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루아는 어깨를 으쓱했다.“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할 수 없죠.”말을 마치고는 일어나서 송문애의 곁으로 다가갔다.아까만 해도 잔뜩 날이 서 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할머니,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송문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녀를 바라보았다.“며칠 전보다 훨씬 낫네.”정루아는 탁자에 놓인 사과를 집어 들고 능숙하게 껍질을 깎기 시작했다.옆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임혜숙을 완전히 투명 인간 취급했다.지독한 무관심에 임혜숙은 서러운 반면, 분노가 치솟았다.한 명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이고, 한 명은 자신이 낳은 자식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진짜 정시연의 털끝만도 못 미쳤다.결국 씩씩거리며 병실을 나섰다.그녀가 떠나자, 싸늘하게 얼어붙었던 병실 안의 공기가 금세 훈훈해졌다.“할머니, 저를 탓하시는 건 아니죠?”정루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조용히 물었다.“바보야.”송문애가 주름진 손으로 손녀의 뺨을 쓸어내렸다.“다 너 살려고 악쓰는 건데, 이 할미가 왜 널 탓하겠어? 네 엄마가 나 챙긴답시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머릿속엔 온통 그년이랑 양딸밖에 없어서 정작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뭐 하러 저런 사람한테 장단 맞춰주겠어.”정루아가 고개를 들었다. 맑은 눈동자는 봄바람처럼 따사로웠다.“네! 우리 앞날을 위해서라도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이내 넌지시 물었다.“참, 저 주기언이랑 김철웅 만났어요.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동안 왜 한 번도 언급 안 하셨어요?”송문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내 나이가 몇인데, 진작에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야. 그 녀석들은 전부 보육원 출신이야. 예전에 내가 후원해 줬더니, 졸업하고 나서 찾아왔길래 거둬주었지. 회사 경영도 맡기고 재산 관리도 시켜봤는데 아주 믿음직하더라고.”“그렇군요.”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들 만나자마자 엄청 큰 도움이 되었어요.”“이게 다 내 탓이다.”송문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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