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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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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1)

“모두 아홉 명.” 이도가 종이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조선 8도의 천문 자료 조사를 위해 파견된 인원들 목록이라 했다. “하나같이 명민하고 끈질긴 자들입니다. 영실과 제가 직접 시험하고 선발했지요. 아마 지금쯤이면 모두가 조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고 있을 겁니다.”“이여립 학사가 실종되었다고 하셨지요? 그 배후에 붉빛미르가 있다 하셨고.” 장영실이 심각한 얼굴로 천우를 보며 물었다. 천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촌에서 숙식하던 관리 하나를 처리했다고 붉빛미르 본인이 직접 말하였습니다.”“이여립……. 가장 어린 축에 속했지만 그만큼 또 재기발랄한 사람이었는데.” 장영실이 종이를 들춰보며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창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방안을 가득 메웠다.서늘한 감촉에 압도당한 세 사람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무릎 아래만 바라보았다. 온갖 천문 사료와 모형 따위가 어지러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이도가 역법 연구를 위해 궁궐 내에 따로 마련한 공간으로, 조정신료들은 물론이고 금군에 심지어 중전조차 모르는 비밀 연구실이라고 했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도에게 선택받은 이들로, 예산 또한 내탕금(內帑金)으로 충당하여 바깥에서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니 더더욱 천문 연구를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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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2)

“자.” 이도가 학사들 목록을 다시 보라는 투로 천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는 영실이를 포함하여 모두 9명입니다. 이 중에 이여립을 빼면 이제 8명이 조선 역법을 연구 중에 있는 셈이고요. 붉빛미르가 이들을 모두 없애겠다고 위협했으니 우리는 이들을 지켜내야 합니다.”“자료가 거의 수집되었으니 한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지요?”“그렇습니다. 마패를 지급하였으니 역(驛)을 이용해 징검다리처럼 지나오고 있을 겁니다. 학사들의 행적을 추적하려면 역과 그 주위의 고을 따위를 뒤지는 것이 우선이겠지요.”“붉빛미르의 권능이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반촌에서 싸우다 순식간에 산중턱으로 이동한 것을 보면, 축지법이나 경공술에도 능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용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고요.”“아마 그럴 것입니다.” 이도가 맞장구를 쳤다. “아바마마께서 이르시길, 미르들은 불과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눈 깜짝할 새에 움직일 수 있다 하셨습니다. 물빛께서도 정말 가능하십니까? 그게?”“저는 아직……. 그렇게 움직여 본 적은 없사옵니다.”“붉빛보다 얼마나 더 신속히 기동하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이도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지운 권사를 먼저 보낸 것이기도 합니다. 조선 8도에서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니.”“아, 그렇지 않아도 안 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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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3)

이도는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 말하고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로 가버렸다.그리고 뒤에 남은 천우와 장영실이 함께 주변에 널린 기계며 천문 자료 따위를 어색하게 뒤적이고 있을 때, 색다른 모습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저, 전하.”장영실이 황망해하며 말했다.“전혀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어떠하냐?”이도가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로 양소매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선비의 모습이었다.용포를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로 갈아입은 후에 높은 갓을 빈틈없이 눌러쓴 것이 저명한 학사를 방불케 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학문적 성취를 충실히 이루고 이리저리 명산(名山)과 산천초목을 거니며 시조를 읊을 듯한……. 그런 고명한 선비 같았다.“내 사복(私服)모습은 영실이 너도 처음 보질 않느냐?”“그러하옵니다. 전하.”“가끔 궐 밖으로 잠행을 나갈 때 입는 것이다. 한동안 잠행 나갈 일이 없어 한쪽에 놔두기만 했었는데, 오늘로서야 겨우 먼지를 털게 되었구나.”이도가 허리춤을 여미며 중얼거렸다.그 바람에 도포 옷자락 밑으로 감춰둔 환도의 칼끝이 살짝 비쳐들었다.“전하.”천우가 그걸 보고 말했다“무장을 갖추셨습니다.”“형님을 뵈러 가는데 혹시 또 모르니 말입니다.”“전하. 설마 지금 당장 대군마마께 가실 생각이십니까?”“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이도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겸사겸사 붉빛미르도 옆에 있으면 얼굴이라도 볼까 합니다.”“전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천우가 펄쩍 뛰며 말렸다.“저 또한 물빛미르의 생각에 동의합니다.”장영실도 옆에서 거들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였다.“전하. 상대는 어떤 패악을 저지를지 모르는 맹수이옵니다. 실로 가벼이 여길 상대가 아니며, 전하의 옥체를 상하게 할 위험도 있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아니. 괜찮다.”이도가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물론 나도 붉빛과 대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쪽도 쓸 만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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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3)

“전하?”양녕이 크게 놀란 얼굴이 되어 이도를, 그리고 천우를 바라보았다.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빛마저 공포에 질려 흔들릴 정도였다.“붉빛미르라니요? 그게 무슨…….”“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형님께서 사모하시는 그 여인, 어리가 붉빛미르라면 형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전하! 외부인이 듣고 있습니다! 미르에 대한 얘기를 꺼내시면 아니되옵니다!”양녕이 목청을 높이며 천우를 실쭉한 눈으로 노려보았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광기(狂氣)가 서린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송구합니다. 전하.”갑자기 양녕이 성큼성큼 병풍 쪽으로 가더니, 그 뒤에 거치되어 있던 환도를 꺼내들었다.“국왕 앞에서 칼을 빼는 대역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르를 듣게 된 작자를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부디 이 불충을 용서하지 마시옵소서!”그리고 성급하게 칼을 빼는 양녕이었다.“형님!”이도가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소용없었다. 양녕의 칼날이 이미 공기를 갈랐다.“윽…….!”천우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다.그러자 물그릇에 담겨있던 식수가 순식간에 솟구쳐 천우의 앞을 감쌌다.단단하게 굳어진 물이 칼날을 붙잡아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틈에 천우는 턱을 갈라버릴 듯이 덮쳐드는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슈욱-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천우를 스치고 지나갔다.“가만있으세요! 형님!”이도 또한 급하게 일어서며 소리쳤다.여차하면 베어버릴 기세로 숨겨놓은 칼을 빼드는데, 그 소리가 사뭇 살벌했다.칼, 물, 그리고 왕의 명령.사랑채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멈춰버린 듯했다.“저, 전하……!”양녕이 칼을 떨어뜨리곤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놈에게 부디 극형을 내려주소서!”“당장 칼 치우시고, 형님께서 해치려했던 분께 사죄부터 하시지요.”“물론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양녕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방금 전…….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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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6)

“형님.”“네. 전하.”“어리는. 붉빛미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이도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렇게 지치고 외로운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양녕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와 지금까지 정을 나누며 살아온 동안, 한 번도 우울해하거나 눈물지은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별일이었다고 했다. “반촌에 볼일이 있다기에 잘 다녀오라 보내고선 저는 그저 개천에서 낚시나 하고 있었지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를 않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완전히 녹초가 된 채로 비틀비틀 집으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옷 여기저기가 찢기고 헤진 채로 말입니다.”“놀라셨겠습니다.”“어떤 외간남자한테 겁탈이라도 당한 것인가 싶어 당장 죽여 버릴 요량으로 뛰쳐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리는 나쁜 일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하긴 붉빛미르가 쉽게 해코지를 당할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요.” 양녕이 천우를 흘깃거렸다. “붉빛미르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다면 분명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기량이 뛰어난 무사라거나, 기우사를 만나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만 있기에 꿀물 한 잔 타주면서 타일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좀 해달라고요.”“뭐라 했습니까, 그래서?”“일생의 숙적을 만났고,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해묵은 원한을 내려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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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4)

천우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어리가 완전히 넋이 나간 채로 돌아왔었습니다. 지난밤에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 해도 대답도 않고, 그저 마음 한구석이 아픈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달래도 보고, 캐 물어도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어리가 그렇게까지 실의에 잠긴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참으로.”“대군마마. 그것은…….”“어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양녕이 천우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따져 물었다. “대답해보시오. 물빛미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요?”“…….”“그리고 어리는 새벽녘이 되기도 전에 갑자기 떠났소. 편지 하나만을 남겨둔 채 말입니다. 원래 드나듦이 자유로운 아이이기는 해도, 이번만큼은 뭔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단 말입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겁니까?” 양녕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붉빛미르가 함께 있었다면 남녀가 쌍으로 불을 뿜는, 괴이한 모습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여인을 잃은 남자……. 그 강렬한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형님.” 천우가 아무 말 않고 있자, 이도가 가만히 양녕을 불렀다. “물빛미르는 물빛미르가 할 일을 하셨던 것뿐입니다. 사람의 관점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마시지요.”“…&hel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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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5)

“반역?” 양녕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지금 반역이라고 하셨습니까? 전하?”“그렇습니다.” 이도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어느새 한손에 다시 칼 손잡이를 붙잡은 채였다. “무료한 인생 속에서 여인 하나를 만나 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어찌 그 꽃을 꺾으려하느냐, 다분히 말초적으로 반박하시는데 제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형님. 그따위 망발은.”“뭐, 뭐라…….”“형님이 폐세자 되신 것은, 형님의 성정이 포악하고 유희만 찾으며 백성보다 당신 한 몸을 더 중히 여기는 그 저열함 때문이오. 왕의 그릇이 아니었기에 폐위된 것이지 그 누구도 강제로 형님을 끌어내린 것이 아닙니다. 아바마마께서 형님을 폐위시킨 그날 밤에 얼마나 크게 통곡하셨는지, 형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어본 적 있소?”“…….”“그리고 어리는 사람의 형상을 한 붉은 용. 단신으로도 한 개 도(道)는 물론이고 일국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개념만 다른 역발산이오. 그런 어리의 정체를 알고도 그저 운우지정(雲雨之情)에 허덕여 정인으로 남겨두었다고?” 이도가 코웃음을 치며 양녕을 노려보았다.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뻔히 다 알고 있는데. 나를 바보로 아시오, 형님? 형님께서 아무 저의 없이 그리 결정하셨다고 내가 믿기를 바라셨소? 아니, 형님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야심이 있소. 왕에 대한, 정점에 대한. 그러니 붉빛미르의 힘에 기대어 작품이나 하나 만들어보려 하신 것이겠지. 내 말이 틀리오?” 이도가 반박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투로 되물었다. 그러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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