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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내 여친은 린자오밍!: Capítulo 131 - Capítulo 140

158 Capítulos

131. 빛의 끝, 나의 시작

캄보디아의 새벽은 늘 붉었다.태양이 떠오르기 전, 하늘은 피와도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수진은 강혁과 여진과 함께 메콩강 하류의 외딴 창고 앞에 서 있었다.그곳이 ‘照明 프로젝트’의 마지막 서버가 있는 곳이었다.건물은 녹슨 철문으로 잠겨 있었고, 벽면 곳곳에는 낙서와 탄흔이 남아 있었다.누군가 오랫동안 이곳을 잊은 듯했지만,그 안에서는 아직도 기계의 미세한 진동음이 들려왔다.“이 안에 있는 게… 마지막 서버?”강혁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그래요.”수진이 대답했다.“照明은 여기서 시작됐고, 여기서 끝날 거예요.”여진이 입꼬리를 비틀었다.“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사람의 감정이야. 없애는 게 아니라, 잊히게 하는 거지.”“그럼 잊히게 해요.”수진은 단호했다.“사람이 감정을 잊지 못하면, 그 감정이 사람을 집어삼키니까.”문이 열릴 때, 안에서 오래된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곰팡이와 기름 냄새, 그리고 오래된 전선이 타는 냄새.안쪽에는 거대한 서버들이 줄지어 있었다.벽면 가득 불빛이 깜빡였고, 기계음이 심장박동처럼 일정하게 울렸다.그 소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숨결 같았다.수진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의 발소리마다 먼지가 흩날렸다.벽 끝에는 작은 제단 같은 장치가 있었다.그 위엔 ‘照明_CORE’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손을 올렸다.“이걸 멈추면… 모든 게 끝나요.”“그럼 멈춰.”강혁의 목소리가 단단했다.“나랑 여진이 뒤를 막을게.”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손끝이 떨렸다.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마치 오래된 기억을 만지는 듯한 떨림이었다.“照明, 언니가 남긴 마지막 흔적.”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이제 그만, 쉬게 해줘야지.”그 순간, 기계의 불빛이 강하게 번쩍였다.천장 스피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수진아, 듣고 있니?”그녀는 멈췄다.“……언니?”“네가 이곳에 올 줄 알았어.”“언니, 거짓말이죠. 당신은 죽었어요.”“죽음은 끝이 아니야. 나는 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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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마지막 꽃집

해남의 바람은 여전히 바다 냄새가 났다.봄기운이 묻어나는 바람 속에 수진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머리 위로 갈매기가 울었고, 하늘은 오래전과 다르지 않았다.린플라워의 간판은 바래 있었다.몇 달 동안 닫혀 있던 문을 열자 꽃잎 냄새가 아니라 먼지 냄새가 먼저 밀려왔다.수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그리고 천천히 손끝으로 테이블을 쓸었다.꽃잎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에도 작은 온기가 번졌다.“다시 여는 거야?”뒤에서 강혁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응. 이곳은 멈춰 있었으니까.”“이제라도, 평범하게 살 수 있겠지.”“평범한 게 뭔데요?”“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 누가 있고, 커피가 식을 때쯤 서로 미소 짓는 거.”“……그런 게 가능할까요.”“이젠 가능해.”그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꽃집의 커튼을 열었다.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먼지들이 공중에서 춤을 췄다.그것은 마치 시간의 입자처럼 느리게 흩날렸다.수진은 오래된 화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손끝에 흙이 묻었지만 그 감촉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다.화분 속에 죽은 줄 알았던 식물 하나가 작게 새순을 틔우고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살아 있었네요.”“뭐가?”“이 아이요. 내가 떠났을 때 이미 시들었을 줄 알았는데.”“너도 그랬잖아.”“…….”“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잖아.”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살아 있는 게 때론 무서워요.”“왜?”“살아 있으면… 다시 잃을 수 있으니까.”“그럼 잃지 않으면 돼.”“그게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네요.”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에 손을 얹었다.그 따뜻함이 오랜 시간 흩어졌던 마음을 다시 모았다.저녁 무렵, 바닷가의 노을이 꽃집 벽을 붉게 물들였다.가게 안에는 작은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옛날 한국 트로트였다.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멜로디.수진은 꽃을 포장하며 낮게 중얼거렸다.“이 노래, 언니가 좋아했어요.”“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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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LZM-02의 그림자

바람이 거세졌다.그날의 해남은 유난히 조용했다.새벽 안개가 마을을 뒤덮고, 바다의 수면은 숨을 죽인 듯 미동조차 없었다.수진은 창문을 열었다.밤새 내린 비의 냄새가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새로 핀 라넌큘러스의 향이 그 냄새 위에 겹쳐졌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감쌌다.하얗던 살결 아래, 희미하게 남은 붉은 선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거울을 바라봤다. 그곳의 여자는 자신이었다.하지만 순간, 거울 속의 여자가 아주 미세하게 늦게 움직였다.눈동자 하나의 떨림 차이였지만, 그녀의 심장은 즉시 반응했다.“누구야.”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한 마디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아무 대답도 없었다.그러나, 그 순간 거울 너머의 입술이 그녀보다 먼저 웃었다.오전, 강혁은 배를 손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손에는 늘 기름때가 묻어 있었고,그 묵직한 손의 감각은 언제나 현실을 붙잡게 했다.“오늘 바다, 같이 갈래?”“가게 정리도 안 끝났어요.”“요즘은 꽃보다 바다를 더 자주 보잖아.”그녀는 짧게 웃었다.“그러게요, 이상하죠. 바다 보면 마음이 잠잠해져서.”그는 그 웃음을 오래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혹시… 기억이 달라지는 건 없어?”“기억이요?”“요즘 네 표정이 자주 멈춰. 마치 생각이 아닌… 반응 같아.”그녀는 눈을 피했다.“괜찮아요. 피곤해서 그래요.”“피곤하단 말, 예전엔 안 썼잖아.”그녀는 대답 대신, 꽃잎에 맺힌 물방울을 손끝으로 떼어냈다.밤이 되자, 그녀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이번엔 연변의 눈이 아니라,메콩강의 밤이었다.강 위에서 불빛 하나가 부유하고 있었다.그 불빛은 사람의 형체를 이루더니, 그녀와 똑같은 얼굴로 변했다.“네가 나를 잊었어.”낯선 목소리, 그러나 익숙한 숨결이었다.“누구… 누구야?”“LZM-02. 네 안에 잠들어 있던 나.”“그게 무슨 소리야?”“너는 나를 대신해 살아가고 있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도, 내가 먼저 사랑했어.”수진은 머리를 움켜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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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복수 너머의 조명

그날 바다는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바람 한 점 없고, 물결은 유리처럼 잔잔했다.그 속에서 강혁은 낚싯줄을 내리며 익숙한 적막에 귀를 기울였다.그는 예전처럼 파도 소리를 들으려 했지만,그 대신 아주 낯익은 무언가가 들렸다.파도와 파도 사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강혁 씨.”그는 손을 멈췄다.파도가 밀려와 배를 살짝 흔들었다.그리고 다시 그 목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들려요? 강혁 씨.”그의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그 목소리. 그건 죽은 줄 알았던,아니, 이미 마음속에서 수없이 불태웠던 이름의 주인이었다.“……수민?”그는 속삭이듯 부르며 무전기를 쥐었다.하지만 손에 들린 건 낡은 무전기 하나뿐,전원도, 주파수도 연결되지 않은 고물이었다.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이제 귀마저 미쳤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여전히 파도와 함께 흘러들었다.“당신, 아직 거기 있군요.”“……”“내가 떠난 곳에서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었네요.”그의 손끝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그는 무전기를 입 가까이 가져갔다.“누구야. 누가 이걸 녹음했어.”“그날의 기록이에요. 나, 수민이에요.당신이 돌아온다면 언젠가 이걸 듣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그는 말을 잃었다.목구멍이 타는 듯 건조했다.바다의 한가운데에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죽음 너머에서.그 시각, 수진은 꽃잎을 다듬고 있었다.손끝의 칼날이 흰 장미의 줄기를 따라가며 조용히 떨어졌다.작은 흠집이 손가락을 스쳤다.피가 맺혔다.그녀는 멈추지 않았다.그저 그 피를 바라보다가, 속삭였다.“……언니.”그 순간, 멀리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책상 위에 놓인 낡은 무전기가 깜빡였다.그녀는 놀라서 손을 뻗었다.“수진아.”그 목소리. 시간이 멈춘 듯했다.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언니?”“너, 잘 있니?”그녀는 숨을 멈췄다.그 목소리는 바다 저편에서,그리고 그녀의 내면 어디선가 울리고 있었다.“이게……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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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꽃집을 닫고, 그림자를 입다

밤이 깊었다.해남의 바다는 검은 거울처럼 고요했다.달빛조차 바다에 스며들며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수진은 꽃집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린(林)’이라 새겨진 간판 아래에 서서 그녀는 한참 동안 어둠을 바라봤다.마치 그 어둠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녀의 손끝이 차가웠다.손바닥 안쪽, 미세하게 남아 있던 붉은 상흔이 달빛을 받아 반투명하게 빛났다.그때, 낮게 깔린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빛이 생기면, 그림자도 생겨.”수진은 숨을 멈췄다.그 목소리는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하지만 또렷이 조금 더 낮고 냉정한 톤이었다.“……LZM-02.”그녀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을 바라봤다.그 속의 자신이 천천히 웃고 있었다.그러나 그 미소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결국 여길 왔네.”“넌 사라졌어야 했어.”“사라질 수 없지.네가 날 지우지 않는 한.”그녀는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이젠 복수를 버렸어.”“그래, 넌 버렸겠지. 하지만 난 잊지 않았어.”그림자는 조용히 다가왔다.유리창 너머의 어둠이 점점 짙어지며, 그녀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언니를 죽인 그 자들, 배신구, 그리고 흑거미.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모르지?”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그들은 이미…”“아니. 아직 숨 쉬고 있어.네가 빛이 된 순간, 그들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어.”그녀는 눈을 감았다.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럼 네가 말하는 건… 또다시 복수를 하라는 거야?”“아니, 난 단지 네 안에 남은 어둠일 뿐이야.하지만 기억해. 사랑은 사람을 구하지만, 복수는 진실을 드러내.”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난 이제… 복수가 싫어.”“그럼 날 지워. 하지만 넌 결국 날 부를 거야.그 남자가 다치면, 네가 다시 날 불러낼 테니까.”그 순간, 거울 속의 그림자가 사라졌다.남은 건 그녀의 떨리는 숨뿐이었다.새벽녘, 강혁은 마을 부두로 나왔다.그의 손에는 낡은 봉투 하나가 있었다.‘照明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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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부활의 코드 (LIN-03)

서울 한복판, 낡은 건물의 지하 3층.한때 국정원 서류보관소였던 그곳엔 지금은 아무 표식도, 인적도 없었다.그곳에 불빛이 켜졌다.서여진은 검은 코트를 입고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안에는 무수한 파일과 서버들이 줄지어 있었다.모니터에는 ‘LIN’이라는 세 글자가 깜빡이고 있었다.그녀는 터미널 앞에 앉아 천천히 코드를 입력했다.[Access Key: SEOYJ-0219][Authentication: Success]화면이 전환되었다.오래된 영상 하나가 자동으로 재생됐다.그 안엔 배신구의 얼굴이 있었다.그는 여전히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표정은 여전했다.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사람의 감정보단 계산에 가까운 그 웃음.“照明 프로젝트는 실패하지 않았다.”“LZM-02, 그녀는 인간의 감정이 복제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하지만 감정은 완전하지 않았다.사랑은 남았지만,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다.”그는 잠시 화면 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그래서 나는 ‘03’을 만들기로 했다.사랑과 증오, 두 감정을 동시에 완성한 존재.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신.”여진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그래서 날 살린 거였군요.”그녀의 머릿속에는 불길하게 깜박이는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LIN-03.”그건 단순한 후속 실험이 아니었다.국정원 내부에서 은밀히 진행된 인간 감정 전이 실험의 마지막 단계,‘조명(照明)’을 완성시킨 존재. 그 주체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죽기 직전, 배신구는 여진의 몸에 감정 자극 칩을 이식했다.‘02’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모조 감정 패턴.그녀는 그것으로 되살아났다.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감정은 절반만 남아 있었다.그녀는 웃었다.“인간이 아니면 어때요. 어차피 사랑은 인간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그 시각, 해남의 밤은 유난히 깊었다.린자오밍은 한 장의 편지를 들고 있었다.봉투는 낯익었다.‘照明 - Confidential’보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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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그림자 속의 꽃

비가 내렸다.잔잔하지만 멈추지 않는 그런 비였다.수진은 꽃잎을 하나하나 정리하다가 손끝을 멈췄다.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리며, 그녀의 얼굴을 따라 흐르는 눈물처럼 흔들렸다.“또 비네…”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닦았다.비가 오면 늘, 그날이 떠올랐다.언니가 죽던 밤. 캄보디아의 습기와 총소리, 그리고 피 냄새.그녀는 그 기억을 밀어내듯 화분을 정리하며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불렀다.“강혁…”이름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저릿했다.그를 미워해야 했다.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남자.그런데 왜, 그의 눈빛이 자꾸 떠오를까.그날 밤, 어촌의 잔잔한 파도 위에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 눈.그 안에는 죄책감과 슬픔, 그리고 이상할 만큼의 따뜻함이 섞여 있었다.“린 사장님.”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수진은 정신을 돌렸다.이웃 아주머니가 우산을 든 채 서 있었다.“여기 꽃 좀 포장해줄 수 있어요? 장례식장에 가져갈 거예요.”장례식, 그 말에 그녀의 손끝이 순간 얼었다.“누가… 돌아가셨나요?”“그 옆 마을 정씨 할아버지요. 며칠 전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고, 충격 때문에….”그 말이 그녀의 귓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보이스피싱. 그건 그녀의 과거였다.그녀가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그리고 지금 그녀가 복수의 무기로 다시 쥔 칼이었다.“조심히 가져가세요.”꽃을 포장해 건네며 수진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는 슬프고도 냉정했다.밤이 깊었다.가게의 불을 끄고, 수진은 창가에 앉았다.비 냄새와 함께 바다의 습한 공기가 들어왔다.손바닥 위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사진 속엔 자신과 언니 수민, 그리고 미소 짓는 낯선 남자.강혁이었다.그녀는 천천히 속삭였다.“언니, 나 지금 그 사람 곁에 있어요. 그는 내가 누군지 몰라요.그리고… 난 그가 아직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사진 뒤편에는 수민의 글씨로 짧게 적혀 있었다.“照明 - 네 이름의 뜻을 잊지 마.”그녀는 사진을 가슴에 안았다.“빛이라니… 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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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의심의 씨앗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늦여름의 하늘은 푸르지만, 바다는 이미 가을빛을 띠고 있었다.강혁은 낚싯대를 손질하며 해안선을 바라봤다.멀리서 걸어오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하얀 원피스에 머리를 묶은 린자오밍 그녀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오늘은 고기 잘 잡히셨어요?”“별로요. 물이 너무 따뜻하네요.”그녀는 바구니 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이거요. 화분 비료로도 쓰지만, 상처 소독에도 좋아요.”“상처요?”“그물에 베인 손. 어제 보니까 피가 나던데.”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봤다.정말로 작은 상처가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손등을 잡았다.짧은 순간, 둘의 숨결이 닿았다.그녀의 손끝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이 묘하게 따뜻했다.“이건 그냥 약이에요.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그녀는 시선을 피했다.하지만 강혁은 그 ‘없다’는 말 속에서 무언가를 느꼈다.그날 오후, 해남 파출소에는 새 사건 보고서가 올라왔다.최근 한 마을 주민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고 목숨을 끊은 사건. 그 피해자의 통화 기록 속에서, 수상한 번호 하나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린…”강혁은 스크린 속 이름을 무심코 읽었다가 눈썹을 찌푸렸다.‘린자오밍.’정확히 그녀의 이름이었다.“설마… 아니겠지.”그는 스스로 중얼거렸다.하지만 직감은 늘 그를 속이지 않았다.그의 내면에 조용히 씨앗이 심겼다.의심이라는 이름의 씨앗.밤이 되었다.수진은 꽃가게 문을 닫고 혼자 앉아 있었다.라디오에서 낡은 트로트가 흘러나왔다.그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오늘 강혁이 보여준 눈빛이 마음을 흔들었다.그건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다.무언가를 의식하는 시선이었다.그녀는 서랍 속에서 총기를 꺼냈다.작고 검은 권총.“이건… 필요 없게 됐으면 좋겠네.”총구를 바라보다가 다시 덮었다.대신 책상 위에 꽃잎 하나를 올려두었다.그건 흰 라넌큘러스. 순수, 혹은 거짓된 순수.“照明… 언니, 나는 아직 어둠 속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날 비추네.”다음 날, 강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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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빛이 닿기 전에

그날 밤, 해남의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바람조차 멈춘 듯했고, 바다는 마치 숨을 죽인 생명체처럼 잔잔한 표면 아래에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강혁은 등대 아래에서 서류 봉투를 쥐고 있었다.그 안에는 ‘LZM’이라 적힌 흑백 사진과,NIS 내부 기록에서 몰래 빼낸 사건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2017년, 연변 출신 여성 요원 실종.프로젝트명: 흑거미.마지막 통신 장소: 캄보디아 프놈펜.\그녀의 얼굴을 빛이 스쳤다.그 그림자 속에서, 그는 린자오밍을 떠올렸다.한 자, 한 자. 이름의 발음이 현실보다 오래도록 그의 머리 속을 울렸다.그가 그녀를 의심하는 게 죄처럼 느껴졌다.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었다.다음 날, 수진은 새벽부터 꽃을 다듬었다.장미, 국화, 안개꽃. 그녀의 손끝은 평소보다 느렸다.어제 그를 본 순간, 그 눈빛 속에 깃든 미세한 냉기를 알아봤기 때문이다.‘그 사람은 이제 내가 누군지 의심하기 시작했어.’그녀는 라디오를 껐다.음악이 멈추자, 오히려 가게 안의 정적이 더 크게 느껴졌다.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린자오밍’이라는 이름이 마치 얼굴 위에 새겨진 문신처럼 사라지지 않았다.“照明… 이름의 뜻이 빛이잖아. 하지만 빛이 닿기 전에, 나는 이미 그림자였어.”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빛이 닿으면, 이 모든 게 끝나겠지.”그날 오후, 강혁은 일부러 아무 일 없는 듯 그녀의 가게로 들어섰다.그의 표정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그는 손에 흙 묻은 화분 하나를 들고 있었다.“이거,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죽은 건 아닌데요. 뿌리가 썩기 시작했네요.”“그래서 가져왔어요. 살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그녀는 조심스레 화분을 받았다.“살리려면, 썩은 부분을 잘라내야 해요.”“사람도 그런가요?”“사람은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때로는 잘라낼 수 없는 게 문제죠.”그의 눈동자가 그 말을 붙잡았다.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긴장이 흘렀다.마치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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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흑거미의 그림자

새벽 시간. 창고 안은 이미 정리돼 있었다.피는 비와 섞여 흘러나갔고, 총기 흔적도 지워졌다.강혁은 마지막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수진은 그의 차에 기대 서 있었다.비가 멎은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었고,그녀의 손끝에는 아직도 총 냄새가 남아 있었다.“정리 끝났어요?”“응. 보고는 하지 않았어.”“그럼 이건 그냥... 없던 일이 되는 거네요.”“그게 서로를 살리는 방법이야.”그녀는 작게 웃었다.“살려준 게 아니라, 묶은 거예요. 이제 우리는 같은 죄를 나눴어요.”그는 대답하지 못했다.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단순한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니었다. 하나의 공범이었다.해남의 바다는 잔잔했지만, 어딘가 멀리서 고래 울음 같은 낮은 진동이 들려왔다.그건 두 사람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그날 밤, 수진은 꽃집의 문을 닫고 창가에 앉았다.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이제, 진짜 끝났을까?”그녀는 혼잣말을 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흑거미’의 방식이었다.숨김번호, 딱 세 번의 진동.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보고가 늦었군.”낯선 목소리, 그러나 오랜 세월 익숙해진 통제의 어조.“당신이… 아직 살아 있었네요.”“너도 살아 있잖나. 그게 중요한 거지.”“배신구는 끝났어요.”“그건 껍질일 뿐이다. 그 뒤엔, 내가 만든 진짜 몸이 남아 있지.”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당신… 아직도 사람을 조종하고 있군요.”“넌 조종당한 적 없어. 그저 선택한 거지. 복수를 위해.”그녀의 숨이 흔들렸다.그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자의로 선택했고, 그 선택의 끝이 지금이었다.“이번엔 당신 차례야, 자오밍.”“그 이름, 쓰지 마요.”“그 이름이 네 본질이야.너는 빛을 가장한 어둠이지.”전화가 끊겼다.그녀는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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