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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빛미르: Chapter 131 - Chapter 140

157 Chapters

군왕과 대군 (6)

“형님.”“네. 전하.”“어리는. 붉빛미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이도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렇게 지치고 외로운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양녕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와 지금까지 정을 나누며 살아온 동안, 한 번도 우울해하거나 눈물지은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별일이었다고 했다. “반촌에 볼일이 있다기에 잘 다녀오라 보내고선 저는 그저 개천에서 낚시나 하고 있었지요. 밤늦게까지 돌아오지를 않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완전히 녹초가 된 채로 비틀비틀 집으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옷 여기저기가 찢기고 헤진 채로 말입니다.”“놀라셨겠습니다.”“어떤 외간남자한테 겁탈이라도 당한 것인가 싶어 당장 죽여 버릴 요량으로 뛰쳐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리는 나쁜 일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친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하긴 붉빛미르가 쉽게 해코지를 당할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요.” 양녕이 천우를 흘깃거렸다. “붉빛미르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다면 분명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기량이 뛰어난 무사라거나, 기우사를 만나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만 있기에 꿀물 한 잔 타주면서 타일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좀 해달라고요.”“뭐라 했습니까, 그래서?”“일생의 숙적을 만났고,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해묵은 원한을 내려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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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7)

양녕대군과 김초시의 배웅을 받으며 나온 두 사람이 천천히 말을 몰았다.말머리를 나란히 했음에도, 천우와 이도 모두 머릿속이 복잡하여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괜찮으십니까?”작은 고을의 어귀로 들어섰을 무렵, 천우가 이도를 보고 물었다.이도가 이쪽을 돌아보았다.천우가 말을 이었다.“대군마마께서 크게 놀라신 듯 보였습니다. 하긴, 저 같아도 갑자기 상감마마께서 찾아오신다면 발밑이 무너지는 기분일 듯합니다.”“저는 딱히 형님이 반성한다거나 뉘우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이도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네?”천우가 되물었다.“하지만 대군마마께서 적으나마 붉빛미르의 정보도 알려주시고, 협조적으로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인즉슨…….”“형님께서는 항상 저러셨습니다. 자신한테 해가 될 것 같으면 납작 엎드리고, 힘이 될 것 같으면 그 위에 서려고 하셨지요. 강약약강의 자세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처세를 구사하십니다.”이도는 영 못마땅하다는 기색이었다.“예전부터 저러셨습니다. 이번에도 물빛께서 함께 계셨으니 망정이지, 저 혼자였다면 절대로 저리 굽히지 않으셨을 겁니다. 아마 지금도 겨우 떨쳐냈다 안심하면서 탁주 한 사발 하고 계실 겁니다. 안 봐도 뻔하지요.”“…….”“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형님이 무슨 큰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우선은 놔두고 보는 수밖에요. 붉빛미르를 정인으로 두고 있었으니 추포하라고 의금부에 명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관리들이 그게 뭐냐며 반문하겠지요. 후후.”“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하.”“그래도 형님을 감시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붉빛미르와 형님 사이가 그리 얕다고는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붉빛미르가 지금은 밖으로 돌아다니고 있다한들, 형님께 몸을 의탁하려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그러다 이도가 천우에게로 더 바싹 다가왔다.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런데 물빛. 물빛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무슨 말씀이신지?”“붉빛미르가 물빛미르께 거절당하여 크게 낙심했다고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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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왕과 대군 (8)

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백성의 삶이 곧 조선의 삶이 되는 법. 이 땅의 백성으로서, 모두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사람이 아닌 미르라 할지라도 미래는 결코 볼 수 없는 법.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저승길로 갈지 알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의 역법이 완성되어 제가 사라지게 되더라도 그것은 알 수 없을 일. 저는 제가 지금 숨 쉬고 살아가는 조선 땅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것뿐입니다.” 천우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혹시 아십니까? 하늘이 감격하여 역법이 다 만들어진 후에도 저더러 남아있으라고 유예를 해줄 지도요.”“저로서도 그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이도도 웃어보였다. “경연하기 싫을 때 가끔 장대비나 좀 내려주시고 하면 더욱 좋겠지요.”“사주하시는 겁니까?”“부탁드리는 겁니다. 제발 좀. 저도 가끔씩은 비 핑계대면서 벼슬아치들이랑 안 떠들고 차나 좀 마시고 싶단 말입니다.” 이도가 키득대는 한편, 안심하는 투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도의 한마디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붉빛미르의 뒤를 잡으려면 가까운 곳의 학사들부터 찾아야하는데…….”“한양 근방으로 파견하신 학사가 또 따로 있으십니까?”“인천 쪽으로 간 학사가 한 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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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불과 적 (1)

곰보도, 천우도 서로를 알아본 듯했다.허공에서 엉긴 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너……!”천우가 황망하게 곰보를 부르려했다.그러나 곰보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방금 자기가 튀어나왔던 곳으로 도망쳐 들어갔다.“무슨 일입니까?”이도가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방금 그놈…….”천우가 황망한 채로 대답했다.“제 목걸이를 훔쳐갔던 놈입니다. 아버님의 목걸이를요!”“아버님? 설마 백사성의 목걸이 말입니까?”“네! 그 목걸이가 돌고 돌아 붉빛미르에게까지 닿았던 것입니다. 저 놈이 갑자기 또 나타나다니! 붉빛미르와의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될지 모를 일입니다!”“그렇다면 일단 붙잡아야겠지요.”이도가 호기롭게 말고삐를 죄며 중얼거렸다.천우가 그런 이도를 가로막았다.“아니 됩니다, 전하! 제가 일전에 저놈과 싸워본 바, 무장한 패거리를 또 거느리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부디 옥체를 보전하소서.”“그렇지만 저 놈을 잡으면 붉빛미르를…….”“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붙들고 있을 테니 전하께서는 어서 포청으로 가서 이포교나 다른 병력을 불러주십시오.”“그랬다가는 늦을겁니다!”그러나 이도는 듣지 않고 먼저 말을 몰았다.쏜살같이 골목 안으로 뛰쳐 들어가는데,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저, 전하……. 어휴…….”천우는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로 이도의 뒤를 따랐다. * * *곰보는 일전에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날랬다.담벼락을 타넘고, 행인들 사이를 왔다갔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데 쉽게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였다.이도가 앞서고, 천우가 뒤따랐다.다행히 잘 훈련된 어승마들은 남들과 부딪히지 않게 유의하면서도 보폭을 줄이지 않았다.빠른 속도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곰보와 차츰 거리를 좁혀 가는데, 기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된 듯했다.‘빠르다.’말을 몰던 천우가 곰보의 등을 노려보았다.어쩐지 전에 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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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불과 적 (2)

“전하!!!”천우가 고함을 질렀다.곰보의 공격이 더 가까이 서 있던 이도에게로 먼저 짓쳐들었다.카앙-!!!이도가 칼을 휘둘러 곰보의 공격을 튕겨냈다.정확하게 칼날을 노려 반원형으로 크게 베어내는데, 온몸의 체중을 실어 낫 주인까지 한꺼번에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대단한 칼솜씨였다.쿵-!날아간 곰보가 땅바닥에 볼썽 사납게 처박혔다.아픈 것인지, 충격을 받은 것인지 흔한 신음소리 하나 내질 않았다.“전하!”천우가 급히 이도 옆으로 다가갔다.“괘, 괜찮으십니까?”“별 거 아닙니다.”이도가 곧바로 칼을 꼬나쥐며 대꾸했다.“이 정도라면 혼자 힘으로도…….”그러나 곰보 쪽을 돌아보던 이도가 흠칫 놀라 말을 멈췄다.천우도 놀란 듯 헉- 숨소리만을 낼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쓰러진 곰보가 기이하게 일어섰다.무릎을 굽히지도, 팔로 땅을 짚지도 않은 채로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일어났다.“저건…….”붉빛미르의 이공간 속에서 보았던 백사성과 매한가지였다.‘설마 이놈도 붉빛미르에게……?’그러나 현실 속에서, 조선 땅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저리 움직이는 걸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했다.“뭐, 뭡니까, 저게?”이도 또한 크게 당황하여 검을 앞세우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끄으으으…….”곰보가 허리를 수그린 채로 그 자리에 우뚝 섰다.보이지 않는 손이 놈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덫에 걸렸다 풀려난 짐승이 사냥꾼 앞에서 마지막으로 달려들 태세를 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낫을 든 팔을 축 늘어뜨리고, 산발이 된 머리 아래에서 거친 숨소리만 토해내는데, 독기(毒氣)를 뿜어내는 두억시니가 따로 없었다.화악-!!!별안간, 곰보 놈의 낫 잡은 손에 불길이 일었다.너무나 새빨간, 자연적으로 솟아오를 리 없는 형태의 불꽃이었다.손이 불에 휩싸여있는데도, 곰보는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은 듯했다.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서 있는데, 마치 사람 형상을 한 허수아비한테 불을 붙였나 싶을 정도였다.“저게…….”이도가 뭐라 한마디 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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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불과 적 (3)

“물러나 계십시오.”천우가 다시 한번 이도에게 경고했다.“놈을 금방 처리하고, 붉빛미르의 행방을…….”그러나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곰보가 다시 덮쳐왔다.천우를 두 동강을 내겠다는 듯, 사선으로 크게 낫을 휘두르는데 산돼지의 목이라도 갈라낼 수 있을 기세였다.채앵-!!!천우가 우선 낫을 막아냈다.‘!’어쩐지 너무 성급하게 휘두른다는 감이 있었는데, 함정이었다.낫은 미끼.진짜 공격은 비어있는 다른 쪽 손에 휘감은 불길이었다.창자가 다 익어버릴 듯한 열기가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큽……!”천우가 얼른 팔꿈치를 들어 방어했다.적으나마 물을 감았던 것이라 직격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불과 물이 만나 터져 나온 증기가 몸을 세게 밀쳤다.검은 증기였다. 붉빛미르와 물빛미르의 권능이 부딪혔을 때 솟는 그것이었다.척-뒤로 밀려난 천우가 다리에 힘을 주었다.허벅지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별 수 없었다.곰보가 또 다시 공격해왔다.산을 가를 것 마냥 수직으로 낫을 내리찍었다.천우가 몸을 돌려 피했다.그리고 등 뒤로 돌아가던 힘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좌악-!곰보의 이마 끝이 긴 서혈(鮮血)을 뿜었다.오른쪽 눈이 거의 날아갈 뻔한 곰보가 냉큼 상처를 감싸 쥐며 옆으로 물러섰다.거칠고 더러운 손틈 사이로 붉은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곰보가 남은 한쪽 눈으로 천우를 말없이 노려보았다.전에 보았던 때와는 달랐다.한마디 입도 벙끗하지 않고 조용히 쳐다보기만 하는데, 지난번 뒷골목에서 조롱하고 겁박하던 그 무도한 곰보 놈이 아니었다.“붉빛,”보고 있던 천우가 가만히 말을 붙였다.“거기 있소?”“…….”곰보는 묵묵부답이었다.“이게 지금 무슨 짓이오.”천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내 아버님을 불로 조종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조선 땅의 백성까지 그대의 인형으로 부릴 작정입니까? 게다가 함부로 흉기를 휘두르도록 만들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요?”“…….”“내 비록 미르이던 시절의 기억이 전무하나, 그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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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재림 (1)

‘만약 붉빛미르가…….’ 천우가 칼을 겨눈 채로 생각했다. ‘2년 전 대화재 때처럼 사람들에게 불을 먹여 기억을 봉인하고, 의식을 조종하여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면…….’ 제법 앞뒤가 맞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도 그렇게 격렬하게 피를 튀기며 싸워놓고도, 자기 손이 찢어져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강하게 조종 받고 있었음에도 정작 당사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2년 전 대화재 때도 아마 이러하였을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을 주입하여 눈과 귀를 빼앗고 몸을 꼭두각시로 삼아, 여기저기에 방화하며 한양을 불바다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천우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2년 전에는 기우사들을 몰살하기 위해 화재를 일으켰다지만, 왜 지금 또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지? 뭘 위해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붉빛미르의 의중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기우사들은 몰살되었고, 그토록 찾던 물빛미르도 발견해냈다. 굳이 2년 전처럼 또 무고한 이들을 괴롭힐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건 너무 악독한 짓거리가 아닌가. 어리 낭자. 붉빛미르여?’ 입맛이 씁쓸하기만 했다.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l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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