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Bab 51 - Bab 60

256 Bab

51화. 기록은 기억을 이기는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응급호출음이 한 번 울리고 끊겼다. 뒤이어 더 급한 톤으로 두 번, 세 번. 인공심박기 알람과 겹쳐 소리가 엇박자로 복도를 찢었다.“소아응급! 다발성 외상, 흉부 타격 의심! 집도의 호출!”전달음은 짧고 선명했다. 수연의 얼굴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그녀는 흰 코트를 의자 위에 던져두고 복도를 내달렸다.소아응급실은 이미 작은 소란으로 들끓고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들것 위에서 희미하게 몸을 떨었고, 보호자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청진기의 차가운 금속이 피부 위에 닿자 아이의 숨은 더 얕아졌다.“산소 마스크, 사이즈 작은 거. 포화도 떨어지는 중이에요. 흉부 X-ray 곧장, 혈액 가스 채혈 들어갑니다.”간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잡는 사이, 수연은 손끝으로 늑골 라인을 따라 압통을 확인했다. 손상 부위가 좁지 않았다. 깊은 호흡을 요구하자 아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기흉 가능성 높습니다. 흉관 삽입 준비.”“마취는” 레지던트가 묻자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국소로 충분합니다. 시간 없어요. 흉부 전벽, 삼각지점 잡고… 여긴 제가.”손이 들어가고, 금속이 살을 벌렸다. 짧은 신음 뒤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스스’하고 새어 나왔다. 모니터 파형이 조금씩 안정되며 포화도가 회복선을 그리기 시작했다.“좋아요. 더 깊이 가지 마세요. 흉관 고정.”보호자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지만, 수연은 차분함을 놓지 않았다.“지금부터는 시간이 도와줄 겁니다. 저는 옆방 환자 확인하고 곧 돌아올게요.”그녀가 장갑을 벗는 순간, 의무기록실 쪽 복도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전산팀장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이들과 설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카메라를 든 누군가가 뒤섞여 들어왔다. 불청객이었다. 재킷 깃에 달린 보도기관 배지가 번쩍였다.“촬영은 불가합니다.” 수연이 외투 소매로 입구를 막아섰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없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건 인권침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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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끊어진 말과 남겨진 흔적

병원 복도의 공기는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음에도 여전히 무거웠다.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은 하얀 벽을 타고 흘렀지만, 지난밤부터 이어진 긴장감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수연은 회복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섰다. 환자 곁을 지키던 은주가 눈을 들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박준호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눈꺼풀이 느리게 움직이며 깨어나고 있었다. 얇은 호흡음 사이로 목이 잠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교…수님….”수연은 곧장 그의 손을 잡았다.“준호 씨,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지금 중요한 건 안정입니다.”그는 고개를 미약하게 저었다. 떨리는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힘겹게 이어졌다.“그날… 차트를… 바꾼 사람….”말끝이 갈라지며 숨이 끊어질 듯 이어졌다. 수연의 손끝이 떨렸다. “누굽니까? 끝까지 말씀하세요.”“민….”그 짧은 음절이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모니터가 경고음을 울렸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고,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다. 간호사들이 즉시 달려와 산소 공급을 조정했다.“혈압 60 밑으로 떨어집니다!”“혈액 공급량 늘려!”수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한 번 진실은 눈앞에서 끊어졌다.환자의 몸은 겨우 안정됐지만, 준호는 다시 의식을 잃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복도를 나서자 우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녀의 표정을 읽듯 바라보다가 서류철을 내밀었다.“전산팀에서 로그를 추출했습니다. 원격 접속 흔적, 당신 계정에서 확인됐어요.”수연은 서류를 훑었다. 낯익은 시간대, 그녀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내가 수술 중일 때라면… 누군가 고의로 제 계정을 사용했다는 뜻이죠.”“맞습니다.”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속 경로가 병원 내부 네트워크에서 시작됐습니다. 위치 추적이 가능해요. 전산실 단말기 몇 대 중 하나일 겁니다.”그녀는 숨을 깊게 내쉬며 종이를 내려놓았다.“도혁… 그 사람이 직접 움직였거나, 내부에서 손을 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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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15분의 공백, 사라진 라벨

눈이 한 번 더 새벽빛에 익을 즈음, 병원 전체가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복도 벽에 걸린 시계는 분침을 아주 조금씩만 움직였고, 그 미세한 소리마저 유리창 너머로 번지는 엷은 햇살에 묻혔다. 차수연은 회복실 앞 의자에 앉지 못한 채, 문손잡이를 한 번, 또 한 번 손끝으로 건드렸다. 안쪽 침상에 누운 박준호의 호흡은 아직 일정했지만, 그녀에게 그 규칙은 겨우 붙잡은 줄 하나 같았다.의무기록실에서 서류를 들고 온 우혁이 숨을 고르고 섰다. 얇은 종이의 모서리가 그의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전산팀이 추적한 원격 접속 경로, 특정됐습니다. 위치는 흉부외과 스테이션 안쪽 단말기. 심야 시간대에 세 번, 그리고 어젯밤 한 번 더.”그가 페이지를 넘겨 보이며 덧붙였다. “RFID 인증값이 당신 카드로 찍혔습니다. 복제된 겁니다.”수연은 짧게 눈을 감았다 뜨며 페이지 가장자리를 훑었다. 종이 위 인쇄가 아닌, 밤새 환자에게서 떨어져 있던 시간의 그림자가 그녀를 찔렀다.“기록을 바꾸는 습관이 있는 손이야. 망설임이 없어. 누가 ‘치료의 속도’를 이유로 들어 익숙하게 무시해 온 절차들….”말끝이 공중에서 맴도는 사이, 회복실 문이 아주 살짝 벌어졌다. 은주가 어깨를 들이밀었다.“교수님, 환자 의식 돌아오는 중이에요. 깨면… 오늘은 조금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세 사람의 시선이 얇은 문틈으로 동시에 스며들었다. 침상 위, 준호의 눈꺼풀이 물 위의 잎처럼 느리게 떨렸다. 수연은 장갑도 끼지 않은 민손으로 침대 난간을 잡고 허리를 기울였다.“무리하지 말고요. 숨부터 고르세요.”그의 입술이 마른 종이처럼 달싹였다.“그날… 차트… 바꾼 사람….”천장의 조명이 가볍게 반짝였다.“민”그 음절이 떨어지는 순간, 벽면 모니터의 포화도 수치가 갑자기 내려앉았다. 알람음이 얇게 쓰르륵 긁혔다.“포화도 84로 하락!”은주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산소 라인 점검!”수연은 한 손으로 산소마스크 위치를 바로잡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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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복제된 권한, 가려진 진실

그때 전산팀장이 화면을 확대했다.“그리고 이건… 흉부외과 과장실 옆 보조 저장고 출입 로그. 야간에 두 번 열렸습니다. RFID는”그가 멈칫했다. 스크린에 뜬 이름을 보고 눈동자가 흔들렸다.“차수연.”순간 방 안 공기가 꺼지는 듯했다. 수연이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제가 그 시간에 수술실에 있던 건 모두 압니다. 복제 카드군요.”우혁이 전산팀장을 대신해 덧붙였다. ‘그리고 복제된 카드는 보통 원본 카드에 아주 근접해야만 복제됩니다. 스테이션에서”그는 말을 멈추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당신 곁.”은주가 고개를 들었다.“교수님 카드, 어젯밤 잠깐 제가 받았어요. 약제카트 열려고. 그때 옆에 누가”그녀의 눈동자가 초점 없이 떨렸다. “죄송합니다. 기억이 흐려요. 그때 벨이 울리고, 기자들이 몰려오고, 전산팀하고 말다툼이….”수연이 은주의 어깨를 짧게 잡았다.“그 순간을 기억해내려고 하지 마요. 대신 절차를 강화하면 됩니다. 더는 빼앗기지 않게.”해가 옆으로 기울자 응급동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났다. 환자 침상 사이로 바퀴 달린 수술대가 지나가고, 그 뒤를 따라 베개 높이를 조절하는 간호사의 손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수연은 손을 씻는 동안 물줄기가 손등의 피 냄새를 씻어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마스크 위의 눈이 밤새 운 사람처럼 붉었다.수술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거즈를 건넸다. 우혁이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닦아내고, 손가락 마디 사이에 고인 물을 타월 끝으로 흡수시켰다.“이런 걸 내가 한다고 덜 힘들어지는 건 아니겠지만.”그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그래도 당신 손이 따뜻해질 때까지는 옆에 있고 싶습니다.”수연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거즈가 손끝을 스쳐 지나가는 느린 감각이 이상하게 가슴을 저렸다. 한참만에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다섯 해 전, 유리문에 매달려 있던 목소리를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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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흔들리는 증언

병원 창밖으로 저녁이 내려앉자, 유리벽에 걸린 노을빛이 복도 바닥까지 길게 드리웠다. 하루 종일 소독약과 기계음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했으나, 그 고요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차수연은 회복실 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침대 위 환자에게 머물러 있었고, 손끝은 아직 따뜻하지 못한 그의 손바닥을 느릿하게 감싸고 있었다.박준호의 눈은 조금 더 또렷해지고 있었지만, 입술은 여전히 단어 하나를 꺼내는 데조차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수연은 미간을 좁히며 낮게 속삭였다."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글자를 이어 적는 것만으로 충분해요.”종이 위에는 ‘ㅁ ㅣ ㄴ’이라는 초성이 여전히 멈춰 있었다. 환자의 손이 볼펜을 움켜쥐고 다시 움직였을 때, 문밖에서 구두굽 소리가 길게 메아리쳤다. 수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문틈 너머 복도는 비어 있었다.그 순간, 준호의 손끝이 종이에 흔들리며 새로운 획을 남겼다. ‘ㄷ’. 은주가 옆에서 숨을 삼켰다.“민… 도”입술 사이로 나온 단어가 끝나기도 전에 모니터가 경고음을 내뱉었다.“심박수 불규칙. V-tach.”수연은 번개처럼 움직였다. 심전도 파형이 급격히 요동쳤다. 그녀는 제세동 패드를 환자의 흉부에 붙이며 차갑게 지시했다.“200줄 충격. 모두 떨어져.”짧은 ‘펑’ 소리와 함께 환자의 몸이 침상 위에서 튀어 올랐다.방 안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으나, 곧 모니터 파형이 정상에 가까운 리듬으로 돌아왔다. 은주의 긴장이 풀리며 숨이 터져 나왔다.“살아났습니다.”수연은 안도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환자의 손끝이 여전히 종이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약하게 떨리던 볼펜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ㅎ’자가 덧붙여졌다.‘ㅁ ㅣ ㄴ ㄷ ㅎ’은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민도혁.”순간 회복실의 공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듯 무거워졌다. 이름은 소리로 남기지 않아도 글자로 이미 존재했고,그것이 곧 증거였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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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닫힌 문, 차가운 서버실

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병원 외벽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어둡게 서 있었다. 불빛이 반짝이는 곳은 회복실과 집중치료실뿐이었고, 그 불빛이 어둠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작은 신호처럼 깜빡거렸다. 차수연은 그 불빛 안에서 하루 종일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를 조금도 풀 수 없었다.환자가 남긴 글자는 여전히 가슴 안쪽에서 뜨겁게 맥박치고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도혁을 향한 증언이자, 반드시 지켜내야 할 진실이었다.오피스텔에 돌아왔을 때, 우혁은 이미 노트북 앞에 앉아 서버 백업 파일을 검토하고 있었다. 화면 위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코드와 숫자들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누군가 고의로 삭제한 로그의 흔적을 찾으려는 집요한 싸움의 기록이었다.“백업 서버까지 손을 댔습니다.”우혁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낮게 말했다.목소리엔 피로가 깊게 묻어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완전히 지운 건 아니에요. 흔적은 남습니다. 문제는… 그 흔적을 우리가 먼저 붙잡느냐, 아니면 그들이 언론에 먼저 흘리느냐.”수연은 창가에 서서 밤바다의 어두운 물결을 바라보다가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지만, 눈빛은 단호했다.“오늘 환자가 남긴 글자, 이미 그 자체가 증거예요. 하지만 그게 세상에 드러나기 전, 우리가 더 확실한 걸 쥐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죠.”우혁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루 종일 차갑게 식어 있던 손끝이 서로 맞닿자 조금은 온기가 돌았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 화면을 돌려 보였다.“내일 새벽, 전산실 메인 서버가 정기 점검에 들어갑니다. 그때 백업된 로그를 추출해내야 해요. 누군가 일부러 삭제한 흔적까지 전부.”그의 눈빛은 분명 결연했지만, 수연은 문득 그의 미간에 스쳐 지나가는 통증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았다.“우혁 씨… 심장에 무리 가는 건 아니죠?”그녀의 목소리엔 엷은 걱정이 스며 있었다.우혁은 잠시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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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닫힌 문 너머의 함정

서버실 공기는 숨이 막히도록 차가웠다. 기계가 토해내는 일정한 울림이 벽에 부딪혀 되돌아왔고, 그 소리가 두 사람의 심장 박동과 엇박자로 부딪히며 점점 더 거칠게 커졌다. 차수연은 문손잡이를 돌려 보았지만, 단단히 걸린 잠금장치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깥 불빛마저 차단된 듯, 이곳은 고립된 섬 같았다.우혁은 노트북 화면을 붙잡은 채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눈빛은 전장에서 목표물을 끝내 추적하는 사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전원 관리 시스템도 누군가 손댔습니다. 곧 이 방 전체가 셧다운 될 겁니다.”수연은 그의 옆으로 다가가 화면을 주시했다. 숫자와 코드, 삭제 흔적들이 불규칙한 파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복구 가능해요?”“가능합니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예요. 서버가 꺼지면 이 흔적은 증발합니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지만, 미간에 스치는 통증의 그림자를 수연은 놓치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심박이 조금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무리하지 마요. 당신 심장이”우혁은 고개를 저었다.“지금 놓으면, 우리가 살아남아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 수연 씨, 나한테 시간을 벌어줘요. 문을 열든, 다른 방법을 찾든.”수연은 한순간 그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벽면을 둘러보며 환기구 위치를 확인했다. 의료진이 익숙하게 쓰는 응급경로처럼, 좁지만 빠져나갈 길은 반드시 있었다.그때, 인터폰 스피커에서 잡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교수님, 아직도 환자 곁에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까?”익숙한 목소리였다. 민도혁.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여유로웠다.“증거는 결국 사라집니다. 기록은 언제든 조작될 수 있고, 기억은 언제든 지워질 수 있지요. 남는 건 언론의 헤드라인뿐입니다. 내일 아침, 세상은 교수님을 ‘의료사고로 환자를 죽게 만든 의사’로 기억할 겁니다.”순간 수연의 손끝이 얼어붙었다. 도혁의 말 속에 섞인 독기가 단순한 위협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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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늦게 오는 진실을 기다리며

좁은 환기구를 빠져나왔을 때, 새벽 공기가 두 사람의 뺨을 세차게 스쳤다. 병원 뒤편 주차장 위로 바람이 몰아쳤고, 철제 난간에 걸려 있던 낙엽이 어둠 속에서 흩날렸다. 차수연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우혁은 곧장 노트북 가방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 가방 속에는 누군가 목숨 걸고 지워버리려 했던 진실의 조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잠시 숨을 고르던 수연은 고개를 들어 병원 건물을 바라보았다. 수십 개 창문에 불빛이 흩어져 있었고, 그 불빛 속에서 지금도 수많은 환자가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그 건물이 더 이상 단순한 치료의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야망과 음모가 꿈틀거리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여기서 멈출 수 없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바람 속에서도 단단하게 울렸다.“지금 이 증거를 꺼내지 않으면, 모든 게 도로 무너집니다.”우혁은 가방끈을 어깨에 고쳐 멘 뒤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도혁 쪽이 언론을 장악했을 겁니다. 이미 기사들이 퍼지고 있을 거예요.”그들의 예상은 정확했다. 같은 시각, 병원 근처 카페에 모여 있던 기자들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빠르게 원고를 수정하고 있었다. “천재 의사, 치명적 의료사고.” “수술 성공률 100% 신화, 허상으로 드러나.” 자극적인 문구들이 헤드라인에 줄줄이 걸리고 있었다.민도혁은 카페 안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짙은 커피 향 속에서도 그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테이블을 두드리며 기사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온라인 댓글창엔 이미 수연을 향한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었다.“역시, 영웅은 오래가지 못하지.”그는 낮게 중얼거렸다.그러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은혜는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기사 화면을 보며 어쩐지 목이 막히는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도혁은 피식 웃었다.“은혜 씨, 세상은 결과만 봅니다. 영웅이든 천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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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무너뜨리려는 손길, 버티려는 심장

아침 회의실은 평소보다 공기가 무거웠다. 커다란 테이블 위엔 신문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모니터에는 실시간 기사 화면이 떠 있었다.“천재 의사, 환자 죽음의 책임자.”“성공률 100% 신화, 붕괴하다.”언론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회의실을 가득 채우자, 이사진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의료진 일부는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고, 몇몇은 대놓고 수연을 향한 불신의 기색을 드러냈다.민도혁은 의장석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회의 시작 전부터 차분하게 태블릿을 두드리고 있었고, 마치 이 상황이 이미 자기 손바닥 위에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여유로웠다.“병원의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습니다.”그가 첫 발언을 꺼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우리는 환자의 신뢰를 먹고 사는 집단입니다. 이대로라면 재정적 타격은 물론, 향후 연구 지원까지 끊길 겁니다. 따라서… 책임자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그의 시선이 조용히 수연을 향했다.순간 회의실 안의 시선들이 한꺼번에 그녀에게 쏠렸다. 차수연은 억눌린 듯한 침묵 속에서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두며 입을 열었다.“책임이라면, 저는 언제든 감당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의료 사고가 아닙니다. 환자가 직접 증언을 남겼습니다. 그 이름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순간 몇몇 이사들의 얼굴에 미묘한 동요가 스쳤다. 그러나 도혁은 곧바로 말을 끊었다.“환자가 남긴 글자 몇 자를 증거라 말합니까? 기억이 흐릿한 환자가 남긴 건 언제든 오해일 수 있죠. 반면, 기록과 언론은 냉정합니다. 세상은 이미 결론을 내렸습니다.”그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회의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날 오후, 병원 복도는 기자들과 사람들로 붐볐다. 카메라가 지나갈 때마다 플래시가 번쩍거렸고, 직원들 사이에선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정말 그랬대?”“천재라더니… 결국 똑같네.”수연은 마스크를 깊게 눌러쓴 채 회복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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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침 햇살이 병원 로비의 유리벽을 타고 내려왔다. 하지만 그 빛은 따뜻하지 않았다. 기자들 수십 명이 몰려든 로비는 마치 전장처럼 뜨거웠다. 카메라가 번쩍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차 교수, 어제 발표된 기사에 대해 입장이 없습니까?”“의료사고를 감추려 했다는 의혹, 사실입니까?”“병원은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환자 보호자에게 사과할 의향은요?”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기사 제목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수연은 그들의 시선에 정면으로 마주했다. 등 뒤로는 수많은 카메라 불빛이 터졌고, 앞에서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단단했다.“사과는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 없는 사과는 거짓입니다.”짧고 단호한 한마디에 기자들이 술렁였다.그때, 로비 한쪽에서 우혁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손에 USB를 들고 있었고,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분명하게 울렸다.“여러분이 알아야 할 건 기사가 아니라, 기록입니다. 지워지려던 로그, 변조된 차트, 그리고 환자가 직접 남긴 증언. 모든 것을 공개하겠습니다.”순간 카메라가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기자들의 눈빛이 욕망처럼 번쩍였고, 도혁의 눈썹이 미묘하게 떨렸다.USB가 노트북에 꽂히자 화면에 수많은 로그가 펼쳐졌다. 삭제 흔적과 복구된 기록, 환자의 차트가 변조된 시각과 IP.그것은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시스템을 조작했다는 결정적 증거였다.“여기 보십시오.”우혁이 마우스로 특정 구간을 가리켰다.“환자가 수술대에 오르기 전, 차 교수의 ID로 접근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상, 차 교수는 그 시간 수술실에 있었습니다. 이는 복제 카드가 사용됐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접근한 단말은… 흉부외과 스테이션 내부.”회의실이 아닌 공개된 자리에서 처음으로 드러난 진실. 기자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고, 카메라는 화면을 집요하게 잡아냈다.수연은 차분하게 입술을 열었다.“환자는 이미 이름을 남겼습니다. 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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