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Chapter 581 - Chapter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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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구희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휘둘러 반대쪽 뺨도 그대로 때렸다.눈가가 붉어진 구희라가 분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랑 작은오빠한테 사람 목숨은 대체 뭐예요?”구희라는 분명 ‘둘’에게 묻고 있었다.옆에서 차갑게 지켜보던 구호민까지 함께 겨냥한 말이었다.그때 구희라의 마음에는 서늘한 허무함이 깊게 번졌다.큰오빠가 납치됐을 때도 아버지와 작은오빠는 가족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무심했다.이제는 자신 때문에 일에 휘말린 주선하에게도 손을 댔다.이 집안 자체와 구호민의 비정상적인 통제 방식에 대한 반감이 오래전부터 쌓여 있었다.주선하가 폭행당한 일을 계기로 구희라의 감정은 결국 한꺼번에 터졌다.구호민은 구희라의 질문을 듣고 비웃었다. “구씨 집안에서 자라 놓고도 끝까지 그렇게 순진한 부잣집 막내딸이구나. 네 큰오빠가 너를 너무 감싸 키웠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철부지로.”구희라의 순진함을 한심하게 여기는 기색이 말투에 가득했다.구희라가 반박하려 했지만 구호민은 이미 시선을 구희도에게 돌렸다. “내가 그 녀석 빨리 정리하라고 했지. 일을 망친 것도 모자라 반성은 안 하고 동생이나 감싸고 있어?”“좋아. 오늘 너희 남매간 우애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구호민은 두 사람을 훑어본 뒤 거실 소파에 앉아 구희도에게 말했다. “서재 가서 가죽 채찍 가져와.”채찍이라는 말을 듣자 구희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어릴 때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구호민은 그 채찍으로 직접 벌을 내렸다.몇 번은 구기빈이 구희라 대신 맞았다.구씨 집안의 사적인 가칙은 누군가 잘못했을 때 그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가족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두 배로 벌을 주는 식이었다.구기빈은 구희라를 감싸려다 두 배를 넘어서 세 배 가까운 벌까지 대신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그럴 때마다 피를 토할 정도로 맞고 며칠씩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열까지 앓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뒤 구희라는 정면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점점 두려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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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제가 아버지를 실망하시게 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고, 강이주 한 사람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제 벌은 백 대로 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수준 낮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구희도는 스스로 백 대의 벌을 받겠다고 말했다.아버지가 선택권을 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구희도가 구호민이 만족할 답을 내놓지 못하면 벌은 오히려 더 심해질 터였다.구희라에게 정해진 쉰 대는 구희도가 대신 받으면 백 대가 됐다.자기 잘못에 대한 벌까지 백 대보다 적게 말한다면 구호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구희도가 알아서 벌을 정하자 구호민은 그나마 만족한 듯했다.구호민은 구희라를 보며 말했다. “희라야, 네 작은오빠가 네 벌을 대신 받는다. 똑바로 봐라. 네가 구씨 집안 사람으로 사는 동안은 이 집 규칙을 따라야 해.”“오늘 희도가 맞는 건 너 대신이야. 다음에 생각 없이 결정하고 입부터 열기 전에 오늘 일을 떠올려.”“혼자 옳은 줄 알고 계속 사고 치면서 다른 사람에게 네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까지 대신 치르게 하지 마.” 구호민은 차갑게 경고했다.구희라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말로 사람 죄책감 느끼게 만들지 마세요. 아빠 마음대로 만든 논리로 독단적인 행동까지 정당화하지도 마시고요.”“저도 잘못한 거 없고 작은오빠도 잘못한 거 없어요. 아빠라는 이유,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억누르는 거잖아요. 전 이런 억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말을 마친 구희라는 구희도 곁으로 가서 바닥에 무릎 꿇은 오빠를 일으키려 손을 뻗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구호민의 일방적인 훈계가 지겨웠다.사람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집착도 뿌리 깊이 싫었다.구희라가 맞서자 구호민의 분위기는 더 서늘해졌다.구희도가 구희라를 바라보며 무겁게 불렀다. “희라야!”더 말하면 결국 다치는 건 구희라 자신이라는 뜻이었다.구희라는 오빠를 일으키려던 손을 멈췄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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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집안이 주는 편의와 이름값을 누리는 동안에는 그게 누구 덕인지 잊지 마.”구호민은 오늘 구희도가 맞는 대부분의 이유가 구희라에게 있다는 걸 계속 주입했다.이 상황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바로 구희라라는 뜻이었다.구희도의 허리가 조금씩 앞으로 굽었다. 흰 셔츠는 이미 찢어져 곳곳에 피가 배어 있었다.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고, 잘생긴 얼굴은 핏기가 사라지고 창백해졌다.그런데도 구희도는 이를 악문 채 묵묵히 버텼고, 단 한 번도 비명을 내지 않았다.구희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구호민을 노려봤다. “제 벌은 제가 받을게요.”구호민은 하찮다는 듯 구희라를 바라봤다. “늦었어. 세상일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만 움직이는 줄 알아?”이제 와서 잘못을 인정하고 벌받겠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뜻이었다.구호민의 눈에는 구희라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남들이 피해를 본 일을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깊은 교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두 사람 몫까지 합친 이백 대가 끝났을 때 구희도는 온몸이 식은땀에 젖었고 안색은 믿기 어려울 만큼 창백했다.피에 젖은 옷은 등에 난 상처 위로 달라붙어 있었다.구희도의 등은 보기만 해도 섬뜩할 정도로 깊고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구희도는 몇 번이나 자기 힘으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등에서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몸을 세우지 못했다.구희라가 다가가 부축하려 하자 구희도는 손을 가볍게 저어 막았다.구희라의 손이 허공에 어정쩡하게 멈췄다.구희도는 비틀거리면서도 결국 혼자 힘으로 일어났다. 끝내 허리를 곧게 펴려 했다.눈을 내리깐 채 구호민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형편없는 실수는 다시 없을 겁니다.”구호민은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구희도를 바라봤다.잠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사당에 들어가서 오늘 밤 내내 무릎 꿇고 반성해.”그 말 뒤 구호민은 조용히 서 있던 구희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같이 가.”이번에는 구희라가 맞서지 않았다.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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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상처를 제때 처치하지 못한 탓에 구희도의 등에 염증이 생겼고, 한밤중이 지나자 열이 심하게 올랐다.구희도는 끝내 몸이 옆으로 기울며 바닥에 쓰러졌다.쿵!그 소리에 무릎을 꿇은 채 졸고 있던 구희라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구희라는 바로 구희도 곁으로 갔다. “작은오빠?”구희도의 팔에 손을 댄 구희라는 뜨거운 체온에 놀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희도를 등에 업었다.구희라의 등에도 지난번 벌로 생긴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치료받긴 했지만 완전히 아문 상태는 아니었다.구희도를 업자 등에 통증이 몰려와 구희라는 짧게 숨을 삼켰다.이를 악물고 적지 않은 체격의 구희도를 업은 채 사당 밖으로 뛰어나갔다.집안 운전기사를 불러 구희도를 차에 태운 뒤 제일병원으로 향했다.구희라는 주변에서 말렸지만 무시하고 함께 병원까지 갔다.구희도는 수술실로 옮겨져 엎드린 자세로 치료받았다. 의사는 등에 난 상처를 하나씩 소독하고 처치했다.구희라는 옆에서 치료 과정을 지켜봤다.그제야 구희도의 등에 오늘 생긴 상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오래전에 생긴 흉터가 등 전체에 빽빽하게 남아 있었다.화상 입은 흔적까지 보였다.그때 구희라는 구희도의 오른쪽 등 절반을 크게 덮은 상사화 문신도 처음 발견했다.문신 아래에도 가려지지 않는 오래된 흉터들이 남아 있었다.구희라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구희도가 오랜 세월 혼자 바깥에서 얼마나 험한 삶을 살아왔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눈시울이 붉어진 구희라는 더 보고 있기가 힘들어 시선을 돌렸다.침대에 엎드린 구희도를 한 번 본 뒤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가서 결제하고 올게.”기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구희라는 진료실을 나섰다.손에는 구희도의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병원 모바일 결제로 진료비를 처리한 뒤 필요한 비용도 충전해 뒀다.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병원으로 오기 전 이미 구희도의 핸드폰으로 유예준에게 연락해 둔 상태였다.구희라는 곧 주선하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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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말을 마친 주선하는 구희라 쪽으로 얼굴을 내밀며 키스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아픈 몸을 이끌고도 능청스럽게 키스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자 구희라도 결국 웃음이 터졌다.구희라는 몸을 숙여 주선하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제 안 아프지?”한 번으로 부족하다는 눈빛을 보자 몇 번 더 가볍게 입을 맞춰 주며 주선하의 요구를 들어줬다.주선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구희라를 품에 안았다. 턱을 구희라 어깨에 올린 뒤 귓가에 낮게 말했다.“누나 진짜 좋아.”구희라는 손을 들어 주선하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나 때문에 이렇게 맞았는데 내가 뭐가 좋아. 너는 왜 이렇게 사람이 모질지 못하냐?”주선하가 바로 답했다. “누나가 때린 것도 아니잖아.”주선하는 팔에 힘을 주어 구희라를 조심스럽게 안았다.“누나, 나 이혼 안 할 거야. 저 사람들이 나 죽도록 때려도 절대 안 해. 누나도 절대 포기하지 마. 응?”말을 끝내고 다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목소리에는 상처받고 속상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버림받은 강아지처럼 고개까지 축 늘어뜨려 너무 서럽고 불쌍해 보였다.구희라는 주선하가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기대고 칭얼대는 모습에 유난히 약했다.구희라가 웃으며 물었다. “선하야, 진짜 나 많이 좋아해?”주선하가 바로 부정했다. “아니.”구희라의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주선하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해. 나 누나 사랑하는 거 확실히 알아. 내가 누나보다 어리긴 해도 이 마음은 진짜야. 나 정말로 누나 많이 사랑해.”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 술에 취한 구희라가 주선하를 술집에서 일하는 남자로 착각해 넥타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그때부터 마음이 움직였는지도 몰랐다.나중에는 구희라가 어디서 주선하의 어려운 집안 사정을 들었는지,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서툰 방식으로 지원을 제안했다. 그 모습을 본 주선하는 구희라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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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구희라는 주선하가 잠들자 그제야 병실을 나섰다.구희도의 병실로 돌아가 곁을 지켜야 했다.입원 병동 위층으로 올라가던 길에 약을 받으려고 창구 앞에 줄을 서 있던 임설과 마주쳤다.구희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임설 쪽으로 걸어갔다. “설아.”구희라는 의아했다. ‘이 늦은 시간에 설이가 왜 병원에 있지?’처방전을 들고 있던 임설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구희라를 발견했다. “변호사님.”임설도 이곳에서 구희라를 만날 줄은 몰랐다.구희라가 임설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왜 있어? 어디 아파?”임설은 숨길 생각 없이 사실대로 답했다. “제가 아니라 강 대표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이주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구희라의 표정이 굳었다. “어때? 많이 다쳤어? 안 되겠다. 나도 데려가.”임설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강이주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터였다.구희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밤 작은오빠를 따라오지 않았으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놓칠 뻔한 거야.’임설은 약을 받아서 구희라를 데리고 강이주의 병실로 향했다.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강이주를 본 구희라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야?”강이주의 발목까지 확인한 구희라는 더는 담담한 척할 수 없었다.구희라는 유예준에게 상황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예준 오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유예준은 사고 경위를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운전자가 술을 마신 채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는 말을 듣자 구희라의 표정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설명을 듣고 나니 사건의 흐름도 대강 정리됐다.강이주는 주선하를 구해 병원에 입원시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구희라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몸 옆으로 내린 두 손을 세게 맞잡았다. 굳어 가는 표정에는 냉기가 스며들었다.“희라야.” 유예준이 구희라를 불러 생각을 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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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유예준은 망설이지 않고 예비 핸드폰을 구희라에게 건넸다.“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응.” 구희라가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오빠.”핸드폰을 받은 뒤에도 강이주의 병실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구씨 집안 기사가 구희도의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구희라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지자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듯했다.구희도가 있는 병실로 돌아가자 기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초조하게 서 있었다.조금 전 구호민에게서 구희라를 확실히 지켜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틈을 타 달아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시까지 내려왔다.전화는 받지 않고 사람도 나타나지 않으니 기사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다행히 구희라는 결국 돌아왔다.“아가씨, 이제야 오셨네요.”기사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곤란한 표정으로 구희라를 바라봤다.“회장님께서 고열 조금 난다고 죽는 건 아니니 지금 희도 도련님을 데리고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집에도 의사가 있으니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 없다고 하셨고요.”구희도는 아직 수액을 맞고 있었다.구희라도 알고 있었다. 아까 구희도를 데리고 나올 때 구호민의 묵인이 없었다면 저택 문턱조차 넘지 못했을 것이다.어쩌면 병원에 오게 둔 것부터 구호민의 의도였을지도 몰랐다.구희라에게 주선하가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직접 보게 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었다.더 나아가... 강이주도 이 일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해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까지 확인시키려 했을지 몰랐다.그런 방식은 구호민이 오래전부터 잘 써 온 수법이었다.구희라는 어릴 때부터 비슷한 장면을 수도 없이 겪어 왔다.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기사에게 말했다. “가요. 집으로 돌아가요.”구희라는 수액 팩을 직접 들고, 기사에게 의식이 없는 구희도를 업혀 병원을 나섰다.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구희라는 계속 수액 팩을 높이 들고 있었다. 기사가 차량 안쪽 걸이에 걸어 두자고 해도 거절했다.팔에 힘이 들어가는 일을 일부러 하면서라도 머릿속을 다른 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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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결국 구희라는 집사의 부탁에 다시 돌아왔다.집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구씨 집안에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 거로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구희라는 사람들에게 지시해서 구희도를 1층 방으로 옮기게 했다.자신은 거실 소파에 앉아 구호민을 기다렸다.구희라는 생각했다. ‘내가 아빠 성격을 모르지도 않고.’구호민이 벌써 잠들었을 가능성은 없었다.일부러 구희라의 기세를 꺾으려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었다.하지만 구희라는 타고난 반골이었다. 구호민이 하지 말라고 막을수록 더 하고 싶어졌다.오늘 밤도 다르지 않았다.병원에서 돌아온 뒤 구희라는 거실에서 사십 분 넘게 더 앉아 있었다.유예준에게 받은 핸드폰은 무음으로 바꾸고 비행기 모드까지 켜 두었다.구희라는 TV를 켜고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자극적인 현대극 하나를 골라 태연하게 보기 시작했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TV 음량도 끝까지 올렸다.다시 30분쯤 지나자 위층 복도에 구호민이 나타났다.아무리 방음이 잘되는 집이라도 구희라가 작정하고 키운 소리까지 막지는 못했다.구호민은 실제로 잠들지 않았다.구희라가 돌아온 뒤부터 모습을 숨긴 채 아래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사당을 부숴 버리겠다는 불손한 말도 빠짐없이 들었다.구희라가 자신과 할 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구호민은 일부러 기다리며 구희라의 성미가 꺾이기를 바랐다.이제는 누가 끝까지 버티느냐의 싸움이었다.결과만 보면 구희라가 조금 더 질겼다.이 점만큼은 구호민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어릴 때부터 다른 건 몰라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티는 법 하나는 아주 제대로 배웠다.그 고집과 인내심은 구호민 손에서 길러진 셈이었다.구희라는 고개를 들어 복도에 선 구호민을 바라봤다. “깨셨어요? 오늘은 잠이 잘 안 오시나 봐요.”입가에 옅은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그럴 만도 하죠. 연세가 있으니까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셔야죠. 너무 일찍 누우면 잠이 안 올 수도 있고요.”“집이 시끄러우시면 할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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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구호민은 이제야 구희라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예전에는 딸은 별 쓸모가 없다고 여겨 모든 관심을 장남 구기빈에게 쏟았다.구기빈을 후계자로 기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은 가리지 않았다.물론 구호민에게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다.둘째 아들 구희도였다.어린 시절 집 밖으로 보내진 구희도에게도 구기빈과 똑같이 혹독한 기준을 들이밀었다.구호민이 두 아들에게 바란 건 차갑고 무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감정 없이 명령대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만들고 싶었다.구호민에게 필요한 건 아들이 아니었다. 말 잘 듣는 냉정한 도구였다.구희라는 달랐다.딸인 구희라에게서 구호민이 원하는 것은 오직 사업적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는 가치뿐이었다.지나치게 똑똑할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 판단할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곱게 키운 뒤, 구호민이 골라 놓은 유력한 집안으로 시집보내면 됐다.생각 없는 딸 하나를 내주고 더 큰 이익을 얻는 것.그게 구호민이 구희라에게 부여한 가치였다.어머니 유만정을 길들였던 것처럼 구희라도 통제한 채 필요한 이익만 가져다주게 만들면 그뿐이었다.하지만 지금 구호민은 한 가지를 새삼 깨달았다.아무리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생각 없는 아이로 길러 내려 해도 구희라의 몸에는 결국 구호민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어떤 면에서는 구희라 역시 구호민과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몰랐다.구희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가에는 가식적인 미소가 걸렸다. “그럼 저는요, 아빠? 저랑 작은오빠는 아빠한테 뭐예요? 쓸모없는 존재예요? 그런 사람은 자기 생각 같은 건 가지면 안 되고, 아빠한테 이익만 만들어 주면 되는 거죠?”구희라의 말에 다시 타오르려던 구호민의 분노가 오히려 서서히 가라앉았다.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구희라를 뚫어지게 살폈다.구희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아빠는 한 번도 생각 안 해 보셨어요? 쓸모없다고 여긴 사람이 언젠가는 자기 발로 일어설 수도 있다는 거요.”말이 끝나자 구희라는 빠르게 구호민 앞으로 다가갔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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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구호민이 아무리 빠르게 반응해도 이번에는 구희라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간신히 몸을 틀었다.칼끝이 어깨를 스치며 옷이 찢어졌고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구희라는 구호민의 어깨를 바라봤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피부와 살이 얕게 베인 정도였다.그 정도면 충분했다.구희라는 싸늘하게 웃으며 손에 든 과도를 바닥에 던졌다.손바닥에서는 계속 피가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구호민은 당장이라도 구희라를 집어삼킬 듯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구희라가 웃었다. “제가 아빠를 죽일 배짱까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큰오빠랑 작은오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구희라는 손바닥을 펼쳐 가득 묻은 피를 내려다봤다.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평소와 달리 어딘가 위태롭고 광기 어린 기색이 묻어났다.구호민도 그 변화를 알아챘다.눈앞의 구희라는 구호민이 알던 딸과 너무 달라 보였다.구호민이 자신을 살피는 시선을 느낀 구희라가 피 묻은 손을 펼쳐 보였다.“제 몸에도 아빠 피가 흘러요. 저도 아빠의 유전자를 가졌다고요.”구호민은 어깨 상처를 한번 흘겨본 뒤 매섭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구희라가 옅게 웃었다. “작은오빠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크게 다쳤고, 마비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쨌든 당분간은 휠체어를 타야 하는 거죠?”구호민은 대답하지 않았다.구희라가 계속 말했다.“작은오빠가 아빠 말은 잘 듣지만 엄마도 그렇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작은오빠가 RG그룹 안으로 들어오는 걸 그다지 원하지 않잖아요.”“저 사실 궁금한 게 있어요. 밖에서는 작은오빠가 아빠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이 돌던데, 사실이에요?”구호민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 “누가 희도가 내 아들이 아니래? 희도는 네 작은오빠야. 친오빠라고.”구희라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래요.”구호민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구희라는 손바닥의 상처를 눌렀지만 피는 손가락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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