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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옥탑방의 멜로디: Chapter 61 - Chapter 70

155 Chapters

60. 리허설의 파문

음악제 이틀 전, 거대한 홀에 처음 들어섰다.천장은 돔 형태로 솟아 있었고, 벽면에는 천 년 가까이 된 프레스코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현대식 조명 장치가 그 위에 매달려 있었는데, 낯선 전통과 최첨단이 부딪히는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만들었다.무대 위에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온 아티스트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첼로의 깊은 울림, 소프라노의 고음, 전자음악 장비의 거친 리듬이 차례차례 홀을 가득 채웠다.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손에 땀이 배어드는 걸 느꼈다.“남수정 씨, 차례입니다.”현지 스태프가 손짓했다.낯선 억양의 영어가 귓가에 맴돌았다.기타를 들고 무대 중앙에 섰다.텅 빈 객석이지만, 수천 개의 시선이 있는 듯 압박감이 느껴졌다.숨을 들이쉬고 현을 튕겼다.소리가 홀을 따라 퍼져나갔지만, 이상하게 중간에서 잘려나가는 듯했다.마이크를 통해 울려야 할 음이 뒤엉켜 잡음으로 흘러나왔다.관객석에 앉아 있던 일부 아티스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장비에 문제가 있군요.”재운이 곧장 무대 뒤로 달려갔다.그러나 현지 음향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우린 건드린 게 없습니다. 시스템은 정상이에요.”나는 손가락으로 현을 다시 튕겼다.여전히 같은 잡음이 따라왔다.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필터를 건 것처럼 특정 대역의 음만 사라졌다.순간, 객석 한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서이란이었다.그녀는 팔짱을 끼고 앉아,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눈빛은 노골적으로 도발적이었다.리허설이 중단되자,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 웅성거렸다.“한국 가수, 장비에 문제가 있나 봐.”“저 정도면 무대 못 서는 거 아냐?”나는 기타를 꽉 쥐었다.여기서 흔들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앰프를 빼고, 그냥 생음으로 해도 될까요?”내 말에 재운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홀 크기가 너무 커서 목소리가 묻힐 수도 있어요.”“괜찮습니다. 시도해 보고 싶어요.”나는 마이크를 옆으로 치우고, 생음으로 기타를 울렸다.작은 소리가 홀 구석구석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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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무너진 음향, 홀로 선 노래

“바람 따라 흘러가는 목소리 하나"음향이 흔들리자, 사람들은 더 집중해 듣기 시작했다.조명이 불안하게 깜빡였지만, 오히려 무대가 불필요하게 화려하지 않게 보였다.노래만 남는 순간, 사람들의 눈빛은 내 입술 하나하나를 좇았다.후렴에 들어갈 때, 예상대로 마이크가 꺼졌다.홀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생목으로 불렀다.처음에는 목소리가 작게 느껴졌지만, 홀의 구조가 음을 받아 반사했다.천장과 벽이 내 목소리를 여러 겹으로 되돌려주었다.그 울림은 허밍이 아니었지만, 허밍을 닮은 듯한 착각을 만들었다.사람들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그 소리는 내 몸에서 시작해, '건물 자체가 함께 노래하는 듯 번졌다.“사라지지 않아 내가 부른 길 위에서”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손을 가슴에 얹었다.어떤 이는 눈을 감고, 어떤 이는 눈빛을 떨며 노래에 빠져들었다.그 순간, 허밍 대신 건물과 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합창 같은 울림이 홀을 가득 채웠다.노래가 끝났을 때, 무대는 잠시 정적에 잠겼다.바닷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며, 무대 위 커튼이 가볍게 흔들렸다.그리고 곧, 폭발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낯선 언어의 함성이 파도처럼 몰려왔다.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심사위원단이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한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곧이어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이어갔다.나는 숨을 몰아쉬며 객석을 바라봤다.그곳에 서이란의 얼굴이 보였다.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환호에 묻혀, 목소리는 아무 힘도 가지지 못했다.무대 뒤로 내려왔을 때, 재운이 달려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봤죠?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울림입니다. 이젠 누구도 부정할 수 없어요.”나는 기타를 꼭 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가슴은 뜨겁게 차올랐지만, 동시에 허전했다.허밍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네… 이제 정말 혼자네요.”나는 낮게 중얼거렸다.재운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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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귀국, 그리고 그림자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닿았을 때,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유럽에서의 공연이 전 세계로 송출된 지 단 사흘, 한국 언론은 이미 공항을 둘러싸고 있었다.유리 벽 너머로 수십 개의 카메라가 반짝였고, 확성기에서 이름이 연이어 흘렀다.“남수정 씨, 한마디만 해주세요!”“허밍 없는 무대, 스스로도 기적이라 느끼셨습니까?”“국제 음악제 우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나는 입술을 다문 채 천천히 걸었다.환호와 질문이 뒤엉켜 한 덩어리의 소음처럼 몰려왔지만, 그 속에서도 몇몇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괜찮아, 수정아. 넌 진짜야.”손팻말을 든 팬들의 눈빛이 나를 붙들었다.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발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공항을 빠져나온 뒤, 차창 밖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똑같은 도시, 똑같은 빌딩인데 유럽의 돌벽과 바다를 보고 돌아와서인지 모든 것이 유난히 번쩍였다.차는 곧장 서울 중심가로 향했고, 회사 건물 앞에는 이미 팬들이 모여 있었다.손에 든 꽃다발과 편지들이 창문 너머로 스쳤다.재운은 운전석에서 내 얼굴을 슬쩍 보더니 낮게 말했다.“다시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준비됐습니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제 제 목소리로 무대를 채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회사 건물 안, 대형 회의실.스태프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향후 활동 계획서가 놓여 있었다.'첫 정규 앨범 제작'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이제는 한 곡이 아니라, 당신만의 이야기를 엮을 차례입니다.”프로듀서가 설명했다.“허밍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제 대중은 노래 자체를 원합니다.”나는 그 말에 깊게 고개를 숙였다.허밍이 아닌 내 노래. 그제야 '가수 남수정’이라는 이름이 온전히 내 것이 된 듯했다.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저녁 뉴스가 긴급 자막을 내보냈다.“서이란, 해외 언론과의 조작 공모 정황 드러나”“후원사 계약 줄취소, 거대 기획사에서도 계약 해지”“전성기 끝? 추락 시작”화면 속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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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홀로 서서 마주한 만인의 빛

그는 내 손에서 기타를 받아 조심스럽게 케이스에 넣었다.나는 문득 물었다."재운 씨,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제 곁을 지켜주고 있었나요?”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미소를 지었다.“처음부터요. 다만, 당신이 스스로 노래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 것뿐입니다.”그 대답에 가슴이 묘하게 떨렸다.허밍 대신 그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며칠 뒤, 인터넷에 익명의 계정이 음원을 유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러나 확인해보니 전부 가짜였다.내 목소리를 흉내 낸 합성 파일, 허밍을 덧붙인 조작 음원.사람들은 처음엔 혼란스러워했지만, 곧 전문가들이 분석 결과를 내놨다.“이건 원본이 아닙니다. 남수정 씨의 최근 공연과 음역이 다르고,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오히려 여론은 역으로 흘러갔다.“서이란이 또 조작했구나.”“가짜 음원이라니, 이제는 너무 노골적이다.”나는 모니터로 기사를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제 노래가 무기가 될 줄은 알았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증오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어요.”재운은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무기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겁니다.당신 목소리가 진짜라는 증거가 그들의 거짓을 무너뜨리니까요.”그의 말은 단호했지만, 어쩐지 따뜻했다.나는 창밖 불빛을 바라보다가 낮게 속삭였다.“…그래도 끝까지 노래할게요. 설령 또 어떤 공격이 와도.”며칠 후, 드디어 앨범 첫 녹음이 마무리됐다.스튜디오 모니터에서 흘러나온 곡은 허밍도 장치도 없는 순수한 목소리와 악기뿐이었다.나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었다.김한의 흔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멀리서 바람이 스치는 듯한 감각이 함께했다.'혹시… 아직 어딘가에서 듣고 있는 건 아닐까.'그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떨렸다.나는 눈을 감은 채 속으로 말했다.“당신이 남긴 길 위에서, 계속 부를게요.”정규 앨범이 세상에 공개된 날, 서울 시내 대형 전광판마다 내 얼굴과 음반 제목이 동시에 떠올랐다.도시 전체가 한순간에 하나의 무대가 된 듯했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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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낯선 무대의 시작

공항 전광판에 ‘World Tour’라는 글자가 떠오르자, 심장이 두 배로 뛰었다.처음으로 ‘투어’라는 단어가 내 이름 옆에 붙었다.한때는 작은 옥탑방에서 흘리던 멜로디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세계 여러 도시를 도는 여정의 첫걸음이 된 것이다.비행기에서 내려 바라본 첫 번째 도시의 풍경은 서울과도 유럽 음악제의 도시와도 달랐다.높게 솟은 유리 빌딩 사이사이에 오래된 시장 골목이 남아 있었고, 하늘을 찌를 듯한 광고판에 내 얼굴이 걸려 있었다.사람들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나는 창문 너머로 그 장면을 보며, 손끝이 묘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투어 첫 공연이 열릴 아레나는 거대한 돔 형태였다.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은 아직 비어 있었지만, 리허설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압도적인 긴장감이 몰려왔다.조명이 천장 위에서 수십 갈래로 갈라져 내려왔고,수백 대의 스피커가 검은 성벽처럼 무대를 둘러쌌다.스태프들이 무전기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나는 무대 중앙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홀로 이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있을까'그 순간, 불안이 목을 죄었다.재운이 객석에서 지켜보다가 무전기를 내려놓고 말했다.“당신 노래는 공간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이 아레나도 예외가 아니에요.”나는 그 말에 작게 숨을 내쉬며 기타 줄을 튕겼다.맑은 소리가 금속 벽을 타고 울리며 되돌아왔다.스태프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 울림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리허설 도중, 대형 스크린에 갑자기 이상한 영상이 흘러들었다.내 과거 공연 장면에 낯선 음성이 덧씌워져 있었다.“허밍 없는 목소리는 공허하다.”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조작 영상이었다.관객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일부 관계자들이 수군거렸다.“저게 사실이면 어떻게 하지?”“관객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어.”나는 무대 위에서 스크린을 똑바로 바라봤다.서이란의 그림자가 이곳까지 따라왔음을 직감했다.재운이 곧장 방송 장비실로 달려갔다.몇 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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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유리창에 맺힌 단단한 미소

노래가 울려 퍼지자, 관객석에서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손전등과 휴대폰 플래시가 별처럼 떠올라 무대를 감쌌다.조명팀이 꺼버린 효과 대신, 관객들이 스스로 빛을 만들고 있었다.그러나 2절에 들어서자, 갑자기 마이크가 꺼졌다.스피커에서 잡음이 터지고, 화면은 일시적으로 검은색으로 전환됐다.관객석이 술렁였다.누군가 일부러 방해하고 있었다.나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대신, 생목으로 노래를 이어갔다.“사라져도 남아 내 안에 번져가는 목소리”처음엔 작게 들리던 소리가, 점점 관객석에서 합쳐졌다.누군가 따라 불렀고, 이내 수십 명, 수백 명이 목소리를 보탰다.순식간에 거대한 합창이 완성됐다.관객들이 만들어낸 합창은 스피커보다도 웅장했고, 그 울림이 돔 천장을 흔들었다.나는 눈을 들어 그 광경을 바라봤다.허밍이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사람들이 새로운 울림이 되어주고 있었다.방송국 생중계 화면에도 그 장면이 그대로 담겼다.해외 시청자들은 자막 채팅으로 감탄을 쏟아냈다."마이크가 없어도 울린다.”“이건 기적이 아니라 진짜 음악이다.”무대 뒤에서 서이란은 표정을 잃고 모니터를 노려봤다.손톱이 부러지도록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이미 무대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노래가 끝나자, 관객석은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손전등이 동시에 흔들리며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나는 기타를 끌어안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가슴은 벅차올랐지만, 눈물 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무대 뒤로 내려오자, 재운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봤습니까? 이제는 당신 목소리가 사람들을 움직이는 겁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네. 이제는 정말 제 노래예요.”공연이 끝난 직후, 대기실 복도는 전쟁터처럼 소란스러웠다.국제 언론 기자들이 몰려와 손에 카메라를 들고 질문을 쏟아냈다.“마이크가 꺼졌는데도 어떻게 노래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까?”“수만 명이 합창을 따라 부른 순간, 어떤 기분이었나요?”“허밍이 아니라 당신의 목소리였다는 걸 증명했다고 보십니까?”나는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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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두 번째 도시의 불협화음

두 번째 공연지는 이국적인 색채가 짙은 남쪽 해안 도시였다.공항에 내리자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고,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등불이 달려 있었다.축제 기간과 겹쳐 도시 전체가 음악제 분위기였다.현지 사람들은 드럼을 치며 거리를 행진했고, 아이들은 춤을 추며 손수건을 흔들었다.하지만 환영의 소란과는 달리, 공연장 앞에는 시위대가 모여 있었다.“남수정은 기만자!”현지 언어로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렸다.서이란의 지지자들이 이곳까지 따라온 것이었다.경찰이 질서를 유지했지만, 긴장감은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를 감쌌다.리허설은 순탄치 않았다.홀 내부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작은 소리도 증폭돼 날카롭게 울렸다.노래의 따뜻한 결이 차갑게 잘려 나갔다.나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공간과 목소리가 어긋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이 홀은 의외로 까다롭군요.”재운이 엔지니어와 긴급히 상의했다.“마이크 위치를 다르게 배치해보죠. 음향 반사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나는 무대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았다.허밍의 도움 없이, 이 공간에 내 목소리만 채워야 한다는 다시 밀려왔다.저녁, 공연 시작.관객석은 여전히 가득 찼지만, 시위대의 구호가 바깥에서 미약하게 들려왔다.관객들도 긴장한 듯, 시작 전부터 술렁거렸다.나는 심호흡을 하고 무대에 섰다.기타 소리를 울리자, 홀 천장이 떨리듯 반응했다.이번엔 리허설과 달리 목소리가 공간과 어울려 기묘한 울림을 만들었다.투박했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사람들의 귀를 붙잡았다.“익숙한 길이 아니어도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네”노래가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눈빛이 바뀌었다.차갑던 공기가 서서히 누그러지며, 손뼉이 박자에 맞춰 울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객석에서 놀란 비명이 터졌다.몇 초간 암흑이 이어졌지만, 나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어둠 속에도 길은 있어 서로의 숨결이 등불이 되니까”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시위대의 구호는 더 이상 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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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허밍 너머, 오롯한 나의 곡

세 번째 도시 공연이 끝난 뒤, 투어팀은 잠시 짧은 휴식을 허락받았다.다음 일정까지 이틀, 호텔 대신 외곽의 작은 별장 같은 숙소가 마련됐다.숲과 호수가 맞닿은 언덕 위 집은 여태껏 숨 막히게 쏟아지던 플래시 세례와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도착한 첫날 밤, 나는 테라스에 앉아 호수를 바라봤다.달빛이 수면 위에서 흔들렸고, 빛은 잔잔한 파문처럼 번져갔다.도시의 거대한 무대와 관객의 함성이 사라진 자리에, 이곳은 오로지 바람과 물소리뿐이었다.손에 쥔 펜이 노트 위를 느릿하게 움직였다.공연 중간중간 떠올랐지만 미처 적지 못했던 가사들이 한 줄씩 새겨졌다.“이런 데서도… 결국 노래만 쓰고 있네.”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렀다.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재운이 컵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커피입니다. 연습하느라 제대로 못 마셨잖아요.”나는 컵을 받으며 물었다.“…재운 씨는 왜 이렇게까지 저를 챙기나요?”그는 잠시 대답을 멈췄다.달빛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자, 미묘하게 떨리는 표정이 드러났다.“누군가를 믿는 게 제겐 오랜만이라서요.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일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나는 커피 향에 가려진 심장 박동을 숨기려 했지만,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이튿날 아침, 팀 전체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작은 정원 한켠에서 현지식 바비큐가 준비됐고, 스태프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음을 나눴다.나도 억지로라도 긴장을 풀려 했지만, 휴대폰에 도착한 알림 하나가 분위기를 무너뜨렸다.[속보]서이란, 국제 언론사와 단독 인터뷰 진행. ‘남수정의 비밀을 공개하겠다’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미 수천 개였다.“또 뭘 꺼낼 셈이지?”“이번엔 진짜 증거일지도 몰라.”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렸다.나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재운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곧장 내 휴대폰을 가져가 화면을 끄며 단호히 말했다.“지금은 보지 마세요.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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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폭로의 날

다음 날 아침, 숙소 거실은 이른 시간부터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모두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국제 언론사의 로고가 화면을 가득 채웠고, 곧 서이란이 단독 인터뷰에 등장했다.정교하게 다려진 흰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은 그녀는 여전히 완벽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남수정, 그 이름에 가려진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카메라가 줌인하자,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화면에는 낡은 옥탑방의 사진들이 교차했다.내가 처음 서울에 와서 살던 그 공간. 그리고 낯익은 기타가 클로즈업됐다.“그녀는 우연히 손에 넣은 ‘특별한 도구’를 통해 허밍이라는 힘을 빌렸습니다.그 힘이 없었다면, 여러분이 아는 남수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순간, 거실 안에 앉아 있던 스태프들의 얼굴이 굳어졌다.나는 숨을 멈춘 채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이어지는 영상은 조작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내가 무대 뒤에서 혼자 주저앉아 기타를 붙잡은 모습, 마치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설 수 없는 것처럼 편집돼 있었다.그리고 합성된 음성이 덧붙여졌다.“나는 허밍 없이는 노래할 수 없어…”거짓말이었다.하지만, 보는 이들 중 몇이나 사실을 분간할 수 있을까.SNS에는 이미 해시태그가 퍼지기 시작했다.#허밍의진실 #거짓된가수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숨소리조차 들키기 싫어, 손가락으로 무릎을 꼭 움켜쥐었다.재운이 곧장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렸다.“영상의 원본 흔적을 찾겠습니다. 합성 여부만 밝혀도 반전은 가능합니다.”프로듀서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말했다.“하지만 이미 여론은 움직이고 있어.오늘 밤 공연까지 이 이야기가 계속 퍼지면, 무대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피할 수 없어요. 무대에서 직접 보여줄 겁니다.허밍이 아니라도, 제 목소리가 진짜라는 걸.”말은 단단했지만, 속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그때 머릿속에 김한의 얼굴이 떠올랐다.“노래는 네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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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거짓을 삼킨 진짜의 울림

2절에 들어서자, 바람이 무대를 스쳤다.마이크 스탠드가 미세하게 흔들릴 만큼 강한 바람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목소리는 바람에 섞여 흩어졌고, 동시에 다시 모여 울렸다.관객석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노래에 흔들린 게 아니라, 거짓보다 강한 진짜를 처음 목격한 놀람이었다.후렴은 더욱 단순하게 썼다.화려한 비유나 장치 없이, 직설적인 문장으로.“나는 여기 있다. 빌린 목소리가 아니다이 길 위에, 내 발걸음으로 서 있다”관객들이 다시 술렁였다.어떤 이들은 눈을 감고 들었고, 어떤 이들은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찍었다.누군가는 나직하게 따라 불렀다.합창을 유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여러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노래가 끝났을 때, 광장은 묘한 정적에 잠겼다.이번엔 불신에서 비롯된 침묵이 아니었다.모두가 말 대신 감정을 삼킨 듯, 호흡 하나까지 고요했다.그리고 몇 초 뒤, 폭발적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목청껏 소리 질렀다.객석 위 전광판에도 생방송 자막이 뜨고 있었다.“합성 폭로, 현장 무대에서 무너졌다.”“남수정, 새로운 곡으로 진실을 증명하다.”나는 기타를 안은 채 무릎을 꿇듯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벅찬 고동이었다.무대 뒤로 내려오자, 재운이 다가왔다.그의 눈가에는 희미하게 젖은 빛이 맺혀 있었다.“봤습니까? 세상이 직접 확인했어요. 당신은 빌린 목소리가 아니라, 온전히 당신 자신입니다.”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목구멍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지만,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다.그날 밤, 도시의 언론들은 일제히 헤드라인을 바꿨다.서이란의 폭로는 조작된 의혹으로 규정되었고, 내 이름은 진짜 목소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하지만 나는 알았다.이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걸.서이란은 아직 마지막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그림자는 여전히 뒤에 남아 있었다.나는 호텔 방에서 창밖 불빛을 바라보며, 쓴 가사 마지막 줄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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