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Bab 271 - Bab 280

293 Bab

270화. 오늘도 괜찮은 우리

햇살이 병원 로비를 부드럽게 감쌌다.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아침의 빛이 하얀 바닥 위로 천천히 퍼져나갔다.차수연은 출근하자마자 커피 머신 앞에 섰다.커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다.그녀의 하루는 여전히 바빴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그 바쁨마저도 싫지 않았다.“오늘은 늦었네요, 차 과장.”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강우혁이 커피잔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한 잔은 이미 그녀의 취향대로 블랙이었다.“대표님, 이제는 병원 직원들 다 알아요. 매일 저한테 커피 배달 오는 사람이라고.”그녀가 웃으며 말했다.그는 어깨를 으쓱했다.“괜찮아요. 이제 숨길 일도, 피할 일도 없으니까.”“그래도 눈치 보는 사람들 있을 텐데요.”“그럼 뭐 어때요. 이제는 내가 먼저 당당해질 차례죠.”그녀는 그 말에 잠시 웃었다.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지만,그 속엔 오랜 시간 버텨온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그녀는 잔을 받아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당신답네요, 늘.”점심 무렵, 병원 근처 공원에선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하얗고 연분홍빛의 벚꽃이 하늘을 수놓았다.그녀는 환자 상담이 끝난 뒤, 잠시 시간을 내어 그곳으로 나왔다.몇 걸음 뒤, 그가 그녀를 찾아왔다.흰 셔츠에 소매를 걷은 채, 양손에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설마 이걸 직접 싸온 건 아니죠?”“믿기 어렵겠지만, 맞아요.”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요즘은 대표님이 아니라, 도시락 장인으로 불러야겠네요.”“장인이라니, 과한 칭찬입니다.그냥… 당신이 제대로 식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녀는 피식 웃었다.“당신은 여전히 나보다 나를 더 잘 챙겨요.”“그게 제 취미니까요.”그는 담담히 대답하며 도시락을 내밀었다.도시락 속엔 단정하게 나열된 반찬들,그리고 김 위에 올려진 달걀지단이 있었다.그 위엔 작게 써놓은 글씨‘오늘도 괜찮아요’.그녀는 잠시 그 문구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여 웃었다.“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누가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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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화. 당신이 있는 아침

창가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었다.커튼 사이로 흘러든 빛이 하얀 침대 위를 천천히 덮었다.그 빛 사이로 들려오는 건, 커피 머신의 낮은 진동음과 누군가의 조용한 숨소리였다.차수연은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익숙한 향기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커피 냄새였다.그리고 그 뒤를 따라 조리 중인 팬의 은은한 버터 향.“벌써 일어나셨어요?”그녀가 거실로 나가자, 식탁 앞에서 강우혁이 조리 도구를 들고 서 있었다.하얀 셔츠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두른 그의 모습이 아침 햇살과 묘하게 어울렸다.“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나서 준비했어요.”그는 달걀 프라이를 접시에 올리며 말했다.“대표님이 아니라 요리사 같네요.”그녀가 웃자,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럼 오늘 하루는 요리사로 지낼게요.”그녀는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식탁 위에는 정갈한 토스트, 달걀,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 샐러드가 놓여 있었다.“이렇게 완벽한 아침, 오랜만이에요.”“당신 덕분이에요.이런 일상을 꿈꾼 건, 꽤 오래됐거든요.”그의 말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꿈이라니요?”“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아침을 먹는 모습. 그게 늘 상상 속에서만 있었어요.”그녀는 웃었다.“이제는 현실이에요.”“그래서 더 소중하네요.”그의 눈빛이 잠시 머물렀다.그녀는 식탁 위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우린 참 멀리 돌아왔죠.”“그 길이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이 있는 거죠.”그의 대답은 늘 그랬듯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여운이 있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병원으로 향했다.예전엔 그 길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함께 걷는 길이 되어 있었다.병원 현관을 들어서자, 직원들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그러나 그 안엔 더 이상 불편함도, 긴장도 없었다.이제는 모두가 알았다.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대표님, 오늘 회의 10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비서가 다가와 일정을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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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화. 조용히 흔들리는 중

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어느 저녁이었다.창밖에는 벚꽃잎이 마지막 힘을 내어 흩날리고,도심의 거리는 낮의 소란을 지우듯 조용해졌다.병원은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채였다.차수연은 진료실 문을 닫고, 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책상 위엔 정리되지 못한 차트 몇 장과 미처 식지 않은 커피 한 잔이 남아 있었다.“오늘도 늦었네요.”문틈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그녀가 고개를 들자 강우혁이 문에 기대 서 있었다.“대표님은 언제 또 여기까지 오셨어요?”“한참 됐죠. 당신이 고개 한 번도 안 드니까.”그녀는 시계를 봤다.“벌써 아홉 시네요.”“네. 그래서 데리러 왔습니다, 차 과장님.”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에 든 종이봉투를 흔들었다.“이건 뭐예요?”“저녁. 당신이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아서.”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이제는 제 식사 패턴까지 꿰고 계시네요.”“그럼요. 그게 저의 특기잖아요.”그가 테이블 위에 도시락을 펼쳤다.그 안엔 김밥, 샐러드, 그리고 따뜻한 국이 있었다.“이건 집에서 끓인 건데, 좀 식었을지도 몰라요.”그녀는 젓가락을 들었다.“직접요?”“직접이죠. 이제 당신을 위해 요리하는 게 내 하루의 일과가 됐어요.”그 말에 그녀는 잠시 젓가락을 멈췄다.“그럼 저는 이제… 대표님 하루의 일부네요.”그는 웃었다.“이미 오래전에 그랬죠.”식사를 마치고 병원 옥상에 올랐다.밤공기가 차가웠지만, 그 사이로 섞인 봄의 향기가 기분 좋게 감돌았다.그녀는 난간에 팔을 올리고 도시를 내려다봤다.“예전엔 이곳이 참 답답했어요. 이 불빛들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거든요.”그가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랬어요. 이 도시가 우리를 삼키는 것 같았죠.”“근데 지금은 좀 달라요.”“왜요?”“이젠… 이 불빛들이 다 따뜻해 보여요.”그는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그래요.”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 말,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요.”“그럼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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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화. 우리의 이름으로

늦은 오후,병원 앞 정원에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바람이 꽃잎을 데리고 천천히 지나갔다.그 한가운데서, 차수연은 환한 얼굴로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자, 여기까지 한 번 걸어볼까요?”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보조기구를 짚은 소년이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힘겹지만 단단한 걸음이었다.“잘하고 있어요, 민재야.”그녀의 격려에 소년은 미약하게 웃었다.그 모습을 병원 건물 안에서 지켜보던 강우혁은알 수 없는 따뜻함이 가슴 깊이 번져오는 걸 느꼈다.그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짧은 문자를 보냈다.[수연 씨, 지금 모습… 기사로 내면 안 될까요?]그녀가 화면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안 돼요. 환자들 얼굴이 다 나오잖아요.][그럼 당신 얼굴만 내요.이 병원의 가장 따뜻한 풍경이니까.][대표님, 일할 때는 그런 말 자제하기로 했잖아요.][그건 약속 안 했는데요.]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그의 말투는 언제나 담담했지만, 그 속에 숨은 감정은 누구보다 깊었다.그날 저녁,회의가 끝난 병원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직원들은 하나둘 퇴근했고, 넓은 복도에는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차수연은 진료기록을 정리하며 커다란 창가에 걸린 야경을 바라봤다.도시의 불빛이 반짝이고, 그 속에 병원 건물의 불이 유난히 또렷했다.“아직도 안 가요?”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녀가 돌아보자 강우혁이 손에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대표님도요?”“대표라서요.”“그래서 늘 마지막까지 남으시죠.”“오늘은 사심이 있어서요.”그녀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사심이요?”“당신 기다리느라요.”그의 대답은 담백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잠시 멈춘 듯 뛰었다.“오늘 발표, 잘 봤어요.”그가 말을 이었다.“환자 회복률 통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제 사람들도 알겠죠.차수연이라는 이름이 이 병원의 심장이라는 걸.”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이름이 알려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하지만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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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화. 버티는 사랑, 사는 사랑

“그래요. 이제는 당신도, 나도 숨지 않아도 되니까.”그의 손이 그녀의 손등을 감싸며 조용히 떨렸다.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닌 긴 시간 끝에 맞이한 안도의 떨림이었다.노을빛이 그들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졌다.“수연 씨.”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이제 정말 끝났네요.”“아니요.”그녀가 미소 지었다.“이제 시작이에요. 우리 이름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의 첫 장.”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벚꽃잎 한 장이 그들의 사이로 흘러내렸다.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이제, 세상에 들려줄 차례네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의 이름으로.”그날, 병원 옥상 위 노을 속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처음으로 나란히 불렸다.그것은 결심이었고, 약속이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봄이 지나가고 있었다.병원 앞 은행나무 잎은 짙은 초록빛으로 물들었고,계절은 어느새 여름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었다.새벽 6시, 병원 건물 뒤편 작은 공원에는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를 지키는 두 사람이 있었다.차수연과 강우혁. 커피를 손에 쥐고,하루의 시작을 함께 맞이하는 그들의 아침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우연도 아니었다.“오늘은 유난히 공기가 좋네요.”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당신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그의 대답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진심이 녹아 있었다.그녀는 미소를 지었다.“이젠 그런 말에 놀라지도 않아요.”“그럼 진심으로 들린다는 뜻이겠네요.”“글쎄요. 이제는 그냥… 익숙해졌어요.당신이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니까.”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그 말, 참 좋네요.”“어떤 말이요?”“‘당연하다’는 말.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생각하면,그 한마디가 제일 큰 선물 같아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햇살이 그의 옆얼굴을 스치며 부드럽게 번졌다.이제 그 얼굴에는 예전의 차가운 결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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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화. 마지막 계절

여름이 완전히 들어섰다.도시는 뜨거웠지만, 병원 앞 정원엔 여전히 바람이 불었다.그 바람 속에서, 차수연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진료복 대신 얇은 옷차림이라 그런지 그녀의 얼굴엔 오랜만의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병원 밖에서 보는 건.”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가 돌아봤다.강우혁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미소 짓고 있었다.“휴가라고 해서요.”그녀가 말했다.“병원장이 휴가를 내준 건 이 병원 역사상 처음일걸요.”“병원장이 아니라 대표님이 내준 거잖아요.”“그래요. 그 대표님이 그 여자친구 휴가도 챙겨주셨죠.”그녀는 살짝 웃었다.“정식으로 여자친구라고 부르니까 어색하네요.”“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죠?”“그냥… 수연 씨.”“그건 일할 때 부르는 말이에요.”그가 한 발 다가섰다.“이제는 좀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죠.”“예를 들어?”“사랑하는 사람.”그녀는 그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너무 진부해요.”“진부한 말이 오래 가는 법이에요.”그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손끝에 닿은 체온이 묘하게 진했다.그녀는 말없이 그의 손을 쥔 채 걸음을 옮겼다.둘의 그림자가 나란히, 한결같이 이어졌다.그들이 향한 곳은 바다였다.하늘과 맞닿은 푸른 수평선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병원 사람들 몰래 떠난 첫 여행이었다.“생각보다 조용하네요.”그녀가 바다를 보며 말했다.“사람 많은 해수욕장보다 여기가 좋죠.”“그래요. 소란스러운 곳보다,이런 곳이 당신답네요.”그가 웃었다.“그럼 당신은요?”“저요?”“당신한테 어울리는 곳.”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병원이요.”“병원?”“그래요. 내가 가장 나다운 곳이니까.”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 이상하게 위로가 되네요.”“왜요?”“당신이 그 병원에 있어서, 내가 다시 그곳을 믿을 수 있게 됐거든요.”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우리, 참 멀리 왔죠.”“멀리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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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평온을 지키는 연습

가을이 병원 복도를 채우기 시작했다.한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물러가고,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서늘했다.낙엽이 천천히 흩날리며 병원 앞마당의 벤치 위로 내려앉았다.차수연은 잠시 걸음을 멈춰 그 벤치에 앉았다.진료 사이, 단 10분의 여유.그녀는 여전히 바빴지만, 이제는 그 바쁨이 불행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괜찮아요.’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예전에는 늘 불안과 싸워야 했다.사랑을 숨기고, 감정을 억누르고,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그의 손이, 그의 존재가, 그 불안을 천천히 녹여주었다.“이제는 조금 여유 있어 보이네요.”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강우혁이 손에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그는 여전히 단정했지만, 어딘가 예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이 시간에요?”그녀가 웃었다.“회의 있다더니.”“회의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병원장님이 들으면 서운해하시겠어요.”“괜찮아요. 그분도 당신만큼은 못 이기니까.”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그 말, 여전히 서툴러요.”“그래서 연습 중이에요.”“그 연습, 꽤 오래 가겠네요.”“좋아요. 평생 연습해도.”그는 커피를 건넸다.그녀가 컵을 받아 들자, 뜨거운 김이 얼굴 사이를 스쳤다.그 순간, 그의 눈이 그녀를 오래 바라보았다.“요즘 웃는 게 많아졌어요.”“그래요?”“네. 예전엔 늘 긴장한 얼굴이었는데.”“이젠 풀어도 되잖아요. 숨기지 않아도 되고.”“그게 참… 낯설어요.”“낯설어서 더 좋아요.”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병원 앞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그 색은 따뜻했고, 그녀의 마음도 그 색으로 천천히 번졌다.그날 오후, 회의실 문이 닫히자 직원들의 작은 박수가 퍼졌다.병원 내 새 의료봉사팀 발족식이었다.이름은 ‘수연 프로젝트’.그녀는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살짝 놀랐다.“이 이름, 누가 정했어요?”그녀가 물었다.“대표님이요.”옆에 있던 직원이 웃으며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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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우리의 내일

겨울의 문턱에 병원 앞 나무들이 벌써 잎을 털어냈다.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병원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따뜻했다.그 빛 속에서, 차수연은 여전히 하루의 마지막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죠.”그녀가 환자의 팔을 살피며 말했다.“내일은 통증이 조금 줄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오랜 시간 동안 환자의 고통을 지켜봐 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온도였다.환자가 고맙다고 인사하며 나가자, 그녀는 살짝 숨을 내쉬었다.긴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그러나 그 하루가 무겁지 않았다.병원 복도 끝, 유리문 너머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또 늦었네요.”강우혁이 그녀에게 걸어왔다.“대표님은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내가 퇴근하면 당신도 따라 나올 것 같아서요.”그의 대답에 그녀는 웃었다.“그럼 내일은 내가 먼저 갈게요.”“그럼 난 내일 더 늦게 퇴근하겠네요.”“그게 말이 돼요?”“당신이 늦게 가는 게 싫으니까요.”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그의 이런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우면서도, 속에 숨은 감정은 언제나 명확했다.그녀가 손끝으로 가운 단추를 매만지며 말했다.“이제 병원에서는 그런 말 자제하세요. 다 들리겠어요.”“이제 다 아는 일 아닌가요?”“그래도요.”“그래도 난 당신을 숨기고 싶지 않아요.”그의 눈빛이 조용했지만 깊었다.그녀는 한순간, 그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숨기고 싶지 않다.’그 말이, 오래된 마음의 문을 천천히 닫아주었다.며칠 후, 병원은 송년 준비로 분주했다.직원들 사이엔 웃음이 오갔고,차수연은 그런 풍경을 멀찍이서 바라봤다.그녀의 손엔 작년 송년회 때 찍은 단체 사진이 있었다.그때의 자신은 어딘가 경직된 얼굴이었다.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닫혀 있었다.“그때 표정 별로였어요.”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강우혁이 서 있었다.그는 사진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지금은 훨씬 자연스럽네요.”“자연스럽다니요?”“이제 웃을 때 눈이 먼저 웃어요.”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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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화. 당신이라는 계절

봄은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이번 봄은 이전의 어느 해보다도 잔잔했다.도시는 변함없이 분주했지만, 그들의 하루는 느리게, 그리고 단단하게 흘렀다.차수연은 병원 근처의 작은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한 손엔 따뜻한 커피, 다른 손엔 차트가 들려 있었다.진료 시간 전의 짧은 공백 속에서도 그녀는 늘 환자의 기록을 정리했다.그 버릇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표정이 다르게 보였다.창밖을 스치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그 순간, 유리문이 열리고 익숙한 발소리가 다가왔다.“여기 있었네요.”강우혁이었다.그는 언제나처럼 단정했지만, 요즘엔 이전보다 여유가 묻어났다.예전 같았으면 바쁜 전화를 받으며 들어왔겠지만, 이제는 한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이건 뭐예요?”그녀가 물었다.“봄이니까요.”“꽃을요?”“봄을요.”그는 짧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요즘, 당신이 너무 바쁘대요.”“누가요?”“간호사들이요. 차 과장님은 여전히 환자보다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고.”“그건 그 사람들이 내 일정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요.”“그래서 말인데,”그가 그녀를 바라봤다.“이번엔 나랑 같이 휴가 갑시다.”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휴가요?”“네. 이번엔 내가 아니라, 당신 차례예요.”“내 차례요?”“지난번엔 내가 쉬었잖아요. 이번엔 당신이 나랑 쉬는 거예요.”그녀는 웃었다.“쉬는 것도 순서가 있나요?”“그럼요. 그리고 이번엔 진짜 쉼이에요. 일 얘기 금지, 병원 생각 금지.”“그럼 뭘 해야 하죠?”“그냥… 당신이 있는 곳을 보고 싶어요.”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말엔 꾸밈이 없었다.그저, ‘그녀’라는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진심이 느껴졌다.“알겠어요. 이번 한 번만이에요.”“그 한 번이 평생이면 좋겠네요.”그녀는 대답 대신 커피잔을 들어 웃었다.며칠 뒤, 그들은 도시를 벗어나 작은 해안 마을에 도착했다.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그리고 저 멀리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봄의 냄새와 섞여 있었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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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화. 기억의 끝에서 너를 보다

겨울이 지나고, 도시엔 다시 봄의 냄새가 스며들었다.사람들은 두꺼운 코트를 벗고,따뜻한 바람을 맞이하듯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거리를 걸었다.그러나, 그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차수연.그녀의 책상 위에는 아직도 모래시계가 놓여 있었다.금빛 모래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흘렀지만,그걸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멈춰 있었다.강우혁이 학회로 떠난 지 벌써 석 달.처음엔 매일같이 연락이 오던 메시지가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그마저도 짧은 인사로 바뀌어 있었다.“괜찮아요.”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이건 자연스러운 거야. 서로의 일상이 있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하지만 가슴 한켠이 묘하게 허전했다.그가 보낸 사진 속 해외 병원의 풍경,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그리고 그가 흘려 쓴 ‘보고 싶어요’라는 한 문장조차 이제는 다소 멀게 느껴졌다.그날은 퇴근 후, 유난히 비가 내렸다.그녀는 우산을 들고 병원 앞에 섰다.비 냄새 속에서 익숙한 향이 떠올랐다.그의 향수 냄새였다.묘하게 그리운 향.휴대폰 화면을 켜니 미발신 메시지 한 통이 있었다.[우혁: 오늘은 비가 오네요. 거기서도 내리고 있죠?]시간은 새벽 두 시. 그가 보낸 시차의 밤.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보내려다 멈췄다.문자보다 더 오래 머무는 침묵이 지금의 그녀에게는 더 진심 같았다.“대표님이 아니라…”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이젠 그냥, 우혁 씨.”그 이름이 입술을 맴돌 때마다 그리움이 천천히 흘러내렸다.며칠 뒤, 병원 로비에 낯익은 그림자가 들어섰다.출장에서 돌아온 강우혁이었다.그는 여전히 단정했고, 그러나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예전보다 말이 적었고, 웃을 때에도 눈가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그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며 천천히 차수연을 향해 다가왔다.“오랜만이네요.”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생각보다 빨리 왔어요.”“그래요. 그쪽 시간이 멈춰 있을까 봐요.”그 말에 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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