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221 - Chapter 230

256 Chapters

220화. 빛이 머문 자리

수술대 위의 조명은 유난히도 차가웠다.그 아래, 차수연은 조용히 마스크를 고쳐 썼다.오랜만의 복귀 수술이었다.심장 절개를 앞두고 손끝이 조금 떨렸지만, 그 떨림조차 반가웠다.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증거’였으니까.“심박수 안정적입니다.”“혈압 120/80 유지 중.”보조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좋아요. 이제 시작합시다.”피부 절개선이 그려지고, 메스가 정확한 각도로 내려갔다.심장의 박동이 점점 느리게 들렸다.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그 순간 그녀는 예전의 자신을 떠올렸다.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숨조차 쉬지 못했던 시간들.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손끝 하나 떼지 못한 수술대의 기억.그 모든 게 지금,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차 교수님, 여기 출혈량이”보조가 급히 외쳤다.피가 예상보다 빠르게 솟구치고 있었다.수연은 즉시 지혈 클램프를 잡았다.“흡인기 강도 높여요. 심근 손상 방지선 확인해요.”목소리는 단단했다. 긴장감 속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몇 초, 혹은 몇 분.시간의 감각이 무너지는 순간,그녀는 자신의 심장까지 함께 뛰는 것을 느꼈다.손끝이 뜨거웠다.그 뜨거움은 생명과 맞닿은 열이었다.“맥박 돌아왔습니다!”“리듬 정상!”그 말에 수연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손에 닿은 환자의 피부 온기가 느껴졌다.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다시 살아 있었다.수술이 끝나고, 병원 복도는 밤보다 더 고요했다.수연은 가운을 벗고, 빈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머리칼이 땀에 젖어 목덜미에 붙어 있었지만, 기분은 묘하게 후련했다.“오늘도 살렸네요.”낯익은 목소리.고개를 들자 강우혁이 서 있었다.그는 수술실 창 너머로 한참 동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여전히 무모하네요.”“무모하지 않으면, 못 살려요.”그녀의 대답에 그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오늘 당신 손, 떨리더군요.”“네, 떨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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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심장이 기억하는 용서

그 이름을 보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오래된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차가운 응급실, 심폐소생을 하던 자신의 손,그리고 울부짖던 한 여자의 목소리.그날, 그녀는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그 환자의 이름은 정도윤이 아니었지만, 그 여자는 바로 그의 아내였다.기록을 다시 읽으려던 손이 멈췄다.심장이 순간적으로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이게 무슨 인연이지…’그녀는 눈을 감았다.“차 교수님.”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강우혁이 서 있었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바로 눈썹을 찌푸렸다.“안색이 좋지 않네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괜찮아요.”“괜찮다는 말, 제일 위험한 거 아시죠?”그녀는 작게 웃었다.“의사가 환자보다 불안해하네요.”그는 잠시 그녀의 손에 쥔 차트를 바라봤다.“정도윤…?”“응급 수술 예정이에요. 오늘 밤 안에 컨디션이 더 나빠질 수도 있대요.”“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그녀는 대답 대신 서류를 조용히 덮었다.“이 환자, 그날 내가 구하지 못했던 사람의 남편이에요.”짧은 말이었지만, 그 속엔 수년간 묻어온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강우혁의 눈빛이 깊게 흔들렸다.“수연 씨….”“이건 단순한 수술이 아니에요. 나한테는… 과거의 심판 같아요.”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근데, 피할 수 없어요. 이번엔 구할 거예요.그게 그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과니까.”밤 11시. 수술실 불이 켜졌다.긴장감이 공기를 타고 번졌다.수술복을 입은 수연은 손을 소독하며 거울을 잠시 바라봤다.그녀의 눈빛은 단단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싸늘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메스.”보조가 건넨 도구를 손에 쥐자 손끝에 묵직한 온기가 스며들었다.‘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아.’그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절개, 지혈, 봉합, 모든 절차는 정밀하게 이어졌다.그러나 예상치 못한 순간 심전도가 급격히 요동쳤다.‘VT! 리듬 불안정!’ 보조의 외침. 모두의 시선이 수연에게 향했다.그녀는 차가운 이마의 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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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다시, 우리

가을의 끝자락,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병원 외벽에 붙은 담쟁이덩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차수연은 이른 아침부터 진료실 문을 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새로운 프로젝트에 파견되기로 한 날이었다.도심 외곽의 심장 재활센터 신설팀.그녀와 강우혁이 함께 맡게 된 첫 외부 업무였다.“출근길부터 긴장하신 얼굴이네요.”문밖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강우혁은 늘 그랬듯 느긋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긴장이라기보다… 좀 낯설어요.”“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요. 그때는 긴장한 게 아니라, 저한테 화났었죠.”“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만했어요.”그녀가 웃었다.그 웃음은 오래된 감정의 벽을 살짝 무너뜨렸다.두 사람은 병원 차량을 타고 외곽으로 향했다.창밖 풍경이 점점 도시의 빛을 벗어나고, 멀리 산등성이가 보이기 시작했다.차 안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둘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이 프로젝트, 우리 둘이 맡게 된 거 알고 있었어요?”수연이 물었다.“위원장이 미리 말해줬어요. 당신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더군요.”“이제 피하지 않기로 했으니까요.”“그 말, 자꾸 듣고 싶네요.”“왜요?”“살아 있는 사람한테만 나올 수 있는 말이잖아요.”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 대신 미소 지었다.차창에 비친 얼굴엔 예전보다 한결 편안한 기색이 스며 있었다.재활센터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호수가 보였다.바람이 스칠 때마다, 가을 냄새가 실내까지 들어왔다.“이런 데서 환자들이 회복하면 좋겠네요.”수연이 말했다.“그러게요. 의사들도 조금쯤은 숨 쉴 공간이 필요하죠.”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비스듬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비췄다.살짝 엉킨 머릿결 사이로 빛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창가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이상하죠. 이렇게 고요한 곳에 오니까, 자꾸 옛날 생각이 나요.”“그날의 병원?”“응. 소리도, 냄새도, 심장 뛰는 소리도… 아직 내 몸 어딘가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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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비 내리는 병원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창밖의 하늘은 아직 회색빛이었고,병원 본관 앞에는 겨우 깨어난 도시의 소음이 희미하게 흘렀다.차수연은 커피잔을 손에 쥔 채 복도 창가에 서 있었다.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잔 위로 그녀의 시선이 멀리 머물렀다.전날 밤의 대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익숙해지면 안 돼요.’‘그럼 매일 처음처럼 만나면 되죠.’그 단순한 말이 이상할 만큼 오래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하지만 그 온기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급하게 울린 호출 벨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심장외과 중환자실입니다. 차 교수님, 응급 상황입니다!”그녀는 반사적으로 커피잔을 내려놓고 뛰었다.복도를 가르는 구두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졌다.심장 박동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중환자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환자의 모니터가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있었다.간호사가 외쳤다.“혈압 급강하입니다! 리듬 불안정!”“에피네프린 투여, 1mg! 바로!”수연은 침착하게 명령하며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한눈에 봐도 심근이 위험했다.“CPR 준비!”그녀의 두 손이 환자의 흉부 위에 닿았다.리듬에 맞춰 압박이 시작됐다.‘하나, 둘, 셋’그러나 심장은 쉽게 반응하지 않았다.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그녀의 손끝에 전해지는 건, 그저 무거운 고요뿐이었다.“제발…”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제발 버텨줘요…”그 순간 문이 열리고 강우혁이 뛰어들어왔다.“무슨 일이에요?”“심정지! 리듬이 안 돌아와요!”“에너지 300줄, 충격 준비!”그는 즉시 디플리브레이터를 잡았다.“하나, 둘, 셋. 클리어!”강한 전류가 환자의 몸을 튕겨냈다.모니터의 파형이 순간 끊기더니,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삐~삐~삐~’기계음이 다시 살아났다.간호사들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수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힘이 빠진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강우혁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이제 됐어요. 살아났어요.”그녀는 눈을 감았다.뜨겁게 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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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함께라면 덜 외로운 법

하얀 조명이 차갑게 내려앉은 회의실.탁자 위엔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그 위로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차수연 교수, 이번 수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병원 윤리위원장이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시선이 수연을 꿰뚫었다.수연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테이블 위에 올려둔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지난 48시간 동안 단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심근 손상 환자에게 시행한 실험적 치료승인을 받지 않은 방식이었다.“제가 판단했을 때, 그 환자는 기존 치료로는 버티기 어려웠습니다.”“그래서 당신이 독단적으로 수술을 진행했다?”“독단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을 선택한 겁니다.”위원장은 냉소적으로 코웃음을 쳤다.“의사는 신의가 아니라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그 말에 수연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심장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 그녀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회의실 구석에서 누군가 서류를 내밀었다.“이게 문제의 수술 기록입니다.”그 손이 익숙했다. 강우혁이었다.그가 천천히 위원들 앞에 다가가며 말했다.“제가 해당 수술의 책임자입니다.”위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강 대표, 이건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병원의 신뢰 문제입니다.”“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술은 차 교수의 단독 판단이 아닙니다.”그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순간, 수연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세요?”그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승인했습니다. 그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내가 결재를 했어요.”회의실이 술렁였다.위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웅성거렸다.위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허위 보고입니다. 당신까지 연루된다면 병원 전체가 흔들립니다.”“그럼 어쩌죠? 이미 살아 있는 환자를 죽이진 못하니까요.”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다.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그러나 수연은 그 한마디가 자신의 숨을 죄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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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그날의 심장

아침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다.병원 옥상에 매달린 깃발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차수연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손끝으로 느껴지는 공기조차 날카로워서, 그녀는 무심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교수님.”뒤에서 부른 목소리에 그녀는 천천히 돌아섰다.수간호사였다.“어제 수술하셨던 환자 보호자가… 면담을 요청하셨어요.”“지금이요?”“네. 그분이 직접 오셨습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발밑의 흰 복도 타일이 차갑게 빛났다.면담실 문을 열자, 한 중년 여성이 일어섰다.눈가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다.“교수님이시죠?”“네, 보호자분이시죠. 환자분은 안정적입니다.”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에 쥔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이거…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수연은 상자를 받았다.내부엔 오래된 심전도 그래프 한 장과 사진 한 장이 함께 들어 있었다.사진 속에는 어린 시절의 그녀가 있었다.옆에는 젊은 의사 한 명이 서 있었다.그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이건 어디서?”“우리 남편의 유품이에요. 그분이 생전에 늘 하시던 말이 있었어요.그때 구하지 못한 심장은 아직도 내 안에서 뛴다.”수연의 손끝이 떨렸다.“남편분 성함이…?”“강진호입니다.”그 이름. 그녀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강우혁의 아버지였다.시간이 멈춘 듯했다.그녀는 면담실을 나와 아무 말 없이 복도를 걸었다.손에 쥔 상자의 무게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심전도 그래프의 한 줄 한 줄이 마치 그녀의 과거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그녀는 아무도 없는 의국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사진을 꺼내 들자, 그 시절의 자신이 그 속에서 웃고 있었다.“강진호 교수님…”그녀는 중얼거렸다.“그때,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면…”스무 살의 그녀는 의대 실습생으로서 첫 심장 수술을 참관하고 있었다.그날의 수술, 그날의 사고. 그녀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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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다시 핀 심장의 조각들

아침 햇살이 병원 창문을 부드럽게 스쳤다.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차수연의 얼굴을 천천히 감쌌다.그녀는 새로 개소한 ‘심장 재활센터’ 앞에 서 있었다.간판에는 금빛 글씨로'하루심장클리닉 – 회복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그녀의 눈이 그 문구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회복의 시작. 그 말이 이렇게 가슴에 남을 줄은 몰랐다.지난 한 달 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윤리위원회의 조사는 종결되었고,강우혁은 대표직에서 잠시 물러나 그녀와 함께 이곳을 세웠다.‘병원’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 공간.누구나 두려움 없이 심장을 회복할 수 있는 곳.“차 교수님.”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그녀가 돌아보자, 강우혁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오늘도 출근 1등이네요.”“대표님이랑 똑같이 나왔는데요.”“대표 아니라고 몇 번 말했잖아요.”“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보여요.”그는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이제 이건 그냥 동업자니까요.”“동업자요?”“의사로서, 그리고… 삶의 동반자로서.”그녀는 잠시 웃다가 커피를 입술에 댔다.“그 말, 위험하게 들려요.”“그래서 조심스러워요.”둘 사이의 공기가 잠시 멈췄다.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오늘 첫 상담, 기억하죠?”“응. 심근경색 후 회복 환자. 스스로 심장소리를 듣는 게 무섭다는 분.”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예전 내 모습 같더라.”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이제는 어때요?”“이제는 그 소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요.”그녀는 조용히 커피를 내려놓았다.손끝이 여전히 따뜻했다.센터의 문이 열리고, 첫 환자가 들어왔다.50대 초반의 남자, 심장수술 후 한 달째였다.그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제가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수연은 미소 지었다.“심장은 한 번 다친다고 멈추지 않아요.다만,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죠.”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저도 살아날 수 있을까요?”“살아난 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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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심장이 기억하는 사람

늦은 오후, 병원 복도 끝에서 낯익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차수연은 서류를 들고 걸음을 멈췄다.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노을빛이 그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교수님.”그 목소리. 아주 오래전, 그녀의 제자였던 목소리였다.“민재…?”돌아서 있는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윤민재. 그녀가 직접 가르쳤던 전공의였다.의욕이 넘쳤지만, 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던 아이.몇 해 전, 해외 연구소로 떠난 후 소식이 끊겼던 그였다.“오랜만이에요, 교수님.”그의 미소는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 있었다.“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놀랄 수밖에 없죠.”“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도 뵙고 싶었습니다.”그녀는 잠시 웃었다.“지금은 민재 선생님이군요. 어디서 일해요?”“미국 하버드병원 심장연구센터요. 이번에 귀국했어요.”그의 말에 수연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럼 연구 성과 발표 때문에?”“그것도 있지만…”그는 잠시 머뭇거렸다.“사실… 교수님 때문이에요.”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그녀는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그를 바라봤다.“나 때문이라니?”“그때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심장은 기억한다. 두려움도, 사랑도, 그리고 약속도.그 말이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그녀의 입술이 떨렸다.그 말은 수년 전, 그가 첫 수술 실패 후 무너졌을 때 자신이 건넸던 말이었다.“교수님 덕분에 전 여기까지 왔어요.”“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아니요. 고맙기만 한 건 아니에요.”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돌아오고 나니, 그때 교수님이 얼마나 외로웠는지도 보이더라고요.”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민재 씨.”“그때는 몰랐어요. 교수님이 환자를 살리면서도, 스스로를 얼마나 잃어가고 있었는지.”그녀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시간이 흘러도, 제자는 여전히 날카로웠다.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지금은 어떻게 지내요?”“연구만 하다 보니, 사람 냄새가 그리워졌어요. 그래서 돌아왔죠. 그리고… 다시 배우고 싶었습니다.”“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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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다시 뛰는 시간

새벽의 병원은 고요했다.긴 복도를 따라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였고,그 불빛 아래를 걸어가는 차수연의 발소리만이 메아리쳤다.손에 든 서류 봉투가 땀에 젖어 있었다.그 안에는 윤민재가 남기고 간 실험기록 전부가 들어 있었다.그녀는 걸음을 멈췄다.심장이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두근거렸다.하나의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심장은 언제나 그렇듯 불안하게 뛰었다.“결국 이걸 열어보는구나.”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 강우혁이었다.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이걸 묻어둘 수는 없어요.”“하지만 다시 그 길로 들어서면 당신이 피하려 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겁니다.”“과거든 뭐든 상관없어요.이번엔 내 의지로 선택할 거예요.”그녀는 봉투를 열었다.안에는 빽빽하게 적힌 실험 노트,심전도 차트, 그리고 ‘피험자 01’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록이 있었다.그녀의 눈이 흔들렸다.그 이름 아래엔 차수연.그녀의 손끝이 멈췄다.“이건… 뭐죠?”우혁이 다가와 서류를 들여다봤다.“설마…”그녀의 시선이 노트로 옮겨졌다.거기엔 민재의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피험자 01 - 차수연. 심장 기능 회복률 62%.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단, 피험자는 이를 인지하지 못함.’그녀는 숨을 삼켰다.“그게 무슨 소리야…?”목소리가 떨렸다.우혁은 문득 그녀를 바라봤다.“설마, 당신에게 그 약물을”“그럴 리가 없어. 내가 느낄 리가 없잖아.”그녀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지난 몇 주 동안 이유 없이 나타났던불규칙한 심박, 미열, 그리고 밤마다 들리던 낯선 심장소리.그게 내 게 아니었다.며칠 전, 윤민재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교수님은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에요.하지만 그건 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에요.”그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명확했다.“그는… 나를 실험대에 올렸어요.”그녀의 목소리가 서서히 낮아졌다.“내 허락도 없이.”“아마 당신을 살리고 싶었던 거겠죠.”“그건 구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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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심장이 기억하는 약속

봄비가 내렸다.재활센터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리듬처럼 일정했다.그 소리에 맞춰 차수연은 서류를 정리하다가 문득 멈췄다.오늘따라 손끝이 조금 더 따뜻했다.이상했다. 이제야 비로소 피가 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이젠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졌어요.”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우혁이었다.그는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와 그녀 앞에 하나를 내려놓았다.“커피 향이 진하네요.”“오늘은 좀 더 진하게 탔어요. 몸이 피곤할 땐, 이런 게 필요하잖아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쓴맛이 입안을 스쳤지만, 그 쓴맛이 이상하게 따뜻했다.“이제 병원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어요.”“수연 씨가 그렇게 만든 거죠.”그녀는 조용히 웃었다.“혼자 한 일은 아니에요. 이젠 사람들이 ‘살리는 일’을 다르게 생각해요.수술대 위에서만이 아니라, 사람의 삶 전체를 살리는 일이라고요.”그녀의 눈빛에는 잔잔한 확신이 있었다.그건, 수많은 후회와 두려움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이었다.며칠 후, ‘하루심장재활센터’의 새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이름은 'Heart Link Project.'수연이 직접 제안한 프로그램이었다.퇴원한 환자와 재활 환자, 그리고 의료진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삶을 이어주는 시스템.수술 후의 공백을 채워주는 ‘심장의 다리’였다.발표 후, 회의실이 박수로 가득 찼다.그 사이에서 수연은 조용히 손을 모았다.그녀의 눈앞에는 새로운 꿈이 있었다.그리고 그 곁에는 여전히 강우혁이 서 있었다.“좋은 아이디어네요.”“그쵸? 이름은 우혁 씨가 지어줬어요.”“링크. 연결. 이제 우리도 그렇게 연결된 거겠죠.”“뭐,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죠.”그녀가 웃자,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그 말, 책임질 수 있죠?”“책임이요?”“이제부터 평생 같이 일해야 할 테니까.”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그건… 협박이에요?”“아니요. 예고죠.”둘의 웃음이 잔잔하게 퍼졌다.그 웃음 속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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