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241 - Chapter 250

256 Chapters

240화. 우리의 리듬이 되는 하루

아침 햇살이 병원의 창문을 부드럽게 스쳤다.야간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커피를 들고 복도를 오갔고,누군가는 졸린 눈으로 차트를 정리했다.그 익숙한 소음 속에서도 차수연의 하루는 달라져 있었다.그녀의 손끝에는 여전히 어젯밤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강우혁의 손, 그가 아무 말 없이 건넸던 그 따뜻한 손길이 마치 심장에 새겨진 듯 잊히지 않았다.그녀는 그 온기를 기억하듯 무의식적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오늘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같은 팀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네. 표정이 부드러워요.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좋은 일이라…”수연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있어요. 그냥,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정도의 일이요.”점심 무렵, 회의가 끝나고 병원 카페로 내려오니강우혁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는 서류를 펼쳐놓은 채, 커피 대신 따뜻한 홍차를 앞에 두고 있었다.그녀를 보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슬슬 눈치들 챌 거예요.”수연이 앉으며 말했다.“대표님이 이렇게 자주 카페에 나타나면 스태프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걸요.”“이상하게 생각하면 되죠.”“그게 무슨 말이에요?”“대표가 의사와 커피 마시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한테는,그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그녀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은 단단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준비라는 게 꼭 있어야 하나요?”“있어요. 이 감정이 일처럼 무너질까 봐 겁나요.”“그럼 천천히 가요.”그가 웃었다.“나는 기다리는 거, 잘하니까.”그녀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의 한마디가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의 태도는 늘 같았다.조급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그저 한 발짝 옆에서 함께 걸을 뿐이었다.퇴근 무렵, 수연은 회의실 불을 끄고 나서 복도로 나왔다.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오늘은 내가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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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질투라는 낯선 박동

아침 회진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차수연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복도 저편에서 강우혁이 환자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평소보다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었다.그의 말투, 눈빛, 손동작 하나까지 익숙했지만…그가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는 건 이상하게 낯설었다.“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보호자가 허리 숙여 인사하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료진 덕분이에요.”그 말에, 수연은 잠시 시선을 돌렸다.그의 이런 겸손한 태도를 잘 알고 있었지만,이상하게 그 순간엔 심장이 묘하게 조여들었다.이유를 알 수 없었다.하지만 분명했다. 질투였다.“오늘은 무슨 일로 대표님이 직접 환자 보호자와 이야기하신 거예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간단한 문의였어요. 어제 수술받은 아이 부모님이 경과가 궁금하다길래.”“그건 제가 설명드렸어야 하는데.”“당신이 회진 중이라 대신 했어요. 괜히 부담 주려던 건 아니에요.”그의 말투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하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냥… 앞으로 그런 건 저한테 넘겨주세요.”“물론 그래야죠.”그는 부드럽게 웃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조금 굳어 있었다.서로의 대화가 잠시 멎었다.짧은 침묵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의 사이엔 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오후 진료가 끝난 뒤, 수연은 병원 뒤쪽 휴게실 창가에 서 있었다.햇살은 따뜻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반대로 식어 있었다.‘괜히 예민하게 군 걸까…’그녀는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자꾸 그 장면이 떠올랐다.그가 다른 사람에게 웃던 모습.그 미소가 자신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왜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그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있었네요.”강우혁이었다.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 있으세요?”“오늘 하루… 당신이 자꾸 내 앞에서 도망치더라고요.”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엔 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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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같은 리듬으로 숨 쉬는 밤

하루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병원은 고요해졌다.간호 스테이션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응급실만이 밤의 긴장을 품은 채 깨어 있었다.차수연은 병동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봤다.창문 너머로는 검은 하늘 아래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고,그 반사된 불빛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아련하게 깜빡였다.그녀는 손끝으로 유리창을 문질렀다.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스며들었다.그럴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 하나 - 강우혁.그는 언제나처럼 느릿하고 단정한 걸음으로 나타나말보다 눈빛으로 마음을 흔들었다.그와 나눈 대화, 그가 건넨 온기,그가 내뱉은 짧은 말 한마디가 요즘 들어 자꾸 수연의 하루를 점령했다.“오늘은 쉬는 날이잖아요.”문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놀라 돌아봤다.그곳엔 하얀 셔츠 차림의 강우혁이 서 있었다.“대표님은 쉬는 날에도 병원에 오세요?”“당신이 있을 것 같아서요.”“…그건 또 무슨 근거예요?”“당신이 바쁘다는 말로 나를 피할 때마다, 결국 여기에 있더군요. 이 병원 안에서.”그의 말에, 수연은 무심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이젠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네요.”“아니요. 아직 다 모르죠. 그래서 이렇게 자꾸 오게 되는 겁니다.”그들은 조용히 병원 옥상으로 향했다.비가 내리다 멈춘 하늘 아래, 공기는 촉촉했고, 밤공기에는 흙내음이 섞여 있었다.한쪽에는 환풍기 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 퍼졌고,그 리듬에 맞춰 두 사람의 호흡이 느리게 맞춰졌다.“하루가 너무 길었어요.”그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길었다는 건, 아직 덜 끝났다는 뜻이에요.”그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끝내기 전에, 쉬어가도 되잖아요.”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선명했다.묘하게 부드럽고, 동시에 단단했다.그 시선 하나만으로 마음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있었다.“대표님은… 언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읽게 됐어요?”“당신이 너무 잘 숨기니까요.”“제가요?”“표정 하나,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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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화. 그대가 내 안에 남은 이유

며칠째 이어지는 회의와 응급 수술로, 병원은 쉼 없는 소음 속에 잠겨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병원은 이상하리만치 낯설게 느껴졌다.강우혁은 학회 참석차 잠시 해외로 떠났고,그의 부재는 마치 익숙한 공기 한 줄기가 사라진 듯, 모든 공간의 온도를 미묘하게 바꿔놓았다.차수연은 진료실에서 환자 차트를 넘기다 문득 손을 멈췄다.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집중이 흐려졌다.지금 이 순간, 그녀가 가장 의식하고 있는 건 환자 이름도, 진료 결과도 아니었다.그저, 그가 지금쯤은 어떤 하늘 아래 있을까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책상 위에는 출국 전날 그가 남긴 메모가 놓여 있었다.짧은 글이었지만, 그 글씨 하나하나가 그의 목소리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당신이 없는 병원은 내가 없는 세상과 다를 게 없어요.그러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꼭 지켜줘요.”그녀는 그 종이를 손끝으로 쓸며 조용히 웃었다.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결코 과하지 않은 사람.단 한 문장으로도 마음을 흔드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과장님, 괜찮으세요?”간호사가 조심스레 물었다.“아, 네. 조금 피곤해서요.”그녀는 미소로 대답했지만, 표정은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간호사가 나가자, 수연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피곤하다는 말은 변명이었다.사실은, 텅 비어버린 감정의 틈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랐다.그는 항상 병원 어딘가에 있었다.회의실 유리문 너머, 복도 저편, 혹은 늦은 밤 옥상 난간에 기댄 모습으로.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끝이 덜 외로웠다.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장면이 공기처럼 사라졌다.그녀는 무심코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열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그는 원래 말보다 행동이 많은 사람이었다.그렇기에 기다림은 더 길고,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퇴근 후, 그녀는 병원 근처의 작은 북카페에 들렀다.그가 가끔 ‘사람 냄새가 난다’며 좋아하던 곳이었다.테이블 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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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 지키는 마음, 닿는 거리

병원의 공기는 여전히 차분했지만,그 속을 걷는 두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강우혁이 학회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그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전보다 가까워졌지만,그만큼 세상의 눈도 더 날카로워졌다.차수연은 여느 때처럼 회진을 마치고 복도로 나섰다.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가 있었다.“오늘은 점심 같이 하시죠.”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엔 은근한 확신이 섞여 있었다.“대표님, 이런 식으로 병원 안에서 자꾸 그러시면…”“자꾸라니요. 오늘은 특별히 의사와 환자 보호자 미팅이라 생각해요.”그녀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럼 제가 보호자예요?”“마음이 그렇다는 거죠.”그들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감정은 숨기려 해도 스며나왔고, 장난처럼 던진 말 속에는 진심이 있었다.식당 구석 자리.점심시간이 지나 한산한 공간에 그들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된장국 냄새가 퍼졌고,조용히 울리는 수저 소리 사이로 짧은 숨결이 엇갈렸다.“대표님.”“네.”“이런 관계, 오래 숨길 수 있을까요?”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숨긴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네요.”“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요?”“지킨다고 하죠.”“그게 가능할까요?”“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그의 말에, 수연은 눈을 내리깔았다.‘감당한다’는 말이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잔인할 줄 몰랐다.그녀는 알았다.이 관계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병원 안에서 그들의 관계는 언제나 균형을 요구받았다.한 발만 잘못 디뎌도 둘 다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줄 위였다.오후 회의. 수연은 환자 사례를 발표하고 있었고, 그는 그 뒤편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회의실 안에는 여러 부서장이 앉아 있었지만,그녀는 그들의 시선보다 그의 존재를 더 의식하고 있었다.그가 시선을 주지 않아도 느껴졌다.보이지 않는 연결선처럼, 공기 속 어딘가에서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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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서로의 온도를 기억하다

병원은 늘 그렇듯 분주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공기가 차가웠다.봄의 끝자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복도 끝 창문으로 스며든 바람은 어쩐지 겨울 같았다.차수연은 진료가 끝난 뒤, 잠시 고개를 들었다.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피로와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그리고 그 뒤로, 유리창 바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 강우혁이 서 있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시선을 받아냈다.눈빛이 부딪히는 찰나, 둘 사이의 공기는 한순간에 굳어버린 듯했다.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제 곧, 피할 수 없는 대화가 시작될 거라는 걸.회의실 안, 문이 닫히자 공간 안은 고요해졌다.탁상 위에 놓인 서류철 하나,그리고 두 잔의 커피만이 그들의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요즘 병원 내부에서 말이 많아요.”그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감춰진 긴장이 있었다.“저도 알고 있어요.”“그래서 생각했어요. 우리가 조금은 거리를 둬야 하지 않을까.”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의 시선을 피하려다, 결국 마주했다.그는 단호했지만, 그 안에 깊은 흔들림이 있었다.“대표님 말대로 하는 게 맞겠죠.”“이게 맞는 게 아니에요.그저… 당신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거예요.”“그런 이유라면, 저도 똑같아요. 저 역시 대표님이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아요.”둘 사이에는 그 어떤 감정보다 단단한 진심이 있었지만,지금 그 진심이 서로를 더 아프게 하고 있었다.사랑은 붙잡아야 할 것인가,아니면 지켜야 할 것인가그 경계는 언제나 잔혹하게 모호했다.며칠 후, 수연은 의국 창가에 서 있었다.바깥은 맑게 갠 하늘,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흐린 날씨였다.그녀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그었다.그 선이 지워지기 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차 과장.”“대표님.”호칭 하나가 그들의 거리를 다시 세웠다.이전보다 단정하고, 이전보다 낯설게.“오늘 퇴근 후에 잠깐 시간 되세요?”“무슨 일 있으세요?”“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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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이어지는 계절, 우리의 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병원 앞 벚나무에 다시 꽃이 피었다.지난봄, 그와 함께 걷던 길에도 올해 또다시 연분홍빛이 내려앉았다.차수연은 그 아래를 혼자 걸었다.하얀 가운 끝자락이 바람에 흔들렸고,그녀의 손에는 커피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커피를 마시면 그의 향이 떠올라 언젠가부터는 입에 대지 않았다.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강우혁이 병원을 떠난 지도 벌써 반년. 그는 지방에 새로 개원한 병원을 맡았다.처음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어느새 그마저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서로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그가 남긴 온도를 잊지 못했다.그 온도는 계절이 바뀌어도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식지 않았다.그날 오후, 회의실 문을 열자 낯익은 공기가 스쳤다.처음 맡는 냄새가 아니었다.익숙하고, 오래된,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의 향기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회의실 끝자리에 앉은 사람 그가 있었다.단정한 수트 차림,예전보다 얼굴빛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담담했다.시간이 흘렀어도, 그를 알아보는 건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강 대표님, 오랜만이네요.”의사들이 인사했다.그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이 병원과 협력하게 되어 반갑습니다.”그녀의 심장은 묘하게 요동쳤다.회의 내내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지만,그가 말을 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기억을 자극했다.그의 시선이 한 번, 아주 짧게 그녀를 향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회의가 끝난 뒤, 그녀는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그의 발소리가 들릴까봐, 뒤돌아볼까봐,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그러나 병원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차 과장.”그녀는 걸음을 멈췄다.“오랜만이에요.”그는 예전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네요.”“그동안 잘 지냈어요?”“네, 바쁘게요.”“그럴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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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너에게 닿기까지의 시간

봄이 지나 초여름이 다가왔다.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한결 따뜻해졌지만 차수연의 마음은 여전히 신중했다.다시 시작된 관계라기보다는 조심스레 쌓아 올린 신뢰의 벽 위에서 그들이 천천히 발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강우혁은 본원으로 복귀한 지 한 달째였다.공식적으로는 자문 이사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병원 전체를 움직였다.수연은 그런 그를 업무상 자주 마주쳤다.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그날 아침, 병원 로비는 학회 준비로 분주했다.전국에서 모인 의료진들이 속속 도착했고, 수연은 행사 진행 담당으로 바삐 움직였다.서류를 정리하던 그녀의 옆으로 조용히 익숙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차 과장, 이 부분은 제가 맡을게요.”그의 목소리였다.수연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대표님이 직접요?”“이젠 대표 아닙니다. 이사로 강등됐잖아요.”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명찰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자문 이사 - 강우혁.’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래도 여전히 모든 사람이 대표님이라고 부르잖아요.”“그건 버릇이에요. 당신도 그렇잖아요.”“저요? 전…”“지금도 ‘대표님’이라고 불렀어요.”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입술이 떨렸지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의 말투는 여전히 따뜻했고, 그녀의 마음은 그 온기에 쉽게 녹아내렸다.행사가 시작되자 수연은 연단 뒤에서 대기하며 참석자들의 반응을 지켜봤다.강우혁이 첫 번째 발표를 맡았다.그의 목소리가 강당 안을 채웠다.차분하고 단정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그녀는 무대 위 그를 바라보며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렸다.흰 가운, 단정한 표정, 그리고 환자 앞에서 흐트러짐 없는 그의 모습 그때부터였을 것이다.그가 단순히 상사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한 때가.하지만 그 마음은 언제나 이성의 이름으로 눌러 담아야 했다.그는 병원의 중심이었고, 그녀는 그 옆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였다.행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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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면

파리의 새벽은 잔잔했다.창문을 열자, 습기 섞인 공기와 함께 가로등 불빛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차수연은 호텔 커튼을 걷어 올리고 하늘빛이 서서히 밝아오는 풍경을 바라봤다.그 도시의 모든 새벽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어딘가 같은 시간, 그도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그 생각 하나로, 그녀의 하루는 늘 단단히 시작됐다.학회 일정이 끝난 뒤, 그녀는 파리 시내의 병원을 둘러보았다.선진 의료 시스템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이유였지만,사실은 조금의 여유가 필요했을 뿐이다.강우혁이 없는 시간에 자신이 어디까지 설 수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하고 싶었다.그녀는 진료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의사 가운 대신 얇은 코트를 걸친 모습은 낯설지만 자유로워 보였다.그녀는 천천히 속으로 중얼거렸다.“대표님이라면 뭐라고 했을까.”그가 늘 하던 말투가 떠올랐다.“그건 잘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불안해도 멈추지 않는 게, 진짜 용기니까.”그녀는 웃었다.이제는 그가 곁에 없어도 그의 말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한국의 병원은 여전히 분주했다.강우혁은 자문 회의와 신환 회진으로 하루를 쪼개 쓰며 틈틈이 그녀의 발표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휴대폰 화면 속 기사 제목을 천천히 훑었다.‘한국인 여성의 심혈관 연구, 국제 학회서 주목받아.’사진 속 그녀는 낯선 무대 위에서도 또렷했다.조명 아래에서 미묘하게 긴장한 표정조차 그의 눈엔 그저 아름다웠다.그는 사진을 확대하며 마치 직접 그곳에 있는 듯 숨을 고르며 말했다.“잘했어요, 수연 씨.”그날 밤, 그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제목: 같은 하늘 아래에서수연 씨. 그곳의 공기는 좀 다르죠?나는 오늘도 여전히 병원에 있습니다.당신이 비운 자리엔 당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요.여기선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았어요.당신이 돌아올 땐 아마 새로운 잎이 나 있겠죠.그 사이에도 나는 여전히, 당신의 온도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강우혁.그녀는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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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우리가 말하지 못한 시간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병원 복도 끝 창가에 서 있는 차수연의 손끝이 유리창에 닿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번져왔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츠렸지만, 그 찬기가 오히려 정신을 또렷하게 해줬다.지난 며칠 동안 병원은 소란스러웠다.대형 수술 일정, 응급실 과밀,그리고 그 사이에 쌓이는 감정의 잔여물들.일은 늘 그렇듯, 사람의 마음보다 앞섰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비 오는 날, 같은 우산 아래에서 나란히 걸었던 시간.그의 어깨에 스친 온도, 그때 들려왔던 한마디.“이름이 이렇게 예뻤나 싶어요.”그 말이 자꾸 떠올라서, 가끔은 일보다 그 기억이 더 집중을 흐트러뜨렸다.그가 떠올랐다. 강우혁.그 이름을 입 안에서 부를 때마다 묘한 온기와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다.그날 오후, 그녀는 회진을 마치고 의국 복도 끝 커피 자판기 앞에 섰다.잔을 받으려는 순간, 낯익은 그림자가 다가왔다.“오늘도 커피예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그녀는 놀란 듯 돌아봤다.“대표님…”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또 그 호칭이에요.”“아, 죄송해요. 습관이 아직…”“그럼 오늘은 한 번만 제대로 불러봐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우혁 씨.”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그거면 됐어요.”그는 커피를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늘, 시간 좀 괜찮아요?”“네?”“퇴근 후에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말하는 ‘이야기’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저녁, 병원 근처 한적한 식당.조명이 낮게 깔린 공간 안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말없이 와인을 따라주던 그의 손이 조심스레 멈췄다.“수연 씨.”그의 부름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우리… 예전에 병원 인수 문제로 처음 부딪혔던 거 기억나요?”그녀는 미간을 좁혔다.“당연하죠. 그때 대표님이 저를 꽤 미워하셨죠.”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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