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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별전문가! 신나리: Chapter 61 - Chapter 70

146 Chapters

61화. 사라지지 않는 열쇠의 무게

벽의 틈은 더 이상 단순한 금이 아니었다. 낮이 와도 사라지지 않았고, 밤이 되면 살아 있는 것처럼 심장을 고동치듯 빛을 내뿜었다. 나는 하루 종일 그 앞을 서성였다. 눈을 떼려고 해도 자꾸만 시선이 끌려갔다. 빛이 부를 때마다 귓속에 속삭임이 흘러들었고, 그 소리는 갈수록 또렷해졌다.“나리, 두려워하지 마. 네가 찾던 답은 저 너머에 있어.”그 목소리는 한순간도 날 떠나지 않았다.수경은 점점 더 말라갔다. 그녀는 내 옆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작은 부적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눈빛에는 늘 불안이 서려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목소리조차도 멀리서 울려오는 메아리처럼 느껴졌다.“언니, 저 벽을 보지 마요. 저건 언니가 보는 게 아니라, 언니 마음을 이용해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나는 이미 깊숙이 끌려 들어가 있었다.제하는 점점 더 과묵해졌다. 말수가 줄었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날 놓지 않았다.“나리, 네가 흔들릴수록 놈이 강해져. 이건 네 마음의 틈을 파고드는 거야.”그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났다. 내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두 사람까지 위험에 빠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내 심장은 자꾸만 균열 너머를 원했다. 정말 거기에 그가 있다면? 내가 그를 외면하는 게 더 큰 죄라면? 이런 생각이 갈수록 나를 무너뜨렸다.밤이 깊어졌다. 이번에는 전조도 없었다. 벽이 스스로 흔들리며 균열이 벌어졌다. 틈새가 크게 갈라지자, 안쪽에서 빛이 물결처럼 쏟아져 나왔다. 방안의 공기가 흔들리고, 가구들이 삐걱거렸다.그때, 귓속에 단 한마디가 울렸다.“열쇠를 꽂아.”순간, 내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붉은 자국이 다시 부각되며 진짜 금속처럼 빛을 냈다. 손바닥을 펴자, 거기에 작은 열쇠가 얹혀 있었다. 나는 숨이 막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수경이 울먹이며 소리쳤다.“언니, 버려요! 그거 잡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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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열쇠의 무게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열쇠는 낮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나를 시험하듯, 은은한 빛을 품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그 무게를 느꼈다. 너무도 가벼운 물건인데, 손바닥에 얹혀 있는 순간만큼은 온몸을 짓누르는 돌덩이 같았다.나는 거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오가고,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모두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손 안에 있는 이 작은 물건은 그 일상과 완전히 어울리지 않았다.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낯선 조각처럼,나를 따로 떼어내고 있었다.수경은 나를 지켜보며 애타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몇 번이고 내 손에서 열쇠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손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언니, 이건 언니 거 아니에요. 저게 어떻게… 낮에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냥 언니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에요.”나는 눈을 피했다.“그림자인데 왜 이렇게 선명할까.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까. 내 손이 아니라 내 심장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그 말에 수경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내 손을 꼭 감싸 쥐었다.“그 무게는 언니 마음 때문이에요. 언니가 아직 놓지 못했으니까.”제하는 종일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 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선은 열쇠에 박혀 있었고, 손에는 늘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저녁 무렵,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리, 이건 네가 싸워야 할 싸움이야.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 하지만 기억해. 네가 문을 열면, 넌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돼. 거기엔 네가 원하는 게 없을지도 몰라.”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겹쳐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리, 열어줘. 네가 원하던 게 여기 있어.’밤이 찾아오자 열쇠는 더 강하게 빛났다. 균열은 여전히 벽에 남아 있었고, 틈새에서 은은한 기운이 새어 나왔다. 방 안 공기가 가볍게 진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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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현실이 안개가 되는 순간

새벽을 넘겨도 잠은 오지 않았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 소리, 시계 초침의 규칙적인 울림조차도 귓속에서 왜곡되어 들렸다. 눈을 감으면 복도가 펼쳐졌고, 눈을 뜨면 여전히 손바닥 위 열쇠가 있었다. 현실과 꿈의 차이가 사라지고 있었다.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손을 바라보았다. 작디작은 금속 조각이었지만, 그 안에는 나의 과거와 기다림, 그리고 두려움까지 모두 담긴 듯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심장이 열쇠와 함께 고동쳤다.아침이 밝자, 수경이 내 곁에 앉았다. 그녀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언니… 혹시, 오늘도 그 복도에 갔어요?”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점점 더 오래 머무르게 돼. 어젯밤엔… 거의 문고리를 잡을 뻔했어.”그 말을 하자 수경의 눈가가 금세 젖어들었다.“언니, 이제는 언니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거예요. 저희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언니, 진짜 그쪽으로 가버릴지도 몰라요.”나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따뜻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불안정하게 느껴졌다.제하는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은 단단했지만, 그 안에는 걱정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저녁 무렵,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나리, 이건 더 이상 기다림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저 문을 열면, 되돌릴 수 없어. 온유가 있든 없든… 네가 잃는 건 너 자신이야.”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속삭임이 울렸다. ‘아니야. 열면 다시 만날 수 있어. 네가 가장 원하는 대답이 그 안에 있어.’그 이중의 목소리 때문에 내 안은 끊임없이 흔들렸다.밤이 되자, 균열은 더 크게 벌어졌다. 이번에는 벽뿐 아니라 천장과 바닥에서도 작은 금이 뻗어 나갔다. 집 전체가 무너져가는 것 같았다. 공기가 떨리며 전등이 깜빡였다.그리고 또다시, 목소리가 귓속에 스며들었다.“나리… 더는 늦출 수 없어. 열어야 해. 네가 바라는 모든 게 저 안에 있어.”나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막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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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심연의 문턱

밤이 깊어갈수록 집 안은 점점 낯설어졌다. 같은 벽, 같은 가구였는데,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공간이 아닌 듯 보였다. 균열이 남긴 흔적은 낮에도 희미하게 빛났고, 어두워지자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나는 그 앞에 앉아 있었다. 몸은 현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반쯤 저 너머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다.손바닥의 열쇠는 여전히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금속 조각이 나를 붙잡고 있는 건지, 내가 그것을 붙잡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묘한 온기, 심장을 따라 뛰는 맥박과 어긋나지 않게 전해지는 떨림. 열쇠는 마치 내 일부였다.수경이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수척했고,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언니, 제발 더는 여기 혼자 있지 마요. 저 균열은 언니 마음을 먹고 자라나는 괴물이에요. 우리가 옆에 없으면… 언니, 저기 끌려 들어가 버려요.”나는 그녀의 떨리는 눈빛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수경아, 나도 알아. 그런데 자꾸만 목소리가 들려. 그냥 환청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하고… 너무 그 사람 같아. 나는 그걸 외면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내 속마음이 흘러나오자 수경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내 손을 거칠게 감싸 쥐며 애원했다.“온유 씨가 진짜 언니를 사랑했다면, 언니가 이렇게 무너지는 걸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사랑은 붙잡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분도 결국 언니를 놓아준 거잖아요.”그녀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가슴은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말 그가 날 놓아준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떠난 걸까. 답은 문 너머에 있는 듯 나를 부추겼다.제하는 창가에 서 있었다. 온종일 말이 없었지만, 그의 어깨는 굳게 결려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는 전사처럼, 늘 긴장한 채였다. 그러다 밤이 깊자, 그는 조용히 내 곁에 와 앉았다.“나리.”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묘하게 떨렸다.“너무 힘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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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손바닥에 박힌 심장, 열쇠

밤새도록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내리꽂혔다. 작은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두드릴 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두드려지는 듯 요동쳤다. 방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평온이 아니라 긴장과 불안을 뒤엉켜놓은 덫 같았다. 나는 소파 끝에 걸터앉아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두었다. 그 작은 쇳덩어리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만 같았다.어제, 문 앞에서 거의 열쇠를 꽂을 뻔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나리, 열어. 내가 여기 있어.” 그 목소리는 너무나 익숙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만큼 달콤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렵게 했다. 과연 그가 맞을까? 아니면 나를 삼키려는 덫이 그 얼굴을 빌린 것뿐일까?아침이 밝아오자, 수경이 내 옆에 앉았다. 그녀의 눈 밑은 퀭하게 꺼져 있었고, 머리칼은 정리되지도 않은 채였다. 그만큼 밤새 마음을 졸였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 손 위에 시선을 두더니 낮게 말했다.“언니, 그 열쇠… 어제보다 더 짙어졌어요. 이제는 언니 손에서 떨어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젠 마치 내 몸 일부처럼 느껴져. 손바닥 안에 붙은 또 하나의 심장 같아. 뛰고, 숨 쉬고,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아.”수경의 눈가가 금세 젖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며 울먹였다.“언니가 잡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게 언니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 저 문은 언니의 슬픔과 집착을 먹고 자라난 괴물이에요. 언니가 그걸 믿으면 믿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거라고요.”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또다시 귓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섞여 울렸다. “아니야, 넌 나를 잊지 않았잖아. 내가 거기에 있어. 내 손을 잡아.”제하는 아침 내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한순간도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을 마실 때도, 창가에 서 있을 때도 그는 항상 내 움직임을 살폈다. 그 시선이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안도감을 주었다. 저 사람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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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첫 균열의 선택

비가 멈춘 아침, 창밖은 맑게 갠 하늘을 보여주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흐린 장막 속에 갇혀 있었다. 어제 새벽, 손끝이 문고리에 닿았던 순간의 떨림은 아직도 팔 전체를 타고 남아 있었다. 눈만 감으면 그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문 너머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나리, 마지막까지도 널 사랑했어.” 그 말이 내 심장에 깊게 새겨져, 여전히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나는 테이블 위에 열쇠를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작은 쇳조각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방 안의 모든 공기를 빨아들이는 중심처럼 느껴졌다. 도망치고 싶어도, 눈을 돌려도, 그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나를 끌어당기며 “곧 다시 올 거야. 네가 결정할 차례야.”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수경이 커피를 두 잔 내려와 내 앞에 놓았다. 그녀의 손은 잔을 잡은 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니… 어제는 정말 위험했어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우리 손에서도 빠져나갔을 거예요.” 그녀의 눈가에는 붉은 피멍처럼 피곤과 두려움이 뒤엉켜 있었다.나는 커피잔을 들지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나도 알아. 어제는 내가 거의 진 쪽으로 넘어갔었어. 그런데, 수경아… 솔직히 말하면, 그 목소리를 외면하는 게 너무 힘들어.너무 선명해서… 정말 그가 살아 있는 것 같아.”수경은 이를 악물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언니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이에요.그 사람이 아니라, 언니의 미련이 낳은 그림자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 그림자가 이제는 언니를 삼켜버리려 하고 있어요.”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다른 속삭임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거짓이 아니다. 난 네 곁에 있다.”제하는 말없이 우리 대화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며 그것을 부수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안 돼!”그의 눈빛이 놀란 듯 내게 향했다. 나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제하,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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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스스로 열리는 문, 그림자의 손

그날 밤, 집 안 공기는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작은 숨결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고, 균열이 뿜어내는 빛은 이제 단순한 틈새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의 눈처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나는 방 한가운데 서서 열쇠를 쥐고 있었다. 손바닥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손끝은 마치 불길에 그을린 듯 저릿했고, 손목까지 타오르는 열기가 스며들었다. 마치 내 몸 전체가 열쇠와 연결되어 있는 듯, 심장이 똑같은 박자로 뛰었다.수경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떨리는 몸으로 두 팔을 벌려 나와 균열 사이를 가로막았다. 눈동자는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 안에서 의지는 꺼지지 않았다.“언니, 이제 그만해요. 더 이상은 안 돼요. 저건 언니 마음을 삼키려는 괴물이잖아요. 언니가 문을 열면, 돌아올 수 없어요.”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눈길이 스치는 순간마다 눈물이 솟아올라 시야가 번졌다.“수경아, 나도 알아. 그런데 그 목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어. 그건… 그냥 환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짜야. 내 심장을 그대로 파고들어. 마치 내가 숨 쉬는 이유가 아직 저 안에 있는 것처럼.”내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그 속에는 지쳐버린 고백이 묻어났다.제하는 창문가에 서 있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 팔을 거칠게 붙들며 날 똑바로 바라봤다.“나리, 제발 정신 차려. 네가 찾는 답은 저 문 안에 없어. 넌 지금 살아 있고, 네 옆에는 우리가 있어. 너를 붙잡고 있는 게 그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네가 놓지 못한 절망이야.”그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그 속에 깔린 떨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제하의 눈빛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깊은 애정으로 뒤엉켜 있었다.그 눈빛은 나를 붙들려는 필사적인 마지막 줄 같았다.그러나 그 순간, 균열 너머에서 또렷한 두드림 소리가 울려왔다. 쿵, 쿵. 벽을 넘어, 귓속까지 파고드는 소리.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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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선택의 전조

새벽의 빛이 방 안에 스며들 때까지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균열은 지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라는 걸 직감했다. 틈새 속에서 뻗어 나왔던 그림자의 손은 내 안에 깊은 공포를 심어 두었고, 동시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압박을 안겨주었다.열쇠는 여전히 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아닌, 심장의 일부처럼 뛰고 있었다. 마치 내 숨결에 맞춰 고동치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손을 펴고 싶어도 열쇠는 손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주방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수경이 잠들지 못한 채 물을 따르는 듯했다. 그녀는 밤새 내 곁에서 떨며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언니가 우리 곁에 남아 있기를…” 그 속삭임은 아직도 귀에 선명했다.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싱크대 앞에 서서 물잔을 들고 있었다.내 발소리를 듣자 그녀는 화들짝 돌아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에는 울다 지친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언니… 안 자고 있었어요?”나는 고개를 저었다.“잘 수가 없더라. 눈만 감으면 문이 보여.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것 같아.”내 고백에 수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물잔을 내려놓고 내 손을 붙잡았다.“그럼 더더욱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언니는 지금 너무 위험해요. 저 문은 언니를 꾀어내려는 덫이에요. 언니가 버티지 못하면… 그냥 삼켜버릴 거예요.”나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삼키려는 게 아니야. 널 다시 데려가려는 거야. 너를 기다리는 내가 있어.”아침 햇살이 비칠 즈음, 제하가 거실에 나왔다. 그는 무겁게 걸어와 내 앞에 서더니 열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미치도록 숨기려 애쓰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나리, 어제 본 거 기억하지? 그 문은 네가 열지 않아도 스스로 열릴 수 있어.더는 시간이 없어. 너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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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살아 숨 쉬는 너를 사랑했기에

저녁 무렵, 거실의 불빛이 흔들리듯 깜박였다. 마치 방 전체가 얇은 막으로 덮여 있고, 그 막을 누군가 바깥에서 계속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발밑 바닥이 언제든 갈라질 것 같은 불안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균열은 벽을 넘어 천장과 바닥까지 번져 있었고, 그 틈새 사이로 낮게 울리는 진동음이 흘러나왔다.손바닥 위 열쇠는 이제 빛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손을 오므리면 더 뜨거워졌고, 펴면 내 눈앞까지 기운이 번져왔다. 그것은 이미 내 손의 일부가 아니라, 내 운명을 쥔 심장 같았다.수경은 내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였다.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눈 밑이 퀭했고, 입술은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언니,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저 문은 오늘 밤… 스스로 열릴지도 몰라요. 언니가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언니를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는 거예요.”나는 입술을 깨물었다.“근데… 만약 그 안에 진짜 온유가 있다면? 내가 열지 않으면, 그를 영원히 놓치는 거라면?”내 목소리는 떨렸고, 그 떨림 속에 미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수경의 눈가가 젖어들었다.“온유 씨가 진짜라면… 언니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걸 바라지 않았을 거예요. 그분이 사랑했던 건 언니의 미련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언니였을 거라고요.”그녀의 말은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귓속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아니야. 난 여기에 있어. 네가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어. 너 없이는 나도 완전하지 않아.”제하는 창문가에 서 있다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의 발소리는 무겁게 울렸고, 눈빛은 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나리, 이건 네가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이야. 하지만 하나만 기억해. 문을 열든 닫든, 선택은 네 의지여야 해. 누가 강제로 이끌기 전에, 네가 직접 결정해.”나는 그의 손길이 내 어깨에 닿는 순간, 온몸이 떨렸다. 그 손길은 살아 있는 지금의 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균열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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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문이 열리려는 순간

숨조차 가쁘게 몰아쉬는 새벽이었다. 안은 이미 낯선 세계의 기운으로 잠식되어 있었다. 균열은 천장을 따라 퍼져나가더니,금속성의 울림을 내며 벽 전체를 갈라뜨렸다. 틈새는 더 넓어졌고, 안쪽의 복도는 이젠 희미한 환영이 아니라 현실처럼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먼지의 냄새, 축축한 공기, 차갑게 깔린 바닥의 감촉까지 발끝에 와 닿았다.내 손바닥 속 열쇠는 뜨거운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박동이 심장의 리듬과 겹쳐지고, 그 떨림은 곧 전신을 지배했다. 나는 더 이상 열쇠를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열쇠에 붙잡힌 인형처럼 휘둘리고 있었다.“나리야…”그때, 균열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 단순한 속삭임이 아니라, 방 안의 공기를 울리는 또렷한 음성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그리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나야. 네가 기다린 그 사람. 이제 문을 열면… 다시 만날 수 있어.”나는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정말… 정말 네가 맞아? 온유야, 정말 너지?”그러자 답이 흘러나왔다. 부드럽고 간절하게.“그래, 나리. 나야. 넌 날 잊지 않았잖아. 흘린 눈물이 여기까지 닿았어. , 넌 결국 내게 올 거야.”그 말은 칼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눈물이 흐려져 시야가 흔들렸다. 손끝은 이미 문고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안 돼!”제하의 목소리가 울부짖듯 터졌다. 그는 내 팔을 붙잡아 억지로 끌어당겼다.“나리, 저건 네가 원하는 얼굴을 쓴 그림자야! 그 문 너머엔 네가 찾는 사람이 없어! 문을 열면 넌 끝이야!”나는 비틀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지만,그 밑바닥에는 두려움과 사랑이 고스란히 번져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등을 감싸며 애원했다.“나리, 제발 내 말을 들어. 내가 널 붙잡고 싶어서가 아니라, 네가 여기 살아 있어야 해서 그래. 내가 지키고 싶은 건 네가 지금 여기 있는 모습이야.”수경의 흐느낌이 겹쳐 울렸다. 그녀는 내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었다.”언니, 저희 곁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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