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해남의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바람조차 멈춘 듯했고, 바다는 마치 숨을 죽인 생명체처럼 잔잔한 표면 아래에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강혁은 등대 아래에서 서류 봉투를 쥐고 있었다.그 안에는 ‘LZM’이라 적힌 흑백 사진과,NIS 내부 기록에서 몰래 빼낸 사건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2017년, 연변 출신 여성 요원 실종.프로젝트명: 흑거미.마지막 통신 장소: 캄보디아 프놈펜.\그녀의 얼굴을 빛이 스쳤다.그 그림자 속에서, 그는 린자오밍을 떠올렸다.한 자, 한 자. 이름의 발음이 현실보다 오래도록 그의 머리 속을 울렸다.그가 그녀를 의심하는 게 죄처럼 느껴졌다.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었다.다음 날, 수진은 새벽부터 꽃을 다듬었다.장미, 국화, 안개꽃. 그녀의 손끝은 평소보다 느렸다.어제 그를 본 순간, 그 눈빛 속에 깃든 미세한 냉기를 알아봤기 때문이다.‘그 사람은 이제 내가 누군지 의심하기 시작했어.’그녀는 라디오를 껐다.음악이 멈추자, 오히려 가게 안의 정적이 더 크게 느껴졌다.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린자오밍’이라는 이름이 마치 얼굴 위에 새겨진 문신처럼 사라지지 않았다.“照明… 이름의 뜻이 빛이잖아. 하지만 빛이 닿기 전에, 나는 이미 그림자였어.”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빛이 닿으면, 이 모든 게 끝나겠지.”그날 오후, 강혁은 일부러 아무 일 없는 듯 그녀의 가게로 들어섰다.그의 표정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그는 손에 흙 묻은 화분 하나를 들고 있었다.“이거,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죽은 건 아닌데요. 뿌리가 썩기 시작했네요.”“그래서 가져왔어요. 살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그녀는 조심스레 화분을 받았다.“살리려면, 썩은 부분을 잘라내야 해요.”“사람도 그런가요?”“사람은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때로는 잘라낼 수 없는 게 문제죠.”그의 눈동자가 그 말을 붙잡았다.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긴장이 흘렀다.마치 한쪽
Última atualização : 2026-04-21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