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31 - Chapitre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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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심장이 기억하는 이름

밤공기는 평소와 달리 유난히 눅눅하고 무거웠다. 창밖에서는 봄비가 흩날리며 유리창에 부딪혀 작은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오피스텔 내부는 조용했지만, 그 고요가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졌다.수연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눈은 글자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검찰 조사에서 들었던 차가운 목소리, 기자들이 던진 날 선 질문, 그리고 ‘의사 면허 박탈’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무심코 물잔을 손에 쥐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온몸이 낯선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그때, 부엌에서 갑작스럽게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지는 둔탁한 충격음.수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히 몸을 돌려 부엌으로 달려갔다.“대표님!”바닥에는 흩어진 유리 조각 사이로 우혁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였다.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변해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안 돼…!” 수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녀는 당황할 새도 없이 곧장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맥을 짚자, 희미하고 끊어질 듯한 맥박이 손끝에 닿았다. 호흡은 불규칙했고, 금세 멎을 것 같았다.기억은 사라졌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수연은 주저하지 않았다.“대표님, 제발 버텨줘요…”그녀는 우혁을 바닥에 눕히고, 양손을 포갠 채 그의 흉부 중앙에 정확히 위치시켰다. 심장이 있는 지점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압박 시작.” 그녀는 속삭이듯 말하고, 곧 압박을 시작했다.한 번, 두 번, 세 번… 리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일정한 간격으로 힘을 주었다. 압박이 가슴뼈를 눌러 갈 때마다 갈비뼈 아래에서작은 반동이 느껴졌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30회 압박 후, 2회의 인공호흡.’머릿속 어딘가에서 숫자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마치 오랜 세월 몸에 새겨진 공식처럼.수연은 곧장 고개를 들어 우혁의 기도를 확보했다. 머리를 젖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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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지워지지 않는 흔적, 터져 나온 고백

그녀는 약 상자를 뒤져 짧게 망설였다. 기억은 여전히 불완전했지만, 약물 이름들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저용량 베타차단제를 꺼내 캡슐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물과 함께 내밀었다.“이건…?”“심박과 산소, 혈압이 안정적인 상태에서만 소량. 지금은 적응반응을 볼 겁니다. 부작용 있으면 바로 뱉고요.”“네. 의사 선생님.”그가 ‘의사’라는 단어를 또렷하게 발음하는 순간, 수연의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졌다.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이름이, 그에게는 이미 확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약을 삼킨 우혁이 머리맡 베개를 조금 낮췄다. 수연이 담요 모서리를 가지런히 접어 그의 겨드랑이 아래로 끼워 넣자, 그가 낮게 웃었다. “이렇게까지 해주면, 버릇 나빠질 텐데요.”“오늘만입니다.”“그럼 내일도 오늘이면 좋겠네요.”“강우혁 씨.”그녀가 이름을 부르는 톤에 장난은 멈췄다.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지현’이라는 이름이 스쳤다. 메시지는 짧았다.“속초 내려간 기자들 움직입니다. 조심하세요.”뒤이어 또 다른 알림. 우혁이 추적하던 병원 전산 담당자에게서였다.“외부 접속 계정, 사용자 추정치 좁혔습니다. 전화 가능하신가요.”“일단, 심전도는 안정.” 수연이 모니터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대표님, 잠깐 전화 좀 받아도 될까요? 옆에서 들으셔도 돼요.”“하세요. 어차피 우리 싸움입니다.”스피커폰을 켰다. 전산 담당자는 숨을 고르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접속 IP와 디바이스 고유번호 매칭했습니다. 병원 내부 관리자 권한, 명의는 우회됐지만 물리 단말은 확인. 사용자는… 은주 간호사로 좁혀집니다.”수연의 손끝이 얼어붙었다. “그녀가… 직접?”“아니요. 그 단말로 원격 접속 트리거가 걸렸어요. 타이핑 패턴도 로그에 일부 남았습니다. 은주 씨가 주 사용자가 맞지만, 그 시간대 입력 습관은… 다른 사람입니다.”“누군지 특정 가능해요?”“아직은 아니고요. 하지만 관리자단 콘솔에서만 접근 가능한 메뉴를 클릭했고, 권한 상승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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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무너지는 벽

창고 앞에 경찰차가 도착했을 때, 싸늘한 새벽 공기에는 아직도 긴장감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은주는 경찰의 보호 아래 가방을 넘겨주었다. 서류철과 USB, 그리고 복제 계정 카드까지.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두 눈은 불안에 잠식된 채였다.“선생님, 약속 지켰어요. 하지만… 전 이제 끝났습니다.”“은주 씨,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수연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건 시작이에요.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은주는 고개를 저었다. “도혁 과장은… 그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전 이미….”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경찰이 그녀를 데리고 떠나자, 현장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수연은 남겨진 서류와 USB를 품에 안은 채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창문 밖으론 아침 햇살이 힘겹게 구름을 뚫고 들어왔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짙은 그림자에 휩싸여 있었다.“대표님, 지금은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이 자료를 바로 확인해야 합니다.” 우혁은 창백한 얼굴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심장이 간신히 안정된 상태예요. 또 무리하면…”“차수연.” 그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낮아졌다. “이 싸움은 나 혼자서도, 당신 혼자서도 끝낼 수 없습니다.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무너집니다.”그 말에 수연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약한 순간에도 굽히지 않았다.그 강인함이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서류를 펼쳤다. 컴퓨터에 USB를 꽂자, 암호화된 파일들이 나열되었다. 다행히 은주가 비밀번호 힌트를 메모해 두었고, 수연이 몇 번의 시도 끝에 풀어냈다.화면에 뜬 첫 문서는 차트 변조 기록이었다. 접속 일시, 사용자 계정, 변경된 항목. 환자의 심전도 수치, 폐 기능 검사 결과, 혈액검사 수치가 교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수연이 담당했던 환자와 정확히 일치했다.“이건…” 수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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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가장 뜨거운 곳에서 울린 심장 소리

노트북 화면이 꺼지고, 외장 하드에 증거가 고스란히 남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수연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도혁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이걸 바로 병원 이사회에 제출하면 어떨까요?” 수연이 물었다.우혁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지금 바로 내밀면, 도혁이 움직입니다. 증거 인멸을 넘어서, 당신을 완전히 제거하려 할 겁니다. 기사도 쏟아질 거고요.”“그럼 기다리자는 건가요?”“아니요. 준비를 더 해야 합니다. 은주 씨가 넘긴 자료만으론 부족합니다. 원본 서버 기록이 필요해요.”수연은 그의 단호한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원본 서버. 그것은 곧 병원 심장부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수연의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강원도 산불 지역 의료 봉사 요청. 의료진 인력 지원 필요.” 병원 동기 중 한 명이 단체 메신저에 올린 글이었다.“이런 상황에 봉사라니…” 수연이 중얼거리자, 우혁이 화면을 같이 보았다.“환자가 몰리면 언론도 모입니다. 당신이 직접 환자를 살리는 장면이 보도된다면, 지금껏 도혁이 덮어씌운 낙인은 조금씩 흔들릴 겁니다.”그 말에 수연은 잠시 숨을 멈췄다. 기억을 잃고 병원에서 쫓겨난 자신이 다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이 뛰었다. 사람을 살리던 그 순간의 떨림이 다시 느껴지고 싶었다.“가겠어요.”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우혁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좋습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오후, 산불 피해로 붉게 그을린 체육관이 임시 진료소로 꾸려져 있었다. 수십 명의 환자들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고, 연기와 먼지를 들이마신 아이들이 기침을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수연은 잠깐 숨을 고르더니, 바로 팔을 걷어붙였다. 옆에 있던 한 봉사 의사가 소스라치듯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차수연? 설마 진짜…?”“환자부터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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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심장을 겨누는 음모

밤이 내려앉은 병원 본관 앞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고, “차수연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연신 날아들었다. 그 중심에 민도혁이 서 있었다. 완벽하게 맞춘 수트 차림, 눈썹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 그는 마치 자신이 정의의 대변자인 듯 미소를 지었다.“차수연 교수는 불과 몇 달 전, 환자를 수술 도중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오늘 봉사 현장에서 잠시 보여준 행동은 그 죄를 덮기 위한 쇼에 불과합니다. 병원은 의료사고를 저지른 자를 두 번 다시 수술실에 세울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메모를 적었고,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의 치밀한 계산은 여론을 자신 쪽으로 몰아가는 데 능숙했다.그 시각, 속초 오피스텔.수연은 노트북 화면으로 그 기자회견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혁의 단정한 얼굴과 날카로운 언어가 화면을 채울 때마다 그녀의 손끝은 점점 굳어갔다.“저 사람은…” 목소리가 떨렸다. “저 사람은 끝까지 날 파괴하려고 해.”옆에 앉아 있던 우혁이 곧장 노트북을 닫았다. “지금 그의 말을 들을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뭘 갖고 있는가입니다.”“하지만… 여론은 이미…”“여론은 금방 바뀝니다. 진실이 드러나면.”우혁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지만, 수연은 여전히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세상의 손가락질이 다시 날아올까 두려웠다.“대표님… 전 자신이 없어요. 혹시라도… 또 실패하면…”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힘없이 꺾였다.우혁은 곧장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날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실패한 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함정에 빠뜨린 그 사람입니다.”수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이 그녀의 무너진 내면을 조금씩 지탱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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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병원 이사회 회의실.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아래, 길게 이어진 테이블 주위로 임원들이 앉아 있었다. 공기는 잔뜩 팽팽했고, 바깥에서는 여전히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벽 너머로 스며들었다.민도혁은 의자에 기댄 채 차갑게 미소 지었다.“이사회는 증거 없는 억측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차수연 교수의 복귀 문제는 이미 끝난 이야기예요. 오늘은 그를 공식적으로 제명하고, 면허 취소까지 권고할 겁니다.”임원들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미 도혁의 손에 쥐어진 표가 많다는 뜻이었다.그러나 그 순간, 회의실 문이 열리며 은주가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두 눈만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손에는 두툼한 서류철과 외장 하드가 들려 있었다.“제가 증명하겠습니다.”회의실 공기가 일순 흔들렸다. 임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은주에게 쏠렸고, 도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짧은 순간 그의 눈빛에 분노가 번쩍 스쳤다.“간호사 은주 씨, 당신이 뭘 안다고 이 자리에”“제가 직접 조작을 도왔습니다.” 은주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하지만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 지시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환자의 차트를 바꾸라는 명령, 그것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여기 다 있습니다.”서류철이 테이블 위에 놓이는 순간, 종이들이 흩날리며 긴장된 공기가 더 짙어졌다.수연은 숨을 삼키며 은주를 바라봤다. 그토록 자신을 증오하던 여자가, 이제는 구원자가 되어 서 있었다. 은주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어갔다.“차수연 교수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그날, 정상 수치가 조작되는 걸 제 손으로 봤어요. 제 계정이 이용됐지만, 키보드에 입력된 건 제가 아닙니다. 관리자 권한이 있었던 사람만 가능한 일이었죠.”모든 시선이 도혁을 향했다.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턱선을 감추지 못했다.“허튼소리입니다. 두려움에 빠진 간호사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죠.”우혁이 곧장 노트북을 켰다. 스크린에 접속 로그가 크게 띄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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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어둠의 손길, 불붙는 마음

이사회가 끝난 뒤에도 병원 복도는 쉽게 조용해지지 않았다. 은주의 증언과 수연의 응급처치로 분위기는 크게 뒤집혔지만, 도혁은 여전히 당당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한 채 검은 차에 올라탔다. 창문이 올라가는 순간, 짧게 흘린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은 칼날 같았다.“차수연… 끝까지 버틴다고 달라질 것 같아?”그의 목소리는 차 안에만 맴돌았지만, 이미 음모는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밤이 깊어질 무렵, 도혁은 한 사무실에 들어섰다. 병원 전산팀 일부가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전산실 특유의 푸른 불빛 아래, 사람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땀에 젖어 있었다.“오늘 같은 실수,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됩니다.”“과장님, 이미 로그는 노출됐습니다. 더 손을 대면…”“그러니까 더 치밀하게 만들어야지. 이번엔 증거 자체를 가짜로 조작해. 차수연이 내밀었던 그 자료, 그걸 오히려 위조로 몰아붙일 수 있도록.”도혁의 눈빛이 번뜩였다.“그 여자는 단순히 의사로 복귀하는 게 목적이 아니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웅처럼 자리 잡는 걸 막아야지. 그렇게 되면 내가 설 자리는 없어.”그 순간, 사무실 공기는 얼음장처럼 식었다. 전산팀 직원들은 고개를 떨구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누군가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도혁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한편, 속초 오피스텔.수연은 창가에 서 있었다. 네온사인이 꺼지고, 가로등 불빛만 남은 도시의 밤은 낯설게 고요했다. 그녀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낮에 있었던 장면들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던 순간, 심전도가 다시 살아나는 그 장면, 모두가 숨죽인 채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 분명히 자신은 의사였다. 그 순간만큼은, 잃었던 기억도 두려움도 사라지고, 오로지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이게… 나야.”조용히 중얼거린 말이 유리에 맺혀 번졌다.뒤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혁이었다. 그는 아직 셔츠 차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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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메스를 잡은 이유

이른 아침, 속초의 거리는 바닷바람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바람보다 더 차가운 소식이 전국을 흔들고 있었다. 뉴스 채널마다 같은 자막이 떠올랐다.“천재 의사 차수연, 환자 사망 은폐 정황 드러나”기자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본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차수연 교수는 지난 의료사고 당시 환자의 실제 상태를 은폐하고, 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병원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그녀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한 시도였다고”뉴스 속 화면에는 조작된 서류 사진과 함께 익명의 제보자 인터뷰가 흐르고 있었다. 목소리는 변조되어 있었지만, 은주가 아니면 누군가 내부인이었다. 수연의 얼굴이 크게 잡힌 과거 영상까지 함께 재생되자, 화면은 마치 그녀를 범죄자처럼 몰아붙이고 있었다.오피스텔 거실.수연은 리모컨을 손에 쥔 채 굳어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숨소리는 고르지 않았다.“이건… 거짓말이에요. 제가 저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우혁은 조용히 리모컨을 빼앗아 화면을 꺼버렸다. 그러나 수연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다시 시작됐네요. 제가 아무리 환자를 살려도, 사람들은 저런 걸 믿을 거예요. 이미 마음을 닫았을 테니까.”우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단단히 말했다.“그렇다면 보여주면 됩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 아니라 눈으로.”“어떻게요?”“환자를 살리면 됩니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때 당신이 보여준다면, 어떤 거짓말도 힘을 잃습니다.”수연의 가슴은 먹먹하게 조여 왔다.그는 단순히 위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돌파할 길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은 다시 수술실에 서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며칠 후, 병원 응급실.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중증 환자들이 한꺼번에 실려 들어왔다. 혈액이 바닥에 튀고, 긴급 호출음이 연이어 울렸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며 혼란을 수습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흉부 대동맥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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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환영과 의혹, 교차된 시선

수술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한동안 조용히 서 있던 수연은 두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손끝에 남아 있던 따뜻한 체온과 피의 무게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한 환자의 얼굴이 떠올라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곧장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카메라 플래시, 기자들의 질문, 눈앞에 들이대는 마이크. 그 모든 것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연은 복도 끝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고, 눈가가 아리게 시렸다.“교수님.”뒤에서 다가온 우혁의 목소리에 그녀는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는 수술복을 입은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따뜻한 온기가 복잡한 감정을 조금은 진정시켰다.“당신은 환자를 살렸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다른 건 부차적인 겁니다.”“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겠죠. 오늘도 기자들은 제가 쇼를 한 거라 말할 거예요.”“쇼라면, 가장 아름다운 쇼였겠죠. 죽어가던 심장이 다시 뛰었으니까.”그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수연은 잠시 그 말에 기대어 서 있었다.그날 오후, 뉴스는 다시 요동쳤다.한쪽에서는 “천재 의사, 환자 살려내다” 라는 헤드라인이 떠올랐고, 다른 쪽에서는 “은폐 의혹 여전, 보여주기식 수술” 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기자는 대담하게 말했다.“오늘 차수연 교수가 긴급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진짜 의도가 환자를 살리는 데 있었는지, 아니면 여론을 돌리기 위한 것인지, 그 판단은 아직”오피스텔에서 뉴스를 보던 수연은 눈을 감았다. 목 안이 타들어 가는 듯했지만, 반박할 힘조차 나지 않았다.우혁은 그녀 옆에 앉아 조용히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꺼버렸다.“언론은 언제나 양면을 가집니다. 진실을 보려는 자와, 왜곡하려는 자.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니라 당신 자신입니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우혁의 얼굴에는 단단한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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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

아침 공기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병원 로비는 기자들의 카메라로 빛났고, 복도는 환자와 보호자의 불안한 시선으로 가득했다.“오늘 오전 11시, 흉부외과 윤리위원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이미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 있었다. 주제는 단 하나, 차수연의 자격 박탈 여부였다.오피스텔에서 기사를 확인한 수연은 천천히 신문을 접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대표님, 결국 윤리위까지 가는군요.”“예상했던 수순입니다.” 우혁은 차분히 대답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은주 씨의 증언도 있고, 우리가 모아둔 증거도 있습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증거보다 중요한 건 환자죠. 제가 살린 생명들이 더 큰 목소리가 될 수 있을까요?”“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만들면 되죠.”윤리위원회 회의실.커다란 원형 테이블 주위로 위원들이 둘러앉았다. 각자의 손에는 두꺼운 서류철이 놓여 있었고, 공기는 무겁게 눌려 있었다. 정면에는 도혁이 앉아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연과 우혁이 나란히 자리했다.위원장이 입을 열었다.“차수연 교수, 귀하는 의료사고 은폐와 규정 위반 수술 논란으로 윤리위에 회부되었습니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시겠습니까?”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숨이 막히는 듯했지만, 수연은 곧장 눈을 들었다.“저는 단 한 번도 환자를 의도적으로 해친 적이 없습니다. 기록 조작 역시 제 손으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도 압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제게 남은 건 단 하나,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일뿐입니다.”그 목소리는 떨렸지만 또렷했다. 위원들 중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이는 여전히 냉정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그 순간, 도혁이 비웃음을 흘렸다.“환자의 생명을 지킨다고? 멋진 말이군. 하지만 오늘 당신이 살린 그 환자, 규정을 어기고 수술에 들어갔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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