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루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지더니,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왠지 나보다 네가 더 안달이 난 것 같다?”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억울하게 당하는 꼴을 차마 눈 뜨고 못 보겠었어서 그러지, 뭐. 게다가 나중에 이혼하면 내가 냉큼 낚아채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기도 하고.”정루아의 눈썹이 씰룩였다.“농담도 꽤 그럴싸하게 하네.”허도준이 웃음을 터뜨렸다.“당연히 농담이지. 설마 나 진심으로 한 소리라 생각했냐? 근데 네가 속 썩이는 거 못 보겠다는 말은 진심이야. 지금이야 뾰족한 수가 없으니 기다린다지만, 구태윤이 보통 악랄한 놈이 아니잖아. 재판 날짜까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번엔 우연히 사고가 터졌다 쳐도, 다음번엔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니까.”“그래, 알았어.”정루아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의 말을 흘려들었다.이번 사건은 온전히 자신을 타깃으로 했기에 구태윤이 모든 걸 예측해 가며 판을 짰을 리 없었다.전화를 끊고 병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김철웅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루아 씨, 지금 시간 좀 되십니까? 얼굴 좀 보죠.”정루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첫 번째 일에 대해 뭐가 좀 나왔나요?”“네.”정루아가 짧게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좋아요. 조용한 데로 장소 잡아서 연락할 테니까, 그쪽으로 오세요.”“알겠습니다.”...다실 안은 은은한 찻내음으로 그득했다.방과 방 사이의 간격이 널찍한 데다 창밖으로 탁 트인 풍경까지 내다보이는 구조라, 엿듣는 이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김철웅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지막이 말했다.“루아 씨, 이런 데는 어떻게 찾아낸 겁니까? 아주 고풍스럽고 좋네요.”정루아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예전에 남 따라 한 번 와본 적 있어요.”이내 맞은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일단 앉아요. 차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하죠.”하지만 김철웅은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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