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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의 멜로디의 모든 챕터: 챕터 171 - 챕터 180

194 챕터

179.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대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매니저의 전화가 쏟아졌다. 전날 인터뷰 요청이 폭주했던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해외 페스티벌 측에서 정식 계약서를 보내온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투어 제안이었다. 달력 위에 찍힌 일정표는 숨 막힐 만큼 빽빽했고, 도시 이름 하나하나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런던, 파리, 베를린, 그리고 도쿄까지.재운은 서류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빠른 손놀림으로 요약했다.“수정아, 이건 그냥 제안이 아니야. 정식 초청장이야. 만약 수락하면, 너는 이제 국내 신인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는 거야.”그는 눈빛을 반짝였지만, 동시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환호와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머리가 복잡해졌다. 해외 무대라는 말은 꿈같았지만, 동시에 김한의 존재와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더 높이 오를수록, 그 울림이 점점 약해지는 듯했다.점심 무렵, 방송국 건물 안에서 우연히 서이란과 마주쳤다. 그녀는 새 안무 영상을 모니터로 확인하며 땀에 젖은 채였는데, 그 얼굴은 오히려 날카롭게 빛나 보였다.“해외 무대 간다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소문이 빠르네.”“이제 진짜 시작이네. 네가 울림을 가져갔듯이, 나는 불꽃을 다시 태울 거야. 이번에는 단순히 퍼포먼스가 아니라… 내 안의 불완전함까지 무대에서 다 보여줄 거야.”그녀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불안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움켜쥔 듯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란이 정말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곧 내 앞에 벽처럼 다가오겠구나.저녁 리허설이 끝난 뒤, 옥상에 올라 기타를 잡았다. 도시의 불빛이 아래에서 물결치듯 반짝였고,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조용히 현을 튕기자, 낮게 가라앉은 울림 속에서 김한의 목소리가 겹쳐졌다.“…세상은 널 앞으로만 밀어내겠지. 하지만 네가 스스로를 잃으면, 울림도 사라진다.”나는 기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김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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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첫 세계 무대

무대 위로 오르기 전, 대기실은 유난히 차가웠다. 공조명 탓인지 숨이 턱 막힐 만큼 공기가 무거웠다. 나는 기타 줄을 한 번 더 조율하며 손끝을 떨지 않게 다잡았다. 하지만 떨림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시작돼 있었다.스태프가 다가와 출연 순서를 알렸다. “남수정 씨, 준비해주세요. 오프닝 후 바로 입장입니다.”그 순간, 심장이 귀 옆까지 치솟는 듯 쿵쾅거렸다.재운이 옆에서 작은 수첩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내가 틈틈이 적어 둔 가사와 음정 메모들이 빼곡했다. 그는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이건 네가 쓴 거고, 네가 살아온 시간들이야.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야. 그대로 무대에 보여주면 돼.”나는 가만히 웃어 보였다. “고마워. 나한테 그런 걸 잊지 않게 해줘서.”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중앙을 바라보니, 수많은 관객들이 이미 객석을 메우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얼굴, 언어, 색채가 모여 거대한 바다처럼 일렁였다. 조명이 꺼지고, 오프닝 음악이 흐르자 관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마이크 스탠드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기타 줄이 손끝에서 미세하게 울리자 심장이 그 리듬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첫 소절.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홀 전체로 퍼져 나갔다. 낯선 언어권의 청중이었지만, 눈빛이 곧장 반응을 보내왔다.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고, 어떤 이들은 휴대폰 불빛을 켜서 하늘로 흔들었다.그 순간, 모든 두려움이 잦아들고 익숙한 울림만이 남았다. 이 울림을 믿어. 네 안에 있는 건 사라지지 않아. 김한의 목소리가 귓가에 겹쳐 들려왔다.공연 중반, 갑자기 스피커에서 작은 잡음이 섞여 들어왔다. 순간 집중이 흐트러졌다. 기타 소리가 잠시 엇나가자 객석에서도 술렁임이 일었다. 하지만 밴드 세션이 곧장 박자를 다시 맞춰줬고, 나는 심호흡을 깊게 내쉰 뒤 다시 노래를 이어갔다.내 눈은 무심코 객석 한쪽을 스쳤다. 그곳에 낯익은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형체가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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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파리로 향하는 길목

런던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아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출국 게이트 앞에는 팬들과 기자들이 몰려 있었는데, 손에 든 피켓과 휴대폰 화면에 새겨진 이름은 대부분 서이란이었다. “FIRE QUEEN”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공항을 붉게 물들였다.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들의 환호가 뚫고 들어왔다. “서이란!”이라는 외침 사이사이, 희미하게 “수정”이라는 이름도 들렸지만, 균형은 확연히 기울어져 있었다.재운이 사람들을 밀어내며 내 옆을 지켰다.“신경 쓰지 마. 네 팬들도 점점 늘고 있어. 다만 지금은 화려한 게 더 눈에 띌 뿐이야.”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게 비어 갔다.파리에 도착한 첫날, 스케줄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다.현지 라디오 인터뷰, 화보 촬영, 리허설 체크. 통역사가 곁에서 연신 프랑스어를 번역해 줬지만, 내 귀에는 단어가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질문보다도 ‘비교’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런던 공연에서 서이란 씨가 압도적이었는데, 파리에서는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실 건가요?”라디오 DJ의 질문에 나는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음악은 경쟁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남는 것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무대도 제 진심을 담아 보여드리겠습니다.”마이크 앞에서 담담하게 말했지만, 스스로도 목소리 끝이 약간 떨린 걸 알아챘다. DJ는 미소를 지었지만, 이미 라디오 부스 바깥에서는 서이란의 인터뷰를 기다리는 기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저녁, 리허설 무대에 올랐을 때 홀은 어제와 다른 긴장으로 가득했다. 파리 공연장은 런던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오히려 그만큼 밀도 있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장소였다. 마이크를 잡자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지만, 곧 익숙한 현의 울림이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때였다. 갑자기 객석 한가운데서 푸른빛이 번졌다. 시선을 옮기자,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김한이었다. 그는 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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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균열의 밤

파리 공연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도시는 여전히 술렁였다. 카페 테라스마다 공연 이야기가 오르내렸고, 신문 가판대에는 불꽃과 울림을 비교하는 사진이 전면에 실려 있었다. 서이란은 불타는 조명 아래서 눈부신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어둠 속에서도 목소리를 이어가는 장면이 함께 담겨 있었다.호텔 로비에서 그 신문을 본 순간, 묘한 이질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기사 제목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진심의 울림”이었지만, 사진 속 나는 불안해 보였다. 글과 표정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 사람들은 울림을 칭찬했지만, 나는 내 안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목소리를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재운은 로비에서 내 표정을 읽고는 신문을 빼앗듯 접어 가방에 넣었다.“보지 마. 기자들은 언제나 자극적으로만 쓰니까.”“괜찮아. 사실 기사보다는… 내 눈빛이 더 신경 쓰여.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게 그대로 찍힌 것 같아.”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흔들려도 돼. 중요한 건 끝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는 거야. 사람들은 그걸 봤어.”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점심 무렵, 파리 현지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사회자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런던과 파리에서 모두 큰 화제를 모으셨습니다. 하지만 서이란 씨의 무대가 더 화려했다는 평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나는 짧게 숨을 고르고 답했다.“화려함은 순간을 강하게 남기지만, 울림은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에 머문다고 생각합니다. 제 노래가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게 제가 무대에 서는 이유예요.”사회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은 살짝 지쳐 보였다. 리허설과 공연,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고갈되어 가는 듯했다.방송을 마치고 나오는데, 대기실 복도에서 서이란과 마주쳤다. 그녀는 이미 카메라를 향해 완벽한 미소를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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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불빛 아래 흔들리는 울림

밀라노의 아침은 예상보다 차가웠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성당 첨탑은 새벽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고, 그 아래 광장은 이미 분주했다. 방송국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고, 공연을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도시 곳곳을 뒤덮었다. 이름이 크게 박힌 건 서이란이었지만, 내 얼굴도 그 옆에 작게 걸려 있었다.상대적인 크기는 곧 우리 위치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긴장감은 숨조차 무겁게 만들었다. 손끝에 땀이 배어 기타 줄이 자꾸 미끄러졌다. 재운은 묵묵히 물병을 내밀며 내 옆에 앉았다.“오늘은 스포트라이트가 다 쏠릴 거야. 네가 이란한테 밀린다고 생각하지 마. 사람들은 예상 밖의 순간에서 마음을 빼앗기거든.”나는 그의 말이 위로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묘한 압박이 더해졌다. 예상 밖의 순간이라니… 그걸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시간이 흘러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무대 뒤는 전쟁터처럼 분주했다. 스태프들의 무전기 소리,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긴장한 아티스트들의 발걸음이 뒤섞였다. 나는 기타를 품에 안은 채 무대 옆에서 심호흡을 반복했다.서이란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스크린 전체에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객석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화려한 조명이 그녀를 감싸며 폭죽처럼 터졌다. 그녀의 노래는 불꽃처럼 터져 나왔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불꽃’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내 차례가 다가왔다. 무대 매니저가 손짓했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스포트라이트가 얼굴을 비추는 순간,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심장이 요동쳤고, 손끝이 떨렸다.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려오자 숨이 막히는 듯했다.첫 음을 튕겼다. 그러나 모니터에서 들려온 소리는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문제였다. 당황스러웠지만 곧바로 노래를 이어갔다. 목소리는 흔들렸고, 객석은 미묘하게 술렁였다. 그 순간, 객석 뒤편에 서 있는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김한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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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파도처럼 밀려온 후폭풍

밀라노 무대가 끝난 다음 날, 호텔 로비는 작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몰려든 기자들과 팬들이 현관을 가득 메웠고,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스태프들은 사람들을 막아내느라 분주했고, 우리 팀은 호텔 측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뒷문을 통해 이동해야 했다.차에 오르자 재운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전 세계 주요 음악 매체들이 일제히 내 무대를 기사로 다루고 있었다.“불꽃보다 더 오래 남는 울림”“어둠이 빚어낸 목소리, 남수정”“밀라노의 밤을 삼킨 기타와 노래”기사 제목 하나하나가 현실 같지 않았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날 무대에서 느낀 두려움과 흔들림이 고스란히 떠올라 가슴이 다시 요동쳤다. 내가 정말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켰단 말인가.재운은 흥분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단순한 신인으로만 취급되던 게 아니야. 네 목소리를 기억할 거고, 더 큰 무대에서 확인하고 싶어 할 거야.”그 말대로였다. 도착하자마자 매니저는 전 세계 공연 기획사와 방송국에서 쏟아지는 섭외 요청서를 보여주었다. 파리, 런던, 뉴욕, 도쿄까지.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도시들의 초청장이 책상 위에 쌓였다. 그 중 일부는 서이란에게 들어온 요청을 아예 내게 돌리고 싶다는 제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그 소식을 들은 서이란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같은 호텔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축하해. 이제 네 이름도 기사에 실리게 됐네.”말은 축하였지만, 톤은 싸늘했다.“하지만 잊지 마. 사람들은 언제나 불꽃을 먼저 찾는다. 네 울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불꽃이 터지는 순간 눈길은 다시 내게 돌아올 거야.”나는 굳이 맞서지 않았다. 대신 단호히 대답했다.“사람들은 눈을 사로잡는 불꽃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에 남는 울림을 기억하기도 해요. 무대가 끝난 뒤에도 남는 건 결국 그 울림이니까.”서이란의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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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무대는 네 거야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기타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손끝이 자꾸 흔들려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내가 과연 세계 무대에서도 울림을 만들 수 있을까, 불안이 목까지 차올랐다.그때, 창문 너머에서 희미한 기운이 일렁였다. 김한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투명에 가까워, 불빛 뒤에 겹쳐 보이는 그림자처럼 희미했다.“김한… 이렇게까지 옅어지면… 곧 사라지는 거예요?”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점점 더 큰 무대에 설수록, 나는 여기에 머물 수 없어. 하지만 그건 네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나는 눈을 꾹 감았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치밀어 올라 숨조차 막혔다.“당신 없는 무대가 두려워요. 나는 아직 당신의 힘에 기대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김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이제 네 목소리는 네 힘으로 울리고 있어. 나를 잊지 말되, 붙잡으려 하지는 마라.”그의 말은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졌지만, 내 마음에는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무릎 위에 기타를 올려놓고 떨리는 손끝으로 코드를 잡았다. 김한이 남긴 마지막 울림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음 날, 파리 공연을 앞두고 언론과 기획사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수십 개의 카메라와 수백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대답 하나하나가 기사 제목으로 뽑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불꽃과 울림, 둘 중 누가 세계 무대를 장악할 것 같습니까?”사회자가 던진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나와 서이란으로 향했다.서이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불꽃은 눈을 사로잡고, 무대를 지배합니다. 저는 그걸 보여드릴 겁니다.”자신감 가득한 목소리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차례가 되자,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울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저는 그 울림을 전할 겁니다.”순간, 플래시가 번쩍이며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두 선언은 전혀 달랐고, 그 차이가 앞으로의 대결을 더욱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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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파리 공연 당일

루브르 박물관 옆 대형 공연장 앞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국적의 팬들이 각자의 언어로 내 이름을 적은 플래카드를 흔들었고, 전광판에는 오늘 밤 공연의 생중계가 전 세계로 송출될 예정이라는 안내 문구가 떠 있었다.대기실은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밴드 멤버들은 악기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말을 아꼈다. 재운은 음향 엔지니어와 직접 부딪치며 모든 라인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고,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손가락을 꼼꼼히 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심장이 빨라졌다. 서이란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대형 스크린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객석은 불꽃놀이처럼 환호로 터졌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폭죽이 쏟아졌고, 그녀의 목소리는 강렬하게 홀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불꽃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내 차례가 다가왔다. 무대 뒤에서 기타를 매만지며 심호흡을 했지만 손끝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재운이 옆으로 다가와 짧게 속삭였다.“장비는 문제없다. 네가 흔들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 속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자 수천 명의 시선이 동시에 쏟아졌다. 마이크 앞에 서자 귀가 먹먹해질 만큼의 정적이 흘렀다. 기타 첫 음을 튕기는 순간,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했다.하지만 두 번째 음을 치자마자 모니터 스피커가 다시 불안하게 흔들렸다. 소리가 늘어지고 잡음이 섞였다. 순간 관객석에서 술렁임이 일어났다. 나는 당황했지만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목소리를 얹자 이번엔 마이크가 간헐적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객석 앞줄에 앉은 기자들의 눈빛이 번쩍였다. 실시간 중계 화면에도 그대로 송출될 게 분명했다. 손끝이 떨리며 순간적으로 노래가 흔들렸다.그때, 무대 뒤에서 재운이 엔지니어를 밀치고 직접 장비에 달려들었다. 그의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이번엔 단순한 장비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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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세계로 향하는 발걸음

파리 공연이 끝난 지 일주일, 우리 팀에게 날아온 메일은 충격적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미주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초청장이 들어온 것이다. 런던 로열 앨버트 홀, 뉴욕 카네기 홀, 도쿄돔, 그리고 서울까지. 이름만 들어도 숨 막히는 공연장들이었다.기획사 회의실에 모여 앉은 우리는 종이 더미와 전자 문서들을 마주했다. 매니저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기회이자 시험이에요. 단숨에 세계 투어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력적, 정신적 부담은 상상 이상일 거예요.”밴드 멤버들은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내뱉었다. 드러머는 “꿈같다”라며 손을 부르르 떨었고, 베이시스트는 “우리 같은 신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 역시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동시에 불안이 몰려왔다. 무대를 준비할수록 김한이 옅어져 가는 현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재운이 회의실 정적을 깨고 단호히 말했다.“받자.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 우리가 준비되어 있든 없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잡을 수도 있어.”모두가 숨을 고르는 사이, 내 시선은 유리창 너머 하늘을 향했다. 파리의 회색빛 구름이 엉켜 흐르고 있었고, 그 속에서 김한의 희미한 얼굴이 잠깐 겹쳐 보였다.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옳은 걸까?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결국 투어 일정은 확정됐다. 첫 무대는 런던이었다. 공항은 출국 소식을 들은 팬들로 가득했고, 플래시 세례가 눈을 부셨다. 손에 쥔 여권이 땀에 젖어 미끄러질 정도였다.탑승 게이트로 향하는 길, 재운이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네가 두려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이번 무대는 너 혼자 짊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가 함께야.”나는 그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어딘가 아프게 다가왔다. 김한의 사라져가는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정말 함께라는 말이, 끝까지 가능할까?비행기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퍼졌다. 그 붉은 빛 속에서 순간적으로 기타 줄이 반짝이는 환영이 비쳤다. 나는 눈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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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뉴욕, 불빛 아래의 그림자

뉴욕의 밤거리는 언제나 불이 꺼지지 않는 듯 활기를 뿜어냈다. 브로드웨이의 전광판은 화려하게 번쩍였고, 도시는 그 자체로 거대한 무대 같았다. 그러나 공연을 앞둔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런던 공연에서의 성취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이란의 그림자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대기실은 낯선 공기와 긴장으로 가득했다. 매니저는 인터뷰 일정과 언론 브리핑을 체크하며 분주하게 움직였고, 밴드 멤버들은 악기를 조율하며 각자의 루틴을 지켰다. 재운은 드럼 스틱을 돌리며 무심한 듯 내 표정을 살폈다.“네가 흔들리면 우리 다 같이 무너져. 괜찮지?”나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무대에만 오르면 달라질 거야.”하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무대에 오르자, 눈부신 조명과 함께 관객의 함성이 쏟아졌다. 런던보다 더 큰 규모, 더 뜨거운 열기였다. 수많은 팬들이 깃발을 흔들고, 휴대폰 불빛을 별처럼 반짝였다. 첫 곡은 무난하게 시작되었다.밴드의 리듬과 나의 목소리가 유려하게 맞물려 흐르자, 긴장은 조금씩 풀렸다.그러나 두 번째 곡 중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내 마이크에서 갑자기 음향이 끊겼다. 목소리가 객석에 닿지 않자 관객이 웅성거렸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지만, 재운이 드럼을 세게 두드리며 합을 끌어올렸다. 나는 곧바로 기타를 집어 들고, 마이크 없이 목청으로 불렀다.무대 위 스피커는 먹통이었지만, 객석에서 관객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천 명이 한 목소리로 가사를 읊조리자, 끊어진 마이크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거대한 합창은 도시의 소음을 뚫고 퍼져나갔다.그때 무대 뒤편,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시선 끝에 서이란이 나타났다. 검은 코트 차림으로 객석 사이에 서서 비웃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소리 없는 조롱을 흘렸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나는 의도적으로 눈을 돌렸다. 관객들의 목소리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으니까.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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