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251 - Chapter 260

293 Chapters

250화. 우리가 마주한 아침

아침 햇살이 병원 창문 너머로 천천히 스며들었다.밤새도록 켜져 있던 수술실의 불빛이 꺼지고,간호사들의 발소리가 다시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틈에서, 차수연은 커피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창가에 서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그녀의 마음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그의 손끝이 남긴 온도는 식지 않았고, 그 온기 덕분에 오늘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피곤했지만 이상하게 가벼웠다.마음 한켠이 고요하게 차오르는 기분이었다.“이상하다…”그녀가 중얼거렸다.“하루가 이렇게 부드럽게 시작된 적이 있었던가.”그 시간, 강우혁은 병원 옥상에 있었다.손에는 스티로폼 컵이 들려 있었고,그의 시선은 저 아래 출근하는 직원들의 발걸음에 머물러 있었다.누군가는 바쁘게, 누군가는 여유롭게,그 모든 일상 속에서 그는 한 사람만을 찾고 있었다.그녀가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하는 장소3층 진료실 앞. 그는 거기에 그녀의 뒷모습이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렸다.문득, 자동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가 들어왔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그녀는 늘 같은 길로 걷지만, 오늘만큼은 발걸음이 조금 더 부드러워 보였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아침, 괜찮아요?”잠시 후, 화면에 도착한 답장.“네. 덕분에요.”그는 그 짧은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커피를 입에 대지 못한 채, 미소만 지었다.그날 오전,의국 회의가 끝나고 수연은 잠시 복도 끝에 서 있었다.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수연 씨.”그녀가 돌아보자,그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넥타이 색이 평소보다 연했고, 그 덕에 그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오늘은 조금 피곤해 보이네요.”“어제 늦게까지 차트 정리했어요.”“그럴 줄 알았어요.”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종이컵을 내밀었다.“아침에 직접 타온 거예요.”“커피요?”“아니요. 꿀차요.”“꿀차요?”“당신이 커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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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화. 하루 끝, 당신의 온기

밤의 병원은 늘 익숙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긴 하루의 끝에서야 찾아오는 짧은 평화.차수연은 빈 병동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모든 불이 꺼진 병실 문 사이로 희미한 조명이 스며들고,어디선가 심장 모니터의 일정한 비프음이 들려왔다.그녀는 손끝으로 메모지 하나를 가볍게 쓸어내렸다.‘내일 오전 회진 9시.’스스로에게 남긴 짧은 약속이었다.그러나 그 메모 아래, 어쩐지 눈에 익은 글씨가 하나 더 적혀 있었다.“오늘은 좀 쉬어요. 당신도 사람이에요.”그 글씨는 강우혁의 것이었다.언제 남겼는지 모르지만,그의 손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피로가 덜어지는 듯했다.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작은 메모를 접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그의 말대로 오늘만큼은 조금 쉬기로 했다.퇴근길, 병원 정문 앞엔 이미 그가 서 있었다.검은 외투 깃을 세운 채,조용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오늘도 늦네요.”“이제는 제 일상이죠.”“그래서 기다렸어요.”그의 말투엔 조급함이 없었다.마치 그녀가 오기까지의 시간마저도그에게는 하나의 기다림의 의미였던 것처럼.“이 시간까지 병원에 있던 거예요?”“아뇨.”그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오늘은 수연 씨랑 같이 걸어가고 싶어서.”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입술 끝에 미소가 번졌지만, 가슴은 이상하게 두근거렸다.병원 근처의 작은 거리,늦은 시간에도 따뜻한 빵 냄새가 흘러나오던 제과점 앞을 지날 때 그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기억나요?”“뭐가요?”“작년 겨울, 여기서 처음 마주쳤잖아요. 당신이 환자 보호자 대신 서류 들고 뛰어오다가 빵 봉투랑 같이 떨어뜨렸던 날.”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랬죠.그때 대표님이 아무 말도 없이 빵을 주워주고는‘이거, 따뜻하네요’라고 하셨죠.”“그게 시작이었나 봐요.”“뭐가요?”“내가 당신을 기억하게 된 게요.”그녀는 그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그의 시선이 조용히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쳤다.낮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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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다시, 봄이 오는 시간

봄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왔다.병원 마당의 목련이 피기 시작했고,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겨울의 찬 기운을 완전히 밀어냈다.차수연은 새로 정리된 진료차트를 덮으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오늘도, 끝났다…”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하지만 예전처럼 공허하지 않았다.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벚꽃잎 몇 장이 병원 유리창에 부딪혀 흩날렸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문득 어젯밤 강우혁의 목소리를 떠올렸다.“내일 아침엔 같이 걸어요.”그 약속이 머릿속을 스치자,어디선가 익숙한 심장 박동이 들리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그녀는 오랜만에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햇살은 부드럽고, 공기는 봄의 냄새로 가득했다.병원 근처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멀리서 그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짙은 네이비색 셔츠 차림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던 그는,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미소를 지었다.“정말 나왔네요.”“약속했잖아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근데 생각보다 더 일찍 나왔네요.”“혹시라도 놓칠까 봐요.”그의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대표님답지 않게 불안했네요.”“그런가요?”“네. 근데 그건 좀… 귀여웠어요.”그의 눈가가 순간 흔들리더니, 잠시 웃음이 번졌다.“그 말, 기억할게요.”그녀는 커피를 받아 들고 입술을 대었다.커피 향과 함께 퍼지는 따뜻한 온기가 그의 온도와 닮아 있었다.그들은 천천히 병원 뒤편의 공원으로 걸었다.오전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고, 바람에 섞인 벚꽃잎이 발끝에 흩날렸다.“이 길, 자주 오나요?”그녀가 물었다.“가끔요. 머리 복잡할 때.”“그럼… 오늘은 왜요?”“오늘은 복잡하지 않아요.”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그냥 당신이랑 걷고 싶었어요.”그녀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 입술을 다물었다.말로 표현하면 깨질 것 같은 순간이었다.그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가까이 있을 때는 그저 편안하지만, 멀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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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화. 이름으로 맺은 약속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같았다.차수연은 병원 정문 앞에서 깊은 숨을 내쉬고, 익숙한 풍경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요 며칠 사이 이 병원 복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밝아진 것도, 조용해진 것도 아닌데 그의 시선이 닿는 공간이 늘 따뜻하게 느껴졌다.강우혁.이름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달라지는 사람.그의 존재는 여전히 단정했고,어쩐지 자신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을 믿는 사람 같았다.그게 그녀에게 안심을 주면서도, 동시에 혼란을 주었다.‘나는 왜 자꾸 그를 의식할까.’그녀는 진료실 앞에서 멈춰 서서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차수연.”그녀의 이름을 또렷하게 부르는 그 목소리는 낮지만 깊게 울렸다.그녀가 천천히 돌아보자, 강우혁이 서 있었다.하얀 셔츠 깃이 약간 풀려 있었고,눈가엔 피곤함 대신 묘한 부드러움이 스며 있었다.“회의 전에,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네… 지금요?”“지금이요.”그는 그녀를 병원 옥상으로 데려갔다.봄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햇빛이 눈부셨지만, 그의 시선은 한결같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왜… 갑자기 옥상까지?”“잠깐 바람 쐬게요. 요즘 당신, 너무 숨 가쁘게 일하잖아요.”그녀는 작게 웃었다.“대표님은 제가 바쁜 걸 다 보시네요.”“당연하죠. 당신이 일하는 시간만큼 나도 당신을 봤으니까.”그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따뜻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그녀는 잠시 말이 막혔다.그는 조용히 한 걸음 다가왔다.“차수연.”그녀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이번엔 훨씬 낮고 진지했다.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녀의 심장이 조금씩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그 이름을 이렇게 직접 부르면…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돼요.”그는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이름을 부르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지 몰랐어요.”그녀는 그 말을 듣고 시선을 돌렸다.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그런 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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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화. 우리 사이의 거리, 한 걸음

퇴근 후의 공기는 하루의 무게를 잔잔히 풀어내는 듯했다.병원 불빛이 차례로 꺼져가고,잔잔한 봄바람이 복도를 스치며 남은 긴장감까지 휘감아 데려갔다.차수연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손에 든 서류 봉투를 조심스레 내렸다.그 안엔 오늘 하루를 버텨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녀는 작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이제 정말 끝이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또 다른 떨림이 있었다.그 떨림의 이유는 이미 명확했다.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병원 앞 주차장. 가로등 불빛 아래, 강우혁은 차 옆에 기대서 있었다.어둠 속에서도 단정한 실루엣이 눈에 띄었다.그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인사했다.“늦었네요.”“회의가 길어졌어요.”“그래도 와줘서 고마워요.”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대표님이 부르는데 안 올 수 없죠.”“오늘은 대표님 말고, 그냥… 우혁 씨로 불러주세요.”그의 말투엔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그럼, 우혁 씨.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그냥 드라이브요. 오늘따라 바람이 좋아서요.”그의 차 안은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차수연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도시의 불빛이 지나가며 반짝였고,그 불빛이 유리창에 비쳐 그녀의 눈동자에 닿았다.“이 시간대 도로는 참 조용하네요.”“그래서 좋아요. 당신이랑 있을 땐, 이런 고요함이 어울리니까.”그녀는 잠시 웃음을 삼켰다.“그런 말, 자꾸 하면 곤란해요.”“왜요?”“진짜로 설레니까요.”그의 손이 잠시 핸들 위에서 멈췄다.그녀의 말은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 안의 미묘한 떨림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그럼, 설레게 할게요.”그는 천천히 대답했다.“그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창밖의 불빛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그녀의 표정 위로 조용한 미소를 남겼다.차는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갔다.도로 양쪽으로 벚꽃이 피어 있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꽃잎이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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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화. 위험하게 따뜻한 거리

햇살이 병원 복도를 천천히 비추고 있었다.오전의 공기는 잔잔했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 속에서 차수연은 창가 근처 커피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컵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어제 밤의 기억을 떠올렸다.도시 외곽의 그 길, 꽃잎이 흩날리던 밤공기, 그리고 그의 손.그 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묘한 온기가 손끝에 남아 있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바라봤다.마치 그 감촉이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그 커피, 저 줄 서 있었는데요.”익숙한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강우혁이 서 있었다.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단정했지만, 눈가엔 살짝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거짓말이에요.”“네, 들켰네요.”그는 미소를 지었다.“근데, 그 커피. 나눠 마셔도 되죠?”그녀는 피식 웃으며 컵을 건넸다.“대표님, 커피 두 잔 마시면 잠 못 자요.”“괜찮아요. 어차피 오늘은 잠 안 잘 거니까.”그 말에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무슨 뜻이에요?”“회의 자료가 많아서요.”“그럼 그렇지.”“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 아니죠?”“그건… 대표님이 판단하세요.”그의 입가에 조용한 웃음이 번졌다.말끝마다 닿는 여운이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오후 회의가 끝난 뒤, 수연은 잠시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바람이 적당히 불고, 햇빛은 살짝 노을빛을 띠기 시작했다.그녀는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그러다 문득, 아래쪽에서 보이는 그림자 하나에 시선을 멈췄다.“역시 여기 있었네요.”강우혁이었다.그는 한 손에 작은 종이백을 들고 있었다.“이 시간에 대표님이 여기까지 올라오면 직원들 놀라요.”“오늘은 그냥 한 사람 만나러 왔어요.”그는 종이백을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게 뭐예요?”“점심도 못 먹었다고 해서요. 따뜻한 호빵.”그녀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호빵이요?”“이 시간엔 밥보다 이게 낫죠.”그는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너무 당연하게 나오네요.”“이젠 그럴 자격 있다고 생각해서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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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화. 너에게 닿는 순간

차수연은 오래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밤 10시가 넘은 병원은 고요했다.서류 위로 떨어지는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리고,창문 너머로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릿속에는 자꾸 한 사람의 얼굴만 맴돌았다.강우혁.그 이름 하나만으로도심장이 이상하게 조용하지 못했다.그의 손끝, 시선, 그리고 어제 건넸던 말들 모두가 지금 이 공간의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그녀는 작은 숨을 내쉬었다.“이러면 안 되는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조용히 열렸다.“이 시간까지 남아 있으면 안 된다더니.”낮은 목소리.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비에 젖은 셔츠 차림의 강우혁이 문가에 서 있었다.그의 머리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조용히 바닥을 적셨다.“퇴근했을 줄 알았는데요.”“이런 날엔 운전 안 하는 게 좋잖아요.”그는 웃으며 다가왔다.“비가 오는 날엔, 괜히 걱정돼서요.”그녀는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다가 손끝을 멈췄다.“대표님, 저는…”“그 ‘대표님’ 호칭, 오늘은 쉬는 게 어때요?”그녀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그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그 안엔 여전히 단단한 무언가가 있었다.그녀의 마음을 자꾸 끌어당기는 무게 같은 것.“수연 씨.”그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그 이름이 그의 입술을 거칠 때마다,이상하게도 세상의 소리가 멎는 듯했다.“오늘 하루는 어땠어요?”“그냥, 평범했어요.”“그 평범함이… 지금은 제일 듣기 좋네요.”그는 그녀의 책상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그리고 젖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그녀를 바라봤다.“창밖 보세요. 비가 제법 오네요.”그녀는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비가 가로등 불빛에 비쳐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그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스며들었다.“비 오는 날, 좋아하세요?”그가 물었다.“예전엔 싫어했어요. 괜히 마음이 가라앉아서.”“그럼 지금은요?”“이젠 모르겠어요.”“그럼 오늘부턴 좋아해보죠.”그녀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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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화. 달빛 아래 도착한 진심

아침 공기가 유난히 부드러웠다.밤새 내리던 비는 자취를 감추고, 도시의 거리는 갓 씻겨 나온 듯 반짝였다.차수연은 병원 앞 가로수길을 천천히 걸으며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전날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비 내리던 밤, 그의 손끝이 닿던 순간의 온기,말하지 않아도 통했던 눈빛. 그 모든 게 여전히 생생했지만,동시에 믿기 어려운 일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그녀는 조심스레 숨을 내쉬며 입술을 다물었다.이 감정이 설렘인지, 불안인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오늘은 커피가 좀 식었네요.”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차수연이 놀라 돌아보자,강우혁이 평소보다 캐주얼한 차림으로 서 있었다.하얀 셔츠 위에 얇은 가디건,어딘가 편안한 그의 모습이 낯설 만큼 자연스러웠다.“이 시간에 왜 여기에…?”“당신 출근길엔 언제나 커피 냄새가 나니까요.”“그걸 기억하고 있었어요?”“잊을 리가 없죠. 그날 이후로 그 냄새만 맡아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서.”그녀는 잠시 웃었다.“그럼 오늘도 따라오신 거예요?”“오늘은 따라온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겁니다.”그의 말에, 그녀의 걸음이 살짝 느려졌다.“같이?”“이제, 혼자 걷게 두기 싫어서요.”그 한마디에 아침 공기보다 더 따뜻한 무언가가 스며들었다.병원 엘리베이터 안, 둘 사이엔 짧은 침묵이 흘렀다.환자들이 오가며 내리는 층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둘은 잠시씩 시선을 피했다.그러다 7층에 도착했을 때, 그가 조용히 말했다.“오늘 저녁, 약속 있어요?”“없어요. 왜요?”“그럼 같이 밥 먹어요.”“또 호빵은 아니죠?”그녀가 장난스럽게 묻자, 그는 피식 웃었다.“호빵은 비 오는 날 메뉴예요.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걸로.”“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몰랐으면 벌써 물어봤겠죠.”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퇴근 후, 그는 약속대로 병원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하늘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고, 바람에는 봄의 잔향이 섞여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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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화. 그날의 바람이 다시 불 때

봄이 완전히 물들었다.병원 정원에는 벚꽃이 만개했고,나뭇가지마다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분홍빛 꽃잎이 흩날렸다.차수연은 잠깐의 점심시간을 틈타 정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손에 들린 서류철 위로 떨어지는 꽃잎을 털어내며,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요즘의 하루는 바빴다.새로운 프로젝트, 인사 이동, 그리고 무엇보다도,이제는 피할 수 없는 그와의 관계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세상 속으로 드러나고 있었다.처음엔 숨기려 했다.직장 안에서 감정이 알려지는 게 서로에게 짐이 될까 걱정돼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그 걱정보다는 이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그녀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햇살이 눈부셨다.그 순간,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오늘도 혼자 점심이에요?”그녀가 돌아보자, 강우혁이 커피 두 잔이 담긴 트레이를 들고 서 있었다.하얀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린 모습이 병원장이 아닌 한 남자의 얼굴로 다가왔다.“대표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죠.”“이제 ‘대표님’이라고 안 부르기로 했잖아요.”그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오늘은 그냥, 우혁 씨로.”“직원들이 보면 오해해요.”“오해할 만큼 우리 사이가 애매한가요?”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가 건넨 커피잔을 받아 들며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그건 아니지만…”“그럼 됐어요.”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부드럽게 웃었다.“이제 그만 눈치 보죠.”그의 단정한 말투 속에는 여전히 자신감이 있었다.하지만 그건 오만이 아니라,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향한 책임감처럼 들렸다.그날 오후,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그녀는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문득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의 뒷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그는 여전히 바쁘게 일하고 있었지만,중간중간 문을 열고 나가며 직원들에게 짧게 미소를 건네는 그 모습이,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그녀는 그 변화가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그 순간, 휴대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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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화. 노을 아래의 보폭

병원 복도에는 아침 햇살이 길게 비쳐 들어왔다.차수연은 커피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밤새 이어진 회의와 서류 검토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지만,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차분했다.아침의 공기는 상쾌했고, 무엇보다 오늘은 그가 돌아오는 날이었다.강우혁은 일주일간 학회 출장으로 해외에 나가 있었다.평소처럼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떠났지만, 그가 없는 공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그가 떠난 후, 그녀는 업무와 대화를 통해서만 하루를 채웠다.그의 목소리가 없는 하루는 이상하리만큼 길었다.“차 과장님.”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가 돌아보았다.동료 간호사 하나가 다가왔다.“오늘 대표님 오신다면서요?”“네, 오전 회의부터 참석하신대요.”“그래요? 지난번에도 학회 발표 기사 떴던데, 대단하신 분이에요. 완전 셀럽이던데요.”“그냥… 일 잘하는 사람이죠.”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렸다.하지만 그 미소 뒤로,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걸 느꼈다.오전 회의실. 문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한 사람에게 쏠렸다.검은 정장에 짙은 회색 타이, 평소보다 더 단정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강우혁.그의 눈빛은 날카롭지만 피로의 흔적이 살짝 묻어 있었다.그는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수연에게 직접 닿지 않았다.마치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그는 일에만 집중했다.하지만 그 무심한 척하는 태도 안에 어딘가 낯선 긴장이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알아챘다.그의 손끝이 연필을 돌릴 때마다 그 미세한 움직임에 마음이 흔들렸다.회의가 끝나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차 과장, 잠깐 남아요.”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회의실엔 두 사람만 남았다.그녀가 문을 닫자, 그는 잠시 말없이 서류를 덮었다.“출장 동안… 잘 지냈어요?”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어디선가 묘하게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네. 바쁘게요.”“나 없는 동안, 괜히 일만 더 늘린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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