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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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지워지지 않는 증거

새벽의 공기는 무겁게 젖어 있었다.비가 멎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 유리창에는 아직 물방울이 흘렀다.복도는 조용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피 냄새가 은근히 퍼졌다.의사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얀 바닥 위에 붉은 점이 찍혔다가 희미하게 사라졌다.수연은 수술실 앞에 앉아 있었다.손등에 묻은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땀과 눈물에 엉겨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텅 빈 복도를 향해 있었지만, 그 눈은 멀리 이미 닿을 수 없는 곳을 보고 있었다.누군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교수님, 조금 쉬셔야 합니다.”간호사의 목소리는 떨렸다.“지현 씨는…?”“죄송합니다.”그 짧은 대답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그 아이는… 마지막까지 사과했어요.”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사과할 일은 나였는데…”그 목소리는 바람처럼 가벼웠지만, 안에 담긴 무게는 너무도 깊었다.그때, 복도 끝에서 우혁이 걸어왔다.그의 얼굴은 새벽빛 아래 창백했다.“지현 씨… 맞죠?”“네.”그녀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죽기 전에, 뭔가 남겼어요.”“남겼다고요?”우혁은 손에 쥔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하수구 옆에서 찾았습니다. USB예요.”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손끝이 닿는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이게… 모든 걸 바꿀 수도 있겠네요.”“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낮게 말했다.“병원 안엔 아직 누가 남아 있는지 모릅니다.지현 씨가 죽은 게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그녀는 USB를 손에 꼭 쥐었다.“그럼… 진실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겠죠.”그날 오후, 병원 장례식장 한쪽에 작은 빈소가 차려졌다.지현의 초상은 흑백으로 흐릿했고, 그 앞에는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수연은 검은 코트를 걸친 채 조용히 서 있었다.그녀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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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너무 늦게 도착한 정의

이른 아침의 병원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늘처럼 바삐 오가던 발소리도, 복도 가득한 카트 소리도 없었다.대신 공기엔 무언가 무거운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마치 폭풍이 오기 직전의 고요 같았다.수연은 흉부외과 회의실 안에서 환자 차트를 넘기고 있었다.손끝이 멈출 때마다 문서의 모서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밤새 한숨조차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눈은 오히려 또렷했다.문이 열리고 우혁이 들어왔다.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단호함만큼은 잃지 않았다.“오늘 오전, 경찰이 들어옵니다.”그녀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예상보다 빠르네요.”“USB 원본이 증거로 제출됐습니다. 민도혁, 이사회에서 곧 소환됩니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럼 이제… 끝이겠네요.”“끝이라기보다 시작입니다.”그의 말에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그 말, 이젠 익숙하네요.”우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교수님, 오늘은 저 혼자 움직일 겁니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세요.”“그건 불가능해요.”“이제 위험해집니다.”“지금까지 안전했던 적이 있었나요?”그의 입술이 굳어졌다.그녀의 눈빛엔 단호함이 있었다.“당신이 나를 지키려는 이유, 알아요.하지만 이 싸움은 내 이름으로 끝내야 해요.”그 말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대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럼 같이 갑시다.”“좋아요. 같이.”이사회 회의실.유리 벽 너머로 기자들의 플래시가 번쩍였다.재단 관계자들과 병원 고위진이 앉아 있었고, 그 중심에 민도혁이 앉아 있었다.그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지만, 눈빛 깊은 곳엔 조급함이 스며 있었다.문이 열리며 우혁과 수연이 들어왔다.그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묘하게 흔들렸다.모두의 시선이 그 둘을 향했다.“차수연 교수, 이번 사안에 대해 설명하시죠.”이사장의 목소리는 냉정했다.수연은 서류를 들고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이번 사건의 본질은 의료 사고가 아닙니다. 의료 행위를 이용한 조작이었죠.”그녀는 USB를 꺼내 노트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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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Heartline의 그림자

새벽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각, 병원의 유리창은 희뿌연 안개에 덮여 있었다.응급실 쪽에선 간헐적인 기계음이 들렸고, 그 소리 사이로 간호사들의 발소리가 잦아들었다.마치 병원 전체가 숨을 죽인 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수연은 연구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USB를 노트북에 꽂은 채, 화면을 응시했다.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Project Heartline.’파일을 클릭하자, 암호 해제 창이 떴다.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익숙한 날짜를 입력했다.‘0415.’그날 자신이 처음으로 환자를 잃었던 날.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병원의 어두운 틈을 처음 보았던 날이었다.찰칵. 파일이 열렸다.화면에는 기밀문서가 하나씩 펼쳐졌다.‘피험자 A-생체 장기 재활성 실험’,‘혈류 자가조절 장치 프로토타입’,‘의료윤리 승인 누락 건-차 교수 관여 없음.’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이게 뭐야…”그 순간, 뒤에서 우혁이 조용히 다가왔다.“보여요?”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건 단순한 의료 연구가 아니에요. 누군가,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어요.”“누가?”“아직은 모르겠어요.하지만… 여기 피험자 A의 생년월일,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그녀는 화면을 가리켰다.‘1996.03.17.’그녀는 숨을 들이켰다.그 날짜는 오래전, 그녀가 직접 수술했던 한 소년의 생년월일과 같았다.“설마…”그녀는 파일을 스크롤했다.그리고 그 아래에서 멈췄다.‘수술 담당: 차수연 / 지도 책임자: 민도혁 / 연구 승인자: 강우혁.’손끝이 멈췄다.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녀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이게 무슨… 농담이에요?”우혁은 말을 잃었다.그의 시선이 문서에서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옮겨졌다.“저는… 이런 프로젝트에 서명한 기억이 없습니다.”“하지만 서명이 있어요.”“위조된 겁니다.”“그럼 도대체 누가…”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머릿속에서 오래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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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기적이라는 이름의 위선

밤이 깊었다.병원 유리창 밖엔 서늘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창가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반사된 불빛에 흩어졌다.그 빛이 연구실 벽에 번져, 마치 맥박처럼 느리게 뛰었다.수연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USB의 마지막 파일이 해제되는 중이었다.로딩 바가 천천히 차오를수록,그녀의 손끝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옆에 앉은 우혁은 아무 말 없이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엔 피곤이 묻어 있었지만, 결심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교수님.”“응.”“무슨 일이 있어도… 확인은 하셔야 합니다.”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그래요. 이제 피할 수 없으니까.”찰칵. 파일이 열렸다.화면에는 날짜가 적힌 폴더 하나가 있었다.‘2019.04.15.’그날,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던 바로 그 날이었다.폴더를 클릭하자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수술실 안. 하얀 수술복을 입은 젊은 의사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그녀는 의식을 잃은 소년을 앞에 두고 있었다.가슴이 열리고, 심장에 인공 순환장치가 연결되어 있었다.심전도 모니터는 이미 평평했다.그녀의 목소리가 녹음처럼 들렸다.“기압 유지. 에피네프린 투여 준비. 다시 한 번 제세동.”그녀의 손이 심장 위에 전극을 올렸다.“충전 완료. 200줄.”찰칵. 번쩍.소년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러나 심전도는 그대로였다.“다시, 한 번 더.”“교수님, 이미 15분째입니다.”“아직 포기할 수 없어요.”그녀는 다시 전극을 눌렀다.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차 교수님, 중단하세요. 이건 실험체입니다.”그녀의 몸이 굳었다.“뭐라고요?”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이며, 민도혁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이건 치료가 아니라 검증입니다. 이미 데이터는 충분해요. 그만하시죠.”“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이 아이는 환자예요.”“아니요, 차 교수. 이건 피험자 A입니다.”그 순간, 영상 속의 그녀가 전극을 떨어뜨렸다.그리고 미친 듯이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환자야! 피험자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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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심장이 멈춘 밤

병원 전체가 정전됐다.조명이 꺼지고, 기계음이 끊겼다.순간의 침묵. 그러고 나서 들려온 건 응급 발전기가 돌아가기 전, 단 한 번의 어둠.그 어둠 속에서, 수연은 윤재를 품에 안은 채 멈춰 있었다.소년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고, 가슴 위로는 전극선이 느슨하게 흘러내렸다.숨결은 희미했고, 공기 속엔 소독약 냄새와 피의 금속향이 섞여 있었다.“교수님!”우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발전기가 멈췄습니다! 산소 공급이 끊겼어요!”그녀는 대답 대신 윤재의 입술 가까이 귀를 댔다.숨이… 없다.“휴대용 산소마스크!”“여기 있습니다!”그녀는 장비를 낚아채어 소년의 얼굴에 씌웠다.마스크 안으로 자신의 숨을 밀어 넣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제세동기, 수동 전환!”“작동 안 됩니다! 전원이”“그럼 수동 압박으로!”그녀는 망설임 없이 가슴 위로 두 손을 포갰다.“하나, 둘, 셋…”압박이 반복될 때마다 윤재의 흉골이 미세하게 들어갔다.손끝이 떨리고, 팔 근육이 경직됐다.“하나, 둘, 셋… 제발, 버텨줘.”우혁이 손전등을 들고 그 옆을 비추었다.흔들리는 빛 아래에서 수연의 땀이 윤재의 피부 위로 떨어졌다.심전도는 여전히 평평했다.그녀는 멈추지 않았다.심박수를 세던 입술이 점점 굳어갔고,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은 이미 마비된 지 오래였다.“교수님, 더 하면 당신 팔이”“살려야 해요.”그 한마디에,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살아야 해요. 이 아이는… 내가 살려야 해요.”그녀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하나, 둘, 셋, 네 개, 다섯 개… 제발, 살아.”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로 흘러내렸다.눈가에 맺힌 물방울이 윤재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그리고 그 순간 삐~. 모니터가 잠시 깜박이더니 심전도가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삐… 삐…그녀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됐다…”그러나 안도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멀리서 쿵 하는 진동이 울렸다.병원 전체가 흔들리고, 스프링클러가 켜졌다.“폭발음이었어요.”“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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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기적보다 무거운 진실

비는 그쳤다. 하늘은 여전히 짙게 흐렸지만, 새벽빛이 구름 사이로 스며들며 도시의 윤곽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응급차가 멈춘 곳은 강릉 외곽의 작은 의료센터였다.표지판조차 낡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곳이 그들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다.응급실 안으로 들이닥친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쓰러지듯 들어왔다.윤재는 들것에 실렸고, 우혁은 산소 마스크를 쓴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수연은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지만, 그 어떤 설명보다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수술실 산소포화도 확인하세요.혈압 90 이하로 떨어지면 노르에피네프린 주입 준비하고,윤재의 흉부 절개 부위 다시 봉합 들어갑니다.”간호사들이 놀란 듯 서로를 보았다.“교수님, 인계서도 없이 이런”“이 아이는 실험체가 아닙니다.”그 한마디에, 아무도 더 묻지 못했다.응급실 안은 금세 전쟁터처럼 변했다.기계음이 다시 살아나고, 전극선이 연결되었다.수연은 피로에 잠긴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윤재의 심박은 여전히 불안정했고, 혈압은 위태로운 선을 오르내리고 있었다.그녀는 손을 떨며 봉합 바늘을 잡았다.“지금 마취제 들어갔죠?”“네, 교수님.”“좋아요. 봉합 시작합니다.”가늘고 매끄럽게, 그녀의 바늘이 살과 살을 꿰맸다.피 한 방울이 뚝, 수술복 위에 떨어졌다.그건 윤재의 피였는지, 혹은 그녀의 손끝에서 번진 상처의 피였는지 알 수 없었다.“교수님, 조금만 쉬세요.”보조 의사의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짧은 숨을 내쉬었다.“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그녀의 시선은 모니터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삐~삐~삐~ 그 리듬이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선 위 그곳에 소년의 심장이 있었다.수술이 끝난 건,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였다.수연은 방진복을 벗지도 못한 채 벽에 기대 앉았다.머리칼 사이로 땀이 흐르고, 손끝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그때, 문이 열리고 우혁이 들어왔다.여전히 산소마스크를 쓴 채였다.“괜찮습니까.”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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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그림자 속의 진실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병실 안의 공기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머리맡 기계가 내는 규칙적인 심박음만이,이곳이 아직 생명의 경계 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수연은 창가에 서 있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그녀의 시선은 침대 위, 조용히 잠들어 있는 윤재에게 머물러 있었다.소년의 가슴은 천천히 오르내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시트 위를 스치듯 움직였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손끝에 손을 포개었다.살아 있다는 온기. 그건 차가운 수술실에서도, 아무리 많은 환자를 살렸던 순간에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따뜻함이었다.“교수님.”뒤에서 우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여전히 팔에 수액을 꽂은 채였다.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했다.“당신도 이제 좀 쉬셔야 합니다.”“괜찮아요.”“괜찮지 않습니다. 지난 24시간 동안 거의… 계속 서 있었잖아요.”그녀는 짧게 미소를 지었다.“환자가 숨 쉬는데, 제가 앉아 있을 수 있나요?”“당신답네요.”우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그들의 시선이 같은 곳에 머물렀다.윤재의 얼굴.“저 아이를 보니…이상하게, 내가 살아남은 이유를 알 것 같아요.”그녀의 말에, 우혁이 고개를 돌렸다.“살아남은 이유요?”“네. 의사는 매일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하죠.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이유를 찾아야 했어요.왜 살리고, 왜 실패하는지. 이 아이는… 내 이유예요.”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을 맺었다.“그리고, 내 죄이기도 하죠.”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간호사가 다급히 들어왔다.“교수님, 병원 외부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차 교수님 앞으로.”“누군데요?”“모르겠습니다. 익명입니다.”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호사에게 휴대기를 건네받았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차수연 교수님.”“누구시죠?”“저는 강릉시 보건국의 정보 담당관입니다.지금 말씀드리는 내용은 극비입니다.Heartline 관련 자료 중,당신의 이름이 걸린 ‘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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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완전함이 잃어버린 것들

붉은 불길이 사그라들 무렵, 바다는 여전히 거칠게 숨 쉬고 있었다.검은 연기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고,절벽 아래로는 부서진 잔해들이 파도에 밀려 흔들렸다.수연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었고, 손끝엔 아직도 피와 재가 묻어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멀리 무너져 내린 연구소 잔해를 향하고 있었다.“살아 있는 거죠?”뒤에서 우혁이 다가왔다.그의 어깨에는 피가 번져 있었고, 숨소리가 거칠었다.“응급 처치는 했어요. 당신은요?”“괜찮습니다.”그녀는 대답 대신, 손에 쥔 작은 메모리칩을 들어 보였다.“이걸 찾았어요. 지현의 실험실에서.”“그게 뭡니까?”“Heartline의 핵심 데이터. 지현의 설계도와, 피험자 A의 원본 기록.”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윤재의… 진짜 정체예요.”의료센터로 돌아온 뒤, 수연은 곧장 연구실의 보안 서버를 열었다.칩을 꽂자, 화면 위로 암호화된 파일이 떠올랐다.‘PROJECT H.L. — Subject A GeneMap’비밀번호 창이 떴다.수연은 손끝으로 천천히 입력했다.‘P. JI.HYUN_2019.’잠시의 침묵. 그리고 화면이 켜졌다.수많은 유전자 서열표가 스크린을 덮었다.수연은 그 사이에서 윤재의 의료 데이터 파일을 열었다.DNA 서열이 차례로 스크롤되다 멈췄다.화면 하단에 붉은 글씨로 표시된 문장 하나.“Source: 박지현- Gene duplication ratio 47.3%.”그녀는 모니터를 응시한 채 얼어붙었다.“……지현의 복제.”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그 아이는… 그녀의 일부였어.”“교수님.”우혁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지금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안 돼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지금 알리면, 그 아이는 살아남지 못해요.Heartline은 그 아이를 되찾으려 들겠죠. 실험체로.”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아이를 지키는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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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리버설 코드

새벽 세 시. 병원은 적막했다.유리창 너머로는 안개가 내려앉은 도심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기계음이 주기적으로 울리고,하얀 조명이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를 비췄다.수연은 모니터 앞에서 꼿꼿이 앉아 있었다.피로에 절은 손끝은 여전히 타이핑을 멈추지 않았다.모니터에 뜬 커서가 깜빡일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피곤이 아니라 결의가 어려 있었다.PROJECT H.L. — REVERSAL CODE목적: 복제체 세포 내 유전자 손상 역전 알고리즘 구현 위험: 실험자 생체 영향 불명그녀는 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눌러봤다.심장이 약하게 뛰었다.정상보다 느린 박동.며칠째 느끼던 이 이상한 리듬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우혁은 문틈으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어깨는 한없이 가늘어 보였다.하얀 불빛 아래서, 그녀는 마치 밤새 꺼지지 않는 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아직도 안 주무셨군요.”“할 게 많아요.”“교수님, 이건 단순한 연구가 아닙니다.”“그래서요?”그녀가 고개를 돌렸다.눈 밑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이건 사람을 살리는 일이에요.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다시 반복돼요.”“당신이 멈추지 않으면, 당신이 무너질 겁니다.”그녀는 미소를 지었다.“강우혁 씨.”“네.”“당신은 늘 그렇게 이성적이네요. 하지만, 저는 이미 감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에요.”그녀의 시선이 모니터 위의 데이터로 향했다.“이 리버설 코드가 완성되면, 윤재의 세포는 더 이상 복제체가 아니게 돼요.그건 곧,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뜻이에요.”“그럼… 그건 가능합니까?”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해요. 대신… 대가가 있어요.”“대가?”“이 코드를 완성하려면, 기존의 완전한 인간 유전자가 필요해요.그걸 기반으로 손상된 복제 세포를 되돌리는 거죠.”“그럼… 누가 그 유전자를 제공해야”그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제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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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살리는 사람, 살아남아야 할 사람

그날 새벽,수연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한동안 들리지 않던 그 규칙적인 리듬이 이상하게도 너무 크게, 귀 안쪽에서 울렸다.쾅, 쾅, 쾅그건 마치 누군가의 심장이 그녀 안에서 함께 뛰는 듯했다.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숨이 가빴다. 목 안이 타들어가듯 말라 있었고, 피부는 희게 질려 있었다.거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자기 얼굴이 낯설었다.창백한 살결 아래로 미세하게 푸른 혈관이 떠올라 있었다.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그 미세한 혈관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렸다.“……이게 뭐야.”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눌렀다.박동은 느려지지 않았다.오히려 점점 빨라졌다.“교수님!”문이 열리며 우혁이 뛰어들어왔다.그는 수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그녀의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고, 눈동자는 열에 취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괜찮으세요?”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이상해요. 심장이, 내 게 아닌 것 같아요.”그녀의 손이 떨렸다.그때,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렸다.윤재의 병실이었다.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심박 그래프가 요동치고 있었다.삐~삐~삐~윤재의 심장 박동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었다.“안 돼.”수연은 몸을 던지듯 병실로 달려갔다.그녀가 병실 문을 밀치는 순간, 윤재의 몸이 침대 위에서 경련을 일으켰다.그의 손가락이 허공을 긁었고,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제세동기 준비해요!”그녀는 간호사에게 외쳤다.우혁이 제세동기를 들고 달려왔다.“교수님, 제심전도 연결 완료됐습니다!”“충전 200!”“충전 완료!”“이완!”그녀가 패드를 가슴 위에 댔다.“하나, 둘. 충격!”쾅!소년의 몸이 들썩였다.심전도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펴졌다가, 다시 천천히 물결을 그렸다.수연은 숨을 몰아쉬었다.그 순간, 자신의 심장에서도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마치 함께 전류를 맞은 듯한 통증이 가슴 깊숙이 퍼져 나갔다.“교수님!”우혁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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