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Chapter 611 - Chapter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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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1화

강이주는 알지 못했다. 구기빈이 매번 버티지 못하고 타협하고 싶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해맑게 웃던 강이주의 얼굴이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을 깊은 절망에서 끌어올렸다.빛이 되어 어둠 속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오도록 이끌었다.아무도 구기빈에게 강이주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강이주는 빛을 잃고 흐릿했던 구기빈의 어두운 인생을 비춘 한 줄기 햇살이었다.구기빈이 온 마음으로 붙잡은 구원이었다. 힘들지 않았다는 짧은 말은 가볍게 들렸지만 강이주의 가슴에는 무겁게 내려앉았다.구씨 집안이라는 배경에 장손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로 길러졌는데 어떻게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강이주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여기 있는 걸 전부 내려놓고 한 번쯤 당신을 위해 살아 볼래? 내가 나으면 우리 같이 도망가자.”“산과 물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당신과 나 둘만 사는 거야. 세상의 소란과 걱정에서 멀어져서 초원도 가고 바닷가도 가고 오래된 작은 마을도 찾아가자. 여기저기 함께 여행하며 단순하게 사는 거야.”“언젠가 정착하고 싶어지면 편안한 곳을 골라 살자. 통통한 아이 둘을 낳아서 한 명은 나를 닮고 한 명은 당신을 닮는 거야.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강이주는 구기빈과 평범하고 잔잔하게 살아가는 날을 그렸다.두 사람을 닮은 아이들이 곁을 맴돌고 가족 모두가 웃으며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다른 것은 바라지 않았다. 아무리 소박한 삶이어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강이주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가 눈에 다시 어둠이 내렸다.자신이 정말 모든 것을 버리자고 하면 구기빈은 분명 강이주를 위해 그렇게 할 것이다.하지만... 구기빈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강이주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선택을 지지하는 것뿐이었다.구기빈이 세운 계획이 다 실행된 뒤에 함께 그런 삶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강이주는 손을 들어 구기빈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당신 일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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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주선하는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긴 끝에 목숨을 건졌다.그러나 살고자 하는 의지는 여전히 약했고 현재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상태였다.주선하가 응급 수술실에서 나온 뒤 강이주는 변장한 구기빈에게 휠체어를 밀어 달라고 해 잠시 모습을 확인했다.창백한 안색으로 침대에 누워 온몸에 관이 꽂힌 주선하를 보자 가슴이 답답했다.눈앞에는 해맑고 시원하게 웃던 예전 주선하의 얼굴이 떠올랐다.멀쩡하고 밝게 빛나던 청년이 이제는 생기 하나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문밖에서 바라보는 강이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허망함을 느꼈다.구희라는 정말 독했다. 그날 밤 배진호에게 붙잡혀 응급 수술실 앞에 온 뒤로 병원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주선하를 한 번 보러 오는 것조차 거부했다.들리는 말로는 인맥을 동원해 절차를 서둘러 주선하와의 이혼 확인 서류까지 받아 냈다고 했다.구희라와 간승제는 사이가 좋은 듯했고,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호텔을 함께 드나드는 모습이 찍혔다. 끝내 구희라가 간승제를 데리고 자기가 따로 사둔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사람들은 구희라가 남자를 신혼집으로 데려갔다며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떠들었다....며칠 동안 치료받은 강이주의 발목도 부기가 가라앉았다.이제 수술을 진행할 준비가 되었다.수술 일정은 그날 오후 두 시로 정해졌다.난도가 높은 수술은 아니었고, 이후의 회복과 재활 관리가 더 중요했다.그래도 유예준은 직접 수술복을 갈아입고 수술실에 함께 들어갔다.강서규와 장숙연, 임설과 배진호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렸다.변장한 구기빈도 곁을 지켰다.강서규와 장숙연은 이 낯선 남자를 전날부터 지켜봤다.임설은 두 사람에게 강이주의 안전을 위해 고용한 전담 경호원이라고 설명했다.딸을 지키기 위해 따로 고용한 경호원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강서규와 장숙연은 안심했다.유예준이 수술실에서 나오자 두 사람이 급히 다가갔다. “우리 이주는 어때?”걱정이 가득한 나머지 두 사람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구기빈도 뒤에 서서 유예준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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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이 계획은 짧은 기간 안에 갑자기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유예준은 구기빈이 계획을 숨긴 사실에 화난 것이 아니었다. 친구가 걷잡을 수 없는 결정을 내릴지 걱정될 뿐이었다.“내가 뭘 하려는 것 같아?” 구기빈이 되물었다.유예준은 구기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알았다면 오늘 이런 얘기를 따로 할 필요도 없겠지.”구기빈을 사무실로 데려온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다.구기빈은 유예준 앞으로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분인지 너도 알잖아. 나도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아. 걱정하지 마. 내가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한 번도 바뀐 적 없어.”“정말이야?” 유예준은 의심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았다.구호민이 구기빈을 조종해 RG그룹의 결정권을 계속 쥐려 한다는 사실은 유예준도 알고 있었다.구호민은 자신이 늙었으니 물러나고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끝까지 원하는 것은 절대적인 지배였다.구기빈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아들이었고, 지금 구호민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구기빈을 RG그룹에서 완전히 밀어내는 것이었다.통제를 벗어난 아들이 잘못된 길로 간다면 차라리 철저히 망가뜨리겠다는 식의 사고였다.구기빈은 오래전부터 구호민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반격할 방법을 오랫동안 모색해 왔다.계속 아버지에게 조종당하는 척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그 변수는 강이주였다.강이주가 심원후와 헤어지고 결혼까지 무산되면서 구기빈에게는 그녀를 곁으로 데려올 기회가 생겼다.구기빈이 감정을 억누르고 참고 있었던 것은 강이주가 심원후를 놓지 못한다는 전제 때문이었다.하지만 강이주는 그 관계를 포기했다.그것은 구기빈에게 기회가 왔다는 신호와도 같았다.한 번 무너진 믿음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어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구기빈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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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구기빈이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강서규와 장숙연은 강이주의 곁에서 몸 상태를 세심히 살피고 있었다.강이주는 수시로 문 쪽을 바라봤다.구기빈이 나타나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마침 강서규도 구기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기빈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구호민이 병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 의료진을 따로 꾸렸다는 말만 들었어. 지금은 기빈이에 관한 소식도 전부 막아 놓았더라.”강서규는 미간을 찌푸렸다.구기빈이 언제 돌아왔는지는 알고 있었다.강이주의 상태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틈이 날 때마다 구씨 집안의 움직임도 파악했다.구씨 집안이 의도적으로 소식을 차단하고 있어 쓸 만한 정보는 거의 얻지 못했다.중상을 입은 사람을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치료한다는 것부터 정상적이지 않다고 느꼈다.구호민에 대해서도... 강서규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빈이한테서 연락은 왔어?”강이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어요.”강서규의 미간이 더 깊이 좁아졌다. “그렇겠지. 구호민이 쉽게 연락하게 두지는 않을 거야. 너도 지금은 일단 너무 많이 생각 하지 말고 몸부터 회복해. 그게 제일 중요해.”결국 강서규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딸이었다.강이주는 걱정이 가득한 아버지를 바라보다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빠, 기빈 씨 걱정하세요?”강서규는 말로 드러내지는 않았고 강이주의 어떤 선택도 지지한다고 했지만, 구기빈에 대해 마음이 완전히 놓인 것은 아니었다. 딸이 구기빈과 함께하는 일은 여전히 조금 걱정됐다.그런데 지금은 아버지도 구기빈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강서규의 표정에 어색함이 스쳤다. 헛기침한 뒤 불편한 듯 말했다. “네가 좋아하잖아. 내 딸이 좋아하는 사람인데 걱정하는 게 이상해?”“그 아이도 답답한 환경에서 자라느라 힘들었을 거다. 너한테 잘하기만 하면 나도 인정해. 장인 될 사람이 미래의 사윗감을 걱정하는 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어?”강서규는 딸이 구기빈과 함께 있다가 구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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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강서규가 질문할 때마다 강이주는 아무 일도 없다고 답했다.같은 대답이 반복되자 딸이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선을 긋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결국 더 묻지 않았다. 딸이 선을 지킬 줄 안다고 믿었다.강서규는 오늘 나 원장에게 후속 진료를 받으러 가야 했다.강이주의 곁에는 임설과 배진호, 경호원까지 있어 지킬 사람도 충분했다.두 어른이 떠나자 임설과 배진호도 눈치껏 각자의 일을 보러 나가 구기빈과 강이주만 남겨 두었다.“주선하는 어때? 아직도 못 깨어났어?” 수술 부위가 따끔거렸지만 강이주가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수술 전에도 주선하의 상태를 물었고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답을 들었다.구기빈은 사실대로 말했다. “아직이야. 간병인 두 명을 붙여서 하루 종일 지키게 했어. 깨어나면 곧바로 알려 줄 거야.”강이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어. 본인이 동의한다면 외국으로 보내자. 이런 복잡한 곳에서 멀어지는 게 여기 남는 것보다 나을 거야.”주선하가 모든 것을 포기할까 걱정됐다.깨어난 뒤 몸 상태를 무시하고 다시 구희라를 찾아갈지도 두려웠다.구기빈은 컵과 면봉을 들고 물을 묻혀 강이주의 입술을 촉촉하게 해 주었다.주선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구희라와 사귄다는 사실도 대부분 강이주에게 전해 들었다.구희라 때문에 저렇게 크게 다쳤으니 강이주가 걱정한 것처럼 주선하는 다시 동생을 붙잡고 매달릴 가능성도 있었다.구기빈은 애초에 구희라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동생을 감싸 온 이유도 자신처럼 아버지에게 통제당해 자신을 잃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구희라의 변화는 오래전부터 제 발로 위험에 들어갈 각오를 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진하고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다. 구희라는 이미 어른으로 자랐고 자신의 판단도 있었다.강이주가 주선하를 외국으로 보내자고 한 것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구희라의 처지까지 생각한 제안이었다.구희라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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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강이주의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은 곧 구호민에게도 전해졌다.구희라는 구호민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구희도는 이미 먼저 회사로 출근한 뒤였다.“다 먹었어요.” 구희라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구호민에게 말했다. “저는 가서...”구기빈을 보러 가겠다고 하려던 참이었다.구호민은 눈만 들어 구희라를 보았다. “주선하라는 놈은 아직 중환자실에서 의식도 못 찾았고 위험한 상태라더군.”“그래요?” 구희라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차분히 답했다. “그 사람이 죽든 살든 이제 저와는 관계없어요. 이혼 확인 서류도 받았는데 깨어날 수 있는지까지 제가 굳이 관심 둘 이유가 없죠.”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였다.구호민은 입꼬리를 비틀어 차갑게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놈 때문에 죽고 못 살더니 이제는 관심이 없다고? 네가 새롭게 보이는군.”구희라가 말 한마디로 주선하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지웠다고는 믿지 않았다.구희라는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으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감정이 밥을 먹여 줘요? 권력보다 중요해요? 아빠가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따지고 보면 이것도 아빠한테서 배운 거예요. 청출어람,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을 수도 있잖아요. 저도 명색이 아빠 딸인데 이익 앞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는 구분할 줄 알아요.”구호민을 향해 옅게 웃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주선하 같은 젊고 잘생긴 남자를 몇 명이든 만날 수 있어요. 굳이 한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죠.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에요.”“아빠가 큰오빠와 작은오빠에게 늘 가르치신 생각 아닌가요? 왜 제가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혼 서류는 아빠 손에 있고 간씨 집안과의 혼담도 순조롭게 진행 중인데요.”“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아빠가 저를 의심하신다면 저도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구희라는 두 손을 펼치고 답답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할 수 있는 데까지 했는데도 구호민이 믿지 않는다면 자신도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주선하를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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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남은 조건은 주선하를 정리하는 일보다 훨씬 난도가 높았다.구희라는 등을 꼿꼿이 세웠다. “아빠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약속드린 일은 전부 해낼 거예요.”“지분 양도 서류나 준비해서 미리 서명해 두세요.”시선을 천천히 거둔 구희라가 말했다. “큰오빠에게 가 볼게요.”이번에는 구호민도 막지 않았다.멀어지는 딸을 바라본 뒤 곁에 있던 경호원에게 빈틈없이 감시하라고 지시했다.구호민과 대화를 끝내고 나오는 구희라의 등에 식은땀이 촘촘히 배어 나왔다.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몸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옆으로 내린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구호민과 마주하는 동안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고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다행히 끝까지 잘 버텼다.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은 구희라는 곧장 방문을 열었다.방 안에서는 ‘구기빈’이 침대 머리맡에 비스듬히 기대어 천천히 식사하고 있었다.침대 곁에는 줄곧 ‘구기빈’을 지키는 경호원이 서 있었다.아무리 내보내려 해도 절대 떠나지 않는 사람이었다.구희라는 민서호를 보자 못마땅하게 노려봤다.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였다.아무리 회유하고 협박해도 전혀 반응 없이 돌처럼 ‘구기빈’의 곁을 지켰다.구희라가 들어오자 민서호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뒤 무표정하게 다른 쪽을 바라봤다.‘구기빈’은 입술을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앞에 선 구희라를 바라봤다.“오빠, 이주 수술은 끝났어. 큰 문제는 없고 의사 말대로 잘 쉬면 괜찮대.” 구희라는 강이주의 상태부터 바로 전했다.강이주가 무사하다는 말에 ‘구기빈’의 눈빛이 작게 흔들렸다.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기 어려웠다.‘구기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말? 다행이다.”갑자기 기운을 되찾은 듯한 ‘구기빈’을 위아래로 바라보며 구희라는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역시 이주 이야기나 해야 오빠가 조금이라도 밝아지는구나.’구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이주를 보러 병원에 갈 건데, 혹시 오빠가 전하고 싶은 말 있어?”‘구기빈’이라면 강이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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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다음 날 아침, 구희라는 큰 과일 바구니와 백합 꽃다발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병실에는 구기빈만 남아 강이주를 돌보고 있었다.문 앞에 선 구희라는 낯선 남자가 강이주를 보살피는 장면을 보고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이주야.” 구희라는 금세 웃는 표정으로 바꾸고 병실에 들어갔다.시선은 강이주를 살피는 구기빈에게 향했고 눈에는 정체를 살피려는 기색이 담겼다.구기빈이 완전히 변장한 덕분에 구희라는 큰오빠를 알아보지 못했다.다만 이 남자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구희라는 가져온 물건을 탁자에 올린 뒤 강이주에게 물었다. “임 비서는 왜 남자 간병인을 붙였어?”목소리에는 의심과 못마땅함이 섞여 있었다.구희라가 아는 강이주는 이처럼 경솔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강이주도 구희라가 이렇게 이른 시각에 올 줄은 몰랐다.구기빈이 자신을 돌보는 장면까지 보이고 말았다.구희라에게 질문받은 강이주는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답했다. “당분간 발을 디딜 수 없어서 남자 간병인이 있으면 편해. 평소에는 임 비서와 엄마가 돌봐 주고, 이분은 힘이 필요한 일만 도와줘.”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설명했다.그 말을 들은 구희라도 더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처음 불편하게 느꼈던 이유는 본가에 있는 ‘구기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강이주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했으니 더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었다.구희라는 친구를 그 정도는 믿었다.구기빈은 과일 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며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과일을 씻어 오겠습니다.”그대로 병실을 나갔다.구희라는 구기빈의 뒷모습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상황을 알아서 피해 주는 눈치는 있는 간병인이었다.강이주는 구희라의 시선을 알아채고 화제를 바꿨다. “나를 보러 왔으면 중환자실에 있는 주선하도 잠깐...”“이제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 구희라가 차갑게 말을 끊었다.무심한 태도를 보자 강이주는 주선하에 관해 더 말할 수 없었다.잠자코 구희라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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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구기빈은 자기가 가진 자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말해 왔다.구희라는 대답하지 못하는 강이주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봐. 너도 딱히 부정하지 못하잖아. 사랑은 권력 앞에서 아무 힘이 없어. 나는 이제 더는 순진하게 살고 싶지 않을 뿐이야.”“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는 너도 겪어 봤잖아. 이주야, 우리 나이면 현실을 볼 줄도 알아야 해. 아버지를 이길 수 없어. 허도민이 가장 좋은 예잖아.”구희라의 말에 강이주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구희라는 계속 말했다. “내가 이혼하지 않고 주선하에게 손대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아?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을 거야. 주선하를 지키는 건 더 불가능했고.”“주선하는 내가 직접 정리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아버지가 처리했다면 칼에 찔리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아버지가 정말 죽이기로 마음먹으면 주선하는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거야. 유골조차 남지 않았겠지. 내가 한 선택이 나와 주선하 모두에게 최선이었어.”말투에는 모든 감정을 버리고 현실에 굴복한 사람 같은 무감각함이 묻어났다.하지만 강이주는 표정 어디에서도 예전에 구희라가 주선하에게 보이던 분명한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강이주가 말을 고르는 것을 보지 못한 듯 구희라가 되짚었다. “너와 큰오빠도 봐. 한 사람은 본가에서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고, 한 사람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아야 해.”“큰오빠는 나보다 능력도 훨씬 뛰어난 데다 구씨 집안의 총수야.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사람이 자신을 지키지 못했어. 너도 지키지 못했고.”눈앞에 놓인 결과가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구희라는 단지 현실을 받아들인 것뿐이라고 말했다.상황을 읽고 살아남는 사람이 현명한 법이었다.구희라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을 위한 안전한 퇴로를 찾고 있었다.강이주는 뒤이어 나온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려 했다.“이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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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강이주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표정은 평온했고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구희라는 조용히 강이주를 살피다가 말했다. “맞다. 내가 너한테 아직 우리 큰오빠 상태를 말해 주지 않았지?”“척추를 심하게 다쳤어. 본가 의료진의 검사로는 하반신이 마비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수술 성공률은 28%뿐이래. 평생 다시 일어서지 못한 채 하반신 마비로 살 수도 있어.”“우리 큰오빠는 남은 생을 휠체어에서 보낼 가능성이 커.” 구희라는 강이주의 반응을 놓치지 않으려 똑바로 바라봤다.그 말을 들은 강이주의 침착함이 흔들렸다. 표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급히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뭐라고?”당황한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구희라는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강이주가 아무리 감정을 억누르려 해도 표정이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구희라는 그 변화를 전부 지켜봤다.붉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일단 진정해. 네가 큰오빠를 걱정하는 건 알아. 솔직히 큰오빠 다리를 봤을 때 나도 너무 불안했어.”“그래서 오늘 온 거야. 큰오빠 상태를 알려 주려고.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아. 그런데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서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지금도 본가에 갇혀 있어.”말을 끝낸 구희라는 핸드폰을 꺼냈다.앨범을 열어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직접 봐.”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에서 ‘구기빈’이 고통을 참으며 흘리는 낮은 신음이 들렸다.강이주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화면을 바라봤다.의사가 ‘구기빈’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었다.피로 엉망이 된 상처가 아무 예고 없이 눈앞에 나타났다.의사는 다리에 염증이 생겨 썩은 살을 도려내고 있었다.통증 탓에 영상 속 남자는 심하게 떨었고, 억눌린 신음을 여러 번 흘렸다.강이주는 화면만 바라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두 눈을 떼지 못했고 신음이 들릴 때마다 몸도 함께 떨렸다.구희라는 영상을 틀어 둔 뒤 옆에서 차갑게 강이주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영상이 끝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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