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하필이면 그날이었다.차수연이 병원을 떠나는 날, 하늘은 참 잔인하게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듯 울고 있었다.새벽 다섯 시, 병원 복도는 고요했다.그녀는 자신의 사물함을 정리했다.수술복, 이름표, 오래된 청진기, 그리고 한 번도 쓰지 못한 편지 한 장.모두 한 움큼의 기억처럼 상자 안에 차곡차곡 담겼다.청진기를 들어보았다.가느다란 관을 따라 들려오는 소리가 어쩐지 낯설었다.심장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숨결 같기도 했다.그녀는 손끝으로 청진기를 쥔 채 천천히 중얼거렸다.“이젠, 괜찮겠지.”하지만 ‘괜찮다’는 말은 늘 그렇듯, 거짓이었다.병원 앞 현관 유리문에는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그 문장을 보며 그녀는 잠시 멈췄다.새로운 시작이라니, 얼마나 잔인한 위로인가.떠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작이 아니라, 끝이 따라오는데.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다가왔다.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 발걸음은 언제나 일정했고, 망설임이 없었다.“차과장.”그녀는 천천히 돌아봤다.“대표님.”그는 숨을 고르며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이렇게 갑니까?”“그게 맞는 선택이에요.”“누가 그렇게 말합니까?”“제가요.”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당신이 없으면, 병원이 달라질 겁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해요.”“이건 도망이 아닙니까?”“도망일 수도 있겠죠.하지만 도망쳐야만 살아남을 때도 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그 담담함 속에는 수없이 부서진 감정들이 숨어 있었다.“그럼… 나한테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습니까?”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은 피로했지만, 여전히 단단했다.“남기고 가면, 미련이 생겨요.”“그 미련, 나한테 맡기면 안 됩니까?”“대표님이 그렇게 하시면, 저는 아무리 도망쳐도 다시 돌아오게 될 거예요.”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그건, 우리가 지키려 했던 모든 걸 무너뜨리는 일이에요.”그는 한 걸음 다가섰다.“차수연, 당신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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