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131 - Chapter 140

256 Chapters

130화. 숨겨진 맥박

심장 박동음이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삐~ 삐~그 단조로운 리듬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들렸다.수연은 손끝에 남은 전극의 열기를 느끼며 우혁의 가슴 위에 시선을 멈췄다.“맥박 회복. 안정적이에요.”간호사의 목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심박 수치 유지하세요. 절대 자극하지 말고.”그녀가 땀에 젖은 이마를 닦는 순간, 수술실의 자동문이 천천히 열렸다.도혁이 들어섰다.방역복 위로 비치는 표정은 냉정하다 못해 차갑게 빛났다.“축하드립니다, 교수님. 이번에도 기적을 만드셨군요.”그의 말에 수연은 눈을 들었다.“기적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입니다.”“생명이라… 그 단어, 아직도 그렇게 아름답게 들리나요?”“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그는 비웃듯 웃었다.“박지현도 그렇게 말했죠.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기 신념에 짓눌려 무너졌습니다.”“박지현 교수님은 무너진 게 아닙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짓밟힌 겁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심박 모니터의 '삐~삐~’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 틈을 메웠다.도혁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우혁이 누워 있는 침대 곁에 섰다.“이 사람, 알고 있습니까? 자신이 다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야 했는지.”“그만하세요.”“박지현이 그를 살리려다 실험 모델을 개시했죠.그 순간, 다른 세 환자는 회생 기회를 잃었습니다.”“그건 당신이 데이터 순위를 조작했기 때문이에요!”“아니요, 그건 당신들이 신을 흉내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밀쳤다.수술 도구들이 쏟아지며 금속음이 울렸다.“당신에게 생명을 논할 자격은 없습니다.”“그럼 교수님은 있습니까?”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환자를 살리겠다는 욕망도 결국,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선택의 연속이에요.그 차이를 구분할 줄 안다고 믿는 순간 당신도 괴물이 되는 겁니다.”그녀의 숨이 가빠졌다.“전 괴물이 아닙니다.”“그래요. 아직은 아닐 수도 있죠.”그는 돌아서며 말했다.“하지만 곧 당신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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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진실 너머의 서늘한 바람

아침 9시,병원의 정문 앞은 이미 카메라 플래시로 뒤덮여 있었다.“차수연 교수님, ‘Project D’의 실체가 사실입니까?”“박지현 교수의 사망과의 연관성, 인정하십니까?”“불법 의료 실험에 가담하신 건 사실인가요?”기자들의 질문이 폭풍처럼 쏟아졌다.수연은 하얀 코트를 입은 채, 마스크도 없이 천천히 병원 현관을 걸어 나왔다.햇빛이 눈부셨다.수많은 플래시가 번쩍이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들어 기자들을 바라봤다.단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진실은, 우리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짧고 단호한 한마디였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림이 없었다.그 한 문장이 모든 대답이었다.그녀가 발걸음을 옮기자 주변은 순간 정적에 잠겼다.기자들이 다시 웅성거렸고, 병원 관계자들이 허둥지둥 문을 닫았다.“병원 출입 금지입니다! 기자분들 물러서 주세요!”수연은 천천히 돌아서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청명한 하늘 아래, 모든 게 드러나는 듯한 묘한 투명함이 있었다.그 하늘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병원 안은 이미 통제 상태였다.복도마다 경찰과 조사관들이 드나들고, 의료진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누군가는 수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외면했다.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의국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책상 위에 윤재가 서류 뭉치를 놓고 있었다.“교수님… 조사관들이 이걸 요구하셨습니다. 환자 데이터 전부.”“감사합니다, 윤재 씨.”“교수님, 진짜 그게… 사실이에요?”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그럼… 교수님은 왜 그런 위험한 일을”“살리기 위해서였어요.”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게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된다고 믿었죠.”“하지만 대가가 너무 컸잖아요.”“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겁니다.”윤재의 눈가가 젖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이 병원은 언젠가 다시 일어날 거예요.하지만 그땐… 누구의 피로 세워진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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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흔들리는 경계선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다.그러나 그 잔잔함 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이 스며 있었다.수연은 바위 위에 앉아, 손에 쥔 휴대폰을 오래 바라보았다.화면은 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남은 문자의 잔상이 아직도 눈앞에서 번쩍거렸다.“당신이 본 건 진실의 일부일 뿐이에요.”누구였을까.박지현의 남긴 기록이 세상에 퍼진 지금, 그녀를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그런데도 누군가 '당신이 본 건 일부’라고 말한다면 그건 여전히 덮여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소금기가 코끝을 스쳤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바닷바람 속에서 묘한 피 냄새가 났다.마치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한 낯설고, 동시에 너무 익숙한 냄새.그날 저녁, 속초 시내의 작은 모텔 방.우혁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깊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선명했다.모니터 위에는 언론 기사들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의료 AI 프로젝트 ‘Project D’, 윤리 위반 논란”“병원 이사장 도혁, 경찰 소환 예정”“차수연 교수, 내부 고발자로 지목”그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다한 기사를 클릭했다.“박지현 교수의 남긴 파일 일부 복원…”그 제목 아래에는 익명의 해커가 복구한 영상 한 편이 있었다.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엔 어두운 수술실.박지현이 마스크를 쓴 채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이 실험은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기록을 봐야 해요.”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그리고 만약 이 영상이 공개된다면 그건 내가 실패했다는 뜻이겠죠.”영상은 그 말과 함께 꺼졌다.우혁은 손을 떨며 화면을 멈췄다.그리고 속삭였다.“아니요, 교수님.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며 수연이 들어왔다.그녀는 긴 코트를 벗으며 그의 옆에 앉았다.“또 기사 보고 있었어요?”“네. 이제 세상이 우리를 알고 있죠.”“세상은 언제나 늦게 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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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내 심장에 기록된 당신

그때 문이 열리고, 수연이 들어왔다.젖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흘러내렸다.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이 밤엔 커피라도 있어야겠죠.”“감사합니다.”그는 커피를 받아들며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둘 다 웃음이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수연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 말했다.“찾았어요?”“아직이에요. 이 파일, 단순히 숨긴 게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코드를 뒤섞어놨습니다.”“누군가요?”“……아마, 박지현 교수 본인일 겁니다.”그녀의 손이 멈췄다.“왜요? 왜 그런 걸”“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아니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나.”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그럼, 우리가 그걸 열 수 있다는 건…”“이제 감당해야 할 때란 뜻일 겁니다.”시간이 새벽을 넘어 흘러갔다.모니터 속 데이터가 점점 하나의 이미지로 모였다.심전도 그래프, 조직 스캔, 세포 활동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파일명: D-Sub03][대상자명: CH.S.Y.][상태: Heart Simulation 0% - 비가역적 손상][비고: 임상 테스트 불가. 기록 보존만.]수연의 시선이 멈췄다.“……내 이름이네요.”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우혁은 숨을 삼켰다.“설마, 당신이…?”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요. 난 그런 실험을 받은 적 없어요.”“그런데 왜 기록에”“그건….”그녀의 손이 떨렸다.“박 교수님이 내 데이터를 샘플로 쓴 거예요.”그녀는 눈을 감았다.“그때, 당신 수술 직전이었죠. 난 내 심장 데이터를 제공했어요.당신의 인공 심장 패치를 설계하기 위해서.”“그럼 이건”“당신 안에 있는 그 심장은 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예요.”순간, 공기가 멎은 듯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방 안의 공기가 느리게 진동했다.“……그래서,”우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래서, 내 심장이 당신 앞에서 이렇게 요동치는 건가요.”그 말에, 수연의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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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멈춘 곳에서 다시 뛰는 진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슬픔이 섞여 있었다.검사는 피식 웃었다.“유일한 선택이라…그 선택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면,그건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신의 역할을 자처한 오만 아닙니까?”법정 안이 술렁였다. 수연은 고개를 들었다.“신의 역할을 한 적 없습니다. 단지 인간으로서, 눈앞의 생명을 포기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그녀의 대답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판사는 고개를 숙이며 기록을 정리했다.그 순간, 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다음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박지현 교수의 공동 연구자’ 김도연 씨.”그 이름이 울리는 순간, 수연의 심장이 세차게 멎었다.김도연. 그 이름은 잊을 수 없었다.문이 열리고, 증인석으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단정한 정장 차림, 그러나 얼굴은 창백했다.그의 걸음은 느렸고, 마치 오랜 병을 앓은 사람처럼 힘이 없었다.그러나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그는 앉자마자 조용히 법정을 훑었다.그리고 수연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공기가 멎었다.그녀는 숨을 삼켰다.그는 짧게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이네요, 교수님.”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이름 도연. 박지현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동료이자,‘Project D’의 초기 설계자.3년 전, 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당신이 살아 있었다니.”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죽었어야 했죠. 하지만, 누군가가 저를 살렸습니다.”법정이 술렁였다.판사가 목소리를 높였다.“조용히 하십시오. 증인, 발언을 명확히 하세요.”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를 살린 사람은 차수연 교수였습니다.”정적이 흘렀다.수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슨… 소리예요.”“그때 기억 안 나세요?”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당신은 나를 살리기 위해 비공인 데이터 시술을 사용했어요.그 결과, 내 심장은 지금 진짜가 아닙니다.”그는 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이건, 인공 심장이에요.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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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심장의 기억

재판이 끝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서울의 하늘은 흐렸고, 도시 전체가 비에 젖은 듯 눅눅했다.수연은 여전히 병원으로 출근하고 있었다.언론의 시선은 여전했지만,그녀는 마치 그것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묵묵히 걸었다.병원 복도는 길고, 냉랭했다.하얀 형광등 아래로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지나치는 동료들이 조용히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짓고 지나쳤다.그녀의 표정엔 피곤이 묻어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엔 결심과 체념이 공존하고 있었다.“차 교수님.”낯익은 목소리였다.돌아보니 우혁이 서 있었다.그의 눈빛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그 안에는 걱정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괜찮으십니까.”“괜찮아요. 괜찮아져야죠.”“오늘은 무리하지 마세요. 기자들이 병원 입구에도 쫙 깔렸습니다.”“알아요.”그녀는 짧게 대답하며 수술실 복도로 향했다.“수연 씨.”그가 다시 불렀다. 그녀는 멈춰 섰다.“그때 재판장에서 도연 씨가 했던 말, 전부 믿으시는 겁니까?”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대답했다.“믿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어요.”그녀의 목소리엔 담담한 체념이 섞여 있었다.“도연 씨가 살아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게 달라졌어요.”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았다.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단정했지만, 그 안엔 견딜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오후 늦은 시간, 수술실 불빛이 꺼지고 그녀는 홀로 기록실에 앉아 있었다.박지현이 남긴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비밀 서버.그녀는 다시 그 파일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Project D – Final Protocol'그 파일명은 언제 봐도 낯설고, 또한 두려웠다.그녀는 숨을 고르고, 마우스를 천천히 클릭했다.화면 속에는 박지현의 손글씨로 남긴 기록 이미지가 떠올랐다.글씨는 서둘러 쓴 듯 삐뚤어져 있었다.“심장은 기억한다. 그 박동은 물리적인 생명뿐 아니라 감정의 잔향까지 이어받는다.” - 박지현그녀는 손끝으로 그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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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심장 속에서 들려온 속삭임

서울대병원 연구동, 새벽 2시 40분.모든 불이 꺼져 있었고, 고요 속에 들리는 건 장비의 미세한 전자음뿐이었다.그 빛이 어둠을 아주 조금 가를 뿐, 공기 자체가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수연은 그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손끝으로 터치패드를 움직이자 시스템이 깨어났다.오래된 코드들이 불빛처럼 흐르고, 모니터엔 'Project D - Final Memory Archive'라는 문장이 떠올랐다.그녀는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암호를 입력했다.마지막 자리, 'JHYUN-P'. 박지현의 이름이었다.잠시 후, 화면이 깜박이더니 정적이 깨졌다.노이즈와 함께 낯익은 음성이 흘러나왔다.“……수연아.”순간, 심장이 멎었다.그녀는 화면을 바라본 채 손끝을 떨었다.그 목소리는, 분명 그녀가 기억하는 박지현이었다.온화하면서도 단단했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목소리였다.“이걸 보고 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그래서 난, 너에게 마지막 실험을 남겨뒀어.”그녀의 눈이 커졌다.“마지막… 실험?”영상 속 박지현은 연구실의 한쪽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Project D의 핵심은 생명 연장이 아니야. 기억의 이식도, 감정의 모방도 아니지.진짜 목적은 자아의 전이. 육체가 아니라 의식을 보존하는 실험이야.”수연은 숨을 삼켰다. 자아의 전이. 그건 학계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이었다.박지현은 말을 이었다.“인간의 기억은 뇌에만 저장되지 않아. 세포, 장기, 그리고… 심장에도 잔류 흔적이 남아.그래서 난 내 의식의 일부를 심장 데이터에 이식했어. 그 심장은, 네게 전해졌을 거야.”“……말도 안 돼.”수연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그럼 교수님의 일부가, 제 안에 있다는 거예요?”화면 속 박지현은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미소를 지었다.“너라면 알아볼 거라고 믿었어.내가 널 제자로 둔 이유는 네가 누구보다 인간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야.”그녀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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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기억의 시작점

새벽 4시 12분.병원 연구동은 완전히 잠들어 있었다.형광등조차 꺼진 복도는 미세한 기계음만을 품은 채,긴장과 고요가 뒤섞인 공간이 되었다.그 침묵 속을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발소리 하나. 수연이었다.흰 가운 위로 어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아직 새벽 공기의 냉기가 가시지 않아 그녀의 손끝은 차가웠다.그러나 그 차가움 너머 그녀의 눈빛만은 서늘히 빛나고 있었다.문 앞에 도착하자 자동인식 시스템이 작동했다.문이 열리고, 실험실 안쪽에 놓인 장비들이 일제히 깨어났다.벽면의 모니터에 불이 켜지고, 디지털 신경 연결 장치가 천천히 움직였다.그녀는 무표정하게 코드를 입력했다.'Project D - Memory Sync: CHASUYUN_001'화면 위에서 숫자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연결 시스템이 안정화되었다.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슴 안쪽이 묘하게 두근거렸다.불안과 긴장, 그리고 아주 작은 기대.“교수님…”그녀가 작게 속삭였다.그 말은 마치 오래된 기도처럼 조용했다.의식 연결 장치의 붉은 빛이 점점 강해졌다.기계음이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내며 그녀의 맥박과 동기화되었다.그리고 순간, 빛이 터지듯 방 안을 가득 채웠다.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시간이 멈춘 듯한, 무채색의 도시.모든 사물의 경계가 흐릿했고, 공기조차 무게를 가진 듯 느껴졌다.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의식의 내부, 기억의 심연이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발밑이 파문처럼 흔들렸다.그리고 멀리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왔다.“왔구나, 수연아.”그 목소리에 그녀는 멈춰섰다.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박지현이 서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흰 실험복 차림이었고, 눈가에는 약간의 피로가 스며 있었다.하지만 그 미소는 생전 그대로였다.따뜻하고, 단호하고, 어딘가 슬펐다.“……교수님?”“이제야 만났네요.”“정말 교수님이세요? 현실...맞아요?”박지현은 고개를 저었다.“현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이건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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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집착이 낳은 첫 번째 심장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어둠이었다. 그 어떤 빛도, 온기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그러나 그 안에는 심장의 박동만이 또렷하게 울리고 있었다.쿵, 쿵, 쿵. 그 리듬은 수연의 것이기도 박지현의 것이기도 했다.두 존재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여기가 어디죠.”수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그녀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고, 잠시 뒤 그 울림이 되돌아왔다.“이곳은 네가 나를 이해하기 전까지 머물 곳이야.”그 목소리는 박지현이었다.그러나 이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낮았다.감정이 제거된 기계의 톤이 아닌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남긴 진심의 울림 같았다.수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낯선 복도였다.의료용 장비들이 늘어서 있고,벽면엔 ‘PROJECT D - PROTOTYPE 1’이라는 붉은 문구가 번쩍였다.하얀 조명이 반사된 그 공간은 기억 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이건 제 기억이 아니에요.”“그렇지. 이건 내 기억이지.”“교수님…?”“보여줄 게 있어. 네가 몰랐던 진실.”그녀의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복도 끝, 자동문이 열리며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그 안에는 박지현의 과거가 살아 있었다.연구복을 입은 젊은 박지현이 실험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옆에는 수술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심전도가 불규칙하게 깜박였고, 그의 이름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강도연 - 피험자 001.'수연의 몸이 굳었다.“……도연 씨?”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래. 그가 첫 번째였지.”박지현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서 울렸다.영상 속 박지현은 조용히 마스크를 썼다.“심장 박동 수치 유지, 체온 안정화. 신경 연결 상태 확인 완료.”“준비됐습니다.”옆에 있던 조교의 목소리가 떨렸다.“박 교수님, 이건 위험합니다. 이식된 심장이 안정되지 않았어요.”“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를 놓쳐.”그녀의 손이 메스를 잡았다.순간, 수연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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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그녀의 이름으로

병원 복도는 여전히 새벽의 냄새가 났다.세제와 알코올, 희미한 피 냄새가 섞여 의사에게만 익숙한 공기가 흘렀다.수연은 흰 가운을 여며 입으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눈 밑엔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하지만 그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깊었다.“수연 선생님, 수술 준비 다 됐습니다.”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스크를 고쳐 썼다.“들어가죠.”수술실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스쳤다.그 안엔 심장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누워 있었다.어린 여자아이였다.작은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지만, 그 리듬은 불안정했다.“심근 손상 정도 68%, 심박 유지가 어렵습니다.”간호사가 말했다.“준비하세요. 시작합니다.”수연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손끝은 약간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심장을 다루는 그 순간마다 어쩐지 누군가의 숨결이 스쳐갔다.박지현의 목소리, 그녀가 가르쳐주던 문장들이 불현듯 떠올랐다.'심장은 단순한 기관이 아니야. 그건 인간의 감정을 기록하는 가장 오래된 저장장치야.’그 말을 들었을 때는 단순한 철학으로 여겼다.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메스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집중하세요.”우혁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그는 마취기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한때 동료였고, 지금은 누구보다 그녀를 믿는 사람이었다.“괜찮아요.”그녀는 짧게 답하고 다시 눈앞에 집중했다.피가 맥박을 따라 흐르고, 기계가 신호음을 냈다.수연은 천천히 심장 이식 부위를 열었다.순간, 심장이 드러났다.어린아이가 숨 쉬는 증거. 그건 너무 작고, 너무 여렸다.그녀는 조심스레 손끝으로 그 박동을 느꼈다.살아 있으려는 의지,그 뜨거운 리듬이 그녀의 손을 통해 전해졌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지금이야, 수연아. 멈추지 마.”그녀의 심장이 요동쳤다.주위의 소리가 순간 멀어졌다.모든 게 슬로우모션처럼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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