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apítulo 831 - Capítulo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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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1화

공장 직원들은 나이가 많아 오랜 신뢰 때문에 쉽게 흔들릴 수 있어도,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매일 사회 사건을 취재하는 사람들이었다. 별별 사람과 상황을 다 겪어 본 이들이었다.기자들도 해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낀 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주고받았다.그때 한숙미가 사람들 앞에서 또 다른 증거를 꺼냈다.“오기홍 손목에 찬 시계는 김수원이 준 연인 사이의 선물이야. 시계 뒷면에 두 사람 이름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이것까지 보고도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하면 나도 더 할 말이 없어.”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기홍의 손목으로 향했다.찔리는 게 있었는지 오기홍은 본능적으로 시계를 찬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아주 작은 행동이었지만 기자들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한숙미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앞으로 달려가 오기홍의 손목을 붙잡고 시계를 벗기려고 했다.오기홍은 당연히 버텼다. 손을 빼내려고 하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당신 이러지 마. 이 시계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야. 망가지면 안 돼.”그 말을 듣자 한숙미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오기홍은 역시 겉만 번듯한 위선자였다. 거짓말이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이제는 이런 거짓말까지 지어내다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었다면 무덤에서라도 일어나 따지고 싶을 만한 이야기였다.한숙미가 차갑게 비웃었다. “우리 시아버님 돌아가신 지 거의 20년 됐잖아. 20년 된 시계치고는 참 새것 같네.”한 사람은 시계를 뺏으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손목을 등 뒤로 숨기며 버텼다. 실랑이가 거칠어지던 끝에 줄이 끊어지면서 시계가 손목에서 떨어졌다.한숙미가 재빨리 시계를 낚아채서 손안에 움켜쥐었다.시계를 뒤집어 뒷면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했다.그때 오기홍이 달려들어 한숙미를 거칠게 밀치고 시계를 다시 빼앗았다.밀려난 한숙미는 중심을 잃고 휘청이다 그대로 벽에 세게 부딪혔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먼저 벽에 닿았다. 대비할 틈도 없었던 탓에 강한 통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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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그제야 오기홍도 불륜 증거가 들킬 뻔했다는 충격에서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오기홍은 다시 걱정 많은 남편의 얼굴로 돌아갔다.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숙미를 바라보는 모습은 구급차를 따라 병원에 갈 생각인 듯했다.“당신 괜찮아? 미안해. 내가 아까 너무 세게 밀었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당신이 망가뜨릴까 봐 겁나서 그랬어. 그래서...”오기홍은 구급차에 올라타며 구급대원들에게 재촉했다. “제가 남편이고 보호자입니다! 빨리 출발해 주세요! 아내가 많이 다친 것 같아요. 너무 걱정이 됩니다!”그 모습을 차갑게 지켜보던 해인은 사람들 뒤쪽 어두운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체격이 큰 경호원 한 명이 해인의 눈짓을 알아보고 앞으로 나왔다.유호에게 지원받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군 복무를 마친 뒤 경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키가 적어도 187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앞에 서자, 그 자체로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다.경호원은 빠르게 구급차 옆으로 다가가 손을 뻗더니 오기홍을 그대로 끌어내렸다.처음 보는 남자였고 기자의 옷차림도 아니었다. 당황한 오기홍이 물었다. “당신 누구야? 지금 뭐 하는 거야?”경호원은 태연하게 답했다. “지나가다 못 볼 꼴을 봐서 정의 구현 좀 하려고요.”지금 오기홍까지 병원에 따라가게 두면 한숙미의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다.경호원이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오기홍이 다시 손목에 채우려던 시계가 너무도 쉽게 빠져나왔다.경호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시계를 던졌다. 뒤집힌 시계 뒷면의 글자가 사람들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GD&SW.수원&기홍.시계에 새겨진 글자와 조금 전 한숙미가 한 말을 연결하자 진실은 너무도 선명했다.사람들 사이가 곧바로 술렁이기 시작했다.“세상에, 한숙미 말이 진짜였어! 오기홍 공장장이 정말 김수원이랑 바람을 피운 거야! 저 시계가 증거잖아. 아까 왜 그렇게 숨기려고 했는지 알겠네!”“기가 막히네. 오기홍이 인간이야? 예전에 하종민 공장장이랑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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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오기홍은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벽도 균열이 생기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오기홍은 그동안 직원들이 하종민에게 품었던 신뢰를 등에 업고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런데 그 모든 기반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오기홍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신뢰는 한꺼번에 무너졌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하종민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격분한 직원들이 오기홍을 겹겹이 둘러쌌다.오기홍은 얼굴이 굳어진 채 뭔가 해명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따져 묻는 데다 명확한 증거까지 나온 상태라 어떤 말로도 빠져나가기 어려웠다.소란이 이어지는 사이에 한숙미를 태운 구급차는 공장을 빠져나갔다.해인은 한숙미가 안전하게 병원까지 갈 수 있도록 자기 사람 한 명을 일부러 구급차에 동행하도록 했다.오기홍은 남은 직원들에게 붙잡힌 채 계속 해명을 요구받았다.어느새 불륜의 또 다른 당사자인 김수원까지 사람들이 데려왔다.아침 일찍 한숙미가 공장에서 오기홍과 자신의 일을 폭로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김수원은 계속 문을 잠그고 집 안에 없는 척 숨어 있었다.하지만 흥분한 직원들이 아예 김수원의 집까지 찾아가서 문을 강제로 열고 끌어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김수원은 이미 사람들에게 불륜녀라는 욕을 듣고 있었다. 끌려오는 동안 머리는 흐트러지고 옷도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화를 참지 못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욕했다. “너희 둘이 사람들 몰래 공장 안에서 불륜을 저질러 놓고 하종민 공장장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맞아! 어떻게 이런 짓을 해? 너희가 이러고도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아?”“어쩐지 내가 몇 번이나 오기홍이 김수원 집에서 나오는 걸 봤어.” “그때는 진짜 모자를 챙겨 주러 다니는 줄 알고 인사까지 했는데,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퉤! 뻔뻔하기도 하지!”“...”거센 욕설이 쏟아지자 김수원의 표정도 싸늘하게 굳어졌다.김수원이 억울하다는 듯 받아쳤다. “그래서 뭐? 하종민이 죽은 지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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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오후가 되어 학교 수업이 끝날 무렵, 17, 18살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갔다.흥분한 사람들이 내뱉는 욕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내용이 다 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남학생은 공장 바깥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 사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눈앞의 광경을 확인한 아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욕을 먹고 있는 여자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 김수원이었다.“뻔뻔해!”“사생아라는 사실까지 속였잖아!”“...”남학생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린 듯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곧바로 몸을 돌려 전력으로 달려갔다.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밀리던 김수원이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 아들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얼굴이 종이처럼 하얗게 질리면서 눈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아들아! 잠깐만! 엄마 말 좀 들어 봐! 비켜, 다들 비켜!”김수원은 멀어지는 아들의 등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하지만 주변의 고함에 목소리는 묻혔고, 사람들 한가운데 갇힌 채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수많은 기자와 카메라가 오기홍과 김수원의 얼굴을 향했다. 두 사람은 이제 모든 이의 비난 한가운데 서 있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해인은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자업자득이야.’공장의 실질적인 권한을 되찾으려던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과 사건까지 얽히게 될 줄은 몰랐다.해인이 공장 밖으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해인을 알아보고 급히 따라왔다.“대표님, 오기홍은 공장장을 맡을 사람이 아닙니다. 자리에서 잘라 주세요! 저런 사람 밑에서는 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맞습니다, 대표님. 저런 사람이 공장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습니까? 공장장 자리에서만 잘라 주시면 앞으로 대표님 결정은 다 따르겠습니다.”눈앞의 익숙한 얼굴들을 보면서, 해인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예전에는 오기홍을 따라 해인과 가장 심하게 맞서고, 앞장서서 해인의 결정을 의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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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차로 30 분쯤 이동한 뒤 고급 회원제 클럽 앞에 도착했다.회원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해인은 유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오가는 직원들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일제히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그런데 만 제곱미터가 넘는 넓은 클럽 안에는 해인과 유호 말고 다른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해인은 결국 옆에 있는 유호를 돌아봤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여기 전체를 빌린 거야?”유호는 해인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아낌없이 칭찬했다.“역시 내 여자는 똑똑하다니까.”해인이 물었다. “이렇게 큰 곳을 통째로 빌리려면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오늘 무슨 특별한 날이야? 당신 생일? 아니면 내 생일?”해인은 속으로 날짜를 계산해 봤지만 어느 쪽도 아니었다.‘그럼 대체 뭐지...’유호가 웃었다. “오늘은 무슨 기념일도 아니야. 그냥 내가 자기랑 단둘이 데이트하면서 밥 먹고 싶었던 날이지.” “여기는 대현 집안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그 녀석이 할인도 꽤 해 줬어.”해인은 유호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긴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는 그대로 놀라서 멈춰 섰다.유호에게 이렇게 낭만적인 면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꼭대기 층 야외 테라스에는 싱싱한 꽃이 가득했다. 멀리서부터 은은한 꽃향기가 풍겼고, 겹겹이 배치된 꽃과 풍성한 초록 잎이 공간 전체를 동화 속 정원처럼 꾸며 놓았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만큼 아름다웠다.해인이 안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가자 밝은 조명이 두 사람 위로 비쳤다.더 놀라운 건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대현과 승아도 와 있었고, 권영자는 두 사람의 아들 이안을 품에 안고 있었다. 어머니 도수희도 있었고, 한원랑까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해인이 놀라 유호를 바라봤다. “당신이 이걸 다 준비한 거야?”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이곳의 준비는 큰 드론 연출부터 꽃 한 송이를 어느 자리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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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해인은 고개를 돌려 유호의 얼굴을 봤다. “우리 한 대표가 이런 거 기획하는 재능도 있네. 나중에 아예 직업 바꿔도 되겠어.”유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해. 자기한테 보여 주려고 하니까 이렇게까지 신경 쓴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귀찮아서 안 해. 자기한테 쓰는 마음은 돈으로도 못 바꿔.”말을 마친 유호는 어디선가 장미 꽃다발을 꺼내더니 해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우리 결혼식 하자. 자기한테 제대로 된 결혼식을 꼭 해 주고 싶었어.”해인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유호에게 다시 청혼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사실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는 걸 봤을 때 벌써 눈치를 챘어야 했다.해인과 유호는 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였지만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 이제 아들 이안도 벌써 생후 반년이 됐다. 해인은 이대로 유호와 살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호는 마음속으로 계속 결혼식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아무런 감동도 없을 수는 없었다. 해인은 유호가 얼마나 진지하게 준비했는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호 정도 위치라면 한마디만 해도 대신 준비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을 텐데, 굳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자신이 직접 청혼 행사를 설계했다.진심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오직 자신에게 필요한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 주려고 이 모든 걸 준비했다는 사실에 해인의 마음은 복잡하게 흔들렸다.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유호를 바라보면서도 해인은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곁에 있던 가족과 친구들이 먼저 참지 못했다.승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부러운 듯 외쳤다. “해인아, 빨리 받아 줘! 네가 계속 가만히 있으면, 내가 대신 받아 주고 싶을 정도야!”그 말을 들은 대현이 놀라 앞으로 나와 승아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왜 남의 청혼에 끼어들어? 이런 건 대신 대답하는 거 아니야.”승아가 입술을 삐죽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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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두 모였다. 머리 위에서는 드론이 계속 날면서 수많은 빛을 꽃처럼 펼쳐 보였다.모두의 기대 속에서, 해인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는 유호를 바라봤다.남자의 깊은 눈동자를 가만히 마주했다.유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고, 눈빛에는 경건하다고 느껴질 만큼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해인은 가슴 안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예전에 한 번 유호와 특별한 날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해인은 별생각 없이, 마음을 어떻게 전하는지도 중요하다고 했었다. 유호는 그 말을 조용히 기억해 뒀다가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다.해인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그에 맞는 기억을 만들어 주려 했다. 이미 혼인신고를 한 지 오래고 아들까지 태어났는데도 유호는 직접 이 청혼을 준비했다.해인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유호가 건넨 꽃다발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유호는 곧바로 일어나 감정을 참지 못한 채 해인을 품에 끌어안았다. 두 팔에 힘을 주어 단단히 안았다.승아가 신나게 외쳤다. “뽀뽀해! 뽀뽀!”기분이 좋은 유호는 해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유호와 안고 있던 해인은 옷에 밴 은은한 꽃향기를 느끼며 살짝 물었다. “그래서 당신, 대체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던 거야?”그 질문은 아직까지도 해인에게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유호의 깊은 눈동자에 별빛 같은 웃음이 어렸다. “아주 오래전.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이번에도 정확한 시점을 말해 주지는 않았다.해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10대 때 오토바이 대회 기억나? 내가 응원하러 가서 고태겸 뒤만 따라다녔던 때.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때 우리가 처음 제대로 마주쳤던 것 같은데. 그때야?”유호는 해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에 살짝 웃음이 담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닌가?’해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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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해인이 피곤한 건 사실이었다. 회사 일도 이제 막 제대로 맡기 시작한 참이라,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몰려 있었다.오기홍은 오늘에서야 공장장 자리에서 해임됐다. 공장 직원들이 불안해하지 않으려면 새 공장장을 최대한 빨리 정해야 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시끄러운 때, 누구를 후임으로 세워야 할지 해인에게도 당장 떠오르는 적임자가 없었다. 결국 당분간은 중요한 일을 자신이 직접 챙길 수밖에 없었다.유호는 해인을 품에 안고 다리를 부드럽게 주물러 주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면 당분간 결혼식 준비는 자기가 안 해도 돼. 예식 당일 시간만 비워 둬. 자기가 일은 마음껏 해.”“나머지는 내가 준비해서 자기는 그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예쁜 신부가 되게 해 줄게.”해인이 망설이며 물었다. “정말 그래도 돼? 그래도...”‘그러면 내가 결혼식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처음 특별한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건 해인이었고, 그 말을 기억한 유호가 다시 청혼까지 해 준 것이었다.‘세세한 부분까지 정말 내가 확인 안 해도 괜찮을까?’유호는 해인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 웃으면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다정함이 가득했다.“여보, 자기가 그런 형식을 원한다고 해서 내가 청혼한 게 아니야. 내가 자기한테 결혼식을 해 주고 싶었고, 우리 둘만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고 싶어서 청혼한 거야.”“그날 자기가 받아줘서 오히려 내가 오래 품고 있던 바람을 이뤄 준 거지.”“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해. 결혼식은 나한테 맡겨. 이게 나한테 짐이 되는 게 아니라 행복이야.”“우리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좋아. 내 사람은 마음 놓고 더 멀리, 더 높이 가. 자기가 더 높이 날고 싶다면 내가 뒤에서 가장 든든하게 받쳐 줄게.”유호의 말을 듣던 해인은 결국 몸을 일으켜 가볍게 품에 기대면서, 두 팔로 허리를 감쌌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줘?”유호가 웃었다. “자기는 내 아내고, 내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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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다음 날 아침.해인은 공장 인사 문제를 정리한 뒤 서류를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의사는 한숙미의 뒤통수 상처가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나이가 있어 회복이 젊은 사람보다 느린 데다가 원래 지병도 있어서, 현재 검사상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이틀은 더 입원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한숙미의 부탁을 받고 다쳤다는 사실을 한숙미의 아버지에게는 숨기기로 했다.한정동은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였고 바깥일에도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한숙미는 괜히 아버지에게 복잡한 사정을 알려 걱정만 늘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해인은 변호사와 함께 병원에 왔다. 한숙미가 오기홍과 이혼하기로 최종 결심했기 때문이다.해인은 약속대로 한숙미가 재산분할에서 최대한 정당한 몫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구체적인 조건은 변호사가 한숙미와 직접 상의해야 했다.그런데 해인과 변호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미리 병원에 배치해서 한숙미를 지키게 한 경호원의 모습이 보였다.멀리서부터 병실 쪽의 시끄러운 말다툼이 들려왔다.해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에요?”경호원이 대답했다. “그 여자가 왔습니다.”해인이 조금 더 가까이 가자,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기 시작했다.경호원이 말한 ‘그 여자’는 김수원이었다.김수원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병실 안에 서서 침대에 누운 한숙미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 일 때문에 내 아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한숙미, 너 절대 가만 안 둬!”공장에서 김수원과 오기홍의 관계가 폭로된 날 이후 김수원의 아들 하지훈은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당연히 지훈도 이미 그 추문을 알게 된 듯했다.김수원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아들 하나뿐이었다. 조금만 잘못돼도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지나칠 정도로 지훈을 감싸면서 키웠다.그런 만큼 이번 일로 모자 사이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병원에 있는 며칠 동안 한숙미는 마음을 가라앉혔고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오기홍에게 밀려 머리를 다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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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한숙미는 수아가 공장장 딸이라는 특권을 잃게 된 일을 엄마 탓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한숙미는 똑같이 행동할 생각이었다.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결혼에서 한숙미에게 남은 건 상처와 허탈함뿐이었다. 수십 년 동안 속을 삭이고 견디면서 살아왔다.애초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한숙미가 아니었다.한숙미가 차갑게 말했다. “수아는 지금 화가 나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뿐이야. 괜히 우리 모녀 사이 이간질할 생각 하지 마. 김수원, 너나 네 걱정부터 해.”김수원은 한숙미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예전에는 자기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 하던 한숙미가 이제는 이렇게 정면으로 받아칠 줄 몰랐다.그때 김수원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몇 마디 듣던 김수원의 표정이 확 변했다. “뭐라고? 애가 없어졌다고?”김수원은 통화하면서 급히 병실을 나가려고 했다. 몸을 돌리자 바로 뒤쪽에 서 있던 해인과 뜻밖에 마주쳤다.김수원은 해인과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지만, 최근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해인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오기홍에게서 해인의 이야기도 들었고, 새로 경영에 나선 젊은 대표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평온하던 생활은 완전히 무너졌다. 예전에는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운 사람이라며 모두가 챙겨 줬지만, 이제는 불륜녀라고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가장 아끼던 친아들마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멀어졌다.김수원이 비꼬는 눈으로 해인을 바라봤다. “강 대표님, 정말 대단하시네요.”해인은 아무 악의도 없는 사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저는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다만 아까 하신 말씀 중 하나는 틀렸네요. 한숙미 여사님이 평생 같이 산 남편에게 너무 모질게 했다고요?”“당신도 만만치 않으신 것 같은데요. 하종민 공장장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오랫동안 그분의 아들인 것처럼 모두를 속이셨잖아요.”“매년 성묘하러 갈 때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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