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병원 앞은 무대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동식 조명, 무선 마이크, 붉은 선으로 표시된 촬영 구역. 기자들의 스탠바이 멘트가 이어지고, 초조한 보조 작가들이 시간표를 확인했다. 그 중앙에서 박지현은 군더더기 없는 흰 가운을 여민 채, 메모 카드 한 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곧 시작합니다.”PD의 신호가 떨어지자, 카메라 빨간 불이 켜졌다. 지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첫 문장을 내리꽂았다.“저는 이 병원의 흉부외과 의사로서, 환자의 안전과 진실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최근의 논란은 단지 사적인 스캔들이 아닙니다. 구조적인 위험을 묵인한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어서 준비해 둔 ‘사실 관계’ 목록을 펼쳐 보였다. 날짜, 케이스 넘버, 수술 시간, 약물 투여 기록. 숫자와 단어의 나열이 정밀한 칼처럼 화면을 갈랐다.“특정 시점의 수술 의사 결정에서, 감정적 개입이 의심되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포착되었습니다. 저는 동료로서 오랜 시간 침묵했지만, 더는 환자의 생명을 두고 침묵할 수 없습니다.”문장 하나마다 기자들의 손이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감정적 개입’, ‘반복’, ‘침묵의 파기’ 같은 단어가 작은 불씨 대신 커다란 횃불이 되어 번졌다. 화면 하단에는 곧바로 자막이 올라갔다.“내부 의사, 차수연 교수 ‘감정 개입’ 의혹 제기”지현은 마지막 문장에 힘을 줬다.“이사회는 즉각적인 윤리 심의와 외부 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같은 시각, 의국. 수연은 의국장의 호출을 받았다. 문을 열자 회의 테이블 위에 봉인 스티커가 붙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긴급 이사회 소집 통지’. 봉투를 뜯는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오늘 오후 세 시, 특별 안건입니다.”의국장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교수님에 대한 직무정지 권고안 상정… 가능성 있습니다.”방 안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수연은 잠시 창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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