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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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하지만 등 뒤에 바로 책상이 있어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조원철은 주저 없이 그녀의 신발과 버선을 벗겨냈는데, 오른발은 왼발보다 상태가 훨씬 처참해져 있었다. 서너 개의 물집이 터질 듯 팽팽하게 잡혀 있었다.조원철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덥석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영문을 몰라 멍해진 강유영은 침상 가장자리에 발을 걸친 채 상처를 살폈다.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꽁꽁 싸맨 왼손 손가락과 피가 배어 나오는 발을 번갈아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궁에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손과 발이 이 지경이 되다니.그녀와 같은 처지의 사람은 애초에 그런 귀한 곳에 발을 들이면 안 되는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조원철이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돌아와 침상 앞 디딤돌 위에 내려놓았다.강유영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마 발을 씻겨 주려고?’조원철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수온을 확인하더니, 이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아래로 당겼다.“오라버니, 뭐 하시는 거예요?”강유영은 깜짝 놀라 서둘러 발을 빼려 했다.두려움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왔다.그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히 그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수는 없었다.“다쳤지 않느냐.”조원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의 발을 붙잡아 대야 속에 담갔다.강유영은 겁이 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발버둥을 쳤다.그 바람에 대야를 툭 치고 말았고, 출렁인 물결이 그의 옷자락을 적셨다.그녀는 사색이 되어 잔뜩 움츠러들었다.그 고귀하고 유난히 결벽한 사내의 옷자락을 발 담갔던 물로 적셨으니 큰일이었다.하지만 조원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그녀가 굳어 버린 틈을 타 양발을 온전히 물에 담그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조심스레 씻겨 주기 시작했다.상처 부위를 요리조리 피하며 핏자국을 닦아 내는 손길이 지극히 정성스러웠다.강유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침상 아래 쪼그리고 앉은 그의 수려한 얼굴 위로 부드러운 촛불 그림자가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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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혼비백산한 강유영은 다급히 버선과 신발을 찾았다.일단 침상 아래로 내려가야 안전했다. 밖에 서서 맞이하면 한씨가 굳이 휘장까지 걷어 내며 안을 들여다보진 않을 터였다.하지만 버선은 이미 더러워졌고, 비단신은 조원철이 저 멀리 치워 두어 손을 뻗어도 도저히 닿지 않았다.그새 한씨의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금 신발을 가지러 움직였다간 꼼짝없이 의심을 살 게 뻔했다.진퇴양난의 순간, 손에 들린 연고가 눈에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번뜩 기지가 발휘되었다.“유영아, 많이 고단했느냐? 잠자리에 일찍 들었네.”방 안으로 들어선 한씨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강유영을 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발이 좀 까져서 연고를 바르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실 줄 모르고 결례를 범했네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강유영은 약을 바르던 손을 거두고 신발을 잡아당기며 침상에서 내려오는 시늉을 했다.말투는 공손했으나 은연중에 거리감이 묻어났다.신분이 밝혀지기 전, 아주 어릴 적부터 한씨는 유영을 은근히 배척했다.단 한 번도 살가운 정을 나눈 적이 없었으니, 이제 와 진정한 모녀의 정이 느껴질 리 만무했다.“발을 다쳤다니, 오늘 입궁하느라 고생이 많았나 보구나. 예는 되었으니 가만히 있거라.”한씨가 손을 내저으며 다가오려 하자, 강유영은 얼른 몸을 바로 세우며 자리를 권했다.“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쪽에 앉으시지요.”한씨는 몇 걸음 물러나 의자에 앉으며 강유영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그나저나 손은 왜 그러느냐?”“오늘 다도를 할 때 누군가 제 다구들을 흑자기로 바꿔치기했습니다.”강유영은 눈길을 내리깔며 담담히 대답했다.한씨가 진심으로 걱정해서 묻는 게 아님을 잘 알았다.늘 그래왔듯, 그저 형식적인 질문일 뿐이었다.“감히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진국공부와 척을 지겠다는 심사가 아니고서야! 내 조만간 네 오라비에게 말해서 철저히 조사하라 이르겠다.”한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강유영이 손을 데어서 화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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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강유영은 한씨에게 들킬까 두려워 소매를 꽉 쥔 채 조용히 땀방울을 훔쳤다.그녀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어머니께서 안살림을 도맡아 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제 몸은 제가 잘 건사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녀는 짙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조원철이 부재했던 몇 년 동안, 한씨는 강유영과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그러다 그가 돌아온 뒤로 겉으로나마 인자한 척을 해 왔으나, 정작 실속 있는 배려는 전무했다.이렇듯 손수 이불깃을 다독여 주는 살가운 행동은 난생처음이었다.한씨가 오늘따라 이토록 유별나게 구는 것을 보니, 그녀를 이용해 먹을 속셈이 분명했다.“다른 뜻이 있어서 온 건 아니고, 그저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너는 다도를 어디서 배운 게냐?”한씨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가슴에 품었던 의구심을 슬쩍 던졌다.“그저 적적함을 달래려 셋째 언니가 다도를 연습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혼자 익힌 것뿐입니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기색을 감추며 재빨리 핑계를 대었다.오늘 궁에서 가볍게 솜씨를 선보인 일로 한씨를 비롯한 진국공부 전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다도라는 게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제대로 된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결코 독학으로 깨우칠 수 없는 법이란다.”한씨가 그녀를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그 순간 강유영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심장이 터질 듯 세차게 뛰었다.‘대체 무슨 의도지? 설마 내게 다도를 가르쳐 준 사람이 오라버니라는 걸 눈치챈 건가?’그녀는 덜컥 겁이 난 듯, 속으로 조원철을 원망하며 이불 속에서 발을 슬쩍 움직였다.그러자 은밀하게 숨어 있던 조원철이 안심시키려는 듯 그녀의 발등을 가만히 다독였다.“그러니 연화가 다도 스승에게서 솜씨를 배울 때, 너도 틈틈이 눈동냥으로 배워 익힌 게로구나?”한씨는 이어서 목적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오히려 안도의 숨이 나왔다.그제야 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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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두 사람은 서로 속내를 감춘 채 기묘한 침묵만을 이어갔다.“그런데 내가 폐하의 의중을 살펴보니, 작년에야 겨우 민간에서 황궁으로 복귀했다는 그 서왕 전하께서 너를 서왕부에 들이고 싶어 하시는 눈치더구나. 유영아, 넌 언제 서왕 전하와 안면을 트게 된 게냐?”한씨는 강유영을 빤히 응시하며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을 마침내 입 밖으로 뱉었다.사실 진국공 역시 한씨에게 이 내막을 알아오라 명한 참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서왕은 조정에서도 본 이가 몇 안 되는 신비의 인물이었다. 조연화조차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덕에 겨우 그의 신분을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그 후 진국공부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한씨는 딸을 위해 특별히 서왕부에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하지만 아무런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강유영이 운 좋게 서왕의 눈에 들 줄이야.한씨는 속으로 강유영 따위가 감히 넘볼 자리가 아니라며 뒤틀렸지만, 한편으로는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강유영의 하얗고 맑은 얼굴에는 그저 막막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녀는 정말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경화 공주를 제외하고는 황궁의 다른 황족들을 만나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하물며 그 신비주의에 싸인 서왕 전하라니, 정말 가당치도 않았다.“그럼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이냐?”한씨는 그녀가 전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아니자 속으로 더 의구심이 들었다.처소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강유영이 서왕을 만날 기회가 어디 있단 말인가?필히 무슨 내막이 있을 것 같았다.강유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 또한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되었다, 지나간 일을 캐물어 무엇하겠느냐.”한씨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서왕 전하의 눈에 든 것 자체가 네게는 크나큰 운수다. 과거 그분은 생모와 함께 실종되셨고, 폐하께서 수년간 그 모자를 찾아 헤매셨지. 갑작스레 돌아오신 만큼 서왕 전하는 지금 폐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지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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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한씨는 은근히 무게를 실어 말했다. 사실 이 말만큼은 온전히 본심이기도 했다.강유영이 서왕부로 시집가면 진국공부에도 막대한 이득이 생길 테니, 거역할 수 없는 판국이라면 그 권세를 어떻게든 잡고 누리는 편이 현명했다.“어머니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강유영은 고개를 숙이며 얌전히 대답했다.한씨가 늘어놓는 이치를 그녀가 어찌 모르겠는가.정작 그 서왕이라는 자와는 일면식도 없었고, 대체 언제 자신이 그자의 눈에 들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결국 사내란, 특히 귀한 신분일수록 미색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는 법이다.마음에 드는 여인을 값비싼 노리개 취급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지만, 일단 소유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흥미를 잃고 말 터였다.가진 게 많은 그들이 어찌 일편단심을 알겠는가.초반의 신선함이 가시면 결국 싫증을 낼 게 뻔했다.언젠가 조원철이 가르쳐 주었던 말 그대로였다.‘미색으로 사내를 섬긴들, 그 총애가 과연 얼마나 가겠느냐.’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불 속에서 조원철의 커다란 손이 종아리를 사정없이 꽉 움켜잡았다.강유영은 밀려드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비명을 삼켰다.‘또 왜 이러지?’그가 듣기 싫어할 이야기임을 알기에 그저 알겠노라 적당히 넘겼을 뿐, 덥석 시집가겠다고 수락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왜 또 심술을 부리는지 모를 일이었다.“네가 워낙 사려 깊고 유순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한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발을 다쳤으니 연고를 바르고 일찍 쉬도록…….”툭!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침상 머리맡 협탁 틈새에서 조원철의 가죽장화 한 짝이 난데없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둔탁한 소리에 한씨는 고개를 돌려 바닥을 응시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강유영은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눈앞이 캄캄해지며 현기증이 일었다.‘왜 하필 지금 이게!’이제 모든 게 끝장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노발대발한 한씨가 곤장을 들고 자신을 매질해 죽이는 끔찍한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이건…….”한씨는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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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애초에 강유영은 조원철을 방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그가 한사코 밀고 들어온 탓에 한씨에게 들킬 위기에 처했으니, 이 소란의 책임은 당연히 그가 짊어져야 마땅했다.한씨는 한참 동안 매서운 눈으로 강유영을 응시하더니, 들고 있던 장화를 내려놓았다.“네 오라버니가 너를 아끼는 건 너를 친동생처럼 대하는 것이니, 너도 분수를 잘 알고 처신하리라 믿는다.”한씨의 어투에는 한층 더 묵직한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역시나 이 고얀 것이 감히 원철이를…….’강유영이 감히 아들을 마음에 품고 은밀한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었다.서왕부에 들어갈 이 좋은 기회를 두고 왜 그리 불손하게 튕겨 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오로지 조원철만 바라보며 그의 장화까지 몰래 숨겨 두고 있었다니, 참으로 염치없는 행위였다.강유영은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내리깔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역시 오라버니를 친오라버니로 깍듯이 모시고 있습니다.”그때 이불 속에서 조원철이 가만히 손을 옮겨, 이번에는 그녀의 다리를 은근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그녀는 밀려드는 수치심과 조급함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당장 머리 위에 불이 떨어진 판국에 어찌 이리도 유유자적할 수 있단 말인가.조만간 그 때문에 제명을 살지 못할 것 같았다.“너도 알다시피, 네 오라버니는 성품이 곧고 정직한 사람이다.”한씨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 말했다.“그럼요.”강유영은 여전히 시선을 아래에 둔 채, 온순하게 답했다.조원철이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단정하고 고결한 군자로 통하는지 그녀가 어찌 모르겠는가.하지만 정작 이불 속의 그는 그녀를 단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만약 지금 당장 이불을 걷고, 한씨가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는 정직한 아들이 어떤 대담한 짓을 벌이고 있는지 보여 준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사실 너희가 친남매처럼 우애 깊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무척 흐뭇하구나.”한씨의 안색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더니 어조도 차분해졌다.“오늘 입궁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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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그의 간섭 따위는 필요 없었다.“네가 그리 말해 주니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며칠 후 집안에서 신년 연회를 열 생각이니, 너도 잊지 말고 곱게 단장해서 참석하거라. 서왕 전하께서 진국공부가 너를 박대했다고 오해하시지 않게 말이다.”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만 쉬거라.”“살펴 가십시오, 어머니. 서유야, 어머니를 잘 배웅해 드리렴.”강유영은 몸을 일으키며 한씨를 배웅했다.그녀는 한씨가 방을 나서고 저만치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팽팽하게 긴장했던 몸이 스르륵 풀리며 막 이불을 걷어 내려던 찰나였다.조원철이 이불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양손으로 그녀의 몸 양옆을 짚어 품 안에 가두고는, 거리를 좁히며 지그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불 속에 오랫동안 숨어 숨을 죽이고 있었던 탓인지, 희고 깨끗한 얼굴에는 보기 드문 붉은 기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날카롭게 빛나던 칠흑 같은 눈동자도 어쩐지 촉촉하고 부드러운 빛을 띠었다.거리가 너무 가까워 강유영은 순간 뺨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얼른 손을 들어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다.“어서 가세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며 모질게 내뱉었다.“앞으로 다시는 오지 마세요. 오라버니가 가르쳐 주신 것들은 다 외웠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배우겠습니다. 더는 제게 마음 쓰지 마세요.”방금 전 한씨가 했던 말이 여전히 귀가에 생생하게 맴돌았다.회남왕이 경성으로 올 예정이고, 조원철은 소은경과 혼인을 치를 것이다.그런 그가 왜 아직도 그녀의 침상에 남아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이건 또 무슨 계책이지? 다 이용했으니 이제 꺼지라는 거냐?”조원철은 강유영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그녀는 짜증스럽게 그의 손을 밀쳐냈다.짙은 속눈썹이 눈가에 차오른 복잡한 감정을 가려 주었지만, 마음이 혼란스럽고 아파서 숨이 막혔다.조원철은 다시 몸을 숙여 그녀의 볼을 감싸려 손을 뻗었다.강유영은 거세게 반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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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오라버니, 대체 무슨 짓을…”강유영은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사방이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을 내리누르는 단단한 가슴과 숨결에 섞인 은은한 감송향은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손 다쳤으니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지.”조원철이 다급히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으나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앗!”강유영의 다친 손가락이 그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숨을 들이켰다.“아파요…….”강유영은 물기 어린 목소리로 투정 부리듯 작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그리 아프다면서 매질은 용케 하는구나.”조원철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더니, 그대로 품에 끌어안고 옆으로 누웠다.결국 그녀는 그대로 안겨 버렸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강유영은 몸을 비틀며 버둥거렸다.“몸이 이리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하겠느냐.”조원철은 그녀를 더 단단히 끌어안으며 긴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옭아맸다.그의 말에는 체념과 한숨이 섞여 있었다.다정한 나무람을 듣고서야 강유영은 마음을 조이던 긴장의 끈을 스르륵 놓았다.그녀는 더는 저항하지 않고 움직임을 멈추었다.어두운 방 안에 완전한 정적이 찾아들었다.조원철은 조심스레 이불을 끌어당겨 그녀의 어깨까지 덮어 주었다.그러고는 팔을 부드럽게 옥죄며, 마치 보물을 다루듯 턱을 그녀의 정수리에 갖다 댔다.이토록 노골적이고 다정한 밀착은 그녀의 온몸을 달구기에 충분했다.강유영의 얼굴은 그의 넓은 가슴팍에 고스란히 파묻혔다.되돌아오는 제 숨결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열기를 더했다.귓가에는 규칙적인 그의 숨소리와, 터질 듯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교차했다.그의 단단한 품은 지독하리만치 따스해서, 그녀의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을 온통 밝게 물들여 주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밀려드는 안도감 속에 까무룩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이제 그만 처소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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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네가 가서 포섭하거라.”조원철은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이마를 톡하고 건드리며 말했다.“제가요?”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방이 어두워 그의 날카로운 옆얼굴 윤곽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내가 너를 위해 몸소 위험을 무릅쓰는데, 정작 너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냐?”조원철은 다시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쥐어박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피하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애초에 그녀를 위한 일이었으니, 직접 나서서 판을 짜는 것이 도리였다.조원철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어서 가세요.”강유영은 다시 그를 재촉했다.이야기도 다 끝났는데 대체 왜 아직도 안 가고 버티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원하는 걸 이루었다고 사람을 내쫓다니, 성미가 너무 급하구나.”조원철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강유영은 그의 품에 얌전히 안긴 채 입을 다물었다.아직 그에게 기대야 하는 처지였기에 너무 모질게 굴 수도 없었다.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진국공부의 신년 연회는 정월의 여섯째 날로 잡혔다.입김을 불면 그대로 얼어붙을 것처럼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며칠 전 한씨가 신경 써서 치장하라고 신신당부했기에, 강유영은 단장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정성스레 고른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단비가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머리를 만져 주고 있었다.“아씨.”서유가 안으로 들어오며 강유영을 불렀다.“무슨 일이니?”강유영은 거울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세자께서 청류를 시켜 보내온 것입니다.”서유의 손에는 음식 상자가 들어 있었다.그녀는 거울을 통해 조심스럽게 상전의 안색을 살폈다.조원철이 돌아온 이후로 강유영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예전에는 겁 많고 유약하여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눈물도 잦았다.비록 지금도 겉모습은 변함없이 여리고 가냘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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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강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림새를 살피고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손난로를 품에 안고 뜰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해졌다.그녀는 일개 국공부의 양녀라,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에 불려간 적도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한씨가 일부러 그녀를 불러 소은경을 대접하게 한 것은 조원철과 더는 어떤 식으로든 얽히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가 틀림없었다.강유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한씨는 그녀가 조원철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줄 알겠지만, 정작 그녀는 단 한 순간도 분에 넘치는 것을 원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그저 선택권이 없었을 뿐이었다.강유영은 고개를 들고 온실 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길게 심호흡하고 걸음을 옮겼다.온실 안에는 화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훈훈한 열기가 확 밀려왔다.소은경은 온실 중앙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조연화와 조사예가 그녀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조월아도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유영 언니...”조월아는 강유영을 보자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건넸다.조연화는 소은경과 친하고 조사예는 군주인 소은경의 비위를 맞추느라 야단법석인데, 말주변이 없는 조월아만 소외된 기분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마침 강유영이 와주었으니 드디어 말동무가 생겨서 기쁜 조월아였다.하지만 이름을 부르자마자 지금 상황에서는 아는 척을 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입을 다물었다.“군주님을 뵙습니다.”강유영은 앞으로 나아가 소은경에게 공손히 예를 올린 뒤, 조월아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조월아 역시 그녀를 마주 보며 배시시 웃었다.“왔느냐.”소은경은 강유영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렸다. 눈동자 깊은 곳에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특히 강유영의 머리에 꽂은 홍옥 매화 비녀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꽃술에 박힌 작은 수정 구슬이 은은한 햇살 아래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조연화는 강유영을 보더니 하찮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고, 조사예의 눈에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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