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동생을 택한 너에게, 나는 네 라이벌을 택했다: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채이가 준모를 처음 본 날이었다. 갈샊으로 그을린 피부, 흑요석을 닮은 눈동자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콧날은 높고 반듯했다.채이의 기억 속에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잘생긴 사람은 늘 오빠였다. 그런데 이 남자를 보는 순간, 오빠는 준모와 견주기조차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채이의 가슴이 쿵쿵 뛰면서 심장 박동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준모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준모야, 어떻게 온 거야?”정후가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시선을 슬쩍 채이 쪽으로 돌렸는데, 말끝에는 묘한 느낌이 묻어났다.“잠깐 들렀어.”준모는 담담하게 입을 열더니 곧장 채이 옆자리에 앉았다.그 바람에 채이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전에도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었지만, 직접 마주한 느낌은 전혀 달랐다.채이는 곁눈질로 준모를 몰래 한 번 바라봤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어디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채이는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끝내 떠오르는 건 없었다.‘그럴 리가 없잖아. 이제 막 처음 만난 사이인데 어디서 봤겠어. 내가 착각한 거야.’채이 곁으로 은은한 레몬 향이 스며들었다. 준모에게서 나는 향이었다. 진하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게 감도는 냄새였다.“채이 씨, 계속 드세요. 우리끼리 너무 오랜만에 만났거든요. 오늘은 제대로 한잔해야겠어요.”정후는 채이의 어색함을 눈치챈 듯,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띠었다.속으로는 다른 생각도 하고 있었다.‘준모야, 네가 그렇게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는 이제 널 알아보지도 못하는데...’‘이 여자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돌아온 거냐.’그래도 정후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채이는 곧 다른 남자와 약혼을 앞두고 있었다. 둘을 억지로 엮으려다 괜한 오해만 생길 수 있었다.정후는 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채이는 고개를 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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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도성은 오늘 술을 제법 많이 마신 탓에 차에 오르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채이는 혼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속은 여러 갈래로 뒤엉켜 있었다.“채이 씨, 제 앞에서는 그렇게까지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저희는 평생을 함께할 사이니까요. 그래도 오늘 처음 저를 직접 봤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준모는 서늘한 눈빛 아래에 다정함을 품고 있었다. 말투도 조용하고 잔잔했다.“시간을 줄게요. 우리 천천히 익숙해지면 돼요. 그래도 다음에 다시 저를 볼 때는, 오늘처럼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저도 조금씩 익숙해질게요.”채이가 입을 열었다.차는 호텔 입구에 멈춰 서자, 채이가 먼저 내렸다.“오빠, 일어나. 다 왔어!”“오빠는 술도 약하면서 오늘은 뭘 그렇게 무리해서 많이 마신 거야.”채이는 어이없다는 듯 말하며 도성을 흔들어 깨웠다.도성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겨우 눈을 떴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지만, 기억이 뚝 끊긴 듯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눈치였다.“오빠, 얼른 들어가자. 벌써 너무 늦었어.”채이는 오빠를 부축했다.“오늘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들어가시는 길 조심하시고요. 저희는 먼저 올라 갈게요.”채이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넨 뒤, 도성과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준모는 바로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준모의 눈길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 생각이 얹혀 있었다.채이와 도성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두 사람이 무사히 객실로 올라갔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준모는 몸을 돌려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돌아갈 생각이었다.“대표님, 진채이 씨 립스틱이 차에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올라가서 전해드릴까요?”비서 주환은 차에 올라탄 뒤 좌석 위에 놓인 립스틱 하나를 발견했다.이 차에 탔던 여자는 채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립스틱은 분명 채이의 것이었다.“됐어.”주환은 이미 몸을 일으키면서 움직이려던 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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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오빠, 오늘 이모랑 같이 나온 뒤에 저는 채이 언니랑 함께 이모를 병원까지 모셔다드리려고 했어요. 병원에는 사람도 많은데, 저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까 봐 걱정됐거든요.”“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언니가 어떤 남자랑 같이 식당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것도 5성급 호텔 레스토랑이었어요. 요즘 채이 언니가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어요. 오빠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시은은 한동안 뒤에서 사람을 붙여 채이의 행적을 살피고 있었다. 채이가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시은은 모두 들여다보고 있었다.시은의 말이 가시처럼 태빈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태빈은 그대로 폭발했다.자신은 매일 머리가 터질 듯 바빴고, 회사 사정도 아주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채이는 바깥에서 다른 남자와 어울리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태빈은 주먹으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뻔뻔한 여자...”“오빠, 저도 두 사람이 같이 들어가는 것까지만 봤어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몰라요. 어쩌면 중간에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화내지는 마세요.”불을 지핀 사람은 시은이었지만, 끝에 가서는 되레 착한 사람인 척 말을 덧붙였다.태빈이 더 분노할수록 시은의 속은 더없이 시원했다.“뭐라고? 채이가 벌써 밖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고? 그러니 걔가 이렇게까지 독하게 굴었지. 진작에 갈 곳을 따로 만들어 놓은 거였구나.”침대에 누워 있던 한유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격앙된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다.가뜩이나 답답하던 가슴이 더 조여 왔다. 한유희는 이 일을 도저히 그냥 받아들일 수 없었다.“엄마, 왜 일어나세요? 그냥 누워 계셔야죠. 이런 일은 제가 다 해결할게요. 어머니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네 아내가 될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가게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내가 예전에 진채이를 어떻게 아꼈는지 너도 알잖아. 늘 친딸처럼 생각했는데, 진채이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한유희는 화를 이기지 못해 온몸을 떨었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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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알았어.”전화를 끊은 뒤, 채이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과 장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확인을 마친 채이는 화면을 껐다.저녁.채이는 약속한 식당에 혼자 들어섰다. 원래는 도성이 함께 와 주겠다고 했지만, 정후가 급히 도성을 불러내는 바람에 도성은 결국 오지 못했다.애초에 이것도 업무와 관련된 자리였다. 채이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고, 굳이 누가 곁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식당에 도착한 채이는 잠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협력사 쪽 조철구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채이가 손에 쥐고 있는 프로젝트들과 특허는 조명그룹이 추구하는 방향과 상당히 비슷했다. 가능하다면 채이는 조철구와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싶었다.그래서 채이는 오늘 이 자리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고, 식당 역시 신중하게 골라 예약한 곳이었다.“안녕하세요, 조철구 대표님. 저는 진채이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채이는 단정하고 시원스러운 태도로 손을 내밀어 조철구와 악수했다.“반갑습니다. 저는 진채이 씨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었습니다. 특허 쪽 일을 아주 잘하신다고 하더군요.”“저희 회사도 최근 특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제가 진채이 씨 기획안 몇 가지를 검토해 보니 저희가 찾던 방향과 잘 맞더군요. 자, 앉아서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눠 보시죠.”조철구는 무척 살갑게 굴었다. 그런데 맞잡은 손은 좀처럼 놓지 않았다.조철구의 시선도 계속 채이에게 머물러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다.다행히 설희가 미리 조사를 해 두고 채이에게 귀띔해 준 덕분에, 채이도 어느 정도는 조철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조철구는 재능이 뛰어나고, 회사 규모도 상당했다.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여자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조철구 곁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설희는 몇 번이나 당부했다.원래 설희도 같이 오겠다고 했지만, 채이는 괜찮다고 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오늘 채이는 일부러 옷차림도 최대한 단정하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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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자, 자, 한잔하시죠!”조철구는 몹시 밀어붙이는 태도로 채이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이렇게 하죠. 저는 한 잔 다 마시고, 진채이 씨는 반 잔만 드시는 걸로.”조철구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저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니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채이는 결국 다시 한 잔을 더 마실 수밖에 없었다.조철구는 오늘 기분이 한껏 올라와 있었고, 채이에게도 꽤 큰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채이의 마음은 내내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였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조철구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려고 했다. 이 방 안에는 지금 채이와 조철구, 단 둘뿐이기 때문이었다.“사실 요즘 진채이 씨 일은 저도 다 들었습니다. 진채이 씨가 피해자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 부 대표 쪽이 진채이 씨한테 어울리지 않았던 거죠.”“이렇게 예쁘시고 성격도 시원시원하시고. 저는 진채이 씨 성격이 참 좋네요. 마음에 듭니다...”조철구는 말을 이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채이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조 대표님께서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해서, 감정 문제로 상처를 좀 받았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미 끝난 사이입니다. 더는 아무 관계도 아니고요. 앞으로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채이는 웃는 얼굴로 답하면서 끝까지 예의를 지켰다.하지만 눈앞의 남자가 보이는 행동은 채이의 속을 계속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채이는 조철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싶었다. 특허 발표까지 연결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았다. 그래서 참고 받아들이는 폭도 어느 정도는 남겨 두고 있었다.“역시 일을 잘하는 분이시네요. 진채이 씨는 딱 봐도 커리어 우먼입니다. 마침 저도 지금 혼자인데, 저한테 진채이 씨를 정식으로 만나 볼 기회를 좀 주시면 안 됩니까?”활짝 웃는 조철구의 눈빛에는 끈적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채이는 눈썹을 아주 미세하게 좁혔다.“조 대표님은 정말 농담도 잘하시네요. 조 대표님처럼 훌륭하신 분이면 곁에 계신 분들도 많으시지 않겠어요?”“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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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여자인 채이의 힘으로는 이 남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더구나 조철구는 술까지 마신 상태였다. 취한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채이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조철구의 비서를 안으로 불러들이든, 아니면 종업원이라도 한 명 불러 세우든 해야 했다.그런데 조철구는 채이가 자기 체면을 조금도 세워주지 않았다고 여긴 듯, 더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조철구는 단숨에 채이의 팔을 움켜잡았고, 채이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내가 장담할게. 오늘 나랑 같이 가겠다고만 하면, 네 특허 발표는 몇 개든 다 되게 해 줄 수 있어!”“내가 마음에 둔 여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만든 특허잖아. 내가 한마디만 하면, 네가 원하는 건 다 손에 들어오게 할 수 있어!”“대신 조건은 하나야. 얌전히 내 말 듣고, 내 기분을 좋게 해. 그러면 내가 뭐든 다 도와줄게!”조철구는 그 말을 끝낸 뒤 더 거리낌이 없어졌다. 손이 곧장 채이의 옷으로 향하더니, 단추를 억지로 풀려고 했다.“조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술 취하신 건 제가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치십니다!”채이는 힘껏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인 채이의 힘으로는 남자인 조철구를 당해 낼 수 없었다.채이가 더 발버둥칠수록 조철구는 오히려 더 흥이 오른 듯했다.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더 탐나는 법이었다. 조철구는 채이를 처음 본 뒤부터 이미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원래 조철구는 늘 이런 식이었다.“여기엔 지금 우리 둘밖에 없어. 내 비서는 내가 진작 다 돌려보냈어. 그러니까 괜히 빼지 마. 내가 약속하는데, 오늘 일은 절대 밖으로 안 새게 할 테니까!”조철구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말끝에는 불쾌한 속뜻이 짙게 배어 있었다.채이는 있는 힘껏 조철구를 밀쳐 냈다. 그러고는 의자를 끌어와 자기 앞을 막아 세웠다.“조 대표님, 저는 오늘 대표님과 협업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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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하지만 지금 채이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선은 어떻게든 빨리 밖으로 뛰어나가야 했다. 혹시라도 조철구가 다시 뒤쫓아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밖으로 나온 뒤에도 채이의 두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사람을 직접 때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안에 남겨 둔 조철구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채이는 급히 밖으로 나와 조철구의 차를 찾았다.마침 조철구의 비서가 차 안에 있었다. 채이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조 대표님이 위에 계신데, 다치셨어요. 빨리 올라가서 한번 확인해 보세요.”사실 채이는 조철구가 크게 다친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채이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그래도 이번 일은 분명 정당방위에 가까웠다. 채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 그 방에서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몰랐다.“오빠, 나 여기서 좀 일이 생겼어!”[어디야. 지금 바로 갈게.]20분 뒤, 채이와 도성은 호텔에서 만났다. 도성은 동생의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진 걸 보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 누가 너 괴롭혔어?”채이는 오빠에게는 숨기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내가 아까부터 같이 가자고 했잖아. 그런데 넌 끝까지 말 안 들었지. 그 사람이 너한테 무슨 짓 했어? 어디 다친 데는 없어?”채이는 고개를 저었다.“내가 그 사람을 다치게 하긴 했어. 그래도 나 정당방위였어!”“네가 안 다쳤으면 그걸로 됐어. 내가 진작 말했잖아. 네가 그냥 나랑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이런 특허 문제든 뭐든 내가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그런데 넌 끝까지 안 듣더니, 결국 일이 터졌잖아.”도성은 채이가 자기 눈앞에 멀쩡히 서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조금 안도했다. 그래도 속은 여전히 다급했고, 동생이 너무 안쓰러웠다.“오빠, 어떤 일은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도 있고, 나도 계속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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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물을 다 마시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채이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동안 숨을 고른 뒤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어젯밤 있었던 일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손에 들어간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다. 정말 큰일이라도 났다면, 그 뒤에 감당해야 할 일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채이는 여전히 조철구 대표가 마음에 걸렸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병원으로 제때 옮겨졌다면 아주 위급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막 몸을 정리하고 도성을 찾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채이는 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진채이 씨 맞으시죠? 저는 조철구 대표님의 변호사입니다. 어젯밤 진채이 씨가 조철구 대표님께 고의로 상해를 입힌 일과 관련해, 제 의뢰인은 이미 진채이 씨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고 신고도 접수했습니다.”“잠시 후에는 사건 관련 담당자들도 이쪽으로 올 예정입니다.”‘변호사?’‘정말 어이가 없네.’채이는 싸늘한 표정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담담하게 답했다.“어젯밤 일은 정당방위였습니다. 조 대표님이 뭘 하시든,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채이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하지만 현재 조철구 대표님은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이마는 열 바늘이나 꿰매셨고, 중증 뇌진탕 진단도 받으셨습니다. 상해 진단서와 각종 자료도 이미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변호사는 서류를 꺼내 채이에게 내밀었다.하지만 채이는 받아 들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차분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저도 제 변호사를 통해 자료를 모으겠습니다. 저는 겁나지 않습니다.”“진채이 씨, 사실 조철구 대표님도 진채이 씨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으십니다. 치료 기간 동안의 병원비는 진채이 씨 쪽에서 부담하셔야겠지만...”“조철구 대표님 뜻은 단순합니다. 진채이 씨가 직접 찾아가셔서 조 대표님께 사과만 하시면, 이번 일은 용서하고 넘어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제가 오늘 이 일 때문에 일부러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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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채이는 CCTV가 어쩌면 그렇게 절묘한 때에 고장 날 수 있냐는 생각에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직원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CCTV실은 외부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안내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직원의 태도는 단호했다. CCTV는 고장 난 게 맞다고 끝까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채이로서는 더 밀어붙일 방법이 없었다.그렇다고 채이가 이 자리에서 계속 소란을 피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정말 크게 일을 벌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채이는 답답한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조철구 대표는 그런 짓을 해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기 뜻대로 상황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되레 채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었다.식당에서 나온 뒤, 채이는 혼자 거리를 걸었다. 뭘 해야 할 지조차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대표님, 진채이 씨 쪽에 어젯밤 일이 좀 생겼습니다.”주환은 밖에서 들어와 준모의 사무실로 향했고, 어젯밤 상황을 하나씩 보고했다.그 말을 들은 준모의 표정은 걷잡을 수 없이 차가워졌다. 얼음처럼 싸늘한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거센 폭풍이 닥치기 직전 같은 기류가 방 안을 눌렀다.“배 대표님, 진채이 씨 일은 저희가 정리할까요?”“그 조철구라는 놈, 여기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알겠습니다, 대표님.”주환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준모는 원래 귀찮은 일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문제를 마주쳐도 직접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그런데 채이 일만큼은 달랐다. 준모가 직접 손을 쓰겠다고 한 것이다.‘이분한테는 정말 다르다는 거군.’주환은 새삼 그 사실을 실감했다....저녁.채이는 호텔로 돌아온 뒤 다시 한숨 잠이 들었다. 어젯밤 마신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건지, 머리는 계속 무겁고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잠에서 깬 채이는 휴대폰을 켰다. 그런데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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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채이는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준모 쪽에서는 늘 놀랄 만큼 빨리 알고 있었다.사실 이번 일도 준모가 나서지 않았다고 해도, 채이는 분명 자기 힘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누명을 쓰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채이는 조용히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채이야, 오빠랑 엄마 아빠를 믿어야 해. 우리가 너한테 정해 준 사람은, 네 인생을 맡겨도 된다고 판단한 사람이야. 절대 너를 해칠 사람을 붙여 준 게 아니야.”도성은 채이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태빈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몇 마디 덧붙였다.도성이 이곳에 온 뒤로 두 사람은 일부러 이 문제를 꺼내지 않고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마침 이야기를 꺼낼 계기가 생긴 셈이었다.“오빠, 나도 당연히 오빠랑 엄마 아빠를 믿어. 나랑 부태빈은 이제 이렇게 됐는데, 내가 그 인간한테 다시 마음 둘 일은 절대 없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사실 나는 지금 여기 일만 빨리 다 정리하고, 얼른 돌아가서 가족들이랑 같이 있고 싶어. 이렇게 오래 엄마 아빠 못 본 적도 없었고, 나도 정말 많이 보고 싶어.”“예전에는 수도 없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그때는 차마 용기가 안 났어. 엄마 아빠가 한창 화가 나 있었으니까...”“어쩌면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래도 이제는 아니야. 나도 이제 말 잘 들을게.”채이는 준모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준모는 차갑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준모 곁에 있으니 이상할 만큼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여동생의 말을 들은 도성은 무척 안도했다. 마음도 한결 더 놓을 수 있었다.자기 방으로 돌아온 채이는 핸드폰을 들었다. 준모 번호를 눌러 놓고도, 정말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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