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Bab 261 - Bab 270

293 Bab

260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벽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조심스럽게 깊어졌다.누군가의 눈을 피하느라 엇갈리던 시선이 이제는 짧은 인사, 아무렇지 않은 미소로 바뀌었다.하지만 사랑이 깊어질수록, 현실은 어딘가에서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한참 바쁜 오후,병원 내 회의가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던 차수연은 낯선 시선을 느꼈다.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둘이 요즘 너무 자주 붙어 다니지 않아?”“대표님이랑? 설마… 그런 거겠어.”“그래도 말 많던데. 출장 갔을 때도 같은 비행기 탔다잖아.”그녀는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심장이 미묘하게 조여왔다.복도 끝에 그가 서 있었다.마치 그녀를 기다린 것처럼.그의 시선은 단정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불안이 스며 있었다.“소문 들었죠.”그가 조용히 말했다.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내가 정리할게요.”“정리요?”“누가 뭐라 하든 우린 잘못한 게 없잖아요.”그녀는 그 말에 잠시 시선을 떨궜다.“맞아요. 잘못한 건 없죠. 그렇지만… 대표님은 병원장이에요. 그리고 저는…”“당신은 차수연이에요.”그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울렸다.“내가 아끼는 사람, 그게 전부예요.”그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우리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그녀는 조용히 말했다.“저는… 당신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그 말은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베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덧붙였다.“잠시, 거리를 두죠.”그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어깨가 멀어지는 동안, 그는 단 한 발짝도 따라가지 않았다.며칠 후, 병원 안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그녀는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환자를 돌봤지만,그의 시선은 자꾸만 그녀를 쫓았다.둘 사이엔 말보다 긴 침묵이 놓였다.“대표님, 커피 드릴까요?”비서의 질문에도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그 한마디에 비서가 떠나가고, 회의실 안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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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화. 세상이 마음을 흔드는 방식

아침 회진표가 새로 출력되던 순간, 병원 전체 메신저에 공지가 떴다.“내부 윤리·업무 프로세스 정기 점검 실시. 외부 감찰팀 상주 예정.”정기 점검이라는 말은 언제나 그렇듯 정기적이지 않았다.사람들의 시선은 서로의 어깨 위를 타고 넘어다녔고, 복도 끝마다 속삭임이 짧게 부서졌다.차수연은 종이의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 뒤, 고개를 들었다.창가를 스치는 바람 같은 침묵이 사무실 안을 훑고 지나갔다.“과장님, 이번 주 스케줄 다시 잡아둘까요?” 간호사 하나가 낮게 물었다.“일단 그대로 가요. 환자 일정이 먼저예요.”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손끝의 감각만큼은 달랐다.평소보다 더 또렷이, 펜의 무게가 느껴졌다.첫 번째 감찰 면담은 생각보다 간단했다.“개인 연락처를 환자 보호자 외에 병원 관계자에게 공유한 적이 있습니까?”“없습니다.”“업무 외 시간에 병원 관계자와 빈번한 만남이 있습니까?”“업무 관련 설명이나 보고가 필요할 때에 한해서만요.”질문은 정중했고, 답변은 짧았다.그러나 병원 관계자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방 안의 누구도 모르는 체하지 않았다.면담실 밖으로 나서자, 유리 벽 너머로 강우혁이 지나갔다.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둘의 시선이 어긋났다는 건, 서로가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비서가 다급히 그에게 보고했다.“대표님, 오후에 외부 기자가 미팅 요청을”“받지 마세요.”“의료 인공지능 협업 건이라며 산업부 쪽 배경도”“그럼 연구실장 회의로 전환하고, 대외 공개는 연구성과 중심으로만 합니다.개인 신상이나 사생활 연계 질문은 일절 불가.”그의 말은 평온했지만, 어조는 칼날처럼 정확했다.정오가 넘어갈 무렵, 응급실로 호출이 떨어졌다.-남성, 58세, 흉통 및 발한, 의식 혼미.응급실 문이 밀려 열리자, 환자는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혈압 70/40, 심박 128. 피부는 회색빛으로 바랬다.“심근경색? 아니면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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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화. 첫 문장을 지키는 사람들

이른 아침, 병원 로비의 공기가 평소보다 팽팽했다.기자들의 카메라 렌즈는 여전히 문을 향하고 있었고,그 안쪽에서는 감찰 2차 면담 일정표가 새로 게시되었다.차수연은 커피잔을 들고도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담담하게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창밖에는 흐린 햇빛이 병원 외벽의 유리창을 비추며 묘하게 싸늘한 반짝임을 만들고 있었다.그녀의 손끝에는 아직도 전날 환자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했다.흉골 아래로 스며들던 피의 따뜻함,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졌던 생명의 힘.그 기억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의사로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을 붙잡았다.오전 10시, 감찰팀의 두 번째 면담이 시작됐다.“차 과장님, 어제 기사 보셨습니까?”“기사요?”“병원 대표와 여성 과장의 특별한 관계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입니다.”그녀는 눈을 깜박였다.“읽지 않았습니다.”“기사가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병원 이미지에 손상이 우려되어 대표님께서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십니다.”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감찰위원이 묻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저는 병원에서 맡은 일에만 집중했습니다.그 외의 해석은… 누군가의 상상일 뿐이에요.”그녀의 말투는 단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했다.하지만 그 고요함이 더 강했다.자신의 진심에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평온이었다.위원 중 한 명이 서류를 덮었다.“대표님께서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습니다.”그녀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감찰 과정에서 대표님이 병원의 모든 외부 협업 문서에 대한 1차 결재자로 자신을 명시하셨습니다.즉, 모든 결과는 대표의 판단 하에 있었다는 선언이죠.”그녀는 눈을 감았다.그의 행동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가슴 어딘가가 서늘하게 떨렸다.점심 무렵, 병원 대회의실 앞에는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공식 입장 발표라는 현수막 아래, 강우혁은 검은 정장을 입고 단상에 섰다.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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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화. 마지막 문장을 여는 손끝

아침 공기가 유리처럼 맑았다.밤새 쏟아진 비가 먼지를 씻어냈는지, 병원 진입로의 플라타너스 잎은 새것처럼 반짝였다.차수연은 흰 가운 소매를 정리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온 소독제 향이 코끝을 스쳤고, 그녀는 그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어제 내내 몰아치던 소음이 가라앉은 듯 병동은 묘하게 조용했다.간호사 스테이션에 도착하자, 야간 근무표 위에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과장님, 712호 새벽에 흉통. 지금은 안정, 아침 회진 때 확인 부탁.”글씨 끝이 둥글었다. 밤새 깨어 있던 사람의 성실함이 남아 있었다.“712호 환자 바이탈은요?”“현재 혈압 118/72, 맥박 78, 산소포화도 98%입니다. 심전도는 특이 없었고요.다만 통증 양상이 등으로 퍼지면서 조용히 참았다고 해서… 오늘 CT 한 번 보자는 의견 나왔습니다.”“좋아요. 오전 중으로 흉부 CT 잡아두고, D-dimer 수치 확인해요.”수연의 음성은 평온했지만, 등으로 퍼지는 통증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그녀가 차트를 덮으려던 순간, 휴대폰이 미약하게 떨렸다.[우혁: 병원 앞 조용해요. 기자들 대부분 빠졌습니다.][수연: 다행이네요. 오늘 일정은요?][우혁: 오전엔 연구실 회의, 오후엔 윤리·보안 공개 세션. 어제 발표한 내용 문서로 풀어 공개하려고요.][수연: 첫 문장을 지키는 일, 어렵죠.][우혁: 어렵지만, 그게 우리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수연: 네. 응원합니다.][우혁: 응원보다 저녁에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이면 더 좋습니다.][수연: …생각해볼게요.]문자를 닫자, 입가에 짧은 웃음이 스쳤다.짧디짧은 여유가 잠깐 마음을 데웠다.오전 회진을 마치고, 그녀는 712호 앞에서 한 번 더 숨을 골랐다.문을 밀고 들어가자, 환자는 오른쪽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채 누워 있었다.“밤에 많이 아프셨다고요.”“예… 선생님. 가슴에서 시작해서 칼로 등 긋는 것처럼 쭉 뻗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괜찮습니다.”그녀는 청진기를 대고, 심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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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화. 골든아워의 동행

"좋아요. 조금만 더요.”“재관류 준비. 온도 올립니다.”인공심폐가 다시 혈액을 돌리기 시작하자,심근이 천천히 색을 되찾았다.심장 표면이 미세하게 떨리더니,모니터의 파형이 다시 그려졌다.-둔탁한 선 사이로 올라오는 첫 수축.“제세 동기 10줄. 한 번만.”짧은 전류 후, 규칙적인 율동이 피어났다.수연은 깊은 숨을 뱉었다.“리듬 회복. 출혈 컨트롤 확인 후, 폐쇄 들어갑니다.”마지막 봉합이 끝났을 때, 시계는 네 시간 반을 지나 있었다.그녀는 장갑을 벗으며 한 발 물러났다.“좋습니다. 중환자실로 이송. 프로토콜대로, 첫 여섯 시간은 혈압 엄격 관리.”수술실 문을 나오자, 피부에 붙은 땀과 납치마의 무게가 한 번에 느껴졌다.복도 끝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코트 단추가 하나 풀린 채, 손에 잡힌 종이를 쥐고 있었다.강우혁이었다.그녀가 다가가자 그가 바로 일어섰다.“잘 끝났습니다.”“…수연 씨.”그는 어색하게 말끝을 고쳐 잡았다.“괜찮으세요?”“괜찮습니다. 환자도 지금은 안정됐고요.”그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수술시간 내내, 제가 할 수 있는 건 문서 두 장 더 다듬는 것뿐이었습니다.여기선 제가 쓸모가 없더군요.”“아닙니다.”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대표님이 만든 체계가 밖에서 흔들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기 안은 훨씬 안전해집니다.”그는 서류를 내밀었다.“오후 공개 세션 자료 최종본입니다. 오늘 수술 케이스는 익명화해 대응 체계의 사례로 올렸습니다.실제 환자 정보는 단 한 줄도 노출되지 않도록 했고요.”수연은 서명을 하려다 말고 그를 올려다봤다.“이름을 지우고, 원칙을 남기는 일…그게 진실을 지키는 방법이겠죠.”“네. 이름 대신, 첫 문장을 남깁니다.”그가 미소를 기울였다.“‘살릴 수 있었다.’”잠깐의 정적이 흘렀다.그녀는 서류에 사인을 남기고 펜을 돌려주었다.손끝이 스칠 만큼 가까웠다.하지만 둘은 서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저녁에… 국물 말씀하셨죠.”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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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화. 우리가 지키는 밤

병원은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았다.수술 후 중환자실의 불빛은 다른 어느 곳보다 밝았다.모니터의 초록색 선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고,기계음이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공간을 메웠다.차수연은 수술복 위에 얇은 가운을 걸친 채 침대 곁에 앉아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파형 하나, 수치 하나에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피부 밑에서 피가 다시 따뜻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그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밤을 버틸 이유가 충분했다.수술 후 첫 여섯 시간은 언제나 가장 긴장된다.대동맥 박리는 복구가 끝났다고 해서 끝나는 병이 아니었다.혈압이 한계 이상으로 치솟는 순간, 수술 부위는 다시 터질 수 있었다.그녀는 모니터 옆에서 손끝으로 펜을 돌리며 계속 수치를 체크했다.“MAP 75 유지. 노르에피네프린 0.03으로 유지해요. 수액 속도 줄이고, 체온 36도 선 유지.”“네, 과장님.”간호사의 대답이 이어지고, 수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차트를 확인했다.이런 밤이 그녀에게는 익숙했다.하지만 오늘은 묘하게 달랐다.그녀는 환자의 모니터를 보면서도,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다른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문득,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가볍지만 망설이는 걸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유리창 너머로 검은 코트 자락이 보였다.강우혁이었다.그가 천천히 들어와 발끝을 멈췄다.조용히 중환자실 유리 앞에 서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안쪽을 바라봤다.그의 눈빛은 단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수연은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그의 얼굴은 피곤에 젖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했다.“퇴근 안 하셨네요.”그녀가 조용히 물었다.“오늘은 그럴 수가 없네요.”그는 작은 웃음을 흘렸다.“어떻게 됐습니까?”“현재 안정적이에요. 혈압도 잘 잡히고 있고, 출혈도 없습니다.”“그럼 이제 조금은… 안심해도 될까요?”그의 말끝엔, 묘하게 억눌린 감정이 섞여 있었다.하루 종일 긴장을 놓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였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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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화. 위로보다 단단한 약속

밤새 내리던 비가 완전히 그쳤다.병원의 유리창에는 여전히 물방울 자국이 남아 있었고,그 사이로 여명 같은 빛이 천천히 스며들었다.세상은 아직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에 어딘가 살아 있는 숨결이 느껴졌다.차수연은 중환자실 모니터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심박 76, 혈압 118/72, 산소포화도 99%.수치들은 마치 누군가의 손길처럼 안정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괜찮아요.”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환자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그의 가슴 위로 오르내리는 호흡이 이 새벽의 가장 확실한 생명의 증거였다.그때, 유리문 너머로 낯익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강우혁이었다.그는 여전히 정장을 입은 채, 넥타이만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밤새 돌아가지 않은 얼굴이었다.그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끝났습니까?”“이제 정말 안정기에 들어섰어요.”그녀가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한 생명을 살린 날이에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은, 병원도… 조금은 숨을 쉬겠네요.”“네.”그녀의 목소리엔 묘한 여운이 섞여 있었다.“그리고 저도요.”그는 그 말에 잠시 시선을 멈췄다.“수연 씨, 어제 밤… 당신 눈에 불빛이 반사될 때,나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란 뜻인 줄 알았습니다.”“강한 게 아니라 익숙한 거예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익숙함이 버팀목이 되니까, 무너지는 대신 그냥… 버티게 되는 거죠.”“그래도 버티는 사람은 결국 강한 사람입니다.”그의 말은 단단했지만 따뜻했다.수연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은… 언제 이렇게 사람을 흔들게 됐어요?”“사람을 살리는 걸 곁에서 오래 본 탓이죠.”“그럼 그 책임은 제 탓이네요.”“그럴 수도 있겠네요.”그가 미소를 지었다.잠깐의 정적. 서로의 웃음이 새벽 공기 속에 부드럽게 섞였다.그녀는 차트를 덮고 조용히 말했다.“잠깐 밖에 나가도 될까요? 이 병원 안에서는 숨을 쉬는 것도 일이라서요.”그는 아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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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화. 세상이 우리를 부를 때

하늘은 맑았다.며칠째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병원 앞 은행나무 가로수엔 초록빛 잎사귀가 햇살을 머금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병원 내부는 묘하게 긴장된 공기가 흘렀다.차수연이 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이미 몇몇 고위 의료진과 홍보팀 인력이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엔 신문 몇 부와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그 표지에는 낯익은 얼굴. 강우혁 병원 대표의 사진이 무거운 제목과 함께 걸려 있었다.“병원 내부 연애설… 의료윤리 위반 논란”그녀는 짧게 숨을 삼켰다.단 한 줄의 문장이,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에 충분했다.회의실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얼어붙었다.“과장님, 혹시 기자들이 병동 쪽에 접근했나요?”홍보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병원 앞에 몇 명이 진을 치고 있더군요.”그녀는 담담히 답했다.“우리 병동은 환자 안전이 우선이에요. 외부 접근은 당분간 전면 통제하세요. 환자 보호자 동선도 조정하고요.”“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과장님.”홍보팀장이 잠시 머뭇거렸다.“혹시, 대표님과의 관계에 대해”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그 시선은 단호했다.“그 이야기는 저에게 하지 마세요. 여기선 환자 얘기만 하기로 하죠.”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결의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회의가 끝나자마자, 수연은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햇살은 따뜻했지만, 마음속은 차가웠다.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뒷문이 열렸다.익숙한 발소리. 강우혁이었다.“찾을 줄 알았어요.”그가 조용히 웃으며 다가왔다.“여기서 숨 돌리는 버릇, 아직 그대로네요.”“버릇이라기보단… 도망이죠.”“도망이 필요한 사람은 잘못한 사람이 아닙니다.”“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죠.”그는 그녀 옆에 섰다.옥상 난간 너머로 내려다본 도시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멀리에서 구급차의 사이렌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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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죄

기자회견장은 숨 막힐 만큼 조용했다.수십 개의 카메라 렌즈가 한 사람을 향해 서 있었고,그 중심에 선 강우혁은 검은 양복 차림으로 단상 위에 섰다.플래시가 번쩍일 때마다 그의 얼굴이 잠시 하얗게 빛났다.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눈동자 속에는 분명한 결의가 있었다.“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그가 마이크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저와 관련된 보도들 중 상당수가 사실과 다릅니다.하지만 제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저는 병원의 대표로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얽혀 있는 사적인 문제로이 조직이 흔들리게 만든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기자석에서 카메라 셔터음이 연달아 터졌다.그러나 그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그는 고개를 들었다.“저는 어떤 부정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그 말이 회의장을 울렸다.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몇몇 기자들이 얼굴을 들었고,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그의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설명도 아니었다.그저 ‘진심의 고백’이었다.그는 이어 말했다.“그 사람은 제게 있어, 이 병원을 다시 인간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준 존재였습니다.저는 그로 인해 다시 사람을 믿게 되었고, 환자를 대하는 제 마음도 바뀌었습니다.이것이 죄라면, 그 죄는 제가 모두 지겠습니다.”그의 마지막 문장이 끝나자, 기자회견장은 일순 정적에 잠겼다.누군가의 숨소리조차 들릴 만큼의 고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마저 진심으로 보였다.같은 시각, 병원 옥상에선 차수연이 혼자 서 있었다.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그녀는 마치 그 바람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듯 난간을 꽉 붙잡고 있었다.기자회견이 중계되고 있었고, 그녀는 휴대폰으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화면 속 그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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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화. 봄이 다시 찾아오면

병원 앞 화단에 다시 꽃이 피기 시작한 건 4월의 중순이었다.겨우내 얼어붙었던 흙이 녹고, 그 위로 작은 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까지 모두가 분주했지만,그 속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가 스며 있었다.차수연은 진료차트를 들고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그녀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오랜 시간 동안 무겁게 누르던 일들이 하나둘 정리되면서 병원 안의 공기도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과장님, 이번 주말엔 꼭 쉬셔야 해요.”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어요. 이번엔 정말 약속할게요.”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사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몰랐다.그녀는 여전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멈출 줄 몰랐고,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복도를 지나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 과장.”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강우혁이었다.검은 수트를 벗고, 흰 셔츠 차림에 소매를 걷은 그는병원 이사실이 아니라 마치 현장을 누비는 사람처럼 보였다.“대표님”그녀가 입을 열려던 순간, 그가 먼저 말했다.“오늘은 ‘대표님’ 말고 그냥 우혁 씨라고 해요. 이제 공식적인 일정은 다 끝났으니까.”그녀가 살짝 웃었다.“병원 안에서도요?”“이 병원 안에서도요. 이제 나도 그냥 한 사람으로 있고 싶어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혁 씨, 오늘은 왜 여기까지 내려오셨어요?”“꽃 피었더라고요.”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작년에 봄이 왔을 땐, 우리 둘 다 제대로 보지 못했잖아요.”그 말에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맞다.그해 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폭풍 같았다.모든 게 흔들렸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닫아야 했던 시간이었다.“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네요.”그녀가 말했다.“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그래도 괜찮아요. 봄은 늘 완벽하지 않아도 오니까.”그의 말이 부드럽게 흘렀다.잠시 뒤, 그는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직접 내린 겁니다.”“이 시간에 커피요?”“당신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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