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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낙화
구태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짙은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정루아, 이혼하고 나서 후회하지 마.”

정루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단호하게 내뱉었다.

“사인이나 해.”

후회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매일 밤 저 모자의 곁을 떠나 자신에게 돌아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릴 수 없는 법이다.

그녀는 결코 대인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속이 좁은 여자였다.

그를 사랑했기에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참아왔고, 그 정도면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태윤은 그녀의 진심을 쓰레기 취급하며 내팽개쳤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줄 마음 따위는 없었다.

정루아는 구태윤이 사인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뼈마디가 굵은 손이 만년필을 쥐고 휘갈기듯 이름을 써 내려갔다.

사인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이혼 합의서를 낚아챘다.

“내일 가정법원에서 봐. 바람맞히지 말고.”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섰다.

구하준은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다.

구태윤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달래주었다.

“하준아, 울면 대장부가 아니지. 대장부는 늑대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거야.”

구하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는 울음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저 대장부 할래요. 늑대 때려줄 거예요.”

“그래, 우리 하준이 장하구나.”

구태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칭찬을 건넸지만 눈에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정시연이 자책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 제 탓이에요. 하준이가 갑자기 열이 펄펄 나니까 너무 당황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나 봐요. 나 때문에 루아가 이혼 소리까지 하게 된 것 같은데... 태윤 씨, 얼른 가서 붙잡아요. 하준이는 어떻게든 내가 돌볼게요.”

“됐어요.”

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작 애를 상대로 화를 내다니, 아직도 철이 저리 없어서야. 이참에 루아도 교훈을 좀 얻어야 해요.”

“하지만 이혼하겠다고 하잖아요.”

정시연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그럴 리 없어요.”

구태윤의 말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형수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하준이는 제가 돌보면 돼요.”

정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래요. 내가 하준이 엄마인데 아픈 자식을 두고 가버리면 모양새가 말이 아니죠.”

구태윤은 묵묵히 눈을 내리깔았다.

확신에 찬 말투와 달리 마음 한구석에는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동안 구하준 문제로 정루아가 날을 세운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적당히 달래주면 금방 풀리곤 했다.

더욱이 이혼하자는 말을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갑자기 이혼이라니?

수법이 그새 업그레이드된 건가? 대체 뭘 더 얻어내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거지?

...

이혼 합의서를 받아내자 마음속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온 정루아는 술 한 병을 남김없이 비우고 나서야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튿날 눈을 떴을 때, 허리춤이 묵직했다.

코끝에는 맑고 서늘한 체취가 맴돌았고, 등 뒤로는 남자의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를 돌아보니 언제 돌아왔는지 구태윤이 그녀의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어젯밤 이혼 합의서에 도장까지 찍은 사이인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한 자세를 취했다.

정루아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잠든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처음엔 그저 외모에 홀려 첫눈에 반했다.

이후 지진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해내며 인연은 점점 깊어졌다.

같은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구태윤은 그녀에게 고백하며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땐 참 바보 같은 사람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누가 평생을 약속하냐고.

어느덧 그의 진심에 속절없이 빠져든 정루아는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며 정말 죽을 때까지 함께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의 남자가 아니었다.

구태윤의 옆자리는 이미 다른 모자가 차지해 버렸다.

그녀는 지독하게 속 좁은 여자였다.

그의 세상에서 더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면 기꺼이 버리고 걸어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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