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심장이 위험합니다.: Chapter 61 - Chapter 70

256 Chapters

61화. 반격

병원 최상층 이사회 회의실은 유리 벽 너머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지만, 안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은 빛을 잃은 듯 무거웠다. 긴 테이블 위에는 서류 뭉치와 태블릿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공기를 가르는 건 커피잔 부딪히는 소리보다 더 차가운 긴장감이었다.차수연은 그 긴 테이블 맨 끝에 앉아 있었다. 눈앞에 놓인 종이 위에는 ‘징계 심의’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마치 이미 결론이 정해진 판결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억울함이나 분노가 아니라, 끝내 환자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똑바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민도혁은 의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오늘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서류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병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해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의료사고를 은폐하려 한 의혹, 기록 조작 의혹… 모두 차 교수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환자의 죽음 앞에서 병원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안에 깔린 단정이 회의실을 압박했다. 몇몇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수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저는 기록을 조작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기록을 복원했습니다. 환자는 직접 이름을 남겼습니다. 제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저는 그 증언과 로그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이사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도혁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환자가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 남긴 글자를 증거라 말합니까? 의학적으로도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병원은 환자의 상태를 이용해 개인의 유리한 입장을 만들려는 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그의 말에 몇몇 이사들의 시선이 다시 차가워졌다. 도혁은 확실히 여론의 흐름과 이사회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있었다.회의실 밖, 기자들이 몰려들어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그들 사이에서 우혁이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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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침묵을 깬 흰 가운들

밤이 내린 병원은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신음과 기계음만이 희미하게 들리는 복도는 고요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긴장감은 낮보다 훨씬 더 짙었다. 로비 앞에서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기사를 송고했고, 병원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권력 싸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민도혁은 의국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두꺼운 서류와 언론사 명단이 정리돼 있었고, 휴대폰 화면에는 “긴급 브리핑 준비 완료”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그는 담담한 얼굴로 그 문자를 읽었지만, 눈빛 속엔 서서히 드러나는 초조함이 번지고 있었다. 이사회에서 완벽히 몰아붙이지 못한 이상, 여론을 장악하는 것만이 그의 마지막 방패이자 무기였다.“차수연, 네가 오늘 목소리를 냈다고 해서 끝난 줄 아느냐.”도혁은 낮게 중얼거리며 서류철을 닫았다.“내일 아침, 신문 1면은 여전히 네 이름일 거다. 그리고 그 이름 옆엔 ‘의사 면허 박탈’이라는 제목이 붙게 될 거다.”한편, 수연은 오피스텔 작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 동안 쏟아진 시선과 질문들이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했지만, 지금 그녀의 눈은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억눌러온 무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진실의 조각이 세상 앞에 드러난 순간을 함께했기에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우혁은 주방에서 물을 가져와 그녀 옆에 앉았다. 컵을 건네며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많이 힘들었죠?”수연은 물을 한 모금 삼키며 조용히 웃었다.“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견딜 수 있었어요. 내 옆에 당신이 있었으니까.”그 말에 우혁의 가슴이 저릿하게 떨렸다. 그는 순간 시선을 피했지만, 이내 솔직한 마음을 담아 고백했다.“처음 당신을 바다에서 끌어올렸을 때,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는지 알 것 같아요. 당신은 늘 죽음 앞에 서서도 다른 사람을 살리던 사람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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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흔들리는 권력

민도혁은 브리핑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감각 속에서 서 있었다. 환자의 목소리가 카메라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의료진들이 하나둘 나서서 입을 여는 장면은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림이었다. 여론은 단 한순간에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이 쥐고 있던 주도권은 지금,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지금 기사 내. ‘환자 진술 신빙성 없음’, ‘의료진의 집단 감정적 반응’. 최대한 강하게. 제목은 내가 보낸 대로 올려.”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답했지만,도혁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고,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자리가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을.같은 시각, 병원 한쪽 휴게실. 수연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푸르렀지만, 그녀의 시선은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 벌어진 모든 일은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벅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건, 자신을 향한 동료들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혼자라는 생각에 잠겨 살아왔던 그녀에게, 그들의 증언은 가슴을 뜨겁게 흔드는 울림이었다.문이 열리며 우혁이 들어왔다.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하나를 건네고,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따뜻한 게 필요할 것 같아서.”수연은 잔을 받으며 짧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늘은 참 많은 걸 느꼈어요. 내가 지켜온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거, 그리고… 아직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우혁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은 결국 진짜를 알아봅니다. 아무리 가려도, 진실은 언젠가 스스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오늘 그걸 증명한 겁니다.”수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그러나 도혁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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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몸이 기억하는 생명

깊은 밤, 오피스텔 안은 창밖의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서류가 흩어진 테이블 위에 엎드리듯 앉아 있던 우혁은 갑작스러운 통증에 몸을 일으키다 그대로 소파 쪽으로 쓰러졌다. 심장이 뭉개지듯 조여왔고, 숨이 가빠지며 손끝이 떨렸다. 목을 죄는 듯한 고통에 그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가슴만 움켜쥐었다.“으… 윽…”거친 숨이 방 안을 메웠다. 평소에도 가끔 찾아오던 통증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훨씬 강했고, 몇 초만 더 늦으면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방 안쪽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던 수연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우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대표님!”그녀는 본능적으로 달려갔다. 순간 발걸음이 멈칫했지만,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손끝이 그의 목에 닿자,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숨소리는 거칠고, 얼굴은 금세 창백해졌다.‘호흡 불규칙. 흉통. 심전도가 불안정할 가능성…’그녀의 머릿속에 의료 용어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기억을 잃었다던 그녀가 왜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질 겨를이 없었다.“대표님, 정신 좀 차려요. 제 목소리 들리죠?”수연은 즉시 그의 상의를 젖히고, 손바닥을 정확한 위치에 가져다 댔다. 차갑게 떨리던 손끝이 이내 단단히 고정됐다. 이어서 규칙적인 압박이 시작됐다. 리듬을 타듯 가슴을 누르는 손길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나, 둘, 셋, 넷…”숫자를 세며 압박을 이어가는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오피스텔의 고요를 깨트린 건 그녀의 목소리와, 심장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곧바로 인공호흡으로 넘어갔다.입술이 닿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숨을 불어넣는 각도와 압력이 정확히 계산됐다.몇 차례 반복된 후, 우혁의 몸이 크게 경련하며 기침을 터뜨렸다. 공기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방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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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흔들리는 기억의 틈

밤은 고요했지만, 두 사람의 심장은 여전히 요동쳤다. 소파에 기대 앉아 있던 우혁은 가까스로 호흡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방 안 공기는 적막했으나, 조금 전의 긴박한 순간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 위에 남아 있는 압박의 흔적을 느꼈다. 정확히, 단호하게, 그러나 결코 거칠지 않았던 손길. 그건 생명을 살리는 손이었다.옆에서 수연은 여전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손끝에 남은 감각이 떨림을 일으켰다. 그 순간 머릿속 어딘가가 열리며, 낯익은 장면이 불쑥 밀려왔다. 하얀 수술복, 눈부시게 밝은 수술등, 빠르게 뛰던 심전도, 차갑게 울리던 모니터음. 그리고 자신이 집도하던 환자의 가슴을 열고 피투성이 속에서 심장을 두드리던 장면.순간 그녀는 숨을 멈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손끝에서 다시 피 냄새가 번지는 듯 착각이 일었다. 기억을 지워버린 줄 알았는데, 방금의 응급상황이 무언가를 억지로 끌어올린 듯했다.“차… 교수…”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한 환자의 호소. 그러나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수연 씨.”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우혁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빛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아까 당신이 보여준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에요. 몸이 기억하는 겁니다.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했기에 망설임이 없는 거예요.”그는 짧게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내가 여기서 죽지 않은 건, 당신 덕분이에요. 그런데도 아직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수연은 그의 눈빛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간신히 흘러나온 말은 짧았다.“나는… 무서워요. 내가 누구인지 기억나는 게 무섭습니다.”그녀의 고백은 떨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진심이었다. 기억이 돌아온다는 건, 다시 그날의 죄책감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수술실 위에서 차가운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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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5년 전, 멈췄던 심장의 기억

늦은 오후, 병원의 창문 너머로 햇살이 사선으로 기울었다.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은은히 퍼져 있었고, 환자들의 발자국과 카트 바퀴 소리가 끊임없이 오갔다. 수연은 창가에 서서 어쩐지 낯익은 풍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에서 파편처럼 흩어진 장면들이 번쩍이며 튀어나왔다.“흉부 절개 시작. 흡인기 더 가까이 가져와.”“맥박이 떨어집니다!”“포기하지 마. 지금부터가 시작이야.”자신의 목소리였다. 분명 어딘가에서, 다급하게 환자를 붙잡고 있던 순간. 주변의 소음과 긴박한 기계음까지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날의 얼굴은 희미했다. 환자의 창백한 피부와 젖은 이마, 리고 멈춰가던 심장의 떨림만이 손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숨을 고르며 눈을 뜨자, 복도 끝에서 우혁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검진 결과를 막 들은 탓인지 표정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괜찮아요?”수연이 먼저 물었다. 목소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이 묻어났다.우혁은 잠시 멈칫하다가 짧게 웃었다.“괜찮다는 말이 습관처럼 나오네요. 사실은… 불안합니다. 의사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할 때,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당신 얼굴만 떠올랐습니다.”수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아니 자신이 직접 겪었던 기억과 겹쳐지며 그녀를 흔들었다.“다섯 해 전…”무심결에 흘러나온 단어에, 우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뭐라고 하셨어요?”수연은 놀라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흘러나온 단어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점점 뚜렷해지는 장면이 있었다.그날 밤, 수연은 혼자 오피스텔 작은 방에 앉아 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 노트북 화면만이 그녀의 얼굴을 희미하게 밝혔다. 그녀는 의료 기록 검색 창을 띄워놓고, 무심코 손가락을 움직였다. ‘응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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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드러난 인연, 시작된 전쟁

창가에 앉은 수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커피잔을 쥐고 있었다. 김이 살짝 피어오르는 잔 위로 얼굴이 비쳤지만, 눈빛은 멀리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다섯 해 전의 진실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부터, 마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죄책감과 안도, 두려움과 해방감이 뒤엉켜 파도처럼 들이쳤다.맞은편의 우혁은 잔잔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밤부터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고 나니, 가슴 깊은 곳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풀리며 뜨거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내가 오늘 여기 있는 이유가 당신이라니…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요.”수연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금세 떨림으로 변했다.“운명이라고 하기엔… 나는 그날 환자를 살린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살리려 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내가 놓치면, 내 안에서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오히려 단단하게 울렸다. 우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몸을 조금 내밀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게 깔렸다.“수연 씨.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간은, 당신을 지키는 데 쓰고 싶습니다.”그 말에 수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랫동안 죄책감에 짓눌리며 살아온 그녀에게 ‘지킨다’는 말은 낯설고도 치유처럼 다가왔다. 입술이 떨려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때 카페 문이 열리며 시선이 깨졌다.한편, 병원 이사회실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도혁은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테이블 중앙에 앉아, 기자들에게 배포할 자료를 차례대로 건넸다. 그 안에는 수연과 우혁의 관계를 과장되게 묘사한 문서가 포함돼 있었다.“이제는 단순한 의료사고 문제가 아닙니다. 병원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와중에, 해당 교수가 외부 인물과 결탁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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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조작된 스캔들, 설계된 진실

다음 날 아침, 병원 로비 앞은 또다시 언론으로 들끓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억울한 천재 의사”라는 동정적 기사와 “의혹의 중심”이라는 비난 기사가 섞여 올라왔지만, 오늘 새벽부터는 한 방향으로 쏠리고 있었다.“차수연, 스타트업 대표와 부적절한 관계?”“의료윤리와 투자금 유착 의혹.”“환자를 살리던 의사가 기업의 얼굴이 되다.”커다란 활자가 새벽 신문과 온라인 헤드라인을 뒤덮고 있었다.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져 있었고,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 정황까지 첨부돼 있었다. 그 중심에는 민도혁이 흘려놓은 자료가 있었다.수연은 병원 직원 휴게실에서 그 기사를 마주했다.활자 하나하나가 눈을 찌르는 듯했고,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기사 속 사진은 우혁과 함께 걷던 장면을 교묘하게 편집해 “밀회”처럼 보이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녀의 눈가가 순간 흔들렸지만, 곧바로 곧은 숨을 들이쉬었다.“이건… 또 다른 함정이군요.”옆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던 우혁은 침착한 표정으로 화면을 꺼냈다. 하지만 그 눈빛 속 깊은 곳에서 억눌린 분노가 번져 있었다.“예상은 했습니다. 결국 당신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죠. 나까지 함께 끌어내려야 완전히 승리한다고 믿는 겁니다.”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갑게 웃었다.“그렇다면 틀렸다는 걸 보여주면 됩니다. 증거가 왜곡됐다면, 우리는 진실로 대응하면 돼요.”그러나 말은 단호했지만, 그녀의 어깨는 무겁게 떨리고 있었다. 우혁은 그런 그녀의 손을 덮어주며 낮게 말했다.“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번엔 내가 앞장설 겁니다.”같은 시간, 이사회 회의실. 도혁은 태연하게 자료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여러분도 보셨듯이, 언론은 이미 반쯤 결론을 내렸습니다. 병원과 기업의 유착, 의료윤리 파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병원은 공범이 될 겁니다.”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안에 담긴 날카로움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몇몇 이사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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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무너뜨리려는 손

병원 강당에는 예상치 못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사회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기자 몇 명이 이미 복도를 점령하고 있었고, 일부는 몰래 촬영을 감행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장면을 세상에 흘려내려는 듯한 분위기였다.차수연은 정장을 단정히 입고 긴 테이블 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징계 심의’라는 글자가 찍힌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시선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의사로서 수많은 위기를 마주했던 그녀였지만, 오늘만큼 차갑게 긴장된 순간은 처음이었다.도혁은 그 반대편에서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의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두툼한 자료 뭉치가 놓여 있었고, 이따금 손가락으로 그것을 두드리며 여유를 드러냈다.“차수연 교수, 당신의 지난 의료사고 의혹과 더불어 최근 불거진 외부 기업과의 유착 문제는 병원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단정하고 차가웠다. “병원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으며, 이사회는 오늘 당신의 해임 여부를 심의합니다.”회의실 안의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수연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류를 넘겼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변명한다고 해서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한편, 오피스텔의 회의실. 우혁은 팀원들과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언론은 이미 ‘차수연 해임 심의’라는 속보를 쏟아내고 있었고, 투자자들은 잇달아 연락을 해왔다.“대표님, 일부 투자처에서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통보가 들어왔습니다. 의료기기 개발이 병원과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보고하는 목소리는 불안에 떨려 있었지만, 우혁은 깊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흔들리지 마세요. 우리는 병원 하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온 건 기술이고, 그건 진실입니다. 자금 문제는 내가 책임질 겁니다.”단호한 어조였지만, 그의 손가락은 책상 밑에서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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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유출된 진실, 흔들리는 각본

병원의 불빛은 밤이 깊어도 꺼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이어진 심의의 여파가 아직도 복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의사들은 속삭이듯 수연의 이름을 오갔고, 간호사들은 눈치를 보며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생명과 죽음을 오가지만, 오늘만큼 정치적이고 서늘한 긴장감이 도는 날은 드물었다.그 복도의 끝, 조명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구석에 은혜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작은 USB가 쥐어져 있었다. 검지와 엄지 사이에서 자꾸만 굴려지던 그것은 지금 그녀의 양심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내가 이걸 내밀면… 모든 게 바뀔 거야.”작게 중얼거린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졌다.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차수연에 대한 질투가 꿈틀거렸다. 언제나 자신보다 빛나던 존재, 늘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던 인물. 하지만 오늘 기사에서 본 왜곡과 조작은, 질투마저 삼켜버릴 만큼 잔혹했다.은혜는 눈을 감았다. 떠오른 건 몇 년 전, 같은 수술실에서 마주했던 기억이었다. 수연은 끝까지 환자를 붙잡으려 했고, 본인은 차가운 계산으로 물러섰었다. 그 차이가 그녀를 지금의 위치로 만들었다는 걸 은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나는… 아직도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그 시각, 도혁은 집무실에서 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상대는 언론사 국장이었다.“내일 아침, 준비된 기사 일제히 배포하세요. 제목은 ‘차수연, 의료윤리 파괴’로 통일하고요. 기업 쪽은 ‘스타트업 대표와 불순한 동맹’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제목만 보면 내용은 읽지도 않으니까.”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곧 표정은 굳어졌다. 책상 위에 올려둔 노트북 화면 속에는 한 장의 이미지가 떠 있었다. 누군가 병원 내부 시스템에서 추출한 것 같은 수술 영상 캡처였다. 환자의 심장을 움켜쥐고 끝까지 버티는 차수연의 얼굴, 땀과 피에 젖은 눈빛. 그 표정은 결코 ‘실패한 의사’의 것이 아니었다.도혁의 눈매가 좁아졌다.“…누구야? 누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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