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Bab 161 - Bab 170

199 Bab

제161화

조원철은 서준의 팔목을 붙잡고 있는 강유영의 손을 노려보았다. 비록 소매 위로 잡고 있긴 했지만, 그의 눈가는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그 손 놓거라!”그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한기가 서린 호통이 터져 나왔다.강유영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며 황급히 손을 떼고 물러났다.눈시울은 금세 붉어졌고, 핏기가 가신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오늘 천지신명에게 제를 올리는 행사는 진국공부의 중대사였다. 조원철은 오전에 제사 준비로 바빴을 테고, 점심 공양을 마친 후에는 한씨와 함께 주지스님의 불경을 들어야 마땅했다.원래대로라면 그는 강유영의 동향을 살필 겨를이 없었을 텐데, 운귀사를 떠나 이곳까지 그녀를 찾아온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처사였다.진국공과 한씨가 찾을까 걱정도 되지 않는단 말인가?“무섭게 왜 그러시오? 애가 놀랐지 않소.”서준은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강유영을 제 등 뒤로 감싸며 조원철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의 기세는 조원철에 비해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이리 오거라.”조원철은 그를 철저히 무시한 채, 강유영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서준도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보았다.강유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준의 등 뒤에 서서 겁먹은 어린애처럼 감히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조원철이 저렇게 노발대발하고 있으니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다가가는 건 제 발로 사지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보시오. 이 아이는 그대를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이만 가 보시오.”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조원철을 쫓아내려 했다.강유영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불청객이 들이닥쳐 심기가 상한 상태였다.조원철은 불쑥 손을 뻗어 서준의 손목을 움켜쥐더니 옆으로 홱 잡아챘다. 서준은 그가 힘을 쓰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대로 밀려 아궁이 옆으로 나동그라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조원철이 먼저 폭력을 행하게 유도하는 것, 그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조원철이 흉포하게 굴수록 강유영은 그를 더 안쓰러워할 것을 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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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그래서 서준은 그 진실을 입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서왕 전하, 전하께서는 황자의 신분이십니다. 폐하와 태후마마께서도 전하가 일개 진국공부의 양녀를 왕비로 맞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테지요. 그러니 다시는 그 아이를 찾지 마십시오. 이는 전하와 그 아이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조원철의 말투는 평소처럼 차분하고 냉담했다.“그대는 꼭 유영을 정실로 맞이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군.”서준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조원철은 그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갔다.서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조원철은 확실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방금 그가 한 말은 서준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하지만 그래서 뭐?’이전에도 온갖 난관을 뚫고 지금의 자리까지 온 그였다.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한편, 강유영은 잔뜩 화가 난 조원철을 보며 심장이 마구 뛰었다.밖으로 나와 마차에 올라탔지만, 그녀는 말을 몰 줄 몰랐다. 마차 안에 숨어봐야 도망칠 수도 없었기에 조원철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생각할수록 무서웠던 그녀는 결국 마차에서 내려 골목을 걸었다.이 골목만 나가면 시장이니 차라리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시간을 조금 벌면 조원철의 화도 조금은 가라앉을 것 같았다.얼마 안 가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이내 뒤를 돌아보니 조원철이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위압적인 모습에 강유영은 걸음을 재촉했지만, 말발굽 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조원철이 몸을 숙여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말 위로 올렸다. 강유영은 그와 마주 보는 자세로 말에 타게 되었다.발이 공중에 뜨자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여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오늘 그가 조용히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조원철은 한 손으로 그녀를 품에 누르고 말을 몰았다.귓가로 거센 찬바람이 스쳤다. 공중에 떠서 흔들리는 느낌이 두려워 강유영은 그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매서운 찬바람에 몸이 떨렸다.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그에게 애원했다.“제발 내려주세요. 시장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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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사람들은 그녀를 양녀 주제에 염치도 없이 오라비를 유혹한 파렴치한 여인으로 몰아갈 것이다.“네가 무슨 속셈인지는 너 스스로가 더 잘 알겠지. 그자가 정녕 좋은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조원철의 어조에는 전에 없던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저는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그는 당당히 제게 청혼했죠. 남부끄러운 외실로 삼으려 하거나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지도 않았어요.”강유영은 점차 안정을 찾고 용기를 내어 대들었지만, 실상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문득 예전에 배웠던 자극 계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자극해야 조원철이 자신을 놓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설령 이 방법이 통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결과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니까.이 또한 조원철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이치였다.“그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다.”조원철이 냉정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어투에는 아까보다 더 짙은 노기가 서려 있었다.강유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즉시 입을 다물었다.사람들이 많은 곳에 도착한 걸까? 설마 조원철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대낮에 사람들 앞에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한참을 더 걸어간 끝에 마침내 그녀를 놓아 주었다. 곧이어 강유영의 귀에 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극심한 공포에 머릿속이 하얘진 그녀였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주지스님의 말씀대로라면, 선행을 충분히 쌓기만 해도 업보를 씻어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한씨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유영은 혼비백산하여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자신을 덮고 있는 겉옷 안으로 파고들었다.한씨는 주지스님의 경문을 듣고 있었다. 목소리 크기로 보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정말 나를 일행이 있는 곳으로 데려온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 한씨가 그들을 보았다면 아무런 반응도 없이 한가하게 주지스님에게 질문을 던질 사람이 아니었다.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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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강유영은 목안이 바짝 타들어 가며,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바들바들 떨렸다.조원철의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심장은 요동치듯 가슴팍을 때렸고, 숨조차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무의식중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통증이 느껴졌지만, 가슴속을 휘젓는 공포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미쳤어!’한씨가 언제든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그는 두렵지도 않은 걸까?밀어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자 강유영은 뒤로 물러나려 했다.하지만 조원철에게 붙잡힌 턱 끝이 단단히 고정되어 도망칠 곳이 없었다.곧이어 그의 입술이 닿았다. 부드럽고, 또 뜨거웠다.불길에 덴 듯 소스라치게 놀란 강유영이 뒤로 몸을 뺐다.공포가 초인적인 힘이라도 만들어낸 것인지, 간신히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조원철의 커다란 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거칠고 뜨거운 손바닥이 턱을 훑고 지나가자 강유영은 몸을 크게 움츠렸다.조원철의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움켜쥐며 힘을 주었다.백자처럼 희고 가느다란 목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가냘팠다.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정말 끊어질지도 몰랐기에, 강유영은 억지로 고개를 들은 채 조원철을 올려다보았다.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됐고 입술은 꾹 다물렸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에는 겁에 질린 기색과 애원이 역력했다.조원철은 이를 외면한 채 다시 고개를 숙였다.강유영은 몸을 움직일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그저 흐릿한 눈으로 다가오는 조원철의 수려한 얼굴을 바라보며 거부할 수 없는 입맞춤을 받아낼 뿐이었다.분노가 서린 입맞춤이 이어졌다.조원철은 강유영의 입술을 짓이기며 치열을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모든 것을 약탈하려 들었다. 사색이 된 강유영은 그저 아픔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그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버티는 것뿐, 달리 방도가 없었다.조원철은 더욱 사납게 몰아붙였다. 입술을 뭉개던 움직임이 점차 변하더니 사납게 그녀의 입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아,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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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왔으면 들어올 것이지, 왜 그러고 있느냐?”한씨가 휘장을 걷고 들어오며 조원철에게 물었다.방금 전 조원철의 뒷모습이 마치 강유영과 바짝 밀착해 있는 듯 보였기에, 잔뜩 의심이 깃든 말투였다.그녀는 시선을 돌려 의자에 웅크린 채 조원철의 겉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강유영을 보았다.한씨의 안색이 급변했다.“유영이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너희, 설마….”강유영은 숨이 턱 막혀 죽을 것 같았다.변명이라도 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더구나 그녀의 입술에는 조원철이 남긴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씨가 손을 치워 보라고 명한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될 터였다.한씨의 날카로운 눈길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비정상적으로 가까운 거리였다.방금 본 광경이 정말 헛것이었을까?게다가 아들의 입술은 마치 누군가와 격한 입맞춤을 나눈 것처럼 묘하게 젖어 있었다…‘아니, 그럴 리 없어.’한씨는 고개를 저었다. 조원철은 경성 모두가 아는 성인군자였다. 평소 성품이 대쪽 같고 냉철한 그가 강유영 같은 아이에게 딴마음을 품을 리가 없었다.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힌 한씨의 시선이 다시 강유영의 얼굴에 머물렀다.인정하기 싫지만, 계집의 미모는 확실히 빼어났다. 화려하면서도 해맑고 청초한 얼굴이 지금은 피가 배어 나올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게다가 울었는지 눈가가 퉁퉁 부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강유영을 혐오하는 그녀의 눈에도 이토록 가련하고 예뻐 보이는데, 혈기왕성한 아들의 눈에는 오죽할까 싶었다.곧이어 조연화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공간은 금세 북적거리기 시작했다.“유영이가 몸이 안 좋아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먼저 귀가시키려던 참이었습니다.”조원철이 한씨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깊고 검은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하고 차가운 얼굴이었다.강유영은 그의 의연한 태도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마구 요동치던 심장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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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바짝 긴장한 강유영과 대조되게 조원철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의 앞을 지나쳤다.그의 무덤덤한 태도에 강유영은 마음 한구석이 아릿하게 떨려 왔다.‘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요월원.“아씨, 어찌 된 일이에요? 왜 벌써 돌아오셨어요?”단비는 돌아온 강유영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오늘은 천지신명께 제를 올리는 날이라, 별일 없다면 밤늦게야 돌아올 일정이었다.“별거 아니야.”강유영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여전히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있었다. 오는 내내 입술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눈에 띄는 상처가 분명했기에 손을 뗄 수가 없었다.“안색이 안 좋으신데, 침소로 돌아가 좀 쉬실까요?”단비는 강유영이 입을 다물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아씨가 이런 반응을 보일 때는 필히 세자와 연관이 있으리라.“그래.”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강유영은 침상에 몸을 뉘었다. 단비는 이불 속에 난로를 넣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소인은 잠시 오씨 어멈에게 다녀올 테니,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알았으니까 어서 가봐.”강유영은 여전히 손으로 입술을 가린 채 말했다.단비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한 번 더 살피다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섰다. 오랫동안 곁을 지킨 단비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기류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단비로서는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단비가 나가자마자 강유영은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동거울 앞으로 다가가 거울 속에 비친 입술을 살폈다.붉게 부어오른 아랫입술에는 선명한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절에서 있었던 일들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정말 너무하시네.’그녀는 서랍을 열어 붓기를 해소하는 연고를 꺼내 조심스레 약을 발랐다.이 상처가 빨리 가라앉아야 할 텐데,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부끄러워 사람을 대면할 면목이 없었다.침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리저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아, 서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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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비바람에 맞은 풀잎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운 없이 웅크린 그 모습은 몹시도 가련하고 처연해 보였다.“왜 또 우느냐?”그러자 조원철이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강유영은 그를 못 본 체했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더 거세졌다.“아파서 그러느냐?”조원철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에 난 잇자국을 가볍게 쓸어내렸다.강유영은 오기가 치밀어 온 힘을 다해 그 손을 뿌리쳤다.“그만, 뚝.”조원철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너도 나를 여러 번 깨물지 않았더냐.”강유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삼키더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의 가슴팍을 마구 때렸다.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단 말인가!아무 연고도 없이 그를 깨문 것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맞추려 드는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어찌 이렇게 뻔뻔할 수가!’조원철은 그녀가 분풀이를 하도록 가만히 들어주다가, 힘이 빠져 움직임이 멈춘 후에야 나직이 물었다.“더 잘 테냐?”강유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침상에 기댄 채 침묵을 지켰다.그가 품에서 무언가 꺼내는 것이 보였다.그것을 알아본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오늘은 수업이 없다고 하셨지 않나요?”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서책 한 권이었다.이미 어제 저녁에 오늘은 하루 쉬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이 밤에 서책을 들고 찾아왔단 말인가?“수업이 아니다.”조원철은 서책의 표지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눈물 젖은 눈으로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녀의 두 눈이 순간 반짝였다.서책의 표지에는 단정한 필체로 ‘붉은 거미’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이는 근래 저잣거리에서 한창 유행하여 강유영도 익히 들어본 이야기책이었다.“안쪽으로 가거라.”조원철이 침상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얌전히 안쪽으로 몸을 옮겨 그가 앉을 자리를 내어주었다.예전에도 글공부를 잘 마치면 그는 종종 이야기책을 가져와 읽어주곤 했고,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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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마차 안에 화로가 있어서 견딜 만했습니다.”소은경은 한씨를 따라 평상에 마주 앉으며 좌우를 둘러보고는 생긋 웃었다.“세자는 어디 계십니까?”“궁에 갔단다. 너도 세자의 성격을 잘 알지 않느냐. 새해가 코앞이라 폐하를 모시고 공무를 보느라 늘 바빠서 나도 얼굴 본 지 며칠이나 되었단다.”한씨는 손난로를 가져와 소은경의 손에 쥐여주고는 화로를 그녀의 앞으로 좀 더 당겨주었다.한씨는 그렇게 소은경을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부인,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소은경이 의아한 듯 물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폐하께서 혼인을 하사하신 지도 반년이 지났구나.”한씨는 다시금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내심 설 전에 너희 두 사람이 혼례를 올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으니 원.”“폐하의 뜻에 따라야지요.”소은경은 명색이 아녀자인지라 혼사 이야기가 나오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사실 나도 그리 조급한 것은 아니다만….”한씨는 얼굴에 시름을 가득 담았다.“너희가 혼약만 정하고 혼례를 치르지 않으니, 눈치 없는 것들이 세자에게 딴마음을 품을까 걱정되는구나. 억지로 내쫓을 명분도 마땅치 않고 말이다. 혹여 그 아이가 너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아 앙금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구나….”한씨는 말을 아끼며 무덤덤한 눈빛으로 소은경을 살폈다.“부인, 혹 유영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옵니까?”소은경은 단박에 의중을 알아차렸다.한씨는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내 입으로 말하긴 참 껄끄럽구나. 우리 세자야 사특한 마음을 품을 애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만, 그 양녀가 문제지…. 결국 남의 핏줄인데, 제딴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 않겠느냐?”한씨는 소은경의 손을 다정하게 토닥였다.소은경은 눈을 굴리며 상대방의 뜻을 파악했다.한씨는 지금 강유영을 쫓아낼 결정적인 구실이 부족하다며 넌지시 암시를 주고 있었다.소은경 역시 진작부터 강유영을 진국공부에서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시집을 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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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유영 아씨, 부인께서 정원으로 가서 손님들을 맞이하라 하셨습니다.”풍씨 어멈이 무표정한 얼굴로 강유영에게 말했다.‘앙큼한 계집 같으니라고!’방금 전, 한씨는 이미 사람을 한 번 보냈는데 강유영이 초대를 거절한 것이다. 이에 한씨는 어쩔 수 없이 풍씨 어멈에게 직접 다녀오라고 명했다.“알겠어요.”강유영은 눈을 내리깔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녀는 오늘 진국공부에서 매화 연회를 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래서 한씨가 처음 사람을 보냈을 때, 완곡히 거절한 것이었는데, 한씨가 풍씨 어멈까지 보낼 줄은 예상치 못했다.그동안 강유영은 이 집안에서 사람들에게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예전에는 연회가 열려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고, 한씨 역시 그녀가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한씨는 그녀에게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그동안 조원철에게 배운 것도 많고 서책을 통해 여러 사례를 접했던 강유영은 한씨의 이례적인 태도에 문득 경계심이 생겼다.“부인께서 사람을 보내 청하신 것은 아씨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눈치껏 행동하셔야지 어찌 이 늙은이를 두 번 걸음하게 만드십니까?”풍씨 어멈은 곱지 않게 입을 삐죽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고, 말투에도 자연스럽게 불경함이 묻어났다.지난 수년간 늘 이런 태도였다. 풍씨 어멈의 눈에 강유영은 진국공부에서 신임을 받는 하인들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그러니 제 마음대로 지껄여대는 것이다.“제가 어멈을 오시라 한 게 아닙니다. 어머니의 분부이신데, 불만이 있으시다면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그러셨습니까.”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반박했다.한씨가 자신을 해치려는 건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하던 차에, 풍씨 어멈의 타박까지 귀에 들리자 저도 모르게 받아치고 만 것이다.“어찌 감히 제게….”풍씨 어멈은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노려보았으나, 말문이 막혔다.‘감히 내게 말대답을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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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도경진보다 더 좋은 사람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저는 괜찮습니다. 유영 아씨는 요즘 어떠십니까?”도경진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저도 여전합니다.”강유영은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가시지요.”외딴곳에서 남녀가 단둘이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물며 그는 이제 조사예의 정혼자가 아닌가.혹여 조사예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또 무슨 소란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그러지요.”도경진은 할 말이 더 있는 듯 망설이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정원에 가까워질수록 사방에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겨울의 홍매화가 흰 눈을 배경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한씨는 정자 사방을 무명천으로 두르게 하고, 햇볕이 드는 남쪽만 열어두게 했다. 귀인들은 모두 그곳에 모여 몸을 녹이고 있었다.“유영아, 이리 오렴.”소은경은 강유영을 발견하자마자 미소를 띠며 손짓했다. 그러자 그녀의 곁에 있던 귀족가의 영애들도 일제히 강유영을 바라보았다.강유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소은경은 집안의 귀한 손님이니 무례하게 굴 수도 없는 데다가, 그녀는 미래에 형님이 될 사람이었다.속으로는 정말이지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모른 체할 수도 없었다. 강유영은 소은경이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거울 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자.”소은경은 술잔에 가득 채운 무언가를 건네며 단호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내가 한잔 권하마.”소은경은 서두도 떼지 않고 곧장 술잔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성격이 유약한 강유영이 자신을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군주님,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강유영은 주저하다가 결국 거절의 뜻을 표했다.지난번 술을 마시고 겪었던 호된 교훈이 아직도 눈에 선했기에 다시는 경솔하게 술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소은경이 좋은 마음으로 술을 권했을 리도 없었다. 잔 안에 안 좋은 무언가가 들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이건 과실주가 아니라 침향을 우린 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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