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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1화

직원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실랑이를 벌이던 그때, 배달 기사 한 명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기사는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 해인 앞에 꽃을 내밀었다.주변의 시선이 한꺼번에 장미꽃으로 쏠렸다.이런 상황에 나타난 화려한 꽃다발은 너무 뜬금없어서 오히려 모두의 주목을 끌었다.배달 기사가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는데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들렸다. “강해인 씨 맞으시죠? 한유호 씨께서 보내신 꽃입니다.”싱싱하게 핀 장미를 본 해인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공장 출입구 쪽을 바라봤다. “그 사람은 어디 있어요?”“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천천히 일 보시고, 끝나면 같이 돌아가시겠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유호 씨... 아직 안 갔어?’배달 기사는 맡은 일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 해인은 꽃을 든 채 잠깐 생각에 잠겼다.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사람들도 이 작은 일 하나 때문에 하나둘씩 조용해졌다.사람은 대개 상대가 만만해 보일 때 더 쉽게 선을 넘는다.직원들이 해인을 거칠게 몰아붙인 것도 젊은 여자가 혼자 와 있는 데다가, 당장 편을 들어 줄 사람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유호가 보낸 꽃다발은 겉으로 보면 사랑하는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선물이었다.하지만 그 안에는 다른 뜻도 있었다. 해인은 혼자가 아니며, 함부로 대하려면 먼저 그 뒤에 있는 유호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경고였다.늘 웃는 얼굴을 유지하던 오기홍의 눈에도 경계하는 기색이 더해졌다.오기홍이 몰래 비서에게 눈짓하자, 뜻을 알아차린 비서가 앞장서서 소란을 피우던 사람의 팔을 잡아당겼다.그 직원도 분위기를 살피더니 한발 물러섰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죠. 대신 성과급 약속은 잊으시면 안 됩니다!”해인은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그대로 나가 버리면 오기홍은 분명 뒤에서 직원들에게 다른 말을 흘릴 것이다. ‘겁먹고 도망치듯 돌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주기로 한 거다’라고 몰아갈 모습이 뻔히 보였다.품에 안긴 장미는 막 피어난 듯 싱싱했고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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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공장 안에서 여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수아였다. 차 옆으로 다가온 수아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하필 유호가 앉은 쪽이었다. 유호가 창문을 내렸다.수아의 예쁘장한 얼굴과 함께 짙은 향수 냄새가 차 안으로 훅 들어왔다. 유호는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렸다.수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창문을 잘못 두드렸네요.”수아는 유호가 보는 앞에서 해인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좀 답답하실 수 있어요. 혹시 불편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릴게요.”해인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 부녀가 대체 뭘 하려는 거지?’‘한 사람은 강하게 밀어붙이고 한 사람은 달래는 역할이라도 나눈 건가?’조금 전 직원들이 잔뜩 모여 있을 때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수아가 이제 와서 뒤늦게 사과를 한다는 것도 이상했다.해인은 수아를 힐끗 바라본 뒤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그 짧은 반응에 상처라도 받은 듯 수아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수아는 더 말하지 않고 옆에 있는 유호를 바라봤다. 눈물이 고인 눈은 애처로운 인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강 대표님이 아직 저한테 화가 나신 걸까요? 그래도 사과는 진심이에요. 두 분께 불편을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수아는 명함 한 장을 꺼내 유호에게 내밀었다. “필요하실 때 연락 주세요.”말을 마친 수아는 두 사람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명함을 차 안으로 살짝 던진 뒤 돌아서 뛰어갔다.가슴 쪽에 떨어진 명함을 내려다보던 유호는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하게 해인을 봤다.해인도 여자였다. 조금 전 수아는 겉으로는 얌전하고 예의 바른 척했지만, 눈길과 말투에는 은근히 사람을 끌어당기려는 의도가 묻어 있었다.해인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한유호 씨, 인기 많네.”유호도 그 정도 속셈을 못 알아챌 리 없었다.수아가 부린 작은 수작은 유호의 눈에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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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3화

해인을 집까지 데려다준 유호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손으로 해인의 허리 뒤를 부드럽게 감쌌다.“여보, 아직도 질투해?”오는 내내 해인은 창밖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유호가 몇 번이나 옆을 봤지만 해인은 한 번도 시선을 돌려주지 않았다.하지만 해인은 질투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수아 정도의 수법에 질투할 이유는 없었다. 해인은 공장의 막힌 상황을 어떻게 풀지 생각하고 있었다.수아는 크게 경계할 상대가 아니었지만 오기홍은 달랐다. 오랫동안 공장에 있었던 경력과 영향력을 무기로 계속 해인의 발목을 잡았고, 업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직원들 대부분이 오기홍을 믿는 것도 문제였다. 해인이 오기홍을 바꾸고 싶어도 현장 전체와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었다.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오기홍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어야 했다.해인이 유호를 바라봤다. “나 사람 몇 명만 빌려줘.”해인은 막 그룹을 맡아 아직 자기 기반이 약했다.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측근도 거의 없었다. 혼자 힘으로 움직이려니 해야 할 일에 비해 손발이 부족했다.유호가 갑자기 웃었다. 해인의 목덜미 가까이 얼굴을 기울여 따뜻한 숨을 흘렸다. “우리 여보가 드디어 나한테 도움을 청하네.”해인이 다시 회사를 맡은 뒤부터 유호는 사실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해인이 독립적으로 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기에 충분히 맡겨 둔 것이다. 그래도 두 사람은 부부였다. 서로 도우며 사는 관계고, 가진 자원과 사람을 공유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런데 해인은 한 번도 먼저 유호에게 뭔가를 부탁한 적이 없었다. 혼자서 너무 잘 해내려고 했다. 그래서 유호는 자신이 해인에게 필요한 사람인지조차 느끼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남편인 자신이 없어도 해인은 모든 걸 해낼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아이를 낳는 일마저 유호 없이 혼자 견뎌 냈다.유호는 해인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해인은 그럴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유호는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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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4화

돌아온 뒤 유호는 완전히 아내만 바라보는 사람이 됐다. 하루 종일 해인 주변을 맴돌았다.대현이 몇 번이나 만나자고 했지만, 유호는 매번 ‘아내랑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예전에 유호에게 일이 생겼을 때, 대현은 먼 외국까지 직접 찾아간 적도 있었다. 돌아왔을 때는 대현의 얼굴이 눈에 띄게 햇볕에 그을렸을 정도였다.대현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네 아내인데 어디 도망가냐? 앞으로 같이 살 날이 얼마나 많은데, 뭘 그렇게 매달려. 오늘 나랑 제대로 한 잔 안 마시면 친구 끝이야.”친한 친구라 그런지 대현은 봐주는 법도 없었다. 바에서 가장 비싼 술 가운데 하나를 바로 주문했다.“오늘은 둘 다 취할 때까지 마시자.”유호가 눈썹을 살짝 들었다. “그래.”술은 생각보다 도수가 높았다. 몇 잔 들어가자, 대현은 머리가 묵직해지면서 정신이 흐려졌다.“와, 이거 세네.” 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좌석에는 유호 혼자 남았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술에 반쯤 취한 여자가 험상궂어 보이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시달리기 시작했다.여자는 피하듯 뒤로 물러나다가 어느새 유호가 앉은 자리 앞까지 밀려왔다.유호는 그때 해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늦게 들어가게 된 만큼 아내에게 먼저 알려 두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메시지를 막 보내려는데 여자가 갑자기 테이블 쪽으로 부딪치며 유호 앞에 있던 술잔을 넘어뜨렸다.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유호도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유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테이블에 있던 술은 쉽게 구하기 힘든 고급 제품이었다. 가격도 상당해서 돈 많은 집 자제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주문할 만한 술은 아니었다.아직 절반밖에 마시지 않았고 풍미도 좋았다. 그대로 바닥에 쏟아진 게 조금 아까웠다.유호는 바닥에 번진 술을 보면서 짧게 혀를 찼다. “아깝네.”그 사이 여자 뒤를 따라오던 남자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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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5화

화장실에서 돌아온 대현이 본 것은, 유호의 바짓단을 붙잡은 수아가 반쯤 무릎을 굽힌 채 눈물 어린 얼굴로 올려다보는 장면이었다.유호는 손에 잔을 들고 있었고, 짙은 빛의 술이 바의 조명 아래 묘하게 반짝였다.유호는 옆얼굴마저 전혀 흠을 잡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한 사람은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한 사람은 내려다보는 구도에, 여자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위기 상황보다 묘한 분위기를 먼저 떠올릴 만했다. 대현은 말없이 핸드폰을 들고 카메라를 유호 쪽으로 향했다.영상통화는 금방 연결됐다. 화면 속 해인은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대현은 해인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제수씨, 큰일 났습니다. 유호가 지금 사고 치기 직전이에요. 바에서 다른 여자랑 분위기가 아주 수상합니다.”그제야 해인이 화면을 봤다.화려한 조명이 번지는 바 안쪽, 소파에 느긋하게 앉은 유호의 발치에는 가엾은 표정의 여자가 몸을 낮추고 있었다.여자는 뺨도 붉어지고 머리카락도 적당히 흐트러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당장이라도 다가와 여자를 잡아끌 것 같은 남자들이 서 있었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화면 속 여자가 수아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대현은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수씨, 유호랑 이혼하세요. 다시 싱글로 만들어서 맨날 저보고 혼자라고 놀린 벌 좀 받게 해야죠. 아내가 없는 삶이 얼마나 서러운지도 느껴 보라고요.”해인이 차분히 대답했다.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대현이 눈을 크게 떴다. “왜요?”[저는 제 남편을 믿어요.]대현은 할 말을 잃었다. 이 부부한테 번갈아가며 애정 자랑을 당한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대현도 질릴 만큼 질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유호였고, 결국 또 유호와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그쪽에서 수아는 유호의 시선이 자기 얼굴에 머문 걸 확인했다. 뒤의 남자들이 다가오자, 겁먹은 척 몸을 유호 쪽으로 기울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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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6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의 보안요원들이 몰려와, 문제를 일으키던 남자들 앞에 일렬로 섰다. 하나같이 체격이 큰 사람들이었다.남자들은 눈에 띄게 기세가 꺾였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수아를 한 번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은 운 좋은 줄 알아.”그 말을 남기고 무리는 자리를 떠났다.남자들이 쫓겨나는 걸 본 수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수아는 유호를 돌아보며 감사한 눈빛을 보였다. “한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괴롭힘을 당한 뒤의 서러움, 도움을 받은 뒤의 안도감까지 수아는 표정과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담아냈다.그 정도도 절묘했다. 지나치게 약해 보이지도, 억지스럽지도 않게 남자의 보호 본능을 건드릴 만한 모습만 골라 보여 줬다.수아는 천천히 일어나 유호에게 허리를 숙였다. “혹시 연락처를 여쭤봐도 될까요? 다음에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요.”유호는 눈썹만 살짝 들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유호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뜻을 알 수 없게 된 수아가 서둘러 덧붙였다.“다른 뜻은 없어요. 오늘 도와주신 게 정말 감사해서 그러는 거예요.”유호는 잔을 입가로 가져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자세는 느긋했다.수아는 그 모습에 넋을 놓고 한동안 바라봤다.유호가 물었다. “어떻게 고마움을 갚으려고?”듣기에 따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다. 눈앞의 남자의 얼굴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탓인지 수아는 흠칫 굳어지더니 뺨이 귀밑까지 붉어졌다.수아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이 원하시는 방식이면... 뭐든 괜찮아요.”유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올렸다.여자가 먼저 이렇게까지 달라붙으면 오히려 값이 떨어져 보이기 마련이었다.유호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뒤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나랑 한번 엮여 보고 싶어?” 수아는 멍하니 눈을 들었다가 유호의 눈에 담긴 비웃음을 그대로 마주했다.수아가 급히 부정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는...”하지만 끝까지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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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7화

수아는 앞에 선 남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일은 실패했는데 돈은 예정대로 나가게 생겨서 속이 쓰렸다.그래도 사전에 약속한 게 있으니, 이제 와서 아예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수아는 남자들에게 받은 계좌로 돈을 이체하며 말했다. “보냈어요.”남자들은 사실 하루 고용한 연기자들이었다. 한 사람이 입금 내역을 보고 의아해했다. “오수아 씨, 원래 얘기한 금액보다 많이 모자라는데요.”수아가 불평했다. “내가 말한 건 성공했을 때 금액이잖아요. 오늘 실패했는데 전부 줄 이유가 있어요? 연기를 더 잘했어야죠.”상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실패요? 저희가 맡은 역할은 다 했는데요. 일이 안 된 게 저희 때문입니까, 오수아 씨 때문입니까?”수아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돈은 그게 전부예요. 더는 못 줘요.”말을 끝내고 수아는 돌아서려고 했다.하지만 남자들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안 됩니다. 오늘 약속한 돈은 전부 주셔야 해요.”길이 막히자 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계속 이러면 신고할 거예요.”남자가 비웃었다. “신고하세요. 아까 그 남자도 아직 안에 있죠? 우리 같이 들어가서 누가 맞는지 물어봅시다. 마침 그 사람도 오수아 씨가 무슨 짓을 꾸몄는지 알게 될 테니까.”남자가 수아의 팔을 잡고 바 쪽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방금 쫓겨나듯 나온 것도 견디기 힘든데, 이 일까지 유호에게 알려진다면 수아에게는 그보다 더한 망신도 없었다.수아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쏘아붙였다. “알았어요! 400만 원 가지고 왜 이래요? 내 가방 하나보다도 싼 돈인데, 지금 보내면 되잖아요!”수아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다시 송금했다.남자들은 금액을 확인한 뒤, 수아를 비웃듯 한 번 보고는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뭘 봐! 고작 돈 몇 푼에 저러는 인간들이!”돈은 돈대로 쓰고 기분까지 엉망이 된 수아는 화가 나 발을 굴렀다.오늘은 수아의 인생에서 손꼽힐 만큼 최악의 날이었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이렇게 큰 망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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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8화

수아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해인의 말에 완전히 몰려서 더는 변명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눈앞의 해인은 겉보기에는 여리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런데 입을 열 때마다 날카롭게 핵심을 찔러서 수아가 숨을 곳조차 없게 만들었다.수아의 뺨은 터질 듯 붉어졌다. 뭐라도 해명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오히려 말을 더 보탤수록 자신만 우스워질 뿐이었다.이런 일은 설명하려 할수록 더 의심을 사기 마련이었다.수아는 일부러 핸드폰을 확인했다. “제가 부른 대리기사님이 곧 오세요. 강 대표님,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수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해인과 1초도 더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걸음이 빨랐다.해인은 멀어지는 수아의 등을 보며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 “오수아, 누가 시킨 거지?”수아의 몸이 굳어지면서 걸음도 저절로 멈췄다.잠시 동안 굳어 있는 반응만으로도 해인은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수아는 공장 안에서 눈에 띄는 젊은 여자였다. 압도적인 미인까지는 아니어도 단정하고 예쁜 편이었다.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자라 공장장 딸이라는 배경까지 있었으니, 호감을 보이는 남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히 눈도 높았을 가능성이 컸다.그런 수아가 고작 한 번 본 유호에게 갑자기 매달리고, 이미 결혼한 남자의 불륜 상대가 되는 것까지 감수하려 든다는 건 너무 이상했다.오는 길에 해인은 계속 그 점을 생각했다. 예상대로 수아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오기홍 같은 노련한 사람과 달랐다. 한 번 떠보자 반응이 바로 나왔다.해인이 수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상대가 뭘 약속했어? 내가 두 배로 줄게. 누가 시켰는지만 말해.”수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말했다. “대표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해인이 한 걸음 다가갔다. “정말 몰라? 그럼 진짜 내 남편이 마음에 들어서 내연녀라도 되고 싶었던 거야?”계속 모욕적인 말을 듣자 수아도 화가 났다.수아가 눈을 치켜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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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9화

수아는 해인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생각해 보면 오기홍처럼 노련한 사람도 해인에게서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해인은 몇 마디 거짓말로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수아는 끝까지 같은 주장을 했다. “정말 아버지가 시킨 거예요. 대표님은 모르시겠지만, 아버지는 밖에 사생아 아들도 있어요. 저희 부녀 사이가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좋지 않아요.”“저는 아버지한테 필요할 때 쓰는 도구일 뿐이에요. 게다가...”수아는 말을 멈추고 코끝을 살짝 훌쩍였다. 붉어진 코는 억울하고 서러운 사람처럼 보였다.“아버지 눈에는 제가 한 대표님 같은 분과 엮일 수만 있다면, 정식 관계가 아니어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겠죠.”수아의 눈물에는 거짓과 진심이 섞여 있었다. 전부 꾸민 말보다 이런 반쯤 진짜인 감정이 사람을 더 쉽게 흔들었다. 수아는 눈물이 고인 채 해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게 포장했다.“저는 대표님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에요. 대표님은 강씨 집안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셨잖아요. 저는...”해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운이 좋았다고?’아버지와 오빠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었다.그 뒤로 해인이 겪은 불안정한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걸 좋은 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해인은 잠깐 멈칫했지만 수아의 말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오기홍의 번호를 화면에 띄웠다.“오수아 씨의 말이 사실인지 내가 공장장님한테 전화해서 확인해 볼까?”“내가 보기엔 네가 다른 사람이랑 손잡고 이런 일을 벌인 걸 네 아버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자기 딸이 뒤에서 거짓말을 하면서, 모든 책임을 아버지한테 떠넘겼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해인의 말이 이어질수록 수아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해인이 정말 오기홍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려고 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한 거짓말이 바로 들통날 터였다.그때 해인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유호의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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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0화

뒤따라 나온 대현은 두 사람을 보고는 차마 못 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대현은 유호가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붙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대현이 해인에게 인사했다. “제수씨, 오셨습니까.”해인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네.”유호는 불만스럽게 대현을 봤다. “인사 끝났으면 이제 가. 네가 지금 얼마나 눈치 없는 사람인지 몰라?”대현이 입을 삐죽였다. “그래, 나 혼자라고 아주 대놓고 괴롭혀라.”유호가 말했다. “네가 승아 씨한테 진작에 고백했으면 벌써 혼자가 아니었지.”대현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승아 좋아하는 거 누가 말했어?”유호가 태연하게 폭로했다. “전에 네가 술 취해서 내 팔을 붙잡고 사람을 착각했잖아.” “‘승아 씨, 날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 주면 안 돼? 날 안 때리고 조금만 다정하게 해 주면 바로 고백할게.’ 네가 직접 그랬어.”유호가 중간쯤 말했을 때부터 대현은 입을 막으려고 달려들었다.‘진짜 얄미운 자식!’하지만 유호가 원래 키도 크고 팔도 길어서 대현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해인은 완전히 놀랐다. 대현과 승아 사이에 그런 감정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해인은 대현을 다시 바라봤다. 절친한 친구의 상대를 살피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눈길이 진지해졌다.일부러 허리를 곧게 편 대현이 웃으면서 물었다.“제수씨, 저랑 승아 씨...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해인이 놀란 채 물었다. “심 대표님... 승아를 좋아하세요? 언제부터요?”요즘 일이 너무 바빴고 오기홍 문제까지 겹쳐 정신이 없었다. 해인은 친한 친구인 승아를 만날 시간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대현이 말을 얼버무리자, 옆에 있던 유호가 바로 핵심을 찔렀다. “짝사랑이야. 아마 네 친구는 이 녀석이 자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를걸.”해인은 대현을 다시 살펴보면서 말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요.”해인이 본 대현은 늘 능글맞고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외모도 괜찮고 집안도 좋아, 이런 남자라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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