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답 대신 종이컵을 내밀었다. 뜨거운 김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잠깐, 어젯밤 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시간이 저만치 물러났다. 현실은 이렇게 무겁고 뜨겁고, 입술에 닿으면 쓴 향으로 확실하게 남는다.저녁 무렵, 도연과 그의 약혼자. 이름은 태수를 함께 만났다. 그가 카페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 버릇,의자 다리를 끄는 소리를 줄이는 습관, 앉기 전 먼저 도연에게 “춥지 않아?” 하고 묻는 말투. 내 노트에 펜촉이 잠깐 머뭇거렸다. 한결같음. 도연이 말했던 단어가 그의 몸짓마다 묻어 있었다.“상담이라고 해서 왔습니다만,” 그는 단정히 미소 지었다.“사실 결혼은 우리의 문제지, 제3자가 끼어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를 말할 때 그는 도연을 향해 기울었다.그 기울기가 다정해서 더 조심스럽게 질문을 골랐다. “좋아하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내일도 ‘우리’일까요? 오늘과 아주 다른 내일에, 여전히 ‘우리’가 있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정리해보려는 거예요.”도연이 준비해온 메모를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그녀는 내 눈을 한 번, 태수의 눈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준비한 말 대신, 자신의 목소리로.“태수야.” 그의 이름이, 연습한 문장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나는 네가 고맙고, 미안해. 그리고 무서워.” 태수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도연은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하는 ‘우리’가 아름다워서, 그 말 안에 내가 작아지는 게 무서워. 아버지의 빚이 네 어깨로 넘어오고, 나의 불안도 너의 덕목 아래 숨게 될까 봐… 우리라는 말 아래, 내가 사라질까 봐.”잠시, 설탕 한 알이 물에 녹듯 침묵이 퍼졌다. 태수의 손등이 움찔했다.“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네게 또 다른 무게면… 난 무엇을 내려놔야 할까.” 그의 질문은 방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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