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1 - 챕터 110

256 챕터

100화. 숨결의 끝에서

비는 밤새 내렸다.병원 외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유리창을 두드리며, 마치 세상의 모든 불안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응급실 안은 긴박했다.“혈압 70에 맥박 약해요!”“수혈 준비하세요, 혈액형 O형 맞죠?”“응급 수술 들어갑니다!”의사들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수연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채 손을 씻고 있었다.거울에 비친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에는 한 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박지현이 수술실 안에 실려 들어온 지 3분.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자, 수연의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차 교수님, 준비됐습니다.”“집도의 차수연, 시작합니다.”조명이 켜졌다. 수술실은 차가운 빛으로 가득 찼다.피에 젖은 시트 위, 박지현의 흉부에 절개선이 그어졌다.“스캘펠.”“흡인기.”“거즈.”짧고 날카로운 명령이 잇따라 나왔다.수연은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집중했다.지금 이 순간, 눈앞의 생명 하나만이 전부였다.피가 솟구쳤고, 기계음이 불안하게 울렸다.“맥박 떨어집니다! 심박수 40!”“에피네프린 투여.”“제세동 준비해요.”기계가 울리는 경고음 사이, 수연의 심장은 같이 요동쳤다.‘안 돼… 아직이야. 버텨야 해. 제발.’“충전 완료, 제세동 1회 실시!”‘탁!’몸이 튀어올랐다. 심전도가 다시 일직선으로 변했다.순간, 누군가의 손끝이 떨리며 소리쳤다.“반응 있습니다! 심박수 상승!”수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나 그 표정엔 미소 대신 고요한 결의가 비쳤다.“출혈 부위 봉합. 피압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립니다.”그녀는 다시 메스를 들었다.피와 땀, 그리고 고요한 숨소리만이 수술실을 채웠다.한편, 수술실 밖에서는 우혁이 서 있었다.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지만,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그는 병원 관계자들과 경찰에게 사건 개요를 설명했지만, 머릿속은 오로지 수연과 수술실 안의 한 사람에게로 향해 있었다.‘그녀는… 지금 또 한 생명을 살리고 있겠지.’그는 자신이 손댈 수 없는 세계의 문 앞에서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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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심장이 기억하는 사람

새벽의 병원은 언제나 그랬듯, 고요했다.긴 밤을 버텨낸 불빛만이 차갑게 깜빡였고, 복도 끝에선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수연은 중환자실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지현의 심박선이 일정한 리듬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그녀는 마치 오래된 약속을 지키듯, 매일 같은 시간에 여기를 찾아왔다.“지현 씨… 이제 좀 일어나줘요. 세상이 기다리고 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피로에 젖어 있었지만 진심이 묻어났다.그때였다.삑~하고 모니터가 다른 톤으로 울렸다.수연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지현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그리고, 천천히, 아주 느리게 그녀의 눈꺼풀이 떨렸다.“박지현 씨, 들리세요? 전 차수연이에요. 당신이 아시는, 그 차수연.”수연은 목이 메인 채로 손을 잡았다.지현의 입술이 마른 소리를 냈다.“…교…수님…”그 한마디에 수연의 눈가가 번졌다.“괜찮아요. 천천히 말해요.”잠시의 정적 끝에, 지현의 시선이 허공을 헤매다 수연의 얼굴에 닿았다.“파일은… 경찰에… 갔어요?”“응, 당신 덕분에. 이제 거의 다 끝났어요.”그러나 지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아직… 하나 더 있어요…”수연의 표정이 굳었다.“뭐라고요? 무슨 뜻이에요?”지현은 숨을 고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그 사람… 민도혁… 그가 가진 파일엔… 교수님 수술 기록이 있어요. 다섯 해 전… 심장 이식 수술…”수연의 눈이 커졌다.“그 수술이라면… 그건”지현이 미소를 지었다.“그때… 교수님이 살린 환자요. 바로… 강우혁 대표님이에요.”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수연의 손끝이 공중에 멈췄고, 그녀의 숨이 막혔다.“지금… 뭐라고 했어요?”“대표님… 기억 못 하시죠? 그땐 가명으로 입원했어요. 심근 파열, 급성 심정지… 교수님이 직접 수술했어요.”수연의 심장이 무겁게 떨어졌다.머릿속에 오래된 장면이 스쳤다 새벽 3시, 수술실 안.“환자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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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심장이 기억하는 것

도시의 불빛이 멀어질수록, 어둠은 짙어졌다.폐공장으로 향하는 길은 비에 젖은 듯 미끄러웠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잿빛의 잔상처럼 덜컥거렸다.운전석에 앉은 우혁의 손끝은 단단히 조여 있었다.그 옆자리에서 수연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 깃든 결심은 단단했다.“민도혁이 거기 있다고 확신하나요?”수연의 물음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은 묵직했다.“확실하진 않아요. 하지만 경찰이 추적한 신호는 거기서 멈췄습니다.그가 움직이기 전에 끝내야 합니다.”차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엔진 소리와 함께, 바람이 차체를 스쳤다.“교수님.”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아까 했던 말, 기억하시죠? 그날의 수술… 그게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수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운명이라기보단, 아이러니 같아요.내가 살린 사람에게 이렇게 다시 구해질 줄은 몰랐으니까요.”그녀의 목소리엔 담담함이 깃들었지만, 그 안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그런데도, 후회는 없어요. 당신을 살렸던 그날도, 오늘 이 길을 선택한 것도.”우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지금 그 말, 꼭 이별 예고처럼 들립니다.”그녀가 잠시 미소를 지었다.“의사라는 건 늘 그런 거예요. 언제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사람들.”그는 더 말하지 못했다.무엇을 말해도, 그녀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폐공장은 도시 외곽의 공터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불이 꺼진 창문, 녹슨 철문,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낡은 간판.모든 것이 오래된 잔상처럼 고요했다.그들은 조심스레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우혁이 손전등을 켜자,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쪽 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 안인가 봅니다.”그가 낮게 말했다.수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그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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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신의 선택, 인간의 의지

새벽의 공기는 차가웠다.비는 그쳤지만, 공중에 맴도는 습기와 연기의 냄새가 여전히 폐를 자극했다.응급차 불빛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공장 앞을 오갔고, 경찰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그곳은 이미 반쯤 무너진 철골과 연기, 그리고 뒤엉킨 전선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수연은 철제 기둥에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손끝에 묻은 검은 먼지를 닦을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단 하나 안쪽으로 사라진 민도혁을 향해 있었다.“대표님, 여긴 위험합니다. 경찰이 확보하면”“아니요.”그녀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이건 제 일입니다. 제가 끝을 내야 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그 안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오랜 시간 묵혀온 책임감이 응축돼 있었다.우혁은 한 걸음 다가섰다.“교수님이 그런 말 하면, 전 결국 따라가게 됩니다.”그녀가 고개를 돌렸다.“왜요? 당신은 더 이상 의료 사고와 상관없는 사람이잖아요.”“상관있죠. 당신이 아직 그 죄책감 속에 갇혀 있다면, 그건 내 심장이 아직 빚을 진 겁니다.”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심장이 빚을 진다니,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이 심장은 당신이 준 거니까요. 그 빚은 평생 안고 갈 겁니다.”그 말에 수연은 잠시 숨을 멈췄다.말없이 고개를 숙였다.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그 떨림은 분노가 아니라, 오래된 감정의 잔향이었다.공장 안쪽은 더 어두웠다.전기가 완전히 끊긴 탓에, 우혁의 휴대용 손전등 불빛만이 공간을 가르고 있었다.벽면에는 수많은 사진과 서류가 붙어 있었다.환자 기록, 연구 노트, 수술 영상 캡처.모두 차수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수연은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멈췄다.그건, 다섯 해 전 그날의 수술실 사진이었다.빛바랜 영상 속, 그녀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그리고 그 환자는 지금 옆에 서 있는 우혁이었다.“당신은… 그때 이런 걸 남겨놨군요.”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나를 조롱하듯 기록하고, 이용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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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진실의 무게

새벽이 완전히 걷히자, 하늘은 유리처럼 맑았다.폐공장 밖, 경찰차와 구급차가 모두 철수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은 건 고요였다.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밤새 몸에 밴 철 냄새가 여전히 코끝에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교수님.”뒤에서 우혁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그는 젖은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이제 병원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박지현 씨가 깨어났어요.”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깨어난 게 다행이에요.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모든 걸 세상에 내놓는다면, 이 병원은 무너질지도 몰라요.”“그래도 숨기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차수연이라는 사람의 방식이라고.”그 말에 수연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이상하죠. 당신이 그 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이젠 저도 알 것 같아서요.살린다는 게, 꼭 수술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란 걸.”그의 말에는 잔잔한 확신이 배어 있었다.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같이 가요.”병원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다.밤새 켜져 있던 응급등 아래, 간호사들이 속삭이며 오가고 있었다.수연의 발걸음이 중환자실 문 앞에서 멈췄다.유리창 너머, 지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지현 씨.”그녀가 다가가자, 지현의 시선이 움직였다.창백했던 얼굴에는 여전히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선명했다.“교수님… 오셨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분명했다.“이제 기억이 다 났어요.”“천천히 말해요. 무리하지 말고요.”수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현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민도혁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그 뒤에, 재단 이사장이 있었어요.의료 연구 자금을 빌미로 불법 실험에 투자했고,환자 데이터를 조작해 보험금과 리베이트를 나눠 가졌어요.”수연의 손끝이 서서히 굳었다.“이사장이… 그랬다고요?”“네. 제가 그걸 알고, 민도혁에게 협박당했어요. 그래서 증거를 모으려다, 그에게 공격받은 거예요.”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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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다시 잡은 메스, 다시 뛰는 시간

아침의 병원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각종 방송사와 기자들이 정문 앞을 메웠고, 환자 보호자들은 휴게실 TV 앞에 모여 있었다.뉴스 속 화면에는 차수연의 이름이 계속해서 떠올랐다.“불법 실험 은폐 사건의 내부 고발자, 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차수연이 복직을 준비 중입니다.”“일각에서는 그녀를 ‘양심 있는 의사’라 부르지만, 반대 측은 ‘사건의 일부 책임자’라고 지적하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수연은 의국 복도 끝, 창가에 서 있었다.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와 하얗게 번졌고, 그 빛 속에서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지만, 진실이 드러난 뒤에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한쪽에선 박수를, 다른 한쪽에선 돌을 던졌다.“교수님, 언론 인터뷰는 거절하신다고 전달해놨습니다.”레지던트가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잘했어요.”그녀는 짧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린 의사잖아요. 환자 앞에서 말해야 할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대신할 순 없어요.”레지던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그녀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병원의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낡은 곳에 새 공기가 들어오는 듯한 긴장감, 그리고 묘한 기대.수술실 복도 앞.하얀 가운을 걸친 수연이 마스크를 매만졌다.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5년 만의 복귀 수술이었다.“차 교수님.”뒤에서 동료 의사 한 명이 말을 걸었다.“아직 기자들이 병원 앞에 있습니다. 오늘 첫 수술이니까, 부담되시겠죠.”“부담이요?”수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사람의 심장을 열어야 하는데, 카메라 몇 대쯤이야 무섭겠어요.”짧은 미소가 스쳤다.그 미소에는 단단한 자신감보다도, 오랜 결심에서 오는 평온이 있었다.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자 공기가 달라졌다.모니터 불빛, 냉기, 그리고 철제 기구들이 내는 묵직한 소리.그녀는 수술용 장갑을 낀 채, 환자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심박 안정, 혈압 110/70.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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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다시 뛰는 심장

새벽 다섯 시, 병원 응급실.하얀 불빛 아래,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수연은 커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한 채 호출을 받았다.“교수님, 흉부 파열 환자 들어왔습니다. 교통사고입니다!”간호사의 목소리가 급박하게 울렸다.그녀는 반사적으로 뛰었다.하얀 슬리퍼가 복도를 가르며 미끄러지듯 지나갔다.응급실 문이 열리자, 피 냄새와 금속의 냄새가 동시에 밀려왔다.“남자, 38세, 복부 및 흉부 압궤상, 혈압 70에 산소포화도 85!”“심정지 들어갈 확률 높아요, 교수님!”수연은 숨을 고르며 한 손으로 환자의 흉부를 짚었다.“준비해요. 바로 개흉 들어갑니다.”“교수님, 보호자 동의서가 아직”“시간 없어요. 이건 생명선이에요.”그녀의 눈빛이 단호하게 빛났다.기계음이 날카롭게 울렸다.삐, 삐, 삐 그리고 순간, 일직선으로 뻗었다.“심정지. CPR 들어갑니다. 1mg 에피네프린 준비.”그녀의 손이 정확히 움직였다.리듬감 있게, 깊고 단단하게.마치 잊었던 악보를 다시 짚어내는 연주자처럼.“흉부 압박 유지, 1분 후 다시 전기충격 갑니다.준비됐죠? 하나, 둘, 셋— 클리어!”번쩍, 전류가 환자의 몸을 튕겼다.잠시의 침묵 후,“리듬 돌아왔습니다! 미약하지만 맥박 잡힙니다!”그 말에 수연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수술실 바로 연결해요.지체하면 다시 잃습니다.”수술실 안. 혈압이 불안정했다.출혈이 많았고, 폐 손상까지 겹쳐 있었다.“봉합선 유지 안 됩니다.”“리트랙터 더 열어요. 시야 확보해야 해요.”손끝이 떨릴 틈이 없었다.피가 튀고, 기구가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수연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울렸다.“좌폐 일부 절제합니다. 산소포화도 90 유지. 좋아요, 심박 확인.”모두가 숨죽인 채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세 시간.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마지막 봉합 완료.”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맥박 정상화 확인. 수술 종료합니다.”수술실 안의 공기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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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지켜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비가 내렸다.굵지도, 얇지도 않은 비였다.창문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병원 복도의 불빛을 따라 은빛으로 흘렀다.그 빗소리가, 마치 오래된 심장박동처럼 일정하게 들려왔다.차수연은 회의실 안, 긴 테이블 끝에 앉아 있었다.벽면 스크린엔 복귀 후 그녀가 맡았던 응급수술의 기록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응급수술 승인은 누가 내렸습니까?”냉정한 목소리가 테이블 건너편에서 들렸다.병원 부원장이었다.“당시 보호자 동의를 받을 시간이 없었습니다.”“그래도 절차는 절차입니다. 당신의 복귀 첫 수술이 규정을 위반했다면, 그건 또 다른 논란이 됩니다.”“그 규정이 환자의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수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순간, 회의실 안의 공기가 팽팽해졌다.“지금은 당신의 도덕심을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병원은 공공기관입니다.우리는 여론과 재단의 압박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그 말에 수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은 유리처럼 투명했지만, 깊은 곳엔 피로가 번져 있었다.“그럼, 제게 묻겠습니다.그날 수술실 안에서 내가 하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살아 있었을까요?”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침묵이 짙게 깔렸다.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의사에게 필요한 건, 동의서보다 용기입니다.저는 그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돌아온 겁니다.”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그래서 불편한 거지. 정의만으로는 병원이 돌아가지 않으니까.”그날 오후, 병원 이사회실.우혁이 서류를 손에 들고 있었다.그의 얼굴은 피로에 지쳐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재단 측에서 공식적으로 차 교수의 복귀를 재검토하겠다고 합니다.”이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이유가 뭐죠?”“내부 여론 악화, 그리고… 기부금 취소 건입니다.몇몇 주요 후원자가 ‘차수연이 있는 병원에 더는 돈을 넣을 수 없다’고.”우혁은 잠시 서류를 내려놓았다.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들은 생명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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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진실의 그림자

하얀 복도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아침 9시 42분, 수술실 3번.모니터의 심박수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요동쳤다.“혈압 떨어집니다! 산소포화도 75!”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수연이 눈썹을 찌푸렸다.“출혈 부위 다시 확인하세요. 봉합선 쪽 아니면 폐혈관 쪽일 겁니다.”“재확인 중입니다. 하지만 시야가”“라이트 더 밝게. 리트랙터 각도 조정.”그녀의 손끝이 빠르게 움직였다.날카로운 수술용 가위가 공기 속에서 반짝였고, 그 순간, 붉은 피가 터져나왔다.“출혈 확인. 우측 폐동맥 손상입니다.”수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클램프 잡아요. 피 멈춥니다. 혈압 유지, 심박 확인.”기계음이 다시 불안하게 떨렸다.삐..삐..삐.. 리듬이 흔들리고, 수연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에피네프린 1mg 주입. 제세동 준비하세요. 하나, 둘, 셋 클리어!”전류가 환자의 몸을 튕겼다.하지만 그래프는 여전히 불안하게 흔들렸다.“심박 돌아왔습니다. 미약하지만 안정적입니다.”그제야 수연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봉합 들어갑니다. 수술 부위 재확인 후 마무리하세요.”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지만, 그 안엔 묘한 불안이 묻어 있었다.오랜 경험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어긋남의 느낌.수술이 끝난 뒤, 회복실에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던 레지던트가 뛰어왔다.“교수님, 환자 의식이 돌아왔는데… 호흡이 불안정합니다.”“ABGA 결과는요?”“산소분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CT 바로 찍어요. 폐색 가능성 확인해야 해요.”하지만 검사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폐색도, 혈전도 없었다.그런데 환자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졌다.수연은 차트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속삭였다.“이건 단순 합병증이 아니에요…”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몇 시간 후, 병원 이사회실에선 또다시 회의가 열렸다.이번엔 재단 고문까지 참석한 자리였다.“차 교수, 이번 수술 환자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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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5년 전의 범인, 눈앞의 환자

밤공기가 싸늘했다.병원 옥상 위, 네온사인이 깜빡이며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우혁은 손에 쥔 서류봉투를 바라봤다.‘내부 고발자-박지현.’그 이름 하나가 오래된 기억처럼 가슴을 짓눌렀다.그녀는 이미 사라진 줄 알았다.모든 걸 버리고 떠났다고 믿었는데,그 이름이 다시 병원 시스템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 : 박지현]그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망설임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오랜만이네요.”짧은 숨소리 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강 대표님, 그때는… 미안했어요.”“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이제는 말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차 교수님이 당했던 일, 그건… 단순한 의료 사고가 아니었어요.”우혁은 말을 잃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어디에 있습니까.”“병원 근처예요. 30분 뒤에 뵙죠. 이번엔… 진짜로, 다 얘기할게요.”30분 후, 병원 앞 오래된 카페.창밖으로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박지현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야위어 있었고, 눈빛에는 피로와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우혁이 자리에 앉자, 그녀는 손끝으로 커피잔을 천천히 굴렸다.“교수님을 무너뜨린 건… 저예요.”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멎었다.“그날, 수술 차트가 바뀌었을 때… 그건 민도혁이 시켰어요.하지만 그걸 직접 실행한 건… 저였어요.”“왜 그랬죠.”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겁이 났어요. 그때 저는 병원 내 승진 명단에 있었고,도혁 과장은 제 인생을 쥐고 있었어요. 거절하면 모든 걸 잃을 것 같았어요.”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그런데, 그날 환자가 죽었어요.교수님은 그걸 자신의 탓이라고 믿었고…저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우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USB를 내밀었다.“이 안에, 당시 수술실 CCTV 원본이 있어요.그걸 공개하면… 교수님은 완전히 복권될 거예요.하지만 동시에, 병원은 무너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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