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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11 - Chapter 120

157 Chapters

집결 (5)

“고맙소. 물빛.”이도가 천우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크고 보드라우면서도 힘찬 열기가 느껴지는 손이었다.국왕과의 악수라니. 황홀함에 눈앞이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화, 황송합니다. 전하!”“정말로 고맙소. 온 조선 땅의 백성이 물빛에게 빚을 지게 되었소.”“과찬이십니다. 전하! 저는 그저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싸울 뿐입니다.”“시원시원하시군. 역시 물을 다루는 미르다운 언행이오.”이도가 기껍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허허- 웃어보였다.“아, 이포교. 자네도.”이도의 눈이 이포교에게로 돌아갔다.방심하고 있던 이포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네, 네…… 전하?”“미르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외부인은 조선 땅에서 오직 자네 하나다. 그러니 이포교 자네는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힘껏 과인을 도우라. 알겠느냐?”“부,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전하!”이포교가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이도는 그런 이포교를 내려다보더니 가만히 주저앉아 이포교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켰다.“일어나라. 지금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이지, 과인에게 굴종할 때가 아니다.”“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자, 그럼 이제 대충 전후사정 파악은 끝난 듯싶구나. 네가 지금까지 여기 와서 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 성 싶으냐?”“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이포교가 덜덜 떨면서도 힘주어 물어왔다.“어떤 결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이포교 자네는 조선 땅에 미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최초의 외부인이다. 그런 자네가 듣기에 이번 사태를 어찌 해결해야 할 것 같은지 그 의견을 묻고 있는 것이다.”“…… 외람되오나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말해봐라.”이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이포교는 옆에 서 있던 천우의 눈치를 한번 슥- 살피고선 천천히 입을 열었다.“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조선 땅에는 붉빛미르와 물빛미르 두 미르가 있습니다. 붉빛미르는 적을 없애는 불의 용이요, 물빛미르는 백성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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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 (6)

“네. 전하.”“권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이번 일에 대하여.”“물빛미르가 저희를 돕겠다 약조한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불은 물로 다스려야 하는 법이지요. 아무리 불이 세차게 타오른다 한들, 물 앞에서는 소용이 없는 법. 거대한 산불도 장대비에 진화되지만, 물에 젖은 산에서 불이 타오르는 일은 생길 수가 없나이다.”“권사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든든합니다. 하지만……” 이도가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붉빛미르가. 큰형님의 정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크게 걸립니다. 권사께서도 아시겠지만, 형님과 저는……”“네. 멀리 떨어진 듯 하면서도 멀지 않은, 어찌 보면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분이시지요. 일국의 군주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 왕이라고 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남들과 다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금 멋쩍은 얼굴이 되어 천우와 이포교를 돌아보았다. “음. 혹시 과인의 형님에 대해 세간에서 어떤 얘기가 도는지 혹시 들어보았는가?” 천우가 먼저 대답했다. “외람되오나, 전하. 저는 한양이라는 곳도 이번에 처음 방문하였습니다.”“물빛은 그렇다면 잘 모르시겠구려.”“송구하옵니다. 전하.”“이포교는 어떠한가?&rd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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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계 (1)

이도가 앞장서서 가니, 천우와 지운과 이포교 세 사람은 황망한대로 총총- 따를 뿐이었다. 배를 타고 연못을 건너, 궁궐의 어딘가로 향하는데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어린아이 같았다. 궁궐 서편의 한 귀퉁이였다.작은 담벼락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작은 문 하나만 나 있어 따로 뚝 떼어진 사당을 보는 듯한 인상이었다. 문은 잠겨있지도 않았다.그러나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는지 힘주어 문을 열자 끼이익- 오래된 경첩 녹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보이느냐?” 문 안으로 들어선 이도가 이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게 바로 할바마마께서 이 궁궐 안에 따로 마련해두신 것이다.” 그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작은 마당 하나뿐이었는데, 그 중앙에 무언가 커다란 것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짐승의 형태를 흉내 낸 석상(石像)이었는데, 어두컴컴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불을 비춘 것처럼 잘 보였다. “이것은……” 이포교가 석상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해치(獬豸)가 아닙니까?”“그렇다.” 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발 달린 짐승인데다, 이마에는 뿔이 하나 솟아있고, 목도리처럼 두른 갈기가 어깻죽지까지 빈틈없이 덮고 있는 모양새가 한눈에 보기에도 위엄이 넘쳤다. 불을 다스린다는 영물. 해치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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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계 (2)

  “미르 같은 영물의 눈으로 보시기에는." 이도가 천우 쪽을 돌아보며 이어 말했다. "말 다르고 사는 곳 다른 사람들 사이의 하찮은 악다구니와 다를 바 없겠으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사이에는 늘 크고 작은 분란이 있는 법. 명나라는 조선이 직접 천문을 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오. 하늘의 기운을 읽는 것은 오로지 천자(天子)만이 가능하다며 어깃장을 놓지.”“하늘의 뜻은 만백성에게 공명정대하게 열려이어야 하는 법이거늘……”“그렇지만 땅 위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늘보다도 당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옆에서 창칼을 들이대는 이웃. 조정 내부에도 명나라와 직접 얘기하며 이런저런 소식을 가져다 바치는 작자들이 있으니, 천문 연구를 비밀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에는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도 있는 법.”“천문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하신 것은 현명하신 일이라 생각되옵니다. 전하.”“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소. 명나라의 역법이 조선의 현실에는 맞지 않으니 국왕으로서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것인데 처음으로 응원한다는 말을 듣소. 여기에서.” 이도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미르에게 칭찬을 받은 탓일까. 어쩐지 조금 전보다는 용안에 살짝 미소가 어려있는 듯했다. “어쨌거나 지금 상황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이도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붉빛미르를 막아내고, 조선 각지로 파견된 학자들을 지켜내는 것이오. 모두 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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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읽는 자들 (1)

장영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하오만……”장영실의 눈이 수상하다는 듯 이쪽을 살폈다.한눈에 봐도 이런 시각에 서촌을 찾아올 법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처음 뵙겠습니다.”가장 앞에 서 있던 맑은 얼굴의 청년이 중얼거렸다.“저는 좌포청의 백천우 포교라고 합니다.”“포교? 포청에서 내게는 무슨 용건으로?”장영실이 조금 긴장한 투로 되물었다.“그것도 이런 오밤중에……”“외람되오나, 잠깐 안에 들어가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천우가 공손하게 장영실을 보고 물었다.장영실은 그런 천우를 실쭉한 눈으로 쳐다보다, 옆에 함께 서 있던 이포교도 한번 슥- 흝어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오시구려.”장영실을 찾아온 사람은 둘뿐이었다.* * *방안으로 들어가자 매캐한 먹냄새가 잔뜩 났다.바닥이 종이인지, 아니면 종이를 바닥으로 깐 것인지 모를 정도로 온갖 종이에 문서가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구겨진 것도, 방금 풀 먹인 것처럼 빳빳한 것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뭔가 적혀 있는 것만은 동일했다.“거기 거 대충 치우고 앉으시구려.”장영실이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천우와 이포교는 그 말에 따라 엉거주춤 문서가 없는 쪽을 찾아 주저앉았다.“밤중에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대접할 것도 뭐 하나 없는데, 송구하게 되었소.”장영실이 민망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아닙니다. 별좌 어르신.”천우가 빙긋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저희야말로 오밤중에 이렇게 약조도 없이 불쑥 찾아와 폐를 끼쳤습니다.”“상의원 별좌라는게 원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일인데, 낮에 찾아오든 밤에 찾아오든 뭐 다르겠소? 일 있으면 언제라도 튀어나가야지.”장영실이 피로가 묻어나는 목소리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불혹(不惑)근처에 다다른 나이로 보였으나, 온갖 중책을 맡고 있어 더 늙어 보이는, 솜씨 좋은 학자의 고단함이 다 느껴졌다.“그나저나.”정5품 별좌, 장영실이 조금 위엄을 차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포청에서 내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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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는 자들 (3)

“네?”옆에 있던 이포교가 크게 놀라 물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함께 갈 수 없다니요?”“말 그대로요.”장영실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내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하였으나, 적어도 지금은 그대들과 함께 궁궐로 갈 수가 없소. 아니, 적어도 열흘 정도는.”“대체 왜……”“나 또한 이 자리에서 천문을 읽고 있기 때문이오.”장영실이 자기 옆의 방바닥을 주먹으로 두어번 쿵쿵- 두드렸다.“나, 그리고 두 포교께서 발붙이고 있는 이 위치. 이곳에서 나 또한 한양의 천문을 살피고 있다는 말이외다. 궁궐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별과 달의 움직임을 보면서 말이오.”“하오나 어르신……”“10일 정도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 딱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이 있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적어도 수십 년간은 다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오. 나도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오. 아무리 주상전하의 어명이라 하여도……”장영실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천문이라오. 그리고 아마 그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는, 나 또한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그런 말씀 마시지요.”“천문을 살피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죽고 사는 것은 결국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것이외다.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법. 슬퍼할 일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아무튼 나는 지금 대뜸 궁궐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소. 앞으로 열흘 동안은 이곳에 죽치고 앉아 밤하늘을 계속 올려다봐야 하니.”“하오나……”“주상전하께서도 이해해주실거요. 이 하찮은 노비 따위의 목숨은 이미 주상전하께서 면천(免賤)해주신 이후로 덤으로 살고 있는 것. 죽는 것은 두렵지 않소. 내가 두려운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외다. 주상전하께서 바라시는 연구를 끝마치지 못하는거요. 그러니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소.”장영실이 단호하게 읊조렸다.어찌 보면 어명을 거부하겠다는 무도한 말이기도 했으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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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는 자들 (4)

축시(丑時)에 이른 시각인 듯했다.밤공기는 더욱 서늘해졌고, 저 멀리 산중턱 어디에선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으으……” 마당에 나와있던 이포교가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바들바들 떨었다.어느새 그의 눈썹 위로 새하얀 이슬이 맺어 있었다.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는데.” 이포교가 투덜거리며 작게 하는 소리였다. 천우는 그 옆에서 빙긋 미소를 지어보이곤 마당 한구석에서 하늘 올려다보고 있던 장영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벌써 저렇게 꼼짝도 않고 보고 있는 것이 두 시진(時辰)은 지난 듯했다.별의 움직임을 살피기에는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었다. 혼자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우선 옆에서 지켜보고자 따라나왔는데 이렇게 뿌리내리고 선 채로 가만히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작은 종이조각과 소필(小筆)하나만 집어 든 채로, 굳은 듯이 서 있다가 갑자기 뭔가 급히 적어내리곤 다시 하늘 올려다보고. 이런 짓을 족히 서른 번은 넘게 했다. 실로 대단한 체력과 사명감이었다.잠도 자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그러니 먼저 눈 좀 붙이시라 하지 않았소.” 장영실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면박을 주었다. “나는 오늘 아예 밤을 샐 작정이라 미리 말을 했거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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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는 자들 (5)

“별좌 어르신께서는.” 천우가 조용히 대답했다. “이미 주상전하와 십 수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수학하고, 또 교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따위가 어찌 두 분의 고결한 사정을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너무 겸손하시군. 나는 원래 노비였다오. 주상전하께서 이 몸을 발탁하시어 나라의 일을 맡기시면서 신분도 달라졌지. 주상전하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저 어디 개골창에서 송사리나 잡고, 새끼나 꼬고 있었을 거요.” 장영실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지난 나날을 회상하는 듯한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숨결이었다. “그러다 언제 한 번 고향 고을에 가뭄이 들어 논밭이 다 말라가던 차에, 강물을 끌어올 수 있도록 수차(水車)를 고안해낸 적이 있었소. 덕분에 고을에서는 배불리 먹지는 못하더라도 한명도 굶어죽지는 않게 되었지. 이 일이 도성에도 보고되었고, 나는 느닷없이 조정으로 불려오게 되었소. 그게 주상전하와의 첫 만남이었소.”“실로 설화같은 이야기입니다.”“나도 그리 생각하오. 말로만 듣던 한양을 다 와보고, 주상전하를 뵙게 되다니. 이 어찌 동화 같은 일이 아니겠소?” 장영실이 피식 웃어보였다. “아직도 그때 처음 전하를 뵈었던 때가 생생하오.” 장영실의 눈이 반짝 빛났다. “휘황찬란한 붉은빛 용포는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걸음걸이는 실로 당차시고, 목소리 또한 우레 같으신데, 여의주를 품은 용이 아니라 여의주를 품은 범과 같은 자태셨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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