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Bab 21 - Bab 30

30 Bab

제21화

정루아는 어두워진 얼굴로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구태윤이 또 그녀를 속인 것이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응답하지 않았다.정루아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세차게 핸들을 내리쳤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수님! 어디세요? 빨리 와서 태윤이 형 좀 살려줘요!”장유성의 다급한 목소리였다.핸들을 쥔 정루아의 손에 더욱 힘이 가해졌다.“곧 죽기라도 해요?”장유성은 흠칫 놀랐다가 말을 이어갔다.“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처벌을 받다가 크게 다쳐서 지금 병원에 실려 갔어요. 의식도 없고요. 계속 형수님 이름만 부르고 있어요. 제발 와 주세요.”정루아는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죽고 나서 연락해요.”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다만 손은 바들바들 떨며 애꿎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처벌을 받았다고?’‘누가 그 사람에게 처벌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그의 부모님은 해외에 의료봉사를 나가셨고, 할머님은 이미 연로하셨다. 구승태가 세상을 떠난 지금, 구씨 가문에 그를 벌할 사람은 없었다.그 순간 가슴 속에 또다시 답답함이 밀려왔다.하필 이 타이밍에 다치다니.긴 기다림 끝에 겨우 이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그녀는 차를 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막 도착했을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구씨 본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여보세요?”그녀의 말엔 조금의 공손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태윤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 넌 와이프로서 가서 간호해줘야 하지 않겠니?”박정란의 연륜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루아는 비웃듯 말했다.“그 사람 곁에 붙어 있고 싶어 하는 사람 많잖아요. 제가 낄 자리는 없어요.”“이 버릇없는 것!”박정란은 격노했다.“넌 태윤이의 아내야. 우리 가문의 둘째 며느리라고! 애초에 네가 기강을 제대로 잡았으면 여자들이 감히 얼씬이라도 했겠어? 내가 처음에 너희 결혼 반대했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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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익숙한 숨결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 그녀는 단번에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남자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과 반쯤 감긴 초점 잃은 눈으로 보아 의식이 또렷한 것 같지 않았다.“죽을 거면 다른 데 가서 죽어.”그를 보자마자 정루아는 또다시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속인 것도 모자라 이젠 이런 식으로 그녀를 놀라게까지 하다니!그녀의 고함에도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정루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방금 전 팔이 스쳤을 때 느껴졌던 몹시 뜨거웠던 느낌이 떠올랐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그의 이마에 살짝 손을 얹었다.역시 너무나 뜨거웠다.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피비린내가 코에 흘러들어왔다.그녀의 고운 눈썹이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이불을 걷어 올린 순간, 정루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몸에는 수 겹의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등 쪽 붕대는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거의 등 전체가 그랬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루아는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개인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도착했다. 그는 검진을 마친 뒤 상처를 다시 소독하고 붕대를 감고는 링거까지 놓아주었다.정루아는 그 모든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붕대가 벗겨지는 순간, 그의 등에 얼기설기 피로 얼룩진 상처들이 드러났다.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었다.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호흡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주치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처치를 마친 뒤 약상자 몇 개를 들고 그녀에게 말했다.“사모님, 이건 대표님이 깨어난 뒤에 드시게 하세요. 이 병들은 순서를 표시해 두었으니 교체해 주시고요. 음식은 꼭 담백하게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상처는 절대 물에 닿지 않게 하셔야 합니다.”정루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약을 받아 들었다. 의사가 떠난 뒤, 그녀는 장유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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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그녀는 침대 곁에 서서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지금의 그는 너무나도 나약했다.그 특유의 날카롭고 오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녀를 다치게 하지 못할 것이다.베개를 쥔 정루아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그는 정말이지 죽어야 마땅하다.처음엔 미친 듯이 사랑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이렇게까지 증오하게 만들다니.기쁨도, 고통도 전부 그로부터 시작됐다.분노가 또다시 치밀어 올랐지만 결국 그녀는 베개를 놓아버렸다.도저히 그런 결단은 내릴 수가 없었다.그녀가 원하는 건 이혼이지 그의 죽음이 아니었다.필경 그는 그녀가 8년 동안이나 사랑했던 남자이니 말이다.정루아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남자는 이 일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새벽 세 시, 살을 짓이기는 고통에 잠에서 깬 구태윤은 눈을 뜨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곁을 바라봤다.그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없었다.하지만 지금, 방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그녀는 마치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가엾은 아이처럼 스스로를 꼭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구태윤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체온은 내려갔지만, 등에선 여전히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어둠 속에서 그는 그녀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다음 날.정루아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떠보니 자신은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몸은 편안했지만 마음은 답답하게 조여왔다.그녀는 곧바로 남자를 밀쳐냈다.옆으로 누워 있던 구태윤의 몸이 그녀의 발길질에 반듯하게 눕혀졌다. 그 순간 잘생긴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도 했다.“루아야...”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너무 아파.”정루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러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함께 스키장에 갔던 어느 해, 스키에 익숙지 않았던 그녀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내리막으로 굴러떨어질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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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정루아는 돌연 덮친 뜻밖의 상황에 짧게 신음을 흘렸다.남자의 무거운 몸이 그대로 그녀를 압박했다. 마치 그녀를 통째로 녹여버릴 것만 같은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뭐 하는 거야!”정루아는 잔뜩 분노한 얼굴로 애써 그를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그녀에게 남자의 몸은 너무나 무거워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루아야.”구태윤의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나 너무 아파.”정루아의 호흡이 미세하게 떨려왔다.그녀는 무력하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비웃듯 말했다.“이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구태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팔에 힘을 주어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았다.결혼기념일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무척이나 다정했다. 따뜻하게 서로를 안아주기도 했고, 뜨겁게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모든 게 이 지경으로 변해버렸다.꿈을 꾸는 것마냥 정신이 아득해졌다.그녀를 다시 품에 껴안으니 가슴 속 텅 비어 있던 곳이 단번에 채워지는 느낌이었다.그녀의 숨결, 향기, 손끝의 감촉 하나하나까지 모두 너무나 익숙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그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부드러운 피부 위에 붉은색 흔적이 남았다.정루아는 고개를 들고 정교하게 장식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분명 본능에 반응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놀랍도록 차분하고 냉정했다.“당신 정시연한테 자주 갔었잖아. 어디까지 했어? 나랑 했던 것들 그 여자랑도 다 했지?”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있던 남자의 몸이 경직되었다. 이어 그는 그녀의 쇄골을 한 입 깨물었다.눈물이 맺힐 만큼 날카로운 통증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정루아, 너 정말 왜 이래?”구태윤은 이를 꽉 깨물고 그녀를 노려봤다.“난 하준이를 돌보러 갔던 것뿐이야. 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어!”“난 못 믿어.”정루아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구태윤, 네 마음은 그 여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너만 그걸 모를 뿐이야.”구태윤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녀 얼굴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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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돈이 없어.”정루아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반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겹겹이 포개진 장미꽃잎 문양 위에서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예전 그녀가 첫눈에 반했던 반지다.이후 구태윤은 이 반지로 그녀에게 청혼했었다.당시 그녀는 그의 정성에 감동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었다.이 반지는 그녀의 사랑을 증명하던 물건이었다.하지만 이제 그 사랑은 사라졌고, 결혼 생활은 보잘것없어졌으며, 삶은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거와 완전히 끊어내야만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여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전부 끊어낼 생각이었다.이연희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그 개자식... 진짜 너 돈 못 쓰게 막은 거야? 예전엔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정루아는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러게.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이연희는 마음이 아파와 말했다.“루아야, 돈은 내가 네 계좌로 보내줄게. 너 그 반지 정말 좋아했잖아. 그냥 갖고 있어.”“아니.”정루아의 목소리가 가볍게 흘러나왔다.“그 사람에 관한 모든 건 이제 나한테 필요 없어.”한참 후에야 이연희는 힘겹게 답했다.“알겠어.”반지를 올리자마자 문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4년 전 600억이었던 반지는 이제 절반의 값어치도 갖지 못했다.그래도 정루아는 최대한 비싸게 팔고 싶었다. 그래야 당장 숨통이 트일 테니까.이연희가 말했다.“차라리 다시 일하는 건 어때? 결혼하고 나서 일을 그만둬서 그렇지, 지금 업계는 너 같이 실력 좋은 인재를 많이 필요로 해.”정루아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너무 오래 쉬었는데 괜찮을까?”“루아야, 자신감을 가져! 네가 몇 년 전에 세었던 기록 잊었어? 네가 더빙한 드라마 조회수가 억을 넘었고, 네가 내레이션을 맡았던 광고는 매출이 폭등했어! 팬들은 지금도 네 복귀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정루아는 예전 잘 나가는 성우였다. 목소리 하나로 어떤 역할이든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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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정루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매끈하게 자리 잡은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구태윤이 심하게 다쳤는데 주치의란 사람이 출장을 갔다고?그녀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문틀에 기대선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주치의 바꿔야겠어.”개인 주치의는 구씨 가문을 위해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전담 의사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구씨 가문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응.”구태윤은 간단히 대답하고는 힘겹게 두어 번 기침을 했다.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정루아는 그가 정말로 죽어버릴까 봐 두려웠다.그러면 이혼도 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늘한 기운을 얼굴에 덮어쓴 채 그에게 다가갔다.구태윤은 큰 몸을 살짝 비틀거리며 천천히 그녀 뒤를 따라갔다.정루아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의 팔을 잡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는 침대 쪽으로 데려갔다.그 순간, 구태윤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고, 떨리는 속눈썹 아래 눈동자는 낮게 깔려 있었다.“루아야. 그래도... 아직 내가 걱정되는 거지?”그가 돌연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였지만 말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정루아는 그를 침대 가장자리에 앉히고 내려다보며 말했다.“난 그냥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야.”구태윤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죽으면 오히려 좋지 않아? 번거로운 이혼 절차 없이 자유를 얻을 수 있잖아.”정루아는 약상자를 열며 담담하게 말했다.“구태윤, 난 널 8년 동안이나 사랑했어. 네가 날 수없이 아프게 했어도, 내가 널 사랑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는 건 보고 싶지 않아.”너무도 평온한 목소리였다.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같았다.“돌아서.”구태윤은 넋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군가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답답함에 숨이 막혀왔다.“루아야...”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정루아의 손을 잡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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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구태윤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졌다.“본가에서 온 전화야.”그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집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노부인께서 방금 쓰러지셨어요!”구태윤의 얼굴이 즉각 굳어졌다.“알겠어요. 지금 갈게요.”정루아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이 거짓말쟁이!”“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에 계신대.”남자는 그녀를 쳐다보며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가야 해.”정루아는 고개를 돌렸다.“난 안 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정루아.”그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더해졌다.“아직 우린 이혼 안 했어. 가봐야 해.”차 안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정루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태윤은 그대로 시동을 걸고 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복도, 응급실 앞에는 구씨 본가의 집사가 서 있었다.“도련님, 오셨군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노부인께서 정원에서 산책하시다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어르신과 큰 사모님께도 연락드렸는데 오시려면 빨라도 사흘은 걸린다고 하십니다.”구태윤의 준수한 얼굴은 어둡게 경직되어 있었다.“의사는 뭐라고 했어요?”집사는 고개를 저었다.“아직 응급 처치 중입니다.”“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병원 최고 의료진을 호출했다.정루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냉담한 얼굴로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박정란은 다행히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 지금은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정시연과 구하준도 잇따라 도착했다.박정란이 손을 내밀자 정시연은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어 박정란의 시선이 구태윤에게로 옮겨갔다. 그녀는 흐릿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승태야...”형의 이름이었지만 구태윤은 정정하지 않고 박정란의 손을 잡아주었다.박정란은 힘겹게 웃으며 두 사람의 손을 겹쳐 잡았다.“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한편 정루아는 물을 사러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그 장면을 목격했다.그녀가 손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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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루아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정시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는 황급히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구태윤의 얼굴에 튄 물을 닦아주었다.구태윤은 그녀를 밀어내고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정루아를 바라보았다.“할머니 곁엔 사람이 필요해. 너 먼저 돌아가. 운전기사 불러줄게.”정루아는 물병을 으스러질 듯 움켜쥐었다.“간병인을 부르든지, 집사에게 시키든지 하면 되잖아. 아무튼 오늘 당신은 반드시 나랑 이혼하러 가야 해.”“이런 망할 것!”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정석주의 고함이었다.임혜숙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정석주가 험악해진 얼굴로 말했다.“정루아, 내가 전에 뭐라고 경고했는지 다 잊어버린 거냐?”임혜숙이 서둘러 정루아의 손을 붙잡았다.“루아야, 노부인께서 깨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이런 때에 그런 말로 어르신을 자극하면 안 돼.”한 사람은 불같이 그녀를 꾸짖었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러운 말로 달래고 있었다.정루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저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계세요?”그 순간 구태윤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그는 정루아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루아야, 내가 데려다줄게.”아까까지만 해도 사람을 시켜 돌려보내겠다더니, 지금은 그녀가 정관수술 사실을 발설할까 봐 직접 나서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정루아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구태윤은 형의 아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정시연과 불륜...”“정루아.”정석주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시연이는 네 언니야!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어? 두 사람이 불미스러운 관계라고? 의심이 되면 증거를 내놔! 고작 네 망상으로 제멋대로 네 언니의 명예를 짓밟지 말란 말이야!”“저 여잔 제 언니 아니에요!”정루아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눈시울까지 붉게 물들었다.“저 여잔 성이 소 씨이지 정 씨가 아니잖아요! 전 저 여자 존재 인정한 적 없어요!”“네 의사는 필요 없어.”정석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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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 말에 정석주와 임혜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정석주가 굳어진 얼굴로 구태윤을 노려보며 말했다.“자네 그게 무슨 뜻인가?”구태윤의 시선은 줄곧 정루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희고 고운 볼 위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그의 눈동자 깊숙이 어두운 파도가 일었다. 그는 더 단단해진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할머니 쉬셔야 한다고 했습니다.”구태윤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러니 돌아가 주세요.”노골적으로 두 사람을 쫓아내는 말이었다.박정란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 제쳐두고 부랴부랴 달려왔건만, 이런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정석주는 심각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차갑게 손을 휘젓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임혜숙은 가슴 아프게 정루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루아야, 얼굴에 얼음 올려놓고 붓기 가라앉혀. 네 아빠 홧김에 그러신 거야. 나중에 화가 가라앉으면 분명 후회하실 거야.”정루아는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려왔다.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그녀는 돌연 정시연의 앞으로 다가가 있는 힘껏 뺨을 후려쳤다.“악!”정시연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엄마!”그 장면을 본 구하준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우리 엄마 왜 때려요! 나쁜 사람! 나쁜 사람!”세 살짜리 어린아이인지라 몸을 부딪쳐와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정루아는 그것조차 견딜 수 없어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섰다.그 바람에 구하준이 바닥에 넘어져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나쁜 여자! 우리 엄마 때리고 나도 때렸어! 으앙!”순식간에 병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임혜숙은 바로 정루아를 밀치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언니를 때려!”그리고는 정시연을 끌어안고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 많이 아프니? 내가 가서 얼음 가져올게.”정시연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녀가 가련한 얼굴로 말했다.“엄마, 전 괜찮아요... 루아가 화가 나서 그런 거잖아요. 전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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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골방이라 불리는 그곳은 정씨 가문 저택 정원 깊숙한 곳에 자리한 허름한 잡동사니 창고였다.하지만 정루아가 열 살이 된 해부터 그곳은 감옥이 되었다.그리고 그 안에 갇히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그녀였다.왜냐하면 그해 소시연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소시연은 그녀보다 두 살이 많았다.엄마가 웃으며 정루아에게 말했다.“루아야, 너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잖아. 이제부터 시연이가 네 언니 하면 어떨까?”그녀는 그때 진심으로 신이 나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그날부터 그녀는 자신이 아끼던 장난감을 하나둘 소시연에게 내주며 함께 놀았다.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그녀도 드디어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일이 터져버렸다. 그네를 타고 있는 소시연을 본 정루아가 같이 놀고 싶다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소시연이 불현듯 그네에서 떨어져 버렸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아빠를 본 소시연이 울면서 말했다.“루아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저 안 아파요...”그 일로 아버지는 정루아를 호되게 꾸짖었다.그녀는 너무나 억울했다. 정말로 소시연을 밀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리고 며칠 뒤 소시연이 앞에서, 정루아가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돌연 소시연이 밑으로 굴러떨어졌다.정루아는 화들짝 놀라 계단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소시연은 울면서 그녀를 올려다봤다.“루아야, 왜 날 민 거야? 너무 아파... 흑...”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골방에 갇히게 되었다.아빠와 엄마는 번갈아 가며 들어와 그녀를 훈육했다.아빠가 처음으로 그녀를 때린 것도 바로 그날이었다.그녀는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정말 밀지 않았는데...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사흘 동안이나 골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허기에 시야가 흐릿해질 때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그날 이후 그녀는 알게 되었다. 소시연은 거짓말쟁이라는 걸. 하여 더 이상 그녀와 같이 놀지 않았다.그 때문에 골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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