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1 - Chapitr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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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서로 다른 온도가 스치고 지나가는 밤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연회장은이제 막 끝나가는 불꽃놀이처럼빛이 흐리고 잔향만 남아 있었다.잔이 치워지고 테이블 위에는 축축이 젖은 냅킨과반쯤 남은 와인잔이 여기저기 홀로 남겨져 있었다.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민영의 세계는오직 한 사람의 호흡과 눈빛에만 좁게 집중되고 있었다.‘조금만… 여기 있어 주세요.’그 말을 내 입으로 했다니.민영은 그래도 평생 조신하고 조용하게 살아왔는데오늘 같은 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저런 말을 꺼냈다는 사실이머릿속에서 계속 지워지지 않았다.게다가 그 말이 언제까지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되어가슴 깊숙이 남았다.민영은 잔이 비어 있는 테이블에 손끝을 올리고살짝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이 사람 앞에서는… 왜 이렇게 마음이 자꾸 흔들릴까.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찾으려고 할수록 가슴 깊은 곳이 더 어두워지고감정은 더 불안정해졌다.그때, 옆에서 아주 조용히 서 있는 기척이그녀의 호흡을 조금 진정시켰다.“…정 사원님.”최강이었다.여느 때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기다려주고, 부르지 않아도 다가오지 않고,그러면서도 도망가듯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민영은 그 미묘한 균형이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더 혼란스러웠다.“…저기요.”민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혹시… 아까 제가 한 말 때문에 불편했나요…?”그 질문은 민영 스스로에게도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작아서떨리는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최강은 민영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단호했지만 부드럽게 가라앉은 음성.“정 사원님이 무슨 말을 하셨든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민영은 그 말을 듣고도 안도할 틈이 없었다.“…그럼… 이해…되셨나요?”그 말은 너무 내밀했다. 부끄러움, 후회, 죄책감최강의 대답은 단 하나였다.“예.”그는 거짓 없이 말했다.“이해됩니다.”그 말 한 줄은 어떤 긴 설명보다도민영의 마음을 더 강하게 흔들었다.왜냐하면 민영은 누군가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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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들키고 싶지 않은 투명함

연회장의 불빛이 서서히 꺼지고 있었다.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코트를 받아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했다.가벼운 하이힐 소리,코트가 스치는 부드러운 천의 소리,남은 샴페인의 향.그러나 이 모든 소리는 정민영에게 점점 멀어져 갔다.그녀의 귀에는 방금 전 자신의 목소리만 남아 있었다.“…조금만… 여기 있어 주세요.”그 순간이 다시 떠올라 뺨이 뜨겁게 물들었다.-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나 너무 바보 같아...어떤 감정이었는지조차 아직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그저 무너지는 감정의 한 조각이누군가의 존재를 불러서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었다.그게 전부였고, 다른 이유는 없었다.그런데 그 대상이 하필 최강이었다.민영은 그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나는… 그 사람에게 부담을 준 걸까.-이제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을지도 몰라.그 사람에겐 그냥… 업무였을 뿐인데.민영은 손등으로 입술을 찍어 눌렀다.그 작은 떨림을 스스로 가라앉히려는 듯.그때 아주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정 사원님.”민영은 놀라 고개를 올렸다.최강.그는 연회장 출구 앞,사람들이 서로 엇갈리는 동선 사이에서도민영을 정확히 찾아왔다.불빛 아래에서 그의 표정은 흐트러짐 없이 담담했다.“혹시… 떠나시기 전에 동행이 필요하십니까.”그 말은 그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듯하지만그 안에는 민영의 상태를 살피는 시선이 묻어 있었다.민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아니요. 혼자 갈 수 있어요.”대답은 했지만 그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었다.최강은 민영의 어깨, 목, 손끝까지 아주 짧은 시간에 스캔하듯 살피고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그리고 그는 돌아서려 했다.민영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열었다.그녀의 머뭇거림을 최강도 알아차렸는지,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최강 씨.”그는 멈춰 섰다.민영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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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누구도 알지 못한 밤의 무게

호텔 복도는 연회장과 달리 숨죽인 듯 고요했다.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조명이 빛의 띠처럼 바닥을 따라 이어지고,그 위로 민영의 그림자가 가늘게 흔들리며 길게 퍼졌다.많은 말이 오갔지만 정작 민영의 머릿속은단 하나의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 사원님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그 말은 민영을 위로하려는 말도, 연민이 담긴 말도 아니었다.그저 민영의 감정을 바라본 사람의 가장 솔직한 진단이었다.하지만…그 한마디가 이상하리만큼 가슴 깊은 곳을 흔들어놓았다.민영은 복도 끝, 풍경화가 걸린 벽 앞에서 발을 멈췄다.나… 왜 그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아버지를 향한 걱정이 단순한 감정일 뿐인데,왜 그 말이 최강에게 흘러나갔을까.민영은 스스로를 다그쳤다.나는 무너지는 타입이 아니야.평생 공부하고, 혼자 버텨왔는데.그런데… 왜 오늘은…그런데 그 순간.민영의 숨이 가늘게 끊겼다.그래… 오늘은 아버지가… 아버지가 흔들렸다.평생 강하던 사람이 단 한 번의 미세한 흔들림을 보였을 뿐인데그걸 보는 순간 민영은 무너지고 있었다.어쩌면 그 흔들림은 아버지의 몸이 아니라민영의 마음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민영의 눈이 조금 뜨거워졌다.그러나 그때.“정 사원님?”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민영은 움찔하며 돌아섰다.강산.그는 복도 한가운데 조명 아래 서 있었다.수트 자락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그의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다.하지만 그 부드러움 안쪽에는찰나의 분석이 미묘하게 숨어 있었다.“괜찮습니까?”그는 천천히 다가왔다.민영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냥… 조금 머리 복잡해서요.”강산은 민영의 작은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오늘… 여러모로 큰 행사였으니까요.신입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그 말투는 배려해주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웠다.민영은 그 속내를 읽지 못한 채 조용히 미소만 보였다.“감사합니다, 과장님.”그녀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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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각자의 밤, 엇갈리는 의심

그날 밤,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나오자마자차창 밖 풍경은 민영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도심의 불빛은 화려했고 네온사인은 연회장의 잔향처럼아직 꺼지지 않은 미세한 온기와도 같았다.하지만 그 빛은 민영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민영은 차창에 기대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차창 너머 불빛이 조용히 번지며 그녀의 얼굴을 스쳐 갔다.아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잠깐만… 여기 있어 주세요.’민영은 자신이 말한 것들을 떠올릴수록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그 말은 정말 의도한 말이 아니었다.감정이 흔들려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던 순간,누군가의 기척 하나에 자신이 본능처럼 의지한 것.그리고 그 사람이 최강이었다는 사실이민영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였나.우린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민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런데… 왜 그 사람의 말은…계속 기억나는 걸까.“…정 사원님 표정은 숨기지 못합니다.”“…감정을 드러내는 건 이상한 게 아닙니다.”그 말들. 그 말들 속에 담긴 조심스러운 진심.민영은 심장이 다시 떨렸다.택시가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을 때,그녀는 한참 동안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질 만큼 오늘 하루는 길었다.민영은 단지 문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며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오늘 연회장에 서 있던 아버지.사람들 앞에서는 늘 당당하던 그가오늘은 어딘가 허전해 보였고 조금 힘들어 보였다.아버지… 정말… 괜찮으신 걸까.내가… 너무 늦게 돌아온 건 아닐까.그 생각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손끝이 약간 떨렸다.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아버지 생각까지 겹치니 몸의 중심이 흔들리는 듯했다.문이 열리고 민영은 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현관 전등을 켜자 아파트 특유의 공기가조용히 그녀를 감싸 안았다.정적 속에서 민영은 코트를 벗어 걸고거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섰다.테이블 위에 아버지가 준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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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해가 떠오르기 전, 세 사람의 그림자

아침 햇빛은 창문 틈 사이로 얇은 선처럼 들어왔다.민영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미 눈을 떴다.밤새 깊이 잠들지 못한 탓인지눈가에는 잔잔한 피로가 어렸다.천장을 바라보는 동안에도어제의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듯심장 어딘가가 조용히 들썩였다.왜… 그렇게 흔들렸던 거지.그녀는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침실 바닥은 밤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민영은 부엌으로 걸어가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눌렀다.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깨웠다.그 소리를 들으며 민영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해.회사로 돌아가는 날은 아니었지만어제의 일이 계속 머릿속을 괴롭혔다.어제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 건… 정말 실수야.감정이 흔들렸다고 해서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주다니…민영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하나의 장면만 선명해졌다.“…정 사원 표정은 숨기지 못합니다.”말투. 시선. 거리감. 어떤 것도 과하지 않았고그렇다고 가벼운 말도 아니었다.민영은 그 말이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같은 시각, 다른 곳라오네트 사옥 옆 작은 주차 건물 입구.보안팀 직원들은 아침 교대를 위해 모여 있었고,각자 본인의 구역과 일정을 체크하느라 바빴다.그 사이, 검은 점퍼를 입은 한 남자는조용히 스캔해둔 리스트를 보고 있었다.최강.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고 조용했지만내면의 한 부분이 전날과 다르게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정 사원… 어제 표정이 이상했어.특히 대화를 나눌 때… 감정이 너무 흔들리고…숨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지.그는 정확히 감정을 분석하는 데 능숙했다.그의 직업 때문만이 아니라사람을 관찰하는 능력 자체가 뛰어났다.하지만 민영의 표정은 그가 예상한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너무 솔직했다. 너무 흔들렸다.그리고 너무… 서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감정을 드러낸 걸까.그건… 그녀가 약했기 때문일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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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숨기지 못하는 서툰 진심

정 사원은…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툴다.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따뜻한 미소를 띠었다.“그래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민영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그 순간 한 사람이 로비 뒤편에서 나타났다.최강.그는 민영과 강산이 마주 서 있는 모습을걸음을 멈춘 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민영의 표정, 강산의 동작,두 사람의 거리감까지 모두 읽고 있었다.민영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하지만 강산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감지한 듯슬쩍 뒤를 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아주 잠시 스쳤다.강산의 눈빛은 관찰자의 냉정함이,최강의 눈빛은 지켜보는 사람의 단단함이 담겨 있었다.기류가 로비 한복판에서 조용히 뒤틀렸다.민영은 그 둘의 교차된 시선을 모르고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최강의 시선이 민영에게로 옮겨왔다.살짝 놀란 듯한 눈. 그러나 곧바로 담담해졌다.민영은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숨이 가볍게 꺾였다.어제… 그 말… 다시 생각나게 하지 마…“…아, 안녕하세요.”민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최강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십니까, 정 사원님.”말투는 공식적이었다.그렇지만 그 안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어제의 잔향’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민영은 그 기척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그럼 저는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민영은 강산에게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최강은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시선을 강산이 놓치지 않았다.둘의 시선이 또다시 부딪쳤다.이번엔 더 날카롭게. 강산이 속삭였다.그래… 네가 지켜보는 건 정 사원… 맞구나.그러나 최강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떼었다.부정도, 인정도 아닌 조용한 단절.그게 오히려 더 명확한 대답이었다.민영은 닫히는 문 안에서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꼭 쥐었다.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왜… 왜 이렇게… 내가 불편해야 하지.왜 둘이… 그렇게 서 있었던 거지.그들의 시선 기류를 민영은 전혀 읽지 못했지만여전히 신경 쓰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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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아침이라는 이름의 얇은 긴장 위에서

아침 햇빛은 도시의 건물 유리에 반짝이며 부서졌다.차갑고 투명한 겨울 공기가 라오네트 본사 건물 주변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고, 민영은 그 한가운데서마치 얇은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사람처럼심장의 중심을 잔잔히 눌러가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전날 밤, 깊게 잠들지 못한 탓인지어깨에는 묵직한 피로가 남아 있었고,아버지의 문자와 회장님의 잔잔한 미소,그리고… 그 어둑한 복도에서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눈빛이자꾸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어제 일을, 이제는 그냥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해.일은 일이고, 감정은… 감정일 뿐이니까.민영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라오네트 본사 앞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조금 더 깊은 숨을 들이켰다.로비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목소리가 얇게 섞여 있어 특유의 활기를 머금고 있었다.그 속에서 민영은 자신의 속도가사람들보다 조금 느린 것을 느꼈다.마치 어제의 감정이 아직도 어딘가 붙어 있는 듯한 무게감이몸을 아주 미묘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전,그녀는 시선을 잠시 아래로 내려손끝이 얼마나 떨리는지를 확인했다.그 떨림이 어제보다 조금 덜하다는 사실에단 한 번, 아주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그 안에서 시선 하나가 천천히 그녀에게로 옮겨왔다.강산.그의 미소는 항상 그렇듯 부드럽고 고요했지만눈빛의 결에는 무언가 더 얇고 예리한 것이 비쳐 있었다.민영은 그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숨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정 사원님.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오셨네요.”목소리는 친절했지만 그 친절의 아래에는민영이 알아차릴 수 없는 묘한 이물감이 가라앉아 있었다.민영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오늘은 조금 일찍 오고 싶었어요.”“그래요?”강산은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민영을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표정은… 어제보다 나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민영의 손끝이 다시 떨렸다.그 떨림이 들키지 않도록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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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모두가 읽어버린, 당신의 온도

민영은 손목을 가볍게 세워 들고 있던 컵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는 물컵의 미묘한 열기가손바닥에 얇게 붙어 있던 떨림을 잠시 덮어주는 듯했지만,그 따뜻함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 공기 속으로 흩어져버렸다.그리고 그 순간 책상 옆에 놓인 휴대폰이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틀림없이 그녀의 주의를 끌 만큼얇은 진동을 흘렸다.민영은 숨을 골랐다.어떤 메시지가 도착한 것인지 예상조차 하지 못하면서도이미 마음 한쪽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그 반응은 숨보다 빠르게 가슴 안쪽에서 얇은 떨림을 만들어냈고,그 떨림은 손끝으로 전해져 휴대폰을 향해 움직이는 동작을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느리게 만들었다.화면을 밝히는 순간,그 짧은 문장이 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민영 씨. 출근은… 무사히 하신 겁니까.어제는 많이 불안해 보이셔서요.민영은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쉬었다.문장은 길지 않았고,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절제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 절제된 말 하나하나가 오히려 어제 그녀의 흔들렸던 숨,복도에서 붙잡고 싶었던 단단한 안정감,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게서 느껴졌던말 없는 따뜻함을 또다시 끌어올리는 힘이 있었다.이런 말을… 왜 이렇게 오래 바라보고 있는 걸까.손끝이 가볍게 떨렸다.아무렇지 않게 답장을 보내면 되는 일인데그 단순한 일이 오늘따라 너무 어려워졌다.마음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말들은아직 그녀의 정신 속 어딘가 산란하게 흩어져 있었고,그 흩어진 조각을 하나씩 모으는 일 자체가마치 어젯밤의 흔들림을 다시 마주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괜히… 어제 그런 말을 해서…민영은 테이블을 바라보며어제 자신이 했던 말들을 천천히 떠올렸다.“잠깐만… 여기 있어 주세요…”그 말의 여운이 여전히 그녀의 폐 깊숙한 곳에 남아 있었다.그 말은 그녀의 의지나 계산이 아니라순간의 흔들림 속에서 튀어나온 진심이었고,그 진심이야말로 지금 자신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었다.그때 언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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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마음을 감춘다고 감정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

민영은 책상에 놓인 서류를 한 장씩 넘기고 있었지만,손끝에 닿는 종잇결이 오늘따라 더 얇고 차갑게 느껴졌다.문서에 적힌 문장들이 눈으로는 읽혀도머릿속에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어딘가 멀리서부터 감정의 파문이 잔잔하게 울려와그 울림이 문장 사이를 흐트러뜨리고집중해야 할 문서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정신 차려야 해…오늘은 정말…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날인데.하지만 마음은 그 단순한 다짐을 따라주지 않았다.그 이유를 직시하려는 순간 휴대폰 화면이 다시 아주 짧게 깜박였다.이번에는 메시지가 아니었지만단순한 알림조차 민영의 심장을 가볍고 빠르게 흔들었다.그 반응 자체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나… 지금 너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있는 거지.생각을 마쳐보기도 전에 법무팀 문이 살짝 열렸고,그 미세한 틈새에서 따뜻하면서도 묘하게 날 선 공기가 흘러들어왔다.나연이었다.그녀의 구두 소리가 사무실 바닥에 얇게 흩어지는 동안민영은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고쳐앉았다.나연은 팀장에게 가볍게 무엇인가를 보고하고돌아서는 순간, 마치 우연인 척 민영의 책상 앞에서 잠시 멈췄다.“정 사원님.”그녀는 부드럽게 웃었지만이미 그 미소에는 감정이 과하게 담겨 있었다.“어제, 그 보안팀… 최강 씨 말이야.”민영의 손끝이 아주 작게 멈추었다.나연은 그 미세한 정적을 놓치지 않았다.“혹시… 둘이 좀… 아는 사이였어?”그 말은 완전히 무의미한 질문인 척 던져졌지만,그 바닥에는 분명한 질투와 경계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민영은 평소와 같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지만그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아니요. 어제 우연히…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뿐이에요.”“우연히?”나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조금 더 웃었다.“요즘은… 우연이 참 자주 찾아오네?”민영은 눈을 크게 뜨지 않으려애써 시선을 서류로 떨궜다.왜 자꾸…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지.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기보다 빠르게나연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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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읽혀버린 마음의 방향

민영은 창가로 기울어진 겨울빛이 책상 위에 만들어낸 얇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손끝으로 그 그림자 가장자리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서류의 하얀 결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오늘따라 종이를 넘기는 그 작은 소리조차자신의 마음속 어딘가를 괜히 건드리는 것처럼 느껴졌다.오늘은… 정말 조용하게 지나가면 좋을 텐데.그 바람은 늘 단순했지만 오늘만큼은 간절해 보였다.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날에는 작은 소리 하나도 크게 느껴지고,작은 일 하나도 의미를 갖기 마련이니까.그리고 마침내 문 앞에서 사람의 기척이 조용히 일렁이기 시작하자민영은 손끝에서 힘이 아주 조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발걸음의 속도, 걸음마다 스치는 공기의 결,그리고 문 너머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익숙한 기운이점차 가까워져 올수록 민영의 마음은 숨을 멈추듯 조용히 긴장했다.“정 사원님.”고개를 들었을 때,예상했던 목소리가 그대로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강산.그의 미소는 여느 때처럼 안정적이고 부드러웠지만오늘은 그 미소 뒤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얇은 관찰의 결이 슬쩍 비치고 있었다.마치 그의 시선은 표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면서도속으로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말하지 않은 말들이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는 듯한 느낌.“팀장님이 찾으시네요. 함께 가시죠.”민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간단한 말이었지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어딘가 갑갑한 공기가 따라붙는 듯해스스로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붙잡혀 왔다.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도어제의 일들이 무심코 떠오르고 있었다.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던 순간,도망치고 싶다가도 잠시라도 붙잡히고 싶었던 그 표정,그리고 자신의 말끝에서 새어 나오던 떨림.왜… 그런 말을 했을까.잠깐만, 여기 있어 주세요…그 말의 온도는 지금도 아직 심장 어딘가에서 여전히 따뜻했다.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강산은 그 침묵 속에서 민영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설명 없이도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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