 세워줄 생각은 있었다.하지만 납품하려던 자재의 품질부터 만족스럽지 못했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양사 거래 내역을 조사하자, 예전에도 해당 업체와 거래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그중 일부 자금 흐름은 장부와 맞지 않았고 설명도 되지 않았다.누군가 거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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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8화

오기홍은 금고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누른 뒤, 공장장 명의로 쓰는 직인을 꺼내 해인 앞에 내려놓았다.수아가 놀라 소리쳤다. “아빠? 진짜 그만두려고? 공장 처음 돌아가기 시작할 때부터 강 회장님 밑에서 일했잖아. 회장님이 아빠를 얼마나 믿었는데...”“예전에 우리 집까지 와서 어깨 두드리면서 형제처럼 지내자고, 앞으로 공장은 아빠한테 맡긴다고 했잖아.” “아빠가 이렇게 나가면 돌아가신 회장님도 답답해서 벌떡 일어나시겠다.”수아가 말한 ‘강 회장’은 해인의 양아버지였다. 해인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다.오기홍은 억지로 눈가를 훔치는 시늉을 했다. “수아야, 나라고 이러고 싶겠니? 하지만 대표님께서... 됐다. 나도 강 회장님께 할 만큼 했어. 회장님도 내가 이 정도 했으니 탓하지 않으실 거다.”끝까지 듣고 있던 해인의 눈썹이 깊게 찌푸렸다.오기홍 부녀가 자신을 어떻게 자극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지 10년도 넘은 사람을 방패처럼 세워 이용하는 건 역겨웠다.해인도 오늘 아무 준비 없이 온 것은 아니었다.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곧이어 사무실 안쪽의 의자에 앉아 차분히 오기홍을 올려다봤다. “좋습니다. 사직하시겠다면 저도 일은 빨리 처리하는 편이니, 사직서도 지금 바로 제출해 주세요.”오기홍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잠깐 말을 잃었다.오기홍이 원한 건 겁을 주는 것이었다. 사직까지 거론하며 버티면, 세상 물정 모르는 강씨 집안 아가씨는 당황해서 자신을 붙잡고 사과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해인은 망설이지 않고 당장 사직서를 내라고 했다.오기홍이 정말 회사를 떠날 생각일 리 없었다. 한발 물러나는 척하면서 해인을 압박하려고 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더 우스워지는 상황이었다. 오기홍은 내키지 않아도 다음 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오기홍이 수아에게 눈짓을 보냈고, 20분 뒤 손으로 쓴 사직서 한 장이 해인 앞에 놓였다.해인이 서류를 받아 자세히 읽으려던 때, 사무실 밖에서 갑자기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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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9화

지금의 해인은 예전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많은 직원이 둘러싸고 따져 묻는 상황에서 당황했을 수도 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 태겸의 배신, 유호의 뇌에 칩이 심어진 사건, 혼자 아이를 낳고 버텨야 했던 시간까지 숱한 일을 지나오며 해인은 이미 달라졌다.이제는 혼자서도 한 자리를 책임질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시선이 몰려 있어도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해인은 침착하게 오기홍을 바라봤다. 지금 벌어진 상황이 전부 그의 계산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오기홍이 원하는 건 해인이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공장을 수십 년 관리했다는 이유 하나로 주인 행세를 하며 진짜 경영자를 밀어내려는 셈이었다.그럴 수는 없었다.해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주변에 모인 모든 사람이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공장장님 말씀대로입니다. 일부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기존 방식만 고집하신 탓에 공장의 발전이 늦어진 것도 사실입니다.”오기홍이 꺼낸 말을 그대로 이어받은 해인은, 직원들 앞에서 오기홍의 경직된 운영 방식을 사실로 못 박았다. 오기홍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과 다름없었다.해인은 서두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공장은 YD그룹 소속입니다. 그룹의 경영 책임자인 저는 생산 라인을 조정할 의무가 있습니다. 공장 수익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기도 합니다.”해인은 미리 현장을 조사해 둔 덕분에 모여 있는 사람 대부분이 공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이라는 걸 알았다. 이들은 공장에 애정이 있었고, 공장이 잘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그런 사람들이 개편을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오기홍이 중간에서 다른 이야기를 흘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실제로 알아본 바로는 오기홍은 직원들에게 해인이 공장을 새 사업의 시험대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다. 돈 많은 재벌 집안 딸이 재미 삼아 사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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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0화

처음부터 양쪽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 셈이었다.해인은 이 문제만큼은 당장 오기홍의 거짓말이라고 밀어붙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자료가 없었다.더구나 성과급은 직원들의 직접적인 이익과 연결된 문제였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을 받고 싶어 한다. 지금 해인이 무슨 설명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오기홍은 해인이 자신이 거짓으로 말을 퍼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며 자신을 몰아붙일 거라고 예상했다.그러면 오기홍은 피해자인 척하며 직원들의 동정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과급 이야기를 들은 해인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해인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룹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었습니다.”“성과급은 말씀드린 대로 지급하겠습니다. 늦어도 사흘 안에 순차적으로 각자 계좌로 들어가게 하겠습니다.”해인이 이렇게 솔직하고 차분하게 사과하자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눈앞의 대표는 젊었다. 자기 자녀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맑고 단정한 인상이라 처음부터 미워하기도 어려웠다.직접 만나 보니 그동안 들었던 이미지와도 전혀 달랐다. 말투도 부드러웠고 현장 사람을 깔보거나 몰아붙이는 고용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누군가는 이미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말투도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정말입니까? 또 기다리라고만 하시는 건 아니죠?”해인은 진지하게 바로 답했다. “정말입니다. 사흘만 지나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좋습니다. 그럼 사흘만 기다려 보죠.”분위기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자 오기홍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오기홍이 비서에게 눈짓했다. 비서가 한 직원 곁으로 다가가더니 팔꿈치로 가볍게 옆구리를 건드렸다.그 직원이 곧 큰 소리로 말했다. “회사 사람들은 맨날 나중에 준다고 말만 하지 않습니까! 돈이 들어와야 믿죠. 진짜 줄 거면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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