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Bab 271 - Bab 280

306 Bab

제271화

구태윤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싸늘한 목소리는 살기가 묻어났다.“말이 길다?”“어라? 화났냐? 구태윤이 화내는 꼴도 보고 말이야. 알았어, 더 건드렸다가는 폭발하겠네. 입국하면 너한테 연락하라고 할게.”수화기 너머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진심으로 짜증 났음을 눈치채고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응.”구태윤이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였다.“참...”상대가 문득 말을 이었다.“전에 네가 알아보라고 했던 거, 단서가 좀 잡혔어.”구태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용건만 한꺼번에 얘기해.”“어허, 지금 덕 볼 놈이 태도가 그게 뭐야? 똑똑히 들어, 나한테 싹싹하게 굴지 않으면 이 정보는 영원히 땅속에 묻어둘 줄 알아.”상대도 기분이 상했는지 콧방귀를 뀌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구태윤은 어이가 없었다.골치 아픈 녀석 같으니라고....송문애는 배진욱을 반갑게 맞이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하게 마음에 끌리던 청년이었다. 과하지 않고 편안한 매력이 좋았다.배진욱은 송문애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그 시각, 임혜숙은 정루아를 끌고 나가서 나직하게 물었다.“루아야, 너 배씨 가문 도련님이랑 어떤 사이야?”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제법 친해 보였다.정루아가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냥 지난번 연회에서 알게 됐어요.”임혜숙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더니 입을 열었다.“둘이 사이가 꽤 돈독한 모양이네. 그 사람한테 잘 좀 부탁해서 우리 회사랑 프로젝트 하나 따내 주면 안 될까?”정루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정시연한테 들어간 투자금 당장 빼라고 한 게 언제인데, 처리하긴 했어요?”임혜숙이 눈살을 찌푸렸다.“루아야, 언니한테 그렇게까지 옹졸하게 굴어야겠니.”정루아가 냉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무슨 명목으로 배진욱한테 부탁해요? 지분 하나 없는 회사 살리겠다고, 배성 그룹이랑 정원 그룹이 손잡고 번 막대한 돈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란 소리예요?”꿈도 참 야무졌다.임혜숙도 열을 받았는지 언성을 높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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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잇따라 밖으로 걸어 나왔다.정루아가 입을 열었다.“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진욱 씨, 고마워.”배진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너무 부담 갖지 마. 할머니 도와드리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터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 뿐이야.”정루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그럼 당장 부탁 하나 해도 돼?”“뭔데?”“회사까지 태워다줘. 나 이제 출근해야 하거든.”배진욱이 싱긋 웃었다.“그래.”...정시연의 회사는 여느 신생 기업과 달리, 정원 그룹과 구명 그룹의 투자와 구태윤의 인맥까지 더해 금세 프로젝트를 따내며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았다.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원 그룹이 투자를 철회한다니.어젯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정시연은 휴대폰이 부서지라 꽉 움켜쥐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 속엔 독기가 끓어올랐다.빌어먹을!그동안 정루아를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먼저 칼날을 빼 들 줄이야.그녀는 당장 항공권부터 끊고는, 다음 날 곧바로 짐을 싸 들고 구하준을 품에 안은 채 집을 나섰다.본가에는 아이를 전담해서 돌보는 유모가 따로 있었다.정시연이 구하준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목격한 유모는 혼비백산하여 장옥경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장옥경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당장 사람들을 풀어 정시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차가 교차로 한가운데 멈춰 섰다.정시연은 구하준을 꽉 껴안고 차에서 내렸다. 빨개진 눈에는 처연함이 가득했다.“어머님, 제발 저랑 하준이 좀 보내주세요. 제가 여기 붙어 있어 봤자 짐만 될 뿐이잖아요. 하준이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 우리가 눈앞에서 사라져 주면 다들 행복해질 거 아니에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장옥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본가에서 아쉬운 소리 안 듣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애 돌볼 사람도 널렸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이 난리야?”정시연은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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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구태윤의 미간이 좁혀졌다.“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정시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은혜 갚는 셈 치고 내 이름으로 회사 차려준 건 태윤 씨잖아요. 그런데 루아가 투자를 반대한다고 해서 진짜로 손을 떼는 게 어디 있어요? 루아 심기 거스르지 않으려고 기꺼이 물러났더니, 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몰아세우냐고요!”그리고 서러움이 북받친 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품에 안긴 구하준이 고사리손으로 그녀를 토닥였다.“엄마, 울지 마...”구태윤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원 그룹은 투자를 철회하겠지만, 내 개인 자금은 유지할 거예요.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유난입니까?”정시연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루아가 부모님까지 꼬드겨서 돈을 빼게 했는데, 태윤 씨라고 뭐 별수가 있겠어요? 대체 루아한테 무슨 오해를 샀길래 저를 이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늘에 맹세하건대, 내 마음속엔 당신 형인 구승태 밖에 없어요. 만약 그 사람을 배신했다면 당장 천벌을 받아 죽어도 좋아요.”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정루아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했다.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더 비참해지기 전에 떠나게 해줘요. 하준이 데리고 당신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갈 테니까.”말을 마치고는 운전기사를 향해 소리쳤다.“당장 출발해요, 공항으로 가주세요.”하지만 기사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가 비켜주질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출발하란 말인가.그때, 구태윤이 성큼성큼 걸어왔다.정시연은 바짝 긴장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그는 뒷좌석 문을 벌컥 열더니 구하준을 끌어내렸다.“엄마, 엄마!”구하준이 버둥거리며 정시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구태윤은 아이를 안은 채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구하준, 당장 울음 그쳐.”녀석은 흠칫 놀라더니 두려움에 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구태윤이 정시연을 돌아보았다.“떠나고 싶으면 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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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구태윤이 눈살을 찌푸렸다.“엄마, 가지 마세요.”장옥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태윤아, 루아를 너무 감싸기만 하면 못써.”구태윤은 차가운 얼굴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루아는 정씨 가문 딸이에요. 그 집안 문제에선 루아가 결정하는 게 당연합니다. 생떼를 부리는 건 형수님이고요.”장옥경의 미간이 깊게 팼다.“하지만 루아가 이참에 매듭을 딱 지어주지 않으면 일 마무리가 깔끔하게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엄마는 어떻게 마무리 짓기를 원하시는데요?”구태윤이 그녀를 응시했다. 칠흑 같은 눈동자에 서늘한 한기가 일렁였다.“형수님한테 사과라도 하라는 거예요? 아니면 무조건 꼬리를 내리고 형수님의 소원이라면 무조건 들어주길 바라는 겁니까?”장옥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구태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싸늘해졌다.“과거에 날 구했던 일도 있고 하니, 마무리는 제가 짓는 게 맞아요. 루아가 굳이 책임질 이유가 뭐 있습니까? 또한, 형수님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더더욱 없고요.”응급실 앞 복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말이 맞았다. 애초에 이 소동이 벌어진 게 정루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먼저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생떼를 쓰고, 구하준을 억지로 데려가려 한 건 정시연이었다.그녀가 판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고가 일어날 리도 없었다.장옥경은 아까 구태윤이 차에 치일 뻔한 걸 보고 눈이 뒤집히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정시연의 페이스에 말려 모든 책임을 정루아 탓으로 돌렸다.하지만 머리가 식고 나니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방금 그 차 운전자는 잡았니?”장옥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미 경찰서로 넘겼습니다.”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곧이어 날카로운 일침이 들려왔다.“한번 조사해 봐. 그 도로는 평소에 차도 거의 안 다니고 속도 제한이 걸려 있는 곳이야.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나타났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단 말이야.”그녀의 시선이 구태윤의 품으로 향했다.구하준은 어느새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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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휴...”강우현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하룻밤 정도야. 다만 가능하면 내일 구 대표님이랑 같이 와 줄 수 있어요? 대체 언제까지 나를 못살게 굴 작정인지, 직접 대면해서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요.”정루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최근 들어 일이 자꾸 꼬이는 게 구태윤의 탓인 양 투덜거리던 강우현의 푸념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하지만 그녀가 아는 구태윤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코빼기조차 안 보이는 상대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뭐 있겠는가.애초에 구태윤의 눈에 강우현 따위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에 휘말렸단 말이지?잠시 생각에 잠겼던 정루아가 대답했다.“내일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요.”“그래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답답한 숨을 내뱉었다.곧이어 병원에 도착하자 병실 앞에 어두운 낯빛으로 서 있는 임혜숙을 발견했다.발소리를 들은 임혜숙이 저벅저벅 다가와 그녀의 팔을 홱 낚아채고 비상계단으로 끌고 갔다.정루아는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그러고는 냉소를 지었다.“당신 양녀처럼 직접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다음에 친딸한테 덤터기라도 씌우려고요?”짝!말이 끝나기가 무섭고 청아한 마찰음과 함께, 정루아의 뺨에 손바닥이 내리꽂혔다.임혜숙은 분노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차라리 너 같은 건 낳지 말았어야 했어.”정루아의 귓속이 멍멍하게 울렸다. 표정은 어리둥절했고, 당혹스러운 눈빛은 점차 경악으로 변해갔다.이내 손을 뻗어 자기 뺨을 만져보았다. 화끈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왜 때렸어요?”“몰라서 물어? 너 때문에 시연이가 교통사고 당해서 죽을 뻔했다고!”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임혜숙은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다.무려 십수 년을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지 않은가.늘 마음의 빚을 져 온 아이였다. 자칫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대체 무슨 낯으로 은인들을 대할 것인가.당시 그 부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은 지금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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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정루아는 입술을 깨물고 치솟는 감정을 억눌렀다.당장 병실로 들어서는 대신 밖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나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송문애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간이침대에 앉아 외할머니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에 곪아 있던 상처를 도려내듯, 아픈 기억을 꺼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이제 더는 기대도, 바람도 없었다.냉혹한 현실 앞에서 아무리 슬퍼해도 무용지물이었다.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정석주 부부가 자신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다.만약 정시연에게 돈을 한 푼이라도 쥐여주는 날이 오게 되면 절대 가만 있지 않을 터였다.정원 그룹의 운명은 제 손에 들어오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다음 날, 임혜숙은 나타나지 않았다.송문애도 별말이 없었다.다만 손녀의 얼굴이 유독 수척해진 것을 알아채고는 걱정스레 물었다.“루아야, 어제 잠을 설쳤니?”정루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야근을 좀 했더니 피곤하네요.”송문애가 말했다.“적당히 쉬어가며 일해야지, 이러다 몸 상할라.”정루아는 순순히 대답했다.“네, 알았어요. 할머니 말씀대로 할게요.”그리고 세 명의 간병인을 다시 불러들여 계속해서 송문애를 돌보게 했다.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곧바로 출근한 정루아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전화 한 통을 받았다.“안녕하세요. 혹시 정루아 씨 되십니까?”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누구시죠?”정루아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저는 주기언이라고 합니다. 송문애 어르신의 위임을 받아 자산을 정루아 씨 명의로 이전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잠시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정루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깜빡 잊고 있었다.문득 외할머니가 쓰러지기 전,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녀에게 넘겨주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외할머니는 어쩌면 그때 병세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내린 결정인지도 모른다.정루아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씁쓸한 감정이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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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외할머니께서 믿고 맡기신 분이니 저도 의심 안 해요. 앞으로도 계속 제 일을 도와주세요.”정루아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사인을 마치고 나니 손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종이 쪼가리들에 적힌 어마어마한 수치들이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다.이내 주기언을 바라보며 물었다.“경호 업체는 지금 동성에 있나요?”주기언이 대답했다.“원하신다면 이전 가능해요.”“그럼 부탁드릴게요.”정루아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알겠습니다.”주기언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물었다.“루아 씨,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참에 같이 처리해드릴게요.”정루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생각 좀 해 보고 연락드릴게요.”“네, 생각이 나면 아무 때나 문자 주세요.”두 사람은 이미 연락처를 교환한 상태였다.“알겠습니다.”정루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주기언이 서류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사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고작 몇 푼 쥐고 떵떵거리던 평범한 졸부에서, 하룻밤 사이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쥔 자본가로 격상한 순간이었다.그리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정루아는 곧바로 주기언에게 문자를 보냈다.[이혼 소송을 전담할 전문 변호사팀이 필요해요.]곧바로 답장이 왔다.[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정루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회사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비록 신분과 재산은 예전과 천지 차이였지만, 당장 손에 쥔 업무는 끝까지 매듭지어야 했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자, 오후에 주기언으로부터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연락이 도착했다.이렇게까지 일 처리가 빠를 줄이야.정루아는 내심 감탄했다. 곧바로 허도준의 연락처를 넘겨주며 두 사람이 직접 연락을 취하도록 조치했다.이혼과 관련된 실무는 줄곧 허도준 쪽 인력이 전담해 처리하고 있었던 터였다.퇴근길에 오른 정루아는 우선 병원으로 향해 주기언을 만나고 온 사실을 외할머니에게 털어놓았다.송문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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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눈앞의 강우현은 처음 만났을 때 당당한 모습과 달리 폭삭 삭아 있었다.서늘한 눈빛에 원망이 어렸지만,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정루아는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다른 회사로 옮겨보는 건 어때요?”“이미 세 번이나 이직했어요.”강우현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근데 갈 때마다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확실히 누군가 작정하고 나를 매장하려는 거구나 싶었죠.”그는 앞에 놓인 음식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쑥 술병을 집어 들어 제 잔에 술을 채웠다.술잔을 단숨에 털어 넣은 다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루아 씨, 제발 구태윤 만나게 해줘요.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할게요.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그만 좀 괴롭혀달라고 하면 안 돼요?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못 살겠어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직장 내 괴롭힘.강우현은 비로소 진정한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그에게는 분명 능력이 있었다.주변 사람들은 겉으로 능력을 치켜세워 주는 척하면서도, 뒤로는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철저히 짓밟고 기회를 빼앗았다.멘탈이 바스러질 때까지 몰아붙이고,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며 끝내 벼랑 끝으로 떠밀었다.정루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내 휴대폰을 꺼내 구태윤에게 전화를 걸며 말했다.“제가 내막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 당장 전화해서 물어볼게요.”강우현은 술잔을 꽉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씁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래요.”신호음이 세 번 울리더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루아야.”구태윤의 어조는 한없이 다정했다.그녀가 먼저 연락해올 때마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정루아의 말투는 싸늘했다.이내 복잡한 눈빛으로 물었다.“강우현 씨 괴롭히는 사람, 당신이야?”구태윤은 어리둥절했다.“누구...?”단 한 마디로 강우현과 구태윤은 전혀 접점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예상했던 대로 그는 강우현이 누구인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그녀가 말했다.“아니야.”그러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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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한민혁은 순식간에 강우현의 신상을 탈탈 털어냈다.그리고 곧장 구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이 강우현이란 자한테 구린 구석이 있더라고요. 여러 회사에 들어가긴 했는데, 매번 석 달도 못 채우고 짐을 쌌더군요. 알아보니까 대표님 할머니 측 사람이 일부러 표적 삼아 내쫓은 거였어요. 그러곤 뒤로 접근해 회유했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영문 모를 거액까지 계좌로 꽂혔고요. 며칠 내내 술에 절어 살더니, 오늘 밤에 사모님과 접촉했어요.”구태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두 사람 지금 어디 있어?”한민혁이 대답했다.“예객루입니다.”구태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작은아빠, 어디 가세요?”병상 옆에 앉아 있던 구하준이 물었다.구태윤은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겼어. 넌 여기서 기다려.”구하준이 애원하듯 그를 올려다보았다.“작은아빠 가버리면 나 너무 무서워요. 저랑 같이 있어 주세요, 네?”구태윤은 단호하게 말했다.“밖에 경호원 아저씨들 있잖아. 곧 할머니도 오실 거고. 사나이가 뭐가 무섭다고, 의젓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지.”그러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병실을 나섰다.구하준은 침대맡에 앉아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는 정시연을 돌아보았다.이내 몸을 한껏 웅크려 옆에 살포시 누웠다.“엄마...”...두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고는 함께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순간, 사레가 들린 정루아는 급하게 티슈 몇 장을 뽑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막고 기침해댔다.“실례를 범했네요. 제가 술이 좀 약해서.”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기침하던 그녀가 민망한 듯 말했다.강우현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 지금 너무 기뻐요. 그렇게 험한 꼴을 당했는데도 루아 씨가 내 손을 잡아주겠다고 나섰잖아요.”정루아가 말했다.“다 나 때문에 우현 씨가 잘리고 그런 부당한 일까지 겪었으니까요. 당연히 보상해야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맑은 눈망울로 강우현을 똑바로 응시했다.“인생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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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강우현의 몸이 점점 달아올랐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분명 자기 술잔에는 약을 탄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하지만 찰나의 의문일 뿐, 곧장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오히려 약이 들어 있었으면 더 잘 됐다. 흥분 돋우기에는 딱이니까.말을 마친 강우현은 남은 옷까지 벗고는 정루아의 상의를 향해 손을 뻗었다.순간, 정루아가 눈을 번쩍 떴다.“나한테 복수하려고 불러낸 거였어요?”차분한 말투와 맑고 투명한 눈빛, 도무지 약에 취해 쓰러져 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흠칫 놀란 강우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어떻게... 멀쩡하죠?”정루아는 몸을 일으켜 앉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우현 씨가 당한 일은 내가 꾸민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복수한답시고 나를 해코지하려고 해요? 정말 실망이에요.”“뭐가 아니에요!”강우현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루아 씨를 알게 된 이후로 내 인생이 꼬였다고!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잘살고 있었는데...”정루아가 딱 잘라 말했다.“그렇게 머리가 나빠요? 왜 하필 우현 씨가 표적이 됐겠어요? 들어가는 회사마다 쫓겨나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 같아요? 누군가 작정하고 함정을 팠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게실 문이 벌컥 열렸다.곧이어 사람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잠시 후 덩치가 산만 하고 험악한 인상의 거구의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방 안을 쓱 훑어보던 남자는 정루아를 발견하자마자 너털웃음을 지었다.“정루아 씨 맞죠?”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누구시죠?”“저는 김철웅이에요.”사내는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형님께서 그러시는데, 앞으로 루아 씨 신변 보호는 저한테 맡길 거래요. 걱정 붙들어 매셔요. 제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루아 씨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정루아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김철웅 씨 이름 꼭 기억해 둘게요.”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린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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