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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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동의보다 앞선 심장 박동

로비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 원형으로 선 사람들 사이로 검은 코트의 중년 남성이 보였다. 방금 전 취재진과 말싸움을 하던 그였다. 그의 얼굴은 재빨리 창백해졌고, 입술은 회색으로 바랜 지 오래였다. 눈동자가 위로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여기서 시작합니다.”수연이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의식 없고, 호흡 없음. 바로 CPR 들어갑니다. AED 가져오시고, 앰부백 연결!”“네!”보안팀이 동선을 열자, 취재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는 셔터를 내리려다 눈치를 보고 카메라를 내렸다. AED가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길었다. 수연은 흉골 중앙을 찾아 깊이 압박했다.5cm 이상, 100~120회/분. 손목, 팔꿈치, 어깨의 선을 일자로 고정했다.“교대합니다.”“유지하세요. 제가 갑니다. 하나, 둘, 셋”리듬이 바뀜 없이 이어졌다. AED가 도착했다. 패드를 붙이고, 분석. 기계음이 잠깐 동안 공간을 지배했다.“분석 중입니다. 환자에게서 떨어져 주십시오. 제세동이 필요합니다.”“모두 떨어지세요. 제세동, 갑니다.”수연이 크게 외쳤다. 버튼을 눌렀을 때, 남자의 몸이 짧게 튀었다. 곧바로 압박 재개. 앰부백으로 산소가 들어갔다. 두 번째 분석, 또 필요한 제세동. 세 번째 라운드에서 잡음 섞인 박동이 모니터에 움푹 떠올랐다.“자발 순환 돌아옵니다! 약한 박동 확인!”“좋아요. 코마 프로토콜 준비. 스트레쳐!”들것이 들어오자 수연은 환자의 턱을 받쳐 들고 이동을 도왔다. 들어오는 바람이 이마의 땀을 잠깐 식혔다. 환자가 자동문을 지나 사라질 때,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한 박수가 터졌다. 박수라 하기엔 조심스럽고 길지 않은 소리. 수연은 고개를 숙인 채 장갑을 벗었다.바로 그때, 로비 반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이크를 쥔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차수연 과장님! 지금 CPR 과정 중 보호자 동의가 없었는데, 절차상 문제는 없습니까? 병원 측의 과잉 대응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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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표준과 진심

심장 수술실의 공기는 늘 일정한 냄새가 났다. 피와 소독약, 그리고 전류가 닿기 전의 금속 냄새. 그 냄새를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차수연이었다.로비에서 실려온 남자는 여전히 위태로웠다. 심박수는 불안정했고, 혈압은 매 순간 떨어질 듯 일어섰다. 수연은 수술대 옆에서 손을 씻으며 환자의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심낭 혈종. 예상보다 깊어요. 재출혈 가능성 높습니다.”마취과가 짧게 보고했다.“바로 들어갑니다. 순환기팀, 혈액 추가 확보하세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놀림은 빠르게 예리했다.수술실 안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더 중요했다.한 치의 망설임도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서, 수연은 눈으로 명령을 내리고 손으로 생명을 붙잡았다.피가 모세혈관을 따라 퍼져 나가며 시야를 흐릴 때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 혈관 속을 헤엄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집도 칼.”“스펀지.”“혈류 확보. 클램프. 지금.”기계음이 울리고, 한쪽 모니터가 다시 밝아졌다.선명하게 올라오는 그래프는 살아 있다는 신호였다.그러나 그 박동은 수연의 가슴 속에도 똑같이 울렸다.‘살아있다.’그 단어는 언제나 그녀에게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가져왔다.살아 있다는 건,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혈류 안정적입니다. 피지혈량 감소, 정상 범위 복귀합니다.”조수의 목소리가 들렸다.“좋아요. 봉합 들어갑니다.”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실을 걸었다. 손끝의 감각으로 심장의 박동을 따라가며, 생과 사의 경계를 한 줄씩 꿰매 나갔다.수술이 끝나갈 무렵, 그녀의 손끝에서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그녀는 마지막 매듭을 묶고, 조용히 손을 떼었다.“수술 종료. 회복실로 이송하세요.”마스크를 벗는 순간, 땀과 숨이 동시에 떨어졌다.수연은 그대로 주저앉을 듯 휘청했지만, 이내 의자에 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지친 숨결 사이로 짧게 흘러나온 웃음은 안도감과 공허함이 섞인 이상한 소리였다.그때, 수술실 문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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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별빛 아래 고백된 투쟁의 이유

아침 햇살이 병원 유리벽을 따라 흘러내렸다.밤새 비가 내려 유리창에 얇은 물자국이 남았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유난히 차가웠다.차수연은 회의실 창가에 서 있었다.수술실에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이곳까지 들릴 리는 없었지만,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그 ‘삐’ 소리가 맴돌았다.살아 있다는 신호,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의 소리.회의실 문이 열렸다.강우혁이 들어왔다. 회색 정장을 입은 그는 평소보다 차분해 보였다.하지만 그 안의 공기는 묘하게 팽팽했다.그의 뒤를 따라 홍보팀장과 법무팀 변호사, 그리고 기획실장이 차례로 들어왔다.이사회 긴급 회의 직전, 내부 상황 점검을 위한 비공개 회의였다.“이사회가 오늘 오전에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사안은 두 가지입니다.”기획실장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첫째, 로비 응급 처치 과정의 의료윤리 위반 여부.둘째, 언론 노출로 인한 병원 이미지 손상 문제.결론은, 차수연 과장님을 '잠정 직무 정지’ 상태로 두자는 제안입니다.”그 말에 회의실 안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연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바라봤다.거기엔 불필요한 제세동 가능성. 과도한 의료 개입 같은 단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그 어떤 단어도 그녀가 밤새 지켜낸 생명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지 않았다.“차과장님,” 우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건 일단 절차입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그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수연은 고개를 들었다.“절차라뇨. 사람을 살려서 조사를 받는 게 절차입니까?”“그렇습니다.”“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죠. 제가 그대로 두었다면 그 남자는 지금 죽어 있었을 겁니다.”“그럴 수도 있죠.”“대표님, 그게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그녀의 질문은 날카로웠다.우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괜찮지 않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들을 상대하려면, 감정보다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수연은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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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심장의 방향

병원 아침은 언제나 분주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어수선했다.복도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얽혀 있었고, 간호사들의 무전기에서는 끊임없이 호출음이 울려댔다.그 속에서도 차수연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걸었다.새로 수술 예약된 환자의 차트를 손에 든 채,그녀의 시선은 늘 그렇듯 지금과 살아 있는 사람만을 향해 있었다.“차과장님, 304호 보호자가 면담 요청하셨습니다.”인턴이 급히 다가왔다.“심장 판막 수술 예정 환자, 윤도현 씨 보호자분입니다.”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바로 뵙죠.”진료실 문을 열자, 마주 앉은 사람은 중년 여성이었다.굵은 팔찌와 짙은 화장, 단정한 차림새 속에서도 묘한 강단이 느껴졌다.“과장님, 제 아들이… 수술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그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약물로는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지금은 인공판막 수술이 유일한 방법이에요.”“그 수술, 성공률이… 얼마나 되죠?”“90% 이상입니다.”“그럼 10%는요?”수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 10%는, 우리가 모든 걸 다 했음에도 남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여인은 눈을 떴다.“그 말은…?”“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포기만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제 손에 맡겨주신다면, 끝까지 책임집니다.”그 짧은 문장이 여인의 어깨를 천천히 내려앉게 했다.“알겠습니다. 과장님을 믿겠습니다.”그녀가 자리를 떠난 후, 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믿음이라는 건 늘 그만큼의 무게를 동반했다.누군가의 생명을 손에 쥔다는 건 매번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기도 했다.오후, 수술 준비가 한창일 때 강우혁이 수술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흰 가운 대신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그는 묵묵히 수술 차트를 들여다보다가 말했다.“이번 환자, 보호자가 ‘후원 이사회’ 인맥 쪽 인물입니다.”“그래서요?”“수술 결과 하나로 병원 전체가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그들은 사람보다 명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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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생명과 침묵 사이

회복실의 공기가 미세하게 뒤틀렸다. 벽면에 박힌 모니터가 평온한 곡선을 그리던 바로 그때, 윤도현의 혈압 수치가 눈에 띄게 꺾였다. 초록 선이 들쑥거렸고, 심전도 파형 사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졌다.“포화 88로 떨어집니다.”간호사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차수연은 묻기 전에 이미 몸을 움직였다. 흉관 배액통을 들여다보자 방금 전까지 초당 한 방울씩 떨어지던 붉은 액체가 갑자기 말라붙은 듯 멈춰 있었다. 나빠지는 혈압과 맞물려 불길한 조합이었다.“심낭 삼출 의심됩니다. 포터블 에코 바로 대세요.”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초음파 프로브가 흉골 하부로 미끄러졌다. 화면에 회색빛 고요가 번졌다. 심장 바깥을 둘러싼 심낭 공간에 어두운 음영이 둥글게 고였다. 압박받는 심장이 마치 좁은 방에 갇힌 사람처럼 발버둥쳤다.“에코에서 심낭혈종 확인. 탬포네이드 소견 명확합니다.”마취과 의사가 짧게 외쳤다.“혈압 70/40! 목정맥 팽창합니다!”“피부 차가워져요!”수연은 결정을 미루지 않았다. “심낭천자 준비. 실패 시 즉시 재개흉으로 전환합니다. 혈액 더 호출하고, 수술실 2번 비웁니다. 대표실에는 연락하지 마세요. 지금은 환자만 봅니다.”금속 트레이가 그녀 앞으로 미끄러졌다. 가느다란 천자침이 손에 쥐어졌다. 수연은 좌흉골연 하방에 지점을 잡고, 손등의 힘을 최대한 살렸다. 침이 조직을 관통하는 감촉 정확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주사기에 검붉은 액체가 차오르는 순간, 모니터는 숨을 돌리듯 잠깐 반듯해졌다.“배액 120 추정. 아직 압박 남습니다.”“더 뺍니다.”두 번째로 피를 뽑아내는 동안, 환자의 입술이 서서히 색을 되찾았다. 그러나 곧 귀퉁이가 다시 창백해졌다. 화면 속 심장은 여전히 좁았다. 천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재개흉으로 갑니다.”수연은 고개만 끄덕이고, 단호히 선언했다. “여기서 엽니다. 이동 중 멈추면 끝이에요.”실내가 한순간 얼어붙었다. 회복실에서 흉골을 여는 건 최후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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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심장이 기억하는 온도

“여기 계실 줄 알았습니다.”강우혁이었다.“대표님도 잠은 못 주무시는군요.”“오늘 같은 날은 그렇습니다.”둘은 철제 난간에 나란히 등을 기대었다. 아래층 중환자실 창을 통해, 미약하게 깜빡이는 모니터들이 두 사람의 눈밑을 번갈아 비췄다.잠깐의 침묵 끝에 수연이 먼저 말을 이었다.“항상 궁금했습니다. 대표님은 왜 이 병원에 이렇게까지 매여 계신지.투자자였다면 손해를 줄이고 떠나는 게 더 현명했을 수도 있잖아요.”우혁은 난간을 쓸어내리며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갑고 맑은 공기가 갈비뼈 사이를 스쳤다.“나는 여기에 빚이 있습니다.”그 문장은 오래 준비해온 듯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깊었다. 수연이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그의 옆머리를 가볍게 넘겼다.“언젠가, 심장이 멈췄던 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게 희미해지고,소리들이 멀어지던 순간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아주 또렷하게. ‘숨 쉬세요. 당신은 돌아올 겁니다.’”수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기억은 바닷물의 어둠에서 끊겼지만,의료진의 목소리만큼은 손 끝에 달라붙은 감각처럼 익숙했다. 응급실의 밤, 익명의 환자, 그리고 자신이 건너온 수많은 경계들.우혁은 시선을 굽히지 않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나는 모릅니다. 그때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내가 가진 것, 배운 것, 벌어들인 모든 것을 이곳에 쏟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그에게 ‘당신이 살려준 삶을 이렇게 써 왔다’고 말할 수 있도록.”“그게 대표님의 빚입니까.”“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회복실 문이 열릴 때마다 느낍니다. 그날의 목소리가 당신과 닮았다고 확신은 아닙니다.다만… 내 심장이 기억하는 온도와 같다고.”바람 사이로 오래된 박동이 되살아오는 듯했다.수연은 손가락으로 난간을 두 번, 아주 작게 두드렸다.의사가 환자에게 전하는 괜찮다는 신호처럼.“대표님.”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은 자신이 살려낸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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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기록이 지켜준 밤

이른 새벽, 병원 복도는 아직 어둠의 그림자를 다 털어내지 못한 채 고요했다.청소부의 걸레질 소리만이 바닥을 스치며 먼지를 지우고 있었고,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바깥에서 쌀쌀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그 사이로 차수연의 발걸음이 길게 울렸다.밤새 병동과 수술실을 오가며, 이미 두 번의 응급을 처리한 뒤였다.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렸고, 커피잔을 쥔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탕비실 구석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쓴맛이 입안에 번졌다.그 씁쓸함은 피곤 때문만은 아니었다.그녀의 머릿속엔 여전히 윤도현의 수술 장면이 떠다니고 있었다.심장이 멈췄던 그 순간의 촉감,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하던 그 감각.그건 단순한 의료행위가 아니었다.‘살려야 한다’는 그 한 가지 생각만으로, 온몸의 세포가 명령을 내렸던 순간이었다.“차과장님.”조용한 목소리가 문틈에서 들려왔다.박지현이었다.밤새 병원 보안 기록과 영상을 정리하던 그녀의 눈가엔 피로가 묻어 있었지만, 손에 들린 태블릿은 여전히 정돈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영상 정리 끝났습니다. 어제 회복실 응급처치 장면, CCTV 백업도 완료했어요.”“이사회 보고용으로도요?”“네. 다만 일부 편집이 필요합니다. 대표님이 수술 행위가 아닌 생명 보호의 현장으로 정리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그 사람답네요.”수연이 씁쓸하게 웃었다.“근데, 차과장님.”지현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대표님이 직접 편집본 검토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오전 중에 이사회에 올린다고.”수연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그러나 눈동자 깊은 곳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우혁이 직접 본다는 말의 의미를 그건 단순히 절차의 일부가 아니었다.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손끝에서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는지를 직접 확인하려 했다.그게 그가 대표이자, 동시에 ‘환자였던 사람’이라는 증거였다.오전 9시, 이사회 회의실.커튼이 반쯤 열린 창으로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그 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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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 심장을 깨운 단 한 줄의 목소리

늦은 밤의 병원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응급실의 소란도, 중환자실의 알람도 잠시 멈춘 듯했다.마치 하루 동안 쏟아진 모든 긴장과 숨소리가, 잠깐의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강우혁은 사무실 불을 끄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책상 위엔 차수연의 수술 기록이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는 오래된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응급실 CCTV – 6년 전’하얀 테이프로 붙여진 라벨 위의 날짜가, 묘하게 그를 붙잡았다.그날 밤, 그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왔었다.기억의 대부분은 희미했다.의료진의 손길,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그 속을 가르던 단 한 줄의 목소리만 또렷했다.“숨 쉬세요. 당신은 돌아올 겁니다.”그 목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현재의 차수연 얼굴이 겹쳐졌다.그녀가 회복실에서 침착하게 손을 움직이던 모습.심장을 감싸 쥐던 그 손의 방향. 그리고 그 손끝의 온도.우혁은 USB를 조심스럽게 노트북에 꽂았다.화면에 낡은 영상이 떴다.응급실, 비 내리던 밤.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한 젊은 남자가 들것 위에 실려 들어왔다.“혈압 60/40! 맥박 소실!”누군가 외쳤다.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난 한 사람.마스크를 쓴 여자 의사.얼굴의 반은 가려져 있었지만,그 눈빛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결의와 두려움이 동시에 섞여 있는 그러나 끝내 멈추지 않는 눈.“심정지 1분 경과. 제세동 준비.”“아니요, 손으로 갑니다. 압박 강도 유지하세요.”그녀가 낮게 외쳤다.“지금 이 사람,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그 순간, 화면 속 의사가 환자의 흉부 위에 손을 얹었다.양손이 포개지고, 체중이 고스란히 실리며, 리듬을 따라 움직였다.손목 근육이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한 번 더. 숨 쉬세요, 들리십니까? 당신은 돌아올 겁니다.”그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퍼질 때, 우혁의 손끝이 떨렸다.그는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그 목소리, 그 손.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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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화. 숨이 닿는 거리

아침 회진이 끝나자 병원은 본격적으로 하루의 소음을 품기 시작했다.엘리베이터 문이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며, 복도를 메운 환자 보호자들의 발소리가 리듬을 만들었다.그러나 그 모든 소란 속에서도 차수연은 조용했다.그녀의 세계는 언제나 ‘한 사람’과 ‘한 순간’에 집중되어 있었다.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수술실을 나와 소독실에서 장갑을 벗는 순간,“차과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박지현의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수연은 가운 끈을 풀며 짧게 고개를 돌렸다.“무슨 일인가요?”“대표님이 잠시 회의실로 오시랍니다. 이사회 외부 감사팀이 왔다네요.”“감사팀이요?”“응급 영상 관련해서 외부에서 이슈가 터졌답니다.”지현은 평소보다 말이 빨랐다. “언론에서 ‘회복실 무단 수술 의혹’이라고 보도했어요.”순간, 수연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그 말은… 누군가 내부에서 흘렸다는 뜻이겠네요.”“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내부 시스템에서 영상이 빠져나갈 수 있는 건 고위 접근권자뿐이에요.”“누군가 의도적으로 흔들고 있군요.”지현은 입술을 깨물었다.“차과장님, 오늘만큼은… 직접 나서지 마세요. 제가 처리할게요.”“아니요.”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내 손으로 한 일이면, 내 입으로 말해야죠.”회의실 문이 열리자 공기가 달라졌다.언론사 로고가 찍힌 서류와 기자단이 흩뿌린 프린트물,그리고 긴장감에 굳은 병원 관계자들. 그 가운데 강우혁이 서 있었다.단정하게 잠긴 셔츠 단추 사이로 어젯밤의 피로가 희미하게 드러났다.“차과장님, 들어오셨군요.”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눈빛은 냉정했다.이건 단순한 해명 자리가 아니었다.병원 전체의 신뢰를 건 전면전이었다.감사관이 입을 열었다.“영상 확인 결과, 회복실 내에서 외과적 절개가 이루어졌습니다.심낭천자 후 재개흉이라면, 이는 명백히 규정 위반입니다.”그의 시선이 수연에게 향했다.“당시 담당의가 차수연 과장 맞습니까?”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맞습니다.”“당시 재개흉을 지시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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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화. 당신은 여전히 내 심장을 살린다

아침 뉴스가 시작되기도 전, 병원 앞은 이미 기자들로 붐볐다.삼각대 위 카메라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플래시가 번쩍일 때마다 유리문에 반사된 빛이 병원 로고를 희미하게 비췄다.“강 대표님 나오신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인파가 일제히 움직였다.단정한 슈트를 입은 강우혁이 기자들의 틈을 뚫고 걸어 나왔다.표정은 평온했지만, 그 눈빛은 이미 결심을 품고 있었다.기자들의 질문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대표님, 회복실 무단 수술 논란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의사 개인의 판단이었다는 게 사실입니까?”“병원 차원에서 묵인했다는 증거가 있다는데”우혁은 단 한 번도 시선을 흔들지 않았다.그는 마이크 숲 한가운데 멈춰 섰다.“오늘 오전 중,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습니다. 그전까진 어떤 해명도 하지 않겠습니다.”짧고 명확한 한마디였다.그가 돌아서자, 카메라 셔터음이 빗발치듯 터졌다.그 순간, 병원 6층 진료동 복도 끝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차수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는 자신 대신 화살을 맞고 있었다.그녀는 손에 쥔 커피가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오전 10시, 기자회견실.병원 로고가 새겨진 배경 앞에 강우혁이 섰다.그 옆엔 차수연이 있었다.두 사람의 존재가 동시에 카메라에 잡히자,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저는 차수연 과장입니다.”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논란이 된 회복실 응급수술은 제 판단으로 이루어졌습니다.모든 결정은 환자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고, 단 한순간도 절차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감정이 실려 있었다.“의사로서, 그 순간 선택해야 했습니다. 환자가 살아 있는 한, 저는 제 손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플래시가 터졌다.기자들이 속속 손을 들었다.“그럼 병원 대표는 그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는 말씀이십니까?”이번엔 강우혁이 앞으로 나섰다.“맞습니다. 당시 보고는 없었습니다.”웅성거림이 번졌다.그러나 그는 말을 멈추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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