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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옥탑방의 멜로디: Chapter 111 - Chapter 120

155 Chapters

110. 균열의 시작

휴대폰 진동에 눈을 떴다.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 화면에는 짧고 선명한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합격.2차 오디션 날짜와 안내 문구가 이어졌다.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기뻐해야 마땅한 순간인데, 속은 무겁게 가라앉았다.“합격했구나.”고개를 들자 창가에 김한이 있었다.그의 모습은 새벽빛과 겹쳐져, 거의 반투명한 그림자 같았다.“네, 합격했어요.”내 목소리는 떨렸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합니다. 수정 씨가 자기 목소리로 이뤄낸 자리잖아요.”“근데… 김한 씨는 왜 자꾸 더 옅어지세요?”그는 대답하지 않고, 부드럽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게 원래 정해진 길이에요. 당신이 자기 노래를 찾을수록, 저는 조금씩 멀어지게 돼 있죠.”나는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그럼… 제가 노래할수록 김한 씨를 지우는 거예요?”“아니요. 저를 지우는 게 아니라, 제가 있던 자리를 당신 걸로 채우는 겁니다.”그의 미소는 담담했지만, 내 가슴은 울컥하며 조여 왔다.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영수는 드럼 스틱을 의미 없이 돌리고 있었고, 현아는 베이스 줄을 튕기지도 않은 채 손만 얹고 있었다.재운은 이미 기타를 메고 있었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오디션 결과 나왔어?” 영수가 먼저 물었다.나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응… 합격했어.”잠깐의 정적이 흘렀다.축하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현아가 입술을 깨물다 결국 말했다.“축하해야 하는 거지. 근데… 우리 이름으로 나간 게 아니라, 너 혼자잖아.”가슴이 철렁했다.“맞아. 개인 오디션이니까. 그래도…내가 잘 되면 우리 음악이 알려지는 거니까.”현아는 씁쓸하게 웃었다.“밖에서 보면 그건 네 이름만 남는 거야. 우린 그냥 배경이겠지.”영수가 드럼 스틱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이럴 줄 알았어. 결국 개인 보컬 무대라더니.”나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재운이 손뼉을 치며 말을 끊었다.“합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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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홀로 선 무대, 흐릿해진 이별

2차 오디션 일정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왔다.합격 문자에는 단 세 줄이 적혀 있었다.‘2차 예선. 다음 주 화요일. 자유곡 90초.’딱딱한 문장이었지만, 내 눈에는 무겁게 새겨졌다.연습실 문을 열자 공기는 이미 예민했다.영수는 드럼 스틱을 손에 쥔 채 바닥만 툭툭 치고 있었고, 현아는 베이스 줄을 감았다 풀었다만 반복했다.재운은 기타를 어깨에 걸고 앉아 있었는데, 눈빛이 전보다 훨씬 날카로워졌다.“왔어?”그가 짧게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정적. 결국 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번에도 혼자 나가는 거야?”나는 숨을 삼켰다.“…네. 개인 보컬만 가능하대요.”그 말이 떨어지자, 공기는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영수가 헛웃음을 내뱉었다.“그러니까 우리는 또 배경이라는 거네. 네 이름만 남고, 우린 그림자.”“아니야, 그런 뜻은”“아니면 뭐? 네가 유명해지면 우리도 덩달아 유명해진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현아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흔들렸다.“수정아, 우리도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어. 근데 지금 상황은 네가 우리 위에 서는 것처럼 보여.”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입술이 달라붙어 버렸다.그때 재운이 손뼉을 치며 말을 잘랐다.“일단 연습하자. 감정 얘기는 나중에 해도 돼.”곡은 시작부터 불안정했다.드럼은 박자를 놓쳤고, 베이스는 집중을 잃었다.내 목소리도 자꾸 힘을 잃었다.세 번째 테이크에서 결국 노래가 끊겼다.재운이 기타를 내려놓으며 내 쪽을 바라봤다.“수정아.”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네가 합격한 거, 나도 기뻐. 근데 결국 그 자리는 네 거야. 우리랑은 상관없어.”“재운아, 나도 알아.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잖아.”“맞아. 누구도 가지 말라고 한 적 없어. 하지만 중심은 정해야 돼. 밴드냐, 솔로냐.”나는 숨을 삼켰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현아와 영수는 악기를 내려놓고 자리를 정리했다.연습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옥탑방으로 돌아와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냈다.현을 튕기자 김한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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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박수 뒤에 남은 균열

오디션이 끝난 지 이틀째 되는 아침,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눈을 뜨자마자 화면을 확인했다.합격.그리고 짧게 적힌 문구.‘결승 진출. 곧 최종 일정 공지.’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정말 여기까지 왔다.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밴드 멤버들의 얼굴이었다.창가에 앉아 있던 김한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축하합니다. 수정 씨. 이제 당신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겠군요.”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속삭였다.“근데 왜… 김한 씨는 점점 더 안 보이세요.”그의 모습은 이미 빛의 잔상처럼 흔들렸다.“그게 운명이에요. 당신 목소리가 단단해질수록, 저는 조금씩 사라지는 거죠.”“싫어요.”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전… 아직 김한 씨한테 기대고 있는데…”그는 조용히 웃었다.“기댈 수 있다는 건 이미 당신이 강하다는 증거입니다.”그의 목소리가 따뜻했지만, 동시에 작별처럼 들려 가슴이 저릿해졌다.연습실 문을 열자, 이미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공기는 무겁고, 모두 눈빛이 예민했다.현아가 제일 먼저 물었다.“결과 나왔어?”나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합격했어. 결승 진출이래.”순간, 짧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하지만 곧 멈췄다. 영수가 고개를 저었다.“축하해야겠지. 근데 솔직히, 우리랑 상관없잖아. 네가 혼자 얻은 자리잖아.”현아도 입술을 깨물었다.“수정아, 너만 주인공 되는 것 같아. 우리도 같이 달려왔는데… 결국 우리는 배경인 거야?”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나 혼자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다 같이 했으니까.”재운이 손을 들며 말을 잘랐다.“지금은 위로보단 솔직함이 필요해. 수정아, 네가 잘한 건 맞아. 하지만 이건 네 개인 성취야. 그걸 인정하고 시작해야 돼.”그의 말은 차갑지 않았지만, 단단하게 울렸다.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합주를 시작했지만, 모두 집중하지 못했다.드럼은 박자를 놓치고, 베이스는 엇나갔다.내 목소리도 얇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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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투명해진 너를 부른다

2차 오디션 일정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자를 확인한 순간, 심장이 뛰는 동시에 위가 무거워졌다.‘일주일 후, 개별 무대. 자유곡 2분.’침대에 앉아 기타를 무릎 위에 올려놨다.현을 손끝으로 눌렀지만 소리는 제대로 나지 않았다.오디션 합격의 기쁨보다 밴드의 얼굴들이 먼저 떠올랐다.어제 연습실에서 쏟아낸 멤버들의 불만, 그리고 재운의 단호한 말.“밴드냐, 솔로냐. 이제 중심을 정해.”창문 너머로 새벽 공기가 스며들었다.그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일렁였다.“또 혼자 고민하네요.”김한이었다.이제는 실루엣조차 흐릿해져, 손을 뻗으면 바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김한 씨… 오늘따라 더 옅으세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나는 기타를 내려놓으며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근데요, 김한 씨. 제가 무대에 서면 설수록, 정말로 당신이 사라지는 거라면…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 노래가 당신을 없애는 거라면.”그는 웃었다.“수정 씨가 부르는 노래는 저를 없애는 게 아니라, 저를 자유롭게 하는 거예요.”말은 따뜻했지만, 가슴은 오히려 더 아팠다.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공기는 이전보다 훨씬 무거웠다.영수는 드럼에 앉아 팔만 꼼지락거렸고, 현아는 케이블을 감았다 풀기를 반복했다.재운은 기타를 들고 있었지만, 줄을 튕기지도 않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다들 왜 그래?”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현아가 눈을 들어 쏘아봤다.“왜 그러냐니? 네가 오디션 합격한 순간부터 우린 그냥 들러리 된 거잖아.”영수도 맞장구쳤다.“밴드 이름으론 무대도 못 서고, 결국 네 이름만 남는 거잖아. 우리가 뭘 위해 연습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잘 되면 우리 이름도 알려지는 거잖아. 같이”현아가 말을 끊었다.“같이? 밖에서 볼 땐 네 목소리만 들리는데 뭘 같이야.”순간 입술이 굳어 붙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재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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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두 무대의 끝

오디션 당일, 공연장은 작은 방송국 공개홀이었다.입구부터 취재진과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응시자들의 긴장된 목소리가 대기실 복도에 가득 찼다.심장은 공연장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복도 끝, 무대 순서표에 내 이름과 서이란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내가 먼저, 그녀가 바로 뒤였다.그 두 글자가 눈앞에서 묵직하게 겹쳐 보였다.“괜찮아?”뒤에서 들려온 재운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그는 기타를 메지 않고, 나를 위해 물병 하나만 들고 있었다.“응… 괜찮아.”“괜찮아 보이진 않아. 네 눈이 계속 떨리고 있어.”그는 내 손에 물병을 쥐여 주었다.“한 모금 마셔. 목소리는 목보다 마음에서 먼저 갈라지니까.”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을 삼켰다.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심장을 조금 누그러뜨렸다.대기실 한쪽, 조용히 서 있는 김한이 눈에 들어왔다.그의 모습은 이제 거의 흐릿한 안개 같았다.이제는 눈빛조차 희미해져,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김한 씨.”내가 다가가 속삭였다.“오늘은 저 혼자 노래해야 할 것 같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맞습니다. 오늘은 제 목소리가 아니라, 당신의 목소리만이 울려야 합니다.”“근데 무서워요. 지금까지는 김한 씨가… 저를 이끌어 주셨는데.”그는 조용히 웃었다.“무섭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무대는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 비로소 자기 것이 됩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스태프가 내 이름을 불렀다.“남수정 씨, 준비해주세요!”무대에 오르자 조명이 눈앞을 삼켰다.관객석은 보이지 않고, 심사위원들의 얼굴만이 희미하게 빛났다.마이크를 잡은 손에 땀이 번졌다.호흡이 가빠지자 순간, 본능처럼 무대를 찾았다.어디에 있든, 김한이 늘 그랬던 것처럼.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무대 구석, 김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조명과 어둠 사이,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이제는 내가 해야 해. 내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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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홀로 서기 위한 서막

오디션 무대가 끝난 다음 날, 서울의 하늘은 유난히 탁했다.햇빛은 맑았는데 공기에는 미세먼지가 가득했고, 거리의 색감마저 뿌옇게 번져 있었다.창문을 열자 시끄러운 버스 소리와 길가의 확성기 광고가 섞여 들어왔다.머릿속은 여전히 전날 무대의 환호와 서이란의 날카로운 미소로 어수선했다.핸드폰에는 축하 메시지가 몇 통 와 있었지만, 밴드 단체 채팅방은 조용했다.읽지 않은 메시지 숫자만 늘어갈 뿐,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불안감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등을 눌렀다.나는 결국 기타를 꺼내 현을 한 번 퉁겼다.짧은 울림이 퍼지는 순간, 공기 속에서 익숙한 기운이 스쳤다.창가 한쪽, 김한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빛에 잠겨 형체조차 아슬아슬했지만, 눈빛만큼은 선명했다.“어제 무대, 당신의 것이었어요.”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낮게 흘렀다.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근데 점점… 안 보이세요. 이제는 노래하지 않을 때는 거의 안 나타나시잖아요.”“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제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니까요.”그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재운이었다.“잠깐 연습실에서 보자. 할 얘기가 있어.”연습실 문을 열자 공기가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영수는 드럼 의자에 앉아 스틱을 돌리며 딱딱 소리를 냈고, 현아는 케이블을 풀었다 감았다 반복하고 있었다.재운은 이미 기타를 걸고 서 있었지만,평소의 차분한 얼굴이 아니라 굳은 표정이었다.“합격 축하해.”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어제 무대, 멋졌어. 근데 그건 너 혼자 이름으로 부른 거잖아. 우리 이름은 어디 있었어?”나는 숨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영수가 이어받았다.“솔직히 말하자. 우린 그냥 네 백밴드로 보였어. 네가 스타 되고 우리는 뒤에 그림자 서는 거, 그거 원해서 밴드 만든 거 아니잖아?”나는 손끝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나도 알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같이 가고 싶었어.”“같이?” 현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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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끊어진 리듬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날카로운 현 소리가 귀를 때렸다.현아가 베이스를 퉁기며 재운과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언제까지 수정이 위주로만 맞춰야 하는 건데? 우리 곡은 다 뒷전이야?”“위주가 아니라 필요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필요? 결국 오디션 나가는 건 수정이 혼자잖아. 우린 들러리 아니야?”재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나는 순간 멈춰 서서 손잡이를 놓았다.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밖에서 기다려야 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영수가 드럼 스틱을 탁 내려놓으며 중재했다.“다 알잖아. 지금 중요한 건 밴드가 아니라 오디션이야. 어차피 홍보가 되면 우리도”현아가 말을 끊었다.“그렇게 안 될 거라는 게 문제야. 홍보가 되면 뭐해? 대중이 기억하는 건 수정이 이름뿐일 텐데.”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그때 재운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수정아. 네 생각은 어때?”나는 숨을 들이켰다.“나도… 같이 가고 싶어. 근데 지금은 무대에 오를 기회가 나한테만 주어졌으니까.”현아의 웃음은 씁쓸했다.“역시 그렇지.”그녀는 베이스를 벗어 던지고 방을 나가버렸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쾅 하고 울렸다.침묵이 길게 이어졌다.영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나도… 솔직히 이해는 해. 근데 계속 이러면 우리 밴드는 오래 못 가.”그는 드럼 스틱을 챙겨 들고는 천천히 따라 나갔다.연습실에는 나와 재운 둘만 남았다.조명이 희미하게 비추는 가운데, 그는 기타를 내려놓고 내 앞에 섰다.“수정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어. 넌 선택해야 돼. 밴드로서 무대를 꿈꿀 건지, 혼자서 나아갈 건지.”“재운아, 나도 밴드 버리고 싶은 거 아니야.”“그럼 왜 자꾸 우리랑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여? 네 마음이 어딘가에 가 있으니까 그렇지.”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수정아, 솔직히 말할게. 난 네가 무대에서 흔들릴 때마다 같이 흔들려. 근데 널 붙잡을 수 없는 게 너무 힘들어.”그는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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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무너지는 리듬, 꺼지지 않는 불꽃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공기는 이미 갈라져 있었다.영수는 드럼 스틱을 탁탁 부딪히며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고, 현아는 베이스 케이스를 닫은 채 바닥만 보고 있었다.누구도 내 쪽을 보지 않았다.나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지만, 공기는 응답하지 않았다.“오늘은… 합주 안 해?”내 물음에 현아가 고개를 들었다.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화도 아닌, 체념에 가까웠다.“수정아, 이제는 솔직히 말해. 넌 결국 혼자 갈 거잖아.”“아니야, 나 혼자만의 길로 가고 싶은 거 아냐.”“근데 현실이 그렇잖아. 심사위원들도, 언론도 다 너만 불러. 우리 이름은 어디에도 없어.”영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계속 이 상태로는 못 하겠다. 연습을 해도 곡이 무너지고, 마음도 안 맞고.”그는 드럼 스틱을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어갔다.“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순간,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나는 두 손을 꼭 쥔 채 아무 말도 못 했다.그때 재운이 기타를 치던 손을 멈추고 앞으로 나왔다.“그만해. 아직 정리할 때 아냐.”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방 안의 공기를 흔들었다.“우리가 버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수정이 혼자만 잘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음악이 살아남으려면 같이 가야 해.”현아가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같이? 재운아, 넌 진짜 그렇게 믿어? 네 눈에도 우린 그냥 배경이잖아.”“아니. 난 끝까지 같이 가고 싶어. 그리고… 수정이도 마찬가지야.”그는 내 쪽을 보았다.“그치?”나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심장이 고통스럽게 울렸다.그날 밤, 옥탑방으로 돌아오자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기타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현을 천천히 울리자, 짧은 떨림 속에서 김한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이번엔 지난번보다 훨씬 선명했다.얼굴의 윤곽, 어깨, 손끝까지 뚜렷했다.“김한 씨!”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바라봤다.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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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경계의 무대

본선 무대 하루 전,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최종 리허설이 열렸다.나는 대기실에 앉아 기타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줄을 하나씩 맞췄다.손끝이 바늘처럼 예민해져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문이 열리자 재운이 들어왔다.그는 기타를 들지 않고, 음료수 캔만 두 개 들고 있었다.“목 마를 것 같아서.”그는 캔을 내밀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어제 밤에 잠 좀 잤어?”나는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거의 못 잤어. 계속 서이란 목소리만 들려.”재운은 짧게 숨을 내쉬며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그녀 말은 신경 쓰지 마. 네 무대는 네가 지켜야 해.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야.”그의 말에 심장이 두 번 세게 뛰었다.나는 시선을 피했지만, 그가 다가오는 온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리허설은 무거운 긴장 속에 진행됐다.조명과 사운드 점검이 끝나자, 심사위원들이 객석에서 메모를 하며 참가자들의 무대를 지켜봤다.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호흡이 거칠어졌다.그 순간, 무대 한쪽에서 서이란이 나타났다.그녀는 담당 스태프와 웃으며 얘기하더니, 내 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잘 준비했어? 내일은 실수하면 안 되잖아.”나는 짧게 대답했다.“걱정 마. 실수 안 할 거니까.”“좋네. 근데 실수는 본인이 눈치채기도 전에 티가 나는 거라서.”그녀는 눈빛으로 나를 꿰뚫으며 말을 이어갔다.“밴드도 떠났고, 이제 곁에 붙잡아 줄 사람도 없지? 결국 네 목소리 하나에 모든 게 걸린 거야. 네가 네 자신을 믿을 수 있겠어?”나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믿을 거야. 내일은.”그녀는 흘낏 웃더니 무대로 향했다.그 뒷모습은 단단한 벽 같았다.내 리허설 차례. 마이크 앞에 섰지만, 손이 떨려 피크를 놓쳤다.순간 객석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렀다.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나는 곧 기타를 다시 움켜쥐었다.그때, 귀에 낮은 목소리가 닿았다.“호흡을 길게, 자신 있게.”고개를 들자 무대 뒤쪽에 김한의 실루엣이 어렴풋하게 보였다.빛과 그림자가 겹친 자리에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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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경계의 무대

본선 무대 하루 전,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최종 리허설이 열렸다.나는 대기실에 앉아 기타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줄을 하나씩 맞췄다.손끝이 바늘처럼 예민해져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문이 열리자 재운이 들어왔다.그는 기타를 들지 않고, 음료수 캔만 두 개 들고 있었다.“목 마를 것 같아서.”그는 캔을 내밀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어제 밤에 잠 좀 잤어?”나는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거의 못 잤어. 계속 서이란 목소리만 들려.”재운은 짧게 숨을 내쉬며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그녀 말은 신경 쓰지 마. 네 무대는 네가 지켜야 해.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야.”그의 말에 심장이 두 번 세게 뛰었다.나는 시선을 피했지만, 그가 다가오는 온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리허설은 무거운 긴장 속에 진행됐다.조명과 사운드 점검이 끝나자, 심사위원들이 객석에서 메모를 하며 참가자들의 무대를 지켜봤다.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호흡이 거칠어졌다.그 순간, 무대 한쪽에서 서이란이 나타났다.그녀는 담당 스태프와 웃으며 얘기하더니, 내 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잘 준비했어? 내일은 실수하면 안 되잖아.”나는 짧게 대답했다.“걱정 마. 실수 안 할 거니까.”“좋네. 근데 실수는 본인이 눈치채기도 전에 티가 나는 거라서.”그녀는 눈빛으로 나를 꿰뚫으며 말을 이어갔다.“밴드도 떠났고, 이제 곁에 붙잡아 줄 사람도 없지? 결국 네 목소리 하나에 모든 게 걸린 거야. 네가 네 자신을 믿을 수 있겠어?”나는 속으로 심호흡을 했다.“믿을 거야. 내일은.”그녀는 흘낏 웃더니 무대로 향했다.그 뒷모습은 단단한 벽 같았다.내 리허설 차례. 마이크 앞에 섰지만, 손이 떨려 피크를 놓쳤다.순간 객석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흘렀다.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나는 곧 기타를 다시 움켜쥐었다.그때, 귀에 낮은 목소리가 닿았다.“호흡을 길게, 자신 있게.”고개를 들자 무대 뒤쪽에 김한의 실루엣이 어렴풋하게 보였다.빛과 그림자가 겹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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