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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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드러나는 균열

늦은 밤, 병원 복도는 이미 적막에 잠겨 있었다. 형광등 불빛만이 차갑게 깜박이며 긴 하루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회진을 마친 수연은 의국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자마자 깊은 숨을 내쉬었다. 손끝은 여전히 수술 장갑의 감각을 잊지 못한 듯 저릿했고, 귀에는 심장 모니터의 경고음이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그녀는 책상에 팔을 올리고 이마를 묻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겨우겨우 살아남은 하루였지만, 환자의 미약한 맥박을 살려냈다는 사실조차 위안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건 기자들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환자 가족의 날 선 원망뿐이었다.그때 문이 열리고 낮은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여기 계셨군요.”수연은 고개를 들었다. 우혁이 문가에 서 있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와, 손에 쥔 종이컵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커피였다.“오늘 하루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셨죠? 표정만 봐도 알겠습니다.”그는 담담히 말했지만, 눈빛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수연은 미안한 듯 작게 웃으며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끝에 스며드는 온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감사합니다.”“감사하실 일 아닙니다.”우혁은 조용히 의자에 앉으며 그녀를 바라봤다.“교수님께서 환자를 살리셨는데,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수연은 컵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피했다.“가끔은… 내가 환자를 살려도, 세상은 내가 죽였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흔들리게 됩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는 지워지지 않는 피로와 상처가 번져 있었다.우혁은 잠시 말을 고르고 난 뒤,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어조로 답했다.“교수님은 환자를 살리고 계십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누구보다 성실하게. 잘못된 건 교수님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의혹을 키우는 사람들입니다.”수연은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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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증명은 메스로 한다.

아침 햇살이 병원 정문 유리벽을 투과하며 차갑게 번졌다. 그러나 그 빛은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병원 앞은 이미 수십 대의 카메라와 기자들로 가득했다. 수연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플래시가 쉼 없이 터졌다.“차 교수님! 환자와의 관계가 진료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환자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우선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어떻게 해명하시겠습니까?”차가운 질문이 마치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수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마다 플래시가 터졌고, 뒤에서 쏟아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복도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엔 기자 대신 동료 의사와 간호사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 시선 속에는 연민도 있었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의심이었다.오전 회진이 끝나자마자 응급 호출이 걸렸다. 교통사고로 실려 온 중년 남성이 심한 흉부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갈비뼈가 부러져 심장을 찔렀고, 대량 출혈로 언제 심정지가 올지 알 수 없었다.“이 환자는 수술을 지체하면 위험합니다. 집도는 차수연 교수가 맡습니다.”의국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리자, 주위가 술렁였다.“지금 상황에서 차 교수가요?”“여론이 어떤데… 괜한 위험 아닙니까?”누군가 작은 소리로 불만을 흘렸다. 그러나 의국장은 흔들리지 않았다.“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입니다.”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손끝이 차갑게 떨렸지만, 곧 확신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가운을 단단히 여미며 수술실로 걸음을 옮겼다.수술실 안은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환자의 혈압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심폐 모니터는 불규칙한 리듬을 경고하듯 울렸다. 피가 시야를 가렸지만, 수연의 손끝은 단단히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출혈 부위 시야 확보하세요. 흡인 강도를 높이십시오.”“봉합 준비, 실은 4-0으로.”짧지만 단호한 지시가 이어졌다. 수술팀의 손길은 빠르게 움직였고, 모두가 그녀의 지휘에 따라갔다. 순간 모니터 수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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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심판을 예고하는 벨

아침부터 병원 앞은 무대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동식 조명, 무선 마이크, 붉은 선으로 표시된 촬영 구역. 기자들의 스탠바이 멘트가 이어지고, 초조한 보조 작가들이 시간표를 확인했다. 그 중앙에서 박지현은 군더더기 없는 흰 가운을 여민 채, 메모 카드 한 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곧 시작합니다.”PD의 신호가 떨어지자, 카메라 빨간 불이 켜졌다. 지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첫 문장을 내리꽂았다.“저는 이 병원의 흉부외과 의사로서, 환자의 안전과 진실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최근의 논란은 단지 사적인 스캔들이 아닙니다. 구조적인 위험을 묵인한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어서 준비해 둔 ‘사실 관계’ 목록을 펼쳐 보였다. 날짜, 케이스 넘버, 수술 시간, 약물 투여 기록. 숫자와 단어의 나열이 정밀한 칼처럼 화면을 갈랐다.“특정 시점의 수술 의사 결정에서, 감정적 개입이 의심되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포착되었습니다. 저는 동료로서 오랜 시간 침묵했지만, 더는 환자의 생명을 두고 침묵할 수 없습니다.”문장 하나마다 기자들의 손이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감정적 개입’, ‘반복’, ‘침묵의 파기’ 같은 단어가 작은 불씨 대신 커다란 횃불이 되어 번졌다. 화면 하단에는 곧바로 자막이 올라갔다.“내부 의사, 차수연 교수 ‘감정 개입’ 의혹 제기”지현은 마지막 문장에 힘을 줬다.“이사회는 즉각적인 윤리 심의와 외부 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같은 시각, 의국. 수연은 의국장의 호출을 받았다. 문을 열자 회의 테이블 위에 봉인 스티커가 붙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긴급 이사회 소집 통지’. 봉투를 뜯는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오늘 오후 세 시, 특별 안건입니다.”의국장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교수님에 대한 직무정지 권고안 상정… 가능성 있습니다.”방 안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수연은 잠시 창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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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대회의실. 녹색 펠트가 깔린 긴 테이블의 양끝에 이사장이, 측면에 법률 자문과 감사가 앉았다. 맞은편 의자에 수연이 앉자, 플래시 대신 서늘한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박지현은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얼굴엔 죄책감 대신 확신이, 목엔 얇은 진주 목걸이가 흔들리고 있었다.이사장이 입을 열었다.“차수연 교수. 최근 일련의 의혹과 관련해, 윤리 규정 위반 여부를 심의하겠습니다. 먼저 증인의 진술을 듣겠습니다.”지현은 준비한 문서를 펼쳤다.“저는 동료로서 오래 지켜봤습니다. 교수님은 뛰어난 수술가이지만, 때때로 환자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늘 옳은 결과로 이어졌다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겠지만, 그 경계가 위험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법률 자문이 물었다.“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까?”“5년 전 응급수술. 그리고 최근 두 케이스. 결정 타이밍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고, 다른 대안을 검토할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수연은 가볍게 고개를 들었다.“의학은 아슬아슬한 다리입니다. 환자가 무너지는 순간, ‘대안 검토’라는 단어에 매달릴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수술대 위에서 ‘살릴 수 있는 선택’만을 합니다. 그게 공격적으로 보이셨다면, 그날 환자의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는지, 다시 보시길 권합니다.”회의장 공기가 묘하게 흔들렸다. 감사가 말문을 열었다.“그러나 감정 개입 의혹은…”“감정은 수술장 문 앞에 두고 들어갑니다.”수연은 어조를 낮췄다.“의사로서 제가 지켜온 유일한 신념입니다. 오늘도 그 원칙을 지켰고, 환자는 살아 있습니다.”그때 문이 ‘탁’ 소리를 내며 열렸다. 회의장 뒤편, 강우혁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이사장이 눈살을 찌푸렸다.“외부인은”“저는 이 병원의 데이터 협력 파트너로 초청된 내부 프로젝트 책임자입니다.”우혁은 초대장을 조용히 제시했다. 이사장과 감사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합당했다. 그는 측면 자리에 앉으며 수연을 흘끗 바라봤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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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흔들리는 증거들

아침 공기는 맑았지만, 병원 건물 위로 드리운 긴장감은 뿌연 안개처럼 걷히지 않았다. 본관 7층 대회의실 앞에는 이른 시간부터 기자들이 몰려 있었고, 이사회 감사팀은 이미 도착해 서류 뭉치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있었다. ‘의료 행위 로그 검증’이라는 딱딱한 표지가 붙은 자료철은 마치 판결문처럼 무겁게 느껴졌다.차수연은 흰 가운에 스카프를 걸치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표정은 평온했으나, 손가락 끝이 잠시 서류철을 움켜쥐며 긴장을 드러냈다. 자리 맞은편에는 박지현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또렷한 아이라인을 강조한 얼굴로, 준비된 증인의 태세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사회 자문 변호사가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회의가 시작되자, 감사팀장은 곧장 USB 하나를 꺼내들었다.“어제 응급 수술 로그와 5년 전 흉부외과 응급 케이스의 데이터가 이곳에 있습니다. 두 건 모두 차수연 교수께서 집도하셨지요?”“네. 맞습니다.”수연의 대답은 단호했지만, 목소리의 울림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감사팀장은 화면을 켜고, 스크린에 타임라인을 띄웠다. 초 단위로 기록된 약물 투여, 심장 압박 횟수, 전기 충격 시행 시각. 숫자들이 기계적으로 나열되었지만, 그것은 곧 수연의 손끝이 지나간 순간들이기도 했다.“여기 보시면,” 감사팀장은 레이저 포인터를 움직이며 말했다.“5년 전 케이스에서, 다른 의료진이 권고한 약물 투여를 무시하고 30초 일찍 개흉을 결정하셨습니다. 이는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독단적 판단 아니었습니까?”순간 회의실 안 공기가 싸늘해졌다. 박지현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저 역시 그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환자의 맥박은 미약했지만 완전히 소실되진 않았습니다. 조금 더 지켜봤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 겁니다.”수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시선을 들었다.“그날, 환자의 심장이 맥을 잃어가는 순간을 제 손끝으로 느꼈습니다. 30초를 기다렸다면, 그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로그에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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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사라진 차트, 남겨진 박동

새벽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병원 로비를 스쳐가는 바람마저 얼음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하루 전 대량 환자 응급 수술에서 수연이 지휘를 맡아 모두를 살려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사람들의 관심은 비난에서 찬사로 바뀌었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아침 일찍, 전국 주요 언론사에 동시에 배포된 익명 보도자료 하나가 불을 지폈다.“흉부외과 차수연 교수, 과거 환자 사망 은폐 의혹.”메일 속 첨부 파일에는 몇 장의 사진과 이름이 가려진 차트 사본이 있었다. 마치 비밀스러운 진실이 드러나는 듯, 그 흔적들은 치밀하게 편집되어 있었다.병원 안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복도마다 카메라가 도배되었다. 간호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재촉했고, 의사들조차 서로 속삭이며 수연을 흘끔거렸다.이사회 회의실. 민도혁은 단정하게 다린 가운을 걸친 채, 회의실 중앙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프로젝터 화면이 켜져 있었다.“5년 전, 교통사고로 실려 온 3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심정지로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사망 처리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하지만”그는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다.“실제로는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내부 증언이 있습니다. 더구나 환자의 차트와 기록이 조작된 흔적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사건을 주도한 건 다름 아닌 차수연 교수였습니다.”회의실 안이 술렁였다. 임원 몇몇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속삭였고, 누군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박지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보탰다.“제가 기억합니다. 그날 수연 교수는 독단적으로 수술을 진행했고, 이후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환자가 살아남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사망.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 무언가 숨기려 했던 겁니다.”말은 단단했고, 증거처럼 들렸다.같은 시각, 수연은 병동 회진을 마친 뒤 기자들의 포위망에 갇혔다.“교수님! 5년 전 환자 은폐 의혹, 사실입니까?”“그 환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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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증언

병원 강당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사회가 주도한 공개 청문회 형식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기자석은 이미 빼곡했고, 카메라 플래시는 쉼 없이 터졌다. 중앙 단상에 선 민도혁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확신이 어려 있었고, 그 확신은 모두에게 불길한 예감을 안겨주었다.“오늘 우리는 차수연 교수의 과거 의료 행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잠시 강당 전체가 조용해졌다.“특히, 5년 전 응급 수술 은폐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증언자가 나올 예정입니다.”뒤편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는 중년의 나이로 보였고, 깊게 팬 주름과 불안한 시선이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이분은 당시 수술실에서 환자 이송을 도왔던 의료 보조 인력입니다.”민도혁은 의도적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강하게 눌렀다.“그는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차트와 기록은 ‘사망’으로 처리되었죠. 이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결과를 바꾼 것입니다.”순간 강당 안이 술렁였다. 기자들이 앞다퉈 펜을 움직였고, 카메라의 셔터음이 연달아 울렸다.차수연은 단상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분명 병원에서 몇 번 스쳐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얼굴을 똑바로 떠올리기에는 너무 희미했다. 그가 진짜로 당시 현장에 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제가 기억하는 건 분명합니다.”남자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환자의 맥박이 돌아왔고,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록이 사망으로 처리되었어요. 당시 수술실 안에 있었던 사람은… 차 교수님뿐이었습니다.”그 말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수연을 겨냥했다. 순간 주변의 시선이 무겁게 쏟아졌다.수연은 숨을 고르며 답했다.“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손끝에서 맥박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그 이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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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폭풍 속의 버팀목

밤은 깊었지만, 수연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피스텔 창문 너머로 흩뿌려진 불빛들이 검은 하늘 위에서 은근한 떨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 민도혁의 날 선 공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혁이 남긴 한 마디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어쩌면… 그때 저를 살린 사람이 교수님일지도 모릅니다.”그 말이 진실일 리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다. 기억 속 흐릿한 얼굴이 분명 누군가의 생존을 의미했지만,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었던 그 환자. 혹시… 그 사람이 지금 눈앞의 강우혁이라면.심장이 조여 오는 듯한 불안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운명은 얼마나 잔인하고도 기묘한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주방 쪽에서 잔잔한 발소리가 들렸다. 우혁이 물컵을 들고 나타났다. 셔츠 소매를 걷은 팔은 피곤에 지쳐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밤새 불타는 듯 깊고 선명했다.“아직도 못 주무셨군요.”그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짧게 대답했다.“…네. 머리가 복잡해서요.”우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맞은편에 앉았다. 둘 사이에는 짧지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결국 그가 먼저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5년 전, 저는 갑작스러운 심장질환으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의식이 희미해질 때 마지막으로 본 건, 수술실 조명과… 그리고 단단하게 떨리지 않던 한 의사의 눈빛이었습니다.”수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이 몰려왔다.“…그게 저라고 생각하십니까?”우혁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마치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짚듯 말을 이어갔다.“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수님을 볼 때마다… 제 기억 속 그 눈빛과 겹쳐집니다. 차갑지만 따뜻했고, 두려움조차 뚫고 들어오는 확신 같은 것. 교수님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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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추궁의 날

아침, 병원 앞은 다시 취재진으로 가득했다. 언론사 차량들이 도로 양쪽을 메우고 있었고, 카메라는 이미 수십 개의 시선을 병원 정문에 집중시키고 있었다.“차수연 교수, 의료 재단 기금 횡령 혐의 경찰 수사 착수.”자막이 적힌 뉴스 화면이 로비 모니터에서 연달아 흘러나왔다.수연은 평소처럼 흰 가운을 걸쳤지만, 걸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복도마다 들려오는 속삭임, 멀리서 들려오는 기자들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나 표정은 단단히 다잡혀 있었다.점심 무렵, 수연은 서울지방경찰청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기 위해 별관 회의실로 향했다.책상 위에는 이미 두꺼운 서류철과 은행 거래 내역 출력물이 놓여 있었다. 수사관은 굳은 표정으로 묻기 시작했다.“차 교수님, 여기에 기록된 계좌가 본인 명의가 맞습니까?”“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계좌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계좌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수사관은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페이지를 넘겼다.“이 날, 천만 원이 인출된 내역이 있습니다. 같은 날 교수님은 파리에서 열린 흉부외과 국제 학회에 참석 중이셨죠. 그렇다면 누가 로그인했을까요?”수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시각, 저는 학회장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저 계좌를 움직일 수 없다는 건 명백합니다.”수사관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곧 단호하게 말했다.“계좌가 교수님 명의인 이상, 책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계좌 접근 기록과 아이피 추적을 통해 다른 가능성도 조사할 예정입니다.”수연은 답하지 못한 채 손끝을 억눌렀다. 억울함보다 더 큰 건, 자신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상대가 믿지 않는 현실이었다.조사가 끝난 뒤, 수연은 복도를 걸어 나오다 우혁을 마주쳤다. 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교수님.”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감정이 묵직하게 실려 있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게 조작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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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의사 면허, 벼랑 끝의 1분

이사회 임시 회의실은 날 선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탁자 위에는 여러 장의 프린트물과 노트북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이사진과 변호사들, 감사팀장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민도혁은 여유로운 태도로 중앙에 서서 화면을 띄웠다.“오늘 제가 준비한 건 단순한 의혹이 아닙니다. 명확한 증거입니다.”화면에는 몇 장의 사진이 확대되었다. 차수연의 이름이 선명히 적힌 계좌 내역과 함께, ‘기금 유용’이라는 제목이 붉은 박스로 표시되어 있었다. 거액이 특정 날짜마다 빠져나가고 있었고, 이사진은 탄성을 내뱉었다.“저 계좌가 실제로 교수님 명의라면…”“이건 명백한 범죄 아닌가?”“병원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어.”속삭임이 이어졌다.박지현은 옆에서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저 역시 기금 사용 내역을 관리하던 당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죠. 지금 보니 모든 게 맞아떨어집니다.”수연은 단상에 앉아 서류를 바라보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말씀드리지만, 저 계좌는 제 손으로 움직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내역조차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분위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민도혁은 고개를 젓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교수님, 부정한다고 사라지진 않습니다. 증거는 남습니다. 계좌, 내역, 거래 기록, 모두 교수님 이름으로 되어 있죠. 병원은 더 이상 이 사태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이사진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의사 면허 정지 절차를 병행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연은 손끝이 차갑게 굳는 걸 느꼈다. 이제 그녀는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면허 정지라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서 있었다.회의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강우혁이었다. 그는 숨가쁘게 달려온 듯 넥타이가 조금 풀려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히 서 있었다.“잠깐만요.”그는 곧장 단상 앞으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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