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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윤유나는 이 일에 있어서 이해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경계심이 훨씬 더 낮았다.연속 이틀째 윤유나에 관한 소식만 쉴 새 없이 접했는데 대다수가 정지안이 제공한 것이었다.그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고 한 손으로는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 여자 요즘 매일 산부인과 드나들더라.”“됐어요, 그만.”이해리가 그를 툭 밀쳤다.“종일 우리 집에 찾아오는 건 제쳐두고 대체 윤유나에 관한 소식을 왜 이렇게까지 잘 아는 거예요?”그녀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정지안을 쏘아보았다.“설마 저랑 도원이가 이혼한다고 했을 때부터 계속 그 둘을 조사하고 있었던 건 아니죠?”정지안이 눈을 깜빡였다.“넌 그렇게 생각해?”“뒷조사 멈춰요, 지안 씨. 만에 하나 정도원이 알게 되면 또 지안 씨 탓으로 돌릴지도 몰라요.”이해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녀와 정도원의 이혼은 기정사실이다. 지금은 다만 윤유나의 임신 사실을 이용해 정씨 가문으로부터 보상을 받아내고 싶을 뿐이었다.애초에 정도원과 결혼할 때 그녀가 마련한 혼수는 적지 않았다.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남긴 재산뿐만 아니라 회사 지분까지 챙겨왔다. 지금 이 모든 것이 정도원 산하 회사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생각할수록 이해리는 역겨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윤유나가 임신했다니 사실 저는...”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병원에서 했던 일이 떠올랐다.그것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상황이었다. 가짜 임신을 한 남편 애인을 도와 뒷수습을 해주는 날이 올 줄이야. 정말이지 꿈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이해리가 말을 잇지 못하자 정지안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로 감지했다.“실은 윤유나가 임신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사실 정지안도 지난 이틀 동안 조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해리가 전혀 모를 거라 판단해 지금까지 그 주제를 피해왔다.이해리가 눈을 깜빡였다.“설마 지안 씨도 알고 있었어요?”“당연한 거 아니야. 방금 너도 말했다시피 나 요즘 그 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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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정지안은 지금 놀랍게도 동생의 아내를 넘보고 있다.이해리는 망설임 없이 되물었다.“우리 둘이 그날 밤 함께 자기까지 했는데 지안 씨는 지금 고작 그런 문제나 신경 쓰고 있는 거예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정지안의 표정이 순간 부자연스러워졌다.이해리는 금세 깨달았다.“지안 씨... 그날 일은 저 속인 거죠?”사실 두 사람은 그날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꼼수가 들통나버린 정지안도 더는 숨기려 들지 않았다.“난 그날 우리가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한 적 없는데. 네가 취한 건 맞아. 널 집까지 데려온 것도 사실이고. 게다가 나 진짜 정성껏 돌봐줬거든.”이해리는 별안간 그날 자신이 옷도 갈아입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럼 제 옷은?”“여비서 불러서 새 옷 가져다주고 온 김에 잠옷까지 갈아입혀 주라고 했어. 네가 한밤중에 갑자기 깨서 토했고.”남자는 매우 간결하게 대답했다.“알았으니까 그만해요...”이해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주량이 볼품없는 건 팩트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한 잔에 쓰러질 리가 있을까.“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윤유나가 거짓 임신까지 지어내고 있지만 저는 그걸 끝까지 커버해줘야 해요. 적어도 도원이랑 순조롭게 이혼할 때까진 윤유나가 임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 거예요.”정지안이 어쩌다 반대표를 들지 않았다.“그렇게까지 도원이랑 이혼하고 싶어?”“당연하죠.”이해리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했다.“그리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도원이랑 정식으로 이혼 절차 밟기 전까진 에드워드 교수님 프로젝트에 합류할 생각 없어요.”“아, 그것 때문이야? 난 또... 단순히 내가 추천한 게 싫어서 그런 줄 알았지.”정지안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한편 이해리는 고개를 숙이고 서류들을 정리할 뿐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그 때문에 정지안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더 거침없어졌다.그녀에게 명확한 의도를 밝혀서인지 이제는 뭘 더 꾸미는 법도 없었다.마침내 정지안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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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윤유나가 대뜸 말을 멈췄다.기묘한 침묵 속에서 이해리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지난 이틀 동안 그녀는 윤유나의 뒷수습을 돕느라 얼마나 고생한 지 모른다. 윤유나가 위조한 검사 결과지를 얻고 싶어 의사를 매수했지만 결국 이해리가 다시 사람을 보내 더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했다.그렇지 않고서야 심여진의 성격상 윤유나의 밑바닥을 진작 알아냈겠지.그것도 모른 채 윤유나는 그녀를 자극해서 먼저 고자질하게끔 만들다니.이해리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유나 씨,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죠? 왜 내가 도원이 찾아가서 고자질할 거라 확신하고 있어요?”“해리 씨도 도원 씨 곁을 떠나고 싶지 않으니까요!”순간 이해리의 말투가 앙칼지게 변했다.“착각하지 말아요! 정도원은 그저 내가 버린 쓰레기일 뿐이에요. 누가 다시 주워가겠다는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이죠.”이 한 마디에 윤유나는 할 말을 잃었다.요즘 그녀는 줄곧 마음이 불안했다.병원 갔을 때 CCTV를 확인해보니 이해리도 마침 그 병원에 출입했었다.거짓 임신이 정도원에게 알려진다면 윤유나의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 터였다.그녀는 마지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어쨌거나 제가 해리 씨 찾아온 건 비밀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에 했던 말들 다 진짜예요. 임신도 했겠다, 제발 우리 함께할 수 있게 도원 씨 놓아주세요.”이해리는 더 이상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쏘아붙였다.“그럼 저도 정중하게 말할게요, 유나 씨. 저는 지금 몹시 이혼하고 싶은데 그쪽 시어머니랑 남편께서 반대하는 상황이에요. 저한테 연락할 바에야 일찌감치 그 집안 사람들 찾아가서 정신 교육 시키는 게 나을 것 같네요.”말을 마친 이해리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멍청이도 이런 멍청이는 없을 터, 아직도 누가 본인이랑 같은 편인지 구분을 못 하다니!하지만 뭐, 윤유나가 조금이라도 똑똑했다면 정도원이라는 시궁창에 빠질 리가 있을까.머리를 쥐어 짜낸 모든 계략을 정도원을 상대하는 데만 썼겠지.전화를 끊은 후, 이해리는 에드워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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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결심을 굳힌 이해리는 몇 걸음 더 물러서며 두 손으로 정도원을 밀쳐냈다.“일단 이것 좀 놔. 지금 이런 태도로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거야?”“자꾸 날 자극하지 마라!”둘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정도원이 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이 고스란히 들렸다.이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지금 네 정신 상태로는 단둘이 있는 거 도저히 안 되겠다.”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정도원의 안색이 확 돌변했다.이해리의 손을 힘껏 잡고 있다가 갑자기 그녀의 힘을 따라 그대로 밀어내는 이 남자!안 그래도 관성 때문에 뒤로 물러났는데 정도원이 밀치기까지 하니 그녀는 결국 중심을 잃고 몸이 휘청거렸다.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었고 주변에 잡힐 만한 물건도 없었다.‘망했다.’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이것뿐, 이대로 넘어진다면 과연 어느 부위부터 보호해야 할까?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 닥쳐올 고통과 함께 넘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전부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녀의 허리 뒤쪽이 든든하고 힘 있는 두 손에 의해 단단히 지탱되었다.하지만 관성 때문에 이해리는 여전히 몸이 뒤로 기울었다.고개를 들자 정지안의 얼굴과 마주쳐버렸다.그녀는 남자의 품에 안기다시피 했다.정지안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등을 받쳐주었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선을 넘지 않았다.“괜찮아?”“아... 네...”이해리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조금 전의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터라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정도원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분노에 찬 얼굴로 정도원을 노려보았다.“잘 얘기해보자고 할 땐 언제고 고작 이렇게밖에 못해?”정지안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방금 그렇게 넘어지면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정도원은 과연 무슨 짓을 하려던 걸까?다만 눈앞의 광경을 본 정도원은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정지안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가 곧장 물었다.“형이 여긴 웬일이야?”“거래처 미팅하러 왔어.”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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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정도원은 갑자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야, 이해리! 나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 여기서 유나 얘기가 왜 나와? 우리 형이랑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두 사람 설마 그렇고 그런 사이야?”이해리는 한심하고 기가 막혀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잠시 침묵한 후, 그녀의 머릿속에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정도원은 친형 정지안을 매우 두려워한다.만약 그녀가 정말 정지안과 사귄다 해도 정도원이 뭘 어쩌겠는가?정지안은 옆에 서서 줄곧 아무 말이 없었다.이해리의 태도를 살피는 이 남자, 맹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 따름이다.하지만 놀랍게도 이해리가 선뜻 그의 팔짱을 끼고 정도원을 향해 싱긋 웃었다.“내가 지안 씨랑 만난다면 뭘 어쩔 건데?”‘역시!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어.’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정도원의 얼굴엔 놀라움이 더욱 짙어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뭐, 뭐라고? 너 진짜 우리 형이랑...”이해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너 바람피운 거 확인한 후로 어떻게 이 관계를 끝낼지 생각하고 있었어. 아주버님은 너보다 듬직하고 모든 면에서 너보다 낫잖아. 그러니 빨리 이혼 좀 하자. 우리 각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지 언제까지 질질 끌래? 아, 그리고 너희 엄마가 걱정하는 주가 문제는... 나도 어쨌거나 정씨 가문의 일원이니 옆에서 좀 도와줄게.”모든 걸 고려한 듯한 그녀의 대답에 정도원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이해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우리 형이랑... 두 사람 어디까지 진도 나갔어?”이해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정지안의 팔짱을 끼고 떠나가려 했다.정도원은 계속 쫓아와 막으려 했지만, 형과 눈이 마주치자 기세가 확 꺾였다.차에 탄 이해리는 편한 자리에 기대앉아 창밖의 풍경만 바라볼 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지안도 핸들을 잡고 말없이 운전만 했다.차는 강변으로 한참 달려 결국 다리 위에 멈춰 섰다.“설명해 봐.”남자의 말에 이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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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맞아.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 내가 뭘 원하는지.”말하는 동안, 정지안의 시선은 이해리의 눈에서 아래로 떨어져 그녀의 빨간 입술에 머물렀다.이해리는 단번에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원하는 게 나였어?’물론 안 될 것도 없지만 단순히 정도원과 이혼하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한다면 그녀는 스스로를 경멸하게 될지도 모른다.술 취한 그 밤에도 둘 사이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물며 지금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이해리의 마음속에 치열한 갈등이 일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하며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원하는 게 뭐가 됐든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와서 이야기해요.”정지안이 순순히 응할 거라 여겼지만 그의 눈빛을 마주하자 이해리는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거렸다.이 남자는 그녀의 예상대로 은근한 기대감에 젖어있긴커녕 눈가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원하던 결말이 아니었나 보다.이해리가 눈 딱 감고 용기 내서 물었다.“아니면 뭐... 다른 요구 사항이라도 있으세요? 차라리 지안 씨가 직접 말해보는 건 어때요?”혼자 한참이나 내적 갈등을 겪고 나서야 마음을 굳힌 건데 이제 와서 정지안이 튕길 줄이야.별안간 이 남자가 손목을 확 낚아챘다.“싫은 게 아니라...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서.”이해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멍하니 손만 바라보았다.이 남자는 손이 너무 예뻤다.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남성미가 뿜뿜 차 넘쳤다.그녀가 줄곧 말이 없으니 정지안은 괜히 삐진 줄 알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지금은 아니니까 일단 나한테 빚진 거로 해.”이해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왜? 화났어?”남자가 가볍게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조롱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소중히 다루는 손짓이었다.이해리가 그의 손을 툭 밀어냈다.“뭘 이런 거로 화내겠어요? 그냥 좀 의외라서요.”정지안이 거절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지금은 빚을 진 거니까 나중에라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그녀의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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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정도원의 말을 들은 정지안은 얼굴에 띤 미소가 싹 사라졌다.“뭐가?”침대에 누운 심여진이 정도원에게 말했다.“네 형은 평소에 일하느라 바쁘니 조금 늦게 올 수도 있지...”정지안과 이해리에 관한 이야기는 굳이 꺼내고 싶지 않다는 눈치였다.심여진은 원래 두 아들 앞에서 이 일을 자연스럽게 넘기려 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정지안은 똑똑한 아이니 자신이 슬쩍 언질만 주워주면 분명 이해리와 함께하지 않을 거로 여겼다.생각은 그렇게 해도 심여진은 이 모든 게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난번 정지안이 집에 와서 이해리를 곤경에서 구해주고 또 그녀를 데리고 떠난 것까지 생각하면 엄마로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한편 그녀의 말에 정도원은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가족들이 항상 정지안만 편드는 걸 알아서인지 이번에는 약점을 잡았다는 식으로 더욱 물고 늘어지려 했다.“동생 와이프나 넘보는 게 대체 무슨 경우지? 그러고도 형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엄마도 오늘 마침 조사하고 있었고 바로 이 일 때문에 화나서 입원하신 거잖아요! 다 모인 김에 이번 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요, 우리.”정도원의 말을 들으며 침대에 누운 심여진은 끊임없이 기침만 해댔다.그는 서둘러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고 물 한 잔 따라주었다.심여진은 겨우 기침을 멈추고 간절한 눈빛으로 정지안을 바라보았다.“지안아, 이리 오렴.”정지안은 말없이 앞으로 다가가 정도원과 좌우로 나뉘어 침대 옆에 섰다.얼굴에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만 유지했다.그 모습을 본 심여진은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도원이가 좀 충동적으로 굴었어. 돌아와서 다짜고짜 너랑 이해리가 사귄다고 하는데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지안이 넌 항상 착하고 분수를 아는 현명한 아이인데 친동생 아내랑 그럴 순 없지...”이것은 심여진이 늘 쓰는 화법이다.상대방에게 과도한 칭찬을 하여 윤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아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수법.아쉽게도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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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정도원의 연이은 질문이 칼날처럼 정지안을 향해 날아들었다.이것은 단지 분풀이가 아니었다. 정도원은 지금 이해리의 약점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났다.그 속내를 바로 알아챈 정지안은 차갑게 웃고는 심여진을 바라보며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이 모든 걸 나랑 해리의 잘못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네 오산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내 책임이거든. 지난번에 어머니가 너랑 회사를 위해 해리를 집에 감금했을 때도 내가 가서 구해줬지. 해리가 어떤 위험에 처하든 난 항상 제때 나타날 수 있어. 이 일도 내가 먼저 유혹한 거야. 해리는 아무 잘못 없어.”정지안이 모든 책임을 떠안으려 하자 정도원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대체 왜 이래, 형! 어떻게든 해리랑 나랑 순조롭게 이혼시키려고 형 혼자 모든 책임 떠안는 거야? 그래봤자 걔 바람피운 사실은 커버 못 해! 고장난명이란 말 못 들어봤어?”정지안이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도원아, 가족으로서 이번 일에 대해 얼마든지 잘 설명해 줄 수 있어. 근데 이미 다 내 잘못이라고 했잖아. 대체 왜 그렇게 해리를 물고 늘어지는 거야?”이해리를 무조건 지키려는 형의 태도가 정도원의 마음속 불만을 더욱 키웠다.주먹을 불끈 쥐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정도원은 꼭지가 돌아서 그대로 정지안에게 달려들었다.있는 힘껏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는데 정지안의 반응이 더 빨랐다.그는 잽싸게 주먹을 막아서고 분노에 찬 눈길로 정도원을 노려봤다.“감히 형한테 손을 대?”“내 와이프랑 바람피울 땐 형이란 걸 다 잊었나 봐?”정도원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자 심여진이 두 아들을 말리려 나섰다.“그만 좀 해. 형제끼리 왜 이러는 거니?”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전에 좀 더 노력해서 정지안에게 괜찮은 집안 따님을 소개해주는 건데,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이해리와 엮일 리도 없을 테니까.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정지안은 어릴 때부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엄마로서 아무리 많은 맞선 상대를 찾아줘도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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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그때 갑자기 울린 휴대폰 벨 소리가 병실 안의 괴이한 분위기를 깨뜨렸다.정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도원을 놓아주고 휴대폰을 꺼냈다.화면을 힐끗 보니 비서한테 걸려온 전화였다.그는 침대에 누운 심여진과 옆에 있는 정도원을 향해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볼일 있어서 먼저 갈게요.”이어서 문 쪽으로 향하며 한마디 덧붙였다.“오늘 일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말길 바라. 설명은 이미 충분히 했어.”병실 문이 닫히자 정도원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병상에 누운 심여진은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너희 둘은 친형제인데 어쩌다 사이가 틀어진 거야. 이게 다 해리 탓이야. 그년 절대 가만 안 둬!”“엄마, 제발 좀 일을 키우지 마세요. 형 말 못 들었어요? 다 본인 책임이라잖아요.”심여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게 왜 네 형 책임이야! 지안이는 어릴 때부터 늘 훌륭한 아이였어. 네가 그걸 몰라? 연애에 전혀 관심 없던 애가 왜 갑자기 이해리 앞에서 확 달라진 건데? 애초에 너도 그년 쫓아다닐 때 얼마나 힘들었니? 여우 같은 년! 누가 알아? 그때 너한테 쓴 수작을 지금 지안이한테 똑같이 써서 일부러 여지 줄지. 지안이가 자신한테 호감이 생겼다 싶으면 바로 너랑 이혼할 속셈이었을 거야!”심여진은 두 아들이 사이가 틀어지는 꼴을 절대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서 정도원이 윤유나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분명 이해리에게 상처가 되는 걸 알면서 일부러 숨겼다.그녀가 원하는 건 두 아들 모두 명예로운 평판을 얻는 것이었다.정도원이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어쨌거나 형은 이제 무조건 이해리 편에 서서 모든 책임을 본인이 떠안겠다잖아요! 이거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요?”심여진도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그 입 못 닥쳐? 형한테 그게 무슨 막말이야? 지안이랑 해리가 어떻게 될지 아직 정해진 건 없어! 내가 아는 건 단 하나야! 이해리는 지금 너랑 이혼도 안 했다는 거! 두 사람 절대 이혼하면 안 돼. 지안이가 이번 일을 넘어갈 때까지 버텨! 너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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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이내 해외 번호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전화를 끊은 후, 정도원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바로 그때, 비서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전에 분부하신 내용 이미 다 조사했습니다.”“이해리 지금 어디 살아?”정도원이 다짜고짜 묻자 비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푸르지오 아파트에서 살고 계십니다. 그곳은 보안이 아주 철저한데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표님 형님분께서 그 거처를 마련해주신 것 같습니다...”또 정지안이라니.이래도 아무 사이 아니라고?이해리는 요 며칠간 행적이 묘연했다. 정도원은 그녀를 잡으러 가고 싶어도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푸르지오’라는 네 글자를 되뇌며 그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드디어 어디 사는지 알아냈네.”“가서 준비해. 내가 가진 현금 일부를 신축 아파트 개발에 투자할 거야. 내가 직접 시행을 맡을 거라고.”보안이 철저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시행사 대표라는 타이틀로 나중에 그곳에 집 한 채 마련해두면 이해리까지 전부 다 손안에 넣을 터였다.다음 날 아침.이해리는 일어나서 씻고 정리를 마친 뒤 에드워드를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그와 의논하기로 약속했으니까.사실 이해리는 아직 프로젝트에 참여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매일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게 너무 싫었을 뿐이다.에드워드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이혼을 결심하고 해외로 나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가장 먼저 소식을 알렸던 사람이 지도교수였다. 교수님은 제일 먼저 그녀를 격려해주었다.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교수님을 도울 수만 있다면 그녀에겐 너무 좋은 일이었다.프로젝트 세부 사항을 곰곰이 생각하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누군가가 자신의 앞길을 막은 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너무 급하게 걸어서 길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다른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고 생각했지만, 정도원의 얼굴을 본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고 곧이어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네가 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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