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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나의 기사가 되어줘: Chapter 11 - Chapter 20

66 Chapters

11화.

룸 안의 공기는분명 아까와 같아야 했다.음악은 여전히 벽 너머에서 울리고 있었고,샴페인의 기포는 잔 속에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그런데도 이상했다.어딘가 조금씩 틀어져 있었다.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더 들어왔다.낯선 얼굴들. 초대 명단에 없던 사람들.그들의 시선이 룸 안을 천천히 훑었다.그리고 단 한 사람.정연주.이다정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연주는 소파에 앉아 잔을 가볍게 들고 있었다.놀란 기색도,당황한 표정도 없었다.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웠다.마치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을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연주의 눈이 이다정을 향해 올라왔다.그리고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인사도 아니고 도발도 아닌 그 어딘가의 미소였다.“아, 인사부터 해야지.”누군가 웃으며 말했다.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이질적인 목소리였다.“이쪽은이다정 전무님. 처음 뵙죠?”이다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처음 보는 얼굴.하지만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류.같은 쪽이다.그녀는 잔을 내려놓았다.유리 바닥이 테이블에 닿으며 짧은 소리가 났다.“처음이네요.”이다정은 입꼬리를 올렸다.완벽한 미소였다.흔들림도, 틈도 없는.“근데요.”그녀는 손가락으로 잔 가장자리를 한 번 천천히 돌렸다.“여긴 초대받은 사람만들어오는 자리 아니에요?”“아, 그게.”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요즘은 인맥도 유동적이잖아요.”가벼운 농담처럼 던진 말.그 말에 룸 안에서 작은 웃음이 흩어졌다.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술잔을 들었다.하지만 이다정은 알았다.이 웃음이 같은 편의 웃음이 아니라는 걸.그 순간 아주 또렷하게 깨달았다.—이 방에서 자기 편은 없다는 걸.손끝이 차갑게 식었다.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아까 얘기 이어서요.”처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전무님 주변, 요즘 꽤 시끄럽다면서요.”이다정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그런 소문까지 돌아요?”“소문은.”그가 잔을 들며 말했다.“항상 사실보다 빠르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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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판단은 제가 하는 일입니다.”말이 생각보다 빨리 튀어나왔다.“결정하는 것도 제 일이고요.”차 안의 공기가 순간 조용해졌다.김다온의 손이 이다정의 손목 위에서 멈췄다.붕대 끝을 잡은 채 그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몇 초.엔진의 낮은 진동만 차 안을 채웠다.그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그리고 처음으로 이다정을 봤다.짙은 눈동자.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얼굴.“전무님.”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그 판단이 항상 옳을 수는 없습니다.”이다정은 바로 대꾸했다.“그럼 기사님 판단은 늘 옳아요?”김다온은 잠깐 말을 고르는 듯했다.시선이 아주 잠깐 앞 유리창 너머로 흘렀다.그리고 말했다.“제 판단이.”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정했다.“틀리면 제가 다칩니다.”짧은 침묵.이다정의 눈썹이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전무님 판단이 틀리면.”김다온의 시선이 다시 그녀의 손목으로 내려갔다.붕대가 감긴 자리. 붉게 남아 있는 자국.“전무님이 다치죠.”그 말에 이다정의 가슴이 묘하게 눌렸다.말은 단순했다.하지만 이상하게 무겁게 남았다.이다정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도심의 불빛이 유리창을 따라 길게 흘렀다.…왜인지더 말하면 지게 될 것 같았다.김다온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덧붙였다.“그래도.”“결정권은 전무님께 있습니다.”차는 부드럽게 차선을 바꾸며 달렸다.“댁으로 모시겠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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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이다정은 평소와 다르게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이유는 없었다.그냥— 잠이 오지 않았다.어둠이 아직 남아 있는 방 안.천장에는 희미한 새벽빛이 묻어 있었다.이다정은 잠시 그 빛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목이 말랐다.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끌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문 손잡이를 돌렸다.찰칵.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거실 한가운데, 김다온이 서 있었다.상의만 없었다.새벽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그의 어깨선을 옅게 비추고 있었다.정리된 근육의 윤곽.쇄골 아래로 이어지는 단단한 몸선.운동으로 만든 몸이 아니라 오랫동안 실제로 쓰여 온 몸.그걸 이다정은 한눈에 알아봤다.그리고.시선이 마주쳤다.“…!”심장이 먼저 반응했다.“옷 입어요!”말이 거의 튀어나왔다.김다온은 잠깐 멈췄다.그리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짧은 말.옆에 걸어두었던 셔츠를 집어 들어 빠르게 걸쳤다.단추를 채우는 손은 놀랄 만큼 차분했다.하나. 둘. 셋.마치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움직임.“주의하겠습니다.”이다정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괜히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물컵을 집어 들었다.컵을 입에 대기 전까지도 방금 본 장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미쳤네.왜 기억이 이렇게 선명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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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아침 11시.회장실 안은 조용했다.두꺼운 카펫이 바닥을 덮고 있었고천장 가까이 올라간 창으로 늦은 아침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김다온과 황예은은 테이블 한쪽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그리고 그 맞은편.이회장이 의자에 깊게 몸을 묻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손가락이 천천히 맞물려 있었다.말없이. 한동안. 침묵이 먼저 공간을 채웠다.황예은은 그 침묵이 어쩐지 길게 느껴졌다.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감각이었다.이 사람은 항상 말을 늦게 시작한다.그리고— 그 사이에 상대의 표정과 호흡을 전부 읽는다.잠시 후 이회장이 입을 열었다.“김기사.”낮고 느린 목소리였다.김다온의 시선이 곧바로 올라갔다.“상황은 알겠네.”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이회장의 시선이 천천히 김다온에게 고정됐다.“그래도.”잠깐의 멈춤.“내 딸아이와 같이 사는 건.”황예은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긴장했다.이회장이 말을 이었다.“조금, 선을 넘은 것 같지 않나?”공기가 살짝 가라앉았다.황예은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하지만 김다온은 미동도 없었다.등도 펴져 있었고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어제.”짧은 단어.“도청기만 무려 열 개를 발견했습니다.”황예은의 눈이 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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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회의실의 공기는 처음부터 묘하게 팽팽했다.새 법인의 첫 정식 회의.명목상으로는 ‘신사업 TF 출범 미팅’.하지만 이다정은 이 회의가 단순한 출범식이 아니라는 걸이미 알고 있었다.회의실 중앙 자리.이다정은 조용히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페이지가 천천히 넘어갔다.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과하게 친절한 보고. 너무 매끄러운 일정. 지나치게 완벽한 흐름.그게 오히려 이상했다.‘이렇게 깔끔할 리가 없는데.’이다정의 시선이 표 안의 숫자들을 따라 움직였다.그리고 멈췄다.“전무님.”맞은편 임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이번 프로젝트는 속도가 중요합니다.”잠깐 숨을 고르듯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외부 협력사가 이미 준비를 끝낸 상태라서요.”이다정의 손이 다음 장을 넘기려다 멈췄다.외부 협력사. 해외. 군수 계열 자회사.머릿속에서 단어들이 조용히 이어졌다.“책임 주체가 전부 제 이름으로 되어 있네요.”회의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임원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전무님께서 총괄이시니까요.”“그만큼 신뢰의 의미이기도 하고요.”신뢰. 이다정은 속으로 그 단어를 굴렸다.‘—아니.’‘이건 신뢰가 아니다.’‘던지기다.’문제가 터지면 한 사람에게 몰아넣기 위한 구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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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차 안.도심의 불빛이 창문을 스쳐 지나갔다.가로등이 한 번씩 얼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이다정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빛을 머금었다가 사라졌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무언가가 시작됐다는 걸.한참을 달린 뒤에야 이다정이 입을 열었다.“아까 메시지.”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의심, 긴장, 그리고— 조금의 기대.김다온은 대답 대신 조용히 차선을 바꿨다.방향지시등이 짧게, 규칙적으로 깜빡였다.“보여드릴게요.”이다정이 휴대폰을 내밀었다.김다온은 잠깐 화면을 확인했다.길게 보지도 않았다.정말로 잠깐이었다.그리고 말했다.“예상 범위입니다.”이다정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예상했다고요?”“네.”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차분했고 감정이 거의 묻어나지 않았다.이다정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차 안 공기가 조금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럼…”말을 꺼내려다 잠깐 멈췄다.하지만 결국 물었다.“기사님은.”시선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의식은 분명 옆에 있는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예전에 이런 일 많이 겪어봤어요?”차 안이 조용해졌다.엔진 소리와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스치는 소리만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김다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운전대를 잡은 손은 여전히 안정적이었지만 이다정은 느꼈다.아주 미세하게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잠시 뒤 그가 말했다.“그 질문은.”한 박자.“오늘로 끝내주십시오.”짧은 말이었다.하지만 그 말 뒤에 닫혀버린 문이 하나 있는 느낌이었다.이다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그의 옆얼굴을 바라봤다.단단했다. 정말로 단단했다.마치 오래된 금속처럼 수많은 충격을 견디며 굳어버린 표면.너무 단단해서 어디에 금이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이다정은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알겠어요.”담담하게 말했다.“대신.”그녀의 말에 김다온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이다정은 창밖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이번 회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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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다정의 발걸음이 미묘하게 느려졌다.현관의 공기가 어딘가 낯설었다.조용했다.아니, 정확히는— 너무 조용했다.이다정은 문을 닫으며 잠깐 멈췄다.평소 같으면 에어컨의 아주 미세한 진동음이 벽을 따라 흘러나오고,냉장고 안에서 압축기가 돌아가는 낮은 울림이집 안 어딘가에 배경처럼 깔려 있어야 했다.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는 늘 그런 작은 소리들이 있다.생활의 잔향 같은 것들.그런데 지금은 마치 누군가가 집 안의 모든 소리를한 번 정리해 놓은 것처럼 공기가 지나치게 깨끗했다.“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김다온이 먼저 멈췄다.신발도 벗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이다정의 걸음을 막았다.이다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의 뒤에 섰다.김다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거실을 훑는 시선이 느리게 움직였다.벽. 소파. 테이블.그리고— 커튼.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그곳에서 멈췄다.정말 미세한 차이였다.하지만 김다온에게는 충분히 눈에 띄는 차이였다.커튼 사이의 틈이 평소보다 조금 더 벌어져 있었다.대략 1센티 정도.김다온은 말없이 걸어가 커튼을 완전히 닫았다.손끝이 천을 스치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작게 울렸다.그다음 창문 잠금장치를 확인했다.이다정이 물었다.“열려 있었나요?”김다온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소파 옆 테이블.그 위에 놓인 컵 받침.이다정은 그 순간 뒤늦게 떠올렸다.아침에 집을 나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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