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Bab 181 - Bab 190

199 Bab

제181화

강유영은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세차게 쿵쾅거렸다.대청 가득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조원철은 탁자 밑에서 대담하게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미치지 않고서야 대체 왜 이러는 거지?’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조용히 손목을 비틀었다.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손길은 더욱 빈틈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단단한 굳은살이 그녀의 고운 손등을 거칠게 감쌌다.그의 온기는 작은 불씨처럼 손목을 타고 올라와, 그녀의 귀까지 빨갛게 달구었다.하얀 얼굴에 서서히 짙은 홍조가 피어오르고, 코끝에는 식은땀이 맺혔다.눈앞에 앉은 한씨와 일가족들의 모습이 서서히 흐려지고,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마저 아스라이 멀어졌다.오직 손끝에 닿은 그의 뜨거운 체온만이 선명하게 전해지며, 거대한 공포가 그녀를 집어삼켰다.‘여기서 들통이라도 난다면….’강유영은 차마 뒷일을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정작 조원철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진국공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폐하께선 저희 진국공부에게 어느 한 황자에게 줄을 대라고 종용하시는 형국이 아닙니까?”그의 어조는 더없이 평온했으나, 탁자 밑에서는 여전히 강압적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어찌 이리도 뻔뻔할 수가!’“꼭 그렇지만은 않다.”조정휘가 고개를 저었다.“폐하께서 진정 그런 뜻이 있으셨다면 이번에 연화의 이름을 거론하셨겠지. 그저 유영이가 우연히 어느 황자의 눈에 든 것일 게다. 유영이 넌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어찌 됐든 강유영은 이 집안의 양녀였다.그녀가 어느 황자의 품에 안기든 진국공에게는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설령 훗날 황자와 뜻이 맞지 않아 정적으로 돌아서야 할 때가 오더라도, 그땐 가차 없이 강유영을 버리면 그만이었다.어차피 혈연도 섞이지 않은 양녀 따위, 버린대도 아쉬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예, 아버지.”강유영은 그저 순종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진국공부가 베푼 그 가당찮은 양육의 은혜가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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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결국 강유영은 주먹을 꽉 쥐고 차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억누룰 수밖에 없었다.“유영이 너 왜 그러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인자하게 휘어진 한씨의 눈매 뒤에는 날카로운 의심이 숨어 있었다.‘저 요물 같은 것이 아무 연고도 없이 얼굴을 붉힐 리가 없는데?’한씨는 강유영이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조원철을 홀리려고 은밀히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몸이 조금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어머니.”강유영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송구하옵지만, 저는 이만 먼저 물러가 보아야 할 듯합니다.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아버지, 어머니.”“의원을 불러 진맥이라도 받아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진국공 조정휘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아닙니다, 처소에 돌아가 잠시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강유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정 그렇다면 어서 가보거라. 참, 의복을 입어보고 조율하는 것은 잊지 말고.”한씨는 눈엣가시 같은 그녀를 얼른 치워버리고 싶었기에 순순히 허락했다.강유영은 어른들께 정중히 예를 올리고는 걸음을 옮겼다.대청을 벗어나자마자 매서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그러자 얼굴을 달구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이 미친 사람 같으니라고!’그는 진정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그녀는 겉옷을 단단히 여미고는 차가운 어둠 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원래부터 이 형식적인 자리를 일찍 빠져나와 오씨 어멈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으니, 차라리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일 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조원철도 한씨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밤을 보내야 할 것이고, 정월 초하루인 내일 역시 가족 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적어도 이 이틀만큼은 그가 요월원의 문턱을 넘을 일은 없을 것이고, 그동안 그녀는 마음 놓고 입궁 준비에만 전념하면 그만이었다.“아씨, 돌아오셨습니까? 어서 이리 와서 앉으세요. 따뜻한 음식을 내오겠습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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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조원철은 뒤에서 그녀의 가냘픈 몸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탄탄한 가슴이 등에 밀착되면서, 옷감 너머로도 그의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오라버니….”강유영이 겨우 입을 열려던 찰나, 그는 그녀의 턱을 붙잡고 제 쪽을 바라보도록 강제로 고개를 돌렸다.곧이어 그가 고개를 숙여 그대로 입을 맞췄다.뒤에서 결박당하듯 안긴 자세라, 그녀는 도저히 제대로 반항할 수가 없었다.입술을 부비고 깊숙이 파고드는 숨결에 숨이 가빠지자, 은은한 과실주 향이 섞인 감송향이 코끝에 진하게 스며들었다.강유영은 머리가 아찔해지며 온몸에 힘이 풀렸다.커다란 손이 쇄골을 지나 옷깃을 헤치며 안으로 파고들었다.강유영의 목 안에서 나직한 거부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목을 붙잡아 보았지만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그는 매번 입을 맞출 때마다 손으로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그의 거친 공세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내 사랑….”귓가에 밀착된 조원철의 입술 사이로 애달프고도 짙은 욕망이 섞인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싫어요!”그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소은경이 떠오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수치심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오자,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지난번에도 이러했다.술에 잔뜩 취해 그녀를 소은경으로 착각하고 강제로 품었다.이번만큼은 절대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지난번처럼 인사불성인 상태도 아니었다.분명 이성이 남아 있었다.지난번엔 그녀에게 의사를 묻기는커녕, 말 한마디 꺼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조원철은 그녀의 몸을 돌려세워 마주 보게 하더니, 다시금 품에 끌어안고 이마를 맞대었다.“원철 오라버니…. 저 아픈 거 싫어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강유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그를 애처롭게 올려다보았다.탐스러운 윤기가 흐르던 붉은 입술은 살짝 부어오른 상태였다.그녀는 더 이상 소은경의 대역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와 구질구질하게 얽히는 것도 사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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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오라버니, 오늘은 달거리가 와서… 정말 이러시면 안 됩니다….”다급해진 강유영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핑계를 꺼내며 비명을 질렀다.그녀는 흐느끼며 흐트러진 옷자락을 황급히 여미고는 그를 밀쳐냈다.조원철의 집요한 집착은 늘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홀로 처소에 있을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이런 강압적인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남몰래 생각해 두곤 했다.달거리가 시작되었다는데 설마 무작정 밀어붙이진 않겠지 싶었다. 다만 그가 이 얄팍한 거짓말을 믿어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다행히도 혼미한 와중에도 조원철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귓가에 맴도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강유영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혹여 들킬까 두려워 흐느끼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대체 날 뭐로 보고 이리 함부로 대하는 거지?’소은경의 대역일까?아니면 몰래 숨겨둔 정부?그것도 아니면 한낱 노리개에 불과한 걸까?무엇이 되었든 그녀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그게 사실이냐?”조원철이 다가와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 쥐었다.짙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갈라진 목소리만큼이나 붉게 충혈된 눈꼬리와, 목덜미에 불거져 터질 듯 꿈틀대는 목젖이 그의 끓어오르는 욕망을 보여주고 있었다.“못 믿으시겠다면… 제가 보여드리기라도 해야 하나요?”강유영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다.가슴이 터질 듯 방망이질 쳤다.거짓말이 들통날까 두려워 차마 그의 눈을 마주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사실 그녀의 달거리는 평소에도 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되었다.”조원철이 마침내 몸을 돌려 침상에 걸터앉았다.그러고는 흩어진 그녀의 옷자락을 정리해 주었다.“제가 할게요. 어서 가보세요. 어머니께서 찾으실 건데….”구사일생으로 벗어난 강유영은 급히 몸을 일으켜 침상 구석으로 물러나 바짝 웅크렸다.그의 손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그저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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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내가 뭘 할 줄 알고?”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겨우 가라앉았던 붉은 기운이 다시 확 피어올랐다.매번 그는 이런 식이었다.그녀도 할 수만 있다면 자꾸만 겁을 내며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그가 먼저 겁을 주었고, 툭하면 안하무인으로 밀어붙였으니, 그 고약한 버릇만 아니었어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겁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조원철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얇은 옷고름을 쥐더니 다시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매듭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강유영의 가슴도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다급히 옷자락을 움켜쥐었다.“제… 제가 입겠습니다.”그의 돌발 행동은 늘 이렇게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굳이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이 사내가 작정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그녀는 거역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그러나 조원철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고는 고름을 차례차례 풀어내렸다.겉옷이 벗겨지고 상아색 속옷만 남았다.한기가 스며들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혹여 그의 심기를 건드려 사태를 악화시킬까, 더는 반항도 하지 못했다.조원철은 발끝으로 화로를 조금 더 가까이 당겨놓은 뒤, 준비해 온 다홍빛 저고리를 그녀의 어깨에 정성스레 걸쳐주었다.이어서 상아색의 화려한 치마까지 손수 입혀주었다.그가 허리를 굽혀 치맛자락을 매만지는 동안, 강유영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내려다보았다.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 그녀는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히며 그를 피하려 애썼다.이윽고 몸을 일으킨 조원철은 그녀를 품에 가두듯 양팔을 뻗어 등 뒤에서 치마끈을 조여맸다.아무리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어도 그의 단단한 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옷자락을 뚫고 전해지는 그의 뜨거운 열기와,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쌉싸름한 감송향에 머리가 어지러웠다.식은땀이 배어난 이마에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달라붙었고,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그녀는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숨 막히는 품을 벗어나 단비를 안으로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이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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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강유영이 품 안에서 바둥거리자, 조원철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제지했다.“쉿, 어서 저길 보거라.”그는 그녀의 고개를 돌려 창밖을 향하게 했다.강유영이 고개를 든 찰나, 찬란한 불꽃들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의 하얗고 고운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사방에서 다투어 피어나는 오색찬란한 불꽃들은 마치 은하수가 인간 세상으로 쏟아져 내려와,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그림을 그려놓은 듯했다.“새해에는 늘 평안하고, 다가올 봄날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조원철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물기 어린 눈망울을 크게 뜬 채 그를 돌아보았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눈앞으로 무수히 많은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것만 같아, 이 아름다운 꿈에서 깰까 두려워 감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그에게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면이 있었던가?“너는 내게 어떤 덕담을 건네겠느냐?”불꽃이 창공에서 환하게 빛나던 찰나, 그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강유영은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시선을 살포시 아래로 내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오라버니, 새해가 밝았으니 부디 한 해 동안 평안하시고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그녀는 본래 이렇게 고풍스러운 덕담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 역시 며칠 전 조원철이 가르쳐 준 문구들이었다.“잘했다.”조원철은 만족스러운 듯 그녀를 품에 더 깊숙이 끌어안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마음에 드느냐?”“예, 좋네요.”강유영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슬픔이 몰려오며 눈앞이 흐려졌다.한 해가 지나갔으니 그는 소은경과 혼례를 치를 것이다.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날 동안, 소은경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대해주리라.지금 그가 건네는 일말의 온정은 밤하늘을 수놓은 저 불꽃과 같았다.눈부시게 찬란하지만 찰나에 불과해, 오히려 뼈에 사무치는 시린 상흔만 남길 것이다.강유영은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그는 애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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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강유영은 금원보를 손에 받쳐 들고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러다가 한참 후에 그것들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장롱을 열어, 조원철이 그동안 보내온 귀한 물건들이 쌓인 곳에 함께 깊숙이 넣어두었다.그러고는 편채로 가 오씨 어멈이 챙겨준 소박한 세뱃돈 주머니를 가져와 베개 밑에 소중히 밀어 넣었다.정월 초이튿날 해질 무렵, 요월원.강유영은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고, 단비는 분주히 그녀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아씨, 이것들을 다 치장하시겠습니까?”단비는 다홍빛 옥으로 장식된 수많은 머리 장신구를 나란히 펼쳐놓으며 강유영에게 물었다.“두어 개만 골라서 꽂아주면 돼.”강유영은 장신구를 힐끗 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조원철이 마련해 준 이 화려한 의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늘 입궐하여 정녕 어느 황자의 첩실로 간택될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어지러웠다.만에 하나 정말로 간택된다면, 미천한 처지에 거절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단비는 비녀를 꽂아주며 감탄했다.“아씨, 의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십니다.”의복과 장신구가 모두 화사한 다홍빛이라 강유영의 빼어난 미모와 어우러져, 흡사 노을이 그녀만을 감싸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평소의 청초한 느낌은 덜했지만, 오히려 조각 같은 이목구비에 화사하고 앳된 생기가 더해진 것 같았다.“아씨는 원래 이런 밝은 색을 자주 입으셔야 합니다.”뒤에 있던 서유가 맞장구를 쳤다.“가자.”강유영은 마음이 어지러워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볼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유가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단비는 뒤에서 거듭 당부했다.“아씨를 잘 보필해야 한다.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면 안 돼.”“알았대도.”서유는 손을 내저으며 강유영을 따라 정원을 나섰다.대문 밖에는 이미 세 대의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맨 앞에 세워진 널찍하고 호사스러운 마차는 조원철의 것이었다.마부석에는 청운만 앉아 있을 뿐, 조원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 뒤로는 한씨 부인과 조연화가 탈 마차가 자리했고, 맨 마지막에 선 마차가 바로 강유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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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예.”강유영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하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따금 슬그머니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궁녀와 내관들, 그리고 웅장한 궁궐의 전각들을 눈에 담았다.신년 연회는 대경전에서 열렸다.강유영은 앞장선 한씨를 따라 황제와 황후, 태후에게 절을 올린 뒤, 한씨가 정해 준 작은 주안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연회석은 남녀의 자리가 나뉘어 있었다.좌측은 남자석, 우측은 여자석으로 서로 마주 보는 구조였다.그녀는 조원철이 좌측 첫 번째 자리에 앉는 것을 보았다. 그가 앉은 곳은 황제의 옥좌를 제외하면 단연 가장 상석인 자리였다.황자들조차 앉지 못한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니, 폐하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 짐작이 갔다.그 아래로는 황자들의 석차가 이어졌는데, 비록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강유영은 그중 비어 있는 한 자리에 눈길이 갔다.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감히 황제가 있는 위쪽을 올려다보지 못했다.어전에서 실수를 범해 목숨을 잃거나, 진국공부의 위상에 폐가 될까 두려웠다.자리에 앉으니 주위에서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 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폈다.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경화 공주와 소은경이 보였다.두 사람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며 경계심이 일었다.아무리 봐도 불순한 의도를 품은 눈빛이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곳은 황궁이고, 황제와 황후, 태후까지 상석에 앉아 계신데 대경전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공주고 군주라고 해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았다.“서왕은 왜 안 보이지?”태후가 한마디 했다.강유영은 슬쩍 위를 훔쳐보았다.머리는 하얗게 샜으나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태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인상만 보면 꽤 까다로운 성정처럼 보였다.다시 시선을 옮겨 바라본 황제는 긴 얼굴에 눈꼬리가 치켜올라가 있었다.눈빛이 매섭지는 않았으나, 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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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건정제의 곁으로 다가간 고익은 몸을 굽히고 나직이 아뢰었다.“당도했다면서 어찌 들지 않는 게냐?”건정제의 목소리에는 딱히 책망하는 기색이 없었다.고익은 조심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건 소인도 잘 모르겠사옵니다.”건정제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진국공, 그대의 양녀가 누구인가?”전각 안이 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해지며 모든 이의 시선이 진국공에게로 쏠렸다.진국공은 강유영에게 일어서라는 눈짓을 보낸 뒤, 상석을 향해 예를 올렸다.“폐하, 이 아이가 소신의 양녀 강유영이옵니다.”“소녀 강유영, 폐하와 황후마마, 태후마마를 뵈옵니다.”강유영은 전각 중앙으로 걸어 나가 예법에 맞춰 절을 올렸다.원래 세가의 예법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기에, 급히 한씨가 사람을 붙여 이틀간 일러준 몸가짐이 전부였다.대강 모양새는 갖추었으나, 어릴 때부터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세가의 규수들과 비교하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았다.긴장감이 엄습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상하게도 생각했던 만큼 두렵지는 않았다.건정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가까이 나오거라.”강유영은 몇 걸음 더 다가가 걸음을 멈추었다.마침 그곳은 조원철의 앞이었다.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의 고귀하고 준수한 얼굴이 슬쩍 눈에 들어왔다.그는 제 앞의 술잔만 묵묵히 바라볼 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있었다.‘지금 서왕이 나를 간택할지 고심하고 있는 걸까?’쓰라린 한탄이 가슴을 후벼 파자, 그녀는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바닥만 응시했다.“고개를 들라.”건정제는 비스듬히 의자에 기댄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강유영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감히 용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건정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살폈고, 황후와 태후의 시선 역시 고스란히 그녀에게 꽂혔다.전각 안 모든 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자, 가시방석에 앉은 듯 숨이 막혀왔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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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한 무리의 내관들이 일사불란하게 탁자와 의자를 내왔다.자리는 앞뒤 세 줄로 나뉘어 무려 스물한 석이나 마련되었다.강유영은 연회장에 온 규수들이 어느 가문의 여식들인지 알 길이 없었다.평소 세가의 규수들과 교류할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그저 몇몇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단연 조연화였다.그녀는 강유영과 시선이 마주치자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노려보았다.조연화 입장에서는 비록 강유영이 어전에서 실수를 범하면 진국공부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겠지만, 차라리 경화 공주의 계략에 빠져 당장 목이 날아갈 만한 대역죄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조연화는 언젠가 저잣거리에서 서왕을 한번 마주친 뒤, 우연히 그의 신분을 알게 되면서 남몰래 연모의 정을 품어왔다.비록 서왕은 아직 그녀가 뉘 집 여식인지조차 모르지만, 조연화는 진국공부의 적녀라는 자신의 신분이라면 능히 황가와 맺어질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서왕부에 발을 들일 수만 있다면 측비 자리라도 감지덕지였다.그런데 어찌 근본도 없는 양녀 따위와 한 지아비를 모실 수 있단 말인가.“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한 궁녀가 다가와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자리를 안내했다.궁녀의 뒤를 따라간 강유영은 뜻밖에도 맨 앞줄 정중앙 자리에 배정되었다.치맛자락을 여미며 자리에 앉은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이토록 성대한 자리는 난생처음이라 잔뜩 얼어붙어 있었는데, 수많은 이들의 시선, 그것도 황제와 황후, 태후의 앞에서 다도를 시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탁자 아래로 꽉 마주 잡은 두 손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인 데다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그녀는 무의식중에 저쪽에 앉은 조원철을 바라보았다.저도 모르는 새 어느새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조원철은 평소와 다름없이 냉담하고 고요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그녀가 시선을 보내자, 그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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