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옥탑방의 멜로디 / Chapter 131 - Chapter 140

All Chapters of 옥탑방의 멜로디: Chapter 131 - Chapter 140

155 Chapters

130. 쇼케이스, 불려진 이름

콘서트홀 입구 앞은 이른 아침부터 인파로 붐볐다. 팬들은 내 이름이 적힌 응원 슬로건을 들고 줄을 서 있었고, 방송 카메라들이 관객들의 열기를 담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기자들이 내리는 차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을 쏟아냈다.“오늘 첫 앨범 쇼케이스, 소감이 어떠십니까?”“서이란 씨와의 비교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번 무대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나는 짧게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비교보다는 제 이름으로 노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내 말이 마이크를 타고 번져나갔을 때, 순간 낯선 전율이 몸을 스쳤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는 순간이 왔다.무대 뒤 분장실, 거울 앞에서 마이크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재운이 옆에 앉아 내 손을 덮었다.“이 무대는 네가 만든 노래로 서는 첫 자리야. 완벽할 필요 없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소리로 내면 돼.”그는 잠시 멈추고 덧붙였다.“근데 한 가지는 완벽했으면 좋겠어.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거.”그 말은 마음을 차분하게 눌러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조명이 꺼지고, 관객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무대 중앙에 걸어 들어가자 수천 개의 눈빛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심장이 귀까지 뛰었지만, 이번에는 그 두근거림이 무섭지 않았다.첫 곡은 앨범의 타이틀곡. 기타 루프 위로 내 목소리가 얹히자, 객석이 고요해졌다. 후렴에 다다르자, 준비해온 영상이 스크린에 흘렀다. 옥탑방에서 시작된 작은 장면들 낡은 기타, 창문 너머 야경, 손으로 적어내린 가사가 음악과 함께 흘렀다.관객의 환호가 물결처럼 퍼졌다.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이어갔다. 김한의 부재가 이제는 공허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직 내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곡이 끝났을 때, 조명이 밝아지고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수정! 수정!”내 이름이 합창처럼 울렸다. 나는 처음으로 그 소리를 정면으로 들을 수 있었다.쇼케이스는 이어졌다. 인터뷰 섹션에서 사회자가 물었다.“이번 앨범에 특별히
Read more

131. 그림자를 지운 소리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날 선 긴장감이 오래 남았다.나는 그날 밤 옥탑방에서 기타를 켰다. 여전히 빛은 없었지만, 내 손끝에서 울린 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김한의 부재는 이제 당연해졌다. 대신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리듬이 점점 선명해졌다.재운이 보내준 편곡 파일을 열고, 나는 가사와 멜로디를 덧붙였다. 모니터 앞에 앉아 새벽까지 반복 녹음을 했다. 피곤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이건 단순히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세계를 세워가는 과정이었으니까.며칠 뒤, 기획사 회의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곡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프로듀서와 매니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확실히 색이 보입니다. 단순한 신예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아티스트네요.”그 순간, 어깨에 놓인 무거움이 조금은 풀렸다. 이제 나는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내 음악을 가진 사람이었다.밤이 되어 옥탑방 창가에 앉았다. 불빛이 도시 위로 흐르며 반짝였다. 나는 속삭였다.“김한 씨, 고마워요. 당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서 있어요.”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요 속에서 노래가 들렸다. 내 안에서 피어나는, 나의 목소리.녹음실의 공기는 숨조차 묵직했다. 앨범 수록곡 마지막 곡을 완성하는 날이었다.마이크 앞에서 나는 수십 번 같은 소절을 불렀다. 처음에는 감정을 담으려 했으나, 피로가 쌓이자 목소리가 갈라졌다.재운은 모니터 뒤에서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저었다.“다시 가자. 지금 감정이 아닌 습관으로 부른 거야. 이건 마지막 곡이잖아. 남아 있는 걸 다 쏟아내.”나는 마이크를 꽉 쥐었다.“근데… 나도 지쳤어.”“지쳐도 돼. 하지만 그 지침까지 노래에 담아. 진짜는 그런 거니까.”그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가슴에 박혔다.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 눈물이 맺혀도 억지로 참지 않았다. 그 눈물 섞인 소리가 곡 끝에 남았다. 녹음이 끝나자 방 안은 침묵에 잠겼다.재운이 조용히 말했다.“…됐다. 이게 마지막 퍼즐이다.”
Read more

132. 파도의 시작

앨범이 발매된 첫날, 차트 화면에 곡 제목이 올라오는 걸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처음엔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몇 시간 만에 순위가 급격히 상승했다. 사람들이 댓글에 올린 문장은 단순했다.“가사가 심장을 건드린다.”“완벽하지 않은 목소리라 더 진짜 같다.”나는 손끝이 얼얼할 만큼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그동안의 녹음실 밤과, 무너질 뻔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내 이름이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플레이리스트의 주인공으로 불리고 있었다.기획사 사무실은 분주했다. 홍보팀은 인터뷰 일정을 조율했고, 방송국에서 추가 섭외가 쏟아졌다.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이번 반응은 예상 이상입니다. 수정 씨, 이제는 진짜 성장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데뷔 앨범부터 자기 세계를 보여준 뮤지션으로 불릴 겁니다.”그 말은 기쁘면서도 무거웠다. 더 이상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저녁, 녹음실을 나서는 길. 재운이 내 옆에 서서 묵묵히 걸었다. 잠시 침묵 끝에 그가 말했다.“오늘 네 곡이 차트 30위 안에 들어왔어. 진심으로 축하해.”나는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무겁게 떨렸다.“축하보다… 겁이 나. 내 이름이 이렇게 빨리 알려지면, 그만큼 빨리 잊히기도 하잖아.”그는 걸음을 멈추고 내 앞에 섰다.“사람들은 잊어도 돼. 중요한 건 네가 잊히지 않을 노래를 남기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넌 이미 그걸 하고 있어.”나는 그의 말에 마음이 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물었다.“우리 관계도… 사람들 눈에 잊히면 괜찮을까?”그는 잠시 놀란 듯하다가 차분히 대답했다.“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내겐 중요하지 않아. 난 네 무대 밖에서의 삶도 함께하고 싶으니까.”그 대답이 공기 속에서 오래 울렸다.며칠 뒤, 음악 방송 대기실. 모니터에 ‘서이란, 파격 퍼포먼스 예고’라는 뉴스 자막이 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말했다.“사람들은 날 불안정하다 말하지만, 난 그 불안정 자체를 무대로 보여줄 겁니
Read more

133. 흔들림이 만든 이름

나는 그 기사를 읽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은 무대에 선 동료이자 경쟁자로서, 그녀가 더 깊은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그날 밤, 옥탑방. 기타를 켜고 멜로디를 흘리는데, 김한의 흔적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백이 자연스러웠다. 예전 같았으면 “왜 나타나지 않지?”라며 기다렸을 텐데, 지금은 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충분했다.나는 가사 노트를 펼쳤다.“흔들리는 무대 위에서도, 내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글자를 적으며 깨달았다. 김한이 떠난 자리를 이제 내가 메우고 있다는 걸.며칠 뒤, 방송국 복도. 우연히 서이란과 마주쳤다. 그녀는 피곤에 절은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날 선 눈빛을 띠고 있었다.“사람들이 널 ‘진심’이라 부르더라. 난 ‘위험하다’고 하고.”나는 조심스레 말했다.“진심도, 위험도 다 음악의 얼굴 아닐까? 우리는 그냥 다른 길을 가는 거지.”그녀는 짧게 웃었다.“네 말이 맞아. 하지만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놓고 비교하는 이상, 우린 결국 서로의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어.”그녀의 말이 오래 남았다.밤이 되어 재운과 옥탑방에 앉아 작업 파일을 검토했다. 그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부분, 네 목소리만 두드러지게 하고 싶어. 악기를 줄이고, 네 숨소리까지 담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내 목소리가 흔들려도 괜찮아?”“그 흔들림 때문에 사람들이 널 찾는 거야. 네가 완벽하면, 너는 네가 아니지.”그 말은 단순한 음악적 조언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고백처럼 들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럼 나,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부를게.”그 순간, 무대와 사랑이 겹쳐졌다. 음악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준 건 바로 그였다.앨범 발매 일주일째, 소속사 회의실 분위기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음원 차트 20위권에 곡이 두 곡이나 올라 있었고, 방송 출연 요청이 연달아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음악 페스티벌 쪽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Read more

134. 파도 위의 목소리

축제 당일, 공연장 앞은 이미 인파로 넘쳐났다. 수만 명이 광장과 언덕을 메우고 있었고, 거리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마다 관객이 몰려 있었다. 방송국 중계 카메라가 하늘을 훑으며 관객들의 함성을 담아냈다.대기실에 앉아 있자니 숨이 턱 막혔다. 내 차례는 세 번째. 앞선 두 팀은 유명 밴드였고, 무대가 끝날 때마다 관객의 함성은 폭발했다. 마이크를 쥔 손에 땀이 배어들었다.재운이 옆에 앉아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긴장하지 마. 네 무대는 네가 만든 노래로 세상에 서는 첫 진짜 순간이야. 오늘 네가 해야 할 건 단 하나, 네 목소리를 믿는 거야.”그의 눈빛이 내 심장 깊숙이 닿았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무대 위로 올라서는 순간, 조명과 함성이 동시에 폭발했다. 관객석은 바다처럼 출렁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첫 소절을 내뱉었다.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수만 명의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엔 미세한 떨림이 있었지만, 후렴으로 넘어가자 파도가 밀려오듯 관객의 호흡이 맞춰졌다. 수많은 눈빛이 하나로 모여 나를 향했다.스크린에는 옥탑방에서 찍은 작은 영상이 흘렀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쓰던 장면, 창문 너머 야경, 낡은 책상 위에 쌓인 가사 노트. 그 모든 장면이 음악과 함께 관객의 심장에 닿았다.마지막 고음이 터져 나왔을 때, 관객이 동시에 함성을 질렀다. 파도처럼 솟구치는 소리. 나는 눈가가 뜨겁게 젖어드는 걸 느꼈다. 김한이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빈자리 덕분에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선명하게 다가왔다.노래가 끝났을 때, 관객은 기립해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다.“수정! 수정!”그 합창이 내 뼛속을 울렸다.잠시 후, 서이란의 차례였다. 그녀는 단 한 명도 무대 위에 두지 않았다. 반주도, 백댄서도 없이 홀로 무대에 섰다. 오직 마이크와 그녀의 목소리만 있었다.첫 소절은 강렬했다. 그러나 두 번째 곡으로 넘어가면서 목소리가 흔들렸다. 무대를 지켜보
Read more

135. 낯선 하늘 아래 단단한 이름

“이건 세계 무대에 설 기회입니다. 한국 신예 중 단독 초청은 드문 일이에요.”나는 초대장을 받아들며 손끝이 떨렸다. 더 큰 무대, 더 넓은 세계. 그러나 동시에 어깨 위의무게가 두 배가 되었다.밤, 옥탑방. 창문을 열자 도시의 불빛이 별자리처럼 반짝였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김한 씨, 정말 여기까지 왔어요. 하지만 이제부턴 저 혼자 걸어야 해요. 두렵지만, 그래도 제 이름으로.”기타를 켜고 새 멜로디를 흘렸다. 이번에는 흔들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 호흡으로만 이어졌다. 빛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울림이 내 안에서 퍼지고 있었다.해외 초청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은 또다시 큰 제목을 달았다.“남수정, 세계 무대에 오르다.”국내 팬들은 열광했고, 동시에 이제는 한국을 넘어간다는 기대와 압박이 동시에 쏟아졌다.기획사는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영어 인터뷰 트레이닝, 해외 무대용 세트 구성, 현지 매체와의 사전 인터뷰까지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다. 나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사이, 내가 정말 세계 무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출국 전날 밤, 옥탑방. 재운과 마지막 리허설을 마친 뒤, 나는 기타를 내려놓았다.“재운아, 솔직히 겁나. 국내 무대에서도 버거웠는데, 외국 관객 앞에서 내 노래가 통할까?”그는 피곤한 얼굴에도 단호하게 말했다.“네 노래는 언어가 아니야. 진심이야. 그건 어디서든 통할 거야. 단지 네가 믿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그의 말이 따뜻했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떠나면 그는 내 옆에 없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홀로 싸워야 했다.비행기에서 창밖을 보았다. 도시 불빛이 점처럼 흩어지고, 곧 끝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낯선 대륙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공항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현지 기자와 팬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영어로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어색하면서도 전율처럼 다가왔다.호텔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긴
Read more

136. 세계의 조명 아래

공연 다음 날 아침, 호텔 프런트에 내려갔을 때 현지 신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커다란 1면 사진 속에 내 얼굴이 실려 있었다.“한국에서 온 새로운 목소리, 진심으로 무대를 울리다.”기사에서는 언어 장벽을 넘는 감정 전달을 강조했고, 몇몇 음악 평론가는 “올해 페스티벌의 가장 순수한 순간”이라고 평했다.휴대폰을 켜자 국내 기사들도 폭주하고 있었다.“남수정, 해외 무대 사로잡다”“한국 신예, 글로벌 뮤지션으로 급부상”나는 화면을 보며 실감이 나지 않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무대에 선 가수들의 기사 속에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그날 오후, 현지 방송국에서 긴급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 앞에 앉자, 기자가 물었다.“당신의 노래는 언어를 몰라도 감동을 줍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제가 가진 건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제 이야기를 담은 목소리뿐이에요. 그게 닿았다면, 아마 진심 때문일 겁니다.”통역사가 말을 옮기자, 기자와 스태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인터뷰가 끝난 뒤, 제작진 중 한 명이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노래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오늘 당신을 알게 된 게 행운이에요.”그 말이 낯설면서도 깊이 남았다.밤, 호텔 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보았다. 낯선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지만, 그 속에서 묘한 고독이 스며들었다. 한국에 있는 재운이 떠올랐다.영상 통화를 걸자, 그는 아직 사무실에 있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지만, 웃음을 지었다.“신문 봤어. 네가 여기까지 올 줄 알았다.”나는 화면을 보며 웃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무대 뒤에서 네 얼굴 못 본 게 제일 힘들었어.”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조용히 대답했다.“나도 그래. 근데 우리가 서로 멀리 있어도, 결국 같은 음악을 만들고 있잖아. 그게 버팀목이야.”통화가 끝난 뒤,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무대 위
Read more

137. 세계가 부르는 나의 이름

그 무렵, 서이란의 이름은 더 깊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방송국에서 준비한 콘서트를 돌연 취소한 그녀는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나는 더 이상 타인의 무대 위에 설 수 없다. 이제 내 길은 내가 정한다.”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어떤 이는 그녀의 선언을 지지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선택”이라며 우려했다.나는 그 글을 읽고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우리 둘은 한때 같은 꿈을 향해 달렸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며칠 뒤, 국제 방송 인터뷰가 있었다. 스튜디오에 앉아 외국인 진행자가 물었다.“당신이 무대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진심’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건 우연이 아닐 겁니다. 당신에게 진심이란 무엇입니까?”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진심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상처와 두려움까지 보여주는 용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노래는 그 용기를 내는 방법입니다.”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는군요.”그 순간, 내 안에서 이제는 세계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그날 밤, 옥탑방 창가에 앉아 있었다. 서울의 불빛은 여전히 익숙했지만, 마음은 이미 낯선 도시들을 향하고 있었다. 재운이 곁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네가 어디에 있든, 결국 돌아올 곳은 여기일 거야. 난 그걸 지킬 거고.”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며 속삭였다.“내가 멀리 가더라도, 결국 함께 있는 거지?”“그래. 무대가 넓어질수록 우리 둘의 거리는 더 단단해질 거야.”그의 목소리는 약속처럼 깊이 남았다.기타를 켜자 새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옥탑방의 작은 울림을 넘어, 더 큰 무대를 향한 길잡이 같은 선율이었다. 김한의 부재는 더 이상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이제는 나 혼자의 목소리로 세상에 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유럽 투어 일정표가 메일로 도착했을 때, 나는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파리, 베를린, 런던, 밀라노. 도시 이름만으로도 숨이
Read more

138. 끝없이 이어지는 무대

파리 공연을 끝낸 뒤, 투어는 쉼 없이 이어졌다. 베를린에서는 차갑고 직설적인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첫 곡을 부르는 동안 객석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환호가 적어 당황했지만,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 관객 전원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함성보다 묵직했고, 오래 울렸다.“여기선 감정 표현이 절제돼 있어. 하지만 네 음악은 그 장벽까지 뚫었어.”공연 뒤, 재운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함성이 없으니까 순간 무서웠어. 혹시 통하지 않는 건가 싶었거든.”“네 목소리는 언어를 넘어가. 그냥 네가 흔들리지 않으면 돼.”그의 말은 다시 중심을 잡아주었다.런던 공연은 또 달랐다. 자유롭고 거칠게 반응하는 관객들 속에서, 나는 더 크게 호흡해야 했다. 현지 뮤지션이 중간에 무대에 올라와 함께 즉흥 연주를 이어갔고, 예상치 못한 콜라보는 현장을 폭발시켰다.무대 뒤, 현지 프로듀서가 다가와 말했다.“즉흥에 강하네. 네가 준비된 아티스트라는 증거야.”그 말이 낯설게 다가왔지만,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심어주었다.도시는 달라질수록 관객의 색도 달라졌다. 이탈리아에서는 음악을 오페라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의 호흡과 감정을 섬세하게 다듬어야 했다. 작은 손짓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무대의 일부가 되었다.매 공연마다 나는 다른 내가 되었다. 같은 곡이었지만, 도시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내 음악이 더 넓어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하지만 무대가 커질수록 압박도 커졌다. 투어 중반, 현지 언론에서 또다시 기사들이 쏟아졌다.“남수정, 프로듀서와 동행… 단순한 협업일까?”“뮤지션의 사생활, 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나”기사 밑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고, 일부는 공연보다 관계에 더 집중했다.나는 호텔 방에서 그 기사를 읽고 머리를 감싸쥐었다.“왜 자꾸 무대보다 이런 게 더 주목받는 거야…”재운은 담담
Read more

139. 그림자를 지운 목소리

나는 영상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여전히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안이 그녀의 무대를 더 강렬하게 만들고 있었다.며칠 뒤, 소속사에서 열린 회의. 팀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수정 씨는 한국과 세계를 잇는 다리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단순히 국내 아티스트가 아니라, 국제적인 브랜드예요. 앞으로는 한국 무대뿐 아니라, 해외와의 협업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겁니다.”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순간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제는 단순히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이름은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 했다.회의가 끝난 뒤, 재운과 단둘이 남았다.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너… 아까 공항에서 대답한 거, 후회 안 해?”나는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후회는 없어. 지금은 내 노래가 먼저야. 하지만 언젠가는 말할 거야. 우리가 함께라는 걸.”그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그럼 그때까지 내가 버틸게. 네가 더 커질 때까지.”그 순간, 우리 둘은 서로에게 약속을 새겼다.밤, 옥탑방. 창문을 열자 서울의 불빛이 밀려왔다. 나는 기타를 켜고, 투어 동안 머릿속에만 담아 두었던 멜로디를 흘려보냈다. 세계 무대에서 얻은 울림이 손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이제는 어디서든 내 목소리로 설 수 있어.”속삭이듯 노래를 부르며, 나는 알았다. 김한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내 이름이 내 길을 밝히고 있었다.귀국 후 며칠 동안 언론과 방송은 끊임없이 내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나 진짜 시험은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형 공연, '글로벌 아티스트 환영 콘서트'. 해외 투어를 성료하고 돌아온 아티스트를 환영하는 자리였고, 수많은 카메라와 팬들 앞에서 다시 서야 했다.공연 전날, 무대 리허설을 마치고 빈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수만 개의 의자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투어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았지만, 이곳 무대에 서는 게 더 떨렸다. 한국에서, 내 고향에서, 내
Read more
PREV
1
...
11121314151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