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231 - Chapter 240

256 Chapters

230화. 봄이 다시 심장을 두드릴 때

봄의 공기가 유난히 부드럽던 날이었다.하루심장재활센터의 앞마당에 심은 벚나무가 연분홍 꽃을 피웠고,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유리문 앞을 스쳐 지나갔다.그 창가에 서 있던 차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지독하게 차가웠던 시간들 심장이 멈췄던 순간, 의사로서의 자신을 잃었던 나날,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한 그 이후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그 모든 걸 지나 이제는 봄이었다.문이 열리며,“오늘은 좀 일찍 나왔네요.”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혁이었다.언제나처럼 단정한 셔츠 차림에 손엔 스테인리스 텀블러 두 개를 들고 있었다.“출근길 커피요. 오늘은 원두를 바꿔봤어요.”“또요?”“새로운 걸 찾는 게 제 낙이라서요.”그녀는 커피를 받아 들며 조용히 웃었다.“이제 병원장이 아니라, 커피 연구소 소장으로 불러야겠네요.”“그건 좀 괜찮은데요.”그의 미소가 부드럽게 번졌다.잠시, 두 사람 사이에 익숙한 침묵이 흘렀다.서류 더미 위로 햇살이 떨어지고,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실루엣이 조용히 포개졌다.“이제… 정말 괜찮아요?”우혁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녀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제 가슴이 뛰는 게 두렵지 않아요.”“그 말, 듣고 싶었어요.”“왜요?”“이제 그 박동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라서.”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대표님답네요. 감정 표현이 점점 유려해지시는데요.”“그건… 아마 좋은 스승이 있어서겠죠.”“스승이라…”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의 눈을 마주봤다.“이젠, 동료잖아요.”“그 말… 아직도 낯설어요.”“그럼 익숙해질 때까지 매일 같이 들어요.”“그건 반칙이에요.”“그래도 듣게 될걸요.”그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웃음으로 부딪혔다.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순간 이미 모든 대화가 이루어진 듯했다.그날 오후, 수연은 재활센터의 새 프로그램 설명회를 준비 중이었다.Heart Link Project 심장 회복 이후의 삶을 이어주는 ‘공감 프로그램’.“오늘이 첫 세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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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향으로 잇는 삶

아침 공기가 아직 덜 깨어난 시간, 하루심장재활센터 라운지에는 은근한 원두 향이 먼저 하루를 열었다.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강우혁이 검은 가죽 바트에 소형 그라인더와 드립 포트를 올려 끌고 들어왔다. 새 원두 봉투의 실링을 뜯는 소리, 콩을 컵에 쏟는 낙차가 잔잔한 빗소리처럼 퍼졌다.“오늘은 에티오피아 내추럴로 가보죠. 과일 향이 살아 있습니다.”그가 말하자, 차수연이 벽면 화이트보드에 적어둔 재활 일정표를 잠시 멈추고 돌아봤다.“대표님은 매일 아침 원두 소개로 시작하시네요.”“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습관이라서요.”“누군가요?”“수연 씨요.”그는 태연히 답하고는 분쇄도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그라인더 날이 원두를 벤다. 일정하게 떨어지는 분말의 입자가 컵에 쌓였고, 뜨거운 물이 거름망을 적시며 둥근 돔을 만들었다. 향이 열렸다. 잘 익은 자두와 살구, 그리고 미묘한 꿀. 그녀는 본능처럼 숨을 들이켰다. “이 향, 어디서嗅어본 듯한데요.”“맞아요.”그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병동을 가득 채웠던 소독약 냄새를 덮어주던 유일한 냄새가 이거였거든요.”그녀의 눈길이 그에게 머물렀다. 그는 준비한 머그 두 개에 아주 같은 속도로 커피를 나눴다. 표면이 잔잔히 흔들리다가 멎었다. “오늘은 진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진짜요?”“제가 왜 커피에 매달렸는지. 그리고 왜, 당신 앞에서는 늘 같은 향으로 시작하는지.”다섯 해 전, 겨울 끝.그는 새벽 내내 심장막혀 오는 통증을 왼손으로 움켜쥐며 응급실 문턱을 넘었다. 출혈이 없는 통증이 그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혈압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시야가 검게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하던 순간, 긴 머리를 단정히 묶어 올린 여의사가 파도처럼 다가왔다. “좌전하행지 잡아요. 시술 카트 준비 완료.”그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낮고 안정돼 있었다. 당직의, 간호사, 마취과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는 그 와중에 스스로의 심장 소리를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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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심장의 기록

심장은 기록을 남긴다.의사들은 그걸 데이터라고 부르고, 환자들은 기적이라고 불렀다.그 어느 쪽이든, 멈췄다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은 무언가를 기억한다.그 기억이 남긴 미세한 흔적을 따라가면, 언제나 어떤 이름이든, 어떤 손길이든 하나의 이야기가 남는다.차수연이 ‘하루심장 일지’ 첫 장을 펼친 것은 새벽 다섯 시였다.해가 아직 병원 건물 뒤쪽에 걸려 있는 시간,복도 조명 아래에서 그녀는 환자 기록 대신 손글씨로 제목을 적었다.“심장은 다시 사랑하는 법을 기억한다.”그 문장을 쓰고 나니 이상하게도 손끝이 떨렸다.이건 의료 보고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이었다.이곳은 병원이지만 동시에 마음의 회복소이기도 했으니까.“이른 아침부터 글을 쓰시네요.”문득 들려온 목소리. 강우혁이었다.늘 그렇듯 검은 머그잔에 커피를 담고,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얼굴이었다.“오늘은 향이 좀 다르네요.”그녀가 말했다.“어제보다 진하게 내렸어요. 누군가의 첫 페이지에 어울리는 향으로.”“제 기록을 위해서요?”“당신의 기록이 곧 우리의 기록이니까요.”그는 그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노트를 슬쩍 바라봤다.“심장은 다시 사랑하는 법을 기억한다… 좋은 문장이네요.”“의학적으로 보면 근거가 없죠.”“하지만 살아본 사람들은 알아요. 심장은 감정을 기억하는 기관이에요.”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아마 당신일 겁니다.”수연은 펜을 내려놓았다.“지난주 응급실에서 구조한 환자 있죠. 40대 후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분.”“아, 남편의 사고를 보고 충격으로 쓰러졌던.”“그분이 오늘 눈을 떴어요.”그녀의 말에 우혁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그분이 한 말이요, 참 이상했어요. 심장이 멈춘 동안 남편의 손을 잡고 있었다고.”“착각일 수도 있겠지만….”“그건 기억이에요.”그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심장이 멈춰도, 감정은 잠들지 않아요. 누군가를 붙잡는 의지가 생리보다 오래갑니다.”그녀는 잠시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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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비가 데려온 목소리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건 오후 회진이 끝날 무렵이었다.하루심장재활센터의 유리창을 타고 빗물이 줄줄이 흘러내렸고,복도 끝의 벽시계는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차수연은 진료 기록을 마무리하다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회색 하늘이 건물과 이어져 있었다.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그 눈빛만큼은 여전히 맑았다.문이 열리고 강우혁이 들어왔다.평소보다 젖은 머리칼, 어깨에 묻은 빗방울.그는 늘 차분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비가 생각보다 세게 오네요.”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그렇네요.”그는 짧게 대답하며 창가로 다가왔다.“오늘은 커피 대신 우산을 두 개 가져왔습니다.”“둘 다 젖겠네요.”“괜찮아요. 누군가랑 같이 젖는 건 혼자 젖는 것보다 낫잖아요.”그녀는 미소 지으려다 멈췄다.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낮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무슨 일 있었어요?”그녀가 묻자, 우혁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오늘 오전에… 한 환자가 떠났습니다.”그녀의 표정이 굳었다.“어떤 분이죠?”“세 달 전, 인공심장 이식 대기 중이던 남자분. 그 사람에게 약속했어요.다음 비 오는 날, 커피 한잔 같이 하자고. 그런데 오늘 아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심정지가 왔습니다.”그는 조용히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은 금이 간 유리처럼 아슬했다.“커피를 내리려고 물을 데우던 순간이었어요.간호사가 뛰어왔죠. 대표님, 코드 블루입니다. 달려가 보니, 이미 손끝이 식어 있었어요.”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계속했다.“이상하죠. 의사로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냈는데, 오늘은 유난히 견디기 어렵네요.”그녀는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섰다.“그 약속, 어땠어요?”“그분이 말했죠. 내가 살아 있으면, 꼭 그 커피 향을 다시 맡고 싶다.그래서 오늘… 그 향을 준비했는데, 그분 대신 나 혼자 마시게 됐네요.”그녀의 목울대가 조용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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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서로의 리듬으로

비가 완전히 그친 아침이었다.밤새 젖은 병원 앞 은행나무 잎에서는 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하루심장재활센터의 유리문엔 아직도 희미하게 김이 서려 있었다.맑고 선명한 공기 속에서, 차수연은 새벽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복도를 걸었다.그녀의 흰 운동화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조용한 리듬이 공간을 채웠다.탁, 탁, 탁.그 리듬은 마치 살아 있는 심장의 소리 같았다.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바라봤다.하루 전의 빗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자리엔새벽의 금빛 공기가 가득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한동안 향이 없었던 공기 속에서도 커피 향 같은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오늘은 늦으셨네요.”낮고 단정한 목소리, 강우혁이었다.그는 늘처럼 검은 셔츠 위에 흰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하지만 오늘은 그 얼굴에 묘하게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긴 밤을 견딘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 무언가 결심한 사람의 눈빛이었다.“오늘은 일부러 늦었어요.”그녀가 부드럽게 웃었다.“비 온 다음 날은 커피보다 먼저 걸어야 하니까요.”“걸어요?”“그래야 마음이 다시 박동을 맞추죠.”그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좋아요. 오늘은 걸으면서 일정을 시작하죠.”두 사람은 함께 병원 뒤편의 산책로를 걸었다.비로 인해 젖은 땅에서는 흙내음이은근하게 피어올랐다.우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이 길, 내가 처음 걸었던 게 언제였는지 알아요?”“몰라요. 언제였죠?”“그날이었죠. 수술 후 처음 걸었을 때.심장이 아직 불안정하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길을 걷고 싶었어요.그때, 한 걸음마다 내 심장이 살아 있다고 느꼈습니다.”그녀는 걸음을 멈췄다.그의 어깨너머로 햇살이 번져들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안엔 삶의 흔적이 있었다.“오늘은 어때요?”그녀가 물었다.“오늘은… 한 걸음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걷는 두 걸음이라 더 안정적이에요.”“좋은 리듬이네요.”“그렇죠. 의사와 환자, 혹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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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흉터 위에 핀 리듬

병원의 오후는 유난히 고요했다.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이 은은하게 비스듬히 떨어졌고,그 빛 한가운데 차수연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 환자에게 머물러 있었다.며칠 전 대동맥 수술을 끝낸 청년이었다.그의 팔에는 아직 바늘 자국이 선명했고,심전도 모니터는 약한 리듬으로 그를 대신해 숨을 쉬고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레 청진기를 들었다가,잠시 숨을 고르며 손끝으로 그의 흉곽 위를 쓸었다.심장은 살아 있었다.다만, 아주 조용하게. 마치 두려움이 다시 깨어날까 봐 숨죽이는 것처럼.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이제 괜찮아요. 당신은 다시 살 거예요.”하지만 그 말은 어쩌면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그때 문이 열리고, 강우혁이 들어왔다.그는 말없이 창문 쪽으로 걸어왔다.햇빛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자, 그의 그림자가 수연의 발끝을 살짝 덮었다.“오늘은 분위기가 다르네요.”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이 방은 언제나 그렇죠.”“죽음의 냄새가 남아 있나요?”“아니요.”그는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여긴 언제나 ‘다시 사는 냄새’가 나요.”그 말에 수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살아난다는 말.그건 언제나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같은 무게로 남는 단어였다.“강 대표님.”그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이 환자, 어제 의식을 잠깐 찾았어요. 근데 자신이 흉터를 보더니 울더라고요.”“흉터를요?”“네. 그게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데도…그걸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우혁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그 시선 속엔, 이해와 아픔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사람들은 흔히 상처를 숨기려 하죠. 하지만 의사인 우리는 그걸 드러내야 살 수 있잖아요.”“맞아요.”“그런데…”그는 잠시 멈췄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수연 씨는 당신의 흉터를 보여준 적 있나요?”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그건…”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그럴 필요가 없었어요.”“정말요?”“네.”“아니요.”그는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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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함께 뛰는 시간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깊숙이 스며들었다.오랜만에 병원 밖 공기를 마신 강우혁은 어딘가 어색한 얼굴로 차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평소처럼 가운 대신 셔츠 차림이었고, 손에는 종이컵 두 개가 들려 있었다.“이건 커피요.”“병원 커피 아닌가요?”“아뇨, 오늘은 내가 직접 내렸어요.”“직접요?”그녀가 놀란 듯 웃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배운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나름 노력했습니다.”그녀는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커피 향은 병원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이 향, 좋아요.”“이건 비 오는 날 마셨던 원두예요. 당신이 같이 내리자 했던 그날 기억나죠?”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오늘은 병원 말고 밖에서 내려보고 싶었어요.”그는 말없이 그녀를 이끌었다.병원 뒤편의 산책로를 지나면 작은 공원이 있었다.환자들이 재활 운동을 위해 오가던 길이었다.하지만 오늘, 그 길엔 의사도 환자도 없었다.오직 두 사람만 있었다.“이런 평범한 곳에 나오니까, 이상하게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에요.”수연이 천천히 말했다.“병원에서는 매일 누군가의 시간과 싸우잖아요.1분, 30초, 10초…그런데 여긴,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우혁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살아 있다는 증거라…”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 말, 참 당신답네요.”그는 조용히 웃었다.“당신은 요즘, ‘일’보다 삶을 이야기하는 의사가 되었어요.”“그건 아마…”그녀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당신 때문일 거예요.”그 말에 그의 걸음이 멈췄다.“저요?”“당신이 내 리듬을 바꿔놨어요. 전엔 하루의 시작이 환자의 상태였는데,요즘은 당신 얼굴을 보는 게 먼저예요.”그의 눈빛이 흔들렸다.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그럼 오늘 하루는…”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 리듬에 맞춰볼까요?”“좋아요. 그럼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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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설명되지 않는 리듬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되자 더 굵어졌다.병원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리듬처럼 반복되고,심야 근무를 남겨둔 복도에는 희미한 조명만이 남아 있었다.차수연은 스테이션 창가에 서서 그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손끝에는 아직도 낮 동안의 따뜻한 감촉이 남아 있었다.공원에서, 그의 손이 닿았던 그 짧은 순간의 온기.그녀는 자신이 왜 이토록 오래 그 장면을 떠올리는지 알 수 없었다.의사로서의 하루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감정이 조용히 심장 깊숙이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그 감정을 인정하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그래서 그저 이렇게 창밖의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아직 퇴근 안 했어요?”낯익은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수연이 고개를 돌리자, 강우혁이 젖은 머리로 서 있었다.비에 젖은 셔츠가 어깨에 붙어 있었고,그의 손에는 접힌 우산이 들려 있었다.“비 맞으셨어요?”그녀가 다가가며 말했다.“괜찮아요. 어차피 병원에 들어올 거니까.”그는 웃었지만, 그 웃음엔 묘한 피로가 섞여 있었다.“오늘은 일찍 가시지 그랬어요.”“가려다가… 발이 이쪽으로 오더라고요.”그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그 말에는 보고 싶었다는 뜻이 분명히 숨어 있었다.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고, 우혁은 그 미묘한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오늘, 그 공원 말이에요.”그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같이 뛰면서 생각했어요. 내 심장이 이토록 강하게 뛴 적이 있었나.”“그건 운동 때문이죠.”그녀가 장난스럽게 대답했지만, 그의 눈빛은 웃지 않았다.“아니요. 당신 때문이에요.”순간, 공기 속에서 무언가 멈춘 듯했다.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처음엔 그저 감탄이었어요.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죠.환자 앞에서, 생명을 다루는 손끝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그게 단순한 존경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그의 시선이 그녀를 붙잡았다.“당신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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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화. 심장이 기억하는 사랑

아침 공기가 유난히 부드러웠다.밤새 내리던 비가 멈추고, 병원 유리창엔 희미한 물결 무늬만 남아 있었다.차수연은 그 앞에 서서 하얗게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어제의 일이 꿈이었는지, 아직도 가슴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그녀는 손끝으로 자신의 심장 위를 가볍게 눌러보았다.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뛰고 있었다.그 리듬이 어쩐지 달라져 있었다.익숙했던 ‘의사의 박동’이 아니라,누군가를 떠올릴 때마다 반응하는 ‘사람의 박동’이었다.그녀는 흠칫하며 웃었다.“이러면 안 되는데…”그러면서도, 그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아침 회진을 마친 뒤, 그녀는 무심코 진료실의 시계를 바라봤다.시침이 여덟을 가리키자마자, 문이 조용히 열렸다.“오늘도 정확하시네요.”낯익은 목소리. 강우혁이었다.그는 환자 차트 대신, 투명한 유리컵 두 개를 들고 있었다.“아침엔 커피보다 이게 낫다길래요. 생강차예요.”“대표님이 직접 끓이신 건 아니죠?”“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그가 컵을 내밀며 말했다.“마시는 사람은 당신이니까, 온도만큼은 신경 썼어요.”수연은 그 컵을 받아 들었다.컵 아래로 전해지는 미묘한 온기가 손끝에 맴돌았다.“생강차 치고는 향이 부드럽네요.”“당신처럼요.”“그건 칭찬이에요?”“칭찬 이상이죠.”그녀는 미묘하게 시선을 피했다.“대표님, 이런 건 환자 앞에서도 하시나요?”“그럴 리가요. 이건 특정인 전용 멘트입니다.”“특정인이라면…?”그는 대답 대신 웃었다.그 미소가, 오히려 모든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어제는… 고마웠어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무엇을요?”“그 고백.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요. 의사와 대표라는 경계가 있어서,그걸 넘어서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어요.”“그래서 오늘은, 그냥 평범하게 지내보려고요.”“평범하게요?”“네. 사랑이 꼭 특별할 필요는 없잖아요.같은 공간에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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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너라는 이름의 박동

밤의 병원은 낮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소독약 냄새도, 응급 호출의 소리도,모두 고요하게 가라앉은 채 어딘가 멀리서 희미하게 울렸다.차수연은 그 고요 속에서 혼자 서 있었다.복도 끝 창문 너머로는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이 드러나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지만, 생각은 온통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강우혁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리듬이 달라졌다.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어제 옥상에서 그가 내밀던 손, 그 손끝의 온기,그리고 조심스레 섞이던 두 사람의 숨소리.그 모든 순간이 아직도 피부에 남아 있었다.‘사랑이란 게 이런 걸까.’누군가의 존재가 하루의 질서를 조금씩 어지럽히고,그 어지러움이 오히려 자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그녀는 가만히, 손끝으로 심장 위를 눌렀다.그곳이 다시 두근거리고 있었다.“아직 퇴근 안 했어요?”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고개를 돌리자, 그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셔츠 소매가 살짝 걷혀 있었고, 한 손에는 서류 대신 낡은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었다.“오늘은 커피 아니네요?”그녀가 물었다.“당신이 밤엔 카페인을 피하라고 했잖아요.”그는 컵을 건네며 웃었다.“대신 허브차요. 마음이 잠 못 들 때 좋다길래.”“마음이 잠 못 든다는 건 누군가 생각난다는 뜻이죠.”“네.”그는 단호히 대답했다.“지금 그 누군가를 만나러 왔어요.”그녀의 시선이 흔들렸다.그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당신은 늘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잖아요. 그런데 정작, 당신 자신은 누가 살려주나요?”그녀는 말이 막혔다.그 질문은, 너무 정확하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찔러왔다.그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오늘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요.”그 말에, 수연의 눈가가 살짝 젖었다.‘누군가 나를 지켜준다’는 말이 이토록 따뜻할 줄은 몰랐다.그들은 병원 옥상으로 올랐다.밤공기가 차가웠지만,도시의 불빛은 부드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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