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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도로 물어본 것이었다.두 사람이 대체 언제까지 엮일 생각인지, 이 유치한 짓거리들이 정말 재미가 있긴 한 건지.하루라도 빨리 이혼 도장을 찍어 주면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 떠날 텐데.그때가 되면 구태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조카에게도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정시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루아야, 너 왜 아직도 나랑 태윤 씨 관계를 오해하는 거야? 우린 정말 결백해.”정루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시시해.”이내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정시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뒤, 장옥경에게 전송했다.사진을 확인한 장옥경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그녀는 곧바로 구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 무슨 일이에요?”구태윤의 목소리는 지극히 냉담했다.“어휴... 너 엄마 걱정 좀 안 시키면 어디가 덧나니?”장옥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구태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어제 분명히 다 이야기 끝냈잖니? 정시연 일 관두기로 해놓고 오늘 왜 또 출근하게 한 거야?”장옥경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정 그리 회사 다니고 싶다면 다른 데서 구하라고 해. 이 넓은 도시에서 일할 곳이 거기밖에 없어? 왜 하필이면 루아 눈앞에 얼쩡거리게 만드냐고.”구태윤의 목소리가 한 층 더 가라앉았다.“엄마, 이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보다 이번에 본가에 내려오신 지 꽤 된 것 같은데, 병원에서 복귀하라고 재촉 안 합니까?”장옥경은 할 말을 잃었다.이런 불효자 자식!“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때도 대놓고 네 형수 편만 드는데, 집을 비우면 얼마나 개판일지 불 보듯 뻔하구나.”장옥경이 코웃음을 쳤다.“나 당분간 안 돌아갈 거니까, 쫓아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마.”그녀는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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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좋아요.”정루아는 단번에 수락했다.세상에 공짜로 일해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두 사람은 함께 회사를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강우현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아, 맞다. 새로 계약한 차가 출고되려면 며칠이 걸려서요. 오늘은 루아 씨 차로 움직여야겠어요. 나 좀 태워다 줄래요?”정루아의 눈이 동그래졌다.“그게 무슨 소리에요? 밥 사 준다더니 운전 서비스까지 받으시겠다?”강우현은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택시 탈까요?”정루아는 말없이 그를 흘겨보고는 부루퉁하게 말했다.“타세요.”강우현은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차는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이때, 커다란 기둥 뒤에서 정시연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고, 조금 전 상황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찍혔다.정시연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곧이어 그 사진을 전송하며, 익명으로 구태윤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정루아는 강우현의 지갑을 제대로 털어 줄 작정으로 일부러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고급 레스토랑을 골랐다.하지만 강우현은 예상외로 덤덤했다.그저 거침없이 주문하는 정루아를 보며,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아까 날려 먹은 알바비를 밥값으로 채우려는 속셈인 건 알겠는데, 진짜 다 먹을 수 있긴 해요?”정루아는 종업원에게 메뉴판을 넘겨주며 뻔뻔하게 대꾸했다.“남기면 포장하죠, 뭐. 안 돼요?”“되고말고요.”정루아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본론을 꺼냈다.“근데 팀장님, 정시연 곧 퇴사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대체 왜 아직도 회사에 붙어 있는 거예요?”강우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날 본인이 직접 나한테 말한 건데, 마음이 바뀌었나 보죠.”정루아는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입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하여간 말 바꾸기는 일등이라니까.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람.’“루아 씨, 혹시 구 대표님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요?”강우현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떠보았다.“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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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장유성은 말을 마치고 옆에 앉은 강우현을 흘겨보았다.‘대놓고 너 들으라고 한 소리’라는 티를 팍팍 내는 눈빛이었다.하지만 강우현은 들은 척도 안 한 채, 덤덤한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정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는 말씀이네요. 명심할게요.”장유성은 그녀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자 속으로 은근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 인간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루아 씨, 둘이서만 밥 먹으면 무슨 재미예요. 그러지 말고 저도 끼워줘요. 원래 여럿이 왁자지껄하게 먹어야 맛있는 법이거든요.”그러나 정루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단칼에 거절했다.“그건 좀 곤란한데요. 저 지금 팀장님과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요.”장유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저 진짜 입 무겁거든요? 설마 제 말 못 믿으시는 거예요?”“네.”정루아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입이 무겁다고? 여기서 나가자마자 구태윤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다 일러바칠 게 뻔했다.미쳤다고 그의 말을 믿겠는가.장유성이 황당해서 어안이 벙벙한 그때,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강우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장유성은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이봐요, 지금 뭐가 좋다고 웃습니까?”강우현은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그냥 재밌는 얘길 들었을 뿐인데, 웃는 것까지 간섭하게요?”이내 정루아를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루아 씨 친구분, 진짜 대단하시네. 사람 웃지도 못하게 하고 말이야.”하지만 정루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내 친구 아니에요.”“루아 씨?”장유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우리가 친구가 아니라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섭섭합니다.”과장된 몸짓으로 서운함을 어필하는 그를 보며, 정루아는 투명하리만치 맑은 눈망울로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여태껏 말 한 번 놓은 적도 없는데 친구는 무슨.”장유성은 저도 모르게 코를 쓱 만졌다.‘아니, 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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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정루아는 연신 백미러를 살폈다.뒤따라오는 차는 한눈에 봐도 고가인 데다 번호판까지 낯이 익었다.그녀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앞쪽 코너를 돌자 차량 흐름이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정루아가 핸들을 꺾으려던 순간, 뒤를 밟던 차가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깜짝 놀란 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내 황급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미쳤나? 들이받으려는 건가?’정루아는 얼굴을 잔뜩 굳힌 채 두 손으로 핸들을 꽉 맞잡았다.옆에서 지켜보던 강우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뒤에 아는 사람이에요?”정루아가 짤막하게 대답했다.“미친놈이 하나 있어요.”강우현은 황급히 손잡이를 붙잡으며 얼굴을 굳혔다.“우, 우리 별일 없겠죠?”정루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잔뜩 겁먹은 반응이 왠지 웃겨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걱정 마세요, 죽진 않으니까.”그 말이 더 무서웠다.뒤차는 끈질기게 추격해 왔고, 정루아 역시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원래대로라면 강우현의 집까지 시간이 좀 더 걸려야 했지만, 10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차가 멈춰 서자 강우현은 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문을 열고 집을 향해 도망치듯 뛰어갔다.이내 정루아도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뒤쪽에 멈춰 선 차를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거칠게 창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큰 키에 늘씬한 실루엣의 남자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정루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하지만 곧이어 손목이 덥석 붙잡히고 말았다.손바닥에서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그녀의 안색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구태윤, 갑자기 왜 이래? 미쳤어?”줄곧 뒤를 밟아 대던 미친놈의 정체는 예상대로 구태윤이었다.조금 전엔 정말로 제 차를 들이받을 기세였기에 심장이 여전히 쿵쾅거렸다.구태윤은 손목을 움켜쥔 채, 순식간에 몸을 돌려 그녀를 차로 거칠게 밀어붙였다.머리 위로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펼쳐졌고, 가로등 불빛이 밤의 한기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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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정루아는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좋아. 정시연이랑 구하준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도 당신 말 들을게.”그리고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물기 어린 눈망울에 도발과 조롱이 한데 뒤섞였다.“어떻게, 할 수 있겠어?”“난 형수님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구태윤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러니까 나한테는 너무 불공평한 거래잖아.”정루아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조소로 바뀌었다.“그럼 나도 당신 말 안 들을 거야. 비켜.”거대한 몸에 짓눌린 탓에 그녀는 옴짝달싹 못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하게 입을 맞추었던 사이였다.그러나 싸늘한 눈빛은 소외감이 느껴질 만큼 냉정했다.뜨거운 입맞춤조차도 그녀의 흥미를 끌어올리진 못했다.정루아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매정하게 돌아섰다.구태윤은 이를 악물었다.이내 조수석 문을 벌컥 열더니 그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정루아는 어안이 벙벙했다.“뭐 하는 짓이야!”구태윤이 몸을 숙여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칠흑 같은 눈동자가 집요하게 빛났다.“루아야, 일 그만둬.”순간, 정루아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겼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뭐라고? 지금 나보고 회사를 그만두라는 거야? 구태윤, 너 이 개자식!”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향해 따귀를 날렸다.이번에 구태윤은 피하지 않았다.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그녀를 보고도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 말 안 들을 거면 일도 하지 마.”“싫어!”정루아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구태윤, 똑똑히 들어. 만약 회사에 압력 넣어서 나 해고하기만 해봐. 절대 가만히 안 있을 거야!”구태윤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대답 없었다.대신 안전벨트를 끌어당겨 채워 준 다음 운전석에 올라탔다.차가 향한 곳은 정수원이었다.“내려.”구태윤이 대뜸 말했다.그러나 정루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싸늘한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구태윤은 차 옆에 서서 온몸의 가시를 바짝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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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정루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갑자기요? 무슨 사고라도 친 거예요?”강우현이 씁쓸하게 답했다.“저도 몰라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받았어요.”그는 이미 짐 정리를 끝냈는지, 커다란 종이상자를 품에 안은 채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정루아는 슬며시 시선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겼다.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구태윤의 짓이었다.그녀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더니, 타인의 밥줄을 끊어 놓을 줄이야.감탄이 나올 정도였다.정루아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구태윤의 번호를 눌렀다.신호음이 세 번쯤 울렸을까,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낮고 매력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응, 루아야.”“우리 부서 팀장님 해고당한 거, 당신 짓이지?”정루아는 단도직입적으로 추궁했다.구태윤의 어조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나한테 화내는 거야?”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일 뿐인데도 위험한 기류가 생생하게 뿜어져 나왔다.정루아는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이건 너무 하잖아! 팀장님은 아무 잘못도 안 했어.”휴대폰 너머의 남자가 낮게 헛웃음을 터뜨렸다.“둘이 같이 밥도 먹고, 너한테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잖아. 그걸로 부족해? 루아야, 나 그렇게 속 넓은 놈 아니라고 했을 텐데. 네 주변을 얼씬거리는 새끼들은 전부 죽여버리고 싶어.”정루아는 숨이 턱 막혔다. 이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인간이었다.이로써 확실해졌다. 강우현이 해고당한 건 순전히 자신 탓이었다.정루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바로 장옥경에게 전화를 걸었다.“루아야, 무슨 일이니?”“어머님, 제 친구 일자리 하나만 알아봐 주실 수 있으세요?”정루아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장옥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응? 친구? 무슨 일을 한대?”정루아는 강우현의 상황을 대략 설명하며, 구태윤이 난데없이 그를 해고했다는 사실도 함께 전했다.그 말을 들은 장옥경은 잠시 침묵했다.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루아야, 태윤이가 이미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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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장옥경은 강우현의 일자리를 알아봐 준 뒤, 안색이 잔뜩 굳어진 채 방 안을 초조하게 서성였다.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하다니, 생각할수록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정루아라는 아이는 갈수록 실망만 안겨줄 뿐이었다.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안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머님.”휴대폰 너머로 깍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장옥경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소희야, 태윤이 비서로 다시 돌아간 거니?”안소희는 몹시 낙담한 목소리로 답했다.“어머님,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어요. 대표님이 절 아예 만나주지도 않으세요. 번호도 차단당했는지 연락도 안 돼요.”장옥경은 한숨을 푹 쉬었다.“그 아이 성격이 워낙 고집스러워서 한번 마음먹은 건 쉽게 바꾸지 않는단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 마. 내일 저녁에 큰 연회가 하나 있는데 나랑 같이 가자꾸나. 태윤이도 올 테니, 얼굴 보고 진지하게 얘기해 보렴. 네가 자길 도우려 한다는 걸 알면 분명 마음이 약해져서 곁에 남겨두려고 할 거다.”안소희의 목소리가 이내 활기를 띠었다.“네, 알겠습니다.”장옥경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오늘 시간 있니? 나랑 같이 숍에 가서 관리나 받자꾸나.”“네, 좋아요!”...다음 날, 연회 초대장이 구태윤의 사무실 책상 위에 놓였다.구태윤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네가 대신 참석해.”한민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이번 연회에 배씨 가문은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어요. 내내 해외에 머물던 장남의 귀국을 널리 알리는 자리라, 대표님께서 참석하지 않으시면 향후 협업을 진행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끝을 흐렸다.“게다가 사모님께서도 대표님은 꼭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배씨 가문 사모님이랑 오랜 친구 사이라, 자식 된 도리로 당연히 가야 한다고...”구태윤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곧이어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래? 그럼 남은 업무는 나랑 같이 밤새워서 처리하는 걸로 하자.”한민혁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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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순간, 정루아의 안색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래서 임혜숙이 어젯밤에 갑자기 전화가 왔단 말인가?하지만 거절하는 바람에 이 기회를 정시연에게 넘겨주게 된 꼴이었다.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정루아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곧이어 이연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나도 가야겠어.”장차 정원 그룹은 그녀의 몫이 될 것이다.비록 지금은 경영에 소질이 없을지라도, 나중에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면 그만이었다.따라서 연회에 참석해 얼굴을 비추는 중요한 기회를 절대 정시연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이연희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응, 응! 당연히 가야지. 오후에 조퇴하고 나랑 같이 숍 가자. 메이크업도 새로 받고 드레스도 고르게.”“응.”정루아는 잽싸게 대답하고 곧바로 연차를 내러 정호를 찾아갔다.두 시간 일찍 퇴근하겠다는 말에 정호는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방금 정시연 씨도 와서 조퇴하겠다고 하던데, 둘이 사적으로 만났다가 목소리가 맛이 가서 오면 절대 안 돼요. 그랬다간 위약금 다 물어낼 각오 하세요.”정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머리채 잡고 싸우러 가는 거 아니니까.”정호는 할 말을 잃었다.이연희와 함께 회사를 나선 정루아는 먼저 드레스를 고른 뒤 메이크업을 받았다.그녀가 선택한 것은 매혹적인 와인빛 롱 드레스였다.굵은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 정교한 메이크업까지 더해지자 마치 활짝 피어난 한 송이 붉은 장미처럼 화사한 아우라를 풍겼다.배씨 가문의 연회는 청야 라운지에서 열렸다.어둠이 짙게 가라앉자 연회장 안은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찼고,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정루아와 이연희가 함께 들어서는 순간,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다만 정루아를 향한 눈길은 호의보다 탐색과 의혹에 가까웠다.심지어 몇몇은 대놓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다.“나 방금 구태윤 봤는데, 형수랑 같이 서 있더라고. 설마 둘이 같이 온 건가?”“쯧, 그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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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정루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그러고는 슬쩍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세상에, 진짜로 침대 옆에 서서 지켜본 적이라도 있나 봐요?”상대방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한술 더 떴다.“아니면 뭐... 자기가 그 여주인공이 되고 싶거나?”배다인은 술잔을 부서질 듯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이왕 오셨으니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재밌게 놀다 가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그리고 쌩하니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정루아의 입가에 조소가 번졌다.옆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이연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정루아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루아야, 너 괜찮아?”“그럼. 방금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게 누구인지 못 봤어?”정루아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이연희는 오히려 마음이 안쓰러웠다.“그 개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형수라는 작자랑 이런 공식 석상에 참석하다니, 불륜 사이라는 걸 사방팔방에 광고할 심산이래? 그럴 거면 너랑 이혼 도장부터 찍든가!”쓰레기 남편 때문에 친구가 남들의 비아냥이나 듣고, 아무나 와서 한 번씩 밟고 지나가려 하는 상황이 너무나 분했다.제게 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쫓아가 구태윤의 면상을 짓이겨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정루아는 이연희의 팔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달랬다.“됐어, 진정해. 오늘 우리 여기 온 목적이 뭔지 잊지 마.”이연희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들끓는 분노를 가라앉혔다.“그나저나 배씨 가문 장남이라는 사람은 왜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야?”정루아가 연회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말했다.“하객들이 아직 다 안 왔잖아.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가자, 우리 먼저 뭐라도 좀 먹자.”“응, 좋아.”한쪽의 뷔페 구역에는 길어지는 연회 시간 동안 가볍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정갈한 디저트들이 즐비했다.정루아가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구태윤을 발견했다.그의 곁에는 정시연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서로 잔을 부딪치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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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정루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생긋 웃었다.“왜? 나 보니까 많이 놀랐어?”구태윤의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었다.이내 그녀의 하얀 손을 슬쩍 내려다보더니, 시선을 드레스로 옮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니. 네가 찾아올 줄 알았거든.”정루아는 밀려드는 불쾌함을 꾹 눌러 담으며 겉으로는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무슨 얘기들 나누고 있었어?”구태윤이 맞은편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그러자 맨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즉시 입을 열었다.“사모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네요.”정루아가 가볍게 잔을 부딪치며 화답했다.“감사해요.”구태윤이 자연스럽게 소개를 이어가자, 정루아는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한쪽에 서 있던 정시연은 정루아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등장하자마자 주변의 시선이 온통 쏠리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술잔을 꽉 움켜쥐었다.한참을 기회를 엿보던 그녀는 마침내 틈을 타 입을 열었다.“태윤 씨, 이번 일은 정말 고마워요. 다 태윤 씨 덕분이에요.”“아닙니다.”구태윤이 무심하게 대답했다.정루아는 귀를 쫑긋 세웠다. 속으로 의아한 반면, 경계심도 늦추지 않았다.‘또 정시연을 뭘 도와준 거지?’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구태윤이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오 대표님, 조만간 제 비서가 연락드릴 겁니다. 그때 우리 형수님과 구체적인 사항을 상의하시면 됩니다.”오범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구태윤은 곧바로 정루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사람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정루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쏘아붙였다.“이번엔 또 뭐야?”“왜? 질투해?”구태윤은 이목구비가 또렷한 여자의 얼굴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물었다.정루아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내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면 어디가 덧나?”“질투한다고 인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구태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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