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병원 복도를 채우기 시작했다.한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물러가고,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서늘했다.낙엽이 천천히 흩날리며 병원 앞마당의 벤치 위로 내려앉았다.차수연은 잠시 걸음을 멈춰 그 벤치에 앉았다.진료 사이, 단 10분의 여유.그녀는 여전히 바빴지만, 이제는 그 바쁨이 불행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괜찮아요.’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예전에는 늘 불안과 싸워야 했다.사랑을 숨기고, 감정을 억누르고,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그의 손이, 그의 존재가, 그 불안을 천천히 녹여주었다.“이제는 조금 여유 있어 보이네요.”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강우혁이 손에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그는 여전히 단정했지만, 어딘가 예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이 시간에요?”그녀가 웃었다.“회의 있다더니.”“회의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병원장님이 들으면 서운해하시겠어요.”“괜찮아요. 그분도 당신만큼은 못 이기니까.”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그 말, 여전히 서툴러요.”“그래서 연습 중이에요.”“그 연습, 꽤 오래 가겠네요.”“좋아요. 평생 연습해도.”그는 커피를 건넸다.그녀가 컵을 받아 들자, 뜨거운 김이 얼굴 사이를 스쳤다.그 순간, 그의 눈이 그녀를 오래 바라보았다.“요즘 웃는 게 많아졌어요.”“그래요?”“네. 예전엔 늘 긴장한 얼굴이었는데.”“이젠 풀어도 되잖아요. 숨기지 않아도 되고.”“그게 참… 낯설어요.”“낯설어서 더 좋아요.”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병원 앞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그 색은 따뜻했고, 그녀의 마음도 그 색으로 천천히 번졌다.그날 오후, 회의실 문이 닫히자 직원들의 작은 박수가 퍼졌다.병원 내 새 의료봉사팀 발족식이었다.이름은 ‘수연 프로젝트’.그녀는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살짝 놀랐다.“이 이름, 누가 정했어요?”그녀가 물었다.“대표님이요.”옆에 있던 직원이 웃으며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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