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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정지안은 확실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하지만 적어도 정도원보단 훨씬 믿음직스러워 보였다.“너한테 첫눈에 반한 건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어. 그날 이후로 계속 너에 대해 알아보았고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근데 이런 걸 두고 운명의 장난이라 하는 걸까? 나중에 다시 봤을 땐 도원이가 널 집까지 데려와서 곧 결혼할 사이라고 하더라.”정지안은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에 씁쓸함이 차올랐다.“난 말이야, 이런 결말에 이런 전개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애초에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생각만 수없이 해왔어, 해리야.”여기까지 들은 이해리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화제를 바꾸고 싶었지만, 남자의 말이 너무 두루뭉술해서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그래서 언제 저를 처음 보신 건데요?”느닷없이 튀어나온 질문에 정지안이 나지막이 대답했다.“한 번은 네가 우리 회사 앞을 지나치다 길가 벤치에 앉아서 뭘 그리 생각하고 있던지... 그땐 네가 뭐 하는 애인 줄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생이었던 것 같아.”“그때 옆에 있던 노인분이 봉지를 떨어뜨려서 과일이 굴러 나왔어. 정확히 무슨 과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 사과였나... 네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그 노인을 도와 떨어진 과일을 모두 봉지에 주워 담더라고...”정지안은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한편 이해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아주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가? 왜 전혀 기억이 안 나지?하지만 정지안의 덧붙임에 그녀는 어렴풋이 그날 오후가 떠올랐다.학교에서 룸메이트와 사소한 갈등을 빚었고, 전공 수업에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는 졸업 후 진로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게다가 부모님마저 다투셨던 터라 그녀는 마음속에 짐이 한가득하였다.길을 걷다가 자신도 모르게 상업 지구로 들어섰고 우연히 정지안의 회사 건물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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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정지안은 말하다 말고 이해리의 담담한 표정을 보더니 대뜸 고개를 숙였다.‘됐다, 관두자.’여기까지 말했어도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니.정지안은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미안! 내가 괜히 내 감정만 네게 강요했지. 가자, 데려다줄게.”그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이 정도로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해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었다면 감정의 변화가 생겨야 하는 게 아닐까?하지만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그녀는 늘 똑같은 반응이었다.어쩌면 이혼 전까지 정말 새로운 감정을 고려할 여유가 없거나 혹은 자신에게 전혀 이성적인 감정이 없거나 둘 중 하나겠지.돌아오는 차 안, 이해리는 좌석에 멍하니 기대 있었다. 가끔 운전석의 남자를 흘긋 쳐다볼 뿐이었다.정지안은 오롯이 앞만 보며 묵묵히 운전했다.차가 그의 집 아래에 멈춰 섰을 때, 이해리가 물었다.“왜 여기로 왔어요?”오늘 다툰 이유로 이 남자가 자신을 푸르지오에 돌려보낼 줄 알았다.“발목도 다 안 나았는 데 혼자 있으면 불편하잖아. 걱정 마, 멀리 떨어져 있을게. 위층에서 잘 테니까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이해리는 한참 침묵하고 나서야 차 문을 열고 내렸다.둘 사이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기묘했다.이 와중에 택시를 타고 돌아가 버리면 그땐 정말 정지안을 완전히 화나게 할까 봐 두려웠다.이 남자의 진심이 그녀를 불안하고 당황하게 했지만 적어도 정도원과 비교했을 때 진심으로 그녀를 잘해주고 항상 그녀의 편이 되어 옆을 지켜주었다.두 사람은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해리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정지안의 목소리가 들렸다.“내일부터는 네가 내린 결정에 일절 간섭하지 않을게. 하지만 나도 내 방식대로 네 이혼을 도울 거야.”이해리는 등을 돌린 채 문고리를 살짝 잡고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고마워요.”이어서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침실 문이 닫히자 정지안은 피곤함이 몰려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내 사과가 부족했던 걸까? 근데 오늘 일은 결코 내 잘못만은 아니잖아.’그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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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비서가 운전하고 이해리는 차창에 기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별안간 옆에 있던 정도원이 꿈틀거렸다.그냥 무시해버리려 했더니 무릎에 낯선 감촉이 닿았다. 고개를 숙이자 정도원이 넌지시 손을 내뻗는 것이었다.식겁한 이해리가 그의 손을 밀쳐냈다.“뭐 하는 거야!”정도원은 하도 매정하게 밀쳐졌든지 창피하고 짜증이 밀려왔다.“이따 같이 연회장 들어갈 텐데 미리 관계를 좀 다져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즘 두 사람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하여 그는 이해리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필요 없어! 조금만 연기하면 되는 거잖아.”어차피 쇼에 불과하니까.다만 정도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무리 그래도 어떤 감정은 억지로 만들어낼 순 없는 거야...”이 인간은 또다시 이해리의 뺨에 키스하려고 다가왔지만, 그녀가 홱 밀쳐냈다.“난 언제든 협조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거 잊지 마. 발표회에서 모든 걸 폭로해버리는 수가 있으니 얌전히 있어!”안 그래도 짜증이 난 상태에서 정도원의 이런 몰골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다.연달아 거절당하고 경고까지 들은 정도원은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하지만 곧 발표회라는 것을 떠올리며 회사 주가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했다.그는 더 이상 이해리에게 집적대지 않고 순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발표회를 진행할 호텔에 도착하자 이해리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정도원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순식간에 ‘다정한 부부’로 변신한 두 사람.현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었다. 둘이 함께 공식 석상에 나타난 모습을 보자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고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었다.발표회 자체는 평범했지만, 이들의 쇼를 위한 위장이었던 만큼 정도원은 현장을 작은 연회장처럼 꾸며놓았다.그는 이해리를 이끌고 장내를 돌아다니며 서로 대화도 나누고 인터뷰도 했다. 꼭 마치 둘의 애정을 과시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정도원의 행동에 이해리는 그저 피로감만 느낄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내색 없이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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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이해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 정도원은 그런 이해리를 질질 끌고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너 무슨 짓 한 거야?”이해리는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잡고 간신히 물었다.“또 무슨 더러운 수작 부렸지?”“뭐? 더러워? 야, 이해리, 말이 좀 섭하네. 우리 아직 부부야.”정도원은 이미 준비된 호텔 방으로 그녀를 끌어가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이제 말해 봐. 우리 형이랑 잤어?”남자의 저속한 표현에 이해리는 고개를 돌리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려 했다.하지만 손이 가방에 닿자마자 정도원이 그 의도를 눈치챘다.“뭐야? 도망치게? 적당히 해라.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문득 그녀의 하얀 어깨가 드러나자 정도원은 눈빛이 흔들리고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전에 나한텐 죽어도 터치 못 하게 하더니 형이랑은 고작 며칠 사귀고 이렇게 순종적이야? 너까지 날 깔봐? 설마 나랑 결혼한 것도 다 우리 형한테 접근하기 위해서였어?”정도원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되었다.어릴 때부터 그는 늘 정지안에게 가려져 있었다.비록 동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고 정지안마저 ‘동생이 어리니 양보하라’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결론적으로 형 정지안은 너무 뛰어났다.모든 면에서 정도원을 앞질렀고 그 바람에 정도원은 수년간 형에게 억눌린 존재가 되었다.아무리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루어도 정지안에겐 못 미쳤다.사람들은 정지안을 언급할 때면 ‘천재’라고 칭찬했지만, 정도원에게는 ‘아직 어리다’라는 말뿐이었다.“내가 왜 너랑 결혼한 줄 알아? 적어도 여자 보는 눈만큼은 우리 형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유나는 단지 네 대체품일 뿐 아무 의미도 없어! 대체 왜 그런 애 하나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건데?”이해리의 정신은 이미 혼미해져 갔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되었고 몸은 불처럼 타올랐다.지금 정도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옷을 벗기려는 손길이 점점 다급해져 갔다.이해리는 간신히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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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정도원은 정신이 아득해진 와중에도 정지안의 모습을 보았다. 순간 놀라움에 휩싸인 채 입이 쩍 벌어졌다.“형이 여긴 어쩐 일로...”곧 정지안의 비서가 달려와 정도원을 제압했다. 이 인간은 바닥에 짓눌린 채 정지안이 이해리를 안고 떠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다.“안 돼! 가지 마. 해리 내 아내란 말이야.”하지만 비서에게 제압당한 정도원은 이런 말을 내뱉어봤자 정지안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방문이 닫히고 정지안은 이해리를 안은 채 차에 올랐다.“안 돼...”차 안에서 이해리는 끊임없이 신음하며 이전 상황을 떠올렸다.누군가 그녀에게 약을 탄 게 분명했다. 정지안은 순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정도원이 혹시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그녀를 지켜주려고 몰래 발표회장까지 따라왔는데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줄이야!이해리에게 이런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리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러웠다.정지안은 서둘러 그녀를 집에 데려가서 의사를 불렀다.그는 침대 곁을 지키며 몽롱하게 잠든 이해리의 얼굴을 바라보다 마침내 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다음 날 아침, 이해리는 시끄러운 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전화를 받을 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처 떠올리지도 못했는데 휴대폰 너머로 다짜고짜 윤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봐요, 해리 씨! 대체 언제 우릴 놓아줄 거예요? 정지안 씨한테 들러붙은 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 사람 왜 우리 도원 씨를 때리는 거냐고요, 왜?”정지안이 정도원을 때렸다는 말에 이해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잠이 확 달아나고 어제 있었던 일이 파도처럼 머릿속에 일렁였다.이해리는 차갑게 웃으며 전화기 너머 윤유나의 추궁을 끊었다.“그런 질문 하기 전에 도원이가 무슨 짓 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제 도원이랑 함께 연회장에 참석한 이유는 단지 회사를 위해서였어요. 잠시 이혼 사실을 숨기기로 했고 유나 씨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어요. 이럴 시간 있으면 그 잘난 유나 씨 남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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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무슨 뜻이야?”정지안이 고개를 들자 이해리의 환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지안 씨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리고 다친 곳은 없는지 보러 왔고요.”이해리는 진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둘의 관계가 여느 때보다도 이상해졌다는 걸 그녀는 너무 잘 안다.게다가 얼마 전 그 대화와 정지안의 갑작스러운 사과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어느덧 얼음처럼 차가워졌다.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이 남자의 태도가 변할지도 모른다.지금 이해리에게는 목적 달성을 위해 정지안의 도움이 절실하다.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정말이에요. 도원이 때린 거 정말 잘하셨어요. 근데 너무 티 낼 순 없잖아요, 저로서.”정지안은 말문이 막혔다.“이 말 하려고 온 거야?”“물론이죠.”“난 또 따지러 온 줄 알았네.”정지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언제부터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해진 걸까?예전에 이해리에게 접근했을 때, 그녀가 이혼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의 접촉이 늘어갔고 정지안은 그녀가 정도원을 점점 더 혐오한다는 것까지 느껴졌지만 좀처럼 이혼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해리는 자꾸 정도원 곁으로 돌아가 그가 시키는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정지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그의 능력이라면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이해리가 좀 더 일찍 이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는데 대체 이 여자는 왜 자꾸만 거부하는 걸까?이해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짐작이 갔다.“해리 너 혹시 도원이랑 이혼 안 하고 그런 쇼까지 해나가는 이유가 뭔가 다른 우려가 있어서야?”이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실은 지안 씨한테 말할까 말까 망설였어요. 지안 씨도 결국 정씨 가문 사람이라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저한테 이득 될 게 없을 것 같았거든요.”“말해 봐. 이미 짐작은 하고 있지만.”이해리는 이미 이혼을 결심했고 정도원 역시 윤유나의 신분을 강조하는 등 이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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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여기까지 말한 이해리가 별안간 눈시울이 빨개졌다.“지안 씨가 저를 조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원이 회사 지분 중 일부가 제 혼수이자 부모님께서 남기신 거예요... 그걸 전부 날려버리고 싶지는 않네요.”부모님이 남기신 가장 소중한 것들이니까.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설령 자신들이 곁에 없더라도 딸의 앞날을 닦아주고 싶었다.이해리는 정도원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결국 이 때문에 참아왔다.이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할 시점에 그녀는 여전히 이 때문에 흔들려서 쿨하게 손을 놓지 못했다.그녀의 이야기가 끝난 뒤, 정지안은 잠시 침묵했다.마음속에는 기쁨인지 흥분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이해리가 주식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그렇다면 어제 도원이가 약 탄 일로 마음의 변화는 생겼어?”정지안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이에 이해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이제 더는 도원이한테 협조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스캔들 터지면 주가가 더 내려갈 거예요.”이미 너무 많은 것을 투자했고 여기까지 걸어온 이상 그녀에겐 되돌아갈 길이 없었다.좀 더 일찍, 좀 더 독하게 마음먹었더라면 주식 분할 따위 신경조차 안 썼을 텐데 일은 이 지경에 다다랐고 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다.무기력해진 그녀를 보더니 정지안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앞으론 그러지 마.”“네?”이해리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곧이어 정지안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몇 번의 터치로 자료 하나를 열어 그녀에게 건넸다.이해리는 조심스럽게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투자 계약서는 이 남자가 특별히 해외에서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여 정도원의 회사에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설마 이렇게 하는 이유가 주가를 안정시키고 동시에 저한테 더 많은 재산을 주기 위해서예요?”정지안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 투자면 주가가 자연스레 상승할 거야. 거기에 어제 너랑 도원이가 잠깐 얼굴을 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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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이해리는 정도원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는커녕 재산이나 몰래 빼돌리다니!그녀는 휴대폰을 꽉 움켜쥐고 변호사에게 말했다.“걔 재산 빼돌리는 거 계속 조사해 주세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고 샅샅이 파헤쳐 줘요. 제가 전부 확인할 수 있도록요. 그리고 앞으로 정도원의 모든 해외 계좌를 철저히 감시해 주세요. 윤유나도... 제가 제공할 정보가 있다면 언제든 바로 알려주세요.”통화를 마친 이해리는 짜증 난 얼굴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정지안의 사무실을 서성였다.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은 듯했다.정지안은 그런 이해리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언제까지 그렇게 돌아다닐래?”마침내 자신의 행동을 알아챈 그녀가 두 볼을 톡톡 치면서 머쓱한 듯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가끔 불안하면 꼭 이러거든요.”“처음 알았네.”정지안은 몰래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어쨌거나 이해리는 방금 정도원이 재산을 빼돌린다는 소식을 듣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지안이 물었다.“그 재산에 정말 이렇게까지 연연하는 거야?”“당연하죠! 부부로 지낸 시간이 얼만데요. 바람까지 피워놓고 뭘 잘했다고 재산을 더 줘요? 제가 끌어올 수 있을 만큼 좀 더 받아내야 하지 않겠나요?”만약 이대로 이혼하거나 정도원보다 재산을 더 적게 분할 받는다면, 또 혹은 정도원이 마땅한 처벌을 면한다면 이해리는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느낄 터였다.이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정지안 앞에 마주 앉아 봇물 터지듯 하소연했다.“그거 알아요? 맨 처음에는 도원이 빈손으로 나앉게 하고 싶었어요. 걔 지금 상황이라면 중혼적 사실혼이라 엄하게 처벌 내릴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모든 재산을 제가 가지려고 했죠!”정지안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근데 변호사가 말하기를 정도원의 신분과 회사에서의 여러 역할까지 고려하면 빈손으로 나가는 것은 어렵대요. 게다가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도원이가 당연히 동의하지 않을 테고 또 엄마랑 손잡고 이 이유를 내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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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이해리가 만약 정지안의 도움을 더 받으면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될 터였다.그녀는 순간 난감함에 빠졌다.이에 정지안은 손을 내저었다.“됐다. 너 고민할 줄 알았어. 도와주기로 약속한 이상 내 방식대로 해나갈 거야.”단지 그녀에게 더 이상의 압박과 번거로움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며칠 후, 오초아가 출장에서 돌아와 이해리를 골프장으로 끌고 갔다.“갑자기 웬 골프?”이해리는 골프 코트 위에서 폼을 잡으며 물었다.하얀 상의와 짧은 운동복 치마 차림의 그녀는 유난히 생기발랄해 보였다.한편 오초아는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우리 회사에 좀 까다로운 협력업체가 생긴 것 같아. 변호사한테 만능이 되어야 한다고 하잖아. 저번 출장 때 골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돌아와서 급하게 연습하게 생겼다니까.”“일을 위해서라면 넌 정말 뭐든 할 수 있는 애구나.”이해리가 웃으며 말했다.이어서 두 사람은 함께 골프를 쳤다. 다행히 이해리는 골프 기초가 있어서 금세 빠져들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그것도 죄다 정도원의 이전 협력업체 사람들이...이해리는 정도원 이 인간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싶었지만 협력업체 사람들은 저마다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해리 씨는 정말 행운의 여신이세요... 오늘부터 해리 씨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저희는 기꺼이 투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이해리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하지만 정지안의 말을 떠올리자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그녀가 또 다른 협력업체 사람과 대화를 마치자 옆에 있던 오초아도 슬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뭐야? 행운의 여신? 우리 해리 좋다는 남자들이 줄을 서겠는데?”이해리는 웃음이 빵 터졌다.“뭐래... 그게 무슨 망언이야?”“내가 망언한다고? 저 사람들이 너만 보면 행운의 여신이라잖아. 그것도 죄다 남자들이.”오초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이해리는 문득 며칠 전 오초아가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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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정지안의 덤덤한 표정이 순간 돌변했다.“데이트?”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해리의 웃음에는 교활함이 묻어났다.“확실해?”이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한편 옆에 있던 오초아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아 두 사람이 은밀히 이야기하는 줄로 여기고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두 사람 뭐해요 지금?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인가요?”이해리가 돌아보며 웃었다.“초아 넌 옆에서 구경해. 우리 내기할 거야.”“내기? 그럼 뭐, 보상이나 벌칙 같은 건 있어?”오초아는 그제야 신이 나서 물었다.“말해 봐봐!”이해리와 정지안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골프채를 들어 올렸다.이에 오초아는 안달이 났다.“왜 아무것도 안 알려줘?”이해리가 멀리서 답했다.“내기 끝나고 돌아가서 말해줄게.”솔직히 이해리는 골프를 잘 치지 못했다. 예전에 정도원과 사업 때문에 골프장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을 뿐이다.하지만 정도원은 거의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냥 옆에서 다른 사람들과 사업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일 뿐이었다.이혼을 제기하고 지금까지 이해리는 사람을 써서 정도원과 윤유나의 외도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다.윤유나 역시 정도원과 함께 골프장에 갔지만, 이 인간이 그녀에겐 가르쳐주었다.서로 붙어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다정해 보였고 겉보기에 영락없는 연인이지만 이해리는 외도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때를 회상하며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 옆에 있던 오초아가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어? 이번에도 정 대표님이 이기신 것 같은데?”이해리가 고개를 들자 정지안이 걱정과 긴장감이 담긴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걸까?이해리는 고개를 저었다.“대표님이 이기셨네요.”오초아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아니, 애초에 점수 세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왜 굳이 내가 봐야 해요? 그건 그렇고 두 분은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졌대요?”이해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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